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1925)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정치인.
1925년 8월 15일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삭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서울 덕수상업고등학교, 단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6.25 전쟁 중 위관급 장교로 복무하였다. 이후 세풍제지, 대한교과서(현 미래엔)를 경영하였다.
1963년에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삼광중학교를 설립, 초대 이사장직에 오르기도 했었으나 1974년까지는 학교법인 명칭이 그의 호를 딴 "목정학원"이라는 명칭이었으나 그 해 11월에 학교법인 명칭을 지금의 "삼광학원"으로 바뀌었다.[4][5]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에 전라북도 무주군-장수군 선거구로 공천 신청을 하였으나 탈락하자 국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길병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에 전라북도 진안군-무주군-장수군 선거구로 공천 신청을 하였으나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신민당 최성석 후보와 동반 당선(초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 최성석 후보와 동반 당선(재선)되었다. 1979년 민주공화당 중앙위원회 부의장에 임명되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전병우 후보와 동반 당선(3선)되었다. 당선 후 한국국민당 부총재에 임명되었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양정규 등과 한국국민당을 탈당하여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4선)되었다. 1996년 신한국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고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5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전라북도 진안군-무주군-장수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천년민주당 정세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에는 미래엔의 명예회장으로 있다가 2013년 2월 24일에 노환으로 별세하였으며, 동년 10월 10일에 은관문화훈장이 수여되었다.[6]
정치 인생을 요약하면 유신(4공)-5공 시기 중대선거구제 하에서 입지를 확보한 전북 지역의 대표적 보수성향 다선 의원이었다. 3회는 중대선거구로 지역구 당선했으나, 민주화 이후 2회는 전국구로 당선 된 것도 그런 현상을 반영한다. 민주화 이후 소선거구제로 복귀 한 뒤로는 지역구로 출마 시 민주당계 정당에게 밀릴 수 밖에 없었기 때문.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