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한국어

 



대한민국 국보 제320호, 월인천강지곡 권상
中世韓國語

나모ᄝᅵ·키、[1]

[na˨mo˨wi˨kʰi˦]

그ᄃᆡ내길·어내·논知·식ㅅ나모。

[kɨ˨dʌj˨naj˨kil˨ɣə˦naj˨non˦tij˨sik̚˦s˨na˨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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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사용한 시대
3. 현대 한국어와 차이
4. 음운
4.1. 자음
4.2. 모음
4.3. 성조/고저 악센트
5. 표기
5.1. 연철
5.1.1. 어간 끝 'ㄹ'-어미 첫 'ㅇ'
5.1.2. 월인천강지곡에서의 분철
5.2. 8종성법
5.4. ㄱ 보유어
5.5. 의존명사와 대명사의 교체
5.6. 사이시옷 적는 법
6. 어휘
7. 문법
7.1. 주격조사 '가'가 없었다
7.2. 부사격조사가 현대국어와 다른 점
7.3. 어미교체
7.4. 형태에 따른 품사 구분
7.5. 통사가 현대국어의 것과 다른 점
7.5.1. 피정의 명사의 반복
7.5.2. 관형법
7.5.3. 시제
7.5.4. 높임법
7.5.4.1. 객체높임법
7.5.4.2. 상대높임법
7.5.5. 선어말어미 '-오-/-우-'
7.5.6. 의문문의 다양성
8. 기타
8.1. 오해
9. 같이 보기
10.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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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중세국어 문서
중세에 쓰이던 한국어고어(古語). 국내에서는 '''중세국어'''(中世國語)라 부른다.

2. 사용한 시대


시대 구분으로는 고려시대~16세기 설과 13세기~17세기 설 두 가지가 대립하고 있다.[2]
신라시대 경주 말이 중심이 됐던 시기를 벗어나 개성 말이 한국어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던 시기다. 전자는 왕조 교체를 중시한 구분이고, 후자는 음운적 변화를 중시한 구분이다. 주류학계에서는 주로 후자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고려시대의 이두 문헌, 중국인고려를 방문하고 고려어의 어휘를 적은 《계림유사(鷄林類事)》[3], 훈민정음 창제 직전 시기에 명나라에서 만든 《조선관역어(朝鮮館驛語)》 등이 초기의 자료로 활용되지만, 세종대왕에 의한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는 문헌자료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매우 전면적으로 그 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다. 그렇기에 훈민정음 창제 이전을 '전기 중세국어', 이후를 '후기 중세국어'로 나누어 보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최근에는 자료가 풍부한 후기 중세국어 시기 연구가 진척되어 15세기, 16세기 등 세기별로 나누어 분석하기도 한다.

3. 현대 한국어와 차이


현대 한국어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주어-서술어 인칭 호응(평서문, 의문문 등에서의 서술어 인칭 구별), 훨씬 다양한 높임 선어말어미 이형태, 현대 한국어에는 없는 중세 한국어 특유의 불규칙 활용[4], 현대 한국어에는 없는 특수한 음운 변화 환경 등이 있었고, 현대어와 비교했을 때 서로 다른 문법도 일부 있다. 대표적으로 '-시-'와 '-거-' 등의 일부 선어말어미들의 어순이 현대와 반대였던 것이 있다.

4. 음운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 자음(순경음, 반치음)이나 모음(아래아)이 존재하였으며, 사성(四聲)[5] 체계가 존재하였다. 이러한 중세 한국어를 특징짓는 음운적 요소들은 17세기를 전후하여 소실되고, 오늘날과 유사한 형태가 된다. 허나 제주어에는 아래아 음, 동남 방언에는 부분적으로 성조[6]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7]
성조표시(방점)가 없어지고 없어진 글자도 많지만 현대에도 훈민정음 창제 시 등장한 글자를 쓰고 있다보니 소리의 바뀜을 생각치 못할 수 있는데 중세국어의 자음과 모음 발음법은 현재와 다를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4.1. 자음


  • 중세국어에는 ㅎ탈락처럼 ㄱ탈락 현상이 있었다. 또한 ㄱ과 같은 어금닛소리 계열인 ㆁ이 오히려 목구멍소리인 ㅎ의 형태 기본꼴로 나타나는 것을 통해 현재 연구개에서 조음되는 ㄱ, ㄲ, ㅋ, ㆁ 음이 당대에는 목구멍 더 깊은 곳에서, 즉, 구개수음 등으로 발음되었을 지도 모르지만, 정설은 아니다.[8]
  • ㅈ, ㅉ, ㅊ 다음의 이중 모음 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당시의 ㅈ, ㅊ 음은 지금보다 입 앞쪽의 잇몸 쪽인 치경 파찰음 /ts/~/dz/으로 조음되었다. 이는 학계 통설이다.
  • 어두에 여러 자음을 함께 표기한 어두 자음군 표기가 나타나는데, 크게 ㅅ계, ㅂ계, ㅄ계로 나눌 수 있다. 이 표기가 단순히 된소리를 의도한 표기였는지 실제 어두 자음군 발음을 의도한 표기였는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다. ㅂ계와 ㅄ계의 ㅂ은 대체로 발음이 되었다는 쪽으로 의견 일치가 이루어져 있는데 ㅅ계와 ㅄ계의 ㅅ이 문제.
  • 초성 ㅇ의 음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당시는 소리 나는 대로만 적었으므로, 'ㅇ'가 정말 무음가였다면 '알-[知\]'에 '-고' 어미가 붙고 ㄱ 약화가 일어난 활용형 '알오'가 '아로'로 적혀야 했을 터인데, 빠짐없이 '알오'로 적혀 있는 것에서, ㅇ에 특정 음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훈민정음에서도 ㅇ을 '후음 중의 불청불탁음('불청불탁음'은 현대 음성학의 '유성음' 내지는 '공명음'에 해당된다)'에 대응된다고 적극적으로 음가 규정을 하고 있는바, 이 ㅇ은 대략 성문 마찰 접근음('유성 성문 마찰음', '성문 반찰음' 등으로도 불린다.) [ɦ~ɣ]로 추정된다.[9]
  • 말 사이에서 /j/와 /j/, 또는 /j/와 /i/가 잇따를 때 생기는 긴장된 협착을 나타내기 위해 ㆀ이라는 표기가 있었다.[10] 하향이중모음을 가진 일부 피·사동 어간에만 쓰였다.
예) 괴ᅇᅧ, ᄆᆡᅇᅵᄂᆞ니라

4.2. 모음


아래아 문서도 같이 보면 좋다.
  • 오늘날 단모음(일부 상향 이중모음)으로 발음되는 ㅐ[ɛ], ㅔ[e], ㅚ[ø~we], ㅟ[y~wi~ɥi]는 하향 이중모음인 ㅐ[aj~ai], ㅔ[əj~əi], ㅚ[oj~oi], ㅟ[uj~ui]로 발음되었다고 짐작된다.
  • 'ㆍ'의 소릿값은 그 이름인 아래'아'와 달리 ㅏ보다는 현재의 ㅓ와 가깝다. 또한 아래아라는 이름은 나중에 지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원순모음화가 일어날 때 ㅡ는 ㅜ로 변하는데, ㆍ는 ㅗ로 변화하는 것을 통해 ㆍ와 ㅗ가 원순성 유무로 대립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ㆍ와 ㅗ의 혀의 자리가 같다는 것을 뜻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ㆍ가 소멸될 때의 그 음가가 비어두음절에서 ㅡ로, 어두에서 ㅏ로 합류하고 있어 대강 그 가운데 어디쯤에 ㆍ가 있을 가능성이 크므로 ㆍ의 음가는 /ʌ/ 와 /ə/ 사이의 어느 혀 위치에서 발음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ㅓ의 음가는 지금의 ㅓ보다 혀가 덜 들어가고 입을 더 적게 벌리는 소리, 즉 /ə/로 추정되지만 중설모음일지 좀 더 전설모음적인 요소를 인정하는지는 연구자에 따라 차이가 있다.(김성규, 중세국어 음운론의 쟁점, 2009)
  • 모음조화가 비교적 엄격하게 지켜졌다.

4.3. 성조/고저 악센트


성조 단위는 오늘날 경상, 함경 방언과 마찬가지로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가 있었고, 한 음절에 낮은 소리와 높은 소리가 연속적으로 올 수 있었다. 세종은 중국 사성을 본받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성조
설명
표기
예시
평성
가장 낮은 소리(低調)
점 0개
활(弓)
거성
가장 높은 소리(高調)
점 1개
·갈(칼, 刀)
상성
처음이 낮고 나중이 높은 소리(低高調)
점 2개
:돌(石)
입성
빠른 소리
점 0·1·2개
긷(기둥, 柱), :낟(곡식, 穀), ·몯(못, 釘)
이 용어는 중국어의 성조 개념을 억지로 한국어에 끼워맞춘 것에 불구하다. 특히, 세종이 상성이라 정의하는 평성-거성 연속 음절은 오늘날 비성조 방언에서 장모음으로 나타나며 15세기 당시에도 장모음 이중모라 음절이었으리라 추측될 뿐만 아니라, 고대국어나 초기 중세국어에서 2음절이었던 어휘를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 상성 음절은 아예 독립된 음절 두 개로 보는 게 내구적으로 더 타당할 수도 있다.
초기 어휘
후기 어휘
2음절 분석
나·리 (동동, 향가 川理)
:내
나·이
누·리 (동동, 향가 世理)
:뉘
누·이
가·히 (월곡)
:개
가·이
두·븛 (계림유사 途孛)
:둟
두·욿
다만 평성-거성 연속 음절이 상성으로 나타난 것이 있다 하더라도 모든 상성이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났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 하며, 현대 한국어 방언과의 대응 관계를 보았을 때 상성을 독립된 성조로 보아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1음절 체언의 절대다수(162개 중 127개)는 거성이고, 2음절 체언의 대다수(236개 중 160개)는 첫 음절은 평성, 뒷 음절은 거성이다. 다른 악센트 패턴을 보이는 체언은 대개 특이점이 있다.
  • 종성이 <>인 1음절 체언은 대부분 평성이다. 'ᄯᅩᇰ' (똥), '드ᇰ' (등), '코ᇰ' (콩) 등.
  • 양쪽 모음이 <ㅡ>나 <ㆍ>(아래아)인 2음절 체언은 대부분 두 음절 모두 평성이다. 'ᄇᆞᄅᆞᆷ' (바람), '그듸' (그대), 'ᄆᆞᅀᆞᆷ' (마음) 등.
  • /ㄱ/ 보유어는 무조건 두 음절 모두 평성이다. '나모~남ㄱ' (나무), '구무~굼ㄱ' (구멍) 등.
  • 거성-평성 2음절 체언은 대체로 접미사가 붙은 파생 단어로 분석이 가능하다. '울〮에' (='우르다' + '-게'), '·파리' (='팔' + '-이') 등.
  • 한자어의 악센트는 중고한어와 대응한다. 예외야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중고한어의 평성은 그대로 평성으로, 상성과 거성은 모두 거성(방점 두 개)으로, 입성은 상성(방점 하나)으로 반영한다.
현대 경상 방언, 함경 방언의 성조의 표면형과는 대응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경상 방언의 고저 악센트의 표면형과는 매우 다르다. 다만 장음으로 나타나는 개개 단어의 강세는 규칙적인 대응[11]을 보인다.
다음은 중세 한국어와 현대 방언들을 비교한 표이다. 높음을 H, 중간을 M, 낮음을 L, 상승을 R로 표기했다. 자세한 것은 여기로.
  • 1음절
중세 한국어
동북 방언
영동 방언
동남 방언
길주, 성진, 단천
기타
강릉, 삼척
영월
북부
남부
平 (말, 馬)
L
L
H
H
H
H
去 (말, 斗)
H
H
L
L
H
M
上(말, 語)
R
H
R
R
R
L
  • 2음절
중세 한국어
동북 방언
영동 방언
동남 방언
길주, 성진, 단천
기타
강릉, 삼척
영월
북부
남부
平平 (바람, 風)
LL
LL
LH
LH
LH
MH
去平~去去 (구룸, 雲)
HL
HL
LH
HH
HH
MM
上平~上去 (사람, 人)
RL
HL
RL
RH
RH
LM
단음절 용언 어간의 악센트 양상은 다음과 같다.[12]
'''평성 규칙'''
  • 활용 예시: 먹·다 / 머·거 / 머·그·며
  • 특이점: 종성이 장애음인 규칙 용언, 종성이 <ㄹ>인 일부 용언, 종성이 하향이중모음인 일부 용언 등을 포함한다.
  • 예시: 죽다, 막다, 벗다, 업다, 믈다(> 물다) 등
'''평성 불규칙'''
  • 활용 예시: 븟·다 / 브·ᅀᅥ / 브ᅀᅳ·며
  • 특이점: 종성이 장애음인 일부 불규칙 용언, 그리고 종성이 <ㅎ>인 용언의 절대다수를 포함한다.
  • 예시: 낳다, 듣다, 믭다(> 밉다) 등
'''거성 규칙'''
  • 활용 예시: ·숨·다 / ·수·머 / ·수므·며
  • 특이점: 종성이 비음이나 <ㄹ>, 또는 하향이중모음인 용언 중 일부, 그리고 초성이 유기음이나 어두 자음군이며 종성이 없는 모든 용언을 포함한다.
  • 예시: 들다(入), 쓰다, 크다, 티다(> 치다) 등
'''후의적(後依的) 성조'''
  • 활용 예시: 두·다 / ·두·어 / 두·며
  • 특이점: 어간이 어미에 따라 유동적으로 평성이나 거성을 취한다. 대개 어말어미가 어간에 바로 붙으면 평성으로 실현되며 선어말어미가 있으면 거성으로 실현되나, 예외도 있다. 평성을 취하게 하는 어미를 약어미라 하며 거성을 실현하는 어미를 강어미라 한다. 초성이 유기음이나 어두 자음군이 아니며 종성이 없는 용언은 '호다'를 제외하고 모조리 여기에 속한다.
  • 예시: ᄒᆞ다(> 하다), 보다, 주다, 가다, 오다 등
'''상성 규칙'''
  • 활용 예시: :곱·다 / :고·ᄫᅡ / :고ᄫᅳ·며
  • 특이점: 흔하지 않고 본래 이음절 어간으로 추정한다. 옷을 꿰맨다는 뜻인 ':호·다'의 경우 실제로 어간을 '호·오'로 쓴 경우도 있다.
  • 예시: 얻다, 젹다(> 적다), 쉽다 등
'''상성 불규칙'''
  • 활용 예시: :긷·다 / 기·러 / 기·르·면
  • 특이점: 종성이 장애음인 불규칙 용언 대부분이 이 양상을 띈다. 종성이 비음이거나 <ㄹ>인 일부 용언도 있다.
  • 예시: 걷다(行), 낫다, 돕다, 웃다, 신다 등
다음절 용언 어간은 불규칙성이 덜하다. 대부분의 경우 어간의 성조가 어미에 상관 없이 그대로 유지된다. 후술할 율동규칙에 따라 기저성조가 연속으로 상성인 다음절 어간은 마지막 음절이 대개 평성으로 실현된다는 정도의 불규칙성만 보인다. 복합용언은 구성 용언의 성조 양상을 따른다.[13]
'''율동 규칙'''이라는 게 있어서, 거성이 연속으로 세 번 이상 나오는 데 제약이 있었다.[14] 한문투로 '去聲不連三'(거성불연삼)이라 하기도 한다. 단어의 기저성조에 거성이 연속으로 세 번 이상 나올 경우, 끝에서 두번째 음절이 평성으로 실현된다. 일례로 '어듭다'(> '어둡다')의 어간 '어듭-'의 기저성조는 거성 연속이나, 실제 활용 양상은 다음과 같다.
  • ·어듭·다 (> '어둡다'): 율동 규칙이 '듭'에 적용
  • ·어드·ᄫᅥ (> '어두워'): 율동 규칙이 '드'에 적용
  • ·어·드ᄫᅳ·면 (> '어두우면'): 율동 규칙이 'ᄫᅳ'에 적용
전술한 대로 상성은 평성 + 거성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율동 규칙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더럽·다'의 경우도 기저 성조는 상성-거성-거성이지만 상성-평성-거성으로 실현된다. 반면 활용형인 ':더·러ᄫᅳ·면'(> '더러우면')은 상성-거성-평성-거성으로 실현된다.

5. 표기



5.1. 연철


오늘날에는 '밥이', '먹어'와 같이 체언과 조사, 용언 어간과 어미를 으로 나누어 적지만, 당시에는 '바비', '머거'와 같이 이어서 적었다. 이를 연철이라고 한다. 발음대로 쓰기와는 조금 다른데, '먹디'와 같이 실제로는 미파음 뒤의 경음화가 일어나 [먹띠]로 소리날 것들의 경우 '먹띠'라고 적지 않고 '먹디'라고 하였다.
분철 표기는 이후 근대 한국어에서 차츰차츰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자립성이 강한 체언을 위주로 더 먼저 나타났다.

5.1.1. 어간 끝 'ㄹ'-어미 첫 'ㅇ'


연철은 특히 용언 어간이 자음으로 끝나고 용언 어미가 모음으로 시작한 때 더 철저히 적용되었다. 상술하였듯 체언의 자립성으로 인해 분리성이 강한 체언+조사 결합과는 달리, 용언 어간과 용언 어미는 모두 자립성이 없고 긴밀하게 엮여 있기 때문.
그런데 용언 어간 끝 'ㄹ'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이어진 경우, 연철을 적용하지 않은 채로 'ㄹ-ㅇ'과 같이 적은 경우가 보인다(닐어, 달아). 이는 사실 어간 끝 'ᄅᆞ/르'의 'ㆍ/ㅡ'가 탈락된 형태[15]까지'''만''' 표기한 것으로 생각된다.
'니ᄅᆞ다(말하다[言])'와 '닐다(일어나다[起])'의 활용 차이를 보면 이를 잘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인 '니ᄅᆞ-'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아/어'가 와서
(어간의 마지막 음절 모음이 양성 모음 'ㆍ'이므로 어미도 양성 모음 형태인 '-아'가 붙음.)

'니ᄅᆞ-아'

(모음 충돌 회피를 위한 'ㆍ' 탈락)

'닐-아'

(양성 모음 'ㆍ'가 탈락하여 앞 음절 모음이 중성 모음 'ㅣ'가 되었으므로 어미의 음양이 바뀌어 '-아'가 '-어'로 교체)

'닐-어'
로 변동되었다. 문제는 여기에 연철까지 적용하여 '니러'로 쓰게 되면 '닐-'에 '-어'가 붙고 연철을 적용한 '니러'와 구별되지 않는 것. 그래서 '니ᄅᆞ-'에 '-아/어'가 이어진 형태는 '닐어'로, '닐-'에 '-아/어'가 이어진 형태는 '니러'로 구별하여 표기하였다.[16]
이때 '닐어'의 두 번째 음절 초성자 'ㅇ'은 무음가가 아닌 유성 반찰음 [ɦ]였을 것으로 짐작되며, 이 자음 앞의 'ㄹ'은 종성의 위치였던지라 설측음 [l]로 발음됨으로써 오늘날의 '이르-어→일러'와 같은 '르' 불규칙 활용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17]
이러한 구별은 '다ᄅᆞ다(다르다[異])', '달다(달아오르다[熱])'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둘의 어간에 '-아/어'가 붙은 때 전자는 '달아'가,[18] 후자는 '다라'가 되었다. 그리고 전자는 현대 국어에서 '르' 불규칙 활용이 적용된 '달라'로 이어졌다.
반면에 '모ᄅᆞ다(모르다[不知])' 같은 용언의 어간에 '-아/어'가 붙은 때는 '몰아'가 아니고 본래부터 '몰라'로 활용되었다. 즉, 'ᄅᆞ/르'로 끝나는 어간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붙으면 'ㄹㅇ'으로 표기되는 경우와 'ㄹㄹ'로 표기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것이 나중에 후자로 통일된 것.
그 밖에, 말음이 'ㄹ'인 어간에 'ㄱ'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붙는 경우, 상술하였듯 'ㄱ'이 약화되어 유성음화, 마찰음화, 성문음화를 거쳐 /k/ → [ɡ] → [ɣ] → [ɦ]로 발음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표기는 'ㅇ'으로 하였다[19]. 무음가가 아니고 음가가 있는 'ㅇ'이므로 연철로 표기하지 않는다.
e.g. 알-[知] + -고 → 알오(아로 X)
알-[知] + -거늘 → 알어늘(아러늘 X)
어근과 접미사의 결합에서도 'ㄱ' 약화로 말미암아 종성자 'ㄹ'+초성자 'ㅇ'이 나타났는데, 현대 국어에서는 'ㄹㄹ'이 아니고[20] 그냥 'ㄹ'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다.
e.g. 몰 + -개 → 몰애 > 모래
놀-[遊] + -개 → 놀애 > 노래[21]
ᄂᆞᆯ-[飛] + -개 → ᄂᆞᆯ애/ᄂᆞᆯ개 > 나래/날개[22]
체언과 조사의 결합에서도 같은 환경에서 ㄱ 약화가 일어났다.
e.g. 플[草] + 과 → 플와(프롸 X)

5.1.2. 월인천강지곡에서의 분철


한편 월인천강지곡의 경우 /, , , , /와 같이 유성음/비음의 종성을 가진 체언 단어의 경우 분철하였다는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용언 어간의 경우 /ㄴ, ㅁ/의 경우에만 이 원칙이 지켜졌다.새국어생활(1987)
  • 눈에(기 2)
  • 일이시나(기 2)
  • 고갤 안아(기 57)
허웅(1975), 우리옛말본에서는 파열음이 아닌 이런 유성음에 대해서 분철이 더 먼저 적용된 이유에 대해서 '밥이-바비'의 음성적 차이가 '눈이-누니'의 차이보다 현격히 더 크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밥'의 ㅂ[p̚]과 '바비'의 두 번째 ㅂ[b]은 유성/무성의 속성이 아예 달라지기 때문에 확연히 다르게 들리며, 이에 따라 파열음을 분철해서 적는 것이 저지되었으리라고 본 것이다.
8종성법을 제한적으로 벗어나고 있는 용비어천가의 표기법과 더불어 월인천강지곡용비어천가는 중세 한국어 초기의 문헌 가운데 특이한 표기를 보이는 둘뿐인 문헌 중 하나이다. 연구자들 가운데에는 이 두 문헌에서만 이러한 특이한 표기가 나타나는 것은 세종대왕이 개인적으로 형태소 중심의 표기를 실험해 봤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서울대 박진호 교수는, 한글 창제 직후부터 세종은 표의주의를, 수양대군과 신하들은 표음주의를 주장했다고 본다. 인터뷰 세종은 학자적 성격이 강했으므로 심층적으로 의미까지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한편, 수양대군과 신하들은 표면적인 발음을 그대로 표기하는 게 백성들이 익히기에 쉽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한글은 결국 백성들을 위해 창제한 문자였으니 만큼, 세종 역시 표음주의에 동의했다고.
그러나 적어도 세종 자신이 직접 쓴 월인천강지곡에서만큼은 표의주의를 양보하고 싶지 않았기에 원고를 표의주의적으로 썼는데, 문제는 월인천강지곡 인쇄 당시에 인쇄 관청인 주자소 관리들이 이걸 몽땅 표음주의적으로 바꿔 버렸다는 것. 이를 용납지 못했던 원작자 세종의 의도에 따라, 월인천강지곡에는 붓으로 고친 흔적이 있다고 한다.

5.2. 8종성법


받침에는 , , , , , , , (옛이응)[23] 이렇게 8개만 허용한다는 규정. 당시는 발음이 곧 표기였으므로, 표기를 이렇게 정했다는 것은 당시 음절의 끝소리 규칙 역시 그러했음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근대 한국어에서는 7종성법(ㄱ, ㄴ, ㄹ, ㅁ, ㅂ, ㅅ, ㅇ)으로 바뀌고, 현대 한글 맞춤법에서는 표의주의에 따라 표기 기준으로는 받침에 모든 자음 자모를 쓸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으되[24], 발음 기준으로는 표준 발음법에 따라 ㄱ, ㄴ, ㄷ, ㄹ, ㅁ, ㅂ, ㅇ의 7개만 음절 말에서 발음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중세와 현대를 비교하면 ㅅ은 ㄷ에 흡수되고 ㆁ은 표기만 ㅇ으로 바뀌었다.
중세 한국어에서는 ㅅ 받침이 [s] 발음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바로 위의 중세 한국어 복원해서 읽기를 재생해 보면 '나라'''ㅅ'''말싸미'처럼 들리는데 바로 이러한 추정에 근거하여 읽은 것. 중세 한국어의 옛이응은 현대 한국어의 ㅇ 받침과 같다.
용비어천가에서는 8종성 이외의 'ㅈ, ㅊ, ㅍ' 종성 표기가 보이는 게 돋보인다. 석보상절에서는 '' 종성 표기가 보이기도 한다. 훈민정음 해례에서도 '여우 가죽'의 뜻으로 '여ᇫ의갗'과 같은 표기를 사용할 수는 있다고 제안은 해보지만 'ㅅ'자로 적을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이중종성(겹받침)의 경우 유성음 말음 ㄴ, ㄹ, ㅁ, ㆁ 뒤에서 간혹 나타나기도 하였다. 특히 ㄹ 뒤에서 많이 나타나는 편. 훈민정음 해례에서도 'ᄃᆞᇌᄣᅢ'와 같은 표기가 등장한다. 이들의 경우 반대로 근대 한국어에서 후행하는 형식 형태소의 모음 없이는 이중으로 종성 음이 오지 못하게 되었고 오늘날에도 '닭도[닥또]'라는 표준 발음으로 이어졌다.

5.3. ㅎ말음 체언


모음 혹은 ㄴ, ㄹ, ㅁ로 끝나는 고유어/한자어 체언에 등장하는 것으로, 16세기까지 가끔 보이다가 근대 한국어에 들어서 자취를 감추었다. 나라ㅎ, 돌ㅎ, 땅ㅎ, 살ㅎ[25] 이런 식으로 나타났다. 조사가 붙었을 때는 '나라해 이셔', '하늘콰 땅콰 돌콰', '나라히' 이런 식으로 표기했다.
오늘날에 비슷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ㅎ말음 용언이 20세기의 형태소 표기로서 ㅎ이 표기되는 것과 같이, 특정 경우에 탈락하고 특정 경우에 격음화시키는 것을 지정해서 사용했다면 '살'과 '살코기'는 각각 '삻'과 '삻고기'로 표기하여 오늘날의 표기에서도 ㅎ 말음 체언을 좀 더 자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단, 단독형에 대해서 거의 상정할 필요가 없는 용언 어간에 비하여 ㅎ말음 체언은 단독형이 나올 수 있으므로 '단독형의 경우 ㅎ이 탈락한다'를 따로 규정해두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좋다'의 활용형으로 '죠하'와 같이 ㅎ을 드러내서 표기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이전에 ㅎ말음 체언에서의 ㅎ 음은 사라져버렸으므로 이러한 표기가 적용되지 못했다.

5.4. ㄱ 보유어


문서 참조. 앞 링크의 문서에 적혀있듯이, ᄓ/느 형태도 있다.

5.5. 의존명사와 대명사의 교체


현대국어의 '것, 줄'에 해당하는 의존명사 'ᄉᆞ'와 '것'에 해당하는 'ᄃᆞ''는 뒤에 주격조사 'ㅣ'가 오면 '시, 디'로, 목적격조사 'ᄋᆞᆯ'이 오면 'ᄉᆞᆯ, ᄃᆞᆯ'로, 서술격조사 'ㅣ라'가 오면 '시라/씨라, 디라'로 각각 바뀌었다. 대명사 '나, 너, 누' 등에도 'ᄋᆞ로/으로, 라와, ᄃᆞ려' 같은 부사격조사가 오면 각각 '날, 널, 눌'로 바뀌었다.

5.6. 사이시옷 적는 법


  • 사이시옷을 적는 법도 현대와 달랐다. 현대와는 달리, 중세국어에서는 앞 글자의 받침이 울림소리거나 한자어라도 예외없이 사이시옷을 넣었고, 다음 글자의 첫소리로 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예) {{{#!html
<span style="font-family: 나눔바른고딕 옛한글, NanumBarunGothic Yethangul;">가온ᄃᆡᆺ소리}}},
버터ᇱ길, 鐵圍山(철위산)
ᄊᆞᅀᅵ,
혀쏘리,
秋人(추인; 가을 사람)ㅅ서리
  • 예외적으로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에서는 앞 글자가 한자어면 앞 글자의 끝소리와 조음위치가 같은 예삿소리 글자가 사잇시옷 대신 쓰였다.
예) {{{#!html
<span style="font-family: 나눔바른고딕 옛한글, NanumBarunGothic Yethangul;">君}}},,
군,,
ㄷ字ᄍᆞᆼ,
斗두ᇢㅸ字ᄍᆞᆼ,
侵,,
침,,
ㅂ字ᄍᆞᆼ,
快쾡ㆆ字ᄍᆞᆼ,
兄혀ᇰㄱᄠᅳᆮ
  • 용비어천가에서는 유성음과 유성음 사이에 ㅿ가 쓰였다.
예) {{{#!html
<span style="font-family: 나눔바른고딕 옛한글, NanumBarunGothic Yethangul;">누ᇈ믈}}},
바ᄅᆞᇗ우희
  • 그 밖에 '{{{#!html
<span style="font-family: 나눔바른고딕 옛한글, NanumBarunGothic Yethangul;">누ᇆᄌᆞᅀᆞ}}}(눈동자)', '
하ᄂᆞᇙᄠᅳᆮ(하늘의 뜻)', '
사ᄅᆞᇜ서리(사람 사이)' 등의 표기가 쓰였다.

6. 어휘


계림유사에 적혀있는 고려어의 어휘 모음
계림유사에 기록된 단어 중에 가히, (도야지), (괭이)[26]를 제외하면 현대 한국말과 상당히 비슷하다.
중국의 강력한 문화적 영향 때문에 이 시기 동안 고유어가 한자어로 많이 대체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단어로는 내일(來日). 정작 내일은 중일 양국에서 안 쓰인다.(明天[Míngtiān],明日[あした])
네이버 국어사전의 옛말 문서 훈민정음 언해본 왕실의 한글 편지

7. 문법


기본적인 문법은 현대 한국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가면 작은 차이점이 나타난다.
  • 관형격조사에는 음운론적 이형태 뿐만 아니라 의미자질에 따른 이형태가 있었다. 무정명사나 존칭명사 뒤에는 ㅅ을 썼다. 속격 문서도 같이 보면 좋다.
예) 나랏 말ᄊᆞᆷ, 부텻 道理(도리)
  • 호격조사가 존칭일 때는 '하'를 썼다.
예) 님금하(존칭)
  • 한 형태소가 다른 형태소 사이에 끼어드는 경우가 있다.
예) 가거시ᄂᆞᆯ(-거…ᄂᆞᆯ+-시-), 가ᄂᆞ닛가(-니…가+-ㅅ-), 가ᄂᆞ니ᅌᅵᆺ가(-니…가+-ᅌᅵᆺ-)
  • 선어말어미끼리 서로 결합해서 새로운 형태로 바뀌기도 한다.
예) ᄒᆞ다라[더(회상법)+오(인칭활용)→다], ᄒᆞ과라/ᄒᆞ가니[거/어(확인법)+오(인칭활용)→과/가]
  • 용언 어근이 직접 합성에 참여하는 합성법이 매우 생산적이다.
예) 잡-쥐다, 여위-시들다, 듣-보다, ᄡᅮᆺ-돌
  • 용언의 어간이나 어근이 그대로 부사가 되기도 한다.
예1) 형용사→부사: 바ᄅᆞ(바로), 하(아주), ᄀᆞᆮ(같이), 닫(따로)
예2) 동사→부사: 마초(알맞게), 모도(모두), ᄀᆞ초(골고루)
  • 높임의 복수접미사 '-내'가 있다.
  • 2인칭 대명사 '너'의 존칭인 '그ᄃᆡ/그듸'가 있다.
  • 3인칭 재귀대명사 '저'와 그 존칭인 'ᄌᆞ갸'가 있다.
  • 1인칭 대명사 '나'의 겸사말은 없다.

7.1. 주격조사 '가'가 없었다


15-16세기 중세국어에서는 주격조사를 대체로 이, ㅣ, ∅ 로 썼다. '이'는 현대국어처럼 주어가 자음으로 끝날 때 사용되었으며 'ㅣ'(딴이)는 주어가 'ㅣ' 외의 모음으로 끝날 때 사용되었다. 현대국어에서는 이 경우에 '가'의 형태를 쓴다. 마지막의 ∅는 표기 자체를 않는다는 의미로 체언이 'ㅣ'로 끝났을 때 사용했으며, 제로 주격 조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타 모음으로 끝날 때처럼 'ㅣ'를 덧붙여 'ퟄ'로 쓸 법도 했지만 그냥 소리만 길게 낸 것으로 생각된다.
현대국어처럼 주격조사 '가'가 사용된 것은 16세기 후반-17세기에 이르러서다. 이 시기 선행체언의 말음이 'ㅣ'이거나 이중모음을 이루는 'ㅣ' 뒤에서 주격조사 '가'가 차츰 쓰이기 시작했다. 문헌상에서 가장 처음 등장한 주격조사 '가'는 정철의 모친인 죽산 안씨(1495~1573)의 언간에서다. 이후 수십 년이 지나 첩해신어(捷解新語, 일본어학습서)에서 다시 여러 차례 목격되며, 당대인 17세기 언간 등에서도 여러 차례 발견되고 있다.[27] 각종 서적에서 '주격조사 '가'가 가장 처음 발견된 문헌은 1550년대에 쓰인 인선왕후 언간이다'라고 되어 있지만, 이것은 큰 잘못이다. 인선왕후는 효종대 사람으로 17세기 초중반에 활동했기 때문이다.
예1) ᄎᆞᆫ 구ᄃᆞᄅᆡ 자니 ᄇᆡ가 세니러셔 (정철의 모친 '죽산 안씨'의 언간 中, 1572)
예2) 오ᄂᆞᆯ은 건넘즉ᄒᆞᆫ 구롬 가기도 잇고 (...) 多分 ᄇᆡ가 올 거시니 (첩해신어, 1676)
예3) ᄎᆞᆫᄇᆞᄅᆞᆷ을 ᄡᅩ여 두드럭이가 블위예 도다[28] (인선왕후 언간, 숙명공주에게 보내는 서간, 17세기 중반)
다시 중세국어로 돌아와서, 주격 조사들이 사용된 용례를 따져보면 현대국어에서는 '공자가'라고 쓸 것을 '孔고ᇰᄌᆞㅣ'처럼 사용했고[29], 모음 ㅣ가 겹칠 경우 영 형태로 나타났다. 전자의 경우 지금도 이러한 형태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인칭 대명사인 내(나+ㅣ), 네(너+ㅣ), 제(저+ㅣ) 등이 그것이다. [30]
일부 방언에서 아직 쓰임새가 나타난다. 경상남도 남서쪽 끝 섬인 하동군에서 '비녀가' 대신 '비녀이'를 사용하는 영상 자료가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단 맨 아래 참고.

7.2. 부사격조사가 현대국어와 다른 점


  • 중세 국어에서는 체언의 나열이나 접속을 나타낼 때 마지막까지 격조사 '와/과'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철수와 영희가 놀러 갔다'를 중세 문법처럼 표기하면 '철수와 영희와가 놀러 갔다' 이런 식으로 표현을 했다. 예컨대 아래의 예에서 마지막까지 부사격 조사 '와'가 나타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왜'라는 형태는 부사격 조사 '와'와 서술격 조사 'ㅣ'가 합쳐져서 나타난 것이다.
(예) 여듧 菩薩(보살)ᄋᆞᆫ 文殊師利菩薩(문수사리보살)와 觀世音菩薩(관세음보살)와 (중략) 彌勒菩薩(미륵보살)왜시니라.[5.2.(1)]
  • '애/에/이' 등이 비교의 부사격조사로 쓰였고, 인용의 부사격조사는 없었다.

7.3. 어미교체


  • 'ㄷ'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서술격조사 '이-', 추측법 선어말어미 '-리-', 회상법 선어말어미 '-더-', 인칭활용 선어말어미 '-오-' 뒤에서 'ㄹ'로 바뀐다.
예) 이-+-도-+-다→이로다, ᄒᆞ+-리-+-더-+-라→ᄒᆞ리러라, 命終(명종; 목숨 끝남)ᄒᆞ+-오-+-다→命終호라
  • 서술격조사 '이-' 뒤에서 어미들이 특이하게 바뀐다.
예) 져비(: 제비)+이-+-고→져비오, 이-+-더-+-라→이러라, 아ᄃᆞᆯ+이-+-옴→아ᄃᆞ리롬, 세ㅎ(: 셋)+이-+-어→세히라
  • 명사형 전성어미 '-옴/움', 연결어미 '-오ᄃᆡ/우ᄃᆡ, '-우려/오려'와 같이, 일부 어미는 선어말어미 '-오-/-우-'와 합쳐져 한 형태소를 이루기도 한다.
예) 마곰(막음), 마고ᄃᆡ(막되), 마고려(막으려), 머굼(먹음), 머구ᄃᆡ(먹되), 머구려(먹으려)
  • 타동사인지 아닌지에 따라 확인법 선어말어미가 다르다. 비타동사 뒤에는 '-거-'가, 타동사 뒤에는 '-어-'가 붙는데, 아주 엄격하게 적용되는 규칙은 아니다.
예) 머거늘(먹거늘), 머거든(먹거든), 머거니(먹거니)

7.4. 형태에 따른 품사 구분


  • 명사파생 접미사는 '-ᄋᆞᆷ/-음'인데, 명사형 전성어미는 '-옴/-움'이다. 아래의 예시에서 수량을 나타내는 명사 '걸음'은 거으로, 동명사형 '걸음'은 거으로 나타나 있어 현대 국어와 다르게 형태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예) 부텨 向ᄒᆞᅀᆞᄫᅡ ᄒᆞᆫ 거름 나ᅀᅩ 거룸만 몯ᄒᆞ니라[5.4.]
  • 형용사에서 명사를 파생하는 접미사는 '-ᄋᆡ/-의'이고, 부사를 파생하는 접미사는 '-이'였다.
예) 높-: 노ᄑᆡ(명사)/노피(부사), 크-: 킈(명사)/키(부사)

7.5. 통사가 현대국어의 것과 다른 점


  • 'ㅣ' 모음 또는 'ㄹ' 뒤에 'ㄱ'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놓이면 이 'ㄱ'이 탈락한다.
예) 구루미 비취여늘 (비취+거늘→어늘 (ㄱ 탈락))[5.5.(1)]
  • 주어 명사구가 높임의 대상이 아닌데도 선어말어미 '-시-'가 쓰이기도 한다.
예) 故園(고원; 옛 뜰)엣 버드리 이제 이어 ᄠᅥ러디거시니 엇뎨 시러곰…[5.5.(2)]
  • 세 자리 서술어는 이중목적어를 가지기도 한다. 현대 국어에서의 필수 부사어를 목적어로 처리했던 것. 완전히 들어맞는 개념은 아니지만 영어에서의 간접 목적어를 떠올리면 된다.
예) 護彌(호미) ~ 須達(수달)ᄋᆡ 아ᄃᆞᆯᄋᆞᆯ ᄯᆞᆯᄋᆞᆯ 얼유려터니[5.5.(3)]
  • 비교 구문에서 주격조사 'ㅣ'와 형태가 같은 비교의 부사격조사 'ㅣ'가 있다.
예) 부톄 ~ 敎化(교화)ᄒᆞ샤미 ᄃᆞ리 즈믄 ᄀᆞᄅᆞ매 비취요미 ᄀᆞᆮᄒᆞ니라[5.5.(4)]

7.5.1. 피정의 명사의 반복


협주문에서 서술부가 길어지면 피정의항이 서술부에 반복되기도 했다. 오늘날 한국어에서도 간혹 나타나기는 하나, 비문으로 취급된다. 이는 한국어의 어순이 SOV이기 때문에, 내포문이 길어지면 주어와 서술어의 간격이 멀어져 의미상의 호응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S는 ~ S이다'로 주어의 논항을 주술 두 영역에 반복해 주는 것이다.
예) 衆生(중생)ᄋᆞᆫ 一切 世間(일체 세간)앳 사ᄅᆞ미며 하ᄂᆞᆯ히며 긔ᄂᆞᆫ 거시며 ᄂᆞᄂᆞᆫ 거시며 므렛 거시며 무틧 거시며 숨ᄐᆞᆫ 거슬 다 衆生이라 ᄒᆞᄂᆞ니라.[5.5.1.]

7.5.2. 관형법


관형절과 명사절의 의미상 주어가 주격이 아닌 관형격 표지 'ᄋᆡ/의'를 취한다. 일본어를 배워 본 사람이라면 이 용법이 낯이 익을 것이다.
예1) 아ᄃᆞ리 ~ 아ᄇᆡ 잇ᄂᆞᆫ 城(성)에 다ᄃᆞᄅᆞ니 (아비+ᄋᆡ→아ᄇᆡ)[5.5.2.(1)]
예2) 迦葉(가섭)의 能(능)히 信受(신수; 믿고 받음)호ᄆᆞᆯ 讚嘆(찬탄)ᄒᆞ시니라[5.5.2.(2)]
관형사형 전성어미 '-ㄴ, -ㄹ'이 명사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고대국어에서는 아예 '-ㄴ, -ㄹ, -ㅁ'이 명사적 기능과 관형사적 기능을 동시에 가졌다.[31]
예1) 그딋 혼 조초 ᄒᆞ야 (ᄒᆞ-+-오-+-ㄴ→혼; 한 것을)[5.5.2.(3)]
예2) 내 쳔량앳 거시 다ᄋᆞᆳ 업스니 (다ᄋᆞ-+-ㄽ→다ᄋᆞᆳ; 다함이)[5.5.2.(4)]

7.5.3. 시제


중세 한국어의 시제는 현대 국어와 다르게 서법 형태소에 기대어 나타났다. '--'과 '--' 문서를 참조하면 알 수 있듯, 중세 한국어에는 이 두 선어말어미가 아직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과거 시제를 표현할 때는 회상을 나타내는 선어말어미 '-더-'를 쓰거나, 동사에 한해서 ('-더-'와는 별개로) 아무런 시제 선어말어미를 쓰지 않음으로써(무표지) 과거 시제를 나타냈다. 미래 시제는 추측을 나타내는 선어말어미 '-리-'를 써서 나타냈다. 이 두 선어말어미는 모두 공통적으로 오늘날과 같이 어말어미 '-다'가 '-라'로 바뀌는 특성을 보인다. 이것이 현대에 남은 게 바로 '~하더라', '~하리라'이다.
예1) 네 이제 ᄯᅩ 묻ᄂᆞ다 (‘-ᄂᆞ-’에 의한 현재시제)[5.5.3.(1)]
예2) 네 아비 ᄒᆞ마 주그니라 (부정법에 의한 과거시제)[5.5.3.(2)]
예3) 내 … 막다히를 두르고 이셔도 두립더니 (‘-더-’에 의한 과거시제)[5.5.3.(3)]
예4) 내 願(원; 바람)을 아니 從(종; 좇음, 따름)ᄒᆞ면 고ᄌᆞᆯ 몯 어드리라 ('-리-'에 의한 미래시제)[5.5.3.(4)]
현대국어와 다르게, '-더-'와 '-리-'를 한 동사에 같이 쓸 수 있었다.
관형사형 시제는 현대와 거의 같았다. 단, 모음조화에 따라 아래아가 쓰였다는 점이 주된 차이이다.

7.5.4. 높임법


한국어의 높임법 문서도 같이 보면 좋다.

7.5.4.1. 객체높임법

객체높임법은 목적어 명사나 부사어 명사가 주어와 화자보다 높을 때 실현되는 문법적 절차이다. 객체높임 선어말어미가 동사의 활용형에 나타난다.
예1) 내 ᄯᆞᆯ 勝鬘(승만)이 聰明(총명)ᄒᆞ니 부텨옷 보ᅀᆞᄫᆞ면 다ᇰ다ᅌᅵ 得道(득도)ᄅᆞᆯ ᄲᆞᆯ리 ᄒᆞ리니.[5.5.4.1.(1)]
예2) 내 아래브터 부텻긔 이런 마ᄅᆞᆯ 몯 듣ᄌᆞᄫᆞ며[5.5.4.1.(2)][32]
객체높임 선어말어미는 음운론적 환경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image]
앞소리\뒷소리
닿소리
홀소리
ㄱ, ㅂ, ㅅ, ㅎ[33]
ᄉᆞᆸ
ᄉᆞᇦ
ㄷ, ㄵ, (ㅈ, ㅊ)[34]
ᄌᆞᆸ
ᄌᆞᇦ
홀소리, ㄴ, ㅁ, (ㄹ)[35]
ᅀᆞᆸ
ᅀᆞᇦ
예) 막ᄉᆞᆸ거늘, 듣ᄌᆞᆸ게, 보ᅀᆞᆸ건댄, 돕ᄉᆞᄫᅡ, 얻ᄌᆞᄫᅡ, ᄀᆞ초ᅀᆞᄫᅡ, 마ᄍᆞᆸ더니(<맞+ᄌᆞᆸ), 아ᅀᆞᆸ게(<알+ᅀᆞᆸ)

7.5.4.2. 상대높임법

상대높임법은 화자가 청자를 높이거나 낮추는 높임법으로, 'ᄒᆞ라체(아주낮춤), ᄒᆞ야쎠체(예사높임이나 예사낮춤), ᄒᆞ쇼셔체(아주높임)' 3등급 체계이다. 아래는 그 예이다.
  • ᄒᆞ쇼셔체
    • 이 못 ᄀᆞᅀᅢ 큰 珊瑚(산호) 나모 아래 무두ᅌᅵ다 (-ᅌᅵ-)[5.5.4.2.(1)]
    • 落水(낙수)예 山行(산행) 가 이셔 하나빌 미드니ᅌᅵᆺ가 (-ᅌᅵᆺ-)[5.5.4.2.(2)]
    • 王(왕)이 부텨를 請(청)ᄒᆞᅀᆞᄫᆞ쇼셔 (-쇼셔)[5.5.4.2.(3)]
  • ᄒᆞ야쎠체
    • 내 그런 ᄠᅳ들 몰라 ᄒᆞ대ᇰ다 (-ᅟᅵᇰ-/-ㆁ-)[5.5.4.2.(4)]
    • 그딋 아바니미 잇ᄂᆞ닛가 (-ㅅ-)[5.5.4.2.(5)]
    • 내 보아져 ᄒᆞᄂᆞ다 ᄉᆞᆯᄫᅡ쎠 (-아쎠)[5.5.4.2.(6)]
  • ᄒᆞ라체
    • 보ᇝ비치 새배 프르렛도다 (-다)[5.5.4.2.(7)]
    • 네 겨집 그려 가던다 (-ㄴ다)[5.5.4.2.(8)]
    • 너희 大衆(대중)이 ᄀᆞ장 보아 後(후)에 뉘읏붐 업게 ᄒᆞ라 (-라)[5.5.4.2.(9)]

7.5.5. 선어말어미 '-오-/-우-'


  • 대체로 1인칭 주어 '나, 우리'가 오면 그 서술어에 '-오-/-우-'가 붙는다. 이러한 현상을 '인칭활용' 또는 '화자 표시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반드시 '나, 우리'가 아니더라도, 문장의 주어가 화자와 일치하거나, 화자를 포함하는 집단인 경우, 아니면 화자가 아니더라도 화자가 자기자신과 이입하고 있는 경우에도 출현한다. 예2를 보더라도 화자인 두보가 '누른 새'가 자신과 관련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화자표시법 '-오-'가 사용되었다.
예1) 내 이제 너 더브러 니ᄅᆞ노니(←니ᄅᆞ+ᄂᆞ+오+니)[5.5.5.(1)]
예2) 누른 새ᄂᆞᆫ 져기 ᄂᆞ로ᄆᆞᆯ 任意로 ᄒᆞ노라(←ᄒᆞ+ᄂᆞ+오+다) (두시언해 20:10)[5.5.5.(2)]
  • 관형절이 꾸미는 명사가 관형절의 의미상의 목적어나 부사어가 되면 '-오-/-우-'가 붙는다. 주어일 때는 붙지 않는다. 주어의 인칭과는 관계없이 출현하므로 '대상활용'이라 하여 따로 구분한다.
예) 나랏 衆生(중생)ᄋᆡ 니불(←닙+우+ㄹ) 오시[5.5.5.(3)]
  • 이러한 인칭활용과 대상활용은 동일한 환경에서도 사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반드시 뒤따르는 활용현상은 아니다.
  • 이숭녕 박사 등은 이러한 견해에 반대해서 두 가지를 모두 서법에 해당하는 '의도법'으로 볼 것을 제안하였지만, 주류 의견은 아니다.

7.5.6. 의문문의 다양성


중세국어 의문문은 그 종류에 따라, 인칭에 따라, 체언 의문문인지 아닌지에 따라 어미가 다르다. 인칭에 따라 어미가 달라지는 것만 빼면 오늘날 제주어경상도 사투리에 많이 남아있다. ᄒᆞ라체에서, 1, 3인칭 의문문이, 체언의문문이 아니고, 설명의문문이면 '오' 계열, 판정의문문이면 '아/어' 계열로 끝나고, 체언의문문이고, 설명의문문이면 의문보조사 '고', 판정의문문이면 의문보조사 '가'로 끝나며, 2인칭 의문문은 '-ㄴ다'로 끝난다.
예1) 엇뎨 겨르리 업스리오[5.5.6.(1)]
예2) 앗가ᄫᆞᆫ ᄠᅳ디 잇ᄂᆞ니여[5.5.6.(2)]
예3) 이 엇던 光明(광명)고[5.5.6.(3)]
예4)이 ᄯᆞ리 너희 죠ᇰ가[5.5.6.(4)]
예5) 究羅帝(구라제)[36]여 네 命終(명종; 목숨 끝남)ᄒᆞᆫ다[5.5.6.(5)]

8. 기타



세계의 다양한 언어를 다루는 I Love Languages! 유튜브 채널에서 훈민정음용비어천가 일부를 재현했다.

김차균 교수에 의한 중세 한국어 음성의 재현. 현대 언어학적 연구에 의한 추정음이다. 훈민정음 문서에서 국제음성기호로도 확인할 수 있다. 오류도 있다. 저 영상에선 아래아를 'ㅏ'로 읽었는데 아래아는 ㅏ 발음과 다르다. 다만 아래아가 공식적으로 결론이 나기 어려운 음운이라는 건 감안해야 한다.

향문천 채널에서 석보상절노걸대언해를 재구된 중세 한국어 발음으로 낭독한 영상. 역시 현대 언어학적 연구에 의한 추정음이다. ~ 다만 모음간 <ㄹ>을 [l]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는데 고증 오류 내지 실수로 봐야 한다. 당시 음가는 현대국어와 동일한 [ɾ]로 추정한다.

8.1. 오해


일부 사람들은 중세 한국어를 읽기 어렵다는 이유로 한국어가 변화가 극심한 언어라고 여기거나, 현대 한국어의 문법이 현대에 들어 겨우 정립되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한국어 문법의 큰 틀은 거의 변한 게 없으며 중세 한국어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한국어'의 문제점이 아니고 '한글'의 특수성으로 인한 것이 크다. 즉, 언어가 아닌 문자의 영역이다.
한글한국어를 소리나는 그대로 적기에 매우 적합한 문자이며, 대상 언어인 한국어의 발음 변화를 상당히 진보적으로 따라가는 식으로 발전해 나갔다. 예를 들어 중세 한국어의 '불휘'는 현대에 '뿌리', 'ᄒᆞᇙ배이셔도'는 현대에 '할 바 있어도'라고 발음하는데 표기도 그에 따라 변했다. 하지만 영어를 비롯한 많은 언어들은 '''표기의 변화가 상당히 굼뜬 편'''이다. 특히 영어는 대모음추이가 일어나도 그에 표기가 따라오지 않아 옛글로 적힌 것을 쉽게 읽을 수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실제 발음은 그와 달랐으며 같은 표기여도 15세기 영국인과 현대 영국인이 읽는 방법이 달랐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name'은 1400년대 중세 영어에서 '나아메'라고 읽혔지만 현재는 '네임'이라고 읽힌다. 영어가 한글 같은 문자를 사용해 표기가 진보적으로 바뀌었다면 중세 영어를 읽는 것은 중세 한국어를 읽는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9. 같이 보기



10. 참고도서


중세·근대 국어의 이해(조창규 저)
[1] '위키'는 중세 국어에 없는 단어지만, 중세 국어에서 2음절 체언의 70% 가량이 평성-거성이기에 거성 기호로 작성하였다. ㅱ의 음가는 동국정운을 통해 /w/으로 생각되어 '위' 대신 'ᄝᅵ'를 작성하였고 또한 당시 '위'의 음가는 (ɣ)uj로 wi와 가깝지 않음을 고려했다.[2] 참고로 ISO 639-3에는 일단 10~16세기 한국어를 중세 한국어로 규정하여 OKM이라는 코드가 할당되어 있다.[3] 계림유사가 표문과 토풍(土風), 조제(朝制), 방언(方言) 등 3권으로 이루어진 단행본으로 전해지다가 유실되었고, 절록본(節錄本)만 남았는데, 그 절록본은 학자 도종의(陶宗儀)가 지은 설부(說郛)에 인용한 것인데, 문제는 도종의가 설부에 여러 서적들을 인용하다 보니, 계림유사 원문을 전체 내용을 인용하지 않고, 토풍, 조제 편의 일부 내용과 방언 편 전체로 줄여서 편집한 절록본만 전해졌다.[4] 단, 현대 한국어 불규칙 활용의 상당수는 이 시기에 규칙 활용이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아 내려온 불규칙 활용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오늘날의 '여 불규칙'과 'ㄷ 불규칙'이다.[5] 훈민정음에서 쓰인 용어들이 중국 사성 체계에서 온 것이 많고 음절 내에서의 높낮이 변화가 일어나 성조라고 부를 수도 있겠으나 음절 내 높낮이 변화가 일어나는 상성의 경우 높낮이가 다른 두 모라의 결합으로 봐 실제로는 성조보다는 모라 단위의 고저 악센트 체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6] 엄밀히 말하면 고저 악센트[7] 순경음이나 반치음이 남아있다는 서술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러려면 해당하는 음소가 ㅂ이나 ㅅ과 구별되는 또 다른 음소로 나타나야 한다. 단순히 ㅂ, ㅅ으로 나타나는 것은 순경음이나 반치음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중앙 방언과 다른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8] 배영환, 중세국어 후음 ‘ㅇ'에 대한 몇 가지 문제, 2011[9] 동국정운의 경우 /j/를 표기하는데 사용하였다.[10] 일부 설은 /ʎ/를 표기하기 위하여 사용됬을 것이라 추정한다.[11] 같은 음성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 그 기저형이 일정한 규칙에 따른 대응 관계를 보인다는 뜻이다. 중세 한국어에서 '고저고'라면 동남 방언에서 '고고저'인 식이다.[12] 유필재 교수의 용어를 위주로 기술했으나, '후의적 성조'는 유필재 교수가 아니라 김완진 교수의 용어이다. 예시는 현대어와 형태가 크게 바뀌지 않은 예시 위주로 기술했다.[13] 예외는 있다.[14] 특히 한자어가 있을 때 예외는 있다.[15] 어간의 끝이 모음이고 어미의 처음도 모음이면 모음 충돌 회피를 위하러 어간 끝 기본 모음 'ㆍ/ㅡ'가 탈락된다. 이는 현대 국어에서 '쓰-' 뒤에 '-어'가 오면 '쓰-'의 'ㅡ'가 탈락하여 '써'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편 기초 용언 '하다'의 경우, 옛날에는 'ᄒᆞ다'의 어간 'ᄒᆞ-'에 어미 '-아'가 이어졌을 때 어간 끝 'ㆍ'가 탈락하여 '하'가 되는 것이 규칙이었으나 탈락 대신 반모음 [j\] 첨가가 일어나 'ᄒᆞ야'가 되었고, 아래아가 사라지면서 '하야'로 바뀌었으며, 현재 쓰이는 '하여/해'로 바뀌었다.[16] 이는 현대 국어 정서법과 정확히 반대여서 흥미롭다. '아프다[痛\]'와 '엎다[覆\]'를 생각해 보면, '아프- + -아/어'에서 'ㅡ'가 탈락한 형태는 '앞아'가 아니라 '아파'로 쓰고, '엎- + -아/어'는 '어퍼'가 아니라 '엎어'로 쓴다. 즉 '니ᄅᆞ- + -아/어', '닐- + -아/어'에 대해 현대 정서법을 적용하면 '니러', '닐어'가 될 것이다.[17] 어간 끝 '르'가 'ㄹㄹ'이 되는 현상.[18] 훈민정음 어제 서문의 "中듀ᇰ에 달아(중국과 달라)"에서 확인할 수 있다.[19] 이러한 'ㄱ' 약화는 'ㄹ'이나 'y[j\]' 뒤에서 일어났다.[20] 근대 국어 시기에는 'ㄹㄹ'이 붙은 어형도 보인다.[21] 'ᄂᆞᆯ개'와 달리 '*몰개, *놀개'는 중세국어 문헌자료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하지만 15세기 당시 엄격하게 '몰애, 놀애'로 분철로 표기되었기 때문에 'ᄂᆞᆯ개/ᄂᆞᆯ애'처럼 'ㄹ' 뒤에서 'ㄱ'이 약화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노래', '모래'로 연철된 것은 근대 국어 이후의 일이다). 실제로 명사파생접미사 '-애'와 결합한 파생어들은 연철로 표기된다(예: 부체(붗-+-에; 부채)). 이러한 설명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파생어 결합에서 접미사 '-개/게'의 'ㄱ' 약화에 대한 설명 및 문제점은 구본관(1998),『15세기 국어 파생법에 대한 연구』, 태학사를 참고할 것.[22] 15세기 국어에서는 'ᄂᆞᆯ애'와 'ᄂᆞᆯ개' 형태가 공존했는데, 'ㄱ 약화'가 일어나지 않은 '-개/게' 형으로 통합되면서 현대 국어에서 '나래'는 문학적 표현으로만 한정되어 쓰인다.[23] 간혹 가다가 용비어천가월인천강지곡에서는 반치음이 쓰이기도 한다.[24] 다만 현대 국어에는 체언이든 용언 어간이든 기저형에서 /ㄸ, ㅃ, ㅉ/ 발음으로 끝나는 실질 형태소는 없으며, 체언 한정으로 /ㅎ/ 발음으로 끝나는 실질 형태소도 없다. 따라서 표기에도 반영되지 않는다.[25] 원래는 ㅎ곡용어라고 했으나 현대 한국어에서는 곡용 현상이 더이상 나타나지 않으므로 대신 ㅎ말음 체언이라고 한다. 살코기란 단어가 바로 이 당시의 잔재.[26] 고양이의 중세 국어 어휘이다.[27] 김현주, 2016, 「중세․근대국어 주격조사 연구의 쟁점과 과제」, 『2016년도 국어사학회 여름 전국학술대회』, p.12[28] 찬바람을 쐬여 두드러기가 볼 위에 돋아[29] 다만 발음은 [고ᇰᄌᆡ\]로 했으되 '子ᄌᆞ'는 한자이므로 'ㅣ'와 합쳐서 쓰지는 못했다.[30] 참고로 이 경우에 중세국어에서는 '내'를 '나ㅣ'라고 읽고 '네'를 '너ㅣ'라고 읽었을 것이므로 '내'와 '네'의 발음 구분이 잘 되지 않는 현대국어와는 달리 발음상으로도 구분이 잘 되었을 것. 그리고 사실 ㅐ와 ㅔ 발음의 구분이 사라진 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수도권 원주민인 60대 이상 어르신들은 ㅐ와 ㅔ의 발음을 잘 구분한다.[5.2.(1)] 여덟 보살은 문수사리보살과 관세음보살과 (중략) 미륵보살이시다.[5.4.] 부처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가 걷는 것만 못하다.[5.5.(1)] 구름이 비치거늘[5.5.(2)] 옛 뜰에 버들이 이제 흔들려 떨어지니 어찌 능히[5.5.(3)] 호미가 ~ 수달의 아들에게 딸을 결혼시키려 하더니[5.5.(4)] 부처가 ~ 교화하심이 달이 천(개의) 강에 비침과 같다.[5.5.1.] 중생은 모든, 세상의 사람이며 하늘이며 기는 것이며 나는 것이며 물에 사는 것이며 뭍에 사는 것이며 살아 숨쉬는 것을 다 중생이라 한다.[5.5.2.(1)] 아들이 아비가 있는 성에 다다르니[5.5.2.(2)] 가섭이 능히 믿고 받음을 찬탄하셨다.[31] 그래서 이 고대 한국어의 어미를 '동명사 어미'라고도 한다. 미래 및 추측의 '-(으)리라'는 '-(으)ㄹ'과 '이다'의 결합이고, 현재의 '-ᄂᆞ/느니라' 역시 동작성을 나타내는 '-느/ᄂᆞ'에 '-(으)ㄴ'과 '이다'가 결합한 결과이며, 과거의 '-(으)니라'는 동작성 선어말어미만 뺀 형태로, 이 특성이 현재의 동사와 형용사 구별법에도 남아 있는 것이다.[5.5.2.(3)] 그대가 한 것을 좇아 하여[5.5.2.(4)] 내 재물의 것이 다함이 없으니[5.5.3.(1)] 네가 이제 또 묻는다.[5.5.3.(2)] 네 아비가 벌써 죽었다.[5.5.3.(3)] 내 ... 막대기를 두르고 있어도 두렵더니[5.5.3.(4)] 내 원을 아니 따르면 꽃을 못 얻을 것이다.[5.5.4.1.(1)] 내 딸 승만이 총명하니 부처만 뵈면 마땅히 득도를 빨리 할 것이니[5.5.4.1.(2)] 내 예전부터 부처께 이런 말씀을 경청하지 못했으며[32] '보다-뵙다', '주다-드리다' 등과 달리 현대 국어 기준으로는 '듣-[聽\]'에 '-ᄌᆞᇦ-'이 붙은 의미의 특수 어휘를 상정하기 어려우므로 '경청하다'로 의역함.[33] 용언 어간 말음이 /t-/계를 제외한 무성음일 때[34] 용언 어간 말음이 /t-/계 무성음일 때[35] 용언 어간 말음이 유성음일 때[5.5.4.2.(1)] 이 못가에 큰 산호 나무 아래 묻었습니다.[5.5.4.2.(2)] 낙수에 산행 가 있어 할아버지를 믿었습니까?[5.5.4.2.(3)] 왕이 부처를 부르십시오.[5.5.4.2.(4)] 내 그런 뜻을 몰라 하였소.[5.5.4.2.(5)] 그대 아버님이 있는가?[5.5.4.2.(6)] 내가 보자고 한다고 사뢰시오.[5.5.4.2.(7)] 봄빛이 새벽에 푸르러 있구나[5.5.4.2.(8)] 네 여자 그리워 갔더냐?[5.5.4.2.(9)] 너희 대중이 한껏 보아 나중에 뉘우침 없게 하라.[5.5.5.(1)] 내가 이제 너와 더불어 말하니[5.5.5.(2)] 노란 새는 적게 나는 것을 마음대로 한다.[5.5.5.(3)] 나라의 중생이 입을 옷이[5.5.6.(1)] 어찌 겨를이 없으랴?[5.5.6.(2)] 아까운 뜻이 있느냐?[5.5.6.(3)] 이 어떤 광명이냐?[5.5.6.(4)] 이 딸이 너희의 종이냐?[36] 장아함경 아누이경에 나오는 외도 수행자의 이름인 꼬락캇띠야(Korakkhattiya)의 음역이다. 개를 흉내내어 똥무더기 위에서 겨 찌꺼기를 핥아먹는 극한 고행을 하다가, 일주일만에 배가 부어 죽은 뒤 아귀가 되었다고 한다. 해당 대목은 석가모니의 제자인 선숙이 구라제를 만나 그에게 어떤 과정을 거쳐 죽었는지 묻는 대목이다.[5.5.6.(5)] 구라제여, 네가 목숨 다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