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소제(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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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나라의 제28대 황제이자, 후한#s-1의 13대 황제#s-2. 휘는 변(辯).
원래 소제라는 제호는 시호#s-2를 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요절한 황제에게 붙이는 일반 명사로, 어린 황제라는 뜻이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이 영제와 헌제 사이의 소제일 것이다.
시호는 회왕(懷王)으로, 다른 이칭으로는 폐위당하고 나서 받은 작호인 홍농왕(弘農王)과 작위와 시호를 합친 홍농회왕(弘農懷王) 등으로도 불린다. 재위 이전에는 '황자변(皇子辯)'으로 불렸다.
2. 정사
소제의 모친 영사황후 하씨(하태후)가 헌제의 모친 왕영을 독살했지만 이복동생 유협(헌제)과는 사이가 좋았는지 나중에 헌제가 소제를 독살했던 이유를 죽이려하기도 했다.[1] 소제 이전의 영제의 황자들이 여러 명 요절했는데 영사황후는 도술로 황자를 보호하겠다며[2][3] 소제는 어릴적 궁중이 아닌 도인 사자묘의 집에서 길러져서 사후(史侯)라고 불리게 되었다.[4] 궁중 예법을 익히지 못한 탓인지 소제는 경박해서 영제는 소제가 황제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여겨 하태후를 총애하고 하진의 권력이 강했어도 오랫동안 소제를 태자로 세우지 못했다.[5]
영제가 죽고 건석이 유협(헌제)을 즉위시키려는 계획이 실패하자 소제는 외숙부였던 대장군 하진에 의해 황제로 옹립되었고 하태후가 섭정을 하게 되었다. 흔히 소제가 아동기에 즉위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소제가 즉위했을 때 나이는 14세[6] 또는 17세[7] 로 당대 기준으로 결코 어리지 않았는데도 섭정을 당한 것이다. 십상시의 난에서 소제와 헌제가 환관들에게 이끌려 궁을 탈출하자 이들의 신변을 동탁이 확보하는데, 이때 소제는 동탁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헌제는 말을 조리있게 잘해서 동탁은 소제를 폐위할 생각을 품었다.[8] 『자치통감』에서는 동탁이 헌제를 키워준 사람이 자신과 성씨가 같은 효인황후 동씨임을 알아내고 소제를 폐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동탁이 정권을 장악하자 소제는 폐위되어 홍농왕(弘濃王)으로 강등되었고 반동탁 연합군이 진격해오자 이유를 시켜서 소제를 독살하도록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당시 소제가 동탁에게 살해 당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그것 때문에 반동탁 연합군이 몰려왔다는 점이다. 소제는 죽기 전에 연의에도 나오는 유명한 시를 당희와 서로 읊는데 아내 당희에게 재혼하지 말라고 말하고 스스로 독주를 마시고 죽는다. 홍농왕(소제)을 죽은 중상시 조충이 미리 마련해 두었던 묘혈(成壙)에 장사지내고 시호를 회왕(懷王)이라 했다.[9]
재위 기간을 5개월조차 채우지 못한 허수아비 황제였기 때문에, 조조가 소제의 무덤을 지나갈 때 참배를 해야하냐고 묻자 동우에게 답변을 듣고 그대로 지나쳤던 사례가 있었고, 일부 사가들은 후한 황제 연표에서 그를 황제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3. 폐위된 이유
어머니의 신분이 한미했던 점, 외숙부인 하진에게 옹립되었다는 점, 본인의 경박함이 약점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영제의 죽은 아들들을 제외하면 장남이고 정실 부인의 몸에서 났으므로 소제의 정통성에 딴죽을 걸 여지는 거의 없다.
흔히 '동탁 같은 권신에게 굳이 똑똑한 황제가 필요했을까'라는 점이 의문시되는데 그 이유는 권신에겐 똑똑한 황제보단 바보 같은 황제가 쥐고 흔들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류왕 유협이 똑똑하다 하여 황제로 삼는다는 것은 대체로 무리가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애당초 동탁은 십상시의 난 이전부터도 싹수가 노란 인물이기도 했으니 단지 뒷배경 없는 헌제가 더 나았으리라는 판단하에 소제 폐위를 강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헌제는 10살도 채 안 되었기 때문에 동탁 입장에서는 배경도 없겠다 소제보다도 더 다루기 쉬운 상대였다. 결국 고만고만한 어린애들 두 명이 황위 후보자라면, 권신으로 권력 휘두르기에는 배경이 약한 쪽을 고르는 게 낫다. 즉 똑똑하다는 것은 그냥 동탁이 대외적으로 내세운 명분일 뿐이지 동탁이 헌제를 선택한 실제 이유와는 관련이 떨어진다.
십상시의 난 이후 하진이 죽었지만 영사황후가 건재했고 십상시를 처분한 원소 등은 하진의 부하로, 동탁으로서는 자신이 권력을 마음껏 주무르고 싶은데 정당하게 수렴청정할 수 있는 영사황후와 하진의 잔여 세력은 눈엣가시니, 소제를 폐위하고 하태후를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 했던 것이다. 이는 소제에 비해 헌제에게는 배후에 지원하는 세력이 없기 때문에 소제가 폐위당했다는 해석이 된다. 또한 상술했듯 소제가 경박한 면도 있어서 동탁에게 있어서 소제의 이러한 점은 소제를 폐위하기에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4.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소제의 모친 영사황후가 왕영을 독살한 것과 헌제에 비해 소제가 똑똑하지 못하여 암군의 자질이 보인다는 구실로 폐위되었고 이유가 소제, 영사황후, 당희를 동시에 죽이고 소제가 죽기 전에 저항했다고 동탁에게 고하니 화가 난 동탁이 소제, 당희, 영사황후의 시체를 아무 곳에나 묻어버리게 한다. 정사와 비교해보면 영사황후와 소제는 동시에 죽지 않았고 당희는 살해조차 당하지 않았으며, 소제는 조충이 만들어두었던 묘에 묻혔고 영사황후는 영제의 무덤에 합장되었다.
5. 미디어 믹스
분명 후소제는 즉위 당시 나이가 10대 중후반 정도였는데 어째서인지 매체에서는 실제보다 훨씬 어린 나이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 헌제와 비슷한 또래로 그려지거나 오히려 그보다 더 어리게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에서는 나이 어린 소년에 걸맞게 여성 성우가 맡는 일이 많다.
삼국지 시리즈 중 몇 개의 게임 시리즈에서는 정석으로 플레이해도 소제를 옹립하려고 해도 소제가 황제로 등극하는 기간이 1년도 채 안 되기 때문에 소제를 통해 혜택을 볼 기회는 많지 않다. 십상시의 난 이벤트 후 동탁이 개입할 여지를 없애 폐위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게 상황을 만들더라도 그냥 1년 정도 기다리면 소제가 알아서 병사하는 이벤트가 뜨기 때문에 게임에서도 외면받는 편.
삼국지 9에서는 반동탁 연합 시나리오에서만 황제로 등장한다. 에디터로 뜯어보면 능력치가 통솔력 3/무력 1/지력 2/정치력 3으로, 능력치 총합이 16인 유선보다도 더 구리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3/무력/5/지력/9/정치/4/매력11로, 유선과 흡사하게 이스터에그가 반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토탈 워: 삼국에서는 어머니를 따라 장수 타입은 선봉장으로 나왔다. 일러스트는 클론 장수지만 고유 배경으로 사후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
배철수의 만화열전에서 성우는 김용준. 하는 짓은 단 두 글자, 맹구로 요약할 수 있다. 아버지 영제는 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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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도 등장하는데 애니메이션 성우는 사토 치에. 작중에서는 폐제(廢帝) 변(辯)이라고 지칭되며 영제가 사망한 후 옹립되지만 결국 동탁이 집권한 후 폐위당한다. 하태후와 함께 감금되어 있다가 이유에게 살해당하고 함께 목이 잘려 동탁에게 바쳐진다.
창천항로에서는 영제와 똑같은 얼굴의 멍청이로 나온다. 무서울 때마다 하태후의 품에서 울어대는 폼이 바보 인증으로 죽는 장면은 나오지 않으나, 하태후와 검열삭제 중 동탁의 대사로 본다면 하태후 다음에 처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우는 호라나이 아이.
최강무장전 삼국연의에서는 진류왕이 십대 중후반 정도이고 소제는 어린아이로, 명백히 소제 쪽이 동생으로 나온다. 그래서 소제 쪽이 체구가 더 작고 목소리도 진류왕은 남자 성우인데 소제는 여자 성우. 또한 성격도 실제 기록과 달라서 진류왕을 원래 소제의 성격으로 많이 알려진 나약한 쫄보 캐릭터로 채택하였고, 대신 소제는 버릇없는 성격으로 나온다. 첫 등장부터 '''목숨이 위험한 판에''' 자기는 황제인데 왜 이런 더러운 개구멍으로 지나가야 하냐며 신하를 갈구고, 동탁과의 첫 대면 때도 실제 기록과 달리 동탁이 먼저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었는데 도리어 '''네가 황건적에게 패해서 도망갔던 동탁이냐'''며 그를 모욕한다. 그래서 소제가 폐위당한 계기도 실제로는 똘똘한 진류왕과 달리 나약해서이지만, 본작에서는 동탁이 어린아이에게 모욕당한 것에 화를 내자 옆에 있던 이유가 황제를 폐위시키자고 제안한 것으로 바뀌었다.
화봉요원에서는 동탁이 낙양에 입성하고 정원을 죽인 여포를 영입한 189년에 동탁#s-1과 여포가 황궁으로 들어오면서 여포가 누군가를 죽이는 것을 보고 놀라다가 동탁이 소제가 있는 옥좌에 그대로 앉아서 인간 방석이 되자 괴로워하면서도 동탁이 "폐하, 나의 엉덩이 냄새가 향기롭소이까?"라고 묻자 향기롭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작품 내의 설명을 통해 소제가 폐위당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아버지 영제를 더 닮은 듯 동생인 헌제와 달리 정치에는 관심이 없으며 원소가 낙양에서 구조한 이후 동탁 암살을 계획하는 여포가 몰래 데려와 이유에게 보낸 뒤 독살함으로써 이유를 숙청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소제는 173년이나 176년에 태어나서 190년에 죽었으므로 179년생인 사마의, 방통이나 181년생인 제갈량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들보다 훨씬 어린 완전 꼬맹이로 그려졌다. 전반적으로 나이에 비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똑똑하고 한참 조숙한 사마의, 방통, 헌제 유협, 제갈량 등의 괴물들과는 달리 제 나이에 걸맞은 어린아이. 이후 여포가 동탁을 죽이려고 할 때 일시적으로 그를 이용했으며, 여포가 독이 든 빵을 줘서 이를 먹었다. 이유가 여포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그를 공격하려고 할 때 소제는 이유에게 끌려왔는데, 이때 독의 영향으로 토하면서 사망했다.
김경한 삼국지에서는 소제가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소제가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는 바람에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되고 거기에 위기 의식을 느낀 동탁이 이유를 시켜 소제를 살해한다는 정사에서의 전개를 따랐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첫화에서 동탁에게 길로틴[10] 을 당해 죽는 모습으로 1컷 등장한다.
와이파이 삼국지에서의 성우는 신온유. 어머니에게 휘둘리는 유약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헌제와는 우애가 있고 상당히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작중에서 묘사되는 "애늙은이 협이"가 그 예. 동탁에 의해 폐위되고 나서는 연의에서 지었던 시가 랩으로 재창작된다. 그 중 포인트인 부분은 랩의 비트로 들어가는 "동-탁, 동동탁" 이후 어머니와 함께 이유에게 독살당하는 것으로 출연은 끝난다.
5.1. 삼국지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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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에서는 성품도 유약하고 군주로서 모자란 점도 많지만, 그래도 인간적인 면모가 있고 선량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전반적으로 심약하지만 부드러운 인상. 또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게, 10대 후반 정도로 그려졌는데, 실제로 십상시의 난 무렵에 후소제는 16~17세 정도 되었다. 대체로 유씨 황족들은 머리나 눈이 올리브색이나 갈색 계열로 그려지는데 반해 유변의 머리와 눈 색은 하태후와 하진을 닮은 짙은 분홍색 계열의 핑크 브라운이다. 동생 유협은 또 본인 어머니를 닮은 금발에 가까운 연갈색 머리에 유씨 황족 특유의 갈색과 올리브색이 섞인 눈을 가져서, 형제지간에는 별로 닮지 않았다.
부황 승하 직후 모후가 스스로를 저주하는 듯한 말을 읊조리자 겁을 먹지만, 그 와중에도 외삼촌 하진을 위해 의자를 양보하려고 한다. 41화(시즌 2 1화)에서 제위에 오르는데, 연설문을 외우지 못해 손바닥에 적어 놓고 더듬더듬 읊는 등 별로 영민한 인물은 아니다.
십상시의 난 때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인질이 된다. 장양이 황제 형제를 끌고 도망치다가 막다른 길에 몰리자 둘을 붙잡고 강에 투신하는 바람에 물에 빠져 의식을 잃었으나, 다행히 깨어났다.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동생에게 자신의 옷을 덮어주는데, 유협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천한 몸이 천자의 옷을 더럽혔다, 용서해 달라"고 절을 하며 빌자[11] 충격을 받아 '형에게 절을 하는 동생이 어디 있느냐'며 동생을 달래려고 노력한다. 직후 동탁군 군견이 나타나 둘을 공격하려 하자 온몸으로 동생을 감싸안고 보호하려 한다. 곧 동탁에게 발견되어 황궁으로 귀환하지만, 동탁에 의해 폐위당하고 모후와 함께 유폐당하며, 곧 이유가 준 독약을 먹고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이유가 약을 가져와 '모든 고통을 없애주는 약'이니 먹으라고 강요하자,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눈치채고 미약하게나마 저항해 보지만 끝내 이기지 못해 울면서 속으로 '나 황제.... 안 할걸....' 하고 읊조리는 장면이 많은 독자들의 동정을 샀다. 결국 스마트폰으로 모후에게 '어마마마, 저 먼저 갈게요.'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소(少)는 정식 시호가 아니라, 시호를 못 받고 일찍 죽은 어린 황제에게 붙는 가칭이다.[13]
영민하지 못하고 유약한 편이지만 마음만은 따뜻하고 다정했던 인물. 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들 사이의 정치적 알력에 시달려야 했으며, 끝내는 정치적 문제로 독살까지 당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았다. 독자들은 그를 안타깝게 여겨 '평화로운 시대에, 황실이 아닌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소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했다.
[1] 물론 형과의 사이는 관계없이 동탁이 살아있는 동안 산산이 무너진 황실의 위엄을 조금이라도 다시 세우기 위한 행동이었을 수도 있다. 물론 당시 황실은 이렇게 내린 명마저 동탁의 뒤를 이은 이각이 반대하니 개무시당할 정도로 비참했다.[2] 출처: 후한기 효령황제기[3] 김경한은 불편한 삼국지에서 하태후와 하태후의 모친 무양군이 천민 출신이라서 미신을 맹신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옛부터 아이팔기라 하여 절이나 무당에게 아이를 맡겨 신불의 보호를 받아 재앙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고 액땜하는 풍습이 있긴 했다.[4] 출처: 후한서 영사하황후전 주석 헌제춘추[5] 출처: 후한서 하진열전[6] 출처: 동탁전 주석 장번의 한기[7] 출처: 후한서[8] 출처: 동탁전 주석 헌제기[9] 출처: 후한서 영사하황후전[10] 목 자르는 사형도구 길로틴이 아니라 프로레슬링 기술 길로틴.[11] 유협은 황제의 이복동생이라는 위태롭기 그지없는 자신의 지위를 확실히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형을 어려워하여, '우리는 원수지간이지 형제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무적핑크가 트위터에 밝힌 바에 의하면 친모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고 있다고.[12] 14세 혹은 17세. 기록에 따라 176년생 설과 173년생 설이 있다.[13] 유변은 189년 4월(양력 5월)에 10대 중반[12] 의 나이로 즉위하여 동년 8월(양력 9월)에 폐위당했다. 해를 넘기지 못했으므로 새 연호를 개원하지도 못했다. 따라서 정식 황제로서의 시호는 받지 못해 그저 소제라고 불린다. 혹은 폐위된 뒤 받은 작위인 홍농왕으로 칭하거나, 죽고 나서 받은 '홍농왕으로서의' 시호 회(懷)를 붙여 홍농회왕이라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