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에란트 전역

 


'''노이에란트 전역
Reuenthal Rebellion'''
날짜
우주력 800년, 신제국력 2년 표준력 10월 ??일 ~ 12월 16일
장소
은하제국령 노이에란트
교전 당사자
은하제국 로엔그람 왕조
노이에란트 총독부
지휘관
볼프강 미터마이어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칼 에두아르트 바이어라인
오스카 폰 로이엔탈
한스 에두아르트 베르겐그륀
알프레트 그릴파르처
브루노 폰 크납슈타인
알렉산더 바르트하우저†
디터스도르프
존넨펠스
쉴러†
병력
은하제국군
미터마이어 함대
함선 4만 2770척, 장병 460만 8900명
메크링거 함대
함선 1만 1900척, 장병 불명
노이에란트 치안군
함선 3만 5800척 이상, 장병 550만 명
피해 규모
불명
함선 4580척
장병 65만 8900명만 하이네센으로 귀환
전력의 90% 상실
결과
은하제국군의 승리, 반란 진압, 로이엔탈 패사
1. 개요
2. 예기치 못한 우르바시의 반란
3. 노이에란트 총독부의 대응
4. 로엔그람 왕조의 첫 번째 반역자
5. 원정군의 출발
6. 결과 및 영향

은하영웅전설의 에피소드
응웬 킴 호아 광장 사건

노이에란트 전역

하이네센 동란

1. 개요


  • 등장 작품
    •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5장~8장
    • 은하영웅전설 OVA 92~98화
  • 시기 : 우주력 800년, 신제국력 2년 표준력 10월~12월 16일
은하영웅전설의 사건. 황제 라인하르트가 공표한 ‘겨울장미원의 칙령’을 통해 은하제국의 속령으로 격하된 제국의 '신영토(노이에란트)’, 전 자유행성동맹령에서 일어나 노이에란트 전역, 로이엔탈 원수 반역 사건, 행성 하이네센 동란, 2년 병란 등 수많은 명칭으로도 불린다. 로엔그람 왕조가 들어선 후 최초의 대규모 반란이다.

2. 예기치 못한 우르바시의 반란



제국 황제 라인하르트는 노이에란트 총독으로 부임한 오스카 폰 로이엔탈에 대해 떠도는 불온한 소문들을 불식시키고자 로이엔탈의 청을 받아들여 직접 노이에란트 총독부로 떠났다. 항해 도중, 라인하르트 일행은 보급과 휴식을 위해 과거 라그나뢰크 작전 당시 은하제국 원정함대의 전초기지로 사용된 우르바시 행성에 잠시 머무르게 되었다.
그러나, 노이에란트 중에서도 특히 안전해야 할 지역 중 하나인 우르바시 행성에서 갑자기 반란이 일어나 은하제국 황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살해당할 뻔했으며, 코르넬리우스 루츠 제독이 황제를 구하고 대신 목숨을 잃는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3. 노이에란트 총독부의 대응


우르바시 행성을 탈출한 황제 라인하르트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고, 소식을 들은 노이에란트 총독 로이엔탈 원수는 즉각 실종된 황제와 일행이 탄 기함 브륀힐트를 찾도록 하는 한편 알프레트 그릴파르처 대장을 파견해 우르바시 행성의 반란 진압 및 탈환을 지시했다.
그릴파르처는 우르바시 행성을 제압하고 사건 관련자들을 철저하게 조사한 끝에 지구교도들이 반란을 주도했다는 정보를 밝혀냈으나,[1] 이 일로 로이엔탈 원수가 반란을 일으키거나 반란 주동자라는 누명을 벗지 못해 군부에서 사라진다면 '''원수 자리가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탐욕스러운 이유로 정보를 은폐했다.
한편, 로이엔탈에게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었다. 오베르슈타인과 하이드리히 랑의 모략 때문에 의심을 받았던 시기에서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믿고 직접 소수의 수행원만을 이끌고 나선 황제가 노이에란트 초입, 그것도 이미 제국군의 기지로 쓰이던 우르바시 행성에서 일어난 반란에 휘말렸고, 행성 탈출 후 실종되기까지 한 데다 사건의 주모자와 배후자를 알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자신이 다시금 반역자로 내몰렸다는 사실에, 로이엔탈은 해명을 포기해 버렸다.

"들은 대로일세, 베르겐그륀. 나는 로엔그람 왕조 최초의 반역자가 된 모양이야."

"하오나 총독 각하, 분명 전례 없는 불상사라고는 하나, 각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인 만큼 폐하께 사정을 설명하신다면......."

"해결이 될 리가 있나!"

로이엔탈은 내뱉었다. 자기 자신의 운명조차 내팽개친 듯한 태도였다. 그는 무고했다. 무고한 자가 왜, 필사적으로, 또한 비굴하게 변명을 해야만 한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 그런 생각이 밀물처럼 흉곽을 채웠다. 겨우 그것을 위해 오늘날까지 황제 밑에서 싸웠단 말인가.[2]

[3]

로이엔탈은 냉정한 성격과 큰 야심을 품은 인물로 이미 오래전부터 '2인자 무용론'을 주창하던 오베르슈타인의 견제를 받아 왔으며, 최근에는 오베르슈타인의 의도적인 묵인과 방조에 힘입어 하이드리히 랑과 같은 소인배들이 그를 모함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이엔탈은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에 이어 또 다시 반역자로 몰려 버린 자신의 처지에 절망했고, 본인이 우르바시의 반란 및 루츠 제독의 사망에 관련된 바 없음을 증명할 어떠한 물증도, 정황도 찾아낼 수 없었다. 이렇게 차츰차츰 목을 조여오듯 자신을 옥죄는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 압박감에 본래 품어왔던 스스로의 야심이 더해지며, '은하제국 노이에란트 총독' 로이엔탈은 결국 반란을 일으키고 말았다.

4. 로엔그람 왕조의 첫 번째 반역자


로이엔탈 원수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은 은하제국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그의 둘도 없는 친구인 미터마이어 원수는 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크게 분노하며 부하를 질책했으나 로이엔탈의 행동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미터마이어는 명령을 내려 실종된 황제의 행방을 찾는 데 전력을 다하도록 했다.
황제 라인하르트와 그의 기함 브륀힐트는 3주간의 도주 끝에 페잔 인근에서 제국 함대에 구조되었다. 갑작스레 휘말린 반란과 루츠의 사망, 그에 이어진 도주에 가까운 급박한 항해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간신히 돌아온 라인하르트는, 다급히 브륀힐트로 찾아와 자신을 알현한 미터마이어에게 '신영토 반란 토벌 함대'의 사령관을 맡겼다. 하지만 황제는 이내 "로이엔탈과 경의 관계를 잘 아니, 이번만큼은 경에게 명령을 거부할 권리를 주겠다"는 말을 덧붙이며 직접 함대를 이끌고 출전할 의사를 내비쳤고, 이에 미터마이어는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폐하. (중략)오늘날까지 제가 세운 모든 무훈을 걸고서, 폐하께서 결심을 바꾸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중략) 감히 아뢰옵건데, 로이엔탈은 폐하께 등을 돌린 것이 아닙니다. 그의 충성심과 공적은 소관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바, 부디 그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시옵소서."[4]

라고 간청했지만 라인하르트는 이에 차갑게 대꾸했다.

"기회라고! 짐이 루츠의 헌신 덕에 우르바시를 탈출하고 바렌에게 구조를 받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일이 있었는지 아는가? 로이엔탈이 결백을 주장할 마음이 있었다면 백 번은 할 수 있었을 것이다."[5]

이 말을 들은 미터마이어는 "지난번 로이엔탈이 중상모략을 당했을 때는 미동도 하지 않으셨잖습니까"라며 변명했으나 오히려 라인하르트는 "루츠가 죽은 것도 누군가의 중상모략인가?" 라고 일갈하며 마시던 포도주 잔을 벽에 내던졌다. 궁정과 군부에 퍼진 온갖 모략과 좋지 못한 소문에도 로이엔탈을 믿고 최소 인원만을 데려갔던 노이에란트에서 반란에 휘말려 등을 보이고 달아나야 했던 굴욕감, 자기를 대신해 싸우다 죽은 루츠의 희생과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자존심 강한 라인하르트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느끼며, 미터마이어는 황제의 분노를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미터마이어는 친구인 로이엔탈을 필사적으로 변호했으나 라인하르트는 "짐이 원해서 로이엔탈 원수를 치려는 줄 아느냐!”라고 일갈했고, 이어 "왜 여태 로이엔탈은 해명 한 마디도 없고, 하다 못해 루츠의 죽음에 대한 조문조차 없는 것인가!"라고 격노했다. 라인하르트의 말처럼 로이엔탈의 행동은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미터마이어는 오베르슈타인과 랑의 모함 때문에 로이엔탈이 해명하지 못하는 것이라 주장하며 오베르슈타인을 형식적으로나마 경질하고[6] 로이엔탈에게 화해의 의사를 표해달라 간청하였다. 그러나 라인하르트는 '황제인 자신이 거기까지 양보하는 것이 이치에 맞느냐, 옥좌에 있는 건 나냐 로이엔탈이냐'라고 격분하며 반박했고, 이미 로이엔탈이 반란 의사를 표시한 상황에서 오베르슈타인이 경질되고 미터마이어까지 사임해 버리면 현존하는 세 원수와 이들이 맡은 제국군의 중추가 통째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일언지하에 미터마이어의 요청을 거부하였다.
미터마이어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겠지만, 사실 미터마이어의 요청은 황제 개인의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도 도저히 들어줄 수 없을 만큼 지나친 것이었다. 골덴바움 왕조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로엔그람 왕조는 기존에 황제의 권력을 어느 정도 대신하며 체제 유지를 도왔던 문벌대귀족들을 일소한 뒤, 라인하르트라는 한 걸출한 황제의 독보적인 카리스마와 지도력으로 권력을 완전히 집중한 전제왕정이다. 전제국가가 아니라 그 어떤 사회체제였다고 해도 고위장성이자 정치가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왜 사과하냐?'며 시위하며 뻗대는 건 절대 옹호의 여지가 없건만, 어떤 이유가 됐건 황제에게 저항을 하는 시점에서 100% 반역인 전제왕정에서 아무리 개국공신이라지만 로이엔탈의 행동은 이미 대화 좀 해서 없던 셈 칠 수 있는 수위를 한참 넘어선 것이었다. 하물며 '''황제에게 총부리를 겨눈[7] 신하를 상대로, 황제 쪽이 자기 대신들까지 잘라가며 먼저 숙이고 드는 제스처를 취하는 건 관용이 아니라 엄청난 굴욕이다.''' 라인하르트 말마따나 황제가 타협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실제였다면 '''목숨은 붙여 주겠다'''는 말조차 엄청난 관용이었을 터인데.... 안 그래도 왕조 초기 체제의 기강을 잡아야 하는 시절에 이렇게 황제의 권위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짓을 한다면, 앞서 설명했다시피 황제 한 명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로엔그람 왕조는 제대로 자라기도 전에 뿌리부터 흔들린다.[8]
거기다 이런 구구한 정치적 논리까지 가지 않아도 미터마이어의 말은 도의적으로도 비판의 소지가 많다. 해당 사건에서 라인하르트는 별 잘못도 없이 죽을 뻔한 피해자인데, 어찌됐든 해당 사건을 수습해야 할, 그리고 사전 대비 의무를 충실히 실행하지 못한 책임자가[9] 형식상의 사과 하나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건 라인하르트가 황제가 아니라 일개 시민이었어도 열불 터질 일이다. 그런데 옆에서 친구가 한다는 말이, 피해자인 자기한테 '네가 먼저 좀 사과하고 그래' 라고 하는 격이니, 인간적으로 쌍욕이나 안 나오면 다행이다(...). 한마디로 미터마이어의 요청은 어느 모로 생각해도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린 궤변일 뿐이다. [11]
결국 미터마이어는 토벌 함대 사령관직을 수락할 수 밖에 없었고, 황제 라인하르트는 페잔으로 귀환하였다. 한편 신영토 총독 오스카 폰 로이엔탈 원수는 제국 정부 앞으로 한 장의 문서를 발송하였다.

『군무상서 오베르슈타인과 내무차관 랑이 국정을 농단하고 카이저를 무시한 채 무단으로 숙청을 행하고 있으므로, 자신은 이를 간과할 수 없는 바, 필요하다면 무력으로 그들을 배제하리라.』[12]

라인하르트는 황제로서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제국을 통치해왔기 때문에 로이엔탈은 부득이하게 간신의 죄를 탄핵하게 된 것이었으나, 오베르슈타인이나 랑 따위에게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말에 라인하르트는 '아무리 반역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라지만 이렇게까지 나를 깎아내리느냐'며 크게 불쾌해했고 이를 본 미터마이어는 어떤 말도 덧붙일 수 없게 되었다.[13]

5. 원정군의 출발


황제의 지시로 원정군 사령관을 맡게 된 미터마이어는 일생의 친우 로이엔탈에게 칼을 겨누게 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으나, 황제와 로이엔탈이 직접 맞붙어 황제의 신변에 문제라도 생겼다간 이제 첫 발을 뗀 로엔그람 왕조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마음을 정리한 뒤, 바렌과 비텐펠트 두 제독에게 원정군에 합류할 것을 지시했다.
로이엔탈은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하이드리히 랑을 간신으로 지목하고, 이들을 제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노이에란트 치안군을 자신의 휘하에 두었다. 제국령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노이에란트에 주둔한 병력이 모두 로이엔탈의 손에 있었던 만큼, 반란군의 규모는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반란의 명분이 부족하여 다른 장성들의 동조가 전혀 없었으며, 로이엔탈 휘하의 장병들도 '우린 왜 황제 폐하와 싸우는 거지? 그럼 우리도 반란군이 아닌가?'/'폐하와 싸우는 게 아니라 폐하 주위의 간신들을 처단하는 거야.'/'그래도 군무상서란 사람은 사리사욕 챙기는 작자는 아니던데.'라고 수군거릴 정도였다. 로이엔탈 자신도 상황이 어려워지자 준비도 없이 급하게 반란을 일으킨 것이라,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14]
또한 로이엔탈은, 자신이 승리하면 이제르론 공화정부에 구 동맹령을 넘길 것을 약속하면서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이용해 이제르론 회랑을 통과할 제국의 원정군을 막으려 했다.[15] 이 때 사절로는 불평분자들을 데리고 구 동맹령으로 온 무라이를 보냈으나, 정작 무라이는 이제르론 측에게 로이엔탈의 제안을 거절하고 이제르론 공화정부의 명맥을 지키도록 현명하게 판단하라고 조언했다. 어차피 무라이는 어디까지나 로이엔탈의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만 맡았을 뿐, 이제르론 측을 설득할 의무는 없었으므로 무라이가 로이엔탈을 '배신'한 것은 아니었다. 율리안 민츠가 이끄는 이제르론 공화정부는 로이엔탈이 결국 패배할 것을 예상하고, 오히려 에르네스트 메크링거의 함대가 이제르론 회랑을 통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후 이 소식을 접한 로이엔탈은 분노하지는 않았고 대신 '놈들도 내가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걸 예측했다'며 씁쓸하게 웃기만 했다. 메크링거 함대는 이제르론 회랑을 통과할 때 양 웬리에게 예를 갖추는 의미에서, 이제르론 요새 방향으로 전 함대 승무원들이 대함경례를 실시하였다.

6. 결과 및 영향



우주력 800년, 신제국력 2년 노이에란트 치안군과 은하제국군은 란테마리오 성역에서 마주쳤다. 초반에는 수적으로 우세한 노이에란트 치안군이 우세했으나,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함대와 슈바르츠 란첸라이터가 합류하면서 전황이 교착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르론 공화정부가 메크링거 함대의 회랑 통과를 허용하면서 하이네센이 제국군에게 점령될 것을 우려한 노이에란트 치안군은 후퇴하였는데, 이때 알프레트 그릴파르처가 배신하여 기함 트리스탄이 피격되고 로이엔탈 원수가 치명상을 입었으며 다수의 함선이 파괴되었으나, 그릴파르처 함대 역시 로이엔탈 함대의 반격에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잔존 병력 중 대부분이 은하제국군에 항복하면서 노이에란트 치안군은 와해된다.
하이네센으로 돌아온 함선은 출발했을 때의 10%에 불과했다. 로이엔탈 원수는 죽기 전에 제국에 해악이 될 욥 트뤼니히트 고등참사관을 살해하고 죽었다.
사태가 마무리되자, 황제 라인하르트는 반란으로 박탈되었던 로이엔탈의 원수 칭호를 '''다시 복원시켰다.'''[16] 그리고 노이에란트의 통치는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상급대장이 맡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반란에 관련된 인물들은 다음과 같이 되었다.
  • 반란 주모자 로이엔탈 - 사망, 사후 원수 직위 복원
  • 반란 가담자&실질적 주모자 그릴파르처 - 계급을 박탈당하고 자살을 명령받음
  • 반란 가담자 크납슈타인 - 전사
  • 반란 가담자 베르겐그륀 - 자살
  • (형식상) 반란 명분의 제공자가 된 하이드리히 랑 - 투옥된 후 사형 선고를 받음
  • (형식상) 반란 명분의 제공자가 된 오베르슈타인 - 불문에 붙임
이제르론 공화정부는 이 내란에서 제국 정부에 협조했기 때문에 제국 정부에서도 우주력 800년이 끝날 때까지 공화정부를 토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수호관계는 새해 벽두부터 터진 하이네센 동란으로 깨지게 된다.
지구교아드리안 루빈스키는 로이엔탈 원수가 반란을 일으키도록 유도하는 데 성공했지만 예상과 달리 제국의 통치력은 굳건하였다. 거기에다 우르바시에 반란을 일으킨 병사들에게 지구교 관련 물품이 발견되어 지구교가 배후임이 밝혀졌지만 알프레트 그릴파르처가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이 증거를 숨기면서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 이 계획을 짠 드 빌리에는 이 작전의 성공 이후 가짜 총대주교를 내세워 지구교단을 장악한다.
다만 이렇게 우주를 들썩이게 만들었음에도 의외로 구 동맹령 즉 노이에란트의 주민들에게는 큰 불편이 없었는데 당초 로이엔탈이 이로 인해서 민중들에게 불편이 가지 않도록 미리 손을 쓴데다가 전략 자체도 동맹령을 기반삼아 농성을 하는 장기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 지구교의 상징물을 지닌 병사들이 색출되었고, 실종된 기지 사령관 알프레트 알로이스 빈클러 중장이 최근 '''마약 중독 증상'''을 보였다는 군의관의 기록이 발견되었다.[2]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173[3] OVA에서는 더욱 분개하여 무고한 자신이 어째서 필사적으로 무고함을 빌어야하냐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4]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194[5]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194~195[6] 오베르슈타인이 이 결정에 불만을 가질 수 있으니 자신의 원수직과 우주함대 사령장관직을 같이 내놓겠다고도 했다.[7] 사실 당시 기준으로 아직 이 단계는 아니었으나, 라인하르트로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로이엔탈도 어떤 반응이나 제스처를 취하지 않은 탓에 사실상 암묵적 인정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8] 그나마 라인하르트가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의 관계를 알고 있었고 발언을 좀 잘못했다고 사람 목 날려버리는 스타일이 아니기 망정이지 골덴바움 왕조 시절이라면 로이엔탈이 아니라 미터마이어의 목이 먼저 날아갔을 것이다.[9] 물론 로이엔탈로서는 조금 억울할만한게 일단 로이엔탈은 사건의 해결을 위해 노력은 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걸 맡은 이가 알프레트 그릴파르처였다는 것이다... 그릴파르처가 손을 써놓은 탓에 로이엔탈은 자기가 안 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안 했다는 증거도 내놓을 수 없으니 도의적 책임은 있을지언정 진짜 책임을 져야 하는건 그릴파르처다. 로이엔탈의 문제는 그런 와중에서 싹싹 빌기는 커녕 반역을 시도한 것이다.[10] 상술했듯 이미 로이엔탈은 모함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모함을 당해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고 이 모양이 되었는데 이번에도 그 꼴이 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고 여긴다면 쉽사리 결정내리지 못할 것이다.[11] 다만 개인적인 감정이 크게 작용한 점도 있지만 이대로 제국군과 노이에란트 치안군이 정면으로 격돌한다면 여기에서 발생될 피해는 막대하다. 아무리 막강한 국력의 은하제국이라도 해도 자유행성동맹과의 오랜 전쟁, 문벌대귀족들과의 내전, 동맹 토벌과 양 웬리와의 결전 등을 거치며 엄청난 숫자의 함선과 장병들을 잃었는데 전쟁이 끝난지 몇 년이나 되었다고 또다시 내전이 벌어지는 꼴을 염려한 점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노이에란트 총독부의 군사력은 은하제국 본국의 군사력과 비교해 보면 그 규모는 작아도 1개 함대분의 병력도 안 남은 양 웬리 함대와 비교하면 그 군세가 5배에 달하여 사실상 우주에서 2번째로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으니 로이엔탈이 전면전으로 나왔기 망정이지 장기전으로 계획했다면 제국군의 피해가 극심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쳐도 로이엔탈을 이대로 아무 일도 없던듯이 용서할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한다고 쳐도 로이엔탈이 순순히 받아들였을지는 의문이지만[10][12]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217[13] 그러나 라인하르트는 힐데가르트를 통해 '루츠가 랑의 모략(니콜라스 볼텍을 하이네센 대화재 사건의 주범으로 몰았으며, 그를 죽이고 자살로 위장한 사실)을 밝혀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크게 놀랐으며, '짐이 간신배의 체면을 살려주려다 충신들의 불안과 불만을 샀다'며 깊이 후회하고 체포령을 내려 랑을 가두었다. 이 문서 자체가 하도 충격적이라 문서를 본 라인하르트의 반응은 "프로이라인이 지시해 만든 것인가?"였다. 아무튼 로이엔탈이 (겉으로나마) 내세운 명분은 맞아떨어진 셈, 애초 로이엔탈도 그걸 아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지만[14] 조금 이상해 보이겠지만 덕분에 서로가 쓸데없이 죽일 이유는 없음을 알았기에, 전투가 끝난 후 추격하여 죽고 죽이는 일은 없었다. 애당초 로이엔탈이 라인하르트로부터 독립하려고 일으킨 반란도 아니었으니.[15] 라인하르트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양 웬리의 후계자의 기량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만약 잔꾀를 써 로이엔탈과 손잡으면 그때야말로 이제르론을 침공할 구실로 삼으면 된다고 말했다.[16] 라인하르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로이엔탈을 총독으로 임명하였던 것은 잘못이었을지 모르나, '''원수로 임명한 것은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