부산고등학교 야구부
[image]
1. 개요
부산광역시 동구 소재 부산고등학교에 위치한 야구부.
경북고와 더불어 '''대통령배 최다 우승팀'''이자 경남고와 함께 부산 지역 고교야구의 양대 자존심. 경남고가 청룡기의 강자라면, 부산고는 대통령배의 강자. 우수한 투수들이 자주 등장한 학교이자 추신수의 모교로도 잘 알려져 있는 학교.
순혈주의가 비교적 강한 롯데 자이언츠에서 경남고가 성골 취급을 받는다면, 부산고는 진골 취급을 받는다. 같은 실력이면 부산고 출신을 쓰는 것을 팬덤에서 더 원했을 정도. 한때 부산고가 성골 취급을 받기도 했으나, 장원준 이적 사태 이후 부산고는 더 이상 성골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장원준의 두산 베어스 이적 사건의 충격으로 성골, 진골 따지는 게 뭐가 의미있냐는 자조적인 분위기가 팬덤 내에서 일었고, 실제로 이제는 팬덤 내에서 성골/진골 등의 용어를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현재는 조성옥 - 조찬희 부자(父子)의 영향[3] 및 롯데의 출신학교별 파벌 싸움 문제도 있어서 롯데 팬덤에서 문제시 되고 있는 야구부로 전락했다. 2019년 GIANTS TV에서 부산중고 총동문회인 청조회 단체 관람 영상을 올렸는데, 특정학교를 예우하는 행사 현수막을 놔두거나 동문 양상문 前 감독을 노골적으로 응원하는 문구를 걸어놓는 행동으로 인해 팬덤의 반응이 상당히 안 좋은 편.
2. 연혁
1947년 창설했다고 하지만, 첫 전성기는 1960년대로서 김소식이 에이스로 활약하며 1962년 청룡기에서 첫 정상에 오른 것이 시초였다. 그 뒤 꾸준한 선수들이 나왔지만 전국을 지배했다고 보기에는 경남고의 위세에 다소 눌린 편이었다. 특히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는 9회말까지 1:4로 앞서다가 군산상고에게 4점을 내주면서 대 역전패, 군산상고에게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을 선사하는 조연이 되고 말았다.
부산고가 처음으로 전국 무대를 지배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1978년 양상문이 이끌 당시였다. 이미 1977년 대통령배 준우승을 이끌면서 이름을 알린 양상문은 1978년 정부 방침으로 출전 제한이 걸려 3개 대회만 나가게 된 상황에서 부산고가 출전한 대통령배, 청룡기, 화랑대기에서 모두 우승을 이끌면서 부산고에게 화려한 시절을 선사했다. 투수로서 명석한 두뇌와 예리한 제구력을 보유한 안경잡이 에이스의 활약 속에 부산고는 처음으로 라이벌 경남고와 대등한 위치를 논할 수 있게 되었고, 양상문이 졸업한 뒤에도 1979년 조성옥의 활약 속에 청룡기 2연패를 달성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982년 이 번에는 김종석이 에이스를 맡아 전해인 81년 마지막 대회인 황금사자기 4강에 오른후 대통령배 우승과 봉황대기 4강에 올라가면서 부산고의 전성 시대는 계속되었다.
양상문의 뒤를 이어 전국적인 주목을 받은 재능이 부산고에 등장하는데, 바로 박동희였다. 비록 프로 무대에서는 아마 시절에 받았던 주목과 거리가 먼 성적을 냈다고 하지만, 1985년 고3이던 박동희는 자신이 나간 서울의 메이저 4개 대회에서 모두 8강 이상의 성적을 냈고, 봉황대기에서는 우승을 선사했다.
양상문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박동희가 졸업한 후에도 1986년 봉황대기의 우승 주인공은 부산고였다. 그리고 1989년 강상수의 활약 덕에 대통령배에서 우승에 성공하며 부산고는 두 번째 전성 시대를 이어갔다.
1990년대 초, 이번에는 부산고 출신의 에이스 투수들이 잇따라 나오는데 바로 염종석-주형광-손민한이었다. 이 중 고교무대에서 가장 빼어난 성과를 낸 것은 주형광으로 1992년 대통령배 우승, 황금사자기 준우승, 1993년 봉황대기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롯데에 입단하게 되었다. 봉황대기 우승 당시 일화. 주형광의 한 해 선배인 손민한도 1992년 대통령배 우승과 황금사자기 우승의 주역인데, 이 때 그들의 볼을 받아낸 포수가 바로 진갑용이었다.
그리고 1990년대 말 부산고는 백차승이 등장하며 전국구 에이스의 계보를 이었고, 백차승이 팀 전력이 약해서 우승은 시키지 못하고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2년 후배인 좌완 투수 추신수의 활약 속에[5] 대통령배 2연패에 성공하며 위상을 다시금 알렸다. 추신수는 두 대회 연속 MVP를 수상하며 이름을 날렸고, 2000년 청소년대표팀의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의 주역이 되며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부산고는 우승과 조금 멀어졌다. 장원준이나 이민호 같은 우수한 투수들은 나왔지만 전반적으로 야수진이 그리 강하지 않고, 팀이 뭔가 정비되지 않은 듯한 것이 정상과 다소 거리가 멀어진 원인이다.[7] [8]
그러나 2004년에 손광민이 제56회 화랑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우승과 제85회 전국체육대회 우승을 이끌어 내기도 했고 2005년 야구 100년기념 전국우수고교야구대회[9] 준우승을 기록했고 2007년과 2010년 화랑대기에서는 우승을 거머쥐며 약간의 부진은 날아오르기 위한 것이었다.라는 걸 보여주며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10]
단 2010년 들어서 과거에 비해 지원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중학교 선수 스카웃 경쟁에서도 항상 경남고등학교에 밀리는 중.
2019년 황금사자기 8강, 청룡기 4강[11] 에 올랐다. 이어진 대통령배에서도 4강에 올라 전년도 우승 팀 대구고와 격돌하였다. 2-5로 뒤진 상황에서 1학년 외야수 최원영이 좌측 파울폴대를 때리는 만루홈런을 치며 6-5로 역전했으나 8회말 2사 만루에서 대구고의 류현우에게 싹쓸이 2루타를 맞는 등 4실점하며 6-9로 패배했다. 이 날 경기에서 스트라이크 판정에 항의하는 의미로 김성현 감독이 선수단을 중간에 철수시키는 장면도 나왔다.[12]
2020년 황금사자기 2회전(1회전은 부전승)에서는 율곡고에 1-3으로 역전패하면서 이번에도 황금사자기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시즌 중 감독 교체(김대익 코치의 감독 승격)가 이뤄졌으며 대통령배 1회전에서 성남고에 4-3 1점차로 분패했다.
2020년 9월 14일에 박계원이 감독으로 취임했다. 2020년 봉황대기 8강전에 진출했으며 수원유신고를 상대한다.그러나 0:5로 완패하며 탈락했다.
3. 야구대제전
'''야구대제전 한정 만년 락라인'''
- 역대전적 : 14승 5패(부전승 3승 포함)
- 최고기록 : 준우승(제3회 야구대제전)
3.1. 제1회 야구대제전
1회대회때는 양상문, 심재원, 김정수, 김민호, 조성옥을 앞세워 경북고, 선린상고 등과 함께 막강한 우승후보로 손꼽혔다. 1회전에서 포수 심재원의 홈런으로 대전고를 6:2로 격파하고 16강 진출, 16강에서 동대문상고와 4:4 동점상황에서 심재원의 끝내기 홈런으로 진출한 9강전에서 강호 경북고와 마주하게 되었는데 9이닝 1실점을 기록한 양상문의 호투로 이선희-황규봉이라는 막강 투수진의 경북고를 무너뜨리며 4강행을 기록하게 되었다.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최고의 라이벌인 경남고였는데, 에이스 양상문이 4회에 우경하 - 김용희 - 차동열에게 3타자 연속 홈런을 맞으며 흔들리기 시작햇고 이에 경남고는 에이스 최동원을 등판시키며 경기를 4:1로 마무리지었다. 3타자 연속 피홈런에 8회 외야수로 투입되어 악송구로 1실점을 헌납한 양상문은 기억하기 싫어할 경기.
3.2. 제2회 야구대제전
2회 대회때는 1회전 부전승으로 올라왔으며 16강 상대로 경북고를 또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경북고를 상대로 4:3 승리를 기록하며 8강 진출, 8강에서는 휘문고와 마주하게 되었는데 조성옥의 활약으로 5:4 승리로 4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4강상대는 또다시 마주한 경남고. 그리고 8:5로 또다시 패배를 맛보며 4강에 머무르게 되었다.
3.3. 제3회 야구대제전
3회 대회때는 배명고를 상대로 12:3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기록하며 16강으로 진출, 김재박의 활약으로 대전고를 꺾고 올라온 대광고였다. 그러나 편기철의 역투등에 힘입어 9:0 7회 콜드게임 승리로 8강에 진출했고 경남고를 꺾고 올라온 동대문상고를 12:3으로 5회 콜드게임승을 기록하며 파죽지세의 모습을 보여주며 4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는 부산상고와 맞붙었는데 최옥규 - 윤학길 - 노상수라는 막강한 투수진을 내놓았지만 김민호등을 앞세운 부산고의 화력을 막아내지 못했고 12:5라는 점수차이로 부산고등학교가 결승전에 진출하게 된다.
임호균을 위시로 한 인천고와 맞붙게 되었고 모든이들의 예상은 압도적인 전력으로 올라온 부산고가, 역전승 혹은 신승으로 아슬아슬하게 올라온 인천고보다 강하다라고 생각했었으나 경기는 난타전으로 이어졌고 9회말 1사 만루상황에서 인천고 조흥운의 땅볼타구를 부산고 2루수 한영준이 실책을 기록, 끝내기 안타가 되며 결국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3.4. 2013 야구대제전
2013년에는 동산고와 대구고를 꺾고 4강에 진출햇지만 성남고에게 일격을 당하며 4:3 패배로 4강에 머물렀다.
3.5. 2014 야구대제전
2014년에는 부전승으로 16강에 선착했고, 광주동성고와 맞대결을 펼쳤으나 패배하며 사상 첫 야구대제전 4강진출 실패를 했다.
3.6. 2015년 야구대제전
2015년 대회에도 참가했지만 1패를 기록하며 16강에 머물렀다.
4. 경남고등학교와의 라이벌리
지역 라이벌로는 경남고등학교가 있다. 부산고와 경남고는 전통적으로 상대 학교보다 뭐든 잘해야 하는데 야구도 예외는 아니다.기사
경남고의 에이스였던 이대호가 말하길 "정기전은 없지만 지역예선에서 만나게 되면 무조건 이겨야 했다."고 이야기 했을 정도였으며 이들의 라이벌리를 이용한 이벤트 경기가 2011년에 열리기도 했다. 다만 2010년 이후로는 경남고등학교가 부산고등학교에 비해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5. 출신 선수[13]
6. 여담
- 고교야구 팀 중에서 혹사 논란이 거의 없는 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조성옥 등 부산고 감독들은 고교팀이 프로처럼 분업야구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짧게 짧게 투수 교체를 이어가서 투수만큼은 관리를 철저히 해준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선발투수의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다. 조성옥 전(前) 부산고 감독은 훈련은 토 나오게 시킬지언정 혹사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애들이 너무 편하게 던져서 프로에서 새가슴이 된다는 볼멘소리까지 들었다. 그때문인지 부산고 투수들은 프로에 가서 유리몸되어 골골 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표적으로 장원준.
- 그러나 사실 부산고 출신의 선발 투수로 최근에 성공한 사례가 장원준밖에 없어서 그렇지 장원준을 제외한 부산고 출신들은 유독 부상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전병두, 이지모, 정수민처럼 선수 활동 기간보다 재활 기간이 더 길었던 유리몸 투수들이 즐비하다. 이 정도 클래스는 아니지만 이왕기, 안태경 등도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 앞선 세대인 양상문, 주형광, 염종석 등을 보더라도 부산고 출신 투수들은 대체로 내구성이 썩 좋지가 않았다. 윤성빈처럼 아예 고교 재학 시절 장기 부상을 겪은 경우도 있다. 조성옥과 후임 부산고 감독들은 분업야구 소리를 들을 정도로 프로야구 수준으로 잦은 투수 교체 운영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이 선발 투수에게는 부담이 덜한 것으로 착시 효과를 일으키기 쉽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불펜 투수들의 과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고교 야구부의 특성상 선수 풀이 매우 작을 뿐만 아니라 선발과 불펜이 프로만큼 철저히 구별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투수진 전체가 체력적인 부담을 나눠질 수밖에 없다. 불펜투수의 경우 던지는 이닝은 짧지만 몸을 풀기 위해 던져야 되는 공이 많은 만큼, 투수 교체를 많이 하는 부산고의 특성상 투수들은 기록으로 드러나지 않는 혹사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 2016년 당시 투수코치는 부산고[19] -고려대 출신의 김수형, 타격코치 광주동성고-롯데 출신의 박준서가 맡았다. 전임 투수코치였던 김백만은 부산정보고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고 박준서도 대구상원고 코치로 이동하였다.
- 연고 구단인 롯데 자이언츠 팬덤에서 최근 평가가 매우 안 좋은 고교 야구부다. 심지어 부산고 출신을 픽하지 말하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부산고 야구부이 현재 이토록 롯데 팬덤에게 평가가 안 좋은 것은 조성옥-조찬희 부자 및 손민한, 추신수, 장원준 등 부산고 야구부 출신 선수들의 행동이 누적된 결과다. 손민한의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조성옥-조찬희와 연관되어 있다.
- 손민한의 경우 FA 먹튀라는 오명을 뒤집어써도 팬들이 지지해주고, 구단에서 재활하라고 배려해줬더니 제대로 재활은 하기는 커녕 태업을 일삼고, 선수협 비리라는 중죄를 저질렀으며 끝내는 옆동네의 NC 다이노스에 입단하여 거기서 레전드 소리를 듣고 있다. .
- 추신수는 롯데의 1차 지명을 쌩까고 미국으로 간 전력이 있다. 선수 본인이 롯데에 섭섭했건 말았건을 떠나서 결과적으로 1차 지명 픽이 날아간 거니까 롯데 팬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 장원준의 두산 이적 이후 부산고 출신에 대해 통수(...)라는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다.
- 조성옥과 후임 부산고 감독들, 그리고 조찬희가 브로커 노릇을 하면서 선수들을 줄줄이 해외로 진출시키고 있는 것도 롯데 팬덤에서 평가가 나빠지고 있는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많은 선수들이 미국으로 진출했지만 추신수를 제외하면 성공 사례는 없다. 추신수도 시애틀이 타자로 전향시켰기에 성공했다.
- 부산고 야구부 출신 비공인 에이전트 조찬희의 활약(?)으로 이제는 부산고 출신은 픽하지 말아야 한다는 롯데 팬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NC 다이노스가 한때 롯데의 성골 소리를 듣던 부산고 출신 선수들을 영입하는데 유독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의 6개 고교 구단 중 유독 부산고 출신 선수들만 골라서 대거 영입하고 있다. 부산고가 롯데의 상징인 줄 알고 있는 모양. 선수협 비리사건으로 KBO팬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던 손민한을 영입하며 그의 죄를 감싸줬으며, 그의 개인적 편의를 크게 봐주면서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가도록 배려하기도 했고 마지막엔 은퇴식도 치뤄줬다. 또 특별지명 당시 이민호와 김태군을 지명했으며, 시카고 컵스에서 방출당한 후 3년간 공백기에 있던 정수민을 영입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부산고 출신의 NC 선수들이 여럿 있다. NC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팀 선수인 손민한, 이민호, 정수민 등이 부산고 출신임을 유독 강조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
-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와는 유독 인연이 없다. 준우승만 4차례(1965, 1966, 1972, 1992년) 기록했다. 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에게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을 만들어준 1972년 결승전은 지금도 화제다.[20] 2019년 제73회 대회에서 8강전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8강전 맞대결 상대인 마산용마고등학교 야구부만 넘는다면 결승전까지 순항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결승전 진출 시,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 또는 광주동성고등학교 야구부와 대결할 것으로 보인다. 8강전에서 마산용마고에 3-11로 패하며 황금사자기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했다.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2]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3] 다만, 최근에는 손아섭이 롯데에 잔류하고 윤성빈이 롯데에 입단하는 등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4] 한화에서 방출된 후 부산고 투수코치를 거쳐 2020년 현재 부산정보고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부산고 투수코치로 재직하면서 NC의 이민호, 롯데의 송주은을 길러냈다.[5] 2000년 대회에서 고교 동기인 김백만[4] 은 준결승에서 2학년 류제국의 덕수고(당시 덕수정산고)에 완투승을 거두며 연투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정근우가 내야수로 공-수-주 다방면에서 활약했다.[6] 자매학교인 요코하마 고등학교 유니폼과 흡사한 디자인이며, 이 유니폼을 입은 해는 2000년이다. 사진은 2000년 대통령배 때의 모습[7] 2001년에 부산고는 부산지역 중학생 투수들을 입학시켰고(좌완 장원준-박근홍, 우완 정통파 최대성-이원재, 우완 사이드암 김수형-정종국). 2002년에는 정의윤과 이왕기가 가세하여 멤버들의 면면에서는 전국 최고였으나 전국대회 우승 2관왕은 쉽게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무관에 그치고 말았다.[8] 당시 동대문야구장 기록실 기록원들이 좋아하지 않는 감독이 부산고의 조성옥 감독이었다. 투수교체를 워낙 자주해서 기록지 칸이 모자랐다는 말까지 있었다. 이런 두터운 투수진 뎁스 덕분에 장원준이 고교시절 혹사를 피해갈 수 있었고 프로에서 큰 부상없이 롱런이 가능했다는 말도 있으나 그에 반해 불펜 투수진들의 혹사 문제도 불거졌다.[9] 당시 전국대회 중 매년 첫 번째로 개최된 대통령배 대신 2005년에는 이 대회가 첫 번째 대회였다. 참가팀들의 수준도 높았고 분위기도 진지했다. 양후승 감독이 이끄는 인천고에 패배했다. 인천고 우승 멤버는 김성훈, 김용태, 이재원, 이명기 등이었다.[10] 2007년 우승의 주역은 정수민,김태군, 2010년 우승에는 이민호,송주은,정현이 기여했다.[11] 개성고도 4강까지 진출해서 부산팀끼리의 결승전이 이뤄질 수 있었으나 부산고는 수원유신고에, 개성고는 강릉고에 패했다. 우승팀은 유신고.[12] 대회 우승은 대구고가 차지했으며, 2년 연속 대통령배를 가져갔다.[13]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14] 동아대 재학중 어께 부상으로 은퇴.[15] 미국 귀화전 이름은 백차승.[16] 2013년 말 황성용에서 개명.[17] 2012년 박정태에서 개명.[18] 2009년 손광민에서 개명.[19] 장원준,박근홍과 동기다.[20] 4대 1로 뒤지던 군산상고는 9회 말 공격에서 4득점에 성공해 역전승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