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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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남성훈 (南星薰)
'''본명'''
권성준
'''출생'''
1945년 2월 13일, 경기도 수원군 성호면(現 경기도 오산시)
'''사망'''
2002년 10월 18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서울삼성병원
'''학력'''
서라벌예술대학(現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종교'''
천주교(세례명 : 요셉)
'''데뷔'''
1968년, TBC 공채 탤런트 7기[1]
'''가족'''
아내, 슬하 1남 1녀(딸 권수현[2], 아들 남승민)[3]
1. 소개
2. 주요 출연작
3. 수상


1. 소개


대한민국배우이자 신명제과[4] 창업자. 주로 이지적인 이미지의 엘리트 역을 많이 맡았다.
1968년, 동양방송 공채 탤런트 7기로 데뷔하였으며, 1971년 TBC 드라마 '그림자'에 출연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동양방송에서 주로 활동하다 MBC로 옮겨가, 1978년 MBC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남 형사역을 맡았고, 사랑과 야망의 박태준으로 MBC 최우수 남자연기상을 받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가 문화방송으로 옮겨간 건 전두환언론통폐합과는 상관없이 KBS에도 진출해 목욕탕집 남자들, 찬란한 여명 등에도 출연했다.

1977년에는 역삼동 도성초교 사거리에 여명제과란 빵집을 열면서 사업도 하였다. 국내 최초로 일본에서 생크림케이크를 도입[5][6]해 한국 제빵업계에 큰 영향[7]을 끼쳤다.
그러나 98년부터 다발성 신경계 위축증[8] 혹은 소뇌위측증이 발병해 투병하다가 4년 째이던 2002년 타계했다. 향년 58세.
아들인 권용철[9]도 대를 이어 연기자로 활동했다[10]. 여명제과는 상법상 더이상 상호를 유지할 수 없어 신명제과로 개명신청을 했다. 처가 쪽 친척이 대치동에 여명제과 분점을 냈는데, 그만 본점이 상호등록 갱신을 못해 '신명'으로 개명해야 했다고. 대치동 분점은 여명제과란 상호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도의상(?) 같이 개명했다. 신명제과는 무한 리필 케이크 등으로 컨셉을 변경했다가 2016년 두 곳 모두 문을 닫았다.

2. 주요 출연작


1854년 ~ 1907년. 고종황제의 측근으로 탁지부대신[11], 고려대학교[12] 창립자이다.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항일운동을 하다 일제의 첩자에 의해 암살당했다. 이두호 화백 작품 객주에서 꽤 비중있는 역으로 나온 바 있다.
1987년 MBC 방송대상 최우수남자연기상.

3. 수상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87년
MBC 연기대상
최우수 남자연기상
사랑과 야망
1988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인기상

[1] 그 이전인 1966년 연극으로 데뷔했다고 하나 어떤 작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해에 1967년 MBC 특채 성우로 방송국에 입문하였고, 배우로서의 본격적인 데뷔는 TBC에서 했다고 보면 될 듯.[2] 화가로 활동 중이다.[3] 아버지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바 있는 사랑과 야망의 2006년 리메이크작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이름을 따 예명으로 활동하였다.[4] 선릉역 부근 개나리아파트에 위치.[5] 1972년 일본에 갔다가 음식이 맞는 게 없어 고생하다 지인이 권한 생크림 케이크를 처음 먹어보고 그 맛을 못 잊었다고 한다.[6] 그 전엔 버터 크림 케이크밖에 없었다.[7] 90년대까지 케익하우스 윈과 함께 생크림 케이크로 유명했다.[8] 희귀병으로, 남성훈이 앓았던 지병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9] 예명 남승민.[10] 이에 관한 일화가 있는데, 권용철이 아버지인 남성훈에게 연기자가 되겠다고 자신의 결심을 말하자 가만히 듣고는 "미친놈!"이라고 나직이 혼잣말을 하더란다.[11] 재무장관.[12] 당시 보성전문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