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정세균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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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위원회 신설''

'''제17대 전반기
정세균'''

제17대 후반기
이강래
'''대한민국 국회 국회운영위원장'''
제17대 전반기
천정배

'''제17대 전반기
정세균'''

제17대 전/후반기
김한길

'''대한민국 국회의원 (전북 진안군·무주군·장수군)'''
제14대
황인성

제15~16대
'''정세균'''

''선거구 개편''
'''정세균'''[A]
'''대한민국 국회의원 (전북 진안군·무주군·장수군·임실군)'''
''신설''
'''정세균'''[A]
김태식[42]

제17~18대
'''정세균'''

제19대
박민수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종로구)'''
제16~18대
박진

'''제19·20대
정세균'''

제21대
이낙연





'''대한민국 제46대 국무총리
정세균
丁世均 | Chung Sye-kyun[1][2]
'''
<colbgcolor=#003478> '''출생'''
1950년 11월 5일 (73세)[3]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관저'''
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 총리공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
'''사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광화문풍림스페이스본[4]
'''본관'''
압해 정씨
'''현직'''
대한민국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상생과 통일 포럼 상임고문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
'''재임기간'''
제9대 산업자원부 장관
2006년 2월 10일 ~ 2007년 1월 3일
제20대 전반기 국회의장
2016년 6월 9일 ~ 2018년 5월 29일
제46대 국무총리
2020년 1월 14일 ~ (현직)
'''서명'''
[image]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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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478> '''형제자매'''
4남 3녀 중 셋째
'''배우자'''
최혜경
'''자녀'''
아들 정준원[43], 딸 정유선
'''학력'''
전주신흥고등학교 (졸업 / 69회)[44]
고려대학교 (법학 / 학사)
페퍼다인 대학교 (경영학 / 석사)
경희대학교 (경영학 / 박사)
'''병역'''
병장 만기전역[45]
'''종교'''
개신교 (장로회)[46]
'''신체'''
168.9cm, 67kg, AB형[47]
'''소속 정당'''

'''의원 선수'''
'''6'''
'''의원 대수'''
'''15''', '''16''', '''17''', '''18''', '''19''', '''20'''
'''약력'''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쌍용그룹 상무이사
제15~18대 국회의원[48]
새정치국민회의 원내부총무
새정치국민회의 총재특별보좌역
새천년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의장
제17대 국회 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제17대 국회 전반기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장
열린우리당 비상집행위원장
제9대 산업자원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민주당 최고위원
제19대 국회의원(서울 종로구)
제20대 국회의원 (서울 종로구)
제20대 전반기 국회의장
제46대 국무총리
'''약칭'''
'''丁''', '''SK'''

1. 개요
4. 별명
4.1. 균블리
4.4. 미스터 스마일
4.5. 3천억 달러의 사나이
6. 기타
7. 선거 이력
8. 소속 정당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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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제46대 국무총리, 제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한 '''헌정 사상 유일한 국회의장 출신 국무총리'''이자, 현재 대한민국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다.
1950년 11월 5일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태어났으며 '''DJ의 비서실장''' 박지원이 인정한 '''김대중의 후계자'''. 김대중이 사망한 이후 가신그룹 중심으로 누가 김대중의 대를 이어서 민주당 호남계 좌장이 누가 되어야 하는가로 기싸움이 치열했는데, 박지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언을 언급하면서 정세균을 밀어줬다. 참고로 이때 동교동계 구파 가신 그룹 중 한 사람으로서 정세균을 비판한 한광옥은 나중에 민주통합당을 배신 때리고 박근혜에게 갔다.(...) 옛 동교동계는 '자신들은 DJ가 위기를 겪었던 어려운 시기'부터 보좌했는데, 자신들보다 정계 입문도 늦고 연배도 어린 정세균이 갑툭튀해 박지원의 지원을 받고 호남계를 이끌게 되자, 환멸감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한화갑, 한광옥, 김경재, 김원길, 안동선, 이윤수 등이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의 지지를 선언하게 된다.
'''선거계의 조용한 제왕'''으로도 불린다. 경선 통과 후 출마한 모든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했다. 특히 20대 총선에서는 오세훈과의 대결에서 자신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하게 나오던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이 조사가 왜곡이라는 걸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뒤, 결국 대승을 거두며 한국 총선 역사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대통령만 안 해봤지, 6선 의원에 장관, 당대표, 국회의장까지 해 봤으며, 이제는 국무총리까지 된 상황. 사실 정 의장은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가기도 했으나 자신이 18대 국회 시절에 도와준 친노계가 문재인을 밀어주는 바람에 완패.
민주당 내 DJ 키즈 중 한 명이자 범친노계 좌장[5]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정작 정세균 본인은 민주당 당대표 하던 시절 DJ 동교동계 가신 그룹에게 민주당 내 친노계랑 타협한 배신자라고 엄청나게 디스당했다. 참고로 정세균은 동교동으로 김대중을 자주 찾아갔고 김대중 사후에 꾸준히 김대중 기일에 참배하러 간다. 친노계와 친하며 독자 세력도 보유하고 있는 범친노계 호남파라고 보는 게 옳다. 실제로, 정세균은 친노계가 문재인을 밀어줄 때도 경선 출마까지 했던 사람이다. 다만 19대 대선 중 민주당 內 박원순, 안희정, 이재명의 사례를 봤을 때, 추후의 대선 출마 및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경선에 출마했을 확률도 상당히 높다.
또한 처세의 달인.[6][7] 대표적인 실력파 관리형 정치인이자 야권 위기 상황의 구원투수. 전문에 서술했듯이 대인관계도 꽤 좋은 인물이다. 또한 보수 성향 정치인들과도 통할 수 있는 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 보수 정당계 정치인들과도 친분이 상당하고[8] 민주당계 인물이면서도 보수성향과도 잘 어울리는 정치인이기도 하다.[9][10] 실제로 친노에서 파생된 각 계파의 수장인 문재인, 박원순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인물이기도 하다.[11]
지금까지 정세균의 활동을 보면 뚜렷한 개성, 카리스마 등과 같은 화려한 정치적 매력을 갖춘 '스타' 정치인은 아니지만,[12] 조용하게 강력한 정치인임을 알 수 있다.[13] 정치 인생 도중 비리에 연루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14] 개인 사생활이나 정치 활동상의 구설수도 거의 없었다.[15] 문자 그대로 신사적인 국회의원에게 시상하는 백봉신사상을 수상했을 정도이자,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진정한 신사라 불릴 정도니 말 다했다.
내리 4선을 한 전라북도의 무주군-진안군-장수군-임실군 지역구를 떠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출마하여 당선되고, 재선까지 성공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심지어 20대 총선에서 만난 상대는 오세훈.[16][17] '''현재까지 총 6선'''을 했다.
정세균의 개인적인 성품은 적을 만들지 않는, 매우 온화한 성품이라고 한다. 실제로 정세균을 공개적으로 싫어하거나 비난하는 동료 정치인을 찾기란 매우 힘들다. 정치권 내에서는 계파 갈등이 극심한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그가 흔들리지 않고 건재할 수 있는 이유로, 어지간하면 누구와도 어색한 사이를 만들지 않는 특유의 인자한 성품과 처세술이 뛰어난 성격을 들곤 한다. 실제로도 정세균이 대놓고 화를 내거나 거친 언사를 하는 것을 보기란 매우 힘들며, 과거 한나라당 지금의 국민의힘 정치인들과 한 때는 같은 당이었으나 갈라져 나간 민생당/국민의당 소속 정치인들과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지낸다. 단, 실없는 친한 척만 하느라 화를 낼 때 못 내는 사람은 당연히 아니며 상당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가결 사태 때 영상만 봐도 다른 열린우리당 의원들처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의장석을 점거하고 가결을 막기 위해 달려드는 정세균의 모습을 볼 수 있다.[18] 또 그에 못지 않은 강단과 엄격함 또한 갖추고 있다는 평이 자자하다. 그 때문에 당내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로 국회의장 후보에 올랐으며, 본회의에서도 역시 압도적인 찬성률로 대한민국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에 오른다.
1년에 한 번 기자들의 투표로 당마다 1명씩 가장 신사적인 의원에게 수여하는 '''백봉신사상을 12번이나 타서''' 2017년 기준 현재 최다수상자다.[19]
민주당 내에서 호남계가 안철수 파와 또 다른 집을 새롭게 차려서 대거 민주당에서 이탈했기 때문에 사실상 민주당 내에서 호남 출신 정치인들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다. 호남을 국민의당에게 빼앗긴 이후로 민주당이 호남 공략을 위해서 전략적으로 운영하는 호남비전위원회도 배후에 이 사람이 있다고 보여진다. 문재인을 대표로 하는 민주당 내 친노 패권주의가 호남에서 반감이 있다는 것도 잘 인지하고 있지만,[20] 경선에서 이미 문재인을 대표로 하는 친노계에게 자신의 기반인 전북을 제외한 지역들에서 모조리 패배하는 쓴맛을 봤기 때문[21]에 호남만으로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의외로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이다.
실제로도 총선 때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20석 이상 가져간다고 한들 전국적 지지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는 식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분열이 이념 투쟁이 아니라 친노계/비노 성향 호남계와 그리고 안철수계의 권력 투쟁이라는 걸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참고로, 현재 민주당의 밑그림은 박지원과 이 사람이 당대표를 하면서 더욱 큰 그림을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2] 본인도 DJ키즈면서도 당대표 시절에 열린우리당 탈당한 친노계 386세대 정치인들의 복당과 공천을 후원해 줬고, 장기적으로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과 교두보를 마련해 줬다.
이는 정세균 본인이 동교동계이면서 권노갑 같이 평생 김대중을 따른 동교동계 직계가 아니라 김대중이 새정치국민회의 때 데려온 DJ 키즈의 성격이면서 친노계이기 때문이다.[23] 참고로 이때 같이 들어온 인물들이 야당 거물로 성장했는데, 추미애, 신기남[24], 천정배, 정동영, 김한길, 김영환 등이 있다.
또한 국회의장 임기 직후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한 시기부터는 더불어민주당의 상임고문 직위도 역임하고 있다.

2. 생애 및 정치활동




3. 정세균계




4. 별명




4.1. 균블리


자신의 인스타그램에도 쓰여져 있다. 러블리한 표정이어서 붙여진 별명이다.

4.2. 세균맨


이름이 "세균"이라서 세균맨이다. 정세균/생애 문서를 참고하면 국회의장 시절의 책상에 세균맨 캐릭터 인형이 항상 국회의장 임기 끝까지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정치 결투게임에 정세균이 나오고 궁극기는 세균맨을 던지는 것이다.

4.3. 루피


뽀롱뽀롱 뽀로로의 캐릭터 중 하나인 루피가 그대로 별명이 되었다. 이 별명도 세균맨과 마찬가지로 국회의장 시절에 책상에 항상 루피 캐릭터 인형을 올려두어서 붙여진 별명이다. #

4.4. 미스터 스마일


특유의 온화함과 외유내강형 성품으로 얻은 별칭이다. 특히 국회 출입 기자들의 투표로 매년 선출하는 '백봉신사상'을 올해까지 15차례 받기도 했다. '백봉신사상'은 현역 의원 중 가장 신사적인 언행과 리더십, 모범적 의정 활동을 펼친 이들을 대상으로 수여된다.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재임 땐 국회의장-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을 정례화 시키면서 '중재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4.5. 3천억 달러의 사나이


'3천억 달러의 사나이'는 참여정부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 재임 때 '수출 3천억 달러'를 달성하면서 얻은 별칭이다. 공교롭게도 2006년 1월 산자부 장관 임명 당시 지금과 같은 논란이 일었다. 집권 여당 대표(열린우리당 의장)인 그가 내각 각료가 되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었다. 당시 정 후보자는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느 곳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 소신"이라고 반박했다.

5. 논란 및 사건사고




6. 기타


  • 국무총리로 취임하면서 김종필, 이회창[25], 고건 과 함께 대통령 빼고 다 해본 사람 별명을 획득했다. 정치인으로서 집권 여당의 대표와 원내대표, 제1야당의 대표를 역임했고 입법부에서는 국회의원국회의장을, 행정부에서는 국무위원인 장관을 역임했다. 2020년 1월 14일 제46대 국무총리로 취임했다.
  • 1997년 4월 12일 한보 사태 특별 청문회 당시 전문 경영인 이모 씨가 유력 정치인들에게 불법자금을 다 건넸지만 유일하게 안 받은 인물이라고 발언하였다. 당시 초선이기도 했고 스스로가 금전적 욕심이 없다고 한다. 쌍용그룹 근무 당시 한보그룹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한보 쪽 인물과는 아예 상종을 안 했다고 한다.[26]
  • 자신을 중심으로 모이는 그룹 내에서 핵심 브레인 역할을 하는 김성주 또한 본인처럼 전문성을 갖춘 데다 점잖고 신사적인 스타일의 의원이라는 점을 보면 그가 왜 소리없는 강자인지 알 수 있다.
  • 카카오톡도 한다. 친구 찾기에서 '종로는 정세균' 이라고 치면 나온다. 옐로 아이디라서 소통을 하는 건 아니고, 뉴스나 공지사항 같은 것만 올린다.
  • 별명은 이름에서 따온 세균맨. 본인도 이 별명을 즐기는 듯 하다. 아예 블로그의 닉네임을 좋은세균 정세균으로 해놓았다.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 운동 길거리 유세 중에 '세균맨 화이팅!'이라는 쪽지를 받았으며 또 어떤 어린이가 "아저씨가 진짜 세균맨이에요?" 라고 묻자, 정세균이 "어, 아저씨 세균맨이야."라면서 대답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참고로 노회찬 의원의 별명은 호빵맨이다. (...) 참고로 진짜 세균할 때 '細菌'과는 한자가 다르다.(世均)
    • 반 지지자들은 이름을 비꼬아서 정병균, 정박테리아 라고 부른다.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유세 당시에 트위터로 선거 유세 차량[27][28] 의 이름을 공모했는데,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이름은 소독차(…) 그런데 이게 마음에 들었는지 유세 내내 "소독차"를 사용했고 당선 후 트위터에 소독차를 타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를 올려 많은 사람들에게 작은 웃음을 주었다.
    • 국회의장이 된 후, 인스타그램 친구로부터 세균맨 인형을 선물로 받았고 이걸 책상에 놓았는데 임기 내내 국회의장실 책상 한 켠에 두었다. 당시 국회의장실에는 세균맨 말고도 뽀롱뽀롱 뽀로로루피 인형도 있는데, 이 뒷 이야기가 참 특이하다. 처음에 국회의장실에는 세균맨 인형만 있었는데 이를 두고 몇몇 네티즌들과 언론들이 "세균맨은 일본 캐릭터인데, 왜 대한민국의 국회의장실에 있냐!!!"라고 지적을 한 것. 듣다 못한 지지자들이 "그러면 한국 만화 캐릭터 중에서 정세균 의장하고 닮은 걸 찾으면 되지 않냐." 고 해서 찾은 게 바로 뽀로로의 루피. 여기에 몇 가지 의미 부여를 하면, 세균맨이 남캐-루피가 여캐다 보니 남여 성비가 1:1로 맞는 것도 있고, 세균맨이 일본 캐릭터-루피가 한국 캐릭터다 보니, "어쩌면, 한일 간의 여러 문제가 다 해결된 평화적인 한일 간의 상태는 아마도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해석을 하는 네티즌들도 있다. 이후에 비서실 자리에 있던 인형이 귀엽다며 본인 책상에 또 갖다 놓았는데 하필 그 인형이 물개옹이다.
    • 2020년 국무총리에 취임한 이후에도 총리실 책상에 이 세균맨과 루피 인형이 그대로 있는게 확인되었다.
  • 2016년 4월 21일 JTBC 뉴스현장의 직격 인터뷰에 출연했다. 그런데 손석희와 함께 찍은 사진에 대해 인스타그램 담당자가 '아무리 원근법이라지만... 스프링의 힘을 빌릴 수 없는 태생적 한계.. 잠시 눈물 좀 닦고', '#5등신과 8등신'이란 평가를 남겼다. 참고로 정세균 의장은 키가 168cm, 손석희는 178cm 정도 된다.
  •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노무현 탄핵 당시의 정세균과 현재 박근혜 탄핵 때의 정세균 국회의장을 비교한 사진 두 장[29]을 찾아 올리자 정세균 인스타그램 관리자가 해당 내용을 봤는지 해당 사진에 대한 설명 및 감사글을 올렸는데 이때 관리자가 약을 빨았는지 균블리는~ ~했고요~하고 시작을 한 것과 해시태그가 압권이다. 해당 글을 읽은 네티즌의 반응은 '아재 귀엽다'와 '갓세균' 등 찬양일색이다. 결국 역사적인 탄핵 소추안에 국회의장으로 참여했다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 친노 편입 후, 문재인 대통령과는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영혼의 듀오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둘의 활동 시기나 위치가 비슷한 편이다. 노무현 1기 (탄핵 정국 직전)에 문재인은 민정수석 / 정세균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였다. 노무현 2기(탄핵 기각 후)에 문재인이 비서실장 / 정세균은 산업자원부 장관이었고, 둘 다 각지에서 돌고 돌아[30] 노무현 대통령 사망 후 새정치민주연합 시기에는 문재인이 당 대표 / 정세균이 당 최고위원이었고, 더불어민주당 시기에는 문재인이 당 상임고문 / 정세균이 국회의장이었다가, 2017년 5월 10일부터는 문재인 대통령 / 정세균 국회의장까지 올라온 상황.[31] 물론 정세균 의장도 문재인 대통령처럼 당내 계파를 이끌면서 대통령직에 도전해왔고, 2012년 경선에서는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만큼 둘의 관계가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문재인과 정세균은 경쟁할 때는 경쟁하더라도 극단적인 대립과 공개적인 비난은 자제해 왔고, 당내 선거가 끝나면 공존하고 협력하는 관계였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보아 두 정치인 사이의 관계는 모범적인 경쟁적 협력 관계라고 생각해도 무리는 없을 듯. 둘의 협력은 결국 한 쪽은 대통령, 다른 쪽은 국회의장이 되면서 결실을 맺었다. 이제는 문 대통령이 정 의장을 국무총리로 지명하여 인준을 받아 정식 임명되기에 이르렀다.
  • 정치계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는데, 노무현 탄핵 가결 당시 가결을 막으려고 의장석을 점령했던 사람이 훗날 진짜 국회의장이 돼서 박근혜 탄핵 소추안을 가결하게 되고, 그의 임기 당시에 같이 노무현의 최측근이었던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취임했으며 방한한 트럼프의 국회 연설도 지켜보았다.
  • 보수 정당계의 인물들이랑도 상당히 친한 인맥 범위가 넓은 인물인데, 위에서 서술했다시피 친노에서 파생된 계파의 수장 치고는 드물게 이명박의 형 이상득과도 친분이 있다. 박희태와도 친분이 어느정도 있다. 왼쪽이 당시 이상득이고 오른쪽이 당시 정세균 의원이다.
  • 젊었을 때는 동아일보 기자를 꿈꾸기도 했다고 밝혔다. #
  • 2019년 11월 1일 상산고등학교에 명사초청특강 강연을 진행하였다.
  • 2020년 8월 24일 국산 코로나 치료제 연내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발언을 했는데, 정작 해당 발언에 대한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이 나확진이라 발표는 세균, 내용은 백신, 기자는 확진이라며 유머화되었다.
  • 2020년 10월 21일 직접 세종시 연동면 보건소를 찾아 독감 예방 접종을 받았다. 당초 비공개로 진행하려 했으나, 2020년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자 집단사망 논란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해 공개 일정으로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

7.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진안·무주·장수

'''36,176 (69.86%)'''
'''당선 (1위)'''
'''초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34,165 (65.14%)'''
'''재선'''[32]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

'''45,475 (78.08%)'''
'''3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45,566 (74.00%)'''
'''4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

'''41,732 (52.26%)'''
'''5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44,342 (52.56%)'''
'''6선'''[33]
'''역대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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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무주군·진안군·장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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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민주당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당될 때를 제외하면 정세균 본인이 당적을 옮긴 적이 없지만, 소속 정당인 민주당계 정당이 워낙 개편이 잦은지라 선거마다 이름이 다르다. 이건 민주 & 진보 진영의 현역 의원들을 통틀어 최다선 의원인 이해찬 의원도 똑같다.
총선에 여섯 번 출마하여 모두 당선됐고, '''특히 모든 선거에서 득표율 50%를 넘기는 압승을 거뒀다.''' 4선까지는 텃밭이라 쳐도, 이른바 정치 1번지라고 일컬어지는 서울 종로구로 옮겨서도 두 번 연속 완승했다. 그것도 홍사덕[34], 오세훈 같은 당시 거물급[35]을 상대로 꺾은 것을 포함해서. 이건 정말 놀라울 정도의 성적인데, 15대부터 20대까지 6선을 내리 연속으로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낙선한 적이 없고, 과반을 잃은 적도 없다. 지역구에서 그의 지지세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때 훨씬 정치력이 높았던 정동영도 타지로 출마하면 물을 먹었던 것과는 대조적. 이쯤 되면 과연 소리 없는 선거의 강자다. 아무래도 강력한 임팩트를 주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성격도 온화한 편이고 부정적 이미지라든가 논란으로 구설수에 오른 것도 별로 없어 대내외로 안티도 적은 편이라 긍정적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따라서 중도층에게 어필이 잘 된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20대 총선을 통해 7선 고지를 점령한 이해찬 의원이나 떨어진 이인제 전 의원 수준으로 총선 불패의 정치인이다. 이해찬 의원은 탈당 전력이 4.13 총선 때 한 번 생겼지만 정세균 의원은 그런 것도 없다.[36] 다만 20대 국회에서 전반기 국회의장이 되었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는 탈당해서 무소속이 되었다.
그리고 7선에 도전했던 이인제 전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낙선했으며, 이후 충남도지사 선거에서도 낙선했으니...

8.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6 - 2000
정계 입문

2000 - 2002
합당[37]

2002 - 2003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2003 - 2007
창당

2007 - 2008
합당[38]

2008
합당[39]

2008 - 2011
당명 변경

2011 - 2013
합당[40]

2013 - 2014
당명 변경

2014 - 2015
합당[41]

2015 - 2016
당명 변경

2016 - 2018
국회의장 취임으로 인한 탈당

2018 -
복당

9. 둘러보기







'''국회의원 지역구 및 정당 관련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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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세균 본인이 직접 '''의장 명패에 새겨 넣은''' 영문 이름이다. 발음으로 하면 시에-큔 이 돼서 정확한 건 아니지만 본인이 직접 명패에 넣었으므로 수정하지 말 것.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에서도 영문 이름을 Chung Sye-kyun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2020년 3월 27일에 있었던 코로나19 외신기자 간담회에서는 Chung Se-kyun으로 나왔다.[2] 로마자 표기법대로 표기하면 Jeong se-kyun 이다.[3] 출처. 음력으로는 9월 26일.[4] 광화문 도심에 위치한 입지 좋은 주상복합으로 잘 알려져있다. 참고로 전임 국무총리이자 지역구 후임인 이낙연 의원은 교남동 경희궁자이에 산다. 출처[5] 정세균계가 아닌 정세균 개인만 보면 보통 친노계로 분류된다.[6] 참고로 정세균은 이명박하고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고, 이명박 정부 시절 실세였던 이명박의 형 이상득하고도 친분이 있으며, 이상득을 제외하면 친이계의 1인자이자 이명박의 오른팔이라 불렸던 이재오하고도 상당한 친분이 있다. 실제로 찾아보면 정세균이 이상득과도 서로 붙임성 있게 인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외 이병석 등의 친 이명박계 중진들과도 친분이 있는 편. 실제로 '''친노계 인사 중에 이상득과 친분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정세균이 대인관계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고밖에 볼 수 없다.''' 박지원이 이상득과 인맥 관계가 있는 건 사실이나 박지원은 동교동계 중진이자 비노계다.[7] 국민회의 출신 구세대 호남계 정치인이면서도 친노계를 동교동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밀어줬다. 덕분에 호남계이면서도 문재인의 지지를 받아 국회의장에 추대될 수 있었다.[8] 실제로 보수정당계의 중진이었으면서 은퇴한 이상득, 박희태 및 친이계 중진들도 정세균과는 상당한 친분이 있다. 상도동계 출신 친박 좌장인 서청원과도 친분이 있는 편.[9] 거기다가 더불어민주당 內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중진답지 않게 4년제 중임 개헌보다 분권형 개헌에 무게를 더 두는 견해를 표현하는 정치인이며, 중도우파 내에서도 통할만한 면이 더불어민주당 중진 내에서는가장 많은 정치인이기도 하다.[10] 다만 2016년 9월에 새누리당과 충돌은 있었다.[11] 정세균이 문재인, 박원순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이유는 그가 문재인이나 박원순과 달리 대기업에서 종사한 경력이 있어서일수도 있다.[12] 스타성은 없지만,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인지도는 높은 편이다. 즉, 20년 이상의 정계 생활 짬밥과 '''세균'''이라는 이름이 만들어낸 시너지. 2016년에는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소추에서 의사봉을 잡은 의장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김에 따라 더 유명해졌다.[13] 하지만 국회의장이 된 이후 존재감이 상당히 커졌다. 국회의장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정치인으로서 존재감이 크게 마련이긴 하지만.[14] 의혹은 있었다. 동아일보가 인사 청탁 의혹을 제기했으나 얼마 안 있어 정정보도를 냈다.[15] 구설수를 좀 넓게 해석하자면 있긴 하다. 대표적으로 2009년에 한나라당이 소위 미디어법을 통과시키려고 하자, 당대표로서 의원 사퇴서를 제출하고, 6일간 단식하는 쇼를 보여주면서까지 결사항전을 하였다.[16] 가뜩이나 새누리당의 거물급 중진들과 잠재적인 대권 주자들이 대거 목이 날아간 20대 총선판에 오세훈까지 제대로 만신창이를 만든 셈이다.[17] 20대 총선은 당시 새누리당과 그 전신 정당을 포함하여 상당한 참패라 볼 수 있다. 단순히 의석 확보 수의 문제가 아니다. 의석 자체는 비등했지만 이인제가 정치 신인에게 날개가 꺾였고, 탈당 후 무소속 출마하기는 했으나 이재오의 목이 달아났다. 새누리당의 전통적 지지 지역인 대구광역시에서마저 의석을 2곳이나 내주었고, 부산은 말할 것도 없다. 수도권은... 더이상 말을 말자(...), 그리고 그 다음에는 보수 정당의 헌정사상 최악의 참패...[18] 다만 2009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공천 문제를 두고 정동영과는 사이가 그리 좋지는 못하다. 정동영이 공석이 된 자신의 원 지역구인 전주 덕진구에 출마하려고 하자 컷오프시켰고, 이에 반발한 정동영이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 되어서 원내에 돌아왔다. 다만 현재 정세균과 정동영의 입지 차이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동영과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게 정세균에게 있어서 크게 아쉬울 일은 아니다.[19] 박근혜도 4년 연속 수상해서 이게 가치가 있냐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박근혜는 대통령 이후에서야 본색이 드러나고 여러 문제가 밝혀져서 그렇지, 국회의원 시절에는 '선거의 여왕'으로 불릴 정도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고 대민 및 대외 이미지가 좋았다. 물론 지근거리에서 보면 의원 시절에도 공주 같은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을 일부 보여주긴 했지만 말이다.[20] 그러나 전북의 경우에는 오히려 친노 성향이 강했던 경향이 있고, 전남의 경우가 동교동계를 더 우선시하는 성향이 강했다. 국민의당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분리되면서 현재는 이곳마저도 전남 서부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세가 우세해졌다.[21] 정세균 본인은 18대 국회 내내 친노계의 수장 역할을 했지만 친노계 인사 중에서 위치나 정통성에서 더 우위에 있던 문재인이 등장하면서 친노계가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지지로 줄줄이 이동한 것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22] 박지원과 이 사람 관계는 상당히 묘하다. 사실상 동반자였으면서도 경쟁자.[23] 비슷한 예로, YS 키즈로 분류되는 인물의 경우, 노무현, 이명박, 이재오, 손학규, 이회창, 정의화 등이 있다.[24] 천신정 중 2명과는 달리 친노계로 분류 되며, 현재 친노 주요 파생 계파의 수장인 문재인, 정세균, 박원순과도 상당히 친한 사이이다. 그래서인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대통령 직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25] 이회창이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 세 곳에서 감투를 다 써본 것을 제외하면 정세균은 이 둘보다도 더 많은 공직을 역임했다. 무엇보다도 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을 역임한 사람은 정세균이 유일하다.[26] 쌍용은 그래도 외환위기를 겪은 뒤부터 쌍용자동차를 제외하고 대부분 잘 나가는 대기업으로 존재한다. 쌍용중공업은 STX가 되었다가 망하긴 했지만 이쪽은 강덕수 회장이 제 버릇 못 고치고 무리수를 둬서 그런 것이다. 나머지 계열사들은 거의 다 잘 산다. 원래 대부분이 알짜 계열사였다. 외환위기가 도래했는데도 김석원 회장은 정치한다고 나설 만큼, 그룹 경영진의 문제 등이 겹쳐 해체된 탓이 크다. 덤으로 쌍용차에 돈을 너무 많이 들였다. 쌍용차를 팔겠다고는 했지만 워낙 급하게 팔려다보니 협상이 지지부진했고 결국 경제위기를 맞자 그룹이 해체되었다. 반면 한보는 대치 은마아파트로 대박이 난 건설사가 마구 사세 확장을 벌인다고 아무거나 사먹고 뇌물을 쏟아부은 회사였다. 즉 내실이 부족했다. 결국 부동산 붐이 끝나고 외환위기로 순식간에 공중분해되었다. 쌍용과 달리 남은 계열사가 거의 없으니 말 다 했다.[27] 쌍용 뉴 코란도 소프트톱 모델이며, 개조 차량이 아닌 정식 발매 모델이다. 희귀한 차량이라 불법 튜닝(…) 아니냐고 하기도 하는데 순정 맞다. 희귀한 만큼 현재 중고가도 그냥 뉴 코란도보다는 높다. 국내에 SUV 소프트탑은 지프 랭글러 외에는 사실상 없기 때문. 하나 더 꼽자면 교황이 탔던 지붕 없는 카니발 정도.(?)[28] 19대 총선 출마 당시에도 같은 차량을 이용했다.[29] 이게 참 묘한 것이 노무현 탄핵 당시에는 탄핵이 가결되는 것을 막으려고 의장석에 앉아 있었는데, 박근혜 탄핵 시점에서는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언하기 위해 의장석에 앉아 있었다는 점이다.[30] 다만, 문재인은 참여정부 이후로는 2011년에 다시 정계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정계 밖에 있었다.[31] 재밌게도 대통령과 국회의장은 각각 국가의전서열 1, 2위이다.[32] 2003년 열린우리당으로 당적변경[33] 전반기 국회의장[34] 6선 의원에 한나라당 원내대표, 국회부의장까지 역임하는등 당시 보수의 거물이었던건 틀림이 없다.[35] 아무리 무상급식 투표로 역풍을 맞고 오래 지난 것은 아니지만 인지도나 이미지 면에서 강력한 보수 후보였음에는 틀림 없다.[36]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정세균은 호남, 특히 전북지역에서 민주당 코어 지지층을 거느리고 있는 민주당 핵심 인사다. 게다가 호남계 친노계랑 두루 친하기 때문에 이 사람은 공천과정에서 논란이 된 적이 없다.[37]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38]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39] 민주당과 신설 합당[40]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41]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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