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드라마)

 


모래시계 역대 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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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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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373a3c> TV부문 대상
박철 PD
(1994)

<colcolor=#373a3c><colbgcolor=#ffffa1> 모래시계
(1995)


한국의 파충류
(1996)
<color=#373a3c> TV부문 작품상
엄마의 바다
(1994)

모래시계
(1995)


연애의 기초
(1996)

<color=#373a3c> SBS 광복 50주년 특별기획 {{{#000000
{{{+2
모래시계}}}}}} (1995)
Sandglass
<colcolor=#373a3c><colbgcolor=#cc9966> 방송 시간
본방: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재방: 수요일, 목요일, 토요일, 일요일
밤 9시 50분~[1]
방송 기간
본방: 1995년 1월 10일 ~ 1995년 2월 16일
재방: 1998년 1월 14일 ~ 1998년 2월 21일
방송 횟수
24부작
방송사

장르
시대극
제작사
SBS 프로덕션
연출
김종학
극본
송지나
출연자
최민수, 고현정, 박상원, 이정재
링크
공식 홈페이지 SBS 스트로
1. 개요
2. 제작과 인기
3. 사회에 준 영향
4. 등장인물
5. 논란
6. 여담


1. 개요


1995년 1월 10일부터 동년 2월 16일까지 SBS에서 방영한 드라마.[2] 10.26 사건 시기 박정희 사망 후 5.18 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YH 사건 등을 묘사한 첫 드라마이며, 비록 폭력 미화라는 비판이 있었지만[3] 실제의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대본과 거장의 연출력으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극적으로 그려냈다.

2. 제작과 인기


개국 초창기에 아직 자리잡지 못하고 있었던 SBS가 사활을 걸고 제작한 작품이다. 일단 MBC의 김종학 PD를 삼고초려 끝에 스카웃했고, 여기에 여명의 눈동자에서 김종학 PD와 호흡을 맞췄던 송지나 작가와 음악을 맡은 최경식까지 영입했다.[4] 감독의 전작이라고 할수 있는 여명의 눈동자에 출연한 배우들 중에 김종학 감독이 싹수를 봤거나 작품에 꼭 필요한 배우들을 데려왔다. 박근형, 정성모, 박상원, 고현정이 그런 배우들.[5]최민수, 박상원 등 경쟁사인 MBC의 간판 스타들을 통으로 빼오고 이정재같은 신인들도 발굴하여 출연시켰다. 손현주도 최민수의 부하로 등장. 후반부에 박상원 처로 나오는 사람이 바로 훗날 베니스 영화제에 가게 되는 조민수. 이외에도 김보성의 젊은 시절 모습이나, 이희도, 김을동, 홍경인, 김정현, 김영옥, 김병기, 조형기, 손호균, 박영지, 장항선 등의 배우와 지금은 작고하신 중견배우분(남성훈, 김영애 등)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드라마 팬들에게는 좋은 배우개그 거리. 또한 중견 성우들인 김기현, 황원 등도 열연한다.
2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 4회 편성으로 방영되었다. 이는 스타 연기자들을 장기간 계약할 수 없었던 점,[6] 동시간 방영하는 타 방송사들의 드라마를 완전히 누르기 위한 의도로 비롯되었다.[7] 결과 평균 시청률 46%를 기록하였다. 시청률이 가장 높았던 때는 최종회로, 64.5%를 기록하였다.[8]
다만 이 시청률은 과대평가된 면이 많았는데 이유인 즉슨, 당시 시청률 조사기관이었던 미디어 리서치 코리아사(現 AGB 닐슨 미디어리서치)는 서울지역 300가구에서만 시청률을 집계했고 지방표본을 선정하지 않았던데다가 아직 지역민방이 개국되기 이전인지라 SBS 프로그램의 송출이 지방에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지방이라도 지역RO(일명 중계유선방송)에 가입하면 SBS를 볼 수 있었기는 있었다.[9] 여하튼 지방에서 방영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수도권에서 시청률이 엄청나게 나온건 분명한 사실이기에 신이 난 SBS는 기자를 모래시계 방송 시간에 서울 거리에 내보내 거리 모습을 보여주면서 '모래시계 보려고 다 집에 가서 서울 시내가 한산합니다' 식의 뉴스를 내보내기도 했다. 입소문으로만 들려오는 모래시계 전설을 들은 지방 비디오 대여점들이 불법녹화 비디오테이프를 들여오는 일도 있었으며, SBS의 이름이 지방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1995년에 대우전자가 대여용 VHS 비디오테이프로 발매한 바 있으며, 제작은 동우영상, 배급은 우일영상이 각각 맡았다. SBS 프로덕션과 당시 외국 게임 유통으로 유명했던 동서게임채널이 공동으로 인터액티브 장르의 동명의 게임을 출시하려 했으나, 결국 나오지 못했다.

3. 사회에 준 영향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는 20~30대 남성이 모래시계를 보기 위해 귀가를 서두르는 통에 '귀가시계'라는 별칭이 붙었다. 직장에서도 모래시계가 방영하는 날에는 야근, 회식이 중지되었다고.
당시에는 모래시계가 방영되던 시간대에 밤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차도에 도로들까지 차량 하나없이 텅비었다고 한다. 가정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엄마 아빠 TV 보시니까 조용히 해야 했고....., 유흥업소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난리법석이었다. 그래서 술집에서도 TV를 사다 놓고 입구에 '모래시계 방송 중'이라는 문구를 써놓은 가게들이 즐비했다. 가게에 TV가 없으면 일찍 가게 문을 닫아야 했는데, 어차피 손님들도 TV 보느라 안오고 주인도 모래시계를 보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습게도 실제 모래시계도 당시 많이 팔렸다. 제목 덕분에...
SBS를 시청가능한 지역(수도권)의 군인이 SBS가 방송되지 않는 고향으로 제대하기가 싫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이기도 했다. 뭐 어차피 말년병장이니 드라마 끝나는 몇 달은 편하게 지낼 테니 하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극중 보디가드 백재희 역[10]이정재 덕에 검도 도장은 때 아닌 전성기를 맞았다. 미팅에 나온 남학생들이 벙어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이정재의 인터뷰로는 데뷔 초라 연기를 못해서 대사가 줄었다는데, 캐릭터 자체가 한 마디도 없다가 한 마디 할때마다 명대사라...
강원도에 엄청난 관광 수익을 가져 오기도 했다. 특히 정동진역은 모래시계 버프를 제대로 받은 사례인데, 폐역도 검토되던 역[11]이 모래시계에 한 번 나온 일로 전국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12] 그 당시 아무것도 없었던 정동진에 카페와 민박집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모래시계 때문. 정동진 근처 땅값이 수 십배 올랐다. 드라마 이듬해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인기가 잠잠해지나 싶었지만 그 사건의 작전반경 속에 있는 정동진이 뉴스에 너무나 자주 나오다보니 인지도를 더 끌어올려서, 두 사건으로 인해 정동진역은 지금도 강릉 최고의 관광지로 거듭났다.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내용이 포함된 이 드라마를 본 일부 국딩들이 조폭 흉내를 내고 장래희망이 조폭이라고 말해서, 조폭미화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모래시계는 5.18 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TV 드라마로, 계엄군의 진압과 당시 광주 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그려내어 이를 오해하거나 사건의 존재조차 모르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모래시계는 우연히 광주에 내려왔다 사태에 휩쓸린 태수와 군복무 중 계엄군으로 차출되어 진압부대에 들어온 우석을 통해 당시 광주의 실상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다. 당시 광주에는 SBS가 송출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촬영 소식을 듣자 광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엑스트라에 참여했으며, 광주광역시도 시내 주요도로를 촬영 장소로 제공했고[13] 광주 기독병원 등 실제 5.18 당시 주요지역이 실제로 등장한다. 중간 중간에 실제 1980년 당시 광주의 영상도 삽입되어 있다.
나름 연기력이 있던 최민수가 이미지와 연기력이 한동안 고정된 것이 바로 이 작품 때문이기도 하다. 최민수에게는 양날의 칼인 셈. 최민수의 터프가이 이미지를 굳혀버린 것이 이 작품으로, 이 이미지는 노인 폭행 의혹으로 구설수에 올라 한동안 활동을 중단한 후의 복귀작인 단편 드라마 <아버지의 집>에서야 비로소 간신히 떨쳐버릴 수 있었다. 정체되어 있던 연기력도 그제서야 다시 빛을 발하게 되었다. 또한 최민수가 박상원에게 했던 대사 "나, 지금 떨고 있냐?"는 당시 여러가지 패러디에 쓰일만큼 유명한 대사로 남았는데 이 때 순간 시청률이 74.4%였다. 그 외에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란 대사도 웃기려는 개인기로 무슨 말일지 모를 정도로 오버연기를 하며 많이 쓰인다.[14] 다만 최민수는 초창기 데뷔작인 '신의 아들' 때부터 반항아적인 이미지로 활동하다 '결혼 이야기', '사랑이 뭐길래' 등의 코믹 연기도 하면서 연기 다변화를 꾀했고 흥행적인 측면에서는 더 좋기는 했다. 그러다 걸어서 하늘까지의 '물새'역을 하면서 반항아적인 이미지를 재각인시킨 후에 모래시계로 도장을 쾅쾅 찍었다.[15]
작가 감독의 전작인 여명의 눈동자에서 고현정은 생짜 신인에 조연이었으나 모래시계 캐스팅 시에는 작별, 두려움 없는 사랑, 엄마의 바다 등으로 메인 여주급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모래시계로 레전설이 되…려는 순간, 신세계그룹의 후계자와 결혼을 발표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배경음악으로 쓰인 러시아의 유명 가수 이오시프 코브존이 부른 백학 역시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매우 유명해졌다. 다만, 저작권상으로 완전히 협의가 되지 않았는지 OST 앨범에는 원곡 대신에 "이연"이라는 타이틀의 리메이크 연주곡이 수록되었다. 덕분에 원곡이 수록된 이오시프 코브존의 앨범이 국내에서 꽤나 잘 팔리기도 했다.
몽골에서 1998년도에 수출되어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로도 많은 한국드라마가 몽골에 수출되면서 인기를 끌게되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에 몽골 내 한류의 시초격인 드라마로 손꼽힌다. 다만 야인시대와 같이 몽골에서도 한국식 조폭문화가 같이 수출되는 부작용도 같이 겪었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4. 등장인물


학창시절부터 주먹으로 유명했지만 우석을 만나면서 개심하고 학업에 전념한다.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꿈꿨지만 부친의 과거 행적으로 인해 좌절되고 모친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암흑 세계에 입문한다.
  • 강우석(박상원 / 아역(청소년기) 홍경인 / 꼬꼬마 아역 허정민)
  • 윤혜린(고현정 / 아역 고은아[16])
  • 이종도(정성모)
한때는 태수와 형제같은 친구였지만 사이가 틀어진다. 태수를 공격하고 윤재용에게 누명을 씌워 궁지에 모는 등의 악행을 저지른다. 악역 전문인 해당 배우의 악역 중에서도 최강으로 꼽힌다.
윤혜린의 부친. 카지노의 대부.
정보기관의 간부.
윤혜린의 보디가드. 본시 혜린을 납치했던 정대식[17]이 거느리던 부하들 중 한 명이었으나 윤재용에게 몰래 전화를 걸어 혜린이 있는 곳을 알려주고 혜린을 구하려 한다. 그 후 윤재용의 휘하로 들어가 윤혜린의 보디가드 역할을 수행한다.
윤재용 일가의 고문변호사.
정보기관의 고위급 인사. 장도식의 윗선에 있는 인물.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폭력조직의 보스. 태수와 종도를 휘하에 두었지만, 태수를 신뢰하고 종도를 못 미더워하는 태도를 보인다. 조직이 서울에 입성한 이후로 간부들에게 구역을 할당해줄 때에 종도를 배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종도가 조직을 배신하면서 경찰에 체포된다.
언론사 사회부 소속의 검찰청 출입 기자.
알콜 중독자지만 남편의 과거 때문에 아들까지 좌절을 겪는게 안타까워한다. 남편의 유골을 뿌렸던 산에 갔다 기차를 기다리던 중 바람에 의해 철길로 떨어진 목도리를 건지려 들어왔다 최후를 맞이한다.[18]
농사꾼이며, 우석이 검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되는 인물. 과거(우석의 어린 시절) 자신이 누명을 쓰고 경찰에 끌려간 일이 있어서 장남인 우석이 꼭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되기를 당부한다.
박성범파의 중간보스급 인물. 일명 백곰. 박성범과 마찬가지로 경찰에 체포된다.
박성범파의 중간보스급 인물. 박성범과 마찬가지로 경찰에 체포된다.
명동과 충무로 일대를 기반으로 하는 조직의 보스.
노주명파의 2인자. 노주명파가 운영하는 카지노가 이종도에게 습격당하자 이에 맞서다 이종도가 휘두른 칼에 아킬레스건을 다친다.
정인재의 동생.
태수의 심복 부하.
강우석 검사실의 계장.
윤재용의 장남.

5. 논란


이 드라마의 작가 송지나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모래시계 검사 홍보에 대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바로잡는다고 말했다.
[image]
"요즘 '모래시계의 모델이 되었던 검사'라고 주장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사실관계를 바로잡고자 합니다. 그분은 제가 <모래시계>를 집필할 때 취재차 만났던 여러 검사 중에 한 분일 뿐입니다. 당시 제가 만났던 검사님들이 대충 기억에도 열댓 분. 그분들이 들려준 이야기와 각 검사님의 캐릭터를 조금씩 취합해서 만든 것이 드라마 상의 강우석 검사였고요."라고 썼다.#
그러나 송지나 작가가 쓴 글에 대해 홍준표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꺼내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image]
홍준표의 반박 이후 SBS PD를 지내며 모래시계 조연출을 맡았던 박창식 전 국회의원은 (삭제)"모래시계 검사가 홍준표라는 주장은 드라마를 직접 제작한 프로듀서 입장에서 부정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후 송지나 작가는 아무런 해명이나 사실관계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6. 여담


  • 15년 동안 한국 드라마를 1만 시간(500여편) 시청한 일본인 남성 후지와키 구니오(藤脇邦夫·62) 씨가[19] 모래시계와 자이언트를 최고의 한국 드라마로 꼽기도 했다. 한국 드라마 1만시간 시청한 日 남자.. 모래시계-자이언트가 최고의 작품
  • 암울한 현대사를 밀도 있게 그렸다는 평을 받아 1996년 3월 열린 제 8회 한국방송작가상(1994년 중후반기부터 1995년 내용) 드라마 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았는데 자사 드라마 옥이 이모가 <모래시계>와 팽팽한 접전을 벌였으나 "한 번 작가상을 받은 사람(작가인 김운경 작가가 MBC 서울의 달로 제 7회(95년 3월 개최.93년 중후반기부터 1994년까지의 내용 위주) 드라마 부문 수상)은 다시 받을 수 없다"는 규정에 걸려서 탈락했다.[20]
  • 드라마상의 진정한 흑막인 강동환 실장(김병기 분)은 노태우 정권의 실권자로 유명했던 박철언 전 장관이 모티브였다고 전해진다.
  • 5.18을 최초로 정면에서 다룬 드라마이지만 동시에 호남 차별의 또다른 상징으로 거론되기도 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주인공급 인물에서는 사투리를 쓰지 않는데 악당인 조연 종도 등만 서남 방언을 쓰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예를 들자면 흑인 민권운동을 배경으로 했는데 마틴 루터 킹 목사 등 흑인 인권운동가들은 백인 억양쓰고, 백인 조폭이 흑인 억양을 쓴다면 인종차별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문에 당시 야당 당수였던 김대중 대통령마저도 "모래시계를 만든 이들을 용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이 드라마를 원작으로 만든 창작뮤지컬이 2017년 12월 충무아트센터에서 초연이 올라올 예정이다. 태수 역에는 신성록, 김우형, 한지상이 캐스팅 됐다.[21] 혜린 역에는 조정은, 장은아, 김지현이 캐스팅 되고, 우석 역에는 박건형, 강필석, 최재웅이 캐스팅됐다. 문서 참고
  • 최민수의 후배의 어머니 역으로 김을동이 출연했다. 자기 자식이 5.18 시민군으로 참가하여 계엄군의 총에 죽음을 맞이한 이후 자신도 싸우다 죽겠다는 최민수에게 제발 죽지말고 살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울면서 부탁한다. 참으로 눈물없이 보기 힘든 장면이지만 이후 이 사람의 정치 행보를 생각해 본다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장면이다. 다만 김을동이 보수정당에서 정치를 했지만, 5.18로 구설수에 오른 일은 없다.
  • 2018년 3월 베트남 기업 VIE그룹과 공동투자를 체결하여 23년만에 영화화된다. #
  • 역대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수상작 중 유일하게 9시 50분에(98년 1월 14일부터 2월 22일까지 수목-토일 4회) 재방영됐다.
  • 고현정에게는 잠시 마지막 작품이 되기도 했다. 이 작품 후 정용진과의 결혼으로 은퇴했기 때문이다. 이후 2003년 이혼과 함께 다시 컴백하게 되지만.
  • 마지막 화가 방영되는 시기, KBS에서 방영되던 포청천 또한 친구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에피소드가 겹쳐 소소한 이야기거리를 남겼다.
  • 중화권에서 무술영화에 출연했던 황정리가 무술감독을 담당했다.
[1]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일주일 4회 연속 방영하였다.[2] SBS의 지역민방들이 신설된 후 수도권에 있지 않아 방송을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1998년 1월 14일부터 1998년 2월 22일까지 모래시계를 재방영(수~목, 토~일)하기도 했다. 당시에 SBS는 이를 위해 별도의 시사회를 가지기도 했다. 모래시계를 시청하지 못한 지방시청자를 위한다는 그럴싸한 명목이었지만, 실상은 IMF로 인해 SBS도 재정상태가 악화되자, 드라마 재방영을 통해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모래시계를 재방영할 경우 시청률은 확실히 보장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3] 본방 당시 첫 회(95년 1월 9일)부터 5회(2월 16일)까지 매회 폭력배들의 패싸움장면 등 폭력장면을 반복묘사해 방송심의규정을 위반했다는 탓인지 방송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기도 했고 재방 1~2회분에서 과도한 폭력장면을 지적받아 방송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었다[4] 김종학 감독은 3년 뒤 송지나 작가 없이 '백야 3.98'이라는 작품을 만들었으나 최민수, 이병헌, 심은하, 이정재라는 초호화 캐스팅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3.98이라는 농담이 회자됐을 만큼, 처절하게 망했다.[5] 최재성의 경우는 태수 역으로 물망에 올랐고 감독도 출연제의를 강력하게 했지만 이미 권투에 푹 빠져 있던 본인이 거절했다.[6] 특히 고현정은 당시 결혼을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촬영에 오랫동안 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7] 이 의도는 들어맞아, 결국 당시 MBC에서 방영했던 "까레이스키"는 2.4%라는 굴욕적인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KBS에서 방영한 인간의 땅, 장녹수, MBC에서 방송된 아들의 여자도 고전했다. 드라마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방영시기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방증한 케이스.[8] 다만, 재방 당시 수목 시간에는 3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잘 나갔으나 주말 시간에는 최고 시청률 49% 평균 시청률 20%로 높은 인기를 끈 KBS 1TV 용의 눈물 때문에 손해를 봐야 했다.[9] 93년도부터 중계유선방송의 테이프 넷(녹화 테이프를 이용한 중계)이 허용되었다.[10] 3부 대본을 보면 고교 시절 검도 선수였던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11] 당장 이 역 근처인 옥계역안인역은 여객취급을 하지 않고 화물만 취급한다.[12] 혜린의 정동진역 체포 씬은 드라마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이 드라마는 뭐가 날리는 씬에서 명장면이 많다...혜린 머리카락이라든가, 태수 어머니 스카프라든가, 태수 유골이라든가 [13] 단 금남로 시위장면은 금남로가 아닌 계림동 부근(계림초에서 광주고등학교 사이)에서 촬영됐으며, 광주시외버스터미널 장면도 항쟁 당시에 위치한 대인동터미널이 아닌 광천동 유스퀘어에서 촬영됐다.[14] 실제 연기장면을 보면 알겠지만, 최민수는 딕션이 상당히 좋은 배우다. 성대모사하는 사람들이 웃기게 하는 것 뿐. 사실 저렇게 거칠게 대사를 하면서 그 내용이 정확히 전달된다는 것 자체가 딕션이 좋다는 얘기다. 그러나 성대모사를 할때는 당연히 내용보다는 말투나 목소리를 따라하기 마련이므로 그 특유의 톤을 과장되게 하는 것.[15] '걸어서 하늘까지'와 '모래시계' 사이에 자상하고 따뜻한 역을 했던 엄마의 바다가 있기는 하다.[16] 동명의 배우와는 다른 인물이며, 청소년 드라마 ''에서 남자 주인공 김수근이 짝사랑하는 선배 역으로 출연하였다.[17] 3회에서 등장한다. 카지노에서 윤재용과 거래 조건을 내걸고 도박을 하는데, 윤재용은 승부와 관계없이 정대식에 대한 모든 채권을 포기하지만 윤재용이 이기면 정대식이 카지노 지분을 내놓는 조건이었다. 그 게임에서 윤재용이 정대식을 이기지만 정대식이 거래 조건을 이행하지 않자 윤재용은 수하들을 시켜 정대식의 카지노를 접수한다. 정대식은 그 앙갚음으로 혜린을 납치한다.[18] 그날도 술에 취한 상태였고, 이미 삶을 포기한 상황이었기에 스스로 목숨을 버렸을 확률이 높다.[19] 출판업을 했는데 최근 ‘정년 후의 한국 드라마’라는 책을 펴냈다고 한다.[20] 역대 드라마 최고 시청률 베스트 10과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았던 작품은 <모래시계>(64.5%로 시청률 3위) 외에도 MBC 그대 그리고 나(62.4%로 시청률 6위)(98년 12월 개최되었으며 97년 중후반기부터 98년까지의 내용을 기준으로 한 11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 KBS 1TV 태조 왕건(60.2%로 시청률 8위)(2001년 12월 열렸으며 2000년 중후반기부터 2001년까지의 내용을 위주로 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이 있다.[21]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에 함께 출연한 인연으로 신성록의 출연 회차에 원작에서 태수 역을 맡았던 최민수가 응원차 관람 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