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석
1. 개요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출신 감독. 현대 유니콘스와 KIA 타이거즈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키움 히어로즈 감독을 맡았었다. 2020년부터 KBS, KBS N SPORTS 해설위원이다. 선수 시절의 포지션은 외야수.
은퇴 이후인 2016년 10월 27일 급작스럽게 넥센 히어로즈의 새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워낙 깜짝스런 선임인지라 대부분은 놀랍다는 반응. 허나 염경엽 전 감독이 부임하던 당시와 분위기나 여러 상황이 비슷한지라 부임 당시만 해도 비난은 적은 편이었다. 현역 시절에는 그리 유명한 선수도 아니었던 데다가, 코치 경력도 없이 계속 구단 프런트로 일해 오다가 곧바로 감독을 맡게 됐기에 SK 트레이 힐만 감독과 더불어 선임되기 전까지는 개인 문서 자체가 아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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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에 입문했을 적에는 내야수로 출발했다. 그러다 팀이 원해서 투수로 전향했는데 고2때 고질적인 선천성 척추분리증으로 수술 후 투수를 포기하고 외야수로 다시 전향했다.
덕수상고와 중앙대를 거쳐 1996년 현대 유니콘스의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입단 당시에는 지명 순번도 꽤 높았기 때문에[6] 미래 외야 주전감이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이 시기 현대 유니콘스의 외야진은 꽤나 짱짱했고 하필 그와 같은 해에 입단한 어느 괴물 동기가 첫 해부터 주전 외야수 한 자리를 꿰차는 바람에 자리가 사라진 그는 백업과 대타요원 자리를 전전해야 했다. 당시 좌타 대타 전문 요원이자 백업 외야수로 주로 뛰었다. 현대에 입단해서는 당시 스위치덕후 김용달 타격코치의 권유로 스위치 히터 실험을 했다.
프로 첫 해에는 대부분의 타석을 대타로 출장하며 쏠쏠한 활약을 하기도 했는데 1996년 6월 2일 숭의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팀에게 승기를 가져오는 '''대타 역전 결승 만루홈런'''을 터뜨렸다. 그의 홈런 소식이 담겨있는 기사. 그런데 경기 중반 현대가 7:1로 앞선 상황에서 이근엽, 박진만, 권준헌이 삼성의 이상훈한테 고의성으로 의심되는 빈볼을 맞으면서 분위기가 달아오르더니 9회초에 등판한 투수 정명원이 양준혁과 이승엽을 연달아 맞추면서 결국 '''벤치 클리어링'''이 터지고 만 것이다(…). 이 날 정명원은 자진 등판해서 대놓고 보복구를 던졌고, 경기 후 현대그룹 고위층한테 잘 했다면서 금일봉을 받았다. 당시 대한민국 양대 재벌이었던 현대와 삼성의 관계가 그랬다(…). 그래서 이날 경기 후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재계 라이벌 시리즈의 에피소드에서도 이 벤치 클리어링만 길이길이 회자될 뿐(…) 장정석의 대타 역전 만루홈런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래도 그 해 가을야구에서는 제법 많은 기회를 받았는데 플레이오프 상대였던 쌍방울 레이더스가 성영재, 김현욱, 김기덕 등 언더핸드 투수들을 주구장창 내보낸 덕분에[7] 언더핸드 투수에 유리한 좌타자인 장정석이 플래툰 내지 백업으로 자주 나올 수밖에 없었다.
1996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는 대타로 나와 적시타를 쳤지만 이순철의 송구에 3루로 뛰어가던 대주자 염경엽이 아웃되면서 타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영상[8] 6차전에서 장정석 본인도 사인 미스로 주루사를 범했다.
1998년 한국시리즈 당시 백업 외야수로 출전, 팀의 우승하면서 우승반지를 얻었다. 이 해 선수생활 최다 안타와 타점을 기록했다.
1999년에는 김경기, 이숭용의 연속 부상 때문에 돌연 1루수로 뛰었으나 잠실에서 견제구를 잡으려다 귀루하던 두산 선수 김민호와 충돌해 엄지 인대 파열로 3개월을 쉬어야 했고, 거기서 그의 선수 인생은 꼬였다.
2002년 6월 16일 최익성 상대로 KIA 타이거즈에 트레이드됐다. 갑작스러운 트레이드여서 최익성을 본 KIA 선수들이 "너 왜 현대 유니폼 입고 있냐?" 라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때 당시 KIA 감독이었던 김성한과 마찰이 있었다는 카더라가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9]
이듬해인 2003년 시즌에도 이종범, 박재홍 등 스타 플레이어들에 밀려 많은 기회를 받지 못했고, 본인도 1할대 타율에 허덕이다가 시즌을 마감했다. 이 시즌이 끝난 후 만 30세에 너클볼 투수로 전향했는데[10] , KIA에서는 가능성을 괜찮게 봤는지 10승 투수가 될 재목이라며 인스트럭터로 한희민, 공을 받을 포수로 주전 김상훈을 붙여주기까지 하는 엄청난 배려를 해줬고 장정석은 하루 200개씩 너클볼을 던지며 시즌을 준비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한화 이글스와의 연습경기에서 볼질이 계속되자 구단에서 더는 참지 못하고 당시 부족하던 외야 백업으로 돌려버리는 바람에 투수 도전은 그대로 끝났다고.. 사실 지금도 너클볼을 제대로 받는 포수가 드문 형편인데 그 당시라고 포수들이 너클볼을 잘 받아줬을리도 없고, 늦은 전향때문인지 잔부상도 겹쳐서 결국 공식 경기 등판 기회는 잡지 못하게 된 모양.
시즌이 끝나고 방출됐으며, 당시 한화 이글스 감독이었던 김인식의 제의를 받아 2004년에는 한화로 이적했으나, 현대 유니콘스 사장의 설득으로 선수 생활을 5월 말 은퇴했다.
프로 통산 성적은 8시즌 통산 타율 0.215(818타수 176안타), 7홈런 75타점 105득점 19도루 70볼넷 4실책 181삼진 WAR -4.0을 기록했다.
2.1. 삼나쌩? 잠수함 킬러?
같은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었던, 넥센 히어로즈의 전임 감독이었던 염경엽처럼 수비 빼곤 뭐 기대할 게 하나도 없는, 그런 똑같은 성적이라, 백업 요원으로만 출장했다. 염경엽은 규정 타석을 채운 적이라도 있지만, 장정석은 아예 규정 타석도 못 채웠으니.. 넥센에 있던 선수로 따지자면 유재신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될지도 모르겠지만, 유재신보다는 공격력은 그나마 있었고 대타로 쓰였다는 점에서 오윤이나 박헌도 정도의 위치라고 보는 게 맞다.
'''다만, 삼성 또는 잠수함 투수만 만났다 하면 임팩트 있는 활약을 보여줬다.''' 위에서 말했듯이 1996년 6월 2일은 삼성 팬들에겐 충격의 날이였는데 벤치 클리어링도 모자라 당시 삼성의 에이스이자 마무리 투수였던 박충식을 상대로 때려내버린 역전 만루홈런은 그야말로 삼성 팬들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벤치 클리어링도 벤치 클리어링이지만 대타 선수한테 역전 만루홈런을 쳐맞고 패배를 했다는 거 자체 만으로도 1패 이상의 충격. 지금으로 따지자면, 오승환이나 선동열 같은 마무리 투수를 상대로 유재신이 대타 만루 홈런을 때려낸 거랑 같다고 보면 된다.[11] 거기다가 박충식은 잠수함 투수였으니 충격은 더 클 터. 이로 인해 잠수함 킬러라는 별명이 붙게 된다. 사실 이 게 좀 임팩트가 커서 그렇지 잠수함 투수가 넘쳐나던 쌍방울전에서는 그리 재미를 보지 못 했다. 당시 쌍방울에는 성영재, 김기덕, 김현욱 같은 잠수함 투수들이 즐비했으니까.
1997년 9월 10일에는 장정석과 김광림이 연속 내야안타로 출루한 2사 1, 2루 상황에서 이숭용, 권준헌, 허유신의 3연속 안타를 두들겨 맞고, 4-1로 패한 적도 있다.
1998년 5월 17일에는 인천 2연전 2차전이였는데 1차전은 2-1로 앞서다가 전준호에게 2타점 2루타를 얻어 맞고 2-3으로 역전패 당한 경기에 이어 2차전에는 1:0으로 잘 이기나 싶더니 8회 말 장정석에게 2타점 싹쓸이 적시타를 얻어맞고 2연전 모두 역전패를 당했다. 이 당시 삼성 올드 팬들은 루상에 주자가 있으면 박재홍보다 대타로 나오는 장정석이 더 무서웠다나(…).
5월 24일에는 3점 홈런을 때려냈다. 상대 투수는 임창용이였는데, 이 때 임창용은 현대의 마무리 용병 투수로 뛰었던 조 스트롱과 세이브왕 경쟁을 펼치고 있었을 때였다. 당시 임창용은 선동열이 마무리를 뛰던 시절을 연상케 할 정도로 특급 마무리였는데, 1998년에 장정석이 쳐낸 유일한 홈런 한 개가 바로 임창용한테 때려냈던 3점 홈런이었던 것. 그 3점 홈런으로 임창용에게 패전을 안겼으니.. 잠수함 킬러라고 불릴 만 했다.
1999년부터는 삼나쌩 기질이 사라졌었고, 김경기, 이숭용이 부상당하는 와중에 여러 포지션에서 뛰다가 본인도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을 당했고,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 뒤로 2002년 빼곤 100타수 이상 출장한 경기가 없다. 원래부터 백업 자원이여서 규정 타석을 채운 시즌도 없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행보.
다만 1996년 6월 2일 이후로 삼성은 현대만 만났다 하면 패배했다.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던 2007년까지 지속되었다. 여담으로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된 후로 재창단이 된 넥센 히어로즈가 삼성을 상대로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점한 건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7년부터, 장정석이 넥센 감독으로 부임한 첫 해부터이다.
3. 선수 은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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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후 한화로 이적한지 얼마 안 되어 현대 유니콘스 사장의 부름을 받았고, 한화 이글스는 장정석의 가능성을 높게 보았지만, 워낙 의지가 강해 5월경 웨이버 공시를 하게 되었고, 이후 은퇴하게 된다.
그리고, 현대 유니콘스에서 프런트로 일을 하게 되었다. 현대 시절에는 1군 기록원을 맡았고, 넥센 히어로즈가 창단된 후에는 1군 매니저를 맡았다가, 2016년에는 운영팀장으로 부임했다.
2014년 넥센 히어로즈가 보스턴 레드삭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면서 히어로즈 구단 프런트 직원들이 순차적으로 레드삭스에서 연수를 받았는데, 이때 1군 운영 팀 과장이던 장정석도 연수를 받았다. 김치현 팀장 & 장정석 과장 미국 현지 인터뷰[12]
3.1. 지도자 경력
4. 해설 위원
2020 시즌부터 KBS N SPORTS의 해설위원을 맡게 됐다. 첫 정규 해설에선 감독 시절처럼 말을 잘 하기는 하지만, 딱 할 말만 하는 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딕션이 좋고 서울 출신답게 사투리 톤도 없어서 야구인 출신 해설들이 자주 지적받는 발음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5월 5일 롯데와 kt의 수원 개막전 오프튜브 중계로 안치용 해설과 권성욱 캐스터와 같이 중계를 하며 해설 데뷔전을 가졌으며, 중계가 끝나자마자 알럽베까지 첫 출연했다.
5월 8일에 고척스카이돔에서 한화와 친정팀 키움의 경기 해설을 통해 이기호 캐스터 장성호 해설위원과 함께 첫 현장 중계를 맡았고 그 경기서 키움은 한화에 5:3으로 승리했다.
5월 22일 LG와 한화의 경기에는 처음으로 단독 해설을 맡았다.
6월 17일 권성욱 캐스터와 함께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 간의 시즌 5차전 경기 해설을 하였는데, '''삼성에 원수라도 진 마냥 일방적으로 두산에 우호적 편파해설을 하여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고 있다.''' 우선 김상수의 사인훔치기 음모론부터 시작해 박세혁의 홈런 당시 '''어마어마한 환호''', 페르난데스 팝플라이시 '''한숨''', 게다가 9회초 쐐기타를 때려낸 이원석 등 삼성 타자들이 안타를 치니 '''아쉬운 기색을 못내 감추는 듯한 어조로 조용히 안타를 언급'''하는 등 한심한 추태를 보이며 본인이 자격 미달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고, 만약 삼성이 이경기를 졌으면 삼성팬들이 어마어마하게 분노했다고 할 정도로 역대급 편파였다. 거의 '''한일전 당시 일본의 득점을 언급하는 수준'''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장정석이 감독으로 3년 동안 있을 당시에도 삼성 팬들의 장정석을 향한 여론은 딱히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았는데[13] 이 해설 한 번으로 삼성 팬들에게는 여론이 부정적인 걸 넘어 적대적으로 바뀌었다. 6월 29일 올라온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에서 당시 중계에 대한 비판 댓글이 언급되자 '''기억이 안 난다'''며 다음 해설 때는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7월 1일 후예가 등장했다. 삼성 선수에 대한 인신공격과 특정 팀 팬 시점 해설이 판박이라는 평. 게다가 이쪽은 상대팀 sk가 실책하니 화를 내며 sk 선수들을 질책했다. 삼성의 선발투수인 뷰캐넌이 투구수를 100개가 넘자 이호근 캐스터가 뷰캐넌의 평균 투구수는 104개 라고 말했다 그러자 안치용은 외국인 투수가 120개는 던져야한다고 말해 삼성팬들이 크게 분노하였다.
키움과 LG가 맞붙은 2020 와일드 카드 결정전 1차전에서 LG 출신이기도 한 봉중근과 함께 해설을 맡았다. 봉중근이 해설위원의 본분을 잊고 노골적으로 LG 응원 급 편파 해설을 한 것과는 달리[14] 그는 LG와 키움을 아우르며 나 홀로 해설을 캐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즌 막판들어 한국시리즈 매치를 두산 vs LG라 예측하고 옐로우카드에서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우승팀을 NC가 아닌 두산으로 예측하는 행보를 걸어 여러 키움팬에게 좋지않은 의견을 들었다. 2019년 전력으로도 각종 운영미스로 두산에 우승을 내준 것을 조금이나마 덮기 위한 것 아니냐 내지는 지나친 두산공포증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sh_new&no=1936554
5. 감독 스타일
전반적으로 매니저형 감독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매니저라고 우습게 보는 사람이 많은데 코칭스태프에 다들 아마에서 한가닥해서 걸러져 온 선수들까지 수십명의 성인, 그것도 감독보다 훨씬 더받는 선수들 여럿 밑에 데리고 관리하는 일인데 그게 쉬울까? 위에있는 프런트와의 관계까지 신경쓰면서. 프런트 비중이 특히 큰 히어로즈 특성을 감안하면 후술할 스타일은 장정석 감독만의 것 이라기보단 코치진, 프런트와의 전체적인 합의, 논의의 결과물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실제로 선수들이 잘하면 이기고 못하면 지는 스타일이지만, 감독 본인의 실수로 우승 문턱에서 미끄러지는 등 한계도 명확한 감독이다. 프로스포츠 판을 잘 돌이켜보면 '''그 좋은 선수단으로 그 성적이 안나오는''' 경우가 생각보다 무척 많은데, 장정석도 결국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 2019년 키움 히어로즈는 스몰마켓 구단으로는 정말 운이 좋게도 용병 3명을 잘 구성했고 공인구 반발계수 상승 효과로 추정되는 여러 불펜투수들의 좋은 성적 덕분에 리그 최고의 전력, 아니 21세기 프로야구팀 중 손에 꼽힐 정도로 좋은 전력을 갖추고도 정규시즌 3등에 그쳤다는 것이 주된 비판거리이다.
5.1. 선수 관리
김시진-염경엽 도합 8년 동안 제대로 된 토종 선발 한 명을 못키우고,[15] 혹사로 필승조 싹 갈아먹어 제대로 된 필승조도 없었던 팀을 부임 3년차에 '''상위권 투수력으로 탈바꿈시켰다.''' 크게 떠들지 않아서 그렇지 이건 대단한 업적이다.
투수관리와 혹사지양에선 KBO에서 탑이다. 초보감독이었던 17시즌 브리검을 당겨썼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뒤로는 아주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19시즌 히어로즈 팬들은 투수가 부상으로 이탈해도 장정석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부상 부위가 어디든 혹사 때문은 아니니까. 18시즌 필승조 포함한 불펜진 전체가 방화를 거듭하고 로저스와 최원태의 부상 이탈이라는 커다란 악재를 만났음에도 정규시즌 마지막까지 착실하게 관리해줬고 특정 선수에게 주어지는 이닝 부담을 최소화시키려 노력했다.
18시즌 어쩔수 없이 이닝 부담을 짊어져야해서 포스트시즌 포함 200이닝 넘게 던진 브리검은 19시즌 전반기 주기적으로 휴식을 부여했고, 매시즌 부상으로 신음하는 최원태는 전반기 내내 귀족 소리 들을 정도로 끔찍히 관리받았다.[16] 전임자가 갈아버린 조상우도 끈기 있게 기다려줬고 한 차례 어깨 부상으로 이탈하긴 했어도 19시즌 내내 꾸준히 호투해준 것으로 보답을 받았다. 팀내 투수진을 최대한 넓게 활용하는 운영 능력도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17] 그 허약하던 히어로즈 불펜이 진일보했다. 염경엽이 한조듀오를 갈아버린 15시즌 이후 4년 만에 쓸만한 필승조를 갖추는데 성공했고 양현 등을 활용한 오프너 전략까지 제법 능숙하게 구사해냈다.
몇몇 불펜 투수들이 제각기 무기 하나씩 다듬어[18] 투고타저로 변한 리그 흐름을 따라갈 실력을 갖추긴 했지만, 여전히 구위나 제구면에서 돋보이는 불펜 투수는 없다. 우완 조상우와 좌완 이영준 정도를 제외한 히어로즈 불펜은 구질과 완급, 제구로 승부하는 투수들이다. 그럼에도 선전하는 것은 최대한 무리시키지 않고 투수 로스터를 폭넓게 활용하고, 설사 맞아나가도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착실히 보듬어 줬기 때문이다. 전임 감독이 강한 불펜론을 주장하며 구위가 좋으면 일단 불펜에 박아놓고 봤던 행태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모습이며, 이 때문에 전임 감독의 투수 운용을 옹호하던 팬들마저 이제는 전임 감독 옹호를 완전히 포기한 상태(…). 그렇게 페넌트레이스에서 관리를 한 결과 포스트시즌에 매 경기 투수들을 7~9명을 써도 거뜬한 불펜을 만들었다. 게다가 포시에서도 투구수 20개 이하로 관리하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야수 관리에도 전보다는 진일보한 모습을 보인다. 유격수로 몇년 동안 혹사당한 김하성의 체력 안배를 위해 3루수 병행 및 김혜성을 주전으로 발탁하고, 손목 부상으로 신음하는 박병호에게 한창 중요한 순위 싸움 와중에도 전격 2군행을 지시해 휴식을 부여하는 등 투수 쪽만큼은 아니여도 관리에 힘쓰고 있다.
2019년 포스트시즌 주축 불펜투수들은 물론 추격조, 패전조로 분류되었던 투수들이 눈부신 활약을 보이면서 시즌중 투수 관리의 결과가 긍정적으로 돌아왔다. 특히 전임자 염경엽 감독 하에서 한현희, 조상우 등의 불펜 투수가 정규시즌에 지나치게 많이 던진 탓에 가을야구에 탈탈 털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과 좋은 대조가 되고 있다.
5.2. 유망주 기용
경기 개입이나 작전을 지양하고 정공법 위주로 승부하는 스타일이라 뇌없는 불나방…)들을 작전야구 한답시고 중용하진 않는다. 툴을 고루 갖춘 유망주들을 중용하며 키우기로 하면 부진해도 인내심을 가지고 뚝심있게 밀어준다. 그가 밀어준 선수들 면면을 살펴보면 팬들도 쟤는 키워야지 내지 일단 기회는 줘봐야지 하던 선수들이다.
임병욱, 송성문, 김혜성이 대표적인데 이들 중 김혜성은 공수에서 부진한데 계속 쓴다며 양아들로 불렸고 팬들의 원성이 어마어마했지만, 19시즌 투고타저 흐름속에서도 18시즌보다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파워툴이 있는 장영석과 허정협은 부응 못한 그들의 기량이 문제였지 기회는 줄 만큼 줬다.그렇다고 신체능력 떨어지는 선수들을 아예 무시하지도 않았다. 툴은 없지만 근성 있고 열심히 뛰는 유형인 김규민과 박정음은 좌익수 포지션이 비었을때 충분히 기회를 주면서 경쟁시켰고, 18시즌 고종욱과 이정후가 차례로 부상당할 때 김규민의 활약으로 보답받았다.[19] 김혜성보다 훨씬 말많았던 주효상은 팀에 포수 없다고 1픽 써가며 뽑은 자원이라 장정석이 아니라 누가 감독해도 기회줘야 하는 선수였다. 3자들이 봐도 아닌 선수에게 꽂혀서[20] 전력 까먹는 일은 적다.
위의 평가가 무색하게 허정협은 2020년 감독이 바뀐후로 많은기회를 부여받으며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김규민 위주의 기용이 비판받을 부분이 있다.[21]
중요한 경기에서 과감한 유망주 기용으로 팬들이 기겁하는 경우도 있다. 19시즌만 봐도 9월 순위 싸움이 한창이던 20일 SK와의 최종전에 전역하고 갓 합류한 김웅빈을 선발 3루수로 기용하거나, 19년 준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박동원이 부상으로 포수 출전이 불가능해지자 박동원 전담이었던 최원태의 경기에 백전노장 이지영 대신 18년 최원태 전담이던 주효상을 선발로 내보내 보고, 임병욱이 수술을 받게 되어 시즌을 마감하자 수비문제로 기여도가 없을 수밖에 없는 예진원을 가을야구 엔트리에 포함시켜 경험을 쌓게 해줬는데 전부 팬들의 예상 밖이었고 해당 선수들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유망주들 성장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양. 허나 무작정 박아두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성향은 또 아니다. 주효상이 준PO 4차전에서 어설픈 수비를 이어가자 연속 4피안타를 내준 최원태와 함께 즉시 내려버리는 등 기대치 않은 승부사적 면모를 보일 때도 있다.
2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도 기회를 거의 못 받았던 선수로는 3루 임지열과 2루 김은성이 있는데[22] 김웅빈은 19시즌 전역 직후 한창 순위싸움하던 시즌 막판에 배짱 좋게 선발 라인업에 넣어주고 가을 야구 선발엔트리까지 합류했으며, 김혜성은 전술했듯 적극 푸쉬했기 때문에 고집인지, 단순히 현장 평가에서 김웅빈과 김혜성에게 밀린 건지는 선수들의 성장세를 좀 더 지켜보고 판단해야 할 듯 하다.[23]
5.3. 무리한 경기 개입 지양
장정석 감독의 초반 2년은 그야말로 한국형 매니저의 모델을 정립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2년간 나름대로 전통적인 감독상을 따라가보려 대타도 쓰고 번트도 대보고 작전도 써보고 했지만 이리저리 수업료를 지불해보고 난 뒤에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장정석은 구단 운영팀장 출신이고, 이 자리는 감독과 달리 성적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진 않는다.[24] 그보다는 1년간 구단이 구상하는 정해진 사이클에 맞춰 얼마나 선수단의 뒷바라지를 잘 하는지가 중요하고, 그 경험이 현장 운영에 접목되어 성적으로 나타나면서 본격적으로 장정석 본인의 스타일 아닌 스타일로 나타났다.
타자는 잘 치고, 투수는 잘 던진다. 심플한 정공법을 선호하며 작전, 대타[25] 같은 경기 개입이 매우 드문 감독이다. 최선의 선택이 반드시 최고의 결과를 낳지 않고, 최악의 선택이 꼭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지도 않는 확률의 스포츠가 야구이며 KBO 판은 상위 리그에 비해 감독들이 돋보이게 만들고, 자기 권위 높이려고 의도적으로 경기 개입하는 사례가 많아서 그의 이런 방식은 호불호를 가르게 된다. 김기태, 양상문처럼 쓸데없이 이상한 작전쓰다 경기를 꼬아버리는 일은 없지만 2019년 9월 말처럼 선수들이 단체로 얼이 빠져버리면 아무것도 못하고 깨지기 때문에 뒤에 가서 짜내기 안해서 지금 순위가 이렇다, 대타 안써서 졌다, 경기 중에 망부석처럼 서서 하는 일이 뭐냐 등등 현대 야구에서 규정한 감독의 역할을 부정하는 온갖 불평들이 쏟아진다. 김성근이나 다른 명장병 걸린 감동님들 비판할 땐 현대 야구에서 감독 하는 일은 그런게 아니라고 소리 높이던 사람들이 장정석에겐 말이 바뀐다.[26] 또 정작 번트대라고 해서 댔더니 점수 못내서 지면 바지니 오리주둥X니 하는 비아냥이 쏟아진다. 워낙 스타일이 희미하고 후술하듯 말을 아끼는 성격이라 안티가 딱히 없지만 그만큼 쉴드를 쳐줄만한 팬이나 기자도 없는 이상 어쩔 수 없을 듯 하다.
5.4. 불필요한 인터뷰 및 언론 플레이 자제
감독 본인이 재미없을 정도로 말을 아끼는 편이다. 승패 인터뷰시 딱 필요한 말만(예 : 누가 잘했고, 이겨서 기쁘고, 팬분들께 감사한다, 져서 안타깝고 더 열심히 하겠다)하면서 기계적이고 상투적인 답변을 구사한다. 이런 간단명료한 답변이 나쁜 것은 아닌데, 이미 과거에도 사족을 단 발언 하나가 꼬투리잡혀서 내내 비판받는 감독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장정석은 공식 대변인마냥 딱 필요한 할 말만 하고 논란거리가 될 발언 자체를 자제하는 쪽에 속한다. 다르게 말하면 조명을 덜 받고 본인의 캐릭터성이 부족한 편.[27] 또 과하진 않지만 늘 선수들을 자주 추켜 세우며, 타 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패장이든 승장이든)을 존중하는 발언도 잊지 않으며 스스로 선수들이나 코치들에게 공을 돌리기도 한다. 반대로 패배하거나 팀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본격적으로 자신의 탓을 하며 탱킹에 나선다. 특히 포스트시즌에서 패할 때조차도 스스로의 잘못된 선택을 먼저 언급하고 선수들을 감싸주는 편.
다만 본인이 2019년이 끝나고 감독직에서 물러나면서 결과적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팀을 키우지도 못했고, 2019년의 키움처럼 성적을 내야 하는 팀이 정규시즌 3위에 그친 이유를 장정석 개인의 성격을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본인의 선수관리를 강조하고 싶을 때 경기 전 불펜 출장 여부, 선발투수의 투구수, 대타 기용 가능 여부, 불펜 기용 등 경기 전략을 상대에게 미리 노출시키면서 입을 털었던 인터뷰를 많이 했다는 것은 단점.
5.5. 데이터 활용
김성근이나 염경엽처럼 데이터 야구한다고 입버릇처럼 떠드는 감독들이 실상 감에 환장한 것과 달리 이쪽은 진짜 상식적으로 데이터를 활용한다.[28] 17, 18시즌에는 다소 서투른 면이 있었는데 19시즌엔 데이터 활용이 발전해서 선수단을 정말 폭넓게 활용하여 최대한 가진 능력을 이끌어내고 있다. 19시즌전 마무리를 미리 정하지 않고, 박병호를 강한 2번 타자로 기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MLB의 흐름을 반영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정작 시즌중 박병호는 2번에 한번도 기용돼지 않아 인터뷰에 그쳤다.
불펜 운용이나 대타 선정도 주목받고 있다. 장정석의 불펜 활용, #, #, 2018 포스트시즌 반성, SK 대비 슬라이드 스탭 조정 올드 스쿨 감독들처럼 감이 어쩌고, 느낌이 좋았다 같은 말은 아예 안한다. 저 투수는 3번 사이클이 돌면 맞아나갈 확률이 높아져서, 이 타자는 빠른 직구를 잘 받아져서, 이닝을 끊어서 등판하는 게 실점확률이 낮아서 같이 지극히 상식적인 이유로 설명한다. 19년 플레이오프는 혹사가 아닌 분석에 기반한 MLB식 '''세련된 불펜 야구'''를 한국에서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시리즈였다. 제갈량을 자칭하면서도 쓸놈쓸에 남탓만 하던 상대 감독을 신속한 개입으로 완벽하게 제압했는데 특히 불펜에서 가장 좋은 구위를 가진 조상우를 세이브 상황이 아닌, 중요상황 등판투수로 활용해 SK의 타선을 눌렀다. 야구란 종목이 최선의 선택이 최선의 결과를 낳지 않으며, 자신을 내세우고 싶은 유혹이 많은 자리인데 데이터팀과 선수들에게 공을 돌리며 올드 스쿨 야구의 틀을 깼다.
하지만 위의 내용에 대해 반론이 만만치 않은데 2번타자로 김하성을 기용하면서 정작 훨씬 좋은 타격성적의 팀내 최고를 넘어 리그 최고의 타자였던 샌즈를 5번에 기용한 것은 세이버매트릭스와 매우 상반되는 기용이었다. 또한 팀 타격성적에 비해 대타 타격 성적도 결코 높은 편이라 하기는 힘들었으며 특히 팀 성적에 비해 연장전 승률 한점차 승률이 극도로 낮아 접전에 약했다.
이는 2018년에 점차 개선되기 시작한다. 다만 샌즈는 타격 생산성이 높은 선수들 중에서 4할에 가까운 출루율을 보였으며 2020년 애런 알테어가 이보다 낮은 타순에서 엄청난 성적을 거두며, 딱히 제리 샌즈를 5번에 넣은 건 틀린 선택은 아니였다. 무엇 보다도 2019년 시즌 후반기에 샌즈의 체력이 떨어지면서 공격력이 다소 떨어지자, 장정석의 기용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5.6. 포수리드 신봉
류중일과 더불어 동양적 관점의 포수의 투수리드에 강력하게 의미를 부여한 감독이다. 특히 주효상의 투수리드에 대한 칭찬을 굉장히 많이 했다. 2017년 주전포수 박동원이 있음에도 주효상, 김재현과 3포수체제를 구상했고 2019년 타격생산성이 크게 차이나던 박동원과 이지영을 전담포수제로 비슷하게 기용한 것은 이러한 맥락으로 보인다. 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기용이 2019년 정규3위에 그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받기도 한다. 하지만 2020시즌 초반 타격 성적이 좋던 박동원이 손혁에 의해 많은 경기에 나오게 되자 체력이 떨어져 후반기 성적이 급락하면서 장 감독의 포수 체력 분배 정책이 옳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6. 여담
-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쏟아져 나와서 황금 세대라고 불리던 92학번 출신이다.[29] 선수 시절 경력으론 존재감이 약하던 장정석이 92학번 중에서 가장 먼저 KBO 리그 1군 감독이 되었다.
- 문서 첫머리에 나오듯이 감독 선임 시점에서 최연소 감독이다. 2016년 KBO 리그까지는 1971년 4월생인 조원우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최연소 감독이었으나 시즌 후 삼성 라이온즈가 김한수 감독(1971년 10월생)을 선임하면서 최연소 감독 타이틀이 김한수 감독에게로 갔다. 그러다가 며칠 뒤 1973년생인 장정석 감독이 최연소 감독 타이틀을 달게 됐다. 참고로 MLB에서 뛰고 있는 바톨로 콜론과는 1973년생 동갑내기이며, KBO 리그 최고령 선수였던 최영필과는 생일이 불과 1년 1개월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장정석과 최영필은 1997년부터 2001년 시즌 중반까지 4시즌 반을 현대 유니콘스에서 한솥밥을 먹은 바 있다. 심지어 2017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이승엽이 장정석보다 데뷔는 1년 빠르다! 물론 이는 이승엽이 고졸 데뷔라서 그런 거고, 실제 나이는 장정석 감독이 3살 많다.
- 원조 듣동님의 별명을 빼앗아 새로운 듣동님이 되었다. 친프런트 감독이라 꼭두각동 줄여서 꼭동님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넥센 히어로즈 갤러리에서는 감독 선임 이후 첫 인터뷰에서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해서 몰동님이라고 많이 불리는 편이다.[30]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는 야구를 잘 안다고 알동님으로 승격된다. 그 외에도 피드백이 굉장히 빠르다는 점에서 사실 혀갤을 눈팅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에서 파생된 갤동님이란 별명도 있다. 유동님, ㅇㅇ동님 등 별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별명은 돌출된 입구조에서 나온 인중, 장오리(…)등이 있다. 2018년 4월 사외이사 선출건이 드러나면서 장이사라는 별명도 추가. 그나마 가장 무난하고 중립적인 표현으로 장감독에서 따온 장감을 간혹 쓰기도 한다. 또는 후술한 대로 장재영 군의 아버지기도 하고, 장재영이 히어로즈로 오길 바라는 팬들이 있어 재영이 아부지라고도 불린다. 실제로 장재영은 히어로즈의 1차 지명을 받았다.
- 다만 시간이 흐르며 대세로 자리잡게 된 별명은 역시 맨 처음 별명이었던 바지.[31] 다만 바지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는 별로 없고, 기본형 격인 장바지와 밪감 등이 주로 쓰이다가, 2018시즌부터 관리형 감독 스타일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하자 밪갈량(…) 또는 장슬랙스 등의 변종이 추가되었다. 19시즌 들어 은근히 전임 감독과 비교되던 패션센스와 인터뷰 스킬(!)마저도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장파고, 장리바이스, 황금바지, 바지트랙(…)이라는 별명도 추가되었다.[32] 또 제갈량 소리 듣던 전임 감독이 속한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이길 때면 사마정석, 바지중달 내지는 사마하의(…)로 불리기도 한다. 갓바지, 국민슬랙스 등의 변종도 생겨났다. 다만 특유의 관리야구가 정착한 뒤로는 구속된 구단주의 꼭두각시라는 원래의 부정적 의미는 상당히 약해진 상태고, 입에 감기고 표의성이 좋아서 쓰는 습관적 표현에 가까워졌다. 조롱이 긍정적 언어로 바뀐 케이스. 언론에선 차마 프로야구단의 1군 감독을 바지라고 부르기 어려운지 사마정석, 장중달 등으로 순화해서 기사 제목 등에 활용하는 중. 한국시리즈 우승만 하면 C급(=Champion급) 감독으로 승격될 수 있었지만, 전패로 끝나면서 아쉽게 되었다.
- 성격과 친화력이 매우 좋다고 구단 내부적으로 알려진 듯. 심지어 이장석 구단주는 "거짓말을 안 하실 분 같다."라고 평하였다. 전 감독은 프런트를 잘 알고 있는데다 처세술이 좋았고, 전전 감독 역시 인성 만큼은 알아주는 사람이었는데도 결국 이장석과 충돌을 피할 수 없었는데, 장정석은 감독 재임 시절에도 이장석과 좋은 관계를 계속 이어 나갔고 재계약이 무산되었을 때에도 이장석과 나쁘게 헤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팀의 감독으로써 이장석을 면회하기도 했다.
- 엠팍에서의 장정석 감독 선수시절 캐치볼 일화를 보면 운동선수 특유의 무뚝뚝하고 거친 면이 없고 상당히 친절하며 늘 존댓말로 대화했다고 한다. 팬 서비스 면에서도 호평인데, 감독 시절 싸인을 하면서 "나 선수 시절에는 이렇게 싸인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는데..." 했다고(…).
- 1998년 11월 8일에 한 살 연상의 신부와 결혼했다. 덕수상고 선후배 관계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교제해 온 사이였으며, 현대 유니콘스 입단 동기였던 박재홍이 결혼식 사회를 맡았다고 한다.[33] 누나 동생이 부부까지 된 사례.[34]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는데 2002년 5월에 장남 장재영 군을 낳았고, 장재영도 야구선수로 활동 중이다. 포지션은 투수(우투우타). 신월중학교를 거쳐 덕수고등학교에 진학해서 계속 투수를 하고 있으며, 히어로즈의 1차 지명을 받았다. 장정석 본인은 장남이 야구선수를 하겠다고 밝히자, 처음에는 반대했다고 한다. 또한 차남도 현재 야구선수로 활동한다고 한다. 차남은 초등학생인데,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검사하러 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 2016년 7월 부친상을 당했다. 훗날 감독이 되자 야구를 매우 좋아하시던 선친께서 주신 선물이 아닌가 하고 소회를 밝혔다.
- 나이에 비해 꽤 동안이다. 동갑내기 박재홍이나, 1살 위의 심재학 수석코치에 비하면 훨씬 앳되어 보인다. 2017년 미디어데이 때 심재학 코치, 신재영 선수 등과 찍은 단체사진으로 확인사살. 2016년 취임식 때 심재학, 홍원기 사이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을 보면 감독 취임식이 아니고 신인 드래프트처럼 보인다(…).
- KIA 타이거즈에서 활동할 때 어린 시절의 이정후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시 이종범 해설위원의 현역 시절에 몇 번 데리고 왔었다고.
-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야구 협약을 맺을 때, 메이저리그 시스템을 배우러 다녀왔다고 한다. 2017년 성적이 실패로 돌아감으로서, 2016년 2군 성적이 꽤 안 좋았던 것이 떠오르면서, 넥센이 다시 오랜 리빌딩 기간을 겪는 게 아닌가 하고 불안해하는 팬들이 많다. 그러나 2018 시즌에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보란듯이 와일드카드전 승리, 준플레이오프 업셋을 거쳐 플레이오프에서는 먼저 두 경기를 내주고도 최종전 연장까지 이어가는 명승부를 펼친 끝에 아쉽게 패하는 등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면서, 이제는 많은 키움팬들의 호평과 지지를 받고 있다.
- 2018년 4월 5일, 넥센 히어로즈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구단 사외이사 직책을 맡았음이 기사로 나왔다. 이게 왜 문제가 되는가 하니 사외이사는 기업 경영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직책인데 엄연히 구단 내 인사인 감독이 사외이사를 했으니 의도와 전혀 맞지 않는 셈이다. 자세한 내용은 구단 사건사고 항목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 운영 팀 매니저 시절 2011년 연초에 방영한 무한도전 타인의 삶 특집에서 이숭용이 설명하는 인물 관계도에 사진으로 짧게 등장했다.
- 장영석이 2019 시즌 초반 타점왕 경쟁을 하며 맹활약하자 캐스터들이 콜네임을 할 일이 많아졌는데, 어느 누구라 할 것 없이 한 번씩은 장정석 감독과 헷갈리고 있다.
- 외야수 출신 감독 중에서 가장 성공한 감독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1년차는 7위였으나, 2년차는 플레이오프, 3년차에는 마침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2년차와 3년차에 각각 한번씩 팀 창단 최초 업셋도 달성한 점이 있다.
-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에서 직접 본인의 나무위키 문서를 읽었다. 물론 이 긴 문서 전체를 다 읽은 것은 아니고, '여담' 문단에서 별명을 다룬 두 문단 (듣동님-바지 부분) 정도를 커버했다. 애매한 표현을 읽을 때 살짝 버벅댄 걸로 봐서 미리 준비를 시키지는 않은 걸로 보이는데도 차분하고 명확한 발음으로 무난하게 읽어나갔다. 명료한 인터뷰 스킬 그대로의 모습. 다만 바지라는 별명은 감독 1년차때부터 일찌감치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에 대한 멋진 코멘트도 준비해왔는데, 감독 시절 초기에는 바지라는 별명을 듣고 충격을 먹었지만 지금은 상위 1%의 재벌급이 아닌 이상 모든 사람의 인생은 누군가의 바지라면서,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히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프런트 아니였으면 야구 관련 체육학 교수를 했을 거라는 말이 있다.
7. 연도별 성적
8. 연도별 감독 성적
9. 관련 문서
[1] 음력 1973년 4월 12일.[2] 1998년 11월 8일, 고등학교 때부터 교제해 온 한 살 연상의 아내와 결혼식을 올렸다. 현대 유니콘스 입단 동기였던 박재홍이 사회를 맡았다고 한다.#[3] 2020년 8월 24일 키움 히어로즈에 지명되어 아빠가 있던 팀에 입단했다.[4] 현역 첫해인 1996년 5월 잠실 원정경기였다. 옆의 포수는 LG 김동수. 김동수는 훗날 장정석이 있던 현대로 오게 된다.[5] 사실상의 현역 마지막 시즌인 2003년 8월 무등 야구장 홈에서 열린 경기였다. 넘어진 포수는 삼성 라이온즈 진갑용.[6] 이 해 현대가 지명한 선수 중 가장 빠른 순번에서 지명된 외야수였다. 2순위에 지명된 설종진도 있었지만 지명 당시에는 투수로 입단했다.[7] 당시의 현대 타자들은 우타자가 주류를 이뤘고 이상할 정도로 언더핸드에 약했다. 게다가 현대는 대대로 좌타자가 풍족한 팀이 아니었는데 1996년 당시에도 믿을 만한 좌타자라고는 사실상 이숭용 한 명 뿐이었다. 윤덕규도 있었지만 노쇠화가 뚜렷해진 시기였다.[8] 영상에서 염경엽은 훗날 자신의 후임 단장이 되는 손차훈이 볼넷을 골라나가자 대주자로 투입되었다. 염경엽이 이순철의 레이저 송구에 아웃된 그 직후 2사 3루에서 김인호가 3루선상 빠지는 2루타를 쳐내며 장정석은 첫 득점에 성공했다. 문제는 연이은 주루플레이 미스. 뒤이어 나온 윤덕규도 안타를 쳐냈지만, 이때 김인호가 홈까지 내달리다 협살에 걸려 아웃되고 말았다. 당시 분위기상 주루 미스만 아니었으면 현대가 우승했을지도 모른다. [9] 최익성은 당시 정작 야구보다는 새집 구하러 부동산 찾아다니고, 전입신고하러 동사무소 들락거리느라 더 바빴다고. 그런데 하필이면 현대로 옮겨오자마자 2군 경기도중 오른쪽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꼼짝 못하고 원당기숙사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그 와중에 트레이드되기 전날 밤 광주 집에 있는 세탁기 속에 빨래를 담아놓고 그 상태로 벌써 한 달이 넘어서 나중에 가보니 빨래가 물에 퉁퉁 불어 다 썩었다고 한다(…).[10] 어릴 적 꿈이 전문 너클볼러였다고 한다.[11] 그런데 2018년에 유재신이 김광현을 상대로 선발출장을 해서 통산 1호 홈런을 만루홈런으로 쳐냈다.[12] 같이 인터뷰를 한 김치현 국제팀장은 넥센의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로 국내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던 좌완투수 앤디 밴 헤켄을 뽑아온 인물. 이 공로로 국제팀장까지 승진했다. 그리고 2019년 구단 단장으로 취임했지만, 2년 만에 짤리고 고형욱으로 교체된다.[13] 안 좋긴 했었다. 맥과이어와 헤일리가 키움 상대로 단 한 번의 승리를 거둔 적이 없었다.[14] 거의 한일전 수준으로 샤우팅을 하며 LG를 응원했다. 자세한 사항은 봉중근 및 와일드 카드 결정전의 해당 항목 참조.[15] 신재영은 딱 1년으로 끝났고 그나마도 박승민의 공이 컸다. 다시 말해, 김시진, 염경엽이 키운 토종 선발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그나마도 이현승이 있었는데, 두산으로 가버렸고...[16] 그리고 덕분에 조명을 덜 받았던 투수들이 기회를 많이 받았다. 스윙맨 김동준, 전문 오프너 양현, 대체선발 김선기 등.[17] 다만 이 부분은 선술했듯 나이트 코치와 프런트, 감독의 합작이며 그 과정에서 감독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이해하면 된다.[18] 김동준의 스플리터, 김성민의 체인지업, 윤영삼의 슬라이더, 양현의 싱커, 이영준의 포심.[19] 19시즌 성적을 보면 박정음은 WAR 음수지만, 김규민은 백업 외야수 몫은 해냈다.[20] 한화 시절 김성근의 권용관, 송주호 같은 경우. 30대 후반 권용관은 통산 타율 2할 중반의 전형적인 내야 유틸 대수비 요원이었고, 송주호는 ops 2할 6푼(…)을 찍을 정도로 타격이 답이 없어 통산 WAR이 음수이던 외야수였다.[21] 그래도 아예 기회를 안줬다보기도 힘든게, 17년도 4번으로 몇경기 박아놓았을 정도로 자주 기용을 했었다. 다만 허정협이 아름다운 한달을 보내고 1군에 적응을 못하면서 손을 놓았다.[22] 외야의 예진원과 추재현은 임병욱이 입대를 미루기도 했거니와 외야 수비의 기본조차 안 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고.[23] 19년 포스트 시즌을 보면 어느정도 원인이 보인다. 장정석은 정규시즌부터 포스트 시즌을 어느정도 염두에 두고 팀을 이끌어가는데, 기복 심한 투수력을 보완하기 위해 투수 엔트리를 최대한 많이 가져가서 데이터에 기반해 효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는걸 단기전 운용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그러려면 최대한 컴팩트하게 구성된 야수조는 박병호와 샌즈같은 소수 핵심자원들을 제외하면 멀티롤이 가능해야 한다. 김혜성, 송성문, 김웅빈에 전문 대수비 김지수는 모두 내야 복수 포지션이 가능하다. 반면 임지열과 김은성은 3루, 2루 밖에 안된다. 실제로 장정석은 19시즌 인터뷰에서 김혜성 기용 사유로 유격수 수비가 가능하다는 점을 거론하기도 했다. 수비로 메리트가 없다면 서건창처럼 타격이 확실하거나 장영석처럼 (꽝 확률이 높긴 하다만) 파워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쪽도 아니다.[24] 물론 계속해서 성적이 바닥을 기면 이른바 혁신이라는 명목으로 프런트가 줄경질되기도 한다.[25] 다만 대타의 경우엔 그 드물게 내는게 성공률이 나름 높은 편이다. 초년차에는 이걸로 주목받기도 했고 2019 시즌도 기사에 따르면 8월말까지 성공률 1위를 달렸다.[26] 신기하게도 17시즌 후반에는 대타성공률이 극악이라고 개같이 까였다. 17시즌 9월 대타성공률은 아예 1할대(…)였다.[27] 갓동님이나 입동님은 이미 이쪽에서 유명하고 가까운 예로 김태형, 한용덕만 해도 중요한 인터뷰나 기사에서 오해받기 쉬운 단어, 표현으로 야구팬들 대다수의 비난을 여러 차례 받았다. 전 감독만 해도 기자들과 친해 염갈량이라는 별명을 얻고, 수시로 자신의 능력을 은연 중에 비추며 명장 코스프레를 잘한 것과 대조된다.[28] 대부분의 감독들이 세이버메트릭스를 보긴 하나 믿고 엔트리 운용에까지 써먹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김성근의 경우 한화에서의 쓸놈쓸과 신재영의 구종에 대한 잘못된 평가로 데이터 전문가라는 별명이 허상임을 드러냈으며 염경엽 역시 리그 최악의 출루율을 보여주는 장기영과 고종욱을 단지 발이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넥센 감독 내내 테이블세터로 고집한 것에서 드러나듯이 데이터보단 자신의 감에 의존하는 감독이다. 그나마 시프트를 적극적으로 지시하던 트레이 힐만이 데이터를 활용하는 편.[29] 박찬호, 박재홍, 정민철, 조성민, 임선동, 염종석, 송지만, 이영우, 박종호, 차명주, 김종국, 최기문, 홍원기, 손혁, 전병호, 최원호, 정경배 등이 동기들이다.[30] 물론 말을 아끼는 게 나쁜 것은 아닌 게, 과거 이만수나 양승호가 부임 초기 비난을 받았던 이유가 전 감독의 색채를 부정 내지 비평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였던 것을 생각하면 나름 현명한 처신이라고 할 수 있다.[31] 물론 바지사장에서 유래한 것이다.[32] 다만 괴로울 정도로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매니저형 감독답게 딱 경기 내용에 대해서만 말하고 끝낸다. 몇몇 스스로를 명장으로 아는 감독들마냥 쓸데없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휘말리진 않는 편.[33] 박재홍 때문에 장정석이 백업으로 활동했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34] 참고로 2020년 현재 48세인 박재홍은 아직도 노총각이다. 현재 불타는 청춘에 출연 중.[35] 덤으로 임창정의 고향인 이천시에는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2군 구장이 있다.[36] 준PO에서 3위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승리했지만 PO에서 2위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지는 바람에 최종 순위는 4위.(4위팀은 준PO를 승리하더라도 한국시리즈 진출하지 못하면 최종 순위는 3위가 아닌 4위로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