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트문트
[clearfix]
1. 개요
[image]
[image]
[image]
[image]
[image]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위치한 도시. 루르 공업지역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곳으로, 현재 독일 내에서 8번째로 큰 도시이다.[1]
2. 역사
정확히 언제부터 도르트문트 지역에서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는지는 추측에 의존하고 있지만, 문서상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서기 9세기로, 트로트마니(Throtmanni)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나타난다.
중간에 한번 화재로 도시 대부분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도시는 꾸준히 발전해서 12세기 무렵 바르바로사(Barbarossa) 프리드리히 1세에 의해 자유 도시로 지정받은 이후 한자동맹의 일원이 되면서 라인 강 일대의 늘어선 도시 중에서도 핵심적인 도시로 자리잡았다. 이 시기 지명은 도르프문데(Dorpmunde). 이후 베르크 공국이라는 자그마한 공국의 영역에 포함되어있다가 빈 회의를 통하여 프로이센 왕국의 행정구역 중 하나인 베스트팔렌 밑으로 들어갔다. 철도와 해운이 편리한 교통의 요충지에 자리잡아 상업이 발달했고, 산업혁명 당시에는 주변 지역의 탄전을 이용해 광공업, 특히나 티센크루프로 대표되는 석탄과 철강업의 도시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도시 특성상 노동자와 사민당이 도르트문트에 굳건히 뿌리를 내렸고, 이들은 제1차 세계 대전 패배 직후인 1920년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의 신생 바이마르 공화국을 전복시키기 위해 자유군단이 일으킨 카프 폭동에 대항하여 자발적인 민간 군사 단체를 조직하기도 했다.
이후 나치당이 대두하자 이들 노동자 계층은 완강히 나치에 저항했지만[2] 나치의 가혹한 탄압으로 인해 결국 저항적인 움직임은 소수의 용기있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지하 저항 운동의 수준으로 봉쇄되었다. 나치의 집권 이후 유대교 회당인 시나고그가 방화되는가 하면, 선천적 장애인 말살 계획인 T-4 프로그램이 부분적으로 실행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도르트문트의 흑역사.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상대적으로 영국에서 가까운 거리상의 이득과 산업의 중심지라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대전기간 내내 연합군 공군의 폭격대상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 70% 가량의 시민들이 집을 잃고, 도심의 98%가 파괴됐을 정도.[3] 제2차 세계 대전이 끝으로 치닫던 1945년 4월 미군이 도르트문트를 점령했다.
종전 이후 도르트문트는 여전히 독일 제조업의 중심지였기에 1950년대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서독의 경제부흥이 시작되면서 빠르게 활기를 되찾았고, 오늘날까지도 독일 내 최고의 공업 도시 중 하나로 남아있다.
3. 사회
3.1. 경제
전통적으로 공업지대였던만큼 오늘날에도 많은 회사들의 본사가 도르트문트에 있다.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지그날 이두나.[4] 또한 한국에서도 펌프로 꽤 유명한 윌로펌프도 도르트문트에 있다. 또한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들이 경제의 근간을 지탱하는 독일 경제의 특성에 따라, 많은 제조업 계열의 견실한 중소기업들이 도르트문트에 자리잡고 있다.
도르트문트는 예전에 탄광 도시였으나, 지하자원을 모두 캐낸 이후로 몰락해버리고 유령 도시가 되었다. 현재는 지역 기반 기업은 주로 제조업이다.
3.2. 정치
노동자들의 도시인만큼, 19세기 중후반 이후로 사민당의 아성과 같은 곳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단 한번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사민당이 여당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독일 내에서도 도르트문트는 Herzkammer der SPD(사민당의 심장부)라고 불린다.
3.3. 교통
공업의 중심지인만큼 교통망이 잘 뚫려있다. 아우토반은 당연히 기본적으로 탑재되어있는 곳이고, 독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기차역 중 하나인 도르트문트 중앙역이 있다. 거기에 강을 끼고 있는 만큼 수상 교통도 발달했다. 게다가 국제공항인 도르트문트 공항도 있다. 그야말로 육해공 완비.
- [image]
도르트문트 중앙역 (Dortmund Hauptbahnhof)
루르 지방에서 가장 큰 기차역이자, 전 독일에서는 세 번째로 큰 기차역이다. 이 위로는 쾰른 중앙역, 함부르크 중앙역 딱 2개밖에 없다. 하루 이용객이 13만 명, 경유 열차가 680편에 달한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파리-에센 탈리스의 시종착역이다.
루르 지방에서 가장 큰 기차역이자, 전 독일에서는 세 번째로 큰 기차역이다. 이 위로는 쾰른 중앙역, 함부르크 중앙역 딱 2개밖에 없다. 하루 이용객이 13만 명, 경유 열차가 680편에 달한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파리-에센 탈리스의 시종착역이다.
- [image]
도르트문트 공항 (Dortmund Airport)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덕분에 국제적인 인지도는 공기에 가깝지만, 독일의 지방 중소도시에서 이 정도면 꽤나 큰 공항에 속한다. 그리고 유럽 지역 한정이지만 국제선도 운영한다. 다만 도르트문트 공항은 비교적 소규모 공항이라 저먼윙스같은 저가 항공사들만 이용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덕분에 국제적인 인지도는 공기에 가깝지만, 독일의 지방 중소도시에서 이 정도면 꽤나 큰 공항에 속한다. 그리고 유럽 지역 한정이지만 국제선도 운영한다. 다만 도르트문트 공항은 비교적 소규모 공항이라 저먼윙스같은 저가 항공사들만 이용할 수 있다.
- [image]
도르트문트 항 (Dortmund Port)
내륙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산업도시이기 때문에 항구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 항구 건설이 가능했던 이유는 베스트팔렌과 니더작센을 거쳐 북해로 흐르는 엠스 강(Ems River)이 있었기 때문. 엠스 강을 토대로 운하 사업을 진행했고, 북해 연안의 도시인 엠덴과 연결되는 도르트문트 엠덴 운하(Dortmund-Emden Canal)를 건설하면서 해상 사업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내륙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산업도시이기 때문에 항구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 항구 건설이 가능했던 이유는 베스트팔렌과 니더작센을 거쳐 북해로 흐르는 엠스 강(Ems River)이 있었기 때문. 엠스 강을 토대로 운하 사업을 진행했고, 북해 연안의 도시인 엠덴과 연결되는 도르트문트 엠덴 운하(Dortmund-Emden Canal)를 건설하면서 해상 사업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4. 여담
- 중공업의 발달과 함께 노동자의 음료인 맥주 시장도 성장했는데, 특히 수출용으로 주로 제조된 라거 계통의 엑스포트 맥주가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지역 특산 맥주로는 Brinkhoff's No.1, Hövels, DAB[5] 가 있다.
- 인근 다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도시들과 달리 별다르게 관광할 거리[6] 는 없는 심심한 동네지만, 전반적으로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고 치안도 좋아 살기 괜찮다. 도시 남부의 베스트팔렌 공원(Westfalenpark)이라는 큰 규모의 공원이 있으나 1.5유로(6세~)의 입장료가 있다.
- 도르트문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상주하고 있으며 2002년 개관한 도르트문트 콘체르트 하우스에서 수준 높은 연주들을 상시 공연하니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홈페이지 1998년 바이올리니스트 김신경 씨가 이곳의 수석악장(1. Konzertmeister)으로 임명되며 한국인 최초로 독일의 오케스트라에 종신직 악장이 되었다. 현재에도 이곳에 재직 중이며 뒤셀도르프의 로베르트 슈만 음악원에도 출강 중이다.
- 분데스리가의 축구 구단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이 도시를 연고지로 두고 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홈경기장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서 경기가 열리는 날은 도르트문트 인근 도시에서 구경온 축구팬들로 중앙역이 미어터진다.
- 지그날 이두나 파크말고 다른 좋은 관광지로 축구 박물관정도가 볼만하다. 독일이 원체 축구로 유명한 국가일 뿐더러 독일 축구 협회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이라서 전시물이 상당히 알차므로 축구 팬이라면 꼭 잊지말고 들르는 것을 추천한다. 중앙역 바로 앞에 있으므로 찾기 쉽다.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유스 출신이자 현재 클럽의 주장인 마르코 로이스가 이곳 출신이다. 그 외 도르트문트 소속 선수였던 케빈 그로스크로이츠 역시 이곳 출신.
- 도르트문트 원더러스 야구팀이 도트트문트에 연고지를 두고 있다.
[1] 2020년 단일시 인구수 기준으로, 사실 6위~10위는 편차가 크지 않아 순위 변동이 잦은 편이다.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쾰른, 프랑크푸르트, 슈투트가르트 등 전통적인 대도시들을 제외하면 도르트문트는 독일 내 중견급 도시 중에선 가장 큰 규모라고 볼 수 있다.[2] 노동자 계층은 대공황 이후로도 더 급진적인 공산당으로 지지를 옮겼으면 옮겼지, 대체로 나치당에 적대적인 세력으로 남아서 도르트문트 지역의 나치당과 게슈타포들의 골치를 썩혔다.[3] 심지어 전쟁이 끝난지 70년이 다 되어가던 2013년 3월에 불발탄으로 남은 1.8톤 짜리 블록버스터폭탄이 발견되어서 긴급 대피령이 내려지기도 했다.http://www.dw.com/en/thousands-evacuated-in-german-city-for-wwii-bomb-disposal/a-17201409[4] 독일 2위의 보험 회사이다. 참고로 1위는 한국에도 진출한 알리안츠 생명. 도르트문트의 대표적인 지역 기반 대기업이다. 축구팬들에게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홈구장 지그날 이두나 파크로도 유명하다.[5] 한국의 일부 대형마트에서 판매한다.[6] 유럽인 만큼 오래된 교회같은 게 있지만 관광지로는 부흥받지 못하고 있다. 독일어판, 영문판 위키피디아에서도 볼거리 제1순위에 쇼핑센터를 넣어놨다. 트립어드바이저에는 도르트문트를 연고지로 하는 축구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홈구장인 지그날 이두나 파크가 1순위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