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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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명품 패션 브랜드이다.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꽤나 유명한 명품 브랜드이다. 특히 고유의 체크무늬로 잘 알려져 있다.
17년간 버버리를 이끌어온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버버리를 떠난 후, 2018년도 3월 지방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유명한 리카르도 티시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2. 역사
1856년, 영국에서 토머스 버버리에 의해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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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하루에도 여러번 비가 내리는 날씨로 악명이 높았다. 그래서 신사들은 항상 우산을 들고 다니고, 옷이 젖게 하지 않기 위해 레인코트를 입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이게 굉장히 큰 사이즈의 고무로 된 옷이어서 엄청나게 무거웠다. 하지만 방수가 되는 가벼운 원단이 쉽게 발명되지는 않았는데, 이때 토마스 버버리는 '스목포록'이라는 농부, 마부들이 걸치던 코트를 살펴 '개버딘'이라는 원단을 만들었다. 개버딘은 미리 면사를 방수처리하여 직조한 후 또 한 번 방수 처리를 해 완벽한 방수기능을 갖췄으며, 같은 크기의 원단보다 훨씬 가벼웠다.
바바리 코트라고 불리는 트렌치 코트는 의외로 보어전쟁 때 영국 군부에서 대량으로 주문했는데, 군용 방수복 '타이로켄'이 군부의 눈에 들어 왕실에서도 채용, 에드워드 7세가 "내 버버리를 가져와라(Bring My Burberry)."[2] 라고 말한 데에서 버버리 코트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후에는 개버딘 소재로 등산복, 낚시복, 캠핑 텐트 등 당시 아웃도어, 스포츠 웨어까지 확장했다.
타이로켄 코트는 1차 세계대전까지 정규 군복이었으나 참호전으로 바뀌는 양상에 따라 영국군 장교용 그레이트 코트를 개버딘 소재로 바꾸고 총을 메었을 때 마찰이 많은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어깨에서 가슴까지 건 패치(Gun Patch)를 달고, 먼지와 이물질이 들어갈 수 없도록 손목 부위를 벨트로 조이는 등 강화에 성공, 트렌치 코트가 등장하게 되었다.
트렌치 코트는 시대가 변함에따라 특유의 디테일은 유지하되 세세한 부분들이 변화해 왔는데 헤리티지 트렌치 코트로 예를들자면
원래는 워머라고 부르는 안감과 워머와 비슷한 재질의 탈부착식 울 칼라를 같이 제공했는데 울 칼라는 폐지되었고 워머는 별매가 되었으며 칼라 안쪽에 노바체크가 삽입되었고 원래는 매킨토시마냥 진짜 밝은 베이지 색이었는데 약간 노란색이 되었다. 원래색이 궁금하다면 거의 땡땡의 모험에서 땡땡이 입고다니는 매킨토시 색이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리고 현재 버버리 리젠트 스트리트 스토어에서는 비스포크 트렌치 코트를 주문 받고 있으며 주문자의 신체를 측정하여 딱 맞는 코트를 만들고 여러가지 디테일을 추가 하거나 빼거나 해서 커스텀 할 수 있으니 돈이 좀 많은 위키러라면 런던에 가서 비스포크로 맞추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늘날에는 토털 명품 패션 브랜드로서 의류는 물론 시계, 향수 등 다양한 아이템을 만들고 있다. 시계의 경우 현재는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3. 헤이마켓 클래식 체크
버버리 고유의 체크무늬로 원래 영국 스코틀랜드에서는 각 클랜마다 고유의 체크무늬인 타탄이 있었다. 여기에 착안하여 토마스 버버리는 버버리 고유의 체크무늬를 만들었고 이를 노바체크라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지나 빈티지 체크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고 리카르도 티시가 다시한번 헤이마켓 클래식 체크로 이름을 바꾸었다. 원래는 앤티크 옐로우색 이었으나 리카르도 티시가 아카이브 베이지색을 밀기 시작하면서 캐시미어 스카프에서 앤티크 옐로우를 없애버리고 헤리티지 트렌치코트의 안감만 여전히 앤티크 옐로우색이다.
4. 대한민국 매장
현재 국내에는 지역별 어느 정도 규모의 명품관이 조성된 주요 백화점 지점에 주로 입점하고 있다.
●도산대로의 플래그쉽
● 롯데백화점 (본점, 잠실점, 부산본점, 인천터미널점, 광복점, 노원점, 센텀시티점, 김포공항점, 대구점, 광주점, 울산점, 일산점, 창원점)
● 신세계백화점 (본점, 강남점, 센텀시티점, 대구신세계, 경기점, 타임스퀘어점, 광주신세계, 의정부점, 아라리오점)
●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목동점, 대구점, 울산점, 킨텍스점, 중동점)
●갤러리아백화점 (타임월드, 진주점)
●AK플라자 (수원 AK TOWN)
●아울렛 매장: 롯데프리미엄아울렛 동부산점, 김해점, 신세계 여주프리미엄아울렛, 현대프리미엄아울렛 김포점
원래는 국내에서는 비교적 쉽게 매장을 찾아볼 수 있는 명품 브랜드였다. 서울의 주요 백화점은 물론, 웬만한 지방 중소도시의 브랜드 백화점에도 대부분 입점하였고, 서울이나 수도권, 광역시의 백화점들 중에서도 비교적 규모가 작거나 매출이 낮은 백화점에도 입점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매출 하락과 부진이 겹치면서 압구정동에 위치한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에서 사실상 퇴출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오프라인 매장 다이어트에 나섰다. 2010년대 중, 후반 이후로 출점이 눈에 띄게 줄고 위에서 언급한 롯데백화점 포항점과 강남점, 중동점, 구리점, 평촌점, 대전점, 현대백화점 부산점, 천호점, 미아점, 신촌점과 신세계백화점 마산점 및 AK 분당점에서 매장을 철수하는 등 기존 매장들도 크게 정리하고 있다.[3]
현재 매장이 위치한 곳은 매장을 정리함과 동시에 새로 출시하는 신상 라인업들의 가격대도 높이는 추세인데, 300만원대 핸드백부터 시작해서 과거에 비해서 가격대가 더 높아졌다.
5. 현황
1990년대에 들어와 버버리는 그 디자인이 클래식한 느낌이 너무 강한 탓에 젊은 층에서 선호되지 않게 되었고, 브랜드의 노화 현상이 일어나 성장 동력이 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안게 된다. 1998년에는 Burberrys였던 브랜드 이름을 Burberry로 고쳤으나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이에 브랜드를 혁신하기 위해 2001년,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를 영입하여 버버리의 디자인을 맡기게 된다. 부활의 구세주로 등판한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버버리의 디자인을 일신하여 젊음과 신선함을 성공적으로 기존의 버버리에 접목시켰고, 기존의 버버리를 잇는 서브 브랜드인 버버리 런던과 더불어 새롭게 런칭한 서브 브랜드이자 버버리의 최고가 컬렉션인 버버리 '''프로섬(PRORSUM)''', 캐주얼한 서브 브랜드인 버버리 '''브릿(Brit)'''을 런칭하며 제품군을 확대했다. 참고로 프로섬 라인[4] 은 디자인이 다소 과감하여 가격을 떠나 구매를 망설이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일련의 시도들 덕분에 하락세를 보이던 버버리는 2000년대 들어 성공적으로 부활하였고, 2014년부터는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CEO까지 겸임하게 되었다. 이때까지 버버리의 CEO는 2015년 미국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여성으로 알려진 안젤라 아렌츠였는데, 그녀는 5년 만에 버버리의 매출액을 2배로 키우는 등 성공적인 실적을 인정받았고 이때 애플의 부사장으로 이직했다.
일본에서 특히 인기가 엄청났기에 한때는 아예 일본에서 라이센스 생산을 했었다. 1963년에 산요상회에서 버버리와 계약을 해서 직수입하여 판매한 것이 시초. 이후 1965년에는 라이센스 생산으로 전환했다. 그러다 버블경제 붕괴 이후에 명품 브랜드가 잘 팔리지 않게 되자 버버리와 협의하여 1990년대에 서브 브랜드를 런칭하는데, 여성용인 블루라벨, 남성용인 블랙라벨이 그것이다. 마침 당시 큰 인기를 누리던 아무로 나미에가 이 블루라벨을 입고 TV에 나오면서 간접광고 효과도 톡톡히 누렸고, 상당한 히트를 치게 되었다. 이들 서브 버버리 브랜드는 일본 내에서만 판매되었기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5] , 2010년대 들어 아베노믹스가 시작되고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들고, 때마침 해외직구도 활성화가 되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일본 내수 전용인 버버리 서브 브랜드가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면서 원조 버버리의 브랜드 가치가 흔들릴 염려가 생긴 것이다. 결국 2015년 2분기를 끝으로 버버리는 산요상회와의 라이센스 계약을 종료, 일본의 저가 버버리 서브 브랜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6] . 아울러 2000년대 버버리의 성장세에는 중국에서의 인기도 한 몫 했다고.
한때 자국에서는 양아치 집단 차브족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지만[7] 하이패션과 스트릿 패션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 2010년대부터는 오히려 차브족의 패션을 인용하여 새로운 디자인을 내는 등 오히려 이를 활용하는 중이다. 한때 브랜드가치 하락 우려로 차브족이 애용하던 헌팅캡같은 아이템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갔었다는 점과 대비된다.
2018년 3월, 한때 지방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디자이너 리카르도 티시가 버버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지방시에 고딕 룩을 선사해 대성공시킨 버버리에는 어떤 변화를 줄 지 패피들의 관심이 높다. 일단 들어오자마자 바뀐 로고와 모노그램 패턴에 대해선 기존 팬들의 호불호가 엇갈리고 있다. 깔끔해서 좋다는 평도 있지만 단순한 고딕체로 변해 밋밋하다는 의견도 있다.[8] 그리고 논란이 되었던 버버리의 재고 상품 소각폐기를 중지하겠다고 선언하고, 동물 모피 역시 사용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일단은 긍정적인 평이 지배적이다. 첫 콜렉션도 전통적인 버버리 스타일과 리카르도 티시 특유의 스타일을 잘 조화시켰다는 평.# [9]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여파로 수익이 줄었는지 연예인이나 인스타그램 셀럽들에게 협찬하며 홍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6. 소송
천안 버버리 노래방에 이름으로 2000만원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가 1심에서 패소하고 2심에서 부분 승소 판정을 받아 250만원을 챙긴 적도 있다.
이어서 안동의 버버리[10] 찰떡을 만들던 업체가 버버리 찰떡을 넣은 버버리 단팥빵을 출시해 상표 등록을 하려하자 이에 영국 버버리는 특허청에 이의를 제기해 상표 등록을 막았다. 안동 버버리는 이에 반발해 특허심판원에 정식심판을 청구했고 안동 버버리가 승소했다. 특허심판원에서는 버버리를 단팥빵에 사용하더라도 영국 버버리와는 혼동할 염려가 없으며 영국 버버리에 손해를 가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판단했다.
모방상표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 한다는 영국 버버리의 주장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DAKS와 쌍방울에도 소송을 걸어 모두 승소했다. 이외에도 조금이라도 상표나 제품과 연관이 있다면 소송을 걸어버리는 탓에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런 탓인지 한국에서는 상표 및 부정경쟁방지법 등의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다수의 대법원 판례들(leading cases)을 쏟아내 고 있다.
[1] 리카르도 티시가 디자이너로 들어온 뒤 바뀐 로고와 새로운 모노그램. 모노그램의 TB는 창립자 토마스 버버리('''T'''homas '''B'''urberry)의 약자에서 따왔다.[2] 버버리에서 나오는 향수 중에는 여기서 이름을 따온 '마이 버버리' 라는 향수가 있다.[3] 최근에는 버버리 포지션을 페라가모가 이어받아 지방 일반시 소재 백화점에 매장 출점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4] 이후 프로섬은 런웨이 컬렉션, 브릿과 런던은 통합되어 메인 컬렉션으로 변경됐다.[5] 사실 2000년대 초중반 엔저 시대에 이 일본판 버버리, 폴 스미스 등을 병행수입해 판매하는 국내 쇼핑몰들이 여럿 등장했었다. 하지만 이후 환율이 변하면서.[6] 대신 산요상회는 기존의 블랙라벨, 블루라벨을 자체 브랜드(자체 브랜드이지만 버버리와 라이센스는 체결되어 있다. 버버리라는 이름만 못쓰고 블랙 레이블 , 블루 레이블 시절의 디자인, 버버리 체크 등을 그대로 쓴다.)인 크레스트브릿지 블랙라벨, 블루라벨로 바꾸어 새롭게 런칭하였다. 디자이너는 미하라 야스히로.[7] 킹스맨의 주인공이 바로 차브족이다.[8]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폰트가 바뀐 생로랑, 발렌시아가, 셀린느 모두 거의 유사한 폰트로 바뀌었다. 기존 폰트들이 나름 보기만해도 브랜드가 연상되는 폰트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조금은 아쉬운 점이다.[9]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셀린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에디 슬리먼과 많은 비교를 당하고 있는데, 에디 슬리먼 역시 CELINE 로고 특유의 강조점 '을 빼고 로고 폰트를 굵게 만들어 로고를 단순화 하는 등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다. 다만, 이쪽은 첫 컬렉션이 브랜드 특유의 스타일 보다 자신의 스타일대로 밀어붙여 에디 슬리먼 팬들은 에디가 돌아왔다며 환호하고 있지만 브랜드의 팬들은 자기 스타일을 그대로 이식시켰다고 하는 등 호불호를 상당히 타고 있다. 셀린느는 그간 차분한 상류층 레이디룩이 메인이던 브랜드인데, 에디 슬리먼의 첫 콜렉션은 그런 기존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지라, 셀린느의 오랜 팬들에겐 경악할만한 일이다.[10] '벙어리' 라는 뜻의 강원, 경상, 전라, 제주, 충북, 평안, 함경, 황해의 방언으로 버버리 찰떡은 "한 입 먹으면 말을 잊을 정도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