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지
[clearfix]
1. 소개
高仙芝
고구려 유민 출신의 당나라 장군.[2]
2. 생애
고(高)라는 성 때문에 고구려 왕족의 후손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으나 딱히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남아있지 않다.
당나라는 해외의 여러 나라 및 이민족들과 활발한 무역 및 상업 활동을 벌였고[3] 무역을 하다가 여러 민족이 당나라 내로 이민왔기 때문에, 이민족 출신 군인들을 장군으로 기용하는 '''번장제도'''가 있었다. 고선지의 아버지 고사계(高斯界)가 당나라의 번장이었으며(같은 시기에 같은 고구려가 당나라와 그에 연합한 신라때문에 멸망하고 당나라로 이주한 왕사례도 당나라 장수로 크게 출세했었다), 고선지는 그러한 아버지의 지위에 따라 음보로 등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4]
본래 고향은 하북 밀운군으로 북경 근방이나 730년경의 튀르크 전쟁 때 이주한 걸로 추측된다. 일찍이 장군이 되어 크고 작은 전공을 세웠으며, 튀르크와 당나라의 전쟁을 진두 지휘하였다. 747년부터 당나라가 토번과 그 돌궐 동맹군을 무찌르고 현 신강 지역에 안서도호부를 설치하고 돌궐계 부족들과 토번의 당나라 공격을 연전연승으로 지켜내었다.
이러한 전공으로 당시에 명성이 높았으며, 시성 두보가 고선지 장군을 찬양하는 시를 짓기도 했다. 정확히는 그의 애마를 칭찬하는 시다. 아마 한혈마였던 듯하다. 시 자체는 749년 지어졌으나 이 때 고선지는 현 신강 지역에 나가 있었고, 그 이전 고선지가 별로 출세하지 못한 시점에 두보가 그를 만났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의 마지막 구절로 볼 때 기약 없는 고선지의 출세길을 한탄하면서, 역시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 자신의 신세도 함께 한탄한 시이다.
安西都護胡靑驄(안서도호호청총): 안서도호의 서역산 푸른 준마
聲價忽然來向東(성가홀연래향동): 명성을 떨치며 홀연히 동쪽으로 왔네
此馬臨陣久無敵(차마임진구무적): 이 말은 전장에서 오래도록 무적이었고
與人一心成大功(여인일심성대공): 주인과 한 마음으로 큰 공을 세웠네
功成惠養隨所致(공성혜양수소치): 공을 이루니 은혜롭게 보살펴져 가는곳마다 따라다니니
飄飄遠自流沙至(표표원자류사지): 표표히 먼 사막으로부터 이르렀다네
雄姿未受伏櫪恩(웅자미수복력은): 씩씩한 자태는 말구유에 엎드려 은혜입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猛氣猶思戰場利(맹기유사전장리): 사나운 기상은 아직도 전장의 승리를 생각하네
腕促蹄高如踣鐵(완촉제고여부철): 발목 짧고 발굽은 높아 쇠를 딛고 서있는것 같으니
交河幾蹴層氷裂(교하기축층빙렬): 교하에서 몇번이나 겹친 얼음을 발로 차서 깨트렸던가?
五花散作雲滿身(오화작산운만신): 오색 꽃무늬가 온 몸에 구름처럼 흩어져 있어
萬里方看汗流血(만리방간한류혈): 만리를 달리면 바야흐로 피땀 흘리는 것을 보겠네
長安壯兒不敢騎(장안장아불감기): 장안의 장사들도 감히 올라탈 엄두를 못내니
走過掣電傾城知(주과철전경성지): 번개보다 빨리 달려감을 온 성에서 다 알고 있기 때문이라
靑絲絡頭爲君老(청사락두위군로): 푸른 실로 갈기 땋고 주인을 위해 늙어가니
何由却出橫門道(하유각출횡문도): 어찌하면 다시 전쟁터로 길을 나설수 있을까?
高都護驄馬行(고도호총마행), 두보, 749년작.
2.1. 탈라스 전투
751년 아바스 왕조가 세력을 동쪽으로 확장하자 당나라는 소그디아나를 침공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소그디아나의 지원 요청을 받은 아바스 왕조가 소그디아나와 연합하여 고선지 장군의 침공에 대비하자, 고선지는 당나라에서 파견한 병력 및 동맹국의 병력들을 소집하여 탈라스 대평원으로 진군하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탈라스 전투인데 카를룩군이 압바스 왕조에 참가하면서 수적인 열세에 밀리며 완전히 패배하였고, 간신히 몇 명만 살아남았다.[5]
2.2. 안사의 난과 죽음
755년 안사의 난이 발생하자 부원수로 임명되어 정부군을 지휘하였다. 고선지는 안록산[6] 의 군대와 대치하는 와중에 동관(潼關)에서 안록산 군의 매복 공격을 피하기 위해 대기하다가 변령성의 모함을 받아 참수당했다.[7]
신당서(新唐書) 고선지전(高仙芝傳)은 고선지와 봉상청의 최후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참고로 봉상청은 고선지가 발탁한 인물로 절름발이라 태생적으로 군직을 맡기에 문제가 있었으나, 일찍이 발탁되어 그럭저럭 실력을 인정받았고, 고선지가 탈라스 전투 패전으로 물러난 이후 고선지의 직위를 물려받았다. 안사의 난에서도 고선지군보다 먼저 안녹산군을 저지하기 위해 투입되었으나 패배해서 후퇴한 상황이었고, 이로 인해 감군 변영성의 모함으로 고선지보다 앞서 처형되었으며, 이어 고선지도 처형되었다.
사실 고선지로서는 안녹산의 서진을 도저히 막을 수 없어서 일단 섬주를 버리고 전략적인 위치로 후퇴하며, 적에게 노획될 가능성이 있는 무기를 파묻고 창고를 직권으로 개방해서 백성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준 것이 고선지의 죄라면 죄이다. 즉 임의로 상부 명령없이 소개작전을 펼쳤다는 것, 하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군이 무너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처형은 지나친 감이 있다. 충신이라는 이름하에 고선지의 소개명령을 거부하고 상소를 올려 고선지를 죽게 한 환관 변영성은 수도 장안 동쪽에 있는 동관을 지키고 있다가 후에 안녹산이 오자 직접 동관을 바치고 투항한다. 당 현종에게 충신 나불거리던 주제에 결국 진짜 배신자는 변영성 자신. 물론 나중에 난이 진압된 뒤, 변영성은 잡혀서 능지처참으로 끔살당해 고선지와 봉상청을 모함해 죽음으로 몰고 가고 조국을 배신한 댓가를 된통 치른다......황제가 대노하여 변영성(邊令誠)에게 곧 군중(軍中)에서 베어 죽이게 했다. 변영성은 봉상청을 베어 죽여 시체를 거친 대자리에 싸서 버렸다. 고선지가 다른 곳에서 도착하자 변영성은 도수(刀手) 100명에게 자신을 따르도록 지시한 뒤 고선지에게 말하기를, "대부(大夫)에게도 역시 황명이 있다."고 했다.
.....고선지가 이내 급히 내려가 말하기를, "내가 후퇴한 것은 죄를 지은 것이니 그 때문에 죽는다면 어찌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러나 나보고 창고의 식량을 도둑질했다는 것은 모함이다."라고 하고, 다시 변영성에게 이르기를, "위로 하늘이 있고, 아래로 당이 있고, 삼군(三軍)이 모두 여기 있는데, 어찌 임금께서는 이 일을 모르시는가?" 했다.
또 휘하의 사졸들을 돌아보면서 말하기를, "내가 너희를 모집했던 처음 의도는 적을 쳐부수고 나서 큰 상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적의 기세가 이 순간에도 성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미루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동관을 고수하고 있게 되었다. 내게 죄가 있다면 너희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너희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원통하다고 외쳐라!"라고 하자, 군중에서 모두가 "원통하다!"고 크게 외쳤는데 그 소리가 사방에 진동했다.
고선지가 봉상청의 시체를 보고, "그대는 내가 발탁했고, 또 나와 절도사를 교대했다. 지금 그대와 더불어 죽으니 이는 모두 운명이 아니랴!"하면서 죽음을 의연히 받아들였다.
중국사에서도 고선지를 모함해 죽음으로 몰고 간 탓에 안사의 난이 더 길게 이어져갔다는 분석도 많다.
국내의 경우 남북국시대를 배울 때 거의 반드시 언급되는 인물이다. 고등학교 세계사의 경우 그 유명한 탈라스 전투가 중요하기 때문에 언급되는 인물, 그러나 '''탈라스 전투에서 패배했다'''가 설명의 전부라서 대부분 듣보잡취급한다. 간혹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고선지가 언급되기도 한다.
지배선이라는 역사학자가 이정기와 함께 엄청나게 미는 인물이다. 국내에 나온 고선지 관련 서적은 전부 지배선 저작이다.
3. 매체에서
국내에서는 초롱이의 옛날여행에 등장한 이후 역사스페셜 이후 드라마로 제작하려고 했으나 취소되고 대신 KBS 대하드라마 대조영에서 어린 시절 모습으로 잠깐 등장시킨 게 다다. 동명천제단이 공중분해되고 이문에게 포로로 잡혀 당나라 장안성에 압송되어 저잣거리에 묶여있는 대조영에게 물을 줬다가 당나라 장수에게 얻어 맞는다.
80년대 대한자유총연맹에서 발간하던 잡지인 '어린이세계'[8] 에 고선지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한 시대물이 연재된 적이 있는데, 무려 '''순정만화'''다. 고선지는 흑발 미남, 그리고 변영성은 금발 미남으로 등장하는 작품이지만 괴작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는 변영성이 고선지의 죽마고우로 설정되어 있고 봉상청은 고선지의 심복이며, 최종화에서는 우정을 발휘하여 용모가 더러운[9] 봉상청의 흉을 감추기 위해 봉상청과 고선지의 참수된 목에서 얼굴가죽을 벗겨 해골로 만들어 효수하는 것으로 나온다.
90년대 후반, 대만에서 나온 한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나오는데 능력은 좋으나 난폭하여 결국 이로 인해 억울하게 모함을 당해 죽는다고 나오기도 했다.(V챔프에서 간략하게 소개한 기사에서 나오던 게임이었음)
윤승운 화백이 그의 일대기를 만화화한 적이 있다.
드라마화하려는 계획은 있었으나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고, 기황후처럼 한국사와는 거의 관계없는 사람이라 당시 중국의 정세를 자세히 설명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양귀비와의 썸씽 같은 비역사적인 요소도 들어가야 하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