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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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글레이(GLAY)는 일본의 4인조 록밴드이다. 홋카이도 하코다테 출신. TAKURO(기타), TERU(보컬), HISASHI(기타), JIRO(베이스)로 구성되어 있다.
이름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다. HISASHI는 BOOWY의 가사가 토대가 되었다고 증언하였고 그 외에 검정색(록 음악)도 흰색(팝)도 아닌 회색(록과 팝의 중간)을 뜻하는 GRAY에서 R을 L로 바꿨다는 설이 있다.[2]
2016년 기준으로 누적 판매량은 '''3857만 장'''을 기록하고 있고, 역대 8위를 기록하고 있다.
최전성기인 1999년에 콘서트 'GLAY EXPO '99 Survival'에서 마쿠하리 멧세 주차장 특별 스테이지에서 20만 명의 관객을 유료로 동원한 기록이 있다.당시에는 단독+유료부문에서 관객동원 세계기록을 갱신했으며, 지금도 순위권에 있다.
2017년 기준 라벨과 소속사는 모두 LSG이다. LSG는 자주 레이블 'loversoul music & associates'의 이름을 바꾼 것이다.
2. 멤버
2.1. TERU
밴드 결성 초기에는 드럼을 맡았다가 나중에 보컬로 바꿨다고 한다. 목 안 상하나 싶을 정도로 목을 긁는 듯한 허스키한 목소리로 유명하며, 전성기 때 라이브는 거의 괴물 수준이었다. 현재는 나이가 나이인 만큼 다소 파워가 떨어졌다는 게 정설이지만 현재도 콘서트에서 몇 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샤우팅을 한다. 사실 담배를 오랫동안 태웠는데 현재는 금연한 상태로 나이에 따른 목 관리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3]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 라이브의 기복[4] 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에서도 인정하는 라이브에 강한 보컬리스트.
그룹 PUFFY의 오오누키 아미와 결혼해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아미와 결혼 전의 전처에게서는 1남 1녀를 얻었다. 게임이나 컴퓨터 등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그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종종 비디오 게임, 컴퓨터 등에 대한 피드가 많이 올라온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혼자서 한국에 여행 왔다. 홍대, 명동, 코엑스 등 많은 곳을 다니며 피드를 올리고 있다. 일본에서는 하얀 마스크를 많이 쓰는데 한국에서는 검은 마스크를 많이 쓰는 것 같다며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 결과 새로운 굿즈 상품으로 테루 프로듀스 검은색 즈라 마스크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 영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일본에서 검은 마스크가 꽤 팔리고 있다.
파이널 판타지 14유저다. 주 종족은 아우라 여캐. 궁그닐 서버에서 플레이 중이여서 궁그닐 서버가 흥섭이 된 이유 중 하나.
굉장한 축구 매니아로 알려져 있다. 직접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뛰는 것도 즐기는데 많은 팬들이 '테루의 급 노화는 축구 때문이다!' 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본인의 고향인 하코다테에 자신의 개인 녹음실을 만들었다. 2019 앨범 "NO DEMOCRACY"에서 2곡을 제외하고 모든 곡이 하코다테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 본인 피셜에 의하면 본인의 스튜디오라서 샌들을 신고 파자마 차림으로 노래를 하면 굉장히 좋은 소리가 녹음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스튜 디오가 생긴이후 본인 작곡의 곡이 늘어나고 실제로 COLORS 등의 반응이 좋은 명곡들이 다수 탄생하고 있다. GLAY 리더인 타쿠로가 "테루에게 엄청난 재능이 드디어 나오고 있다"라고 말할 정도.
테루 인터뷰中 : 정말로 명곡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곡을 하코다테 스튜디오에서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멤버들도 "하코다테 스튜디오에서 한번 만들어보자!"라고 말해줬으며 저도 그곳에서 어떤 기적이 탄생할지 기대됩니다.
대다수의 한국 팬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테루는 지금은 은퇴한 일본의 전설적 록 보컬리스트 히무로 쿄스케의 팬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스로 그의 퍼포먼스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할 정도이며 2006년에는 GLAY와 히무로의 콜라보레이션 곡인 ANSWER를 발매했고 그 해,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함께 조인트 콘서트를 하기도 했다.[5] 2014년 히무로가 은퇴를 선언했을 때는 "아직도 히무로 씨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싶다."라는 트윗을 남겼을 정도...[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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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TAKURO
GLAY의 리더로서 팬들로부터는 사장님, 대장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현재 모델 이와호리 세리와 결혼하여 미국에 거주지를 두고 활동 중이다. GLAY의 정신적 지주로 거의 모든 GLAY의 음악을 작곡, 작사했다. 팬들로부터 천재라는 평을 들으며 글레이의 대표곡 대부분은 타쿠로의 작품이다. 또한 가사가 깊이 있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사랑 이야기가 거의 메인테마이다.[8]
큰 기럭지와 호리호리한 체형 덕분인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멋있어진다.' 라는 게 팬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최근에는 개인 솔로 연주 앨범도 내고 라이브 공연도 자주 한다. 재즈에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재즈 공연이라든지 재즈풍의 곡들도 자주 만든다. 그 영향의 일부로 신규 앨범「NO DEMOCRACY」수록곡이자 영화 "오버 에베레스트" (オーバー・エベレスト) OST이기도 한 "翼の氷"라는 곡이 재즈풍의 음악으로 만들어졌다.
전 소속사와 금전적인 소송 문제로 GLAY 모든 멤버들이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가, 현재는 타쿠로가 회사를 직접 차려서 멤버들과 운영 중이다.
2016년 12월 14일 개인 앨범 'Journey without a map'을 발매했고 주간 10위를 차지하였다.
키가 크다. 나머지 멤버 프로필 등록됐던 키가 160대인데 혼자 182인 멤버.
일본의 전설적 록밴드인 B'z의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마츠모토 타카히로와 관계가 깊으며 그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으며 깊이 존경한다고 말할 정도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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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HISASHI
기타 포지션. 타쿠로와 히사시 둘 다 기타이지만 솔로 멜로디 부분은 히사시가 주로 연주했다. 출생지는 아오모리현의 히로사키이지만 어렸을 때 아버지 고향인 하코다테로 이사 와서 거기에서 학교를 나왔다. 타쿠로와는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아는 사이였다고. 전성기 때는 가장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녀서 튀었던 멤버이며 그 특유의 개성적이고 펑키 한 스타일은 GLAY의 스타일이 전체적으로 정갈해진 현재도 홀로 건재하다.[10] 프로듀싱 능력이 생각보다 좋다. 최근 신보 앨범에 본인곡이 꽤 많이 들어갔다. 전자기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실제로 과거 예능 프로에서 본인이 전자기기 상품 코너 앞에만 가면 흥분을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스타워즈의 굉장한 팬이다. 오버워치가 나왔을 때는 상당히 흥미를 느끼면서 즐기기도 했다.
넷플릭스를 많이 보게 되면서, 사랑의불시착과 이태원클라쓰를 많이 봤다고 한다. 상당히 덕후수준으로...
종종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하는데 2021.01.23 HISASHI TV The LIVE #17편에서 한국마스크 '웰킵스'를 샀다고 했다.https://youtu.be/PVjUHekbk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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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JIRO
원래는 고향의 다른 밴드에서 활동하던 한 살 후배였고 밴드가 도쿄로 옮기고 나서 제일 마지막에 들어왔다고 한다. 본명과 이름이 전혀 다르다. 고3쯤 베이스가 없는 밴드에 들어갈 때 오디션을 볼때즘 당시의 보컬이 "(띠꺼운말투로) 넌 이름이 뭐냐?"라고 물었는데 당시 말투가 짜증 나고 깔보는 느낌이라 "응, 지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계속 지로라는 이름을 사용한다고.출처
엄청난 동안으로 전성기 때부터 유명했다. 멤버 네 명이 비슷한 연배인데도 홀로 젊어서 튀어 보이는 사람이다. 노란 염색을 고수하고 있고 이게 본인에게 잘 어울리기도 한다.
취미는 카메라 촬영이며, 데뷔 때부터 현재까지 꾸준한 취미활동이다. 본인이 직접 사진 인화까지 할 정도. 그래서 본인이 직접 만든 곡 중에 "shutter speed의 테마"라는 곡이 있으며, 현재까지 콘서트에서 자주 연주되는 곡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등산 취미가 새로 생긴듯하다. 가끔 팬클럽의 사진에 등산복을 입고 산을 타는 사진이 공개됐었다. 그리고 럭비 팬이기도 하다.
굉장히 본인에게 철저한 편이며,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모든 부분을 본인이 직접 결정한다. 본인옷을 자주 입기로 유명하다. 2000년 GLAY ARENA TOUR 2000"HEAVY GAUGE의 도중에 탈퇴 위기에 빠지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현재 결혼한 당시 잡지 에디터 레이코가 지로의 탈퇴 소식을 듣고 당시 공연장까지 차로 달려가 말려서 탈퇴를 안 하게 됐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잡지 에디터 레이코와 결혼한 것 외에 사생활은 밝혀진 것이 거의 없는 듯.
매주 토요일마다 팬클럽한정 GLAY MOBILE 'CARAMEL RETURNS'에서 영화 기생충 얘기를 많이 할 정도로 덕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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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 멤버
- SHINGO (드럼, 베이스)
- ISO (드럼)
- AKIRA (드럼)
- NOBUMASA (드럼)
4.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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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의 GLAY를 상징하는 GLAY EXPO '99 SURVIVAL LIVE IN MAKUHARI'''
1988년 홋카이도 하코다테에서 고등학생이던 타쿠로와 테루를 중심으로 결성됐다. 하코다테 시내에서 공연을 하면서 만원 공연도 할 정도로 꽤 인기를 얻게 되고, 주변 다른 지역으로도 활동 범위를 넓혔다. 그러다가 테루, 타쿠로, 히사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0년쯤 도쿄로 상경해 그야말로 개고생을 했다고 한다. 멤버 모두 일을 따로 갖고 생계를 유지하면서 라이브를 이어나가는 상황이었는데, 무척 어려웠다고. 도쿄로 상경하고 나서 고향의 밴드 후배였던 지로도 합류했다.
그러다가 이들 공연을 본 X JAPAN의 히데와 요시키 눈에 들어 엑스타시 레코드와 계약하며 메이저로 올라오게 된다.[11] 1994년에 싱글 <RAIN>으로 데뷔했다. 해당 곡은 GLAY의 인디 곡이었던 <JULIA>를 Yoshiki가 편곡하고 가사를 바꾼 곡이다. 이 곡은 애니메이션 야마토타케루의 테마곡으로 쓰이게 되어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3번째 싱글인 <彼女の “Modern…”> 까지 인디즈 앨범 <灰とダイヤモンド>의 수록곡을 리컷하여 활동했다.[12]
1995년부터 싱글 <Freeze my Love>를 필두로 오리지널 곡으로 싱글을 내게 됐다. 그리고 그 해 첫 CM 타이업 싱글이었던 <Yes, Summerdays>가 히트를 쳤다. 그리고 <生きてく強さ>도 제법 라이브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가 1996년에 인기가 급상승하였다. 앨범 <BEAT out!>의 선행 싱글 <グロリアス>가 처음으로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TOP 10 안에 들었고 플래티넘(당시 40 만장 이상)을 달성하며 히트를 쳤다. 그 영향으로 인해 앨범 <BEAT out!>은 오리콘 주간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고 80만 장의 판매를 기록하게 됐다. 그리고 8월에 TBS 테레비 드라마 '한 여름의 프로포즈'의 주제가인 <BELOVED>가 발매됐다. 첫 드라마 타이업이었던 이 싱글은 큰 히트를 기록하면서 초동도 처음으로 10만 장을 넘기고 처음으로 주간 TOP 3 안에 들어갔다. 해당 싱글은 동명의 앨범 <BELOVED>의 선행 싱글이기도 했는데, 이 히트의 영향으로 3집 앨범 <BELOVED>는 GLAY에게 처음으로 밀리언 셀러의 영광을 안겨줬다.
1997년에는 더욱 인기가 상승하는데, 싱글 <口唇>가 처음으로 주간 1위를 차지하고 밀리언에 가까운 히트를 기록한데 이어, '''<HOWEVER>'''가 주간 통산 5주 1위를 달성하며 싱글 첫 밀리언 셀러가 됐다. 그리고 이 싱글들의 히트를 계기로 첫 베스트 앨범인 <REVIEW - BEST OF GLAY>(1997년 출시)는 약 488만 장의 판매고를 올려 당시 역대 일본 단일 음반 판매량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13] 연말 홍백가합전에 첫 출전하여 HOWEVER을 불렀다.
그리고 1998년에는 그 기세가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싱글 쪽에서 '''<誘惑>, <SOUL LOVE>, <BE WITH YOU> 셋이 연달아 밀리언셀러'''가 되면서 일본의 국민 그룹 반열에까지 들게 된다. 게다가 콘서트도 대성황을 이뤘다. 그리고 같은 해에 발매된 정규앨범 <pure soul>은 2밀리언 히트를 했는데, GLAY의 정규앨범 중에서 제일 많이 팔렸다. 특히 이 앨범의 타이틀곡인 'pure soul'은 싱글 컷이 안됐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1999년에는 싱글 <Winter, again>이 밀리언을 달성했고 이 싱글은 GLAY의 싱글 중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 그리고 같은 해 발매된 정규앨범 <HEAVY GAUGE>는 전작에 이어 2밀리언을 달성하였다. 그리고 7월 31일에 대기록을 달성했는데, 마쿠하리 멧세 주차장 특설 무대에서 펼친 콘서트 <MAKUHARI MESSE 10TH ANNIVERSARY GLAY EXPO'99 SURVIVAL>에서 2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 기록은 2017년 기준 일본 내에서 현재까지도 가장 높은 기록이다. 멤버들도 이 기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당시 영상을 보면 그냥 다른 공간이라고 생각해도 될 만큼 멀리까지 관객이 위치해 있다.
하지만 멤버들에게 있어 GLAY는 너무 멀리 왔던 탓일까, 멤버들도 스스로 목표를 잃어 99년 말 레코드 대상 수상과 동시에 해산을 결정했지만 이내 철회했다. 하지만 99년을 기점으로 홍백가합전을 사퇴했다.
2000년에도 밀리언셀러 싱글이 나왔다. 바로 <とまどい/SPECIAL THANKS>인데, 이 두 곡은 상당한 인기를 자랑했고, GLAY 곡 투표에도 상위권에 들었다. 그리고 같은 해 발매한 베스트 앨범 <DRIVE-GLAY complete BEST>도 2밀리언을 달성하였다.
그 뒤 2000년대 초반까지 쭉 높은 인기를 구사하였다. 특히 '아이노리'의 주제가였던 <Way of Difference>는 엄청난 히트를 하여서 21세기 그들의 싱글 중에서 가장 높은 판매량의 싱글이 되었다. 그러나 그 뒤에 싱글 판매량은 크게 줄어들게 되었다. 그렇게 계속 아쉬운 성과를 내다가 2005년에 '''<SCREAM>이라는 곡으로 EXILE과 콜라보레이션을 하게 된다!''' 아이돌과 밴드라는 이 독특한 조합은 큰 화제가 되었다. 춤과 밴드의 절묘한 조화가 포인트. 성적은 역시 네임밸류들 답게 엄청났는데, 판매량이랑 다운로드 수 모두 50만을 달성하였다. 또 이 노래는 국내에서도 신화의 김동완이 같은 제목으로 리메이크한 적이 있다. 2007년 발표한 솔로 1집 앨범 수록곡.
그 뒤에는 다시 음반 판매량이 내려갔다. 사실 2002년에 발매한 앨범 <UNITY ROOTS & FAMILY,AWAY> 때부터 대중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그런 평가로 인해 TAKURO는 한물갔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타쿠로는 음악 스타일을 바꾸고 싶어했고, 그렇게 스타일을 바꿔서 현재는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GLAY스러운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성과는 좀 아쉬워도 GLAY의 색이 묻어나오는 좋은 곡이 꾸준히 나온다는 평이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콘서트는 꾸준하고 화력이 좋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어두운 현실은 아니다. 실제로 타쿠로가 사장이 된 이후 더욱 활발한 콘서트 투어활동을 진행중이다.
다만 인기는 조금 떨어졌어도 클래스는 여전했는지 2004년 EXPO는 당시 티켓 10만장이 예매 15분 만에 매진되어 글레이가 아사히신문에 ‘감사 광고’를 낼 정도였다. 공연 한달전쯤 타쿠로가 비공개적으로 혼인신고를 올린 사실이 밝혀지고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에서 열리게 될 `GLAY EXPO 2004` 에서 직접 결혼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할 것으로 전해지며 많은 여성팬들을 울리기도 했다.[14] 한국언론에서 오사카 10만 관객을 홀리다는 제목으로 보도되었다.
이후 EXPO는 '''10년 만에'''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역이었던 센다이에서 2014년 힘내라는 테마로 열리게 된다. 하지만 이때는 아무래도 화력이 많이 떨어진 시기였고 피해지역을 위한 이벤트성도 있었기에, 실질적으로 GLAY의 전성기 시절 EXPO의 마지막은 2004년으로 쳐주는 경향이 크다. 멤버들도 당시 EXPO 2004가 마지막이라고 했으며, 실제 모든 것을 불태우듯 엄청난 규모의 초호화 공연이었다. 이후로는 대중성보다는 팬덤을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해왔다.
그래도 안타까운건 주간 1위를 차지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2008년 싱글 <VERB> 이후로 '''7년 8개월 동안''' 첫 주 1위를 못했다. 그러다가 2016년 1월에 발매된 <G4・IV>가 주간 1위를 차지하였다. 그래도 년마다 꾸준히 싱글을 낸 덕분인지 '''21년 연속 주간 싱글차트 TOP10 진입'''이라는 대기록은 가지고 있다. 이 기록은 V6와 함께 역대 2위이다. 사실 이전 문서에는 라르크 앙 시엘과 비교하는 글이 있었는데, 어찌 보면 1위 횟수만 라르크가 좀 더 많았을 뿐 서로 비슷하였다. 근데 지금은 둘다 거의 비슷한 수준.
이들이 자기들만의 음악을 한다는 증거로 2006년부터 발매하고 있는 G4 시리즈가 있는데, 이 싱글은 멤버들이 각각 작사/작곡한 음악들이 수록되어 있다. 시리즈로 내고 있는데, 2016년에 G4 4번째 시리즈를 발매하였다.
2016년 현재, 황혼기라 그런지 예전에 비해서 방송활동도 줄고 인기도 식었긴 했지만 마쿠하리 멧세에서 팬클럽 한정 라이브를 개최하여 이틀동안 5만 6천명을 동원하였다. 역시 라이브 화력은 건재한 모양이다.
2017년에는 계절에 DELICS를 붙여 앨범 하나와 싱글 하나를 발매했다. 그리고 최근 아레나 투어를 했는데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관객 3만명을 돌파하는 역시 성공적인 공연을 치뤘다.
2019년에 다이아몬드 에이스 act 2의 오프닝곡을 담당한다고 한다. 역시나 TERU 작사 작곡 예정.
2020년 4월, 투어를 위주로 활동하는 GLAY는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았다. 투어가 취소되어 GLAY의 브레인이자 리더인 타쿠로가 직접 유튜브에 투어 취소 영상을 올렸다. EXPO 2004때만 해도 타쿠로의 결혼 소식이 큰 화제였는데, 어느새 타쿠로도 중년이 되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듯 하다. 멤버들도 처음 고딩 시절 결성했던 그대로다.
5. 한국에서의 인기
내한 이야기는 계속 나왔다가 엎어지고 하다가 결국 조용히 묻혀왔다. 이 밴드의 전성기 때나 전성기 이후에나 일본 문화에 대한 국내 인기가 낮고, 게다가 가요도 아닌 록 밴드는 인지도가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성사되지 않은 듯. 일본에서의 위상은 높았다고 하지만, 한국 내 인지도는 'X JAPAN'이나 'L'Arc~en~Ciel'보다 훨씬 떨어지는 그룹이었다. GLAY는 일본을 제외한 전세계의 락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음악을 해왔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그룹의 음악을 표절한 사례가 많다는 것이 알려진 이후엔 인기가 꽤 올라갔다.
2000년대 초반 일본문화가 개방되면서 플레이스테이션 2도 정식발매되고 GLAY의 앨범도 정식발매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한국에 정발된 GLAY의 앨범에는 EXPO 2004 응모권이 들어있었다. "일본에 가서 놀이기구도 타고 GLAY 공연도 보자"면서 현지에서는 이미 매진되어 표를 못구한다고 일본 최강 락밴드인 GLAY의 EXPO 2004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응모를 유도했었다. 당시 당첨된 한국인 팬들 중에는 처음으로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을 방문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도쿄 디즈니랜드에 버금가는 대형 글로벌 테마파크를 전야제 포함 이틀간 통째로 빌릴 수 있는 위치가 당시 GLAY였다. 비수기도 아닌 방학시즌 여름 성수기에, 그것도 평일도 아닌 불금과 토요일 이틀간 빌려서 공연할 수 있는 사례는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이다.
2004년 '000 Road' 이후로는 한국 라이센스 음반도 더 이상 발매되지 않았는데, 이번 내한공연 확정을 계기로 1월 16일에 전집이 발매가 되었다.
비공식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L'Arc~en~Ciel 내한공연 때 관람차 방한했었다. 당연히 조용히 묻혔다. 타쿠로는 자신의 블로그에 갈비를 맛있게 먹었다고 글을 올렸었다. 테루는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보러 내한한 적이 있다.
애니송을 꽤 불렀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영 익숙하지가 않다. 그도 그럴게 첫 애니송 타이업은 야마토타케루였는데 한국에서 방영될 때에는 GLAY의 노래가 아닌 2기의 노래가 들어왔었다. 그 다음으로는 쾌감 프레이즈의 주제가인 'サバイバル'를 담당했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한국에 더빙되지도 않았고 유명하지도 않다.[15] 그래서 강철의 연금술사나 GTO의 주제가를 담당한 L'Arc~en~Ciel과 종종 이런 부분에서 비교된다. 오히려 GLAY는 최근에 애니송을 많이 맡게 되었는데, 다이아몬드 에이스의 오프닝을 3연속으로 담당하고 쿠로무쿠로의 1, 2쿨 오프닝을 담당하였다. 그래도 역시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제외하면 애니송 쪽으로는 익숙한 밴드가 아니다.[16]
자우림의 김윤아가 2001년 발표된 '몽유병'이라는 곡에 코러스로 참여했다.[17]
한국에서는 팬도 소수였던 데다[18] 2010년대 부터는 한국에서 일본음악의 인기 자체가 급속도로 사라진 추세라서 앞으로도 내한은 없을 걸로 예상되었으나, 2018년 12월 7일 공식 트위터를 통해 마침내 첫 내한공연을 2019년 6월 KBS 아레나에서 열게 됨을 공지했다.
일본인 비중이 거의 7~80%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많았지만[19] 어찌됐든 양일 매진을 기록했으며, 공연 호응도 매우 좋았다는 후기가 가득하다. 멤버들도 꽤나 흡족한 것으로 보인다. 라이브가 강력한 그룹답게 기대없이 갔다가 예상 외로 너무 잘해서 놀랐다는 후기가 많았으며 신경 쓴 선곡과 팬 서비스[20] , 인터뷰글들을 통해 한국에 늦게 오게 된 데에 대한 미안함을 갚고 싶다는 말이 진심임을 느낄 수 있었다고.
간간이 이후에도 방송에서 한국 공연의 신선함을 얘기하다 11/10 라디오에서 TERU의 한국 떼창에 대한 느낌을 얘기하였다.
T:이번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라이브를 했는데요, 25년 만에 처음으로 하는 공연으로 한국 분들도 글레이의 음악도 좋아하고, 일본의 음악도 좋아한다는, 순수하게 일본의 락 씬을 좋아하는 그런 분들이 와주시거나 해서.. 그런 기대감이 있었던 거죠. HOWEVER에서 떼창이라거나.
MC: 에에~~ 굉장해.
T: 그건 진짜 감동했어요. '''일본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잖아요.''' HOWEVER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야, 누가 지금 (여기서 따라부르는 거야)’ 하잖아요. ㅋㅋ
MC: ㅋㅋ 확실히 그러네요.
T: ㅋㅋ (일본은) 그런 분위기인데요, 해외는 역시나 ‘같이 노래 부르자’라는 느낌이..
[출처] 여러분.. 테루상이 또 라디오에서 한국 얘기해주셨어요 ㅠㅠ(Date FM. 11/10 OA) (GLAY in KOREA)
내한 공연 이후 아베 내각의 행동으로 NO JAPAN 운동이 시작,
한일 관계가 급속 냉각되면서 2020 해외 롱투어 플랜 중 한국은 멤버들이 가고 싶은 순위 중에 높은 곳에 랭크 되어있고
한국 팬들의 요청 또한 알고 있지만 20년도 내한은 시기와 계약 등이 조금 힘들지 않나...하는 분위기 인 듯.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투어가 중단된 상황이다.
펜타곤(아이돌)과 노래 I'm Loving You를 함께 작업하는 등(테루는 한국어로도 노래를 불렀다) 한국음악에도 관심이 많다. 또한 근래 발매된 GLAY의 곡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곡 중 하나인 Into the Wild는 그 PV를 한국에서 촬영했다.[21]
3월 11일에 발매된 <REVIEW 2> 앨범에는 특전이 있는데, 바로 한국투어 둘째날인 6월 30일의 투어 라이브 영상이다(!!!)
멤버들이 유튜브를 통해 방송을 할 때가 있는데, 멤버 중 히사시는 방송에서 처음처럼을 방에 놓고 마시기도 했다.[22][23]
영화 기생충이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등을 보는 등 한국 문화에 대해 친근함을 지니고 있다.
5.1. 다른 의미로의 인기
한국 아이돌 팝과 20세기 한국 팝 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하기로 유명했는데 뭔 소린고 하니 '''표절 대상'''이었다 그말이다(...) 팬들이 찾아내면 묻히고 찾아내면 가라않고를 반복, J-Rock이 거의 없어진 지금은 잘 언급도 안 되지만 한 짓이 없어지나 어디.
1998년 주영훈의 프로듀서 하에 데뷔한 4인조 댄스그룹 GLAM의 1집 앨범은 GLAY의 97년도 앨범 'REVIEW'의 디자인을 그대로 베껴썼다. 이름부터가 GLAY에서 단어 하나 바꾸고 멤버수도 똑같고 그룹 컨셉 전체를 도용해 썼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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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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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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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속지, 가사지. 답이 없지만 이제 시작이다...
같은 1998년 이지훈 3집 커버 또한 전 해인 1997년 글레이의 앨범 REVIEW와 상당히 유사했고 이지훈은 글레이도 글레이의 앨범도 모른다고 발뺌하다 앨범을 재발매하며 앨범의 글자들을 빼고 온리 검은색으로 커버를 교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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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엠씨더맥스의 전신 문차일드 1집 자켓은 싱글 커버 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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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신화의 팬클럽 영상집이 글레이의 헤비 게이트 투어 팜플렛을 베낀 걸로 당대에는 큰 화제가 되었었는데 해당 글은 2005년 헤비 게이트 팜플렛과 신화 영상집을 비교하는 글로 사진은 다 짤렸지만 글들이 남아있다. 원 글이 써진 J-Rock 카페에는 당시 150개의 댓글이 달릴 정도로 난리가 났었다. (지금도 원본글은 존재) 2018년 기준으로 20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라 기사들도 남아있는 게 없는 지경. 참고로 SM은 글레이의 투어 팜플렛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비공개가 된 글 인데 "제일 왼쪽에 있는 커다란 팜플렛은, HEAVY GAUGE때의 것인데, 우리나라 신화라는 그룹이 화보집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었다. 내가 구하게 된 것은, GLAY가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기자들에게 홍보자료용으로 나눠준 팜플렛이었다. 당시 SM 엔터테인먼트가 담당했는데 어쩌다보니 관계자에게서 받았다."라고 적혀 있었다.
글레이는 2001년 SM을 통해 한국에 앨범을 내고 2001 글레이 엑스포에 자우림을 초청하기 위해 타쿠로, 테루 2명이 딱 하루 방한한 일이 있다. 당시 SM이 헤비 게이트 팜플렛을 보고 슥삭하신 듯... 참고로 SM과 언리미티드 그룹이 계약을 할 때도 트러블이 있었다.
여간 저 인연 덕인지 김동완은 2005년 글레이 X 에그자일 싱글 SCREAM을 커버하며 솔로생활을 시작한다. 그런데...
2005년 데뷔한 슈퍼주니어의 데뷔곡 Twins MV가 SCREAM을 베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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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52초 부분과 GLAY × EXILE SCREAM PV의 1분 41초 부분의 싱크로율이 훌륭하다(...) 실제 영상을 돌려보면 불 속에서 멤버 전원이 나오는 걸 정면으로 찍고 난 다음 클로즈업해서 오른쪽부터 멤버 개개인을 훓고 지나가는 게 심지어는 카메라 앵글까지 완전히 똑같다. 참고로 GLAY X EXILE의 SCREAM은 2005년 7월 20일 발매됐고, 슈퍼주니어는 2005년 11월 6일에 데뷔했다. 참 빨리도 찾아다가 베낀 셈.
이 외에도 뜨지 못한 가수들의 글레이 표절은 무수한데 90년대 후반에 글레이 앨범을 들고 와서 이거 베껴달라고 하는 소속사가 상당했다. 모두 GLAY가 국내에 인지도가 없다는 걸 알고서 의도적으로 베끼려고 한 것으로 HEAVY GAUGE 앨범 초회한정판 자켓의 야광처리를 그대로 베끼려고 했다가 단가가 너무 높아서 포기하고, HAPPINESS 싱글 한정판에 있던 홀로그램 자켓도 베끼려다가 우리나라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기술력이 없어서 포기했었다고.
6. 이야깃거리
- 전 소속사였던 언리미티드 그룹과의 악연이 유명하다. 2005년에 회사를 나왔는데 '곡 저작권을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 니들 라이브에서 노래 부르지 마라'고 언리미트드 그룹이 먼저 소송을 건 것(...) 덤으로 글레이 측과 진행중이던 저작권 양도 계약도 일방 해지했다. 그리고 도쿄 지법 재판부는 "글레이 측에 147곡의 저작권이 귀속되는 것이 당연하며 부당이득 6억 8000만엔까지 지불하라"고 선고하며 언리미티드 그룹을 가루로 만들어주셨다. 글레이가 언리미티드 그룹을 나가던 시기에 언리미티드 그룹이 친 사기도 어마어마한데 소속사 계약해지 요구를 하자 언리미티드 그룹 사장이 공연기획사들에게 아직 지불하지 않은 글레이 돔투어 티켓대금을 내 놓으라고 독촉하고[25] 공연기획사들은 글레이의 독촉으로 이해해 글레이의 이미지가 악화되었다. 그리고 티켓대금 13억엔이 들어오자 언리미티드 사장은 그 돈을 후루룩, 글레이는 욕은 욕대로 먹고 돈도 하나도 못 챙겼다. 위에 서술된 배상금도 아직 완전히 글레이 측에 완전히 지불되지 않았는데, 언리미티드에서 장부에 저작권 수익을 낮게 조작하는 식으로 빼돌려 놓은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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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20만 관객이 '단일 그룹의 유료 관객 최고 기록'이라고는 하는데, 꽤 옛날이기도 하고 여기저기를 거쳐서 떠도는 홍보 문구이므로 뭘 기준으로 최고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 당시만 해도 최고 기록이었다는 건지, 아시아에서 최고였다는 건지. 퀸이 80년대에 이미 25만 유료 관중을 동원했었다는 소문 또한 인터넷에 떠돌고 있기 때문에 최고 기록이라는 말은 완전히 믿을 건 못 된다.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일본 기사도 있지만 지금은 기네스북 공식 홈페이지에 GLAY의 이름이 올라 있는 항목은 없다. 어쨌든 중요한 건, 록 페스티벌이 아닌 한 그룹의 단독 공연에서 관객 20만명은 손꼽을 만큼 대단한 기록이었다는 것이다.
- 고향인 홋카이도 하코다테에 'Art Style of GLAY'라는 박물관 이 있었다. 2007년에 폐쇄됐다고 한다. 인터넷을 뒤져 보면 그 전에 방문했던 사람들이 쓴 글을 볼 수는 있다. 그 지역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가수이고 동네 고딩밴드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그룹이기도 하기 때문에 종종 하코다테에서 이들의 흔적을 찾을 수는 있다. 2016년 새로 개통된 홋카이도 신칸센을 GLAY가 광고하고 있다거나, 오르골 샵의 한 켠에 GLAY 오르골 코너가 아예 따로 마련돼 있다거나.. 'Art Style of GLAY'가 사라지면서 팬들이 하코다테에 방문했을 때 한번 들러볼 만한 곳은 없어지긴 했으나, 구글에서 영어나 일어로 검색해 보면 사람들이 써 놓은 GLAY와 관련된 장소가 있긴 있다. 그에 따르면 고료가쿠 근처에는 TERU의 친척이 경영하는 바도 있다고 한다! 팬들이 쓴 인터넷 글이므로 어디까지 사실일지는 의문이지만.[26]
- EXPO 2004라는 현란한 이벤트의 스펙타클한 초호화 공연에 든 제작비만 160억원, 공연 스태프만 7500명에 달했다. 인공호수 무대에서 금요일에 열린 리허설격 전야제 공연부터 팬들이 호수 주변을 가득 메웠다. 토요일에 열린 본공연은 5시 시작 예정이었지만, 낮 1시쯤 도착했을 때 이미 땅바닥이 잘 안 보일 만큼 사람이 빽빽했다. 일본 언론들은 "글레이가 전설을 만든다"고 치켜세웠다.
- 같은 하코다테 출신 유명밴드 JUDY AND MARY의 멤버인 YUKI와 관련이 있다. TAKURO와 JIRO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YUKI와 친구였으며, YUKI가 GLAY의 곡에 피처링을 하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 '週末のBaby talk'과 '南東風'이 해당. 화보를 같이 찍기도 했다.
- 가사를 매우 중시한다. 원래부터도 깊이있고 아름다운 가사로 유명했으나, 어느 시점부터 공연을 하며 아예 스크린에 가사를 띄워놓고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2019년 내한공연에서도 스크린에 한국어로 해석된 가사를 띄워놓고 공연을 했을 정도이다.
6.1. DRIVE-GLAY complete BEST 인기투표
2000년에 발매된 GLAY의 베스트앨범 <DRIVE>는 싱글 <とまどい/SPECIAL THANKS>에 수록된 엽서로 인기투표를 하였다.
'팬의 목소리를 최대로 살린 GLAY 궁극의 베스트 앨범을 만들고 싶다'라는 멤버들의 의도 하에 투표를 실시한 것이다.
인기투표 결과
1. HOWEVER
2. とまどい
3. 生きてく強さ
4. ずっと2人で…
5. pure soul
6. Winter,again
7. 春を愛する人
8. BELOVED
9. SPECIAL THANKS
10. 生きがい
11. サバイバル
12. SHUTTER SPEEDSのテーマ
13. 誘惑
14. BE WITH YOU
15. SOUL LOVE
16. I'm in Love
17. HAPPINESS
18. May Fair(4thアルバム『pure soul』収録)
19. ここではない、どこかへ(17thシングル)
20. RAIN(1stシングル)
그러나 18~20위의 트랙은 수록되지 않았다.
7. 음반
7.1. 싱글
7.2. 콜라보레이션 싱글
'''GLAY×EXILE'''
'''GLAY feat.KYOUSKE HIMURO'''
7.3. 비디오/DVD 싱글
7.4. 디지털 싱글
7.5. 앨범
7.6. 미니 앨범
7.7. 베스트 앨범
7.8. 컴필레이션 앨범
7.9. 앤솔로지 앨범
8. NHK 홍백가합전 출전 경력
[1] 포니캐년 산하의 GLAY 단독 레이블[2] 어차피 GRAY나 GLAY나 일본어 특성상 일본어 발음 '그레이'로 같다. 좀 연배가 있는 한국의 일본음악 리스너들은 '글레이'가 아닌 '그레이'로 발음하는 경우가 꽤 있다.[3] 사실 젊을 때야 그렇다 쳐도 나이가 중년에 접어들었는데도 흡연을 지속했다면 성량과 체력을 보장할 수가 없으며 그렇게 되면 라이브 활동을 많이 하는 데다 곡에 고음 파트가 많기로 유명한 GLAY의 활동에 상당히 치명적이었을 것이기에 금연을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판단이다.[4] 근데 이 기복은 테루의 역량이 부족하다기보다는 GLAY의 곡 자체가 고음을 내질러야 하는 부분이 유독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5] 세트리스트는 글레이와 히무로가 각각 자신들의 곡을 10곡가량 부르고 앵콜 무대에서 그들의 콜라보 곡인 ANSWER 와 히무로의 대표곡 SUMMER GAME을 함께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 구성이었다. 다만,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얽힌 것인지 아쉽게도 공연 전체의 영상화는 발매되지 않았다.[6] 이런 히무로와 GLAY의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후로도 타쿠로가 히무로에게 여러 번 가사를 제공하거나 히사시가 KEEP THE FAITH라는 곡의 편곡을 해 주는 등 일본 록 음악계의 선후배로서 교류를 이어갔다. 히무로의 12번째 이자 마지막 정규앨범인 "B"ORDERLESS는 초회 한정판 기준으로 13개인 수록곡 중 4개의 곡이 타쿠로의 작사였을 정도이다.[7] 또한 공식적인 드러머가 없는 GLAY에게 거의 전속 드러머라고 볼 수 있으며 사실상 제5의 멤버 취급을 받는 나가이 토시미츠(永井利光)는 히무로가 88년도에 밴드 BOOWY의 해체 이후 솔로로 데뷔했을 때 그의 솔로 활동 초기 시절 수년간을 그의 고정 드럼 세션으로 참여했으며 2000년도 이후에도 간간이 히무로의 서포트 멤버로서 참여한 경력이 있다.[8] 다만, 살아가며 느끼는 고뇌나 사랑하며 갖게 되는 복합적인 감정들을 섬세하게 풀어냄으로써 일반적인 사랑타령과는 다르다 볼 수 있다.[9]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타쿠로의 기타 연주를 들어보면 톤 메이킹에서 마츠모토스러운 느낌이 상당히 많이 묻어 나온다.[10] 그 특유의 개성적인 스타일은 그의 팬들도 마찬가지라 GLAY 팬들 사이에선 '헤어스타일만으로 누가 히사시의 팬인지 알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11] 이러한 경력과 활동 초의 화려한 의상, 그리고 L'Arc~en~Ciel과 경쟁했던 덕에 적지 않은 수의 리스너들은 GLAY를 비주얼계 뮤지션으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비교적(?) 정갈한 의상과 달라진 음악성으로 인해 현재는 비주얼계라는 인식보다 '일세를 풍미한 레전드 락 밴드'라는 인식이 큰 편이지만, GLAY가 비주얼계인가 아닌가 하는 설왕설래는 아직도 있는 편이다.[12] 참고로 메이저 1집 앨범 <SPEED POP>에도 RAIN부터 彼女の“Modern…”까지 수록되어 있다.[13] 현재는 우타다 히카루의 First Love와 B'z의 베스트앨범에 밀려 역대 3위로 밀렸다.[14] 한국에서는 결혼식을 먼저 올리고, 일본에서는 혼인신고를 먼저 하는데, 혼인신고를 통해 법적으로 부부가 된다는 사실에 더 비중을 둔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결혼식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정식 부부로 인정받고 또 축복받는 것을 중요시하여 심지어 하객 알바까지 돈주고 고용하기도 하는데, 일본에서는 연예인들조차 결혼식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이 정착되며 남에게 보여주기식의 허례허식에 빠져있는 결혼문화를 지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결혼식을 하더라도 소수의 가까운 지인만 초대하여 소박하게 열기도 한다. 자신도 친하지 않은 사람의 결혼식에 가는 것을 귀찮아하듯 타인에게 민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점차 개인주의 풍토가 확산되며, '하객알바'를 동원하면서까지 남의 눈을 의식하는 문화에 대해 비판의식이 커지며 그렇게 본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기가 부끄러운 결혼식이라면 아예 안하고 말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긴 하다. 하긴, 자신의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 단지 "돈을 벌기 위해" 결혼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 채 참석하여 박수치는 하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15] 대신 원작자가 컬트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16] 대신 드라마 타이업 주제가로 90년대의 한여름의 프로포즈, 타블로이드, 퍼펙트 러브와 2000년대의 사토라레, 2010년대의 격류, 빛의 아버지(드라마)처럼 꾸준히 곡을 제공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인기가 탄탄한 것은 이유가 있는 셈.[17] 그 인연인지 2019년 내한공연 때 공연장 입구에 자우림의 명의로 보내진 화환이 있었다.[18] 2000년대 활발히 활동하던 다음 팬카페의 활동도 이제는 사그라들어 거의 폐쇄된 수준. 네이버 팬카페 상황마저도 가입인사가 전부인 상태이다.[19] 사실 한국에서 일본 가수가 내한 공연을 가질 때는 객석을 대부분 일본인 원정 팬이 깔아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면 한국 팬만으로는 도저히 공연장을 채울 수 없다.[20] 수시로 손가락하트를 날리고 서툴지만 한국어로 '사랑해요', '고마워요', '함께 노래해' 등의 멘트를 치고, 수 차례 노래 가사에 '한국'을 끼워넣을 정도였다.[21] PV의 감독은 홍원기 감독이었는데 EXO, 볼빨간 사춘기, 마마무, 여자친구, 에이핑크, KARA 등 유명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다수 제작한 화려한 커리어의 소유자이며 국내 음악계에서 전설의 위치에 있는 서태지와 현 시점에서 월드스타로 유명한 BTS의 뮤직비디오 또한 제작한 바 있다.[22] 반대로 내한공연 당시에는 공연 중간 '쨔미스루 주세요!'라고 말하고서 스탭에게 건네받은 참이슬을 마시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23] 이때 소품으로 건네받은 참이슬은 일반적인 유리병이 아닌 페트병 버전이었으며 가득 채워진 새삥이 아니라 소량만 들어있었다. 이때 히사시가 마셨던 게 진짜 소주인지 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원샷을 한다 해서 공연에 지장이 갈 만큼 취기가 오를만한 양은 절대 아니었다는 점과 원샷을 때린 직후 희석식 소주 특유의 독함에 확 올라오는 히사시의 리얼한 반응 등을 보면 진짜 소주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24] 한국은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창작과 국제공동작업이 활성화 됐고 그 이전에는 영미권음악과 몇몇 중화권음악을 제외한 문화의 음악을 표절한 경우가 많았다. 그 중에서 일본어로 돼있는 일본음악과 영미권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부르는 영어로 된 음악, 영미권을 제외한 다른나라의 민요등이 주요 표절 대상이었다.[25] 원래 정산 등등을 다 마쳐서 줘야 되기 때문에 시일이 걸린다.[26] HAKODATE スナックペア 라는 곳이다. 각종 리뷰사진들로 봐서는 진짜이긴 한듯.[27] 실질적으로 GLAY의 최고 히트곡. 전 싱글 '口唇'가 히트하더니 이 곡이 처음으로 밀리언을 찍었고, 게다가 이 곡은 그 해 발매한 베스트 앨범 'REVIEW'의 판매량이 400만장을 넘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현재도 GLAY의 곡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곡.[28] 드라마 <사토라레> 엔딩곡[29] 이 이후론 라이센스는 더 이상 발매되지 않고 있는 듯.[30] GLAY Official shop G-DIRECT 한정[31] 수록곡 중 疾走れ!ミライ(질주하라 미래여)는 애니메이션 다이아몬드 에이스의 3번째 오프닝으로 쓰였다.#[32] 7년 8개월 만에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 싱글로 인해 GLAY는 21년 연속 오리콘 TOP10 안에 들었다.[33] 수록곡 중 COLORS는 극장판 파이널 판타지 XIV 빛의 아버지의 주제가로 사용되었다.[34] 드라마 파이널 판타지 XIV 빛의 아버지' 오프닝곡.[35] LOVE IS BEAUTIFUL 이후 10년만에 한국 라이센스로 발매되었다[36] GLAY Official shop G-DIRECT 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