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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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성선임(成膳任)/ソニン(Sonim)
출생
1983년 3월 10일, 일본 고치현[1]
데뷔
"그룹" 2000년 EE JUMP 싱글 LOVE IS ENERGY!
"솔로" 2002년 싱글 카레라이스의 여자
국적
대한민국 [image]
링크
공식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그램
1. 개요
2. 상세
3. 활동
3.1. 대형 신인 EE JUMP의 데뷔와 슬픈 그룹 활동
3.2. 근성의 아이돌 시절 솔로 활동
3.3. 뮤지컬 배우로서의 활약과 근황
4. 기타
5. 출연 작품
5.1. 연극/뮤지컬


1. 개요


일본가수, 뮤지컬 배우이며 대한민국 국적의 재일교포 3세이다. 17살 때 한국 이름을 그대로 활동명으로 써서 데뷔하였는데, '''일본에서 재일교포라는 것을 밝히고 데뷔한 첫 연예인'''이기도 하다.[2]
소닌이라는 이름은 본명인 성선임을 가타카나로 표기한것이다. '소닌'으로 잘 알려져있지만, 한국 활동 때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닌이 아닌 성선임이라 불러주세요"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선임이라는 이름을 일본어로 발음이 불가능해서 활동명이 소닌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선임이라는 이름은 부모님이 밥 잘하는 여자로 크라는 의미에서 지어준 거라고 한다.[3]

2. 상세


한국에서는 팀 멤버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근성의 아이돌, 놀랄 정도로 깊은 애국심을 보여준 재일교포 가수라는 것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알려져 여러 응원과 코어팬들을 얻었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고 솔로 가수로의 경력이 유명하며, 현재는 뮤지컬을 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탤런트[4]로써 배우, 버라이어티쇼 진행자 등으로도 광범위하게 활동했다.
한국에는 2006년에 드라마 천국의 나무에 출연한적이 있으며, 데뷔싱글이자 대표곡 카레라이스의 여자를 리메이크한 '후애'란 노래를 디지털 싱글로 발매한적이 있다. 2007년에는 하울과의 듀엣곡 '사랑이야기'도 발매하였다.
뮤지컬로 성공하여 최근 일본 내에서는 뮤지컬 배우 이미지가 강한 듯 하다. 방송에 출연하면 뮤지컬 스케줄이 3년 후까지 꽉 차있을 정도로 활약 중이라는 소개가 따라다닌다. 하지만 음악 역시 계속 놓지 않았었다. 새로운 싱글을 내기 이전까지 라이브 이벤트를 연 1~2회 정도 진행 했었고 당시 자작곡도 공개할 정도다.
한국에 대한 애국심이 상당히 '''깊다.''' 어느 정도냐면, 영화 촬영을 위한 판문점 세트장을 보고 괴롭다고 '''울어버릴 정도'''로. 그것도 일본 방송 중에. 당연 다른 출연자들은 왜 우는지 모르고 '왜 또 우는거야?'라고. 최홍만의 일본 경기때 관객석에서 울음을 터트려 '최홍만의 여자친구가 아니냐?'는 스캔들이 터진 적도 있다.[5]
가수로서 성량이나 음역대로 승부하는 타입은 아니다. 발성도 비음이 섞여서 조금 갑갑한 느낌이 남아있고 음역대도 폭발적으로 넓지는 못하다. 한국이었다면 대중적으로 높은 평가는 받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6]. 하지만 그런 단점들을 전부 다 씹어먹는 무기가 바로 표현력과 감정선[7]. 때문에 중저음역대로 진행되는 발라드나 락발라드에서 진가가 발휘된다.
한국 내한 당시 '후애' 공연영상. 이런 사람을 아티스트가 아니라 아이돌로 팔았으니…역시 층쿠를 까야 한다.

3. 활동



3.1. 대형 신인 EE JUMP의 데뷔와 슬픈 그룹 활동


그게... 어느날 갑자기, 함정에 떠밀려 버렸습니다. 처음엔 세명으로 데뷔할 거였습니다. 그게 왜인지 언젠가 두명이 되고, 지금은 외톨이인 거예요!

솔로 가수가 된 선임의 연설 개그 중 일부분

이전에는 제과제빵과 영어 스피치에 흥미와 재능이 있어 파티시에 같은 직업 관련 학교나 외국 유학 등을 꿈꿨지만, 스피드의 팬이 된 덕분에 중학교 때부터 음악과 노래를 엄청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스피드의 콘서트를 본 것을 계기로 가수가 되기로 결심한다. [8] 실력 테스트 삼아 친구들이 추천한 모닝구무스메 오디션에 응모하였지만 떨어졌는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와다 카오루가 독립해 새 레이블을 세우면서 그녀를 발탁, 인기 아이돌 고토 마키의 남동생인 고토 유우키와 혼성그룹을 짜 EE JUMP로 데뷔를 한다.
모닝구무스메의 성공을 이끈 대표 겸 매니저와[9]와 작곡가 층쿠의 프로듀싱, 데뷔 전부터 미국에 보내 레슨까지 시키고, 제작비를 약 1억엔이나 들여[10] 데뷔곡의 뮤직비디오를 미국에서 찍는 등 대형 신인으로서 데뷔를 하게된다. 거기에 데뷔 전부터 라디오를 시키기도 했다. [11] 이 시절 EE JUMP는 고고 다섯쌍둥이의 일본판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12]
연습하던 시절에는 소속사에서 음악적인 것 외에도 에 들어가 합숙 훈련, 자기개발서 읽기, 회사에 오는 전화 받기와 정산서 쓰기 같은 사무일 등을 시켜서 과한 스파르타식 내면 훈련 겸 사회생활 공부도 시켰다고 한다.[13] 고토 유우키 외에도 KEN이라는 남성 멤버가 있었으나, 감기 때문에 스케줄에 못오더니 데뷔도 하기 전에 축구가 하고 싶다는 이유로 탈퇴했다. 이후 소속사는 선임과 고토 유우키를 후지산 등산에 도전시켜 또 정신 단련을 시켰다고 한다.

선임도 어떤 오디션에선 떨어졌습니다. 이유는 단순하게 일본인이 아닌 것이 이유였죠. 그때 제가 심사위원 중에 있었습니다. 심사위원들 모두 이 아이가 흥미롭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나 재일교포인 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뭔가 여러가지 트러블이 생기겠지'라고..

선임을 캐스팅한 와다 카오루[14]

, 2004년 그것이 알고싶다

Q. 데뷔 당시부터 재일교포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는데, 어떤 생각에서였는지?

태어났을 때부터 한국 이름 하나만으로 살아왔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것은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선임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거다.

일본의 기획사 사장님이 한국 이름으로 활동하라고 하셨어요. 사장님이 한국에 대한 편견이 없으신 분인데 저보고 '일본에서 재일교포의 문화를 터부시하는 시대도 끝났다'고 하시더라고요 [15]

재일교포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고 데뷔한 첫 사례였다. 당시엔 한류 붐이라든지, 2002 월드컵 같은 행사도 치르기 전이었고, 우리나라와의 이런 저런 것들도 있지만 납북 일본인 문제 같은 것도 커서 공개적으로 제일교포를 어필하는것은 단 1%도 득이 될만한 점이 아니었다. 그런 데뷔초 시기 때 초난강의 프로그램에서 EE JUMP의 노래를 한국어로 바꿔 부르거나,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한국말을 알려달라는 팬에게 가르쳐준 뒤 '이걸 듣고 여러분이 한국어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면 굉장히 기쁠거예요.'라고 하기도 했다.
이후 한류붐과 겹친 월드컵 때는 선임이 한국 축구 국가대표 옷을 입고, 그룹 멤버 고토 유우키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 옷을 입혀 쟈켓 사진과 뮤직비디오를 찍기도 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싱글은 아래에 후술될 고토 유우키가 일으킨 사건 때문에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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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っととっと夏だぜ!(우와 여름이다!)' 무대에서 백덤블링을 하는 선임
EE JUMP는 데뷔 7개월 만에 오리콘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등 인기를 얻게되는데, 선임은 가장 히트한 'おっととっと夏だぜ!(우와 여름이다!)' 안무로 백덤블링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16] 이 곡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고 다음 곡 '이키나리즘'으로 활동을 박차나가려던 중에 고토 유우키가 집에 가고싶다며 매니저[17]와 싸운 뒤 스케줄을 펑크냈고, 유우키에게 약 6개월 자숙 지시가 내려지게 된다. [18] 그래서 유우키가 없는 동안 선임 혼자서 '이키나리즘'의 활동을 마쳤다. 그 다음에 "EE JUMP feauturing Sonim"라는 이름으로 신곡 'Winter ~추운 계절의 이야기~'를 발매해 홀로 활동했다. [19]
2002년에 고토 유우키가 컴백을 해 다시 결성되고, 우타방에 출연시켜 캄보디아 봉사활동을 통해 [20] 고생 겸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재기를 노력하며 첫번째 앨범이 나올 예정이였지만, 유우키가 쟈니스 쥬니어와 캬바쿠라에 출입하는걸 파파라치가 찍은 덕분에 EE JUMP의 이름은 땅바닥에 곤두박질을 치게된다. 물론 당시 유우키는 미성년자였기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했고 소속사와 강제 계약해지를 당한다.
유우키가 강제 은퇴를 당하면서 EE JUMP는 해체되고, 첫번째 앨범은 발매중지에 싱글들은 폐기처분 되며 모든 게 끝나게 되자 선임은 충격때문에 코피까지 흘렸다. 코피가 안 멈춰서 티슈 한 통을 다 썼다고 한다. [21]
이후 둘은 현재까지 만난 적이 없다. 선임은 2017년에 시쿠지리 선생에 출연했는데, 그동안의 고생 일대기를 말하던 중에 유우키의 자숙 기간 중에는 필사적으로 팀을 위해 활동하느라 유우키를 지원해주지 못했고, 그것을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다며 대인배다운 마음을 밝혔다. [22]

3.2. 근성의 아이돌 시절 솔로 활동


일본에서 활동할 때도 동료 연예인들이 나에게 자주 그랬다. 너는 참 열정적이고 늘 파워가 넘친다고. 그럴 때마다 속으로 대답했다. ‘나는 한국사람이라서 그래요’ 하고.

이미지가 곤두박질 친 상태에서 가수활동하기에는 어려운 시기였으나, 매니저가 전국을 마라톤으로 달려서 열정을 보이라는 지시를 한다. 달리지 않으면 CD를 발매 할 수 없었고, 가야만 했던 코스는 고향인 시코쿠의 고치 현에서 할아버지의 고향인 한국 경상남도 거창까지 약 '''570km'''였다. 18일을 포기하지 않고 마라톤에 성공해 화제가 되어 재기하게 된다. 영상 이 기획은 TBS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우타방'[23]을 통해 일본 전국에 방영되었고 이 때 선임의 팬이 많이 생겼다. 특히나 막판에는 태풍 루사가 몰아치는 거창의 산길을 맨몸으로 달리는데 자세히 보면 농수로가 역류하고 있는 좀 위험한 상황에서 끝내 역주에 성공.
2002년에 솔로활동을 시작하는데 첫싱글인 카레라이스의 여자는 노출도 높은 자켓으로 화제가 되었고, 그녀의 노력으로 인해 싱글들은 오리콘 차트 5위~9위를 유지하게 된다.[24] 이후 이 컨셉을 그대로 이어서 '츠가루해협의 여자'를 발표하고, 첫 메이저 앨범인 "하나"[25]를 발매하고 '''팔리지 않으면 곤란합니다.'''라는 충격적인 광고카피까지 동원했으나 판매량이 너무 처참했다.[26] 이 때문에 레이블에서 재계약 없이 방출 당하면서[27] 가수생명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선임은 노래를 포기하지 않았고, 매니저 와다와 친분이 있던 가수 요리코의 리메이크곡인 '혼토와네'란 곡으로 소속사 이름의 레이블을 통해 인디즈싱글을 내게 된다. 그리고 TBS 우타방 연중기획으로 '일본 전국 100개소 라이브'를 진행하게 된다. 노래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선임이였지만 제대로 된 반응이나 응원도 없이 전국을 도는 강행군에 지치고, 일면식도 없는 집의 문을 두드리며 갑작스런 노래를 들려주는 기획이라 문전박대를 당하고, 편의점 아저씨에게 자신이 왜 노래를 부르는지 모른다며 혹평을 받는 등 상처를 받게 된다. 벳키의 방송에 출연했을 때 비하인드를 말했었는데, 노래를 불러도 마음이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에 괴로워져서 '이제 노래를 안 부를지도 몰라'라는 마음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지막 중학교의 10명 남짓 전교생과 수일간 함께하며 서로 마음을 열고, 게릴라 콘서트로 다시 노래를 부르겠다고 마음을 먹고 학생들에게 감동적인 라이브를 선물한다.
TBS, 특히 우타방은 선임에게는 매우 고마운 프로그램 중 하나로 이 프로그램의 기획인 '한일 마라톤', '전국 100개소 라이브', '5박 6일 5만 4600개 도미노' 등으로 선임에게 "근성으로 노력하여 위기를 극복하는 가수"란 캐릭터를 안겨주었고 충성도 높은 팬들을 확보하는 계기가 된다. 물론 출연자를 아껴준 것이고 굉장히 좋은 일이지만, 너무 과격한 고생을 시켰기도 하고 타방송에서까지 이런 고생 쪽으로만 이미지가 고정되어 더 생고생을 한 측면이 있기도 하다. 중증의 염증으로 약을 처방받을 정도로 고생한 마라톤 뿐만 아니라 도미노 편에서도 고생이 많았다. 무엇인지도 모른채 체육관에 실려와서는 며칠 동안 쌓은 도미노를 실수로 무너뜨려서 울다가, 패닉으로 오한이 왔고 그로 인해 온몸을 떨어서 이를 가는 소리가 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15년 뒤인 2017년에 그 장면을 본 시쿠지리 선생의 MC들도 충격을 받았다. 100개소 라이브 역시 벳키의 방송에 나온 미방영분 우는 영상을 보면 멘탈이 무너졌다는 것을 보는 사람이 절절히 실감할 정도로 심하게 오열했다.
이후 2번째 인디즈 싱글 직소 퍼즐이 인디즈 여가수 중 최고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오리콘 9위에 올라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워낙 유명 프로그램 여기저기에 출연하며 홍보를 했던지라 무늬만 인디즈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직소퍼즐 싱글에는 오자키 유타카의 노래 I LOVE YOU가 함께 실려있는데, 포지션이 부른 버전으로 발매해서 여러 음악방송과 공연에서 한국어로 라이브를 했다.
이후 피치걸 엔딩곡으로 타이업된 '아스나로 은하'를 발매하였고, 한국 드라마타이즈 뮤비처럼 찍는등 여러 노력을 하였지만 선방을 못하며 이후 인디즈 싱글 발매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후엔 버라이어티, 연기, 뮤지컬로 분야를 넓혀 활동하게 된다. 2006년에는 영화 '백댄서즈!'에서 주인공 4명중 하나로 열연, 오랜만에 안무실력을 드러냈다. 또 6년 동안 방송된 NHK 교육 '하트를 잇자'의 MC 중 한명이기도 했는데, 발달장애, 아동 학대나 아동 성범죄의 피해자, 미혼모, 성소수자, 섭식장애 등인 사람들의 존재와 경험을 알리는 따뜻한 교양 프로그램이었다. 방송 이후에도 계속 관심을 갖고 관련 인권 행사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서포트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2007년에는 오사와 아카네(大沢あかね)[28]와 함께 스페셜유닛「Tomboy」를 결성후 한국그룹 쥬얼리의「SuperStar」를 커버한 싱글을 발표했으나 대단한 인기는 얻지 못했다. 실제 오리콘 차트 순위는 16위로 마무리. 같은 해 뮤지컬「스위니 토드」와「피의혼례」주조연을 맡으면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매스컴에 무대 연기자로서 확실한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본인도 빠져들어 뮤지컬이 주 무대가 된다.

3.3. 뮤지컬 배우로서의 활약과 근황


솔직히 저는 이런 큰 상과 인연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이유로, 연극인 출신도 아니고 설마 이런 날이 올 줄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중략) 마지막으로, (울컥) 세상에는 괴로워하는 사회적 소수자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29]

지지 않고서 정진하며 포기하지 않으면,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점점 퍼져나가서 오늘처럼 인정되는 날도.. 있구나! 라는 것을, 저를 통해서 느껴주시는 분들이 계시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6년 키쿠타 카즈오 연극상 수상소감

뮤지컬「스위니 토드」에 출연한 것이 뮤지컬 무대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음악 활동이 어렵게 되자 '나는 뭘 원하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한 걸까'하는 슬럼프에 빠져있게 되었는데, 그러던 중 오타케 시노부의 무대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고, 마침 존경하는 오타케 시노부가 출연하는 스위니 토드의 오디션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매일 오타케 시노부의 연기를 보며 공부하고 함께 공연하고, 오타케 시노부의 친절함과 조언 그리고 무대의 매력에 빠져드는 충격적인 경험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이 마음깊이 하고싶은 것을 찾게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2009년에는 오랜기간 몸담았던 Harmony Promotion과 헤어지고 NASA ENTERTAINMENT로 이적하였고, 메인 연예인 격으로 활동하게 되었다.[30][31]
현재는 사실상 뮤지컬 배우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뮤지컬 시장이 큰 일본이니만큼, 한국에서보다는 좋은 대우를 받고 있으며, 젊은 주연급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미스 사이공, 헨리8세, 렌트 등 굵직굵직한 대작에서 여주인공으로 출연하는 등 활약하여 3년 뒤까지 스케줄이 꽉 차있는 뮤지컬 배우로 자리잡게 되었다.
사실 선임의 목소리 톤은 유키노 사츠키를 연상시키는 메조소프라노의 카랑카랑한 허스키 보이스인데 가수로서의 창법은 뽕끼가 작렬하는 가늘고 흐느끼는 톤이 주류를 이룬다. 창법을 개발하기보다 원 목소리 톤을 중시하는 JPOP 씬에서는 외려 특이한 케이스인데, 원 목소리 톤을 살리는 락 창법으로 갔으면 가수로서 좀 더 성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화위복으로 목소리와 노래가 시너지를 일으켜 뮤지컬 무대에서는 매우 강력한 툴을 가진 배우로 자기매김했다.
2012년 12월부터 뮤지컬 배우로서 레벨업하기 위해 뉴욕에 유학을 하였다. 무대 맨 끝까지 표현을 전하고 싶다는 갈증과 주연급 배역들이 들어오자 실력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몇 번 뉴욕을 방문하며 차근차근 준비하다 '일본 문화청 신진 예술가 해외 연수 제도의 연수원'을 기회로 1년 반 유학을 하게된다. 일본인도 아니고 재일교포인 그녀가 선발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일 듯. 규정상 연수기간동안 일본에는 귀국할 수 없다고 한다. 배역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던 때라 주위의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일이 없게 되더라도 도전하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유학을 다녀왔다. 그때 당시엔 연예활동은 없지만 SNS을 통한 근황은 꾸준히 전하고 있었고, 2014년 4월달쯤 일본으로 복귀하였다. 복귀방송으로 Woman On The Planet을 선택하였고, 이후 모차르트!에 출연을 확정하면서 배우로써의 시동을 걸었다. 귀국 직후 '서푼짜리 오페라'의 연습에 참여했을 때 공연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바뀌었군요'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2013년도 쯤 나사와의 계약도 끝나고 같이 일하고 있던 스탭이 세운 새로운 소속사 'no.9'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2016년에도 뮤지컬 '1789 ~ 바스티유의 연인들', '킨키 부츠' 등에 출연하면서 활발하게 활동중이다. 그간의 활약에 힘입어 기쿠타 가즈오 연극상을 수상하는등 무대 배우로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2017년 7월부터는 뮤지컬 '뷰티풀 : 더 캐롤 킹 뮤지컬'의 일본 초연 캐스트로 출연한다. 배역은 주인공 캐롤 킹의 절친한 동료이자 작사가인 신시아 웨일. 여성 캐스트중에서는 주인공 캐롤 킹 다음으로 비중이 큰 캐릭터다.
그리고 2018년 1월 아뮤즈로 소속사를 옮긴것을 공식블로그에서 밝혔다.블로그링크
2020년 5월부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락다운 기간에 팬들과의 본격적인 소통으로써 주기적인 유튜브 활동을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
2020년에는 데뷔 20주년을 맞아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10월 14일에 새 앨범을 발매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자켓 촬영 영상 신곡 '계속 옆에 있어줘(ずっとそばにいてね)'와 카레라이스의 여자 2020 리믹스 버전이 수록된 앨범이다. 신곡은 층쿠가 새로 쓴 카레라이스의 여자의 답가라고 한다. 20주년 기념 콘서트도 열어 EE JUMP 노래부터 뮤지컬 넘버, 솔로곡과 신곡까지 공연하였다.

4. 기타


  • 조부모와 부모가 모두 한국인이다. '자기 나라의 언어와 역사를 배웠으면 좋겠다'라는 할아버지의 바람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정부가 지원하는 한국 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6살 때부터 집에서 먼 조총련계 민족 학교에 다녔다.[32] 초등학교 때는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 중학교 이후에는 할머니 댁에서 통학을 했다고 한다.
  • 특기는 기타와 사진. 기타는 가수로서 성선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물건으로, 기타반주가 들어간 곡을 공연할 때엔 반드시 직접 기타연주를 한다. 지금도 기타연주를 위해 손톱을 기르지 않을 정도. 사진실력도 상당한 수준인데, 집에 온 출장 마사지사에게 "사진가세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다. 그리고 더불어 특기랄 수 있는 것은 바로 언어능력인데, 일본어는 물론이거니와 영어[33], 그리고 한국어까지 무려 3개 국어에 능통하다.
  • 솔로 초기 시절에는 건강미가 넘쳐서 그 점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았다.[34] 약 10킬로그램 정도 살이 빠진 덕분에 상당히 몸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머리스타일에서도 짧게 자름으로써 이미지 변신을 시도 하였다. 정변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선임의 건강미를 좋아했던 팬들은 많이 아쉬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건강미 넘치던 시절에는 체질 외에도 안타까운 원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당시 카레라이스의 여자의 자켓 사진 화제로 인해 몸매 관련 일들이 들어와서 처음에는 소속사에서 다이어트를 시켰는데, 소속사의 지시에 부응해야한다는 생각에 집중한 탓에 심하게 안 먹는 다이어트를 해서 1개월 만에 10kg를 줄였다고. 소속사로부터 너무 말랐다며 찌우라는 지시를 받았고, 역시 그것을 크게 받아들여 다시 1개월만에 10kg를 늘렸다고 한다. 근육이 많이 붙었던 것도 소속사의 '헬스장에서 트레이닝하라'는 지시에 심하게 부응하려 노력한 결과라고. 그래서 헬스 역시 소속사에서 금지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결국 급격한 체중의 변화를 6개월 동안 6차례나 반복할 정도로 무리를 했고, 그런 상태에서 잡지 인터뷰로 압박감이 더해지니까 과호흡으로 쓰러질 정도가 되어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체중 관리가 민감한 부분이라서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고, EE JUMP 시절부터 연예인으로서의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있던 데다 [35] 일을 강제로 그만두게 될 뻔한 충격적인 일이 많이 생겨 주어진 일을 잘 따라야한다는 생각에 뭐든지 다 했다고 한다. 마라톤이나 도미도 같이 극한인 것들을 거부 못하고 한 것 역시 아예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안 하면 가수를 그만두는 것이었기도 하고, 너무 어려서 연예계를 잘 모르고 요청할만한 뚜렷한 무언가도 갖기 힘들었기에 그러한 '기대에 대한 보답'이 최선었다고.
2010년대 들어서는 뮤지컬 배역을 위한 다이어트로[36] 이후 체형도 변하게 되어서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37]과 글루텐 프리[38]을 하게 되었는데, 이후엔 그 부분에 흥미도 느끼면서도 건강도 되찾게 되어 이후로 레시피 인스타그램 계정과 블로깅을 자주 하면서 전도사로 나서고 있다. 비건식으로 한국식 핫도그와 김밥, 김치, 비건식 김치와 치즈를 넣은 김말이, 잡채 등을 만들어 포스팅했고, 2019년 말에는 한국에 와서 방문한 비건 식당과 음식들을 포스팅하기도 했다.
  • 방송에서 한국 음식과 문화를 많이 알렸다. 요즘에는 낫토김치를 섞어 먹는 것이 일반적인 레시피 중 하나이지만, 선임이 헤이삼에 출연해서 보여줬을 때만 해도 MC들은 '김치랑 낫토라니'라는 반응이었다. 이외에도 방송에서 직접 김치를 담그거나, 일본의 한국 음식점을 추천해 출연진들과 해물파전과 굴돼지보쌈을 먹기도 하고, 방송에서 직접 콩나물 무침을 만들거나 [39], 초난강과 한국말로 대화하며 번데기 요리를 해먹거나, 하마사키 아유미의 방송에서 비빔냉면을 소개하거나, 관광객이 선호할만한 한국 음식점이나 관광명소를 소개하기 위해 직접 한국에 와서 음식점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 한국에 잠시 활동했을 때인 2006년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 시작 전) 무렵 인터뷰를 보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꼬리곰탕이고 잡채와 비빔면, 찌개류도 많이 좋아한다고 했다.
  • 솔로 활동 때 방송에서 마츠우라 아야에게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기믹을 많이 했는데, 다큐가 아니라 예능용이다. 친한 관계+근성의 열혈 아이돌 이미지라서 했던 컨셉. 일단 마츠우라 아야의 데뷔시절 매니저와 프로듀서가 선임과 같은 와다 카오루와 층쿠였고, 마츠우라 아야가 무대 전 긴장될 때 선임을 만지며 긴장감을 해소했다는 일화를 말할 정도로 친하기도 하다. 또 당시 선임은 나이도 성별도 주 활동 분야도 엄청 다른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라이브를 보면서도 노래도 연기도 모두 다 잘한다고 칭찬을 쏟아붓더니 라이벌 의식을 불태워서 옆에 있는 MC 맛슈가 '라이벌이 아니라고, 괜찮은거야?'라며 말리는 개그를 하기도 했다. 그걸 들은 선임은 '누구나 라이벌이 될 수 있어요'라고 답해 방청객들의 웃음이 터지게 했다.
  • 데뷔 초기엔 Castlevania의 CM에서 레온 벨몬드의 코스프레를 한 적도 있다.
  • 뮤지컬로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준 멘토 오타케 시노부를 만나기도 전, 솔로 가수로서 활동하던 때 방송에서 어릴 때 별명이 '시노부쨩'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릴 때 외모가 닮아서 친구들이 그렇게 별명을 지어줬다고 한다.
  • 마츠코 디럭스가 인생 탑 급으로 좋아하는 곡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카레라이스의 여자'를 엄청 좋아한다. 선임이 자신의 방송에 출연하자 소감을 말했다. 자신에게는 선임이 노래의 화자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당시의 노력하는 선임이 정말 대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츠코 디럭스는 그 방송에서 카레라이스의 여자를 '마지막 단 한 줄에만 희망이 있는 노래'라고 표현했다.
  • 하마다 마사토시가 하마짱또[40]에서 선임에게 집요할 정도로 신체에 대한 코멘트를 해서 선임이 당황한적이 있었다. 다소 무례했던것은 사실... 물론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이런 섹드립에는 온도차가 큰편이니 심각하게는 생각하지말자 선임 또한 그냥 가볍게 맞받아쳤다.

5. 출연 작품



5.1. 연극/뮤지컬


'''연도'''
'''제목'''
'''배역'''
'''비고'''
2004
마츠오 스즈키 소녀가극단 마츠오 스즈키 이야기
마츠오 스즈키

8인의 여자들
캐서린

2006
바람을 보는 사람 Legend of 손오공


2007
스위니 토드
조안나
뮤지컬 첫 출연
피의 혼례
신부

2008
미스 사이공


나쁜 녀석들
크리스틴

2009
미스 사이공


헨리 6세
잔다르크

2010
렌트
미미

Away In The Life
야야

희전사악
浮雲

2011
스위니 토드
조안나

2012
브로드웨이 뮤지컬 라이브 2012


렌트
모린
2014
모차르트!
콘스탄체

서푼짜리 오페라
폴리 피첨

2015
렌트
모린
모차르트!
콘스탄체

라스트 사무라이
小稲・紅小壺 二

폭풍의 언덕
이사벨라 린튼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
크레시다

Dance of the Vampires
Magda

2016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
Solène

Dance of the Vampires
Magda

킹키 부츠
로렌

플릭
로즈

2017
록키 호러 픽쳐 쇼
자넷

뷰티풀
신시아 웨일

2018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
Solène

마리 앙투아네트
마그리드 아르노

TENTH

극장 크리에 10주년 기념 콘서트
2019
마리 앙투아네트
마그리드 아르노

FACTORY GIRLS ~ 내가 그리는 이야기 ~
해리엇 팔리

2020
KERA CROSS '굿 바이'
키누아

뷰티풀
신시아 웨일


[1] 원적은 경상남도 거창군.[2] 이전에는 재일교포를 향한 차별 때문에 밝히기 매우 어려웠다. 와다 아키코 같은 대표적인 연예인조차 데뷔 40여년 뒤인 2005년에 재일교포라는 것을 밝혔을 정도. 그렇기에 우리나라 방송사에서 제작한 재일교포 다큐멘터리에서 선임에 대한 이야기로 다큐를 시작하기도 했다.[3] 실제로 숙소의 냉장고를 보면 요리솜씨가 뛰어나다는 스멜을 팍팍 풍긴다. 비건 음식 레시피를 올리는 인스타그램도 있다.[4] 일본에서는 엔터테이너의 의미로 이 단어를 쓴다.[5] 원래 감수성이 풍부해서 잘 감동하고 잘 우는 편이기도 하지만, 이전에 최홍만을 인터뷰한 적이 있기도 하고, 이 경기에 대해서는 '최홍만씨가 우승하는 것을 보니 저절로 눈물이 났어요. 그 때 확실히 느꼈죠. 역시 (자신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6] 물론 가창력 중심인 솔로여가수 기준으로, 아이돌들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7] 비록 아이돌 시절에는 층쿠의 해괴망측한 가사들 때문에 묻힌 감이 있으나, 인디즈를 거치면서 '사실은요.'나 'I love you'같은 제대로 된 발라드곡들을 통해 애절함을, 직소 퍼즐같은 락을 통해서 무대 장악력을 증명했다.[8] 당시 같은 업계에서 일하겠다는 포부를 쓴 팬레터를 보냈다고 한다. 얼마 안 되어 바로 데뷔를 하더니 6년 뒤에는 스피드의 히로와 함께 영화 '백댄서즈!'에 출연하게 된다. [9] 모닝구무스메와 함께하는 예능 출연도 꽤 있었고, 본인 이름을 걸고 목요일마다 진행하는 라디오도 있었다. [10] 이는 시쿠지리 선생에 나온 제작비인데, 일본 위키백과를 보면 3억엔이라고도 한다. [11] 와다 카오루의 라디오 '와다 카오루의 올나잇 일본 R·프로듀서 나이트'의 5분 코너에 3명을 출연시켰었다가 데뷔한 10월에 아예 'EE JUMP 라디오 좋잖아' 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독립시켜 해체 한두달 뒤까지 방송했다. [12] '仲間っていいじゃん!'(친구란건 좋잖아!)이다. 한국에서는 투니버스 창작곡 '모여라'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13] 나머지 멤버들은 너무 어려서 전화를 받는 것은 선임만 했다고 한다. [14] 이누야샤 OST를 작곡한 작곡가와는 이름만 같고 다른 사람이다. 모닝구무스메의 첫 매니저였고, 층쿠가 속했던 밴드 샤란Q의 매니저였으며, 2016년부터 강남의 소속사인 하모니 프로덕션의 대표이사이다.[15] 사장 겸 매니저인 와다 카오루는 재일교포가 많은 오사카 이쿠노구에서 자라서 재일교포 친구가 꽤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친구들이 진학이나 취업 때 괴로워하는 모습도 접해왔다고 한다. [16] 멤버 전부가 아닌 선임만 하는 퍼포먼스다. 초기 연습 때는 잘못 떨어져 코피를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17] 와다 카오루가 아닌 다른 여성 매니저 [18] 이 자숙한 사건 때 선임 혼자 팬들에게 사과와 혼자서라도 이 곡 활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말이 담긴 친필 편지를 썼다. 그런데 이게 갑작스런 일이 아니었다. 유우키는 원래 문제가 많은 놈이었는데, 콘서트 직전 유우키가 어디론가 사라져서, 선임 혼자 열심히 콘서트를 한적도 있다. 그래서 사건이 터졌던 당일에도 매니저가 유우키를 감시했다고 한다 [19] 뮤직 비디오를 보면 선임이 고토 유우키의 휴업 소식이 담긴 신문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20]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지뢰 때문에 수십kg의 선물용 운동화들이 든 가방을 지고 20km를 걸어가야 했다. [21] 그리고 유우키는 몇년이 지나 2008년에 공사장에서 구리선 절도 및 강도상해 혐의로 징역 5년 6개월 형을 받는 등 엄청난 사고를 쳤다. 이 일로 누나인 고토 마키는 소속사에서 자진 사퇴를 하게 된다. 그룹활동 당시 사건부터 시작해서 이 징역 사건까지, 선임은 물론 친누나인 고토 마키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끼친 덕에 양 팬들은 유우키라면 이를 간다. [22] 고토 유우키는 2020년 랩이나 춤, EE JUMP의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올리는 등 틱톡 활동을 하고 있는데, EE JUMP 팬들의 선임 언급 댓글에 활약하는 모습이 기쁘고 응원하고 있으며, 선임에게는 폐를 끼친 것 밖에 없고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란다고 답하였다. [23] 음악 방송이란 훼이크를 통해 주로 음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SMAP의 나가이와 톤네루즈의 이시바시가 토크쇼를 벌이는 프로그램이다. [24] 당시 약 7~8만장 정도 되는 판매량을 유지했다. 당시엔 그냥저냥 수준이었지만 지금이라면 탑 아이돌 레벨.[25] 하나는 꽃이라는 일본어 뜻도 있지만, 한국어로 1이라는 뜻도 있어 1집 앨범의 제목으로 쓴 것이라고 한다. [26] 해당 주가 빈집이라 오리콘 위클리 5위를 하긴 했지만 첫주 판매량은 약 2만 5천장 정도였고, 바로 다음주에는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싱글보다도 덜 팔린 셈. 지금이야 여자 솔로가수가 이정도 팔면 상당히 잘 판 거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물론 당시에도 이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레이블인 토이즈 팩토리는 성선임이란 가수에게 더 이상 투자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유우키 때문에 앨범을 폐기처분하며 생긴 손해를 메우기도 했어야 하는 상태였으니.. 유우키 때문에 레코드사로부터 경고만 이미 2번 받은 상태였다고 한다. [27]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음반사가 음반 홍보와 유통을 전담한다. 즉 레이블(음반사) 없이는 소속사에서 아무리 음반을 만들어도 '''팔 수가 없다'''.[28] 게키단 히토리의 배우자[29] 이 상을 거머쥐게 한 뮤지컬 중 하나인 RENT의 역할이 성소수자이기도 하다. 선임은 6년 동안 진행한 교양 프로그램을 계기로 성소수자들을 적극적으로 응원해왔다. [30] 팬들 사이에선 회사간 협업이라는 말도 있지만, 당시의 기록에도 협업이라는 표기는 안되어있었고, 이후 와다의 소속 연예인들이 줄어듬에 따라 정리하는 과정에서 선임은 소속사 계약을 안한것으로 추정된다. 두가지 다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실제 이유는 안 밝혀졌다.[31] 당시 나사의 메인연예인이었던 모리시타유리가 카레라이스의 여자를 리메이크하고 이후 하모니 홈페이지랑 나사페이지에 같이 표기된적이 있어 협업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고, 이후 완전 마무리된후에는 하모니 홈페이지에도 삭제가되어서 이적한것이 확실시되었다.[32] 다녔던 초등학교는 시코쿠 지역에서 유일한 민족학교라서 선임처럼 멀리 사는 아이들이 여럿 다녔다고 한다. [33] 학생시절 영어 말하기 전국대회 수상경력 + 교육방송 영어프로그램 진행[34] 근육성장률이 뛰어난 편이다. 데뷔 전부터 길거리든 축제든 어디서나 부지런히 움직이고 춤추거나 달리는 걸 좋아해서 어릴 때 이미 근육이 꽤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수 휴업하고 있을 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헬스클럽에 열심히 다녔는데, 그 근육과 운동하는 모습을 본 헬스클럽 관장이 트레이너로 스카웃 하려 했다는 일화도 있다.[35] 누구나가 그렇듯 능력치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고토 유우키가 유명한 누나를 두고있어서 데뷔 직전부터 그쪽에만 주목이 집중되어 소외되었던 자신의 위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36] 미스 사이공까지는 괜찮았으나, RENT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배역을 위해 체중을 감량했다.[37] 오랜만에 고기가 든 샌드위치를 먹었더니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켰다고 한다. [38] 다만 빵을 너무 좋아하는 선임은 웬만하면 밀로 안만드는 빵집을 찾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말 안될경우에는 먹는 편이다. 그런면에서 팬들한테도 질문이 오는데 거기에 대해선 블로그에서 다른 음식을 먹고 싶을때는 먹는다고 답하였다. 그러면서 부분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말라고 코멘트.[39] 예전 일본에서는 콩나물을 많이들 먹지 않았던 듯 하다. 사회자가 '요즘은 한국 붐이니까 드셔보신 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소개한다.[40] 하마다와 함께! 정도로 번역할수 있겠다. 하마다와 같이 무언가를 하는 방송으로 가벼운 일상계열의 예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