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착어
膠着語 | Agglutinative language
1. 개요
'''교착어''' 또는 '''첨가어'''는 언어의 유형학적 분류 가운데 하나로, 어근에 접사가 결합하여 의미가 변화하는 형태의 언어이다.
2. 특징
언어유형학(linguistic typology)에는 언어를 분류하는 데 사용하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어절의 형태론적 구조(morphological structure)에 따른 언어의 분류다. 형태론적 구조에 따라 언어를 분류하면 세계 언어는 교착어, 굴절어, 고립어, 포합어의 네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한 언어가 네 특성 중 두 개 이상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도 가능하다.[1]
교착어란 하나의 낱말(엄밀히는 하나의 어절)이 하나의 어근(root)(혹은 어간(stem))[2] 과 각각 단일한 기능을 가지는 하나 이상의 접사(affix)로 이루어져 있는 언어를 말한다. 어간과 접사 사이의 경계를 분명히 설정할 수 있고, 하나의 접사가 대체로 하나의 기능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언어를 교착어라고 한다.
이 교착어에만 있는 품사는 바로 조사인데 체언 뒤 혹은 앞에 조사가 붙는 것 또한 전형적인 교착어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2.1. 한국어의 예
쉬운 예로 우리말 "잡히시었겠더라(잡히셨겠더라)"를 생각해 보자.
각 파생+굴절 접사의 기능이 앞에서부터 피동, 주체 높임, 과거 시제, 추측, 전달임을 알 수 있다. 각각의 쓰임새가 분명하기에 여러 접사가 줄줄이 붙는다.
2.2. 음운론적 자립성과의 관계
어간의 음운론적 자립성은 교착어를 변별하는 기준이 되지 않는다. 한국어의 용언(동사, 형용사) 어간은 음운론적으로 자립적이지 않다. 즉 독자적인 운율 구조를 형성하지 못하며 일상 발화에서 단독으로 쓰이는 일이 없다. 그러나 어간에 각각 하나씩의 기능을 가진 어미가 여럿 결합되어 어절을 이루기 때문에 교착어적 특성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어간의 음운론적 자립성은 오히려 고립어에 두드러지는 특성이다.
따라서 한국어 등의 교착어와 라틴어 등의 굴절어를 비교하여 체언(명사, 대명사, 수사)'''만'''의 음운론적 자립성을 들어 교착어의 특징을 설명하는 것은 오류이다. 물론 상당수의 교착어에서 체언이 음운론적으로 자립적이고, 상당수의 굴절어에서 체언이 음운론적으로 의존적이기는 하나, 이것은 유형학적, 확률적 함의 관계(implication)에 해당하는 것으로 교착어나 굴절어의 정의와는 관계없다. 용언 어간의 경우 교착어와 굴절어 모두에서 음운론적 비자립성을 보이기 때문.
2.3. 굴절어와의 차이
교착어와 달리 굴절어는 어간과 접사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하나의 접사가 여러 개의 기능을 겸하고 있으며 하나의 어간에 여러 개의 접사가 붙는 일이 매우 드물다. 그래서 굴절어를 융합어(fusional language)라고도 한다. '굴절'이라는 단어는 곡용과 활용을 포괄하는 단어로 다소 넓게 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협의의) 굴절어와 교착어 모두 (광의의) 굴절어에 들어가고, (협의의) 굴절어를 융합어라고 부른다.
굴절어와 교착어는 얼핏 보면 비슷해보이나 실제로는 상당히 다르다. 굴절어는 기본적으로 형태를 바꾸어 의미를 완성시키고, 교착어는 접사를 붙여서 의미를 완성해나간다. 한국어를 모어로 쓰는 한국인들은 '하다', '했다', '한' 등의 어형을 볼 때, 비록 뜻을 나타내는 '하-'와 그 뒤의 '-였-', '-(으)ㄴ' 등이 서로 의존적일지언정 분명히 구별되는 영역임을 인지한다. 하지만 굴절어 화자에게는 그렇지 않다.
교착어인 한국어에서 굴절어의 특징이 드러나는 예시를 들자면 '나'와 '내'를 들 수 있겠는데, '내가'의 '내'를 우리가 '나'와 'ㅣ'로 분리해 인식하지 않는다. '내'는 이 자체로 단일한 형태일 뿐, '나'와는 그 자체로 구별되는 것이다. 한국어의 큰 구조는 교착어임에도 일부 예외가 발생하는 것으로 어원적으로 '내'는 '나'에 중세의 주격 조사 'ㅣ'가 붙어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네'도 동일. 즉 중세 한국어나 그 이전까지는 구별되는 영역임을 인지하고 사용했으나 점차 희석되어 그것이 표면상으로는 드러나지 않게된 것이다. 물론 표면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뿐이지 '내'에는 엄연히 어근인 '나'가 안에 들어있으며, 이러한 특징 몇가지가 있다고해서 한국어가 교착어가 아닌 것은 아니다.
반면 한때 굴절어였다가 현재는 고립어가 된 영어를 예로 들면, 영어 화자들이 'have'와 'has'를 볼 때 'ha-'와 뒷부분을 분리해서 인식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눈다면 영어 모어 화자들 뿐만 아니라 언어학자들도 순 어거지로 나눴다는 생각을 한다. 바로 이것이 교착어와 굴절어의 근본적인 인식상의 차이이다. 이걸 조립에 비유하자면, 교착어가 나사 같은 걸로 대충 조이는 느낌이라면 굴절어는 아예 용접을 해버리는 느낌이다.
재밌는 점은 영어도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약간의 예외가 존재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한국어는 태생부터 교착어였는데 언어 사용에 있어서 편리함을 위해 줄여 쓰던 것이 원형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교착어의 성질을 일부 잃은 어형이 존재한다면, 영어는 태생은 굴절어였기 때문에 고립어가 되었음에도 그 특징이 살아남은게 있다는 점이다. 위의 'have'와 'has'도 그런 예시들 중 하나이며, 또 다른 예시로는 인칭대명사의 격에 따른 활용을 들 수 있다. 'I like you(나는 너를 좋아한다)'와 'You like me(너는 나를 좋아한다)'를 비교해보면 'You'는 위치에 따라서 주격이 되거나 목적격이 될 뿐 그 형태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고립어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형태가 아닌 위치가 격을 만드는 것. 하지만 'I'와 'me'를 비교해보면 고립어임에도 격에 따라 형태가 변화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굴절어의 특징으로, 만약 영어가 순수한 고립어였으면 'You like I'가 올바른 문장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비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언어학에서는 '''모어 화자들의 인식'''이 굉장히 중요하다. 문법성 판단을 예로 들면, 특정 단어를 특정 문형에서 특정 형태로 쓰는 것이 정문인지 비문인지 가르는 것은 결국 모어 화자들의 인식이다. 인공어를 제외하면 문법이라는 것이 결국 모어 화자들의 관습을 통해 귀납적으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특정 언어의 최고 권위자는 그 언어를 연구하는 저명한 학자가 아니라 그 언어를 실제로 쓰고 생활하는 모어 화자 집단이다. 근본적으로 이 '인식상의 차이'라고 하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그들의 언어 속에 담긴 미묘한 근본적인 어떤 자질에서 비롯되기 때문이고, 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들을 탐구하고 밝혀서 명료화하고 객관화해 설명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언어학자들의 일 중 하나이다.
즉, 교착어와 굴절어가 얼핏 개념만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고 그저 유사한 것을 설명만 달리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 엄청나게 큰 차이를 보인다. 교착어와 굴절어 차이 교착어를 굴절어 관점에서 접근하고, 굴절어를 교착어 관점에서 접근하려 하면 정말로 큰 코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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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절어 화자들에게는 교착어가 바로 위의 사진처럼 보인다. 접사를 붙여나가는 과정을 모두 굴절로 이해하려 들기 때문에 (쉽게 말해 시제, 상, 법에 따른 동사 변화) 상당히 이상해보이는 것. 서양에서는 20세기까지만 해도 교착어에 해당하는 언어들은 "이상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4] 현재도 다민족국가인 미국조차 영국계 노인들의 경우는 교착어를 접하면 굉장히 이상하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는 대놓고 멸시를 하는 것보다는 그저 교착어들 자체를 "외계적"으로 판단하는 선입견에 가깝다. 포합어는 현재까지도 이런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는 걸 생각해보면 될 듯.
21세기 들어서는 사정이 현저히 개선되어 있다. 이는 한국어, 일본어 등의 교착어 언어가 20~21세기를 전후해서 널리 알려진 영향도 있을 것이다.
3. 교착어 목록
한국어, 일본어, 몽골어, 튀르크어족(우즈벡어, 카자흐어, 터키어 등), 만주어, 마인어[5] , 바스크어, 헝가리어, 티베트어[출처] , 핀란드어, 에스토니아어, 페르시아어[6] , 스와힐리어[7] 등이 대표적인 교착어로 알려져 있다.[8] 물론 어떤 경험적 범주나 그렇듯 구성원의 성질이 모두 동질적이지는 않으며, 교착어의 전형적인 특성을 얼마나 보여주는가의 정도도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한국어나 일본어에는 외형적인 주격 조사가 있지만 터키어에는 없는 등의 차이가 있다.
4. 언어 순환 진화설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Morphological_typology#Cyclical_evolution
언어학자 딕슨(Robert Malcolm Ward Dixon)에 따르면 언어는 시간이 지나면서 유형론적으로 진화하는데, 이것이 주기적인 변화를 보인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언어는 굴절어→고립어→교착어→굴절어 순서와 같은 순환 진화를 보이는데, 지금 굴절어인 언어들도 시간이 지나면 고립어가 될 것이고, 고립어는 다시 교착어로 변화하며, 교착어는 굴절어의 특성이 점차 생기는 등의 진화를 겪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영어는 과거에 굴절어였으나 현재는 거의 고립어이고, 많은 유럽의 언어들이 러시아어 등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예전에 비해 굴절이 많이 퇴색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중국어는 유서 깊은 고립어이지만 복수형(们), 완료(了) 등에서 교착어적 특성이 조금씩 나타난다. 그리고 한국어의 어미 중 'ㄴ데'와 같이 의존명사 구문인지 어미인지 헷갈리는 것들은 중세 한국어 시절까지만 해도 'ㄷㆍ' 등이 쓰인 의존명사 구문이었고, '-습니다'와 같은 어미 역시 본래 제각기 다른 어미들이 쓰인 '-사-옵-나-이-다'였으나, 현대에 들어서는 형태와 기능이 융합해 하나의 어미로 처리되었다.
5. 기타
교착어는 여러 접사가 붙기 때문에 가상의 접사를 말버릇처럼 붙이는 게 매우 쉽다. 흔히 일본 서브컬쳐 작품에서 캐릭터가 말끝마다 반복되는 요소를 붙이는 것을 한국어로는 쉽게 번역할 수 있는데 이는 한국어와 일본어가 모두 교착어이기 때문이다. 반면 영어로는 그 표현을 살리기가 쉽지 않은데, 영어가 사실상 이런 형태소의 부가와는 거리가 먼 고립어이기 때문이다. (영변환) 그렇기 때문에 영어로 번역할 경우에는 이러한 특징들을 라임을 붙이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번역해버리는 편이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언어라는 것이 칼같이 분류되는 것이 아니며, 시간이 지나며 그 유형이 변화하기 때문에 고립어인 중국어에서도 단어나 문장 끝에 얼화(儿化)와 같은 특수 어미 발화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원시 언어를 연구하는 일이 매우 어렵기에 아직 일부의 학설이기는 하지만, 교착어는 현생 인류가 구사하는, 여지껏 밝혀진 가장 오래된 언어 유형일 가능성이 있다. 기계적으로 어근과 어간에 접사를 붙여나가며 단어와 문장을 만드는 교착어의 방식에 비해 어떤 원형을 놓고 일률적이지 않은 규칙을 잔뜩 만들어 굴절된(변형의) 형태에 각각 특정한 용례에만 그것을 쓰는 굴절어는 언어의 전파성과 정착 면에서는 뛰어나지만 아무래도 가장 변질되기 쉽고 복잡할 수밖에 없기 때문. 원시 중국티베트어족은 물론, 심지어 원시 인도유럽어족 역시 교착어였을 것이라는 학설이 제시되기도 하고, 중국을 빙 둘러싼 많은 나라들(일본, 한국, 몽골, 티베트, 터키, 헝가리 등)의 언어가 모두 교착어이고 이 언어들이 하나같이 교류와 융화보다는 '''오랜 세월 동안 교착어의 구조만큼은 거의 그대로 갖고 있는 상태로''' 독자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기계적인 언어의 특성상 발생 당시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1] 예를 들어 현대 영어는 고립어 특성이 강하지만 그 외의 특성을 보이는 경우도 충분히 있다. 굴절어에 가까웠던 고어의 흔적이 남아서 대명사의 활용에서 나타나고, 전치사구 등에서 교착어 성격이 일부 나타나기도 하며(예를 들면 "to 위치" 형태), 속어·욕설 등 규범에 어긋나는 담화에 한정되긴 하지만 포합어적인 용법들도 나타난다. 단어 사이에 fucking 같은 단어를 넣어서 home-fucking-work(숙-씨발-제) 따위로 사용하는 등.[2] 언어학 일반에서는 어간(말의 줄기)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지만 더 정밀한 분류가 필요할 때는 어근(말의 뿌리)이라는 표현을 쓴다. 국어에서는 낱말을 활용할 때 바뀌지 않는 부분을 어간이라고 하고, 그 어간은 어떤 조어 방식을 거쳤는지에 따라 다시 어근-접사로 나뉠 수 있다. 낱말 형성(조어)의 측면에서는 어근-접사로 나뉘고, 활용의 측면에서는 어간-어미로 나뉜다. 어떤 관점에서는 활용에 기여하는 어미를 '접사'의 테두리 내에서 '굴절 접사'로 이해하기도 한다. 즉 협의의 '접사'는 낱말 형성에 기여하는 파생 접사만을 이르는 것이고, 광의의 '접사'는 파생 접사는 물론 어미인 굴절 접사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3] 어원적으로는 선어말 어미 '-더-'와 어말 어미 중 종결 어미 '-라(<다)'의 결합이다.[4] 일례로 가운데땅 세계관의 모르도르의 언어인 암흑어는 이질적인 느낌을 주기위해 교착어로 설정되어 있다.[5] 문법적으로 교착어와 고립어의 특성이 공존하지만 실제 언어에서는 고립어로서의 특성이 지배적이다[출처] 박근형, 「티베트 비밀 역사」 531.p[6] 페르시아어가 속한 인도유럽어족 언어들 대다수는 굴절어지만, 페르시아어는 교착어의 특성을 더 강하게 가진다.[7] 조사가 앞에 붙는다. 즉 후치사가 아니라 전치사라는 얘기다.[8] 이 외에도 대표적인 인공어인 에스페란토, 그리고 클링온도 교착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