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아 보디아노바

 

''' 나탈리아 보디아노바 '''
''' Наталья Водянова|Natalia Vodianova '''
'''본명'''
'''나탈리야 미하일로브나 보디아노바
(Наталья(Natalia Михайловна(Mikhailovna Водянова(Vodianova)'''
'''국적'''
'''러시아''' [image]
'''출생'''
'''1982년 2월 28일 (만 42세), 소련 니즈니노브고로드'''[image]
'''신체'''
'''176cm, 52kg, AB형(Rh+)[1]'''
'''BWH'''
'''34–26–34'''[cm]
'''머리색'''
'''라이트 브라운'''
'''눈 색'''
'''블루'''
'''옷 사이즈'''
'''4 (US); 34 (EU);'''
'''신발 사이즈'''
'''8 (US); 38.5 (EU);'''
'''배우자'''
저스틴 포트먼 (2001~2011년, 이혼)
앙투안 아르노 (2011년~현재)[2]
'''자녀'''
아들 루카스 알렉산더 포트먼 (2001년생)[3]
딸 네바 포트먼 (2005년생)
아들 빅토르 포트먼 (2007년생)
아들 막심 아르노 (2014년생)
아들 로먼 아르노 (2016년생)
'''소속'''
DNA Model Management (뉴욕)
VIVA Model Management (파리, 런던, 바르셀로나)
Why Not Model Management (밀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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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데뷔 이전
3. 데뷔 이후, 커리어
4. 사생활
5. 활동
5.1. 캠페인
5.2. 커버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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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러시아패션 모델.
젬마 워드릴리 콜 등등 베이비페이스 모델들의 전성기 시대 직전, 베이비페이스의 매력에 패션계가 열광하게 만든 유명 모델이다. 보디아노바가 처음 등장했던 시기(2000년~2002년 초반 즈음.)는 사실 베이비페이스의 모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시기는 아니었다.[4] 하지만 투명한 도자기같은 순수한 모습에 부러질 듯 가는 몸매의 보디아노바는 단번에 세계 패션계를 접수 한다. 그녀의 등장을 계기로 젬마 워드같은 베이비페이스 모델에 대한 에이전시의 발굴 욕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볼 수 있다.

2. 데뷔 이전


모델로서의 성공이전의 생활은 가난하고 어려웠다. 본인 스스로도 한 인터뷰에서 어린시절은 진짜 힘들었다고 말한적이 있다.
어머니 그리고 두 자매와 빈민가에서 지냈으며, 자매 중 한명은 중증 뇌성마비를 앓고 있었다. 마땅한 직업도 기술도 없는 어머니[5]는 빈민가에서 과일을 팔면서 생계를 이어갔고, 보디아노바가 어머니를 도와 장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6]
보디아노바가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모델 일을 하던 남자친구의 권유로 러시아의 모델 학교에 등록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커리어를 시작했다고 한다. (#) 과일 장사를 하던 도중 패션 관계자의 눈에 띄어 캐스팅 됐다는 스토리는 루머이다.

3. 데뷔 이후, 커리어



15세에 러시아에서 모델로 일을 시작한 후 파리로 진출했고 불과 2년만에 세계적인 모델로 성장한다. 그러나 무명 시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극적으로 상황이 바뀌게 된 것은 후에도 후술된 결혼과 첫 아들을 출산한 후였다. 출산 후 불과 몇 달만에 3대 도시 컬렉션에 등장했는데 당시 이브 생 로랑과 구찌라는 거대한 패션하우스의 수장이었던 톰 포드[7]가 보디아노바를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 그리고 그녀는 파리 컬렉션의 중요한 쇼 중 하나인 이브 생 로랑의 2002 F/W 컬렉션의 엔딩과 오프닝 모델로 '''세우면서''' 상황이 역전하기 시작한다.[8] 그리고 2003년 S/S 컬렉션 부터는 보디아노바가 '''정ㅋ벅ㅋ'''. 이러면서 패션계는 그녀에게 완전 열광하기 시작한다.[9]
하지만 보디아노바가 모델에만 그치지 않고 셀레브리티로서 더 이름을 알릴 수 있게된 계기는 2003년에서 2007년까지 유지된 캘빈 클라인과의 독점 계약일 것이다. 저 기간동안에는 다른 컬렉션과 광고는 일체 등장하지 않고 오로지 캘빈 클라인의 쇼와 전 라인의 광고에만 등장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녀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도 바로 저 캘빈 클라인 광고였다.[10][11]
캘빈 클라인과의 계약 종료 이후로도 간간히 친분이 있는 디자이너들의 쇼에 광고에 등장하면서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간혹 활동을 하는 중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여배우들이 표지에 더 많이 등장하는 미국보그#s-1에서 모델로서 표지에 등장한 몇 안되는 모델이기도 하다.
  • 루이비통 : 2002 S/S, 2008 S/S, 2010 F/W
  • 샤넬 보떼 : 2008 S/S. 2008 F/W[12]
  • 겔랑 코스메틱 : 2009 S/S ~
  • 캘빈 클라인 전 라인[13] : 2004 S/S ~ 2007 F/W
  • 필로소피 디 알베르타 페레티
  •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
  • 스텔라 매카트니
  •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
  • 데이비드 율만
  • 이브 생 로랑 리브 고쉬[14]
  • 지방시
  • 구찌
  • 피렐리 캘린더
  • Pet Shop Boys PV - I get Along[15]

4. 사생활


아버지는 보디아노바가 아기일 때 집을 나가버려 본적도 없었지만... 유명 모델로 성공하자 딸이 그리웠답시고 나타났다고 한다. [16]
2001년에 열아홉 살의 나이[17]영국 귀족 가문의 자제인 13살 연상의 저스틴 포트만과 결혼하면서 패션계의 신데렐라가 현실에서도 신데렐라가 되었다고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보디아노바의 결혼을 남자 하나 잘 만나서 팔자를 바꾼 것으로 보는 것은 그녀에 대한 모욕이다. 그 시점에서 보디아노바는 자신의 경력에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성공한 여성이었고,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이 획득한 부와 명예를 흥청망청 놀자판에 퍼나르지 않고 각종 사회문제 캠페인에 힘쓰는 등 모범적인 셀레브리티로 인정받고 있었다. 특히 2005년부터는 러시아의 전역에 어린이 놀이터를 짓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한 네이키드 하트를 설립, 단순한 셀레브리티 모델로만 머무르지 않고 있다.
결혼한 그 해에 부부는 첫 아들을 낳았고, 2005년에는 딸, 2007년에는 아들을 낳아 2남 1녀를 두었다. 출산 후 모델계에 복귀하려던 보디아노바는 임신 후 '''자기관리부족'''으로 살을 빨리 못 빼고 있다는 패션계의 뒷담화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이로 인해 심각한 식이장애에 시달렸다고 한다.[18]
하지만 이들 부부는 2011년에 10년간의 결혼 생활을 마무리하고 결국 이혼했다. 이것과 관련해서 여러 설들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알아서 생각할 일이다. 그리고 이 결혼은 13세 연상의 서유럽 귀족 남성과 이제 막 10대를 지난 동유럽 빈민 출신 미인의 결혼인지라 신데렐라의 꿈이 이루어진 것 같이 생각하는 이가 많았다. 나탈리야의 첫번째 남편인 저스틴 포트만은 부동산 재벌인 9대 포트먼 자작의 아들에 현 포트먼 자작의 이복동생이다. 2006년 기준으로 이 가문의 재산은 12억파운드, 즉 한화 약 2조원 가량으로 정실이 아닌 이복인데다 가문 재산의 일부만이 저스틴 포트먼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나탈리야가 남편을 먹여살려야 했다는 건 말도 안된다. 지금이 중세시대도 아니고 가문의 재산이 단 한푼도 안 갔을 거라 믿는 사람이 있다면.. [19] 어쨋든 이혼 후에 세 아이의 양육권은 나탈리아가 가져갔다.
2013년부터 LVMH사 CEO인 베르나르 아르노의 아들로 5살 연상인 앙투완 아르노와 결혼을 전제로 동거 중이다. 전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2남 1녀도 나탈리야와 함께 거주지를 파리로 옮겨 어머니, 약혼자인 아르노와 함께 살고 있다. 2014년 6월에 나탈리야는 아르노와의 사이에서 그녀에게는 넷째 아이이고, 아르노에게는 첫째 아이인 아들 맥심[20]을 낳았다.[21]
2016년 5월 다섯째 아이를 임신하여 만삭인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달인 6월, 아르노에게는 둘째 아들이 되는 로만을 얻어 다섯 남매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2020년 9월 22일 결혼식을 올렸다. #
간혹 부자하고만 결혼하는 행동 때문에 열폭하는 몇몇 기자들에게 안 좋은 대접을 받았다는 말도 있지만 보디아노바에 대한 업계의 평가는 좋은 편이다. 특히나 너무나 착하다고. 미국판 보그의 실력자들 중 한명인 그레이스 코딩턴도 그녀의 성격이 아주 좋다고 인증을 해줬을 정도.[22]

5. 활동



5.1. 캠페인


  •  Burberry Spring/Summer 2019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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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vid Yurman Autumn/Winter 2017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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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uerlain Bloom of Rose Autumn/Winter 2015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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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uerlain Autumn/Winter 2013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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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lvin Klein Fragrance Euphoria Spring/Summer 2012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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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ivenchy Autumn/Winter 2011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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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uerlain Autumn/Winter 2011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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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uerlain Shalimar Parfum Initial Spring/Summer 2011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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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uerlain Spring/Summer 2011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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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tam Holiday 2010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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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ncome Miracle Fragrance Spring/Summer 2010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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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ella McCartney Autumn/Winter 2010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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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uis Vuitton Autumn/Winter 2010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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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uerlain Autumn/Winter 2010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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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ella McCartney Spring/Summer 2010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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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ivenchy Spring/Summer 2010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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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lvin Klein Fragrance Euphoria Autumn/Winter 2009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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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ina Ricci Spring/Summer 2009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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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vid Yurman Autumn/Winter 2008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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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real Spring/Summer 2008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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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lvin Klein Underwear Spring/Summer 2007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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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real Glam Shine Juice Autumn/Winter 2004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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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real Glam Shine Sorbet Spring/Summer 2004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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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real Summer 2004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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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real Spring/Summer 2003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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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ucci Fragrance Eau de Parfum Spring/Summer 2002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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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uis Vuitton Spring/Summer 2002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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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chino Autumn/Winter 2001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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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pe Jeans London Autumn/Winter 2001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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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mani Exchange Autumn/Winter 2001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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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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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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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퍼스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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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담


  • 국내에서는 미란다 커보다 인지도가 낮아서 그런지 몇몇 커뮤니티에서는[23] 미란다 커랑 자주 비교당한다. 오죽하면 그녀의 보그 화보를 보고 미란다 커냐고 질문한 사람도 있을 정도다. 그래서 이 업계가 돌아가는 것을 약간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화낸다. 이 둘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보디아노바에게 사실상 실례인 정도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커는 전남편 올랜도 블룸 덕분에 빅토리아 시크릿 엔젤로서 주목받았지만 하이패션 쪽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으며 블룸과 이혼하기 전에 이미 매상 부진을 이유로 빅토리아 시크릿과 재계약이 결렬됐다. 블룸과 이혼이 발표된 후에는 아예 이미지가 나빠져서 커머셜 쪽에서도 평판이 좋지 못하다. 이후 재혼 후에도 거의 셀럽이 되어버린 수준. 하지만 보디아노바는 CK와의 독점 계약이 끝난 후에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회사들 및 여러 유명 캠페인에 모습을 드러내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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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느 셀러브리티들처럼 나탈리아도 자신의 첫째 아들 루카스를 부모 후광으로 모델로 데뷔시켰다. 그러나 이 아들은 전남편의 단점만 쏙 빼닮은 외모에 모델로서 끼도 없어서 반응이 좋지 않다.
  • 또다른 하이패션 톱모델인 마리아칼라 보스코노와 가족들 끼리 휴가도 함께 다닐 정도로 절친한 사이이다.


[1] #[cm] 86.5-61-86.5[2] 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있으며 파리에서 오랫동안 동거하다 드디어 2020년 결혼식을 올렸다.[3] 엄마를 따라 모델로 활동중이다.[4] 이 때는 케이트 모스의 퇴폐적인 헤로인쉬크와 지젤 번천같은 글래머러스한 모델들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런웨이에서는 자퀘타 휠러, 카르멘 카스, 캐롤리나 쿠르코바, 브라질 출신의 캐롤라인 리베이로가 서로 각 컬렉션의 오프닝과 엔딩을 열심히 점령하고 있던 시기.[5] 90년대 초중반 러시아의 상황은 사실 의사핵무기 기술자라도 해외로 가는 일 외엔 마땅한 생계대책이 없는 암울함 그 자체였다.[6] 집안 형편 때문에 고작 11살 밖에 안됐을 때부터 일을 했다고 한다.[7] 지금은 본인의 브랜드를 만들어서 열심히 활동 중이다. 특히 유명 남성 셀러브리티들이 그의 수트를 입고 각 행사에 등장할 정도로 인기 폭발이다.[8] 파리 컬렉션 이전에 뉴욕밀라노 컬렉션에서도 각 도시의 유명한 쇼에 등장하면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상황이었다.[9] 어느 정도였나면 파리 쿠튀르 컬렉션에서도 칼 라거펠드샤넬 쿠튀르 컬렉션에서 엔딩 모델로 2시즌에 세웠을 정도였고, 2003년의 컬렉션의 엔딩과 오프닝도 거진 그녀가 정복했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한 인터뷰에서 '''너무 많은 쇼에 등장해서 세어보지 않았다'''고 말했을 정도.[10] 비록 광고는 좀 완성도면에서 평이 갈리기는 했지만 테리 리차드슨의 언더웨어 광고는 상당한 반향을 이끌어내냈다.[11] 이 시기에 칼 라거펠드도 그녀를 샤넬 광고 모델로 결정하려 했으나 보디아노바가 선택한 것은 캘빈 클라인.[12] 메이크업 라인 한정[13] 독점 계약 체제.[14] 다만 이 때의 광고는 스테파노 필라티가 이브 생 로랑의 수석 디자이너로 있던 시기였다.[15] 광고 촬영 중 남자 모델이 빵 먹었다고 노발대발했다는 포토그래퍼 브루스 웨버가 감독. 이 PV로 그녀를 알게된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전성기 시절 그녀의 매력이 두드러진 비디오다.[16] 서양 웹의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존 레논의 친부처럼 자식을 앞세워 직업도 없이 지내다 결국 딸과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고. [17] 만 나이 기준. 한국식 세는나이로는 20살.[18] 2002년 F/W 컬렉션 당시 보디아노바의 외모를 보면 심각하게 마른 체형이었다는 것이 보인다. 문제는 이 시기가 바로 그녀의 리즈 시기였다는 것. 175cm에 '''46kg까지 찍었다'''. 다시는 몸을 망가뜨리면서 까지 일하지 않겠다고 했고 어린 모델들의 강박적인 다이어트까지 걱정해줬다.[19] 한때 왕세자빈이었던 다이애나 스펜서를 배출한 스펜서 백작 가문처럼 부와 명예를 모두 갖춘 귀족 집안도 있지만 가문 이름만 있는 귀족 집안도 많다. 일례로 타이타닉의 여주인공 로즈 드윗 부카터를 들 수 있다. 극중에서 로즈는 영국 귀족 집안의 딸이지만 아버지의 사치로 가산을 다 탕진해서 가문 이름밖에 남지 않은 상태라 어쩔 수 없이 미국 졸부 집안의 아들과 자기 의사와는 상관 없이 결혼할 처지에 처했었다.[20] 프랑스어로는 막심.[21] 여담이지만 넷째 출산 이후 나탈리야를 하이디 클룸의 뒤를 잇는 "모델계 다산의 여왕"이라고 농담조로 언급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고.[22] 물론 유명 후원자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이 바닥은 평판도 아주 중요하다.[23] 정확히 말하면 다음 '스타존'의 '할리우드스타' 게시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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