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닌
1. 개요
일본의 가수, 뮤지컬 배우이며 대한민국 국적의 재일교포 3세이다. 17살 때 한국 이름을 그대로 활동명으로 써서 데뷔하였는데, '''일본에서 재일교포라는 것을 밝히고 데뷔한 첫 연예인'''이기도 하다.[2]
소닌이라는 이름은 본명인 성선임을 가타카나로 표기한것이다. '소닌'으로 잘 알려져있지만, 한국 활동 때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닌이 아닌 성선임이라 불러주세요"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선임이라는 이름을 일본어로 발음이 불가능해서 활동명이 소닌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선임이라는 이름은 부모님이 밥 잘하는 여자로 크라는 의미에서 지어준 거라고 한다.[3]
2. 상세
한국에서는 팀 멤버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근성의 아이돌, 놀랄 정도로 깊은 애국심을 보여준 재일교포 가수라는 것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알려져 여러 응원과 코어팬들을 얻었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고 솔로 가수로의 경력이 유명하며, 현재는 뮤지컬을 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탤런트[4] 로써 배우, 버라이어티쇼 진행자 등으로도 광범위하게 활동했다.
한국에는 2006년에 드라마 천국의 나무에 출연한적이 있으며, 데뷔싱글이자 대표곡 카레라이스의 여자를 리메이크한 '후애'란 노래를 디지털 싱글로 발매한적이 있다. 2007년에는 하울과의 듀엣곡 '사랑이야기'도 발매하였다.
뮤지컬로 성공하여 최근 일본 내에서는 뮤지컬 배우 이미지가 강한 듯 하다. 방송에 출연하면 뮤지컬 스케줄이 3년 후까지 꽉 차있을 정도로 활약 중이라는 소개가 따라다닌다. 하지만 음악 역시 계속 놓지 않았었다. 새로운 싱글을 내기 이전까지 라이브 이벤트를 연 1~2회 정도 진행 했었고 당시 자작곡도 공개할 정도다.
한국에 대한 애국심이 상당히 '''깊다.''' 어느 정도냐면, 영화 촬영을 위한 판문점 세트장을 보고 괴롭다고 '''울어버릴 정도'''로. 그것도 일본 방송 중에. 당연 다른 출연자들은 왜 우는지 모르고 '왜 또 우는거야?'라고. 최홍만의 일본 경기때 관객석에서 울음을 터트려 '최홍만의 여자친구가 아니냐?'는 스캔들이 터진 적도 있다.[5]
가수로서 성량이나 음역대로 승부하는 타입은 아니다. 발성도 비음이 섞여서 조금 갑갑한 느낌이 남아있고 음역대도 폭발적으로 넓지는 못하다. 한국이었다면 대중적으로 높은 평가는 받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6] . 하지만 그런 단점들을 전부 다 씹어먹는 무기가 바로 표현력과 감정선[7] . 때문에 중저음역대로 진행되는 발라드나 락발라드에서 진가가 발휘된다.
한국 내한 당시 '후애' 공연영상. 이런 사람을 아티스트가 아니라 아이돌로 팔았으니…역시 층쿠를 까야 한다.
3. 활동
3.1. 대형 신인 EE JUMP의 데뷔와 슬픈 그룹 활동
이전에는 제과제빵과 영어 스피치에 흥미와 재능이 있어 파티시에 같은 직업 관련 학교나 외국 유학 등을 꿈꿨지만, 스피드의 팬이 된 덕분에 중학교 때부터 음악과 노래를 엄청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스피드의 콘서트를 본 것을 계기로 가수가 되기로 결심한다. [8] 실력 테스트 삼아 친구들이 추천한 모닝구무스메 오디션에 응모하였지만 떨어졌는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와다 카오루가 독립해 새 레이블을 세우면서 그녀를 발탁, 인기 아이돌 고토 마키의 남동생인 고토 유우키와 혼성그룹을 짜 EE JUMP로 데뷔를 한다.그게... 어느날 갑자기, 함정에 떠밀려 버렸습니다. 처음엔 세명으로 데뷔할 거였습니다. 그게 왜인지 언젠가 두명이 되고, 지금은 외톨이인 거예요!
솔로 가수가 된 선임의 연설 개그 중 일부분
모닝구무스메의 성공을 이끈 대표 겸 매니저와[9] 와 작곡가 층쿠의 프로듀싱, 데뷔 전부터 미국에 보내 레슨까지 시키고, 제작비를 약 1억엔이나 들여[10] 데뷔곡의 뮤직비디오를 미국에서 찍는 등 대형 신인으로서 데뷔를 하게된다. 거기에 데뷔 전부터 라디오를 시키기도 했다. [11] 이 시절 EE JUMP는 고고 다섯쌍둥이의 일본판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12]
연습하던 시절에는 소속사에서 음악적인 것 외에도 절에 들어가 합숙 훈련, 자기개발서 읽기, 회사에 오는 전화 받기와 정산서 쓰기 같은 사무일 등을 시켜서 과한 스파르타식 내면 훈련 겸 사회생활 공부도 시켰다고 한다.[13] 고토 유우키 외에도 KEN이라는 남성 멤버가 있었으나, 감기 때문에 스케줄에 못오더니 데뷔도 하기 전에 축구가 하고 싶다는 이유로 탈퇴했다. 이후 소속사는 선임과 고토 유우키를 후지산 등산에 도전시켜 또 정신 단련을 시켰다고 한다.
선임도 어떤 오디션에선 떨어졌습니다. 이유는 단순하게 일본인이 아닌 것이 이유였죠. 그때 제가 심사위원 중에 있었습니다. 심사위원들 모두 이 아이가 흥미롭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나 재일교포인 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뭔가 여러가지 트러블이 생기겠지'라고..
, 2004년 그것이 알고싶다
Q. 데뷔 당시부터 재일교포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는데, 어떤 생각에서였는지?
태어났을 때부터 한국 이름 하나만으로 살아왔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것은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선임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거다.
재일교포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고 데뷔한 첫 사례였다. 당시엔 한류 붐이라든지, 2002 월드컵 같은 행사도 치르기 전이었고, 우리나라와의 이런 저런 것들도 있지만 납북 일본인 문제 같은 것도 커서 공개적으로 제일교포를 어필하는것은 단 1%도 득이 될만한 점이 아니었다. 그런 데뷔초 시기 때 초난강의 프로그램에서 EE JUMP의 노래를 한국어로 바꿔 부르거나,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한국말을 알려달라는 팬에게 가르쳐준 뒤 '이걸 듣고 여러분이 한국어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면 굉장히 기쁠거예요.'라고 하기도 했다.일본의 기획사 사장님이 한국 이름으로 활동하라고 하셨어요. 사장님이 한국에 대한 편견이 없으신 분인데 저보고 '일본에서 재일교포의 문화를 터부시하는 시대도 끝났다'고 하시더라고요 [15]
이후 한류붐과 겹친 월드컵 때는 선임이 한국 축구 국가대표 옷을 입고, 그룹 멤버 고토 유우키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 옷을 입혀 쟈켓 사진과 뮤직비디오를 찍기도 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싱글은 아래에 후술될 고토 유우키가 일으킨 사건 때문에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EE JUMP는 데뷔 7개월 만에 오리콘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등 인기를 얻게되는데, 선임은 가장 히트한 'おっととっと夏だぜ!(우와 여름이다!)' 안무로 백덤블링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16] 이 곡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고 다음 곡 '이키나리즘'으로 활동을 박차나가려던 중에 고토 유우키가 집에 가고싶다며 매니저[17] 와 싸운 뒤 스케줄을 펑크냈고, 유우키에게 약 6개월 자숙 지시가 내려지게 된다. [18] 그래서 유우키가 없는 동안 선임 혼자서 '이키나리즘'의 활동을 마쳤다. 그 다음에 "EE JUMP feauturing Sonim"라는 이름으로 신곡 'Winter ~추운 계절의 이야기~'를 발매해 홀로 활동했다. [19]
2002년에 고토 유우키가 컴백을 해 다시 결성되고, 우타방에 출연시켜 캄보디아 봉사활동을 통해 [20] 고생 겸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재기를 노력하며 첫번째 앨범이 나올 예정이였지만, 유우키가 쟈니스 쥬니어와 캬바쿠라에 출입하는걸 파파라치가 찍은 덕분에 EE JUMP의 이름은 땅바닥에 곤두박질을 치게된다. 물론 당시 유우키는 미성년자였기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했고 소속사와 강제 계약해지를 당한다.
유우키가 강제 은퇴를 당하면서 EE JUMP는 해체되고, 첫번째 앨범은 발매중지에 싱글들은 폐기처분 되며 모든 게 끝나게 되자 선임은 충격때문에 코피까지 흘렸다. 코피가 안 멈춰서 티슈 한 통을 다 썼다고 한다. [21]
이후 둘은 현재까지 만난 적이 없다. 선임은 2017년에 시쿠지리 선생에 출연했는데, 그동안의 고생 일대기를 말하던 중에 유우키의 자숙 기간 중에는 필사적으로 팀을 위해 활동하느라 유우키를 지원해주지 못했고, 그것을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다며 대인배다운 마음을 밝혔다. [22]
3.2. 근성의 아이돌 시절 솔로 활동
이미지가 곤두박질 친 상태에서 가수활동하기에는 어려운 시기였으나, 매니저가 전국을 마라톤으로 달려서 열정을 보이라는 지시를 한다. 달리지 않으면 CD를 발매 할 수 없었고, 가야만 했던 코스는 고향인 시코쿠의 고치 현에서 할아버지의 고향인 한국 경상남도 거창까지 약 '''570km'''였다. 18일을 포기하지 않고 마라톤에 성공해 화제가 되어 재기하게 된다. 영상 이 기획은 TBS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우타방'[23] 을 통해 일본 전국에 방영되었고 이 때 선임의 팬이 많이 생겼다. 특히나 막판에는 태풍 루사가 몰아치는 거창의 산길을 맨몸으로 달리는데 자세히 보면 농수로가 역류하고 있는 좀 위험한 상황에서 끝내 역주에 성공.일본에서 활동할 때도 동료 연예인들이 나에게 자주 그랬다. 너는 참 열정적이고 늘 파워가 넘친다고. 그럴 때마다 속으로 대답했다. ‘나는 한국사람이라서 그래요’ 하고.
2002년에 솔로활동을 시작하는데 첫싱글인 카레라이스의 여자는 노출도 높은 자켓으로 화제가 되었고, 그녀의 노력으로 인해 싱글들은 오리콘 차트 5위~9위를 유지하게 된다.[24] 이후 이 컨셉을 그대로 이어서 '츠가루해협의 여자'를 발표하고, 첫 메이저 앨범인 "하나"[25] 를 발매하고 '''팔리지 않으면 곤란합니다.'''라는 충격적인 광고카피까지 동원했으나 판매량이 너무 처참했다.[26] 이 때문에 레이블에서 재계약 없이 방출 당하면서[27] 가수생명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선임은 노래를 포기하지 않았고, 매니저 와다와 친분이 있던 가수 요리코의 리메이크곡인 '혼토와네'란 곡으로 소속사 이름의 레이블을 통해 인디즈싱글을 내게 된다. 그리고 TBS 우타방 연중기획으로 '일본 전국 100개소 라이브'를 진행하게 된다. 노래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선임이였지만 제대로 된 반응이나 응원도 없이 전국을 도는 강행군에 지치고, 일면식도 없는 집의 문을 두드리며 갑작스런 노래를 들려주는 기획이라 문전박대를 당하고, 편의점 아저씨에게 자신이 왜 노래를 부르는지 모른다며 혹평을 받는 등 상처를 받게 된다. 벳키의 방송에 출연했을 때 비하인드를 말했었는데, 노래를 불러도 마음이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에 괴로워져서 '이제 노래를 안 부를지도 몰라'라는 마음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지막 중학교의 10명 남짓 전교생과 수일간 함께하며 서로 마음을 열고, 게릴라 콘서트로 다시 노래를 부르겠다고 마음을 먹고 학생들에게 감동적인 라이브를 선물한다.
TBS, 특히 우타방은 선임에게는 매우 고마운 프로그램 중 하나로 이 프로그램의 기획인 '한일 마라톤', '전국 100개소 라이브', '5박 6일 5만 4600개 도미노' 등으로 선임에게 "근성으로 노력하여 위기를 극복하는 가수"란 캐릭터를 안겨주었고 충성도 높은 팬들을 확보하는 계기가 된다. 물론 출연자를 아껴준 것이고 굉장히 좋은 일이지만, 너무 과격한 고생을 시켰기도 하고 타방송에서까지 이런 고생 쪽으로만 이미지가 고정되어 더 생고생을 한 측면이 있기도 하다. 중증의 염증으로 약을 처방받을 정도로 고생한 마라톤 뿐만 아니라 도미노 편에서도 고생이 많았다. 무엇인지도 모른채 체육관에 실려와서는 며칠 동안 쌓은 도미노를 실수로 무너뜨려서 울다가, 패닉으로 오한이 왔고 그로 인해 온몸을 떨어서 이를 가는 소리가 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15년 뒤인 2017년에 그 장면을 본 시쿠지리 선생의 MC들도 충격을 받았다. 100개소 라이브 역시 벳키의 방송에 나온 미방영분 우는 영상을 보면 멘탈이 무너졌다는 것을 보는 사람이 절절히 실감할 정도로 심하게 오열했다.
이후 2번째 인디즈 싱글 직소 퍼즐이 인디즈 여가수 중 최고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오리콘 9위에 올라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워낙 유명 프로그램 여기저기에 출연하며 홍보를 했던지라 무늬만 인디즈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직소퍼즐 싱글에는 오자키 유타카의 노래 I LOVE YOU가 함께 실려있는데, 포지션이 부른 버전으로 발매해서 여러 음악방송과 공연에서 한국어로 라이브를 했다.
이후 피치걸 엔딩곡으로 타이업된 '아스나로 은하'를 발매하였고, 한국 드라마타이즈 뮤비처럼 찍는등 여러 노력을 하였지만 선방을 못하며 이후 인디즈 싱글 발매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후엔 버라이어티, 연기, 뮤지컬로 분야를 넓혀 활동하게 된다. 2006년에는 영화 '백댄서즈!'에서 주인공 4명중 하나로 열연, 오랜만에 안무실력을 드러냈다. 또 6년 동안 방송된 NHK 교육 '하트를 잇자'의 MC 중 한명이기도 했는데, 발달장애, 아동 학대나 아동 성범죄의 피해자, 미혼모, 성소수자, 섭식장애 등인 사람들의 존재와 경험을 알리는 따뜻한 교양 프로그램이었다. 방송 이후에도 계속 관심을 갖고 관련 인권 행사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서포트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2007년에는 오사와 아카네(大沢あかね)[28] 와 함께 스페셜유닛「Tomboy」를 결성후 한국그룹 쥬얼리의「SuperStar」를 커버한 싱글을 발표했으나 대단한 인기는 얻지 못했다. 실제 오리콘 차트 순위는 16위로 마무리. 같은 해 뮤지컬「스위니 토드」와「피의혼례」주조연을 맡으면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매스컴에 무대 연기자로서 확실한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본인도 빠져들어 뮤지컬이 주 무대가 된다.
3.3. 뮤지컬 배우로서의 활약과 근황
뮤지컬「스위니 토드」에 출연한 것이 뮤지컬 무대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음악 활동이 어렵게 되자 '나는 뭘 원하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한 걸까'하는 슬럼프에 빠져있게 되었는데, 그러던 중 오타케 시노부의 무대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고, 마침 존경하는 오타케 시노부가 출연하는 스위니 토드의 오디션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매일 오타케 시노부의 연기를 보며 공부하고 함께 공연하고, 오타케 시노부의 친절함과 조언 그리고 무대의 매력에 빠져드는 충격적인 경험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이 마음깊이 하고싶은 것을 찾게된 기분이었다고 한다.솔직히 저는 이런 큰 상과 인연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이유로, 연극인 출신도 아니고 설마 이런 날이 올 줄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중략) 마지막으로, (울컥) 세상에는 괴로워하는 사회적 소수자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29]
지지 않고서 정진하며 포기하지 않으면,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점점 퍼져나가서 오늘처럼 인정되는 날도.. 있구나! 라는 것을, 저를 통해서 느껴주시는 분들이 계시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6년 키쿠타 카즈오 연극상 수상소감
2009년에는 오랜기간 몸담았던 Harmony Promotion과 헤어지고 NASA ENTERTAINMENT로 이적하였고, 메인 연예인 격으로 활동하게 되었다.[30][31]
현재는 사실상 뮤지컬 배우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뮤지컬 시장이 큰 일본이니만큼, 한국에서보다는 좋은 대우를 받고 있으며, 젊은 주연급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미스 사이공, 헨리8세, 렌트 등 굵직굵직한 대작에서 여주인공으로 출연하는 등 활약하여 3년 뒤까지 스케줄이 꽉 차있는 뮤지컬 배우로 자리잡게 되었다.
사실 선임의 목소리 톤은 유키노 사츠키를 연상시키는 메조소프라노의 카랑카랑한 허스키 보이스인데 가수로서의 창법은 뽕끼가 작렬하는 가늘고 흐느끼는 톤이 주류를 이룬다. 창법을 개발하기보다 원 목소리 톤을 중시하는 JPOP 씬에서는 외려 특이한 케이스인데, 원 목소리 톤을 살리는 락 창법으로 갔으면 가수로서 좀 더 성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화위복으로 목소리와 노래가 시너지를 일으켜 뮤지컬 무대에서는 매우 강력한 툴을 가진 배우로 자기매김했다.
2012년 12월부터 뮤지컬 배우로서 레벨업하기 위해 뉴욕에 유학을 하였다. 무대 맨 끝까지 표현을 전하고 싶다는 갈증과 주연급 배역들이 들어오자 실력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몇 번 뉴욕을 방문하며 차근차근 준비하다 '일본 문화청 신진 예술가 해외 연수 제도의 연수원'을 기회로 1년 반 유학을 하게된다. 일본인도 아니고 재일교포인 그녀가 선발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일 듯. 규정상 연수기간동안 일본에는 귀국할 수 없다고 한다. 배역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던 때라 주위의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일이 없게 되더라도 도전하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유학을 다녀왔다. 그때 당시엔 연예활동은 없지만 SNS을 통한 근황은 꾸준히 전하고 있었고, 2014년 4월달쯤 일본으로 복귀하였다. 복귀방송으로 Woman On The Planet을 선택하였고, 이후 모차르트!에 출연을 확정하면서 배우로써의 시동을 걸었다. 귀국 직후 '서푼짜리 오페라'의 연습에 참여했을 때 공연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바뀌었군요'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2013년도 쯤 나사와의 계약도 끝나고 같이 일하고 있던 스탭이 세운 새로운 소속사 'no.9'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2016년에도 뮤지컬 '1789 ~ 바스티유의 연인들', '킨키 부츠' 등에 출연하면서 활발하게 활동중이다. 그간의 활약에 힘입어 기쿠타 가즈오 연극상을 수상하는등 무대 배우로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2017년 7월부터는 뮤지컬 '뷰티풀 : 더 캐롤 킹 뮤지컬'의 일본 초연 캐스트로 출연한다. 배역은 주인공 캐롤 킹의 절친한 동료이자 작사가인 신시아 웨일. 여성 캐스트중에서는 주인공 캐롤 킹 다음으로 비중이 큰 캐릭터다.
그리고 2018년 1월 아뮤즈로 소속사를 옮긴것을 공식블로그에서 밝혔다.블로그링크
2020년 5월부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락다운 기간에 팬들과의 본격적인 소통으로써 주기적인 유튜브 활동을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
2020년에는 데뷔 20주년을 맞아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10월 14일에 새 앨범을 발매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자켓 촬영 영상 신곡 '계속 옆에 있어줘(ずっとそばにいてね)'와 카레라이스의 여자 2020 리믹스 버전이 수록된 앨범이다. 신곡은 층쿠가 새로 쓴 카레라이스의 여자의 답가라고 한다. 20주년 기념 콘서트도 열어 EE JUMP 노래부터 뮤지컬 넘버, 솔로곡과 신곡까지 공연하였다.
4. 기타
- 조부모와 부모가 모두 한국인이다. '자기 나라의 언어와 역사를 배웠으면 좋겠다'라는 할아버지의 바람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정부가 지원하는 한국 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6살 때부터 집에서 먼 조총련계 민족 학교에 다녔다.[32] 초등학교 때는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 중학교 이후에는 할머니 댁에서 통학을 했다고 한다.
- 특기는 기타와 사진. 기타는 가수로서 성선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물건으로, 기타반주가 들어간 곡을 공연할 때엔 반드시 직접 기타연주를 한다. 지금도 기타연주를 위해 손톱을 기르지 않을 정도. 사진실력도 상당한 수준인데, 집에 온 출장 마사지사에게 "사진가세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다. 그리고 더불어 특기랄 수 있는 것은 바로 언어능력인데, 일본어는 물론이거니와 영어[33] , 그리고 한국어까지 무려 3개 국어에 능통하다.
- 솔로 초기 시절에는 건강미가 넘쳐서 그 점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았다.[34] 약 10킬로그램 정도 살이 빠진 덕분에 상당히 몸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머리스타일에서도 짧게 자름으로써 이미지 변신을 시도 하였다. 정변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선임의 건강미를 좋아했던 팬들은 많이 아쉬워 하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체중 관리가 민감한 부분이라서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고, EE JUMP 시절부터 연예인으로서의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있던 데다 [35] 일을 강제로 그만두게 될 뻔한 충격적인 일이 많이 생겨 주어진 일을 잘 따라야한다는 생각에 뭐든지 다 했다고 한다. 마라톤이나 도미도 같이 극한인 것들을 거부 못하고 한 것 역시 아예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안 하면 가수를 그만두는 것이었기도 하고, 너무 어려서 연예계를 잘 모르고 요청할만한 뚜렷한 무언가도 갖기 힘들었기에 그러한 '기대에 대한 보답'이 최선었다고.
2010년대 들어서는 뮤지컬 배역을 위한 다이어트로[36] 이후 체형도 변하게 되어서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37] 과 글루텐 프리[38] 을 하게 되었는데, 이후엔 그 부분에 흥미도 느끼면서도 건강도 되찾게 되어 이후로 레시피 인스타그램 계정과 블로깅을 자주 하면서 전도사로 나서고 있다. 비건식으로 한국식 핫도그와 김밥, 김치, 비건식 김치와 치즈를 넣은 김말이, 잡채 등을 만들어 포스팅했고, 2019년 말에는 한국에 와서 방문한 비건 식당과 음식들을 포스팅하기도 했다.
- 방송에서 한국 음식과 문화를 많이 알렸다. 요즘에는 낫토와 김치를 섞어 먹는 것이 일반적인 레시피 중 하나이지만, 선임이 헤이삼에 출연해서 보여줬을 때만 해도 MC들은 '김치랑 낫토라니'라는 반응이었다. 이외에도 방송에서 직접 김치를 담그거나, 일본의 한국 음식점을 추천해 출연진들과 해물파전과 굴돼지보쌈을 먹기도 하고, 방송에서 직접 콩나물 무침을 만들거나 [39] , 초난강과 한국말로 대화하며 번데기 요리를 해먹거나, 하마사키 아유미의 방송에서 비빔냉면을 소개하거나, 관광객이 선호할만한 한국 음식점이나 관광명소를 소개하기 위해 직접 한국에 와서 음식점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 한국에 잠시 활동했을 때인 2006년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 시작 전) 무렵 인터뷰를 보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꼬리곰탕이고 잡채와 비빔면, 찌개류도 많이 좋아한다고 했다.
- 솔로 활동 때 방송에서 마츠우라 아야에게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기믹을 많이 했는데, 다큐가 아니라 예능용이다. 친한 관계+근성의 열혈 아이돌 이미지라서 했던 컨셉. 일단 마츠우라 아야의 데뷔시절 매니저와 프로듀서가 선임과 같은 와다 카오루와 층쿠였고, 마츠우라 아야가 무대 전 긴장될 때 선임을 만지며 긴장감을 해소했다는 일화를 말할 정도로 친하기도 하다. 또 당시 선임은 나이도 성별도 주 활동 분야도 엄청 다른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라이브를 보면서도 노래도 연기도 모두 다 잘한다고 칭찬을 쏟아붓더니 라이벌 의식을 불태워서 옆에 있는 MC 맛슈가 '라이벌이 아니라고, 괜찮은거야?'라며 말리는 개그를 하기도 했다. 그걸 들은 선임은 '누구나 라이벌이 될 수 있어요'라고 답해 방청객들의 웃음이 터지게 했다.
- 데뷔 초기엔 Castlevania의 CM에서 레온 벨몬드의 코스프레를 한 적도 있다.
- 뮤지컬로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준 멘토 오타케 시노부를 만나기도 전, 솔로 가수로서 활동하던 때 방송에서 어릴 때 별명이 '시노부쨩'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릴 때 외모가 닮아서 친구들이 그렇게 별명을 지어줬다고 한다.
- 마츠코 디럭스가 인생 탑 급으로 좋아하는 곡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카레라이스의 여자'를 엄청 좋아한다. 선임이 자신의 방송에 출연하자 소감을 말했다. 자신에게는 선임이 노래의 화자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당시의 노력하는 선임이 정말 대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츠코 디럭스는 그 방송에서 카레라이스의 여자를 '마지막 단 한 줄에만 희망이 있는 노래'라고 표현했다.
- 하마다 마사토시가 하마짱또[40] 에서 선임에게 집요할 정도로 신체에 대한 코멘트를 해서 선임이 당황한적이 있었다. 다소 무례했던것은 사실... 물론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이런 섹드립에는 온도차가 큰편이니 심각하게는 생각하지말자 선임 또한 그냥 가볍게 맞받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