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연구원

 


[image]
'''여의도연구원'''
<colcolor=#bf282b> '''영문명'''
The Yeouido Institute
'''한문명'''
汝矣島硏究員
'''설립일'''
1995년 2월 3일 (여의도연구소)
'''명칭 변경'''
2013년 10월 10일 (여의도연구원)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4길 12 ,3층 (여의도동, 남중빌딩)

'''소속'''

'''이사장'''
김종인[1]
'''원장'''
지상욱
'''홈페이지'''
http://www.ydi.or.kr/
'''SNS'''

1. 개요
2. 전성기
3. 쇠퇴
4. 개혁 논의
5. 논란
6. 여담
7. 조직
8. 역대 연구소/원장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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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의도연구소
,1995~2013,

'''여의도연구원'''
,2013 ~ 현재,

국민의힘 산하의 정책연구소[2], 즉 싱크탱크로 줄여서 '''여연'''이라고 부른다. '''국내 최초의 정당 정책 연구원'''이기도 하다.
1994년 12월 19일 민주자유당은 재단 설립 계획을 발표하고[3] 21일 당무회의에서 의결했다.[4] 1995년 2월 3일 재단법인 설립을 허가받았고[5], 6일 현판식을 진행했으며[6] 4월 15일 개소식을 가졌다.[7] 민주자유당 과 그 후신인 제1 보수 정당[8] 들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 오고 있으며, 2013년 10월 10일 여의도연구'''소'''에서 여의도연구'''원'''으로 승격되었다.
2020년 2월 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 과 합당하면서 미래통합당의 싱크탱크가 되었다.[9] 현재는 국민의힘의 싱크탱크다. 정책 개발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각종 연구 활동 및 여론조사를 하고 있으며, 해외 교류 활동의 일환으로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10], 독일의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11] 등과 협력하고 있다.[12]

2. 전성기


여의도연구원의 압도적 비교 우위는 선거 여론조사 기능이었다. 그러나 엄밀히는 처음부터 선거 여론조사가 여의도연구원 고유의 기능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신한국당 부설 기관인 사회개발연구소라는 곳에서 여론조사를 전담하고, 이 결과를 당 수뇌부에 직보하거나 본인들에게 유리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선별하여 언론에 흘리는 형식이었는데, 나중에 이 기관이 여의도연구원[13]에 통합되면서 여론조사 기능이 확충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여의도연구원은 김영삼 정부 때인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시절부터 시중의 일반적인 선거 여론조사에서 주로 쓰이던 전화면접 방식에서[14] 과감하게 탈피한 ARS 위주의 여론조사를 도입하여 대단히 높은 선거 적중률을 보였다고 알려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여의도연구원은 지역별로 양질의 전화번호 표본을 대량으로[15] 확보하고 있었고, 여론조사 결과에 '''가중치를 다각도로 부여하는 노하우가 남달랐'''으므로, 여론조사 결과의 품질 또한 상당히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정가, 언론계 등에서도 '여의도연구원의 자체 ARS 여론조사는 뭔가 다르다'는 인식이 한때 널리 퍼져있었다.
2016년 치뤄진 20대 총선 당시 시중에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보수 여당의 압승으로 나왔을때도, 여의도연구원은 자체 여론조사를 통해 여당의 패배를 '''예견'''하고 있었다고 한다.[16][17] 심지어는 총 의석 수가 125~127석 정도라는 예상을 했는데[18], 실제로 122석을 받았다.[19] 당시 야당에서조차 과반, 심지어 타 언론에서는 180석 운운하던 혼란의 20대 총선에서 사실상 거의 정확하게 예측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수도권에서 35석 확보도 장담하기 힘들다고 예측하기도 했는데, 서울 12, 인천4, 경기 19석으로 정확히 35석을 얻었다. #
또한 정당 최초의 정책 연구소(싱크탱크)답게 조직 규모가 크고 정책 자료의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정당 산하라고 하여 모(母) 정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정책 보고서가 아닌, 냉철하고 현실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한 보고서를 생산한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그 명성에 걸맞게 많은 보수의 정책통 혹은 선거 전략가들이 여의도연구소를 거쳐갔다.[20] # 5대 유승민 연구원장(당시 연구소장)의 재임 기간은 2000년 2월 14일부터 2003년 9월 2일이었고, 최장수 원장이었다. 유승민 전 연구원장에 따르면, 그가 취임할 때 즈음의 여의도연구소는 한나라당 당사 건물 한 개 층을 쓰며, 상근직원이 10명 정도 되는 초라한 곳이었다고 한다.

3. 쇠퇴


2000년대 중반 이후 무선 휴대전화의 보급률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동시에 점점 유선 집전화의 보유율과 사용률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면서, 여의도연구원에서 자체적으로 보유한 여론조사용 전화번호 표본으로 버티는 것에 한계가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과거 여론조사는 주로 유선 집전화 위주로 이뤄졌는데, 어느덧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보유하고 다님에 따라, 과거의 방식대로의 여론조사 비교우위가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시대의 변화에 따라 2010년 지방선거 즈음의 시점에서부터, 유선전화 위주로 여론조사를 시행하던 시중의 여론조사가 정확한 지지율을 도출해 내지 못하는, 이른바 선거 여론조사 참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후 기존의 KT 전화번호부 데이터베이스 방식의 여론조사에서 탈피하여, 전화번호 무작위 걸기[21] 방식의 여론조사 기법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전국 단위의 조사에서는 어느 정도 신뢰성을 확보할 수가 있었지만, 여전히 지역을 특정하여 수행하는 여론조사에서는 신뢰성 높은 조사가 불가능했다.
이러한 방법론적 한계는 일반적 여론조사 업체뿐 아니라 여의도연구원도 피해갈 수 없었다. 자체적으로 보유한 무선전화 번호 표본이 있긴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여야 합의사항에 의해 도입된 제도가 바로 휴대전화 안심번호 여론조사였다.[22]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2015년 즈음 당시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의 합의로 선거법이 개정되어 도입된 제도인데, 여의도연구원 자체 여론조사 능력의 현실적인 한계를 탈피하기 위해서 추진한 안건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안심번호 여론조사 제도의 도입 이후에는, 과거 여의도연구원 특유의 여론조사 능력 비교 우위가 전면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심지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까지만 해도, 정당의 비공표 자체 조사에서만 안심번호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는 시중의 일반 여론조사 기관에서도 안심번호를 사용하여 언론 공표용 여론조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어, 누구나 제한 없이 충분히 신뢰도 높은 여론조사를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23] 실제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는 휴대전화 안심번호를 활용하여 조사되고 공표된 시중의 여론조사들이 대부분 선거 결과와 들어 맞았다.
또한 여의도연구원의 질적 저하는 단적으로 '맨파워'에서도 드러난다. 싱크탱크의 역량이란 결국 인적 구성에 의해 좌우되는 것인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발표한 '2019년도 정책연구소 연간 활동실적' 자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에서 '''박사급 연구원 29명'''을 포함한 총 73명의 인력이 종사하고 있는 것에 반해, 여의도연구원의 경우에는 '''박사급 연구원 6명'''에 불과하며 총 인력 규모 또한 56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10여 년 만에 두 당의 맨파워가 완전히 반대가 된 것이다.#
한때는 정치권에서 가장 강력했던 싱크탱크가 이토록 급격히 망가진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당의 재정 문제일 가능성도 있는데, 돈을 많이 들일 수록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높아지고, 좋은 연구 인력을 많이 보유할 수록 훌륭한 정책 보고서가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한때 가장 부유한 정당이자 집권 여당이던 민주자유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시절에는 돈 값 하는 결과를 냈지만, 당사를 이전할 정도로 가난해진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시절로 와서는 급격히 망가져버린 것. 그리고 이것이 여론조사 능력 뿐 아니라, 여의도연구원의 전반적인 수준 자체의 저하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많다. 이것은 이전부터 여의도연구원의 실질적인 권한은 당대표가 이사장을 맡는 관행에서 기인된 것이며 현역 국민의힘 의원들은 여연이 정치인들의 정치입문 공간으로 변모되려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연이어 전국 단위 선거에서 승리하며 집권에도 성공하고,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의 규모 또한 백만 명을 넘겨 재정 사정 또한 넉넉해지면서, 민주연구원이 정치계에서 가장 강력한 싱크탱크로 탈바꿈 한 것과 정확히 비교되는 것이다.

3.1. 7회 지선 참패


2017년 대선 이후, 홍준표 대표 체제를 거치며 여의도연구원이 자유한국당의 당 전용 어용 기관으로 전락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례로 연구원의 규모가 과거에 비해 크게 작아졌으며, 특히 여의도연구원에 종사하는 연구직 직원들의 숫자 또한 상당히 줄어들었던 것이다. 한편 양적인 규모가 축소됨에 따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정책 생산 능력과 정치 전략 제시 능력, 여론조사 분석 능력의 붕괴가 수반되었다. 이런 결과가 결정적으로 드러난 것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였다. 특히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불과 2주 앞두고 홍준표 대표가 한 '''"여의도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라 보수 야당이 광역단체장 6곳에서 최대 9곳까지 승리할 것임을 예상하고 있다"'''라는 주장, 그리고 비슷한 시기 김대식 여의도연구원장의 '''"우리는 (광역단체장) 6석을 반드시 먹고 '+α'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라는 주장과, '''광역단체장 당선자 2석'''이라는 실제 선거 결과를 비교해 보면, 여의도연구원의 여론조사의 기능이 대단히 변질된 것이 맞아 보인다. 일례로 "근년에 들어 당 대표가 실력보다는 자기와 친한 인물을 책임자로 보내고, 여론조사나 보고서 등을 사적인 용도로 많이 사용하는 바람에 많이 망가졌다. 여론 조사를 수행하는 ARS 기계를 연구원장이 아니라 사무총장 소속으로 두고 있는 것은 단적인 예다. 그래야 총선 때 당 대표가 개입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라는 여의도연구원의 전 고위관계자의 증언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심지어 홍준표 대표는 지방선거를 몇 달 앞둔 2017년 11월 10일, 어느 공개 행사에서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를 우리는 아예 안 믿는다. 그들이 확보하는 무선 회선이 20만 개라고 들었다. 우리 여연이 확보하는 무선 회선은 1200만 개다"라고 주장했는데, 사실 RDD 방식의 여론조사가 정착되고, 신뢰도 높은 안심번호 시스템까지 선거 여론조사에 도입된 시대에는 '무선 전화번호 자체 보유량이 몇 개'라는 건 아무 쓸모도 없고 의미도 없다. 오랫동안 데이터를 확보하여 진작에 RDD 방식을 도입한 한국갤럽이나 안심번호까지 도입한 리얼미터도 자주 틀리는 마당에 여의도연구원과 당 대표가 여전히 10여 년 전 수준의 인식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여의도연구원의 몰락을 조명하는 비판 기사가 많이 나왔다. # 또한 홍준표의 최측근이자 여의도연구원의 원장인 김대식2018년 재보궐선거 부산 해운대 을에 전략공천을 받아 출마하면서, 지방선거 전략 수립에 절대 필수적인 여의도연구원장 직이 공석이 되어 자유한국당의 선거 참패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3.2. 제21대 총선 참패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운동 돌입 전날인 2020년 4월 1일, 성동규 여의도연구원장은 M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미래통합당이 지역구에서 130석 이상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총선 사전선거 당일인 10일 금요일에는 유튜브 고성국TV에 출연하여 "지역구 전체 253석 중 대략 125~130석 정도를 예상한다"라고 주장하며,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를 포함한 미래통합당의 전체 예상 의석 수를 142~150석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총선의 실제 결과와 비교해 보면, 이것이 당시 여의도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사실대로 말한 것인지, 아니면 밴드왜건 효과를 노린 블러핑이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러던 중, 사전선거 종료 직후이자 본투표 직전 주말인 일요일, 다급히 여의도연구원 자체 분석으로 김대호, 차명진 등의 막말 파문 여파로 인해 최악의 경우 지역구 80석, 비례 16~17석에 그칠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13일~14일 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 박형준이 기자회견, KBS 라디오 인터뷰 등에서 '개헌저지선(101석)이 위태롭다'며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총괄선대위원장 김종인은 이를 엄살이라고 일축했으나, 실제 선거 결과 지역구 84석, 비례 19석, 도합 103석이 되어, 최악의 경우가 현실이 되었다.
제21대 총선 이후, 여의도연구원의 여론조사 및 판세분석 내용이 당 내에서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서울 노원구 병에 출마했던 이준석 후보는 낙선 후 KBS와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본인이 당 지도부 최고위원임에도 불구하고) 여의도연구원의 지역구 여론조사 보고서를 받아보지 못했다", "여러 경로로 들은 것이 있는데 이번 선거에서 여의도연구원이 제 기능을 했는가를 놓고 굉장히 강한 의심을 하고 있다", "(여의도연구원이) 과거에 선거 지원하던 기능과 지금 선거 지원 기능이 굉장히 다르다. 판세 분석도 그렇고 정책적인 지원도 거의 없었다"고 증언하였다. 다만 여론조사 결과가 부정적(혹은 절망적)이어서 분위기 차원에서 공유를 안 해준게 아니냐는 추론도 덧붙였다. 한편 여의도연구원이 당 지도부의 입맛에 맞춰서 총선 판세 분석을 왜곡하여 보고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미래통합당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여의도연구원의 자체 총선 판세 분석에서 계속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자, 당 지도부 의중에 맞춰 표본을 유리한 쪽으로 바꿔서 보고했다는 것.#
2020년 5월 15일, 미래통합당 오신환, 유의동 의원이 개최한 총선 평가 토론회에 참석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21대 총선 참패 원인에 대해 여의도연구원을 거론하며 "통합당 싱크탱크가 여의도연구원이었는데, 여의도연구원이 망가졌다", "예전에는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여론조사도 틀리더라"고 주장했다. # 한편, 5월 20일 심재철 의원 주최로 열린 '미래통합당 총선 패배 원인과 대책' 긴급 정책토론회에서는 여의도연구원의 이종인 수석연구위원이 "총선을 일주일 앞둔 4월 7일까지도 지역구에서 130석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미래한국당은 20석을 얻을 것으로 전망했다."라고 밝혔다. 또한 "총선이 임박해지면서 사정이 나빠졌다. 초 경합지역에서 열세 현상이 두드러졌다"며 "총선 1주일 전후한 시기에 특히 수도권 판세가 상당 부분 악화 추세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본투표 3일 전인 4월 12일 일요일, 박형준 미래통합당 선대본부장의 '개헌저지선도 위태하다'라는 갑작스런 발언까지는 아니어도, 여의도연구원 내에서도 판세가 굉장히 불리해졌음을 인지하고는 있었다는 소리였다.[24] 그러나 이미 본투표 2주일 전인 선거운동 돌입 시점부터 시중의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압승 양상이 충분히 나타나고 있었는데도, 정작 여의도연구원에서 무슨 이유로 본투표 5일 전인 사전 선거운동 시작일 4월 10일까지 자당의 과반 의석 획득을 자신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없었다.
한편 총선 기간동안 여의도연구원이 여론조사 분석이나 정책 개발 등에 투입한 자금 또한 더불어민주당에 비해 턱없이 적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이 제21대 총선 기간인 2020년 1월부터 5월 5일까지 약 50차례에 걸쳐 '국회의원 선거구 정치지형조사'와 판세분석 등에 약 26억원을 쏟아부었던 반면, 같은 기간에 미래통합당은 선거 여론조사에 약 16억원을 투입하는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심지어 이는 당내 경선 여론조사 비용은 제외한 수치였다. 또한 여의도연구원 자체의 지출 금액 역시 민주당의 민주연구원에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의도연구원은 약 16억 8600만원을 지출하여, 약 26억 7900만원을 사용한 민주연구원의 약 60% 수준에 불과했다고 한다.#
김종인 비대위 출범 이후 이경전 경희대 교수를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초빙하려 하였으나, 이 교수가 21대 총선 기간 중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관련 망언을 옹호하는 내용의 SNS을 게재한 것이 확인되어 논란이 되자 철회하였다.#

4. 개혁 논의


미래통합당에서 여의도연구원 '''해체'''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5월 25일, 연구원 실무 책임자도 배석한 당 실-국장 회의에서 주호영 원내대표는 당내 싱크탱크의 전면 혁신을 위해 해체를 각오하고 개혁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내정자 역시 당내 싱크탱크를 미국 헤리티지 재단이나 독일 아데나워 연구소와 같은 수준으로 재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
통합당 내 초선의원 11명의 모임인 '초심만리'도 여연 개선방안 5가지를 도출해 김종인 위원장에게 건의하기도 했다. ① 이사장을 당대표가 아닌 별도의 인사가 담당하고 여연원장은 전문가를 발탁해 임기를 보장하는 것, ② 여연원장을 '정책대표'로 명명하고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임명하는 것, ③ 여연과 정책위원회, 정책국의 역할을 명확히 분담하는 것, ④ 18개 정부부처에 대응해 분야별 전문성을 갖춘 국회의원과 외부 전문가로 '섀도 캐비닛'을 설치하는 것, ⑤ 정당에 대한 경상보조금 중 정책연구소에 배당되는 30% 가량을 온전히 연구 역량에 투입하는 것 5가지다. #

5. 논란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선거 기간에 돌입한 후, 편향된 여론조사를 진행한 사실이 드러나 선관위로부터 선거법 위반에 대한 경고 조치를 받았다. #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앞서서, 홍준표가 미등록 여론조사에서 김기현 울산시장 후보가 앞서고 있다는 허위사실을 공표함에 따라, 선관위로부터 과태료 2천만원 조치를 받았다. #

6. 여담


  •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가 여의도연구원 출신이다. 90년대 말 여의도연구원에서 근무하면서 ARS 여론조사 기법을 배웠고, 이를 기반으로 퇴사 후 여론조사 회사를 창업했다고 한다.#

7. 조직


  • 이사회
  • 이사장[25]
  • 원장
    • 경제정책실
    • 사회정책실
    • 전략기획실
    • 연구지원실
    • 여론조사실
    • 청년정책센터
    • 여성정책센터
    • 안보통일센터
    • 여의도아카데미
  • 부원장
  • 상임고문
  • 정책자문위원

8. 역대 연구소/원장



<rowcolor=#bf282b> '''대수'''
'''이름'''
'''임기'''
'''비고'''
초대
이영희
1995년 2월 23일 ~ 1996년 2월 6일

2대
윤영오
1996년 2월 7일 ~ 1998년 5월 7일
[26]
3대
석종현
1998년 5월 8일 ~ 1998년 12월 17일
[27]
4대
윤여준
1998년 12월 18일 ~ 2000년 2월 13일

5대
유승민
2000년 2월 14일 ~ 2003년 9월 2일
[28]
6대
윤여준
2003년 9월 3일 ~ 2004년 8월 10일

7대
박세일
2004년 8월 11일 ~ 2005년 1월 18일

8대
윤건영
2005년 1월 19일 ~ 2005년 7월 10일

9대
김기춘
2005년 7월 11일 ~ 2006년 7월 18일

10대
임태희
2006년 7월 18일 ~ 2007년 9월 27일

11대
서병수
2007년 9월 28일 ~ 2008년 8월 10일

12대
김성조
2008년 8월 11일 ~ 2009년 5월 31일

13대
진수희
2009년 6월 1일 ~ 2010년 9월 1일

14대
주호영
2010년 9월 2일 ~ 2011년 7월 20일

15대
정두언
2011년 7월 21일 ~ 2011년 12월 29일

16대
김광림
2011년 12월 30일 ~ 2013년 5월 21일

17대
이주영
2013년 5월 22일 ~ 2015년 6월 23일

18대
김종석
2015년 6월 24일 ~ 2016년 9월

19대
추경호
2017년 3월 27일 ~ 2017년 7월 14일

20대
김대식
2017년 7월 17일 ~ 2018년 7월 18일

21대
김선동
2018년 7월 19일 ~ 2019년 3월 6일

22대
김세연
2019년 3월 7일 ~ 2019년 12월 2일

23대
성동규
2019년 12월 2일 ~ 2020년 4월 20일

24대
지상욱
2020년 6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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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민의힘 당대표가 당연직 이사장이 된다.[2] 현행 정당법에 따라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은 중앙당에 별도 법인으로 정책연구소를 설치·운영해야 한다.[3] 民自 정책재단 설립배경[4] 민자당 정책연구소 설립[5] 걸어온 길 1999~1995[6] 民自 여의도연구소 공식출범[7] 汝矣島연구소 政治과제 연구[8] 신한국당 - 한나라당 -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 미래통합당 - 국민의힘[9] 정당법인 계보는 자유한국당에서 끊겼으나 여의도연구원은 그대로 이어간다. 사실은 이미 신한국당 때도 계보가 한 차례 끊기기는 했다.[10] 미국 공화당의 싱크 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11] 독일 기독교민주연합의 싱크 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12] 여기에 나온 정당들은 국민의힘과 함께 국제민주연합에 속해 있다.[13] 당시에는 여의도연구소[14] 현재는 전화면접 조사나 ARS 조사가 혼용되어서 쓰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선거 여론조사의 원칙은 전화면접 조사여야 한다는 보편적인 인식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15] 과연 이런 전화번호 표본을 100% 합법적인 방법으로만 확보했겠느냐에 대해서는 의문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당시만 해도 당-정-청 분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어서 대통령이 당 총재직을 겸임했고, 지방자치단체들이 보유하고 있던 지역구 유권자들의 개인정보가 불법적으로 당으로 유출되는 일도 다반사였기 때문. 또한 여론조사로는 오랜 노하우를 지닌 안기부나 민정당 인력들을 다수 수혈한점도 감안해야될 것도 있기는 하다.[16] 19대 총선 때도 여의도연구소 내에선 새누리당의 패배라는 비슷한 여론조사가 나왔지만, 당시에는 반대로 새누리당이 승리한 바 있다.[17] 이러한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ARS 안심번호 자동응답 방식을 여론조사 기법으로 채택한 점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방식은 스마트폰 버튼과 집전화 버튼만 누르면 되기 때문에 샤이 지지층이 잘 잡히고 무당층이 비교적 적게 잡힌다. 실제로 여의도연구원과 함께 20대 총선 결과를 정확하게 맞춘 리서치뷰의 경우, ARS 안심번호 기법을 채택해 정확성과 신빙성을 높일 수 있었다고 해당 여론조사 기관 관계자가 직접 밝혔다.[18] 나중에 알려진 이야기지만, 사실 이마저도 당 지도부에서 "왜 언론에서는 200석 운운하는데 이것밖에 안 되느냐. 다시 해와라."라고 해서 4차 조사까지 진행해 160석 예상으로 최종 보고했다고 한다(...) 이미 여의도연구원의 기능은 상당히 변질되어 있던 걸로 보인다.[19] 그러나 이 결과는 휴대전화 안심번호 여론조사의 도입 효과로 볼 수도 있다. 한편 총선 직전에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에서도 실제 선거 결과와 매우 비슷한 여론조사 결과를 도출하고 있었다고 알려졌다.[20] 예를 들어 4대와 6대 여의도연구원장을 역임한 윤여준, 5대 연구소장이었던 유승민[21] RDD(Random Digit Dialing) 방식이라고 한다.[22] 안심번호를 활용하려면 통신사로부터 휴대전화 가상번호 표본을 유료로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의 무작위 걸기 조사 방식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긴 하지만, 여론조사를 원하는 특정 지역의 조사 대상 표본을 실제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로만 정확하게 구축할 수 있고, 또한 성별과 연령별 구성 비율도 딱 맞게 구축할 수 있으므로, 이를 잘 활용하면 여론조사의 정확도가 매우 높아지게 된다.[23] 엄밀히는 공표 가능한 휴대전화 안심번호 여론조사는 제19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 가능해지긴 했다. 그러나 이때는 전국 선거였으므로 한정된 지역을 특정할 수 있는 안심번호가 별로 필요하지 않았고, 지역의 특정이 중요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되어서야 비로소 널리 쓰이게 되었다.[24] 그러나 곧장 김종인 선대위원장은 이 발언을 엄살이라며 곧바로 차단하고 나섰는데, 이유로는 김 위원장이 취임한지 얼마 안 되어 당무 전반에 대해 파악이 안 됐었다는 설과, 선거운동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 일부러 그랬다는 설이 있다.[25] 당연직으로 당대표가 맡는다[26] 국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27] 단국대학교 법학과 명예교수[28] 역대 최장수 여의도연구소/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