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젠키르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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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젠키르헨
Gelsenkirch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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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장'''

'''겔젠키르헨의 위치'''
'''행정'''
<colbgcolor=#e3001b><colcolor=#ffffff> '''국가'''
독일 [image]
'''시간대'''
(UTC+1/+2)
'''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현'''
뮌스터 현
'''인문환경'''
'''면적'''
104,94km
'''인구'''
259,645명(2019년)
'''인구밀도'''
2,474명/km²
'''홈페이지'''

'''정치'''
'''시장'''
프랑크 바라노프스키

1. 개요
2. 역사
3. 여담

'''Gelsenkir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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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도시.
루어 지방 북부에 있는 공업 도시로 1847년까지만 해도 인구 600명의 작은 촌락이었으나 1850년대 이후 철도 개통과 탄전 개발에 따라 발전하여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유명한 광업 도시로 발전하였다. 시간이 흘러 1970년대에 접어들어 석탄과 일반 산업의 수요가 줄어들고 주요 산업이던 탄광, 제철산업이 쇠락해가자 지역경제 회생을 위해[1] 기존의 공업 시설을 재활용하여 태양열, 태양광 전지 생산 공장과 연구소들을 세웠는데 이는 독일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이 외에 많은 친환경 에너지 산업이 발달하여 공업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자연 환경을 보존하고 있다.

2. 역사


처음으로 겔젠키르헨이라는 지명이 역사서에 등장한 것은 11세기 무렵이지만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굉장히 조그만 규모의 도시도 아닌 촌락 수준이었다. 하지만 1840년 이곳에서 석탄이 발견되고 곧이어 산업 혁명의 물결이 독일에 퍼져나가면서 이 조그만 촌락의 운명은 급변하게 된다. 이곳에서 채굴된 석탄을 쾰른, 에센, 도르트문트와 같은 주변의 공업도시들에 수송하기 위해 부설된 철도는 도시의 급성장을 가속시켰고 여기에 각종 중화학 공업 회사들이 건설되면서 1870년대에 이르면 겔젠키르헨은 독일 제국 내 중공업산업의 허브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러한 위치는 제1차 세계 대전을 거쳐 바이마르 공화국나치 독일 시기에도 변함이 없었고,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는 기존의 석탄 채굴과 더불어 정제를 비롯한 석유화학 시설이 겔젠키르헨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예상가능하겠지만, 그 덕분에 2차대전 내내 쑥을 재배하게 되고 종전 무렵에는 도시의 75%가 파괴된다. 종전 후 빠르게 재건된 겔젠키르헨은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서독의 경제 부흥과 더불어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간다.[2] 하지만 도시의 핵심 근간 산업이었던 광업은 1960년대 이후로 접어들면서 빠르게 채산성이 떨어졌고 이에 따라 많은 탄광이 폐광되면서 시의 경제 역시 휘청거리기 시작한다.[3]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대응으로 시 측은 태양 에너자를 비롯한 각종 친환경 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효과를 거두어서 예전만큼의 위용은 아니더라도 루르 공업 지대의 중요 도시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3. 여담


  • 많은 첨단 기업들을 유치하고 있으며 투자도 매우 활발한 도시이다. 라이프치히, 칼스루에, 브레멘과 함께 독일 4대 시범 산업 단지의 모범도시로 선정되었다. 오늘날 독일 내 최대 규모의 태양 에너지 발전소가 있는 곳도 바로 이 곳.
  • 원래 독일 내에서 유대인 공동체가 꽤나 활발히 돌아가는 동네였는데, 크리스탈의 밤홀로코스트를 거치면서 싸그리 박살났다. 그래도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몇몇 유대인들이 다시 정착하고, 나치에 의해 방화된 시나고그도 재건됐는데 2014년 무렵 시나고그에 반유대주의 그래피티가 발견되어서 독일 전역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 흑역사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에 의하여 부헨발트 수용소의 일부[4]가 겔젠키르헨 근처에 설치된 것.
  • 축구팀으로 독일 분데스리가의 명문 팀 FC 샬케 04가 있다. 탄광 도시였던 겔젠키르헨을 연고지로 하다보니, 팀의 애칭은 Knappen (광부들)이다. 게다가 샬케04의 선수들은 탄광체험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샬케04의 홈구장인 펠틴스 아레나의 터널은 광산 터널을 연상시키게 하는 모양이다.
  • 은근히 이름난 축구인들이 많이 난 도시인데, 선조격인 프리츠 슈체판을 시작으로 마누엘 노이어, 메수트 외질, 일카이 귄도간, 하밋 알틴톱/하릴 알틴톱 쌍둥이 형제 등이 여기 출신들이다. 하다못해 독일의 차세대 에이스로 손꼽히는 율리안 드락슬러도 겔젠키르헨 바로 옆에 있는 글라트베크 출신이다. 샬케의 우수한 유스 시스템을 감안하면 결코 우연은 아닌 셈.

[1] 1970~1980년대에 독일 내에서 실업률이 가장 높은 도시가 바로 겔젠키르헨이었다.[2] 그렇지만 애초에 주요 산업이 광업과 중공업이라서 '독일 내 최악의 공해도시'로도 악명을 떨쳤다고(...)[3] 얼마나 경제가 휘청거렸는지를 알 수 있는 단적인 자료로 인구수를 들 수 있는데 시가 한창 리즈 시절이었던 1960년대에는 40만에 육박했던 주민들이 불과 20년이 지난 1980년대에는 20만 후반으로 줄어들었다.[4] 여성 수용자들을 수감하는 기능을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