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생리학·의학상/수상자
1. 개요
역대 생리학·의학상들을 정리한 문서며 수상년도를 기준으로 오름차순으로 정렬했다.
2. 연도별 수상자
2.1. 1900년대
2.2. 1910년대
2.3. 1920년대
2.4. 1930년대
2.5. 1940년대
2.6. 1950년대
2.7. 1960년대
2.8. 1970년대
2.9. 1980년대
2.10. 1990년대
2.11. 2000년대
2.12. 2010년대
[1] 말라리아는 지중해 연안에서 매우 성행하던 질병이었고, 또한 당시 아프리카 개척 시기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물론 지금도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는 질병 중 하나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2] 참고로 최초 수상자인 베링은 코흐연구소의 연구원이었다.[3] 골지와 카할은 신경조직의 형태를 두고 논쟁하였는데, 골지는 신경조직이 하나의 세포질로 구성된 거대한 구조이고, 카할은 수많이 작은 세포들의 집합체라고 주장했다. 1950년대에 들어서야 카할의 주장이 맞다는 것이 입증되었지만 논쟁 과정에서 골지가 쌓은 업적 역시 중요하다.[4] 말년에 리셰는 엑토플라즘 연구에 집중했다.[5] 크로그는 물고기의 아가미가 진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으며, 최초로 상업적으로 인슐린을 생산한 제약회사 노보(현 노보 노디스크)의 설립자이기도 하다.[6] 다만 밴팅의 조수이자 주요 실험 수행자였던 찰스 베스트는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밴팅은 노벨상 상금을 베스트와 나누어 가졌다.[7] 당시 말라리아는 키니네를 이용하여 상당히 통제 가능한 질환이 되어 있었다.[8] 심장조영술이라고도 한다. 심장도관술은 가느다란 관을 혈관을 통해 심장에 넣어 여러 가지 진단에 유용한 검사나 치료를 행하기 쉽도록 만드는 수술 방법이다.[9]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학계에서 추방당하다시피 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신의 다른 물품과 함께 생존 인물로선 최초로 노벨상의 메달을 경매에 출품했다. 낙찰되면 수익의 일부를 대학과 연구기관에 기부금을 낼 예정이라 하며, 메달은 러시아 재벌 '알리셰르 우스마노프'이 53억원에 낙찰해갔다. 그리고 그는 '''노벨상 메달을 곧장 왓슨에게 돌려주었다.'''[10] 노벨위원회의 수상 이유에는 정확히 원문으로 'humoral transmitters'라고 표현되어있지만 이는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을 의미한다.[11] 1969년 노벨경제학상 초대 수상자 중 하나인 얀 틴베르헌의 동생이다.[12] 또한 세계적인 석학이자, 대중과학 저술가이면서 전투적 무신론자인 리차드 도킨스의 스승이기도 하다.[13] 이 연구 중 유명한 것이 꿀벌의 행동양식이다.(카를 폰 프리슈). 현재까지도 거시생물학의 유일한 노벨상 수상 사례.[14] 아동 성추행 범죄자이다. 노벨상 수상 후 범죄를 저질렀다.[15] 블룸버그는 황달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로, 가이듀섹은 쿠루병에 관한 연구로 수상했다.[16] 비활성부위를 포함함으로써 성숙RNA가 되는 유전자 부위가 분할되는 유전자. RNA 전구체가 가공될 때 끊어지는 부분에 존재하는 유전자를 말한다.[17] 독일이 통일된 후 프라우엔키르헤 복원이 시작되자 노벨의학상을 수상하면서 받은 상금 전액을 재건 비용으로 기부했다.[18] 한국야쿠르트의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 광고에 나온 그 박사 맞다.[19] HIV는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이다.[20] 바레시누시와 몽타니에는 에이즈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이에 대한 검증을 받기 위해 저명한 바이러스학자인 미국의 로버트 갤로에게 논문을 보냈다. 그런데 이듬해 갤로가 본인이 에이즈 바이러스를 발견했다고 발표함으로써 양 측은 엄청나게 싸웠고, 미국과 프랑스 사이의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불거졌다. 결국 서로의 업적을 공동으로 인정하기로 하였으나 2008년 노벨상 수상에 갤로가 제외됨으로써 바레시누시와 몽타니에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21] 수상 과정이 상당히 특기할 만한데, 2011년 9월 노벨상위원회는 랠프 스타인먼을 수상자로 내정한 후, 그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그의 집이나 사무실 등 어느 곳에서도 그의 소재를 알아낼 수 없었다. 며칠 간의 노력 끝에 겨우 동료 교수와 연락이 닿았으나, 그가 이틀 전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노벨상위원회는 고심 끝에, 수상자 선정 자체는 그가 생존해 있던 시점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생존자에게만 수상한다는 원칙이 깨지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노벨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고 그대로 발표했다. 발표 시점 기준, 망자를 수상자로 거명한 매우 이례적인 사례.[22] 대부분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 세포가 완전히 분화되어 성숙한 세포가 되면 다른 세포로 분화되지 못한다.[23] 우리가 흔히 아는 캠벨의 생명과학을 저술한 사람이 아니다. 해당 책의 저자인 닐 캠벨 교수는 2004년 사망했다.[24] 순수 중국 출생 + 중국 국적으로는 최초의 과학분야 수상자다. 중국계 과학자가 과학분야 노벨상을 수상한 적은 있지만 모두 외국 국적자였다.[25] 말라리아 퇴치에 기여한 네 번째 노벨상이다. 개똥쑥에서 아르테미시닌을 추출해내어 말라리아 치료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에 공헌했다.[26] 세포 내 손상된 소기관을 분해하는 역할을 함[27] 생체시계, 일주리듬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