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준

 



'''유한준의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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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준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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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KBO 리그 최다 안타왕'''


'''2017 KBO 리그 페어플레이상'''


'''2009 KBO 퓨처스 북부리그 타점왕'''


'''유한준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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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9번'''
이종욱
(2003)

'''유한준
(2004~2007)
'''

팀 해체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12번'''
강귀태
(2008~2009)

'''유한준
(2010)
'''

강귀태
(2011~2012)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61번'''
노병오
(2010)

'''유한준
(2011~2015)
'''

허정협
(2016)
''''''kt wiz''' 등번호 61번'''
황덕균
(2014~2015)

'''유한준
(2016~)
'''

현역




<colbgcolor=#000000> '''kt wiz No.61'''
<colcolor=#fff> '''유한준
柳漢俊 / Han-Jun Yoo'''
'''생년월일'''
1981년 7월 1일 (42세)
'''출신지'''
[image] 전라북도 고창군#
'''학력'''
부천신흥초 - 부천중 - [image] 유신고 - [image] 동국대[1]
'''포지션'''
외야수[2], 지명타자
'''투타'''
우투우타[3]
'''프로입단'''
2000년 2차 3라운드 (전체 20번, 현대)
'''소속팀'''
[image] 현대 유니콘스 (2004~2007)
[image] [image] [image]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 (2008~2015)'''
[image] '''kt wiz (2016~)'''
'''군복무'''
[image]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8~2009)
'''등장곡'''
듀스 - 나를 돌아봐
'''응원가'''
넥센 시절: 미국 동요 《빙고》[4]
현재: 이범학 - 이대팔[5]
자작곡[6][7]
'''종교'''
개신교
'''연봉'''
5억원 (FA, 2020년)
'''수상'''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2015)
안타 1위 (2015)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2.3.1. 군 복무
2.3.2. 2010 시즌
2.3.3. 2011 시즌
2.3.4. 2012 시즌
2.3.5. 2013 시즌
2.4. FA
2.5. kt wiz 시절
2.5.1. 2016 시즌
2.5.2. 2017 시즌
2.5.4. 2019 시즌
2.5.5. 2020 시즌
2.5.6. 2021 시즌
3. 플레이 스타일
4. 성씨
5. 기타
6.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야수는 투수 뒤에서 언제나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점수 차이와 상관없이 잡을 수 있는 공이라면 잡아 주는 것이 투수가 우리를 믿고 플레이할 수 있게 해 주는 힘이다."'''

-

2015년 4월 21일, 11점 차에서 안타성 타구를 억지로 노바운드로 잡다가 부상당한 후, 왜 무리하게 잡으려 들었느냐는 질문에. #

kt wiz 선수 응원가 - 유한준
kt wiz 소속 외야수. 2021년 기준 KBO 리그 등록 선수 중 최고령 타자이다.[8]
리그 중정상급 수비와 장타력, 정교함을 겸비한 꾸준한 타격을 자랑하며, 철저한 자기관리로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꾸준히 활약하면서 팀을 이끄는 모범적인 고참 선수로 높이 평가받는다.관련 기사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image] 사진 출처
부천신흥초, 부천중을 거쳐, 유신고 시절에는 유격수3루수를 겸하던 선수였다. 때문에 프로 입단 초기에는 간혹 3루수로 나오기도 했다. 상무 제대 첫 시즌인 2010년 이후 외야수로 완전히 정착했으며, 내야에는 경기 후반 교체로 인해 수비가 꼬일 때 가끔씩 1루 수비를 보는 정도다.
비교적 빠른 순번으로 현대 유니콘스가 2차 3순위 지명을 했지만, 본인은 대학교에 먼저 가기를 희망해서 동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2000학번)로 진학했다. 동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재학 시절 3년 선배가 박한이, 2년 선배가 투수 이대환, 포수 강귀태, 동기가 좌타자 박정권에 감독은 한대화였다. 상위 순번임에도 불구하고 동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에 진학한 건, 학교 선생님이신 아버지가 "그래도 대학 교육은 먼저 마쳐야 하지 않겠냐"고 권유했기 때문이라고. 성격이 워낙 유순한 탓에 대학 시절 후배들이 간혹 기어 올랐다는데, 이를 앞장서서 제지한 게 동기 박정권이다.[9] 이 인연을 계기로 둘은 절친이 됐으며, 넥센을 상대로 어마무시한 파괴력을 보여주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박정권은 넥센 팬들 사이에서 호감 상위권인 타 팀 선수가 됐다.

2.2. 현대 유니콘스 시절


[image]

현대 입단 후 포지션을 외야로 바꿨다. 당시 전준호송지만의 나이로 볼 때, 외야에서 먼저 기회가 올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성갑 코치에게 엄청나게 펑고를 받으면서 외야 수비가 급상승했다고...현대 시절 호수비 영상
김재박 감독이 유망주라고 지목했지만, 정작 그가 현대 감독으로 있었을 때는 그리 활약하지 못했다. 타격이 좀 안되었지만 , 그래도 수비면에서는 나름 상위급이었으며 특히 롯데전에서 워낙 잘 치고, 호수비도 많이 보여주면서 롯데 팬들에게는 '''유한준 님'''으로 불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10] 딱히 활약한 것이 없던 2007년에 롯데 전에서 7타점을 기록하고, 3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2007년도의 이야기고, 상무 제대 후인 2010년에는 딱히 롯데에 강하진 않다. 장원준만 빼고.( .429 .556 .857 1홈런 3안타 2볼넷 2타점) 현대 시절 홈런 영상

2.3. 넥센 히어로즈 시절


[image]
'''넥센 히어로즈 시절'''

2.3.1. 군 복무


[image]

2007 시즌 후 상무에 입대하여 2009년 2군 타점왕에 등극했다. 김상현, 박정권, 최형우의 사례와 같이 군 팀에 입단한 후 2군에서 맹활약한 선수가 1군에 올라와 주전을 꿰차는 경우가 많아서 팀의 기대가 컸다. 여기에 이택근이 유한준이 제대한 후 팔린 상황이었으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2.3.2. 2010 시즌


상무에서 제대한 후 시즌초반 한때 심한 타격부진에도 선발출장 매경기 출장하는것을 두고 '김시진의 양아들'이라고 엄청나게 까였으나 , 점점 타격감이 나아져가면서 덕 클락(시즌 중 갑작스럽게 퇴출당했지만..)과 함께 팀이 중심 타선 역할을 해가며 활약했다. 시즌 종료 시점에선 3할에 가까운 0.291의 타율과 9홈런, 팀 내 최다인 79타점을 기록하면서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여 줬다.(사실 10홈런이 될수 있었으나 8월 13일 홈런성 타구를 라뱅이 잡아버려 아쉽게 9홈런) 뒤를 받쳐줄 강타자들이 많았다면 참 딱인데, 당시 팀 사정이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타자가 더 많았다면 훨씬 좋은 성적을 냈을 것이라는 평.
[image]

특히 2010년 5월 19일, 문학 SK전에서 '''안타-2루타-투런홈런-2루타-만루홈런-뜬공으로 6타수 5안타, 8타점 2득점을 기록'''했는데, 이날 기록한 8타점은 한국프로야구 한 경기 최다 타점 타이 기록이며, 2015년 920 대첩 박석민이 9타점으로 경신하기 전까지 최고 타이 기록이었다. 이때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대부분의 야구팬들은 유한준 하면 이 8타점짜리 활약을 기억한다. 5월 19일 하이라이트 2010시즌 호수비 영상 여담으로 유한준이 8타점 기록을 세우던 날 위의 짤방처럼 안개가 꼈기 때문에 '무한준'이라는 별명이 '無限준'과 '霧한준'[11]의 중의적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2.3.3. 2011 시즌


넥센 히어로즈의 주포로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등번호를 2010년까지 쓰던 12번[12]에서 61번으로 바꿨는데, 이 숫자는 딸 유하진 양의 생일인 6월 1일에서 딴 것이라고 한다.
초반에는 2번 타자로 출장해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팀의 4번타자였던 용병선수 코리 알드리지의 심각한 부진 때문에 타순이 조정되어 3번에서 뛰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부진했다.
그러나 5월 1일에는 2루타를 연달아 때려내고 필사적인 주루로 결승 득점까지 올리는 맹활약을 선보이는 등 넥센의 주력타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6월 24일. 무사만루 상황에서 시즌 첫 홈런을 만루홈런으로 장식했다.
올스타전에서는 ‘타자 스피드 킹’ 이벤트에 나와 140km/h를 찍고 2등을 하였다. 1등은 147km/h을 찍은 최정. #
8월 30일에는 뜬금없이 경기 후 '유한준 개x끼' 라는 소리가 울려퍼졌는데 기아팬이 마이크에 대고 소리친 거라는 말이 있다. 그 날 유한준이 타점도 올리는 등 활약을 한 데다가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우익수 플라이로 끝나자 기아 팬이 소리를 쳤다고 한다. 덕분에 기아의 팬문화는 또 욕을 진득하게 먹었다.

2011시즌 타율 0.289, 54타점을 기록하였다.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2.3.4. 2012 시즌


팔꿈치 재활로 경기에 못 나오다가 5월 10일 오윤을 대신에 대수비로 출전하였다. 시즌 전 감독, 코치, 치어리더가 뽑은 저평가된 선수 1위에 올랐다. 전반적으로 5월에는 다소 부진한 편이다. 외야 수비에서는 위치 선정이나 포구는 여전히 KBO 최고 수준이지만, 부상 후유증 때문에 송구가 다소 약해졌었다. 그리고 공격은 감을 완전히 잡지 못했던 상황.
그래도 5월 29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9회말 정우람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 2루타를 치면서 팀이 연장 10회말 끝내기로 3:2 승리를 거두는데 발판을 놓았다. 이 날 성적은 4타수 2안타 1타점 1도루. 6월 6일에도 3:3으로 맞선 7회말 2사 1,2루에서 우규민 상대로 역전 적시타를 치면서 1타점을 기록, 팀의 5:3 승리의 발판을 놓았다.
이 해에는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제 기량을 거의 발휘하지 못했다. 5월에 보여준 수비력의 저하와 공격에서 감을 잡지 못한 모습이 시즌 내내 이어졌다.

2.3.5. 2013 시즌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에서는 괜찮은 활약을 보여 2012 시즌의 부진을 씻어낼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개막 이후 4월 초까지 보이는 모습을 보면 매우 실망스러운 모습. 크보 정상급 수비 능력은 어디 안가지만 타석에서는 매우 침체된 상황으로 24타수 3안타 6삼진 2병살 타율 0.125[13]라는 열악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4월 7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는 타석에서도 여전히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7회말 김태완의 플라이 타구를 놓치는 '''중대한''' 실수[14]를 저질러 김병현의 6이닝 노히트 노런이 깨졌다. 흔들린 김병현은 이후 폭투 - 안타 - 볼넷으로 순식간에 무사만루가 형성되었고, 이후 3실점하는 등 팀을 위기에 빠트린 에러가 되었다. 다행히 불펜진의 호투로 팀은 이겼지만, 만약 졌으면 영구까임권을 획득할 뻔한 수비였다. 김병현도 승리투수 인터뷰에서 ''''한준이가 제일 잘했습니다.''''라고 반어법으로 언급. 불암콩콩에서도 이 상황이 소재로 쓰였다(...).
그 이후에도 부진한 타율을 이어갔으나 계속 1군에 남아있었다. 4월 18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중견수로 출장하여 5타수 4안타 1홈런 3타점 3득점이라는, 이전까지의 부진을 완전히 씻어내는 활약을 하여 당일의 MVP로 선정되어 인터뷰를 하였다.

7월 23일 목동 두산전에서 악송구를 던져 오재원을 조련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장면은 7월 12일, 그러니까 열흘 먼저 최훈 만화에 비슷한 상황이 나왔다!!
그저그런 타격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출장하고 있어 염경엽 감독의 양아들이라는 의미로 '염한준'이라고 불린다. 8월 25일 KIA와의 홈 경기에서 홈런 타구 2개를 걷어내고 2루타성 타구를 재빨리 달려가 잡아내는 등 호수비를 잇달아 선보이며 수비는 여전한 클래스를 가지고 있지만, 타석에 서면 공을 몇 개 안 보고 타격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그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어 많은 비난을 듣고 있다. 결국 끝없는 부진 끝에 7월에 2군으로 강등되었으나, 얼마되지 않아 다시 복귀해서 강병식 버프를 받아 좋은 성적을 내다 8월 하반기에 들어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9월 8일 무릎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갔다.
9월 28일 박동원과 교체해 1군에 복귀했다.
9월 29일 목동 두산전에서 3타수 2안타 1홈런 1희생 플라이 4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7타점의 박병호와 함께 팀의 모든 점수를 뽑아냈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는 17타수 2안타 1볼넷 1도루 1득점, 타율&장타율 .118, 출루율 .167를 기록했고, 팀은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image]
그 와중에도 호수비는 꼬박꼬박 적립했다.

2.3.6. 2014 시즌


데뷔 첫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였다.
자세한건 유한준/2014년 문서로.

2.3.7. 2015 시즌


[인터뷰] ‘지각 전성기’ 30대 유한준이 20대의 유한준에게
유한준/2015년 문서로.

2.4. FA


시즌 후 넥센과 결별하여 FA 시장에 나온 후 2015년 11월 29일 kt wiz와 4년 60억, 계약금 36억원의 계약을 맺었다. 공교롭게도 유한준이 첫 프로 생활을 시작한 현대 유니콘스의 임시 연고지가 kt wiz의 연고지인 수원시였다. 본래 현대가 인천에서 서울로 연고 이전을 추진하면서 제반 여건이 마련될 때까지 잠시만 수원에 머무르려고 했는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계획이 틀어지면서 2007 시즌을 끝으로 해체될 때까지 서울에 입성하지 못하고 쭉 수원에 머물렀다.[15]
이 FA 계약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 편이다. 아무리 직전 2년에 잘했다지만 꾸준히 커리어를 이어온 송승준, 이범호, 이택근, 이동현에 비해 지나친 금액이라고 보는 편이 지배적. 게다가 나이도 저들이랑 비슷하다는게 흠.[16] 넥센 입장에서는 50억이라는 큰 투자를 하려고 했음에도 10억이라는 차이로 팀의 베테랑을 잃게 되었고, 아직 신생구단 혜택을 받는 kt이기에 보상선수도 받지 못하는데다 직전 연봉도 2억 8,000만 원으로 스타급 FA 후보 치고는 적은 편이었기에 히어로즈가 받는 보상금도 적다. 거기에 사전 접촉 의혹까지 있어서 넥센 팬들의 여론도 좋지 않은 상황. 유한준의 이적으로 결국 넥센은 2015시즌 골든 글러브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17][18] 다만 일부 팬들의 의견 중에는 꾸준했던 것도 아닌, 제대로 보여준 것이 단 두 시즌 뿐이었던 선수를 60억이라는 큰 금액에 잡기엔 확실히 무리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 팬들도 있다.
한편 "고향인 수원을 연고지로 하는 kt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kt wiz 구단 이미지나 홈 구장이 맘에 들었다"라는 말을 해서 넥센 팬들에게 아주 잠깐이나마 까이기도 했었다. 유한준의 고향은 문서 상단에 나와 있듯이 저 멀리 전라북도 고창군이고, 성장은 군포시부천시에서 했다. 수원시 연고 관련성은 고등학교 3년 정도가 전부이기 때문.
다만 kt wiz가 넓게는 '''경기도 전역'''을 연고지로 두고 있으며, 운동선수들은 자신이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운동부가 속한 출신 고등학교 혹은 그 지역에 대해 고향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많이 있으므로 무리가 없는 발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유한준은 부천에서 중학교를 다녔으나 당시 왜소한 체구 때문에 인근 고교에서는 받아주지 않았으나, 유신고 감독의 지원으로 유신고에 입학하여 수원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즉, 그렇게까지 까일 이유도 없고, 선수 나름대로 소신있는 발언을 했으며 넥센을 향해 나쁜 말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도 설명되어 있듯이 유한준의 프로 커리어 첫번째 소속팀은 수원에 세들어 있던 현대 유니콘스였으니 그것과도 연관하여 기인한 발언이라고 봐야 한다는 점도 있고.
그나마 상조회비를 안 받고 고척돔에 고급 장비를 달아달라고 했다는 점은 위안이 되는 듯. 덕분에 고척돔 트레이닝룸에 고급 스피커를 달게 되었단다.

2.5. kt wiz 시절



2.5.1. 2016 시즌


3월 16일 시범경기에서 우중간 안타성 타구를 백핸드 캐치로 잡아내는 호수비를 선보인 데 이어 삼성 김기태를 상대로 쓰리런 홈런을 때려냈다. 그전까지 5타수 1안타로 썩 좋은 모습은 아니라 우려가 있었는데 그런 걱정을 홈런으로 말끔히 씻어냈다.
하지만 5월 6일 경기서 1회초 정근우의 뜬공을 처리하던 도중 큰 통증을 호소했고 다음날 내전근 부분 파열 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약 6주정도 결장할 예정. 대신 조무근이 올라왔다.
이후 6월 14일 경기를 기점으로 복귀했다. 오랫동안 쉬었으니 경기감각이 떨어졌으면 어떡하지? 라는 팬들의 우려와는 달리 보란듯이 홈런과 2루타를 날려버렸다! 그리고 이 홈런포는 결승포가 되었다. kt wiz에서 유한준이 얼마나 중요한 선수인지 다시금 깨닫게해준 경기.
2016년 결국 부상때문에 기대치가 낮은 성적이 나왔다.
돈값을 제대로 못했다는 소수 의견도 있다.

물론 부상으로 인해 풀타임 실패가 큰 원인이었으나, 팀에 몇 안되는 고참이자 최고의 외야 수비에, 클린업트리오에서 팀 타선의 구심점을 잡아주는 등 나쁘지 않았다.
내년이 더욱 기대가 되는 선수. 2014년 이후 매년 3할 이상의 고타율, 2015부턴 3할3푼이 넘는 엄청난 타격감을 과시하고 있다.
최종성적은 3,4,5에 장타율이 미세하게 모자라는 수준, ops는 거의 9할 되며, war은 작년의 절반가량으로 떨어져 3점대가 되었다. 풀타임이었다면...

2.5.2. 2017 시즌


3월 31일 SK와의 원정 개막전에서 1회 1사 2루상황에서 안타를 때려내 2017년 KBO 리그의 첫 타점을 신고했다. 그 후 2회 5회 뜬공, 7회 병살로 썩 좋은 결과가 있진 않았다.
4월 1일과 4월 2일 경기 모두 4타수 1안타를 쳐 SK와의 3연전 모두 0.250의 타율을 기록했다.
4월 6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번트를 선보였다.
5월 7일 한화전에 4번 타자로 출장해 1회 무사 1,2루에서 또 번트를 선보였다. 이후 좌익수 뜬공, 3루 땅볼, 삼진으로 물러났다가 장민재를 상대로 2루타를 만들어 KBO 리그 통산 80번째 1,000안타의 주인공이 되었다. 모넬의 안타로 득점까지 성공해 팀은 10대 0으로 대승.
5월 21일 넥센전에서 2년만에 만루홈런을 때려냈다. 상대는 최원태.
6월 20일 4타수 4안타를 쳤으나 팀은 롯데에 대패했다.
21일 장외 솔로포를 쏘아올렸지만 역시 롯데에 대패하여 묻혔다.
24일 9회 무사 1,2루에서 깔끔한 인필드 플라이로 찬스를 말아먹었다.
29일 청주 한화전에서 유땅-삼진을 당하다 6회 송창식을 상대로 시즌 9호 홈런을 3점 홈런으로 장식했지만 8회 병살타를 치며 허무하게 공격 기회를 또 날렸다.
최종적으로는 0.306 13홈런 68타점 45볼넷으로 90억 이상을 받고도 제 값을 못한 선수들에 비해선 나은 모습이긴 했으나, 작년 못지않은 타고투저였음에도 OPS가 0.1 가까이 떨어졌고 유한준의 나이가 이미 만 36세인 걸 감안하면 다소 우려가 되는 스탯이었다.

2.5.3. 2018 시즌


자신의 2014~15시즌 활약에 큰 도움을 받았던 이지풍 코치가 KT 코치로 부임하면서 다시 한번 그의 지도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유한준/2018년 으로.

2.5.4. 2019 시즌


처음으로 주장을 맡게 되었다.
시즌 초반엔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유한준이지만, 이후 5월 타율 .370으로 3할대 타율 진입, 6월엔 .330의 타율과 늘어난 홈런(5개)으로 점차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7월이 된 후에도 2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등 좋은 타격감을 이어가는 중.
특히 5월 31일엔 본인의 통산 600득점 기록과 프로 데뷔 후의 첫 끝내기 홈런을 기록했다. 7월 3일엔 시즌 10호 홈런을 기록하면서 6시즌 연속 두자릿 수 홈런, 다음날인 7월 4일에는 개인 통산 2,000루타와 6년 연속 100안타까지 달성하였고, kt의 창단 최다 연승 동안 결승타를 4개나 기록하는 등, 주장으로서 훌륭하게 팀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최종 성적은 14홈런 86타점 0.317 0.383 0.443으로, 직전 시즌보다 타격 성적은 떨어졌지만 이는 공인구 변화 때문으로, wRC+로 보면 직전 시즌 못지 않은 좋은 활약을 펼친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득점권 타율 0.373으로 39살에 리그 득점권 타율 1위라는 기록도 세웠다.
시즌 종료 후 계약금 8억, 인센티브 2억을 포함 2년 총액 20억에 kt 위즈와 재계약하였다.

2.5.5. 2020 시즌


5월 16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내전근 파열 부상을 입어 부상자명단에 올라가고 말았다.
5번타자, 지명타자로(또는 우익수)로 꾸준히 출장하고 있지만, 2할 8푼대의 타율과 한자리수 홈런, 40개 중반의 타점을 기록 하는 등 작년에 비해 크게 부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kt 팬들사이에서 '지게'로 평가가 낮아졌다.
kt 입장에서도 5번 타자가 부진하니 공격의 흐름이 끊겨 답답한 면이 없지않아 있다. 하지만 유한준이 39살이라는 점도 어느정도 감안해야 한다. 아무리 자기관리가 철저해도 나이를 속일 수는 없나보다.
9월 6일 고척 키움전에서 6대6 동점상황 8회초 2사 1,2루 상황에서 리그 최강의 마무리투수 조상우를 상대로 1타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팀이 8대 7로 키움히어로즈에게 승리하면서 이 적시타는 결승타가 되었다.
9월 말 들어 최악의 부진을 겪고 있다. 9월 4주차에서 중요한 상황 병살 두번으로 상대팀에게 분위기를 내주기도 했다. 이젠 정말 노쇠화가 와서 정말 힘들어지는 듯. 때마침 만년후보 문상철이 김태균에게 타격폼을 전수받은 이후 맹활약하며 선발자리마저 잠시 빼앗기고 말았다.
10월 3일 LG전 2차 경기 4회말 2사 3루 상황에서 김윤식을 상대로 왼쪽 담장을 넘기는 2점 홈런을 쳤다. 이로써 KBO 역대 30번째로 '''7년 연속 10홈런'''을 기록했다. 며칠간 와신상담한 것인지 예전같은 펀치력을 뽐내며 3타수 3안타의 맹타를 기록, 삼중살로 침체될 뻔한 팀 분위기를 역전시키는 등 팀의 승리에 크게 공헌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30타수 2안타를 기록하던 극심한 부진에서 벗어났다.
10월 21일 수원 삼성전에서 10회말 1사 만루 끝내기 찬스에서 끝내기 희생플라이로 경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올 시즌 첫 끝내기.
10월 22일 잠실 두산전에서 kt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짓는 멀티히트 4타점 경기를 펼쳤다.
11월 12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도 중전 적시타로 결승타점을 기록하며 kt가 플레이오프 첫 승을 거두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베테랑 한파가 유독 심했던 올 시즌, 팀이 필요한 것을 꾸준하게 해주는 선수. 내년에도 유한준과 kt와의 동행은 걱정이 없어 보인다.

2.5.6. 2021 시즌


1월 5일 김주찬이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20세기 신인드래프트 지명을 받아 입단한 최후의 선수가 되었다.[19][20]

3. 플레이 스타일


상무 제대 후 히어로즈의 암흑기였던 2010, 2011 시즌에 주로 3번 타자로 출장하면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주축 타자들이 다 떠난 넥센에서 강정호와 함께 팀 타격의 구심점이 되어준 선수. 유독 득점권에 강했고, 그러한 이미지로 좋은 외야수라는 평가가 있지만 당시에도 3할 타율은 넘기지 못했으며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지도 못했다. 허나 당시 밥값하는 타자가 별로 없어 상대적으로 부각된 면이 있었다.

3할은 못 치더라도 2할 9푼은 칠 수 있는 좋은 타자라는 게 당시 유한준에 대한 중평. 2010, 2011시즌까지는 인내심이 좋고 공을 오래 보는 스타일이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늦게 복귀한 2012년, 2013년 시즌엔 공격적인 스타일로 변해 초구에도 과감하게 배트를 돌렸다. 과거 3번 타자였던 시절에는 찬스에 유독 강한 모습이었으나 2013시즌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여 OPS 0.748를 기록했다고 할 때 놀라는 팬들이 많았다. 물론 따지고 보면 아주 못한 건 아니다. 내내 주전이었던 이택근과 비슷한 타격 수치를 보여줬다. 그리고 좋은 평가를 받던 시기와 비교했을 때도 큰 차이는 없다. 원래도 이 정도 해주던 선수였을 뿐 크게 쇠퇴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때보다 평가가 박해진 건 상대적 대비효과라 할 수 있다. 그 당시엔 강정호, 유한준을 제외하고는 타격에서 제대로 해주는 선수가 없었다. 역대 최악의 타선으로 평가받았던 2011년도 넥센 타선의 몇 안 되는 대들보 역할을 했으니 당연히 평가가 좋았지만 강타선으로 발돋음한 2013년 시즌엔 그저 평범한 수준의 선수다보니 상대적으로 평가가 떨어진 것. 하지만 뛰어난 외야 수비와 하위타선에 두기에는 상당히 준수한 타격으로 넥센이 강팀이 되는데 크게 일조했었다.
2013시즌까지는 주전 외야수 급이라기에는 다소 애매한 타격 능력을 가진 선수였지만 2014시즌부터 타격능력이 각성하여 아예 다른 수준의 선수가 되었다. 한 스카우팅 리포트는 '''보여준 성적보다 지닌 잠재력이 큰 선수'''라고 평했는데, 2014년 시즌을 앞두고 근육을 키운 후 타격에서 크게 발전하면서 이를 증명하고 있다. 2014시즌에는 초반에는 7~8번 타순에서 본즈놀이를 하다가 이후 붙박이 3번 타자로 큰 활약을 했다. 그동안 성실함과 최고의 수비력에도 불구하고 타격 때문에 저평가를 받았는데, 타격에서 각성한 후 FA 대박까지 터뜨리며 본인의 가치를 증명했다.
또, 득점권에서 강한 것은 사실이다. 2015년 1월 13일 야구친구의 상식과 조금 다른 야구코너에 의하면 2014년까지 '''5년 연속 득점권 OPS가 평소 대비 7푼 이상 높았던 유일한 타자'''이자 지난 5년간 득점권 기회를 500타석 이상 맞은 타자들 중에 '''평소 대비 삼진을 가장 큰 폭으로 줄인 타자'''라고 한다. [image]




인터넷 방송 사사구의 고정 패널인 경향신문의 이용균 기자에 따르면 현장에서 최고의 외야 수비수는 김강민이나 이종욱으로 갈리지만 2등을 꼽을 때는 모두가 유한준을 꼽는다고 할 정도로 수비의 평이 좋은 선수다.
딱히 발이 빠른 건 아니나 가장 기본이 되는 타구 판단 능력이 좋아 어려운 타구도 손쉽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송구 능력도 좋은 편이다. 과거 올스타전 야수 스피드킹 대회에서도 2위를 차지할 정도로 강견이였으며 송구의 정확성 또한 훌륭하다. 2011시즌 말미에 당한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예전같은 송구능력은 안 나오나 정확성면에서는 여전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역대급 홈 보살
외야 파울 타구였기에 잡지 않고 남은 아웃카운트를 투수에게 맡겨도 됐겠지만 '''이 정도면 자신 있겠다''' 싶어서 잡고 던졌다고 한다.
주 포지션은 우익수이나 중견수로서도 훌륭한 수비능력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대로 뛰어난 타구 판단 능력에 기초하여 주력에 비해 상당히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한다. 또, 펜스 플레이에도 능한데 단적인 예로 강민호의 파울 타구를 불펜 담장을 넘어가면서까지 잡아내기도 했다.
부상 위험이 큰 이택근의 체력을 안배하기 위해 중견수로도 자주 출장하는 편이다. 순수 중견수로서의 수비력 자체는 이택근보다도 나은 편이나, 포수 출신인 이택근이 좌/우 코너 외야수를 기피하는 탓에 우익수 출장이 더 많은 편이다.
발이 빠른 편은 아니다. 이전부터 도루가 많거나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염경엽 감독이 오기 전부터 한 베이스 더 가는 공격적인 주루플레이는 자주 했다. 하지만 딱히 주루플레이에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긴 어렵다. 2루 주자로 나가 있다가 짧은 타구에 홈으로 쇄도하다 아웃되는 모습이 간간히 보이기도 한다.

4. 성씨


참고로 실제 성은 ''씨(버들 류)라고 한다. 그래서 원래는 류씨로 하는게 맞지만 우리나라 행정상 공문서에 류씨를 유씨로 기록하던 관례로 학교다닐 때부터 성인된 이후까지 유씨로 계속 등록되어 와서 본인도 그냥 유씨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동명의 스포츠 기자는 유한준과 달리 류씨다.[21]

5. 기타


  • [22]
  • 별명은 타격감이 높을 때 한정으로 무한준. 평소에는 분유(혹은 분유갑, 분유신 등)로 불린다. 위 짤방의 경기 때 붙은 별명으로는 프킬라가 있다. 염경엽 감독의 양아들로 불릴 때는 염한준이라는 별명도 있다. 그 밖에 팀내 동료들이나 야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가가멜이라는 별명이 있다. 물론 가가멜과 성격은 정반대이지만 매부리코에 턱이 길어서라고.. 친구 박정권이나 해설진도 언급한 적 있는 별명.
실은 2012년 초 전지훈련을 떠났을 때 데릭 홀랜드가 유한준을 쫓아다니며 넥센 유니폼과 모자를 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기사
  • 2013년 들어서는 LG 트윈스 갤러리에서 그의 짤방을 포함한 낚시글로 우타거포 분유신이라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 2014년 8월 2일 잠실 LG전에서 득점을 올리고 들어와서 얼음 주머니를 머리에 올리고 있는 것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날 기온이 34도까지 올라가서 많이 더웠던 듯.

  • 2014년 각팀 상대 극강 타자를 OPS순으로 늘어놓으면 1위가 KIA 상대 유한준으로 OPS가 무려 1.633을 기록! 참고로 2위는 SK 상대 최형우로 1.632, 3위는 롯데 상대 강정호로 1.541 순이다. 전체 자료는 이쪽
  • 2014 시즌이 끝나갈 무렵, 타율 3할을 넘어서자 염경엽 감독에게 3할로 시즌을 마칠 수 있도록 경기 출전 횟수를 배려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물론 감독은 유한준을 설득해 남은 경기 모두 출전하도록 했다 관련 기사
  • 장신(186cm)에 하체가 상당히 길다. 비율이 굉장히 좋은 편.
여담이지만 둘은 나눔드림팀을 바꾸게된다!
  • 팬 서비스 미담이 많은 선수이다. 매일 팬들과 포토 &싸인 타임을 갖는 모습에 '유한준 부흥회'라는 별칭이 붙었을 정도. 야구장에서 본 팬에게 '담배 끊으시라'고 조언한 에피소드도 있다.[23] #
  • 손승락과 함께 FA로 좋게 떠난 경우지만 은근히 히어로즈팬들에게 아쉬움도 남긴 선수였다. 하필 팀 상황이 어려울때 FA로 팀을 떠났고, 신생팀이라 보상선수도 없고 보상금도 짜다는 것이 그 이유. 게다가 유한준의 공백으로 박병호도 떠난 마당에 대부분 넥센 타선의 장타,공격력 약화를 우려했다. 물론 2016년 외야에 유망주들이 나오고 서건창,윤석민 등이 분발해서 그런 얘기는 쏙 들어갔다. 게다가 음향장비까지 기부해서 호응을 얻었다. 물론 유한준이 이적 후 친정팀 상대로 공수에서 임팩트있게 활약하는데다가, 어느 기사로 유한준이 친정팀 상대로 이악물고 뛴다!라는 헤드라인이나 손승락과 달리 인사를 안했다며 반농담조로 까인다.
  • 수원유신고 후배들이 2019년 제73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창단 후 첫 황금사자기 제패[24]의 쾌거를 이룬 것에 대해 뿌듯해 하고 있다.유신고의 황금사자기 우승…‘선배’ 유한준·김민의 덕담
  • 자기관리가 상당히 철저한 편이다.# 술담배는 물론이고 탄산을 아예 입에 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가끔 화를 주체할수 없거나 하면 콜라 한 잔을 들이키는 것으로 화를 삭힌다고(....).

  • 2021시즌 기준으로 LG 트윈스이성우 선수와 나란히 KBO 최고령 선수가 될 확률이 꽤 높다. 2020시즌이 끝나고 박용택, 권오준, 김승회는 은퇴했고, 송승준[25]김주찬[26]도 은퇴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기 때문.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04
현대
1군 경기 없음
2005
18
26
.192
5
1
0
1
5
3
1
2
.346
.250
2006
110
246
.244
60
16
0
3
31
24
5
33
.346
.331
2007
112
197
.223
44
6
0
5
35
21
2
26
.330
.313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08
우리
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9
히어로즈
2010
넥센
131
481
.291
140
27
0
9
79
52
2
50
.403
.355
2011
121
447
.289
129
23
2
3
54
64
4
56
.369
.365
2012
74
246
.240
59
11
1
3
25
22
3
21
.329
.299
2013
97
298
.272
81
13
0
7
40
37
4
41
.386
.358
2014
122
405
.316
128
31
0
20
91
71
2
49
.541
.384
2015
139
520
'''.362'''
(2위)
'''188'''
(1위)
'''42'''
(1위)
1
23
116
103
3
69
'''.579'''
(5위)
.43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16
kt
110
408
.336
137
22
0
14
64
70
4
49
.493
.404
2017
133
445
.306
136
19
0
13
68
52
0
47
.436
.370
2018
121
428
.339
145
21
1
20
83
59
1
49
.533
.406
2019
139
501
.317
159
19
1
14
86
61
3
56
.443
.383
2020
119
386
.280
108
17
0
11
64
48
0
40
.409
.347
<color=#373a3c> '''KBO 통산'''
(14시즌)
1546
5034
.302
1519
268
6
146
841
687
34
588
.444
.372
[1] 체육교육학과 (2000학번)[2] 주 포지션은 우익수이고 좌익수 수비도 볼수 있어 코너 외야수이다. 중견수 역시 발은 느리지만 타구 판단과 어깨가 좋아 간간히 출장한다. 수비범위자체는 이택근 이상이다.[3] 타격연습은 우타로한번, 좌타로한번씩 번갈아가면서 하는 루틴을 가진다.[4] 히어로즈 멋쟁이 안타 유한준~ 안! 타! 유한준 안! 타! 유한준 안! 타! 유한준 오오오오오~ x2[5] 얄라리 얄라리 얄라리 얄라셩~ kt의 캡틴 유한준 나오늘 안타칠꺼야~ 오늘은 안타! 내일은 홈런! 날려라 캡틴 유한준~ kt의 캡틴 유한준 나오늘 안타칠꺼야~ 오늘은 안타! 내일은 홈런! 날려라 캡틴 유한준~ 준쮸준쮸준쮸준쮸준쮸준쮸 유한준! [6] 안타를 날려버려 유~한준~ kt의 유한준~ 홈런을 날려버려 유한준~ kt의 유한준! x2[7] 조니 모넬의 응원가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모넬의 응원가를 저작권에 걸리지 않게 음의 높낮이를 바꿔 편곡한것으로 보인다.[8] 최고령 선수는 롯데 송승준.[9] 고등학교 2년 후배인 최형우를 빠따로 군기잡던 박정권이다. 프로가서는 친한 형동생이긴 하지만...사실 운동부 군기는 매우 센편이다. 유한준 정도면 정말로 매우 신사다. 실제로도 굉장히 온화한 선수이자 주장이고, 인성도 매우 훌륭하다.[10] 2006년에 롯데戰 경기에만 유독 좋은 호수비모습들 참 많이 보여줬었다. 특히 이대호의 장타성 타구 3연타 멋진 호수비들 연발 보여줬던..[11] 전자의 '無限'은 흔히 말하는 그 무한(infinity) 맞고, 후자의 '霧'는 '안개 무'자다.[12] 참고로 현대 시절에는 등번호가 39번.[13] 4월 5일까지 기준[14] 에러로는 기록되지 않았다.[15] 당시 유니콘스는 정식 연고가 없어져 버린 상황이었기에 무려 6년 동안 1차 지명을 할 수 없었고, 이는 현대 선수단을 인계받은 히어로즈 초기 팜이 극도로 황폐해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오랫동안 머물렀다 해도 어찌 됐든 임시 연고지였고 당시 현대 구단의 이미지도 바닥급이어서 수원 지역 팬들에게도 철저하게 외면받으며 유니콘스는 쓸쓸하게 몰락했고, 유한준도 이 역사를 함께하며 군에 입대했다.[16] 1981년생으로 손승락보다 나이가 많고, 두 번의 FA 계약을 이뤄낸 이택근보다 겨우 한 살 어리다.[17] 박병호가 에릭 테임즈에게 밀려 수상해 실패했고 타율 빼고는 김하성보다 앞설 게 없는 김재호가 우승빨로 유격수 골글을 차지하고, 유한준이 kt로 팀을 옮겨서 골든글러브를 받는 바람에... [18] 물론 탬퍼링 의혹을 제외하면 팀 선택은 선수의 고유 권한이다.[19] 다만, 프로 입단 자체는 2004년에 했으므로 20세기 최후의 프로 입단 선수는 아니다.[20] 현재 현역 최고령이자 1999년 지명 선수인 송승준은 입단을 거부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으며, 최후의 20세기 프로 입단 선수인 이성우의 경우 2000년에 LG 트윈스에 입단하였으나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신고선수였다.[21] 실제로 한국에는 많은 류씨들이 행정상 유씨로 살고 있다. 류현진의 경우에도 과거 데뷔 초 언론에서 '유현진'이라고 표기한 적이 많았다. 2007년 법이 개정되어 대법원이 호적예규 변경을 통해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성(姓)에 예외를 둠에 따라 '류'씨로 정정신청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신청한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신청할 때 아버지 호적까지 류씨로 바꿔야 하는 규정이 있어 행정상 복잡한 부분도 있고 하기에 대부분의 류씨들이 안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류현진의 경우에는 이를 신청하여 이후 언론에서 유현진이 아닌 류현진으로 표기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세한 사항은 문서 내에 관계된 내용을 찾아 보면 알 수 있다. [22] 최훈 카툰에서도 토이스토리버즈 라이트이어 캐릭터로 나온다.[23] 유한준은 술 담배를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24] 전국대회 첫 우승은 2005년 배장호가 활약했던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다.[25] 롯데와 계약을 하기는 했지만 플레잉 코치 계약이라 시즌 중에 은퇴식을 치룰 확률이 높고, 따라서 최고령 선수로 분류하가는 애매하다[26] 생일로 따지면 유한준보다 3개월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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