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신라면배
1. 개요
한국기원이 주최[1] ,주관하고 농심그룹에서 후원하는 바둑대회로 정식 명칭은 '''농심辛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이다. 참고로, 후원사 농심은 이름을 '辛라면배 ~'로 짓고 싶어했지만 한국바둑계는 '농심배 ~'를 바랐고, 결국 둘 다 썼다. 로고에서 辛을 유독 크게 쓴다.
직접적으로 진로배를 계승한 타이틀은 아니지만, 한중일 3국 국가대항전이라는 규칙은 그대로 이어왔기에 정신적인 계승자 정도에 해당된다.
2. 대회 개요
2.1. 한국의 대표 선발
총 5명의 대표 중 한국랭킹 1위는 자동으로 출전권을 부여받는다. 남은 네 자리 중 세 자리는 선발전을 통해, 마지막 한 자리는 선발전이 끝난 후 후원사가 선정하는 와일드카드를 통해 채워진다. 양궁이나 쇼트트랙의 상위권 선수들이 국내 선발전에서 종종 탈락하는 것처럼 농심배 대표 선발전에서도 상위권 기사들이 종종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농심배의 수호신 이창호 9단도 선발전에서 아깝게 탈락한 다음 와일드카드로 출전하는 경우가 대다수[2] 였다. 알파고를 꺾었던 이세돌 9단의 경우도 선발전을 좀처럼 뚫지 못해 자력으로는 단 세 차례(10회, 12회, 20회) 선발되었다. 단, 13회 때 셰허 9단에게 패배하여 중국에 우승컵을 내준 이후 이창호 9단이 와일드카드를 고사하면서 17, 18회에는 이세돌 9단이 와일드카드로 출전하였다. [3] 농심배 대표 선발전의 치열함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부족할 정도로, 제 19회 후지쓰배 우승자 박정상 9단, 제 4회 비씨카드배와 제 24회 TV 바둑아시아선수권 대회 우승자 백홍석 9단, 제 29회 TV 바둑아시아선수권 대회 우승자 나현 9단 등은 세계대회 우승 경력에도 불구하고 단 한 차례도 농심배 대표로 선발되지 못하였다.(2018년 5월 30일 현재)
사실 농심배 대표 선발전에서 상위권 기사를 떨어뜨리고 선발된 하위권 기사들이 그다지 좋은 성적을 못 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바둑 팬들 입장에서는 답답하면서도, 이창호가 끝판왕으로 출전해 대회를 마무리 짓는 경우가 많았다 보니 뭐라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창호 시대가 끝나고, 중국의 세가 커지며 이세돌이나 박정환에게 '철의 수문장'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워지자, 토너먼트 형식으로 3명 뽑는 선발전을 바꾸자는 소리도 좀 더 늘어났다. 관련기사
2.2. 대회 진행
한, 중, 일 3국에서 각각 5명의 기사가 출전하여, 추첨을 통해 첫 번째 대진을 결정한 다음 그 대국의 승리자가 다른 나라의 선수와 대국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첫 번째 대국이 한중전이고 이 대국에서 한국 기사가 승리했다고 가정하면 두 번째 대국은 첫 번째 판에서 이긴 한국 기사 vs. 일본 기사가 되는 식이다. 한때 '승발전'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연승전'이라고 한다. '''가장 유사한 대회는 팀리그, 위너스리그이다. 사실상 원조 팀리그, 위너스리그 방식.'''
이 대회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진로배가 97년 5회 대회[4] 를 마지막으로 중단된 후, 2000년[5] 동일한 방식 하에서 농심의 후원으로 이름만 바꿔 부활하였다.
참고로, 3개 국가의 5명 대표 모두 출전하는 경우 최대 대국 수는 14국이 되는데[6] , 14일에 걸쳐서 한번에 두는 것이 아니라 3개의 라운드에 나누어 대국을 하게 된다. 대락 9월경에 베이징이나 선양에서 1라운드, 11월 경에 부산에서 2라운드, 2월 경에 상하이에서 3라운드가 치뤄지며, 1라운드는 4국, 2라운드는 5국, 3라운드는 나머지 판을 둔다. 대국규정은 제한시간 각자 1시간, 1분 초읽기 1회가 주어지며, 덤은 6.5집의 한국룰로 진행한다. 농심배 대회소개 참조
농심배의 총 전적은 한국 우승 '''13회''' , 중국 우승 8회[7] , 일본 우승 '''1회(...)'''[8] . 성적을 보면 알겠지만, 이전의 진로배에서 한국이 5회 모두 우승한 것에 이어 한국 바둑의 단체전 강세를 볼 수 있는 대회이다.
특이점으로 '''우승 트로피는 최종국 승자한테만 지급된다'''. 그러니까 아무리 앞에서 많이 이겨도 마지막 승리를 못 챙기면 트로피를 못 받는다.(...)
...그러나 사실...
3. 그 실체는...
이 바둑대회의 정체는 '''세 나라에서 출전한 15명의 기사들이 반상의 혈투를 벌이다가 항상 이창호가 이기는 대회'''였다. 이창호 九단의 농심배 총 전적은 '''19승 3패(!)'''로[9] , 12번의 우승 가운데 이창호가 대장으로 나서서 대회를 마무리한 경우도 8번이나 된다. 나머지 네 번은 10회 대회의 이세돌(막판 2연승)과 12회 대회의 최철한(막판 4연승). 14회 대회의 박정환과 19회 대회의 김지석. [10]
특히 혼자 남은 상황에서 5연승으로 우승을 달성한 6회 대회는 백미중 백미. 이 때가 바둑팬들에게 종종 회자되는 상하이 대첩이다. 한국 대표 4명이 고작 1승(최철한)에 그쳤기 때문에 2라운드 마지막부터 출진하게 되어버렸다. 사실 2라운드 1승 후, 3라운드의 4연전을 앞두고 이창호의 컨디션이 문제였는데, 제 9회 LG배 4강전에서 평소에 압도하고 있던(이창호 기준 11승 1패) 위빈 九단에게 패배하였고, 국수전마저 최철한에게 0:3으로 패배하여 타이틀을 얻지 못하였다. 한국 바둑팬들조차 이창호의 승리를 쉽게 낙관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돌부처는 한 명 한 명 상대를 격퇴시키기 시작한다. 설마설마 하더니 어느새 4연승. 마지막 대국은 중국의 왕시vs이창호 였는데, 이때는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와서 당시 생중계를 하던 김성룡은 '검토실의 중국기사들은 우승을 포기하고 편한 마음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해설은 지금도 한국기원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대국에서 이창호는 완벽한 판짜기를 통해 승리. 한국 대표로 출전했던 나머지 선수들의 총 전적은 이창호의 전적을 제외하면 5할 정도의 승률에 불과하며, 이는 중국 팀의 전체 승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마저도 가끔씩 선발전을 통과했던 상위권 기사들이 대부분의 승을 차지하고 있다. 이후 이민진이 농심배와 똑같은 방식으로 치뤄지는 여자바둑 국가대항전인 정관장배[11] 에서 이창호와 동일한 상황에서(나머지 4명의 한국 대표가 1승밖에 못하여 2라운드부터 출전) 5연승을 거둠으로써 광저우에서 최종 승리를 결정짓자 제 2의 상하이 대첩으로 여겨진다.
참고로 응답하라 1988에서 최택 6단이 혼자 남은 벼랑 끝에서 5연승을 거두며 대회 패권을 차지한 에피소드는 바로 이 대회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신문에 실린 기보를 그대로 재현하기도 했고 대국장으로 홀로 들어오던 이창호의 모습도 그대로 재현됐다. 디테일한 고증이 제대로 구현된 셈. 다만 이창호 9단의 이른바 '상하이 대첩'은 2005년 대회이며, 1988년은 그 때까지 세계대회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다가 최초의 국제기전인 응씨배가 막 생겼던 시기이므로 1988년에 단체전인 국제기전에서 5연승을 거두는 것은 고증오류라고도 할 수 있다. 응씨배에서 우승한 조훈현 9단이 국민적 영웅이 되어 카퍼레이드까지 했던 것이 바로 1988년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팬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이창호 9단도 나이는 어쩔 수 없어서, 13회 대회에서는 최종전에 나온 이창호 九단이 중국의 셰허 九단에게 패하며 우승컵을 중국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이로써 4연속 우승에다가 통산 11번째 우승을 노리던 한국은 다음 기회로 넘겨야 했으며, 중국은 주장 셰허 九단의 3연승에 힘입어 9회 대회에 이어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4. 역대 대회일람
제1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제2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제3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제4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제5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제6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 이 대회가 바로 바둑역사에 길이남은 '''상하이 대첩'''이다.
제7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제8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제9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제10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제11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제12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제13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제14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제15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제16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제17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제18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제19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 3.1절 대첩 / 김지석 9단의 극적인 2연속 역전승!!
제20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 중국, 4명 남기고 우승
제21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제22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 3라운드 '''온라인 신진서 대첩''' / 신진서 9단의 파죽의 5연승 올킬!
5. 역대 우승 기록
6. 역대 한국 출전기사
1회(1999~2000) - 우승
- 목진석 四단: 2승 1패
- 김영삼 四단: 1승 1패
- 조훈현 九단: 1승 1패
- 유창혁 九단: 1패
- 이창호 九단: 2승
2회(2000~2001) - 우승
- 최철한 三단: 3승 1패
- 목진석 六단: 1승 1패
- 최명훈 七단: 1패
- 조훈현 九단: 2승 1패
- 이창호 九단: 1승
3회(2001~2002) - 우승
- 최철한 四단: 2승 1패
- 최규병 九단: 1패
- 유창혁 九단: 1승 1패
- 조훈현 九단: 1승 1패
- 이창호 九단: 2승
4회(2002~2003) - 우승
- 박영훈 三단: 4승 1패
- 윤현석 七단: 1패
- 김승준 七단: 1패
- 조훈현 九단: 1패
- 이창호 九단: 2승
5회(2003~2004) - 우승
- 허영호 二단: 1패
- 홍민표 三단: 1패
- 박지은 四단: 1패
- 원성진 五단: 3승 1패
- 이창호 九단: 2승
6회(2004~2005) - 우승
- 한종진 五단: 1패
- 안달훈 六단: 1패
- 유창혁 九단: 1패
- 최철한 九단: 1승 1패
- 이창호 九단: 5승 (상하이대첩)
7회(2005~2006) - 준우승
- 강동윤 三단: 1패
- 류재형 七단: 1승 1패
- 원성진 六단: 1승 1패
- 조한승 八단: 3승 1패
- 이창호 九단: 1패
8회(2006~2007) - 우승
- 조훈현 九단: 1패
- 최철한 九단: 1패
- 원성진 七단: 1패
- 박영훈 九단: 4승 1패
- 이창호 九단: 2승
9회(2007~2008) - 준우승
- 홍민표 六단: 1승 1패
- 조한승 九단: 1패
- 목진석 九단: 3승 1패
- 이창호 九단: 1패
- 박영훈 九단: 1패
10회(2008~2009) - 우승
- 허영호 六단: 1패
- 윤준상 七단: 1패
- 강동윤 八단: 5승 1패
- 이세돌 九단: 2승
- 이창호 九단: '''미출장'''[12]
11회(2009~2010) - 우승
- 김지석 六단: 3승 1패
- 김승재 三단: 1패
- 윤준상 七단: 1패
- 박영훈 九단: 1패
- 이창호 九단: 3승
12회(2010~2011) - 우승
- 이세돌 九단: 2승 1패
- 박승화 四단: 1패
- 목진석 九단: 1승 1패
- 최철한 九단: 4승
- 이창호 九단: '''미출장'''[13]
13회(2011~2012) - 준우승
- 안국현 三단: 2승 1패
- 강유택 四단: 1패
- 김지석 七단: 4승 1패
- 원성진 九단: 1패
- 이창호 九단: 1패
14회(2012~2013) - 우승
- 이동훈 初단: 1패
- 이호범 三단: 1승 1패
- 김지석 八단: 1패
- 최철한 九단: 3승 1패
- 박정환 九단: 2승
15회(2013~2014) - 준우승
- 최기훈 四단: 1패
- 강동윤 九단: 2승 1패
- 최철한 九단: 1패
- 김지석 九단: 1승 1패
- 박정환 九단: 2승 1패
16회(2014~2015) - 준우승
- 변상일 三단: 1패
- 강동윤 九단: 2승 1패
- 안성준 五단: 1패
- 박정환 九단: 1승 1패
- 김지석 九단: 1승 1패
17회(2015~2016) - 준우승
- 백찬희 初단: 1패
- 민상연 四단: 1패
- 최철한 九단: 2승 1패
- 박정환 九단: 1패
- 이세돌 九단: 3승 1패
18회(2016~2017) - 준우승
- 이세돌 九단: 1패
- 이동훈 八단: 1패
- 강동윤 九단: 1패
- 김지석 九단: 1패
- 박정환 九단: 2승 1패
19회(2017~2018) - 우승
- 신민준 六단: 6승 1패
- 김명훈 五단: 1패
- 신진서 八단: 1패
- 김지석 九단: 2승
- 박정환 九단: '''미출장'''[14]
20회(2018~2019) - 준우승
- 안국현 八단: 1패
- 신민준 九단: 1패
- 최철한 九단: 1패
- 이세돌 九단: 1패
- 박정환 九단: 2승 1패
21회(2019~2020) - 준우승
- 원성진 九단: 1승 1패
- 김지석 九단: 1패
- 이동훈 九단: 1패
- 신진서 九단: 1패
- 박정환 九단: 4승 1패 1무효[15]
22회(2020~2021) - 우승
- 홍기표 九단: 1승 1패
- 강동윤 九단: 1패
- 신민준 九단: 1승 1패
- 신진서 九단: 5승
- 박정환 九단: '''미출장'''[16]
7. 그 외
기사들에게나 일반인 팬들에게나,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대회이다. 아마도 세계기전 가운데 10년 가까이 유일한 단체전이었고 지금도 하나뿐인 단체전[17][18] 이기 때문에 대표로 선발된 기사들은 '''국가를 대표한다'''는 사명감이나 책임감이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고 한다. 신예 기사의 경우는 이 대회를 통해 주목 받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대회의 특성상 신예기사는 대부분 초반에 출전하게 되는데, 이 때 연승을 올린다면 주목받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한국에서 정상급의 기사로 분류되는 최철한, 박영훈, 원성진 등이 모두 저단 시절에 이 대회에서 3~4연승을 올리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2017년 대회에서는 신민준이 초반 6연승으로 이름을 알렸다.
또, 후원사가 농심그룹이다보니, 대국 하는 기사들뿐만 아니라 검토실에 있는 기사를 비롯 관계자들 모두에게 먹을거리가 아주 많이 제공된다고 한다.
8. 여담
- 12회 대회에서 부장으로 나선 최철한 九단의 4연승으로 한국이 우승하게 되어 이창호 九단이 출전하지 않고 우승한 2번째 대회가 되었으며[19] , 총 10회 우승을 달성하게 되었다.
- 13회 대회에 선발전에서 국내 랭킹 1위인 최강자 이세돌 九단이 탈락하는 바람에 스폰서인 농심에서 뽑는 와일드 카드로 이세돌을 뽑느냐 올해 들어 부진하지만 농심배에서는 막강 포스인 이창호 九단(선발전 당시 국내 랭킹 8위)을 뽑느냐가 화제가 되었다. 결국은 농심은 와일드 카드로 이창호 九단을 선택하였다.[20][21]
- 일본의 경우 7회 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농심배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22] 13회 대회에서 일본 대표는 1승조차 거두지 못하고 2라운드만에 전원 탈락하고 만다. 그리고 14회 대회 때는 1승만을 거두고 역시 2라운드 만에 전원 탈락하였다. 그 후 15회 대회에서도 1승을 거두는 데 그쳤지만, 16회 대회에 와서 3승을 거두게 된다. 19회 대회에서는 6년 만에 전패 탈락.
- 역사상 올킬이 나온적은 단 한번도 없다.[23] 그도 그럴것이 보통 선봉으로는 기량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선수가 나오고, 뒤로 갈수록 강한 기사가 나오는 게 합리적인 순서다. 초장부터 올킬 노린다고 이창호나 이세돌, 커제급을 내보냈다가 지기라도 하면 데미지가 상상이상일 것이다. 거기에 혼자 10승을 하려면 5일연속 대국을 2번 해야한다. 농심배 룰로는 보통 3시간 정도 두니깐. 거기에 2달 간격으로 텀이 있기 때문에 그 기세를 이어나가기에는 쉽지는 않다. 또 막판까지 가면 소위 각국의 끝판대장들이 나온다는 것도 있고 말이다. 18회, 20회의 판팅위가 7연승에서 끊긴게 전부 한국의 에이스 박정환에게 끊겼다.
- 진로배 마지막 대회 당시 서봉수 九단의 9연승 기록은 농심신라면배에서도 깨지지 않고 있다. 농심신라면배 최다 연승 기록은 18회와 20회 대회의 판팅위 九단, 21회 대회의 양딩신 九단이 갖고 있다.
[1] 17회까지는 일간스포츠에서 주최[2] 6회(상하이 대첩)와, 9회~13회에 와일드 카드로 출전하였다.[3] 어째서 이창호 九단이 계속 와일드 카드로 출전하였었는지는 대회의 실체를 보다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4] 서봉수 九단의 단체전 9연승이 나왔던 그 대회[5] 대회 시작은 1999년.[6] 물론 처음 나온 한 명이 10연승으로 대회를 끝낼 수도 있다.[7] 9회, 13회, 15~18회, 20~21회[8] 7회[9] 이 패배 수는 한국이 농심배를 우승하지 못한 횟수와 일치한다. 승리는 모두 대장으로 출전하였을 때 중국과 일본의 에이스를 상대로 올린 성적이다.(패배의 경우 9회 대회 때 한번 부장으로 출전하였다가 패배) 이상하게도, 대표로 참가한 한국 선수들은 부진한 경향이 많아 이창호가 대장으로 나와 연승을 거두어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10] 1회 2연승, 2회 1승, 3회 2연승, 4회 2연승, 5회 2연승, 6회 '''5연승''', 8회 2연승, 11회 3연승이다. 조금만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승수를 다 합친 게 이창호 九단이 농심배에서 거둔 19승이다.[11] 이후 '황룡사쌍등배'로 바뀌었다.[12] 이세돌 九단의 마무리로 13국에서 종료.[13] 최철한 九단의 마무리로 13국에서 종료.[14] 김지석 九단의 마무리로 13국에서 종료.[15] 판팅위와의 대국 도중 서버 오류로 착수가 되지 않아 시간패. 논의 끝에 해당 대국을 무효로 하고 다음날 재대국을 진행.[16] 신진서 九단의 마무리로 13국에서 종료.[17] 게다가 연승전 방식이다. 2008년의 세계마인드스포츠나, 2010년의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경우는 연승전이 아니라 다섯 대국이 동시에 진행되는 방식이었다.[18] 2011년에 중국이 초상부동산배를 신설하면서 세계대회 단체전은 둘로 늘었다가 2014년 이후 중단.[19] 참고로 이세돌 九단이 대표로 참가할 때마다 이렇게 끝났다.[20] 이세돌 九단은 농심배 와일드카드로 선발되는것을 계속 고사해왔었다.[21] 이창호 九단의 경우 9회부터 13회까지 전부 와일드카드로 선발되었었는데, 13회 대회에 우승을 하지 못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 때문인지, 14회 때는 와일드카드를 포기하였고, 결국 14회 대회의 와일드 카드로는 박정환 九단이 지목되었다. 그리고 박정환 九단은 14회 대회를 대장으로 출전해 2연승으로 마무리짓고 한국에 우승을 안겨준다.[22] 사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일본의 세계대회 우승이 없어졌다가 최근 이야마 유타가 마이너 세계대회인 TV바둑최강전에서 우승하기는 했다.[23] 농심신라면배의 전신인 진로배에서는 서봉수 九단이 9연승을 기록했지만, 이마저도 올킬은 아니다. 이론적으로 가능한 최다 연승 수는 10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