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1. 개요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이다. 현재 케링 그룹 소속의 자회사이다. 패션 하우스로서 구찌는 그랑 쿠튀리에의 자격으로 오트쿠튀르 컬렉션을 선보이며 동시에 레디 투 웨어 제품도 생산하고 있다.
유명한 명품 패션 브랜드 중 하나이며, 프라다나 펜디와 비슷한 급의 브랜드로 평가 받고 있다. 한때는 프라다와 펜디가 꽤나 많은 인기를 받고 있었는데 구찌 혼자 3대 명품 브랜드[2] 에 밀린 콩라인 취급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톰 포드 시절엔 가장 핫한 남성복 라인으로 인기를 받았고, 2015년 이후 20, 30대 밀레니엄 세대에서 가장 핫한 명품으로 재부상했다. 2019년 96억 유로의 매출을 기록, 루이비통에 이어 업계 2위의 매출을 달리는 브랜드이다.
루이비통, 펜디, 고야드 등과 마찬가지로 특유의 반복되는 모노그램이 아시아에서 특히나 인기가 있는 브랜드이다.
2. 국내매장
- 청담동 플래그십 스토어
- 롯데백화점 (본점, 잠실점, 부산본점, 인천터미널점, 광복점, 센텀시티점, 대구점, 광주점, 수원점)
- 신세계백화점 (본점, 강남점, 센텀시티점, 대구신세계, 광주신세계, 경기점, 의정부점, 타임스퀘어점, 스타필드 하남)
-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무역센터점, 더현대 서울, 판교점, 목동점, 대구점, 킨텍스점, 울산점)
-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WEST, 타임월드, 광교점)
- 아울렛 (신세계사이먼 프리미엄 아울렛 여주점,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김포점,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동부산점)
3. 역사
3.1. 초기
구찌는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 구찌오 구찌(Guccio Gucci)가 피렌체에서 설립하며 시작되었다. 1897년 런던의 최고급 호텔 사보이 호텔에서 일하던 구찌오는 상류층 손님들의 고급 가방에서 영감을 얻고 1902년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 가죽공방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1921년 피렌체에 자신의 이름을 딴 가죽 용품과 작은 가방을 취급하는 첫번째 구찌 매장을 오픈하였다. 1930년대에는 상품라인을 더욱 확장하여 다양화 시켰으며 구찌의 주 고객층인 귀족들의 승마 용품에 대한 수요로 인해 독특한 홀스빗 아이콘을 개발하게 된다. 1938년에는 이탈리아 쇼핑 중심지 로마 콘도티 거리에 매장을 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패전국이던 이탈리아의 자재 공급에 어려움을 겪자 많은 가죽 업체들이 문을 닫았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첫째 아들 알도 구찌는 일본에서 수입 가능하던 대나무로 제품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를 계기로 구찌를 상징하는 여러 제품 중 최초의 제품이 된 "대나무 백"[3] 을 만들게 된다. 대나무 백은 당시 귀족과 유명인사의 애장품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오늘날까지도 애장품으로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가방 외에도 시계, 벨트, 손잡이 등 여러 곳에서 활용되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1951년에는 말 안장에서 영감을 얻은 그린, 레드, 그린으로 이루어진 삼선 마크 "더 웹"을 개발했다. 오늘날에도 구찌의 트레이드 마크로 활용되고 있는 디자인으로 가방, 신발, 벨트, 악세사리 등 온갖 곳에서 활용되는 구찌를 상징하는 디자인 중 하나이다. 1953년 창업주 구찌오 구찌가 사망하고 첫째 아들 알도 구찌와 셋째 아들 로돌프 구찌가 경영권을 나눠 가졌다. 알도 구찌는 특유의 감각으로 구찌의 성공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아버지 구찌오 구찌에서 영감을 얻은 맞물린 GG 로고를 개발해 세계적 기업으로 이름을 알리는데 기여하였다. 현재의 구찌 로고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후 런던, 파리 및 베벌리 힐스에 매장이 들어섰다. 1970년대에는 아시아 진출도 본격화해 도쿄와 홍콩에 매장을 오픈하였다. 1977년, 60년대에 오픈했던 베비버리 힐스 매장을 구찌 미술관[4] 으로 전환되었다.
1981년 피렌체에서 창사 이래 최초로 런웨이 패션쇼를 개최하였다. 1982년 구찌 가족 경영진들의 논의 끝에 로돌프 구찌가 디자인부터 생산, 공급 모든 단계에 관여하는 경영권을 가지도록 결정하였다. 1년 뒤 로돌프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마우리치오 구찌가 경영권을 물려 받으면서 브랜드가 풍비박산 나버렸다. 이유는 집안 싸움 때문이었는데 대표적으로 회장이 동의하지 않았는 데 알도 구찌의 아들 파울로 구찌는 파울로 구찌라는 이름하에 핸드백, 악세사리, 와인등을 판매하는 저렴한 브랜드를 만들었다. 라이선스 남발이 이어지면서 브랜드 이미지가 싸구려가 되어버렸다. 당연하게도 구찌 내부에서는 난리가 났다. 가족 경영에도 위기가 불어닥쳤으며 회사 이미지와 더불어 재정난도 심화되었다. 구찌에 큰 위기가 닥친 시기였다. 1987년 바레인에 본사를 둔 투자회사 Investcorp가 구찌의 지분을 인수하기 시작하였다.
3.2. 오늘날
1990년대 초반 투자회사 Investcorp가 구찌의 전체 지분을 차지하였다. 1994년 가족 경영 체제를 탈피한 후 톰 포드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변호사 출신 도미니코 드 솔레가 구찌의 CEO로 임명되었다. 톰 포드는 로고, 홀스빗 등 구찌의 전통적인 유산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큰 성공을 이뤘다. 새로워진 구찌는 대중들에게 어필했고 1998년 유럽언론협회의 올해의 유럽 기업에 선정되기도 한다. 톰 포드 이후 단순히 디자인만 하는 수석 디자이너 개념에서 매장, 광고, 제품 등 회사 이미지 전체를 전두지휘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위가 유행하게 되었다. 한편, 1995년 마우리치오 구찌가 밀라노의 자택 앞에서 전처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들의 권총에 피살되었다. 1999년 PPR(Pinault-Printemps-Redoute)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단일 브랜드 회사에서 복수 브랜드 그룹으로 전환되었다. 2004년 톰 포드는 재계약 과정에서 도미니코 드 솔레와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결국 구찌를 떠나게 되었고 프리다 지아니니가 2006년 그 자리를 대체하였다. 프리다 역시 구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4년간 46% 매출 신장을 기록하였으며, 2007년 닐슨의 세계에서 가장 갖고 싶은 명품 브랜드에 선정되었다. 그럭저럭 잘 돌아가는가 싶더니 2009년 새로운 CEO 파트리치오 디마르코가 임명된 후 매출이 감소하는 등 점차 뒷쳐져가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한다. 실적 부진이 이어지자 2014년 프리다 지아니니와 파트리치오 디마르코 구찌를 이끌던 2명의 수장은 계약이 종료되었다.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구찌는 2015년 전환점의 해를 맞는다. 새로운 수장 자리에는 마르코 비자리와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영입되었고 구찌의 구원투수가 되었다. 비자리는 스텔라 맥카트니와 보테가 베네타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업계에서 이미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무명이던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임명은 파격 인사였다. 미켈레는 구찌 스튜디오에서 12년간 일하긴 했지만 알려진 바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 대다수 패션업계 관계자들은 구찌의 부진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미켈레의 새로운 컬렉션이 발표된 이후 업계의 눈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기존의 올드하고 식상한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신세대적인 구찌를 내놓았다. 다소 매너리즘에 빠졌던 브랜드 전반의 이미지를 과감하게 바꾸면서 스트릿, 힙합 패션 등지에서 큰 인기를 끌며 가장 핫한 명품 브랜드 중 하나로 올라섰다. SNS를 통해 캐주얼하면서도 젊은 감성의 독특한 디자인이 입소문을 타며 이후로도 여타 패션 하우스와는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바뀌게 된 원인 젊은층의 폭발적인 입소문에 2015년 매출은 전년대비 15%, 2016년에는 17% 급등하였다. 실제로 2019년 수익의 60%가 30세 이하 고객층에서 나오고 있다. 예전에는 루이비통, 샤넬과 같이 여성들이 주로 찾았었지만 남성들의 구매욕을 이끈 지갑, 상의, 바지 등 힙한 스타일의 디자인이 시즌별로 나와 남성 층을 많이 유입시킨 것도 좋은 요인 중 하나이다. 2017년에는 에르메스, 2018년에는 샤넬의 매출을 제치며 단숨에 업계 2위의 명품 브랜드로 올라섰다. 1위는 루이비통
영국 브랜드 파이낸스에서 선정한 2020년 럭셔리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2위에 올랐다. 루이비통, 샤넬, 까르띠에, 에르메스 등등을 제치며 패션잡화 브랜드 중에서는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4. 컬렉션
4.1. 가방
구찌 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가방 중 하나이다. 실제로 거리를 나가보면 구찌 가방을 들고다니는 여성중 이 가방이 꽤 많이 보인다. 가격은 가장 흔한 스몰 사이즈 기준으로 272만 원이다.
마틀라세 숄더 백과 함께 많은 인기를 받은 가방이다. 가격은 262만 원이다.
가장 기본적인 디자인 이지만 나쁘지 않은 실용성과 무난한 디자인으로 이 가방 역시 꽤나 흔하게 보이는 구찌 제품이다. 가격은 145만 원이다.
구찌의 파우치도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가격은 100만 원 전후이다.
4.2. 지갑
남성 지갑이 특히 인기가 있는 브랜드이다. 위 사진속 제품인 구찌 패턴에 뱀이나 벌, 호랑이가 그려진 반지갑이 인기가 많은데 가격은 52만 원이다.
4.3. 신발
2017년 발매된 이후 구찌의 간판 모델로 자리잡았다. 그만큼 큰 인기를 얻었으며 웹 라인이 기본 디자인이다. 기본 디자인에 다양한 동물, 식물, 문양등을 더해 다양한 바리에이션으로 출시되었다.
2018년도 어글리 슈즈의 유행으로 발렌시아가 트리플 s의 대항마 격 모델로 뜨기 시작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얻었다. 흔히 '띠로고'라 불리는 위 사진 모델과 '더티' 모델이 인기가 많다.
5. 주요 디자인
창업주 구찌오 구찌의 이니셜에서 따왔으며 194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초록색과 빨간색의 선을 이용한 디자인.
위 사진처럼 대나무를 이용한 손잡이이다.
원래는 호보백 이지만 케네디 대통령의 영부인인 제키 케네디가 애용하며 재키백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졌다. J백이라고도 불린다.
말굽 모양 2개를 이어놓은 것 같은 디자인으로 Gucci의 거의 모든 액세서리에 사용되는 디자인 이다. 최근에는 주로 로퍼같이 끈이 없는 구두 장식에 많이 쓰인다.
전통적인 초록색 빨간색 초록색 삼선 웹라인의 뒤를 잇는 파란색 빨간색 흰색 조합의 삼선으로 미켈레 이후 새로운 구찌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역시 미켈레 이후 새로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퀼트처리된 부드러운 가죽 마몽라인의 상징인 로고가 인상적이다. 기존의 하나가 뒤집어진 더블 G 로고와 달리 뒤집지 않고 겹친 두 개의 G 로고 또한 미켈레의 작품이다.
6. 사건사고
6.1. 흑인 비하 제품 판매중단
프라다와 돌체앤가바나에 이어 구찌까지 인종차별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2018 F/W 컬렉션을 통해 선보인 발라클라바 터틀넥 스웨터가 논란이 되고 있다. 얼굴의 절반을 덮고 입 모양을 따라 붉은색으로 칠해 흑인 얼굴을 검은 피부와 과장된 입술로 우스꽝스럽게 표현했다는 것. 일명 ‘블랙 페이스’. 이에 흑인 래퍼 티아이, 솔자보이 등 자신의 SNS에 구찌를 보이콧하겠다고 밝혔으며 소장중인 구찌 제품도 착용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나섰고 흑인 디자이너이자 구찌 크리에이티브 콜라보레이터 대퍼 단은 "나는 브랜드 이전에 흑인이다. 구찌는 분명 엄청난 잘못을 했다. 나에게 이런 모욕을 지울 수 있는 어떠한 변명도 사과도 없었으며 분명 그 상황이 수긍되지 않았다."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일파만파 논란이 커지자 구찌는 공식 SNS 계정을 통해 "방한 목적의 울 스웨터로 문제를 일으킨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즉시 문제의 발라클라바 넥 스웨터를 전면 몰수하겠습니다. 조직 전반에 걸쳐 다양성을 높이고, 이번 사건을 큰 배움의 기회로 삼겠습니다"고 입장을 밝히며 판매중단을 했다.
6.2. 정신병원을 연상시키는 패션쇼
2019년 9월 22일, 2020 S/S 밀라노 패션위크 마지막을 장식한 구찌의 패션쇼 초반부 프롤로그에 정신병원과 환자를 연상시키는 구속복스러운 옷을 3분가량 선보였다. 구속복은 보통 폭력적인 정신질환자의 행동을 제재하기 위해 입히는 의상으로 이날 구찌 패션쇼 프롤로그에는 끈이나 결박벨트 장식이 붙은 옷을 입은 모델들이 무빙워크에서 선 채로 패션쇼를 진행했다.
구속복을 입은 모델들이 차례로 런웨이에 등장하는 동안 모델 아이샤 탄 존스는 런웨이 도중 손바닥에 미리 써둔 '정신 건강은 패션이 아니다(Mental health is not fashion)'라는 문장을 쓴 양손을 들어보이며 구속복에 대해 항의했다.[5]
구찌는 인스타그램에 이번 패션 쇼의 이미지들을 게시하면서 정신병원 의상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고 '설비 기술자들의 옷'(utilitarian uniforms)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면서 "이 설비 기술자 옷은 패션 쇼 컨셉을 위한 것일 뿐 고객 판매용이 아니라고 밝혔다. 또한 구찌 크리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이번 쇼의 프롤로그를 '자기표현 제거하기'의 한 형태라고 설명하며 "흰 옷은 현대사회의 억압받고 조종당하는 이들을 극단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구속복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7. 기타
-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작가 아라키 히로히코와 죠린 GUCCI로 날다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구찌를 애용한다고 한다. 단지 호날두가 구찌의 가치를 못 살려내고 있을 뿐... 워낙 많이 입어버린 탓에 구찌측에서도 알고 있었는데 협찬이 아니라고 돌려 언급하며 저 조합의 패션 센스는 본 하우스의 의지와는 절대 무관함을 최대한 정중한 방식으로 알리며 철벽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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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why의 9UCCI BANK, Lil Pump의 히트곡 Gucci Gang, 아예 래퍼 이름에 구찌가 들어가는 Gucci Mane처럼 발렌시아가와 함께 유명 래퍼들이 자주 애용하는 브랜드로 가사에도 자주 언급된다. 래퍼들의 간접 PPL(?)로 실제로 예전에 비해 실적이 올랐다. 구찌 메인의 경우 2019년 광고에 직접 등장하기 시작하였다.[6]
- 손목시계도 만들지만 가격 대비 품질이 심각하며 짝퉁 또한 많다.[7] 중고가도 가격 대비 매우 낮은 편이다. 대표 제품으로는 꿀벌, 호랑이 등 동물의 문양을 새긴 르 마르쉐 데 메르베, G-Timeless, 다이버 워치 G-Dive 등이 있다.
- 구찌 아울렛 제품군들은 대부분의 타사 아울렛 제품군들과 다르게 전국 공식 구찌 매장에서 A/S를 맡길 수 있다.[8]
[1] 2016년 기준이다.[2]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3] 대나무에 광택을 입힌, 말 안장의 곡선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4] 초고가 Gucci 제품을 전시한다.[5] 패션쇼가 끝난 후 아이샤 탄 존스는 인스타그램에 "우울증, 불안감, 조울증, 정신분열증 등의 영향을 받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나 자신 역시 정신 건강과 투쟁한 경험이 있는 아티스트이자 모델로서, 구찌와 같은 대형 패션 하우스가 이 정신병원 이미지를 잠깐 동안의 패션 쇼를 위한 컨셉으로 사용한 것은 마음에 상처가 될 뿐 아니라 무감각하다"는 글을 썼다.[6] 구찌라는 말이 하나의 슬랭이라고. 제시의 말에 의하면 내가 짱이다, 즉 I'm good의 뜻이라고.[7] 단 이 부분은 대다수의 패션브랜드 시계들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대표적으로 엠포리오 아르마니가 있다.[8] 대부분의 타사 브랜드들은 아울렛 제품군은 구입 후 환불 요청을 할 수 없으며, 공식 A/S도 받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