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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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농업인 출신 관료, 정치인이다.
제20대 국회 당시, 전북의 유일한 새누리당 출신 국회의원이자, 단 한 명 뿐인 전북 지역의 미래한국당 국회의원이었다.[2] 또한 단 둘 뿐인 호남 지역 보수정당 국회의원 중 하나였다. 범친이 중진들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새로운보수당에 속하기도 했다.[3] 하지만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가 아닌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당선되면서 이 타이틀은 없어지게 됐다.
2. 생애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출신으로 익산시의 남성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농경제학과와 원광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전공한 후 전라남도 해남군으로 내려가 약 30여년을 농부로 보냈다. 그러다 1991년 키위가 농산물 수입 자유화 대상에 포함되어서 큰 타격을 받았는데, 이때 국내산 키위를 참다래로 명명하고 "참다래유통사업단"이라는 농민 조직을 결성해 큰 호평을 받았다. 물론 도중에 저장 창고에 불이 나 큰 피해를 보기도 하는 등 고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노력으로 김대중 정부에서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하였고, 그의 업적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까지 하였다.
2.1. 정치 활동
2.1.1. 정계 입문
그러다 2007년 17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명박 후보의 농업문제의 조언을 해 주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명박 정부의 초대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그러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문제에서 특정 집단의 검증되지 않은 비과학적 선동으로 인하여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급기야는 야당 의원들의 주도로 해임건의안이 상정되는 파란을 겪다 당해년도 8월 6일 퇴임하였다. 특히 혐중성향과 친대만성향이 가장 강한 조경태가 자국민 우선주의자답게 30개월건에 매우 격노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한솥밥을 먹고 있다.
이후 2010년 제 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전북지사에 출마하여 18.2%의 득표율로 민주노동당 후보와 진보신당 후보의 득표율을 합친 수치보다도 훨씬 선전하는 쾌거를 이루었고[4] ,[5] 19대 총선에서는 35.79%를 득표하는 등 선전[6] 했다.
2.1.2. 전라북도에서의 당선
20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최형재 후보를 재검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111표차로 꺾고 당선되었다. 개표 중반까지는 정운천 쪽이 4천 표 가까이 앞서나갔는데 중후반부터 최형재 쪽이 급속히 치고나오는 바람에 다들 가슴을 졸였다고 한다.[7] 이렇게 된 것은 개표 후반에 개봉된 사전투표함에서 민주당 표가 대거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당선될 수 있었던 건 전주시 을 선거구[8] 에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돈이 많은 부유층, 상류층들이 많이 살아서 지역에 해준 것도 없이 의석만 차지하는 민주당계 정당의 독주 구도를 깨야 한다는 비토 심리도 있었고, 농촌진흥청과 농수산대학 등 농업 관련 공공기관들이 많이 있는 혁신도시 통근자들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농업 전문가인 데다가 전직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었던 정운천을 밀어줘서였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새누리당 소속의 호남 출신 인사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이정현과 많이 묶여서 언급되곤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정현은 친박 성향인데 반해 정운천은 비박 성향이고[9] , 정운천이 석패율제[10] 전도사로 유명한 것과는 달리 이정현은 석패율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냈다거나''', 정운천은 탄핵에 찬성하는데 반해 이정현은 탄핵 반대의 선봉에 서는 등 두 사람의 노선은 완전히 다르다.'''
물론 선거운동 때 새누리나 계파색을 최대한 지우고 지역일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은 같다.[11] 순전히 본인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것도 뜯어보면 판이하게 다른 것이, 이정현은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가서 착실하게 지역일꾼 여론을 쌓아온 반면, 정운천은 각종 선거에 출마하여 사람들과 만나는 방식으로, 쉽게 말해 거의 맨땅으로 헤딩하는 수준으로 지역일꾼 여론을 쌓아왔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 또 이정현은 박근혜 정부 이래로 청와대 특보도 맡는 등 푸시를 많이 받은 반면에 정운천은 그러한 지원도 전무하다시피했다. 중앙당 지원은 도움이 안될 것이라고 일절 받지 않았다. 만약 새누리색이 강조되면, 범야권의 결집, 단일화로 인해 당선 가능성이 크게 낮아지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같지만 실제로도 중앙당에서 지원을 나온 19대 총선에서는 낙선했다. 게다가 20대 총선 때는 실제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정운천 당선인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전주에 와서 '''"전주시민 여러분, 배알 꼴리지도 않습니까!"''' 드립을 치는 바람에 정운천 당선인이 '''"아, 낙선이구나."''' 했다고 한다. 김무성 대표가 이후 사과를 했지만 사과 발표는 대리인이 하는 등 무의미한 사후약방문이었다고. 김무성 대표의 저 드립으로 잃었을 표를 생각하면... 드립이 없었을 경우 초박빙보다야 조금 더 표차를 낼 수 있었을 것 같지만, 어쨌든 뭐 결국 당선은 되었다.
다만, 이렇게 커다란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의 PK 대약진과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로 언론에서 크게 다루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다만, 이정현처럼 친박 덕질로 호남 사람들을 격분시킨 것도 아니고 정치인으로서 기본적인 소양이 있으며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기에 재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표를 더 받을 수도 있다. 게다가 지역구가 수도권이라면 몰라도 보수 정당의 불모지인 호남 지역인 까닭에 정당 지지율이 아닌 개인 지지율로 당선된게 크고 이 개인 지지만 잘 지켜내도 재선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긴 하다. 전주시 한정이지만 일을 제대로 잘하는 사람이라고 칭찬이 자자한지라 앞으로 어느곳에 출마해도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이 대다수다.
더군다나 광우병 파동 때 자신을 가루가 되도록 질타했던 조경태 의원이 새누리당으로 옮겨오면서 둘의 미묘한 관계 또한 흥미거리라고 할 수 있다.
초선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페이스북 같은 SNS 관리도 직접 챙기는 등 시민들과의 소통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자신에 대한 비판까지도 겸허히 수용하는 모습을 보면 일단 정치인으로써 기본적인 소양은 갖췄다고 할 수 있을 듯.
첫 행보는 나쁘지 않다. 중앙당 지도부에게 호소한 끝에 탄소법과 국민연금공단 일괄 이전을 통과시켰기 때문. 신문기사에서는 이러한 그의 행동을 과장되게 부풀려서 여러 시민들이 SNS를 통해 항의했지만, 본인 또한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인지하고 답하면서 유연하게 대처했다.
2.1.3. 바른정당에서
새누리당에 소속되어있으면서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강력히 주장하는 국회의원 중 한 명이었고, 2016년 12월 27일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그 후 2017년 1월 중순에 정식 출범한 바른정당에 합류했다.
2017년 5월 2일 바른정당을 탈당한 비유승민계 의원들과 함께 탈당할지 고심했으나, 5월 4일 지역구 민심을 반영해 탈당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17년 6월 13일 바른정당 당권 출마를 선언하였으며, 18일 호남지역 당원투표에서 1위를 하였다. 최종적으로는 이혜훈, 하태경에 이어 3위를 기록하여 당 대표는 되지 못했지만 최고위원에 올랐다.
2017년 11월 2차 집단 탈당때는 참가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탈당파를 비판하는데 앞장 선다. 오히려 유승민, 하태경, 지상욱, 이혜훈과 함께하며 자강파에 속한 의원이 되었다. 이후 3차 전당대회에 참가하여 3등을 하여 최고위원직에 올랐다.
4인과 오신환 원내대표와 함께 국민의당 통합파인데, 아무래도 지역구가 호남 지방이기 때문에 국민의당과 통합을 하더라도 크게 무리가 없고 오히려 자유한국당에 복당하는 것보다 표를 얻기 더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12] 덕분에 만일 통합 정당에서 또 다시 엑소더스가 일어난다 해도 앞선 5인과 당에 남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하태경 최고위원과 함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특히 국민의당 내에서 친안계 중진이기도 한 김관영 의원이 옆 동네를 지역구로 갖고 있기 때문에,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바른미래당의 전북권 벨트를 형성한 것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13]
2.1.4. 바른미래당에서
바른미래당 출범 후 바른정당 몫으로 최고위원직을 유지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참패 이후, 자유한국당 복당파로 거론되었으나 2018년 9월 2일 바른미래당 당 대표 전당대회에 출마하였다. 1차 선거에서는 장성민 전 의원과 연대하였으나 정작 단독으로 2차 선거까지 들어갔으나, 안타깝게도 최고위원에도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다.[14]
2019년 5월 3일,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호남선 라인 순회 장외투쟁 중에 전주역에서 우연인듯 우연이 아니게(?) 만났다(!)[15] 이로써 한국당 복당설에 무게가 좀 더 실린다.
전주를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상산고등학교의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재지정 탈락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정 의원은 "70점대를 맞은 전국의 다른 자사고들은 재지정되고, 79.61점을 맞은 상산고만 탈락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면서 "누가 봐도 결과를 정해놓고 룰을 만들었다"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전라북도교육청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게 재지정 취소 부동의를 요구하였다. 정 의원 뿐만 아니라 민주평화당 박주현[16] 수석대변인과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전 국회의장 등 전북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들이 상산고 탈락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
이후 정 의원은 '전주 상산고 자사고 지정 취소 부동의 요구서' 서명을 주도했고, 그 결과 전체 국회의원(297명)의 과반인 151명의 서명을 받아 교육부에 전달했다. 정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 6명, 자유한국당 106명, 바른미래당 23명, 민주평화당 10명, 우리공화당 1명, 무소속 5명 등이 부동의 요구서에 서명했다. 정 의원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이 서명에 참여했다는 것은 그만큼 전북교육청의 상산고 평가가 잘못됐다는 데 여야 가릴 것 없이 공감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
정 의원의 이런 노력 덕분인지 교육부는 상산고등학교의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 때문에 이념편향적 '정책 폭주'를 막아내 정 의원의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교육부의 부동의 결정 발표 직후, 전북도민·전주시민과 상산고 학생·학부모들이 정 의원에게 수백 건씩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의원은 별도의 기자회견을 하지 않고 출입기자들에게 입장문만 발송해 겸손하다는 평을 얻었다. #
2.1.5. 새로운보수당에서
2020년 1월 3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새로운보수당에 입당했다. 새로운보수당의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2.1.6. 미래한국당에서
새로운보수당에 입당했지만 보수통합으로 2020년 2월14일 새로운보수당을 탈당하고 미래한국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북 전주시을 불출마를 선언하고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출마할 예정이다. 새로운보수당 시절 나온 여론조사 기사에 의하면, 민주당에서 누가 나와도 정운천은 앞설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 관계도 있는 듯 하다.[18] 결국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순위 18번을 받게 되었다. 당 득표율에 따라 아쉽게 낙선할 수도, 겨우 당선될 수도 있는 순번이다.
당내 공천 잡음으로 3월 19일 최고위원직을 사퇴하였다. 이후 원유철 대표 체제에서 하루 만에 다시 최고위원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비례대표 명단이 수정되었는데, 기존의 18번에서 16번으로 재배치되면서 당선권에 들어왔다. 결국 당선되면서 재선에 성공했다.[19]
3. 논란
3.1. 오지 발언
국정감사회장에서, 대한민국 청년 10만명 정도를 오지에 보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했다. 비판받는 측은 KOTRA 사장 김재홍이다. 물론 맥락상으로는 청년 10만명을 오지로 그냥 보내버리라는 뜻이라기보다는 그런 곳에 이주시켜서 농업 발전을 도모해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뜻에 가까워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이가 없는 수준이다. 거기 가는거 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거기서 뭘 해먹고 살지는 모르는 일이다.''' 다만 정운천이 농업을 전공했고 원래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임을 감안한다면, 차라리 국내 이주를 주장했다면 좀 더 나았으련지도 모를수도 있겠다. 어디까지나 위 발언에 비해서 나을 뿐이다. 그리고 지칭한 나라들을 오지(奧地)로 지칭했는데, 교통이 불편하고 문화의 혜택이 적은 곳을 이르는 벽지, 두메산골과 유의어로 쓰이는 단어라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우방인 해당 국가들을 비하하는 발언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제가 보기에는 '''대한민국의 청년 철벽을 해결하는 방법'''은, 개발도상국가의 취업인력이 엄청 늘어나거든요. 우리나라에서 돈 한 100만 원만 가지고 캄보디아 가면 한 1,000만 원 이상의 효과가 있어요. 그래서 아프리카로 가 보면 나이지리아 같은 데 또 콩고, 동남아에 보면 캄보디아 이런 '''전 세계 오지에 우리 청년 한 10만 명쯤 보냈으면 좋겠어요.'''
2016년 10월 산자위 국정감사
이미 한국 정부는 과거에 젊은층들을 오지로 보냈다가 백기투항을 한 사례가 있다. 그 게 광주대단지사건이다.
3.2. 바른정당 집단탈당 시도 및 번복
2017년 5월 2일, 탄핵 정국 이후 자유한국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에 입당했던 선두주자인 정운천이 도로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으로 복당을 고려해 논란이 일고 있다. 아무래도 유승민 후보가 갖은 노력에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자유한국당이 규모가 월등히 큰 만큼, 현실적인 결정을 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에 대한 비토 정서가 매우 큰[20] 자신의 지역구 전주시 을의 반대, 탈당 의원 13명에 대한 비난 여론이 겹쳐 결국 황영철 의원과 함께 이를 취소하고, 바른정당에 남기로 결정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21]
그러나, 이번 일로 인해 비박 성향이 강하고 자유한국당의 성향과 일부 달랐던 것으로 여겨진 정운천 의원의 이미지에 다소 타격이 갈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재탈당파에게 "철새"의 이미지가 생길 가능성도 많고, "번복할 일을 도대체 왜 섣부르게 결정했는가"라는 비판도 생기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탈당을 확정한 13명에 비하면 덜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나마 대선때 열심히 돌아다닌데다 이후 2차 전당대회 등을 통해 여러모로 당내 활동을 열심히 한 편이라 당 내 여론은 어느 정도 좋아진 편.
4. 기타
- 의외의 행보가 있는데 대한 닭싸움 협회 회장이다. 닭끼리 싸우는 투계가 아니라 사람끼리 하는 닭싸움을 주관하는 단체이다. 실제로 전당대회에서 "꼬끼오"로 대놓고 소개할 정도. 당 대표 후보 토론에서는 꼬끼오 + 마크롱 + 정운천이라며 자신을 꼬끼오 마크정이라고 불렀다.
- 한식재단(현재는 한식진흥원) 출범 당시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5. 소속 정당
6. 선거 이력
7. 둘러보기
[1] 인촌 김성수 생가에서 태어났다.#[2] 바른미래당 시절에는 정운천 혼자 바른정당 출신이었으며, 김관영은 국민의당 소속 국회의원 중 유일하게 바른미래당에 잔류한 인물이다.[3] 기존 친이계 중 십중팔구는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고, 구 친이계 중 새로운보수당에 남은 사람은 정운천과 정병국 둘 뿐이었다.[4] 민주당 김완주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5] 다만 이때 득표율 10%만 넘으면 LH공사를 반드시 지키겠다고 공언했었지만, LH공사는 진주로 이전해서 아직도 이를 갈고 있는 전주시민들도 많다.[6] 민주통합당 이상직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7] 당시 개표방송을 보면 중간에 당선 유력이 여러 번 떴다가 지워지는 등 대혼전 양상이었다.[8] 참고로 전주시 갑 선거구는 삼천동, 효자동, 서신동을 제외한 나머지 완산구 일대와 덕진구 인후 3동이고, 병 선거구는 인후 3동을 제외한 덕진구 전부다. 을 선거구는 삼천동, 효자동, 서신동이다.[9] 정확하는 친이 성향이다. 바른정당 창당 당시에는 바른정당 탈당사태의 명단에 포함된 범친무로 분류되었지만 나중에는 완전히 친유까지는 아니지만 유승민처럼 자강파를 따르는 범친유로 전향했다.[10] 특정 지역에서 출마하는 후보를 비례대표 후보에 같이 등록하고, 이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낙선하게 될 때 그 후보를 비례대표로 당선시켜주는 제도이다.[11] 사실 이건 민주당도 사정이 비슷하다. 과거 대구 동구 을에 출마한 열린우리당 이강철 후보는 벽보 색을 한나라당과 같은 파란색으로 놓고 당 로고를 잘 안보이게 배치, 사진 뒤에 태극기를 배치해 분명 열린우리당 후보인데 한나라당 후보처럼 보이는 방법을 쓴 적이 있었다. 물론 지역 일꾼 이미지도 강조했었다.[12] 정운천은 전북권에서 유일한 보수정당 의원이지만 당선을 자신 스스로의 힘만으로 하였고, 애당초 자유한국당의 우파색보다는 옅었다. (심지어 바른정당 국회의원 내에 하태경 다음으로 중도에 가까운 인물로 꼽히기도 했다.)[13] 다만 김관영 의원은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강제 사보임으로 인하여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고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하였다.[14] 3위는 이준석.[15] 기사 제목들은 이렇게 많이 나왔지만, 일부러 시간과 장소를 맞췄다는 것이 중론이다.[16] 바른미래당 소속이지만 민주평화당에서 당직을 맡고 있다.[17] 주로 효자1~2동, 삼천1~2동의 오래된 주택가와 삼천3동의 서남쪽 농촌지역에서 정운천 후보가 최형재 후보를 크게 이겼는데, 참고로 효자1~2동과 삼천1~2동의 주택가, 삼천3동의 서남쪽 농촌지대의 거주자들의 연령대가 50대 이상이 가장많고, 해당지역 특성상 역대 선거에서도 민주당계 정당의 지지세가 전주시내에서 TOP 5에 들정도로 높은지역인걸 감안했을때 민주당계 지지층들 이탈표가 존재했다고 볼수있다. 다만, 관외사전투표와 아파트단지가 밀집하고, 신도시 개발이 진행된 서신동과 효자4동의 선거일 투표에서는 정운천 후보가 최형재 후보한테 패했고, 삼천동지역과 효자1~3동의 표차덕에 111표차(0.1%P)로 신승한것이다.[18] 지난 총선 때도 정운천 개인의 노력(37.53%)도 있었지만 민주당계 정당표가 더불어민주당(최형재, 37.43%)과 국민의당(22.84%)으로 나뉘었던 반사이익을 본 경향이 컸다. 거기에 당선된 시점 당시에는 집권여당이였지만, 이후 정권교체로 야당소속이 되었고 거기에 지역구 특성상 보수정당이 온갖방법을 동원한다해도 득표율이 30%대에 언저리에 불과한점을 비출때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다시 원상복구 된터라 당선가능성은 희박하다. 뿐만아니라 지난총선때는 어부지리 측면이 강했지만,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당내경선에서 탈락한 이상직 당시 국회의원의 지지자들이 경선에서 승리한 최형재 후보측에 대한 지원을 외면했다는 이야기도 나왔으니 당시 전주시 을 선거구는 더불어민주당 전주시 을 지역위원회 내부의 갈등과 직전 국회의원이던 장세환 전 국회의원의 국민의당 출마로 더불어민주당이 지역구를 새누리당에게 내주게 된것이다. 뿐만아니라 당시 지역구내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지지층들[17] 중에서도 아무리 새누리당이 밉지만, 이번 한번만은 인물보고 찍어보자라는 기대심리감과 정운천에 대한 동정론도 있었던건 사실이다.[19] 본선에서 미래한국당이 19번 순번까지 당선인을 배출 하면서 원 순번으로도 당선이 가능했던 셈이 되었다.[20] 당선도 사실상 중앙당 지원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한 것이다.[21] 그러나 황영철은 입장을 다시 번복하고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다.[22] 정운천이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건 2008년 8월 5일까지고, 정운찬이 국무총리에 취임한 날짜는 약 1년 후인 2009년 9월 29일이었다.[23] 국민의당과 신설 합당[24] 미래통합당에 흡수 합당[25] 3번 선거 중 첫 당선[26] 2016.12.27 새누리당 탈당
2017.01.24 바른정당 창당
2018.02.13 바른미래당 창당(신설합당)
2020.01.03 바른미래당 탈당
2020.01.05 새로운보수당 창당
2020.02.14 새로운보수당 탈당
2020.02.14 미래한국당 입당[27] 2020.05.27 미래한국당, 미래통합당으로 흡수 합당
2017.01.24 바른정당 창당
2018.02.13 바른미래당 창당(신설합당)
2020.01.03 바른미래당 탈당
2020.01.05 새로운보수당 창당
2020.02.14 새로운보수당 탈당
2020.02.14 미래한국당 입당[27] 2020.05.27 미래한국당, 미래통합당으로 흡수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