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1962)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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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61E2B><colcolor=#fff> '''성명'''
김대식(金大植)
'''출생'''
1962년 8월 11일 (61세)
전라남도 영광군
'''최종 학력'''
일본 오타니 대학교 (문학 / 박사)
'''소속 정당'''

'''약력'''
동서대학교 일본어학과 교수
여의도연구원
자유한국당 해운대구 을 당협위원장
1. 개요
2. 생애
3. 정치 활동
4. 선거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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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교육자 출신 정치인이다. 자유한국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20대 원장을 지냈다.

2. 생애


1962년 전라남도 영광군 염산면 옥실리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후 어릴 때 부산직할시(현 부산광역시)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경남고등학교, 동의대학교 일어일문학과, 한남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 석사, 일본 오타니 대학교 대학원 문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1989년부터 1995년까지 경남정보대학교 일본어학과 교수를 지내다가 1995년부터 동일 재단 산하의 동서대학교 일본어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3. 정치 활동


2007년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분과위원회 인수위원으로 정치에 입문하였다. 2009년 2월 경향신문 기사에 의하면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 외곽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의 멤버로서 친이계였다. 2008년 6월부터 2010년 3월까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지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전라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현직 도지사인 민주당 박준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호남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다는 강력한 역메리트에도 불구하고 '''13.39%의 경이로운 득표율로 2위를 차지'''하여 모두를 감탄케 했다. 이는 현 한나라당 계보 정당의 전남지사 득표율 중 2위다.[1][2] 고향인 영광과 무안, 함평에서는 20% 이상을 득표하여 전북지사 선거에서 18%대 득표로 낙선한 정운천과 함께 한나라당의 호남 진출을 이뤄낼 기대주로 평가받았다.
이후 2011년 1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부산 사상구 공천을 신청하여 호남 사람들에게 '''한나라당이 그럼 그렇지'''라는 냉소를 들어야 했다. 본인 입장에선 사상구 터줏대감 권철현주일대사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지 얼마 안되어 출마 준비가 안된데다, 지역구 현역 의원 장제원이 친이계라 박근혜 비대위에서의 공천에서 불리하다는 것을 노리고 새누리당 텃밭 공천을 신청한 것으로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겠지만, 전술했듯이 본인도 친이계의 일원이다.[3] 그러나 당시 민주통합당에서 사상구 지역구에 출마한 사람은 '''다름 아닌 문재인'''이었고, 새누리당은 어차피 문재인을 이기기 어려울 거라면 껄끄러운 친이계 대신에, 일종의 논개작전을 쓰자는 마인드에서 손수조를 공천한다.
2017년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체제가 출범하자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임명되는 등 대표적 친홍계로 꼽혔다.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있었던 2018년 4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을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 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하였다. 전임자인 배덕광 의원이 엘시티 게이트에 연루되어 구속되는 바람에 부산 내 자유한국당에 대한 여론이 굉장히 안 좋아졌고,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윤준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 바람에 여의도연구원장이 공석이였다.
이후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2년 전 출마했던 해운대구 을에 미래통합당 후보로 공천 신청을 했으나 김미애 후보가 단수추천되며 공천을 받지 못했다.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라남도지사)

123,548 (13.39%)
낙선 (2위)

2018
2018년 재보궐선거 (부산 해운대 을 국회의원) [4]

30,900 (35.01%)
낙선 (2위)


[1] 1위는 1회 지선 당시 민주자유당 전석홍 후보가 기록한 26.49%. 그런데 1회 지선은 민자당과 민주당의 양당 체제였던데다, 이때 민주당은 김대중이 아직 전면에 나서기 직전이어서 호남 몰표가 '''상대적으로 덜하던 시기'''였다.[2] 이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전남지사에 출마했던 이중효 후보는 아예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으로 고전을 겪던 통합진보당 이성수 후보에게도 밀리며 3위인 9.5%를 기록했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자유한국당이 지원자가 없어서 전남지사 후보 자체를 공천하지 못했다.[3] 반면 같은 지방선거에서 전북지사에 낙선한 정운천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타이틀로 기어코 당선된다.[4] 전임자 배덕광 의원직 사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