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세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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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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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 해의 소앤틸리스 제도에 있는 화산섬으로 영국의 해외 영토다. 넓이는 102㎢고 인구는 5,000명을 조금 넘는다. 생활지의 80%가 해수면 기준으로 915m 높이인 수프리에르 힐스 화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공용어는 영어고 통화는 소앤틸리스 제도의 지역에 공통의 동 카리브 달러다. 수프리에르 힐스(Soufrière Hills, 915m)가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수도는 섬의 남서부에 있는 플리머스다. 하지만 1995년부터 1997년에 걸쳐 발생한 화산 폭발로 인해 현재는 브레이즈를 임시수도로 하고 있다.
2. 역사
1493년 11월 3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두 번째 항해 때 발견하고, 스페인에 있는 몬세라트 수도원[2] 을 기념해 산타 마리아 데 몬토세라테로 명명했다. 스페인은 정착하지 않고 대신 영국과 프랑스의 관심이 증가했다. 1625년 찰스 1세는 식민지 개척을 인정해 영국 특허장을 주었다.
1631년 박해를 받고 있던 아일랜드 천주교인들이 몬세라트와 안티구아에 강제로 이주하게 된다. 1632년 세인트 키츠에서 온 영국인 개신교 이주민들에 의해 영국의 식민지가 된다. 1649년 올리버 크롬웰이 크롬웰파 아일랜드 점령 기간동안 특히 드로이다 공성전에서 아일랜드에서 승리한 후 아일랜드의 정치범은 이 곳에 이송되었다. 1655년 크롬웰이 섬에 내왕해 환대를 받았다.
1768년 3월 17일 농장의 흑인 노예가 영국인 주인에게 반란을 일으키지만 실패로 끝났다. 1782년 미국 독립 전쟁에서 프랑스가 점령했다가 1782년 파리 조약으로 영국에 반환된다. 1958년 서인도 연방의 한 주가 되었다. 1962년 다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989년 9월 17일 허리케인 휴고의 직격탄을 받았다. 최대 풍속은 60m/s 이상으로 섬에 도달하면서 섬의 90% 이상의 피해를 주었다. 이 영향으로 비틀즈의 프로듀서로 알려진 조지 마틴이 소유하고 있던 레코딩 스튜디오 에어 스튜디오 몬트세랫이 폐쇄에 몰리는 바람에 다른 관광 산업이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1995년 7월 18일 수프리에르 힐스(Soufrière Hills)의 분화로 인구의 2/3가 해외로 피난했다. 영국은 구제를 위해 군함을 파견했다.
3. 화산 폭발
몬트세랫은 지각의 섭입대 바로 위에 위치해 있는데 북대서양 지각판이 서쪽으로 카리브 지각판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마찰열과 압력으로 인해 마그마가 생성되어 소앤틸레스 열도가 생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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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7월 18일 370년간 조용하던 화산에서 굉음이 들렸고 이러한 굉음이 계속되자 과학자들이 찾아와 플리머스에 임시 관측소를 설치했다. 데이터는 24시간 내내 전송되어 4개의 장치에 기록되었다. 산에서 증기가 분출되면서 최초의 폭발이 일어나더니 2달후 화산재가 2km까지 치솟았다. 섬의 북서부는 화산재로 덮이고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화산재가 그쳤다.
영국군을 동원해 산비탈의 주민 600여명을 8km 떨어진 임시 구호소에 이주시켰으나 개발중인 곳이어서 교회에 40~50명, 학교에도 수십명이 들어서는 등 살기에는 부적절한 곳이었다. 이후 남부의 경제 기반 80%는 섬의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출입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11월에 다시 화산 꼭대기에 돌과 재가 쌓여 용암 원정구를 만들고 점착성 용암이 쌓였다. 화산쇄설류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다시 북부로 대피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남부는 금지 구역이 되었다. 하지만 도로 통제가 허술해 주민들은 그냥 드나드는 상황이었다. 이후 화산에서 마그마가 분출되면서 폭발이 다시 일어나 영국 지질 조사국에서 조사팀을 보냈다. 용암 원정구[3] 가 뾰족하게 돌출되어 과학자들은 화산 비탈면에 경사계를 설치해 화산의 크기와 팽창 변화를 관찰했고 중반 북부 지역에는 영구 관측소를 건설했다. 이후 조사과정에서 화산 활동 주기가 2배나 빨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97년 6월 25일 큰 지진이 발생했고 오전 7시 긴급 상황을 알리는 방송이 섬 전체에 나가고 대피를 지시했다. 12시 45분 사이렌까지 울리며 대피를 지시했고 10분후 모스키토킷에서 용암 원정구가 붕괴되면서 화산이 폭발해 화산 쇄설류가 산의 비탈면을 타고 내려왔다. 화산의 폭발로 인한 열기 때문에 북동쪽 3km의 해리스 마을에서 주유소가 폭발할 정도였다. 화산 쇄설류가 3번이나 발생해 2번째에서 계곡을 뒤덮었고 3번째 쇄설류는 뒤덮인 계곡을 타고 내려가며 속도가 붙어서 마을을 뒤덮었다. 150가구와 4㎢를 파괴했고 총 19명의 사망자를 낸뒤 1달뒤 또 폭발하면서 플리머스를 강타해 1998년 플리머스를 포기하고 수도 기능을 브레이즈로 이전하였다.
공항 역시 타격을 받아서 원래 이 섬의 유일한 공항이었던 W.H.브램블 공항이 1997년 화산폭발의 직격탄을 맞아 파괴되어 버렸고 공항 일대가 출입 금지 구역에 포함되면서 복구마저 불가능해졌다. 때문에 2005년 북쪽의 제럴즈에 존 A. 오즈본 공항이 개항하기 전까지 배 또는 헬기로만 접근 가능했다. W.H.브램블 공항이 쓰던 IATA코드(MNI)는 존 A. 오즈본 공항에 이관되었다.
영국 정부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구제를 위해 지역 주민들에게 1998년에는 영국 국내 거주권을 주었고 2002년에는 영국 시민권을 주었다.
4. 지방 행정
3개의 행정 단위 (교구) 로 나누어져 있다.
- 세인트 피터 (Saint Peter)
5. 지리
화산 산악섬으로 카리브 판과 북아메리카 판의 충돌이 이 부근에서 일어나서 이 경계를 따라 일어나는 화산 활동이 소앤틸리스 제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고의 프리에르 힐스도 활화산으로 알려져 종종 분화를 일으켜 피해를 내고 있다. 산의 표면은 무성하고 있는 식물군과 아일랜드에서 초기 이주자를 따서 카리브 해의 에메랄드 섬 또는 서쪽의 에메랄드라고 불리고 있다.
6. 정치
몬트세랫은 입헌군주제 하의 의회가 존재하는 속령이고 몬트세랫의 의회는 입법 회의라고 불린다. 국가 원수는 현 영국 여왕이고 영국 여왕이 임명한 총독이 수장이다.
입법 회의는 주민들이 직접 선거로 선출한 9명의 의원들과 재무 장관과 법무 장관이 임명한 2명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전 지역은 한 개의 선거구로 이루어져 있다.[4] 선거는 5년마다 열린다.
정당으로는 원내에 인민 민주 운동여당과 변화와 번영을 위한 운동이 있다.
군사적으로는 영국이 방위를 수행하나 의전 부대인 몬트세랫군이 있다.
7. 경제
농업은 바나나 등이 많고 관광도 섬의 유망한 산업이지만 다른 카리브 해 섬들과 비교하면 뒤쳐진다. 화산 폭발의 영향으로 섬의 경제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 이외에도 이곳에 소재한 수출 기업들의 골재의 판매와 배송으로 수입을 얻고 있다.
8. 교육
몬트세랫에서 5세에서 14세의 아이들은 의무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후 17세까지의 교육은 자신의 선택으로 받을 수 있다.
2003년에는 몬트세랫 교육부의 승인을 받아 과학, 미술, 기술대학이 개교했다.
9. 교통
산악 섬이므로 많은 도로는 해안선을 따라서 있다. 동부에 있던 W.H. 브램블 공항(W.H. Bramble Airport)은 1997년의 분화로 파괴되었고 2005년에 섬의 북부에 제랄즈 공항(Gerald's Airport, 2008년 존 A 오스본 공항으로 개칭) 이 완성되었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는 오로지 배 또는 헬기로만 접근 가능했다.
10. 주민
아프리카계 흑인이 96%를 차지하고 혼혈 물라토와 백인 등도 소수지만 있다. 종교는 영국 성공회가 38%, 감리회가 28%이고 그 뒤로는 천주교를 믿고 있다.
화산 폭발이 일어나기 전인 1995년경에는 인구가 1만 여명에 달했지만 화산 폭발 이후 사람들이 대피를 하면서 인구는 점점 줄어들어 2002년경에는 4,400명으로 최저치에 달하게 되었지만 그 뒤로는 대피했던 주민들의 복귀로 인구 증가를 지속했다. 이중 남성은 2,726명으로 전체 인구의 53.1%를 차지하고 여성은 2,412명으로 전체 인구의 46.9%를 차지했다. 만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은 전체에서 26.9%, 15세에서 64세의 노동 가능 인구는 66.6%, 65세 이상의 노인인구는 6.5%다.
2015년 1월 1일부터 10월 4일까지 몬트세랫에서는 45명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27명이 죽었다.
11. 스포츠
축구 분야에서는 부탄, 아메리칸 사모아, 산마리노와 함께 '''FIFA랭킹 최하위권'''으로 유명했으나 쿡 제도,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지브롤터 등등의 신흥 약자들이 잇따라 출현하면서 2013년 12월 기준 187위로 올라가있는 상태. 최다 승리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를 상대로 이긴 7:0이다. 몬트세랫 축구 국가대표팀이 있다.
이외에도 크리켓, 서핑, 농구, 육상 등이 유명하다.
12. 기타
- 유럽에서의 신분증 도입한 일부 국가 한해서 여권 없이도 입국할 수 있는 제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