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진제국지굴기
1. 개요
2017년 2월 9일부터 3월 6일까지 CCTV에서 방영한 대하드라마로, 대진제국 시리즈의 제3작으로 1부인 대진제국지열변이 진효공, 2부인 대진제국지종횡이 혜문왕 시기를 다루었다면 3부인 대진제국지굴기는 소양왕 시기를 다루고 있다.
촬영은 대진제국지종횡이 끝난 2012년부터 했는데, 방영은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7년에 했다. 백기 역의 배우가 2부에서부터 맡던 왕학병이었는데, 그가 마약 복용으로 체포되면서 주요인물인 백기 등장씬을 전부 재촬영하면서 제작에 차질이 벌어진 영향이다. 대진제국지굴기의 1회와 2회는 대진제국지종횡의 마지막회를 방영했다.
2. 줄거리
진무왕 영탕이 주나라에 갔다가 힘자랑하며 솥을 들다가 허리가 부러져 위독해졌고, 진나라에 돌아오자마자 사망한다. 왕태후(혜문후)와 영장은 이를 숨기며 대신들에게 무왕이 돌아와서 정천궁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무왕의 유조는 연나라에 전해졌고 연나라에 인질로 갔던 미왕비(미팔자)와 영직은 차기 왕으로 영직을 세우라는 무왕의 유조를 따라 진나라로 돌아온다.[1]
진나라 내에서는 유조에 반발하며 영장을 위시한 영씨 종친들은 무왕의 사망 사실이 드러나기 전에 미왕비와 영직을 제거하고자 자객을 보냈으나 연나라의 연막 작전으로 두 사람은 무사히 함곡관을 지나 함양에 도착한다.
결국 영장은 왕태후를 꼬드겨 암살을 기획하고, 영직의 즉위식에 미왕비의 술잔에 독을 타는데[2] 즉위식 당일, 미팔자와 의거왕의 친아들 미염이 나타나 독이 든 술잔을 마시고 왕태후와 미왕비에게 자신의 죽음으로서 서로 더 이상 미워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영직에게는 칼싸움을 신청한다.
영직과 미염이 겨루는 도중 영직이 돌격할 때 미염은 방어를 하지 않았고 그대로 칼에 찔려 사망한다. 친아들의 사망에 격분한 미왕비는 당신이 내 아들을 죽였다며 왕태후를 끌고 가서 몸싸움을 벌이는 중 왕태후는 급기야 칼을 꺼낸다. 이를 본 영직이 달려와 왕태후를 막아서고, 영직을 친아들처럼 여기던 왕태후는 그 모습에 좌절하여 "직아, 나는 너를 믿었는데..."라며 자신을 찔러 자살한다. 미왕비는 이성을 잃고 왕태후의 시신을 난도질(!)하기에 이른다.
결국 영장은 궁중에서 반란을 일으켜 왕위에 앉았으나 바로 진압 당하고, 본인은 목이 매달리는데 숨이 끊어지지 않자 칼에 베여 사망한다. 영장이 죽은 뒤 바로 역적무리의 시신을 치우고 바로 그 곳으로 영직이 들어서는 장면이 압권.[3]
세월이 흘러 소양왕이 성인이 되었으나 선태후가 섭정을 하고 있고, 정무는 선태후와 선태후의 동생 위염이 처리한다. 소양왕은 그런 어머니와 외삼촌이 못마땅하고, 자신의 입지를 세우려 초 회왕에게 만나자고 하여 진나라로 불러들인다. 초회왕은 싱글벙글하며 진나라로 왔지만 바로 감금 당하고 소양왕에게 신하의 예를 강요 당한다. 선태후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수습하려 하나, 초회왕은 오히려 진나라에서 버티면서 6국이 진나라를 공격할 명분을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초나라 내부에서도 회왕을 다시 데려와야 한다는 사람들과 회왕이 진나라에 납치되어 시해 당한 것으로 알리고 새 왕을 즉위시키자는 여론으로 갈리는데, 결국 초 경양왕이 즉위하면서 초회왕이 죽은 것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되어 진나라는 더욱 위기에 몰리게 되었고 초회왕은 그 모습을 즐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초나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결국 진나라에서 탈출하여 초나라로 돌아가지만, 임금이 살아 있는데 새 임금이 즉위한 것은 모반이라는 것 때문에 경양왕에 의해 회왕은 쫒겨나고 6국을 전전하지만, 초회왕이 진나라에서 죽어야 진나라를 공격할 명분이 생긴다는 이유로 모든 나라에서 추방 당하고 결국 함양으로 다시 돌아와 "집에 가고 싶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이 일로 6국은 단합하여 진나라로 쳐들어가 함곡관까지 뚫지만 결국 전쟁에서 지게 된다.
당시엔 서쪽엔 진나라, 동쪽엔 제나라가 제일 강한 세력이었고(동제서진) 막강한 권력자인 외삼촌 양후 위염에게서 독립하고 싶어했던 소양왕은 제 민왕과 사이가 안 좋은 제나라 왕족인 맹상군 전문을 데려온다. 그러나 결국 맹상군도 위염에게 굴복하고 진나라에서 머물다간 자신의 목숨이 남아나지 않겠다고 여겨 탈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동물의 울음소리를 잘 흉내내는 식객들의 도움으로 진나라 국경을 무사히 빠져나오는데 이 고사성어가 바로 계명구도이다. 제나라로 다시 돌아온 맹상군은 여전히 민왕과 사이가 안 좋았고 오만한 민왕에 의해 쫓겨난 맹상군은 결국 조나라로 넘어간다.
소양왕은 자신이 경솔했음을 느끼고 위염에게 독립하고 싶어해서 벌였던 일[4] 선태후와 위염에게 사과를 하면서 다시 정사를 맡기게 된다. 선태후와 위염은 그런 소양왕을 도와 정사를 꾸려나가게 된다.
진나라는 막강한 세력이자 눈앳가시인 제나라를 없애기 위해 평소 제나라에 원한이 강한 소진을 사주해[5] 제나라의 멸망에 불을 지핀다. 사실상 제나라의 식민지나 다름없던 연나라는 연 소왕과 소진이 합작해 오만한 제 민왕에게 약소국인 송나라를 치도록 한다. 결국 송나라가 멸망하자 6국 연맹이 깨졌고 위, 한, 초, 조, 연나라는 제나라를 무너뜨리고자 합쳤고 제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명분을 찾던 진나라도 가세하게 된다. 결국 이 6국 연합군은 연나라 맹장 악의가 총사령관이 돼 제나라 수도 임치를 무너뜨리고 민왕은 피란길 도중 소진의 배신으로 나라가 망했다면서 소진을 죽였지만[6] 결국 초나라의 장수 요치에게 민왕은 피살됐다. 비록 그의 아들 양왕이 후에 임치를 수복하고 나라를 되찾지만 제나라는 다시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게 된다.
제나라가 무너지면서 조 무령왕 이후 북방 유목 민족의 기마술을 받아들이면서 국력이 강해진 조나라가 진나라의 동진을 막게 되면서 결국 조나라 땅 연어에서 조사와 염파의 맹활약으로 진나라는 패하고 만다. 그리고 조나라는 조사와 인상여라는 훌륭한 명신들과 염파라는 전국시대 최고의 명장이 지키면서 진나라의 동진은 막히게 된다.
한편 조 혜문왕이 화씨지벽을 손에 넣자 그것을 탐낸 영직은 성 15개와 화씨지벽을 바꾸자고 제의했고 평소 진나라를 믿을 수 없던 혜문왕은 이 딜을 거절하면 전국 최강의 국가인 진나라의 침입이 걱정되자 인상여가 자청해 화씨지벽을 가지고 진나라로 가서 소양왕 영직을 농락했다. 이 고사는 훗날 옥의 티라는 고사가 된다.
초나라 경양왕은 그동안 진나라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전투를 벌였지만 기원전 278년 결국 백기에게 수도인 영이 함락당하면서 결국 수도를 옮기게 된다. 이때 초나라의 충신이자 시인이었던 굴원은 친진파들에 의해 수도가 함락되자 비통함을 견디지 못해 술을 먹으면서 어부와 이야기를 하면서 혼탁한 세상에 자신이 깨끗해도 이 나라를 바로잡을 수 없었다면서 슬퍼했고 어부가 떠나자 큰 돌을 안고 물 속으로 들어가서 자살을 하게 된다.
소양왕은 손주도 볼 정도로 장성하게 됐지만 여전히 양후 위염이 득세하면서 자신의 왕권이 위축되는 상황을 벗어나고자 새로운 인재를 등용하고자 했고 훌륭한 재능을 갖췄음에도 위나라에서 모욕을 받고 간신히 살아서 진나라로 도망친 범수를 등용하게 된다. 이후 범수는 진나라 최고의 권력이자 부패한 위염을 관직에서 끌어내렸고 영직은 범수에게 진나라 최고의 관직을 준다.
범수는 영직에게 이전에 장의가 내세웠던 6국의 합종에 맞선 연횡책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원교근공 정책을 내세우면서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다지게 된다. 당시 조나라는 조사와 염파, 인상여와 같은 유능한 신하들도 있어서 진나라의 동진을 막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위나라 안리왕은 겁이 많은 자라 백기의 협박에 자신들과 같은 약한 나라는[7] 진나라가 처들어오면 망할 수 밖에 없으니 당신들이(조나라, 초나라) 진나라가 우리 위나라로 처들어오면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냐면서 군사를 물리는 등, 이 동맹은 깨질 수 밖에 없었다.
조나라는 기원전 265년에 아버지 무령왕의 뒤를 이어 전성기를 이끈 혜문왕이 죽고 아들인 조 효성왕이 즉위했다. 이 무렵 위나라에서 진으로 오는 사신단에 범수에게 바로 자신을 멍석말이하고 오줌을 싸는 등 씻을 수 없는 모욕을 줬던 상관인 수가가 있었고 그에게 똑같이 큰 모욕을 주면서 역시 수가와 같이 자신을 모독했던 위나라의 제상인 위제의 목을 원한다면서 소양왕에게 청을 해서 소양왕은 군사를 움직였고 위제는 결국에 조나라로 도망치면서 조나라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진나라가 조나라의 왕족이자 혜문왕의 이복동생인 평원군 조승을 초빙하는 척하면서 그를 구금하는 계책으로 효성왕에게 큰 압박을 줬고 나라의 대들보인 숙부를 잃을까 두려웠던 효성왕은 위제를 진나라로 압송시키려고 했지만 미리 그 사실을 안 위제가 도망치다가 결국 위나라 신릉군 위무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진나라의 압박에 주저하던 위무기의 태도에 결국 위제는 세상에서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자결하게 된다. 물론 위무기는 식객들이 위제를 구하라고 했고 위제를 받아들일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결국 효성왕은 위제의 목을 진나라로 보내 인질로 있던 평원군을 데려오게 된다.
한 편 효성왕은 좌우가 다른 옷을 입고 용의 등을 타고 승천하다가 추락한 뒤에 황금과 옥으로 뒤덮인 산에서 빠져나온 꿈을 꾸고 말았는데 그 때 이것을 두고 곧 재물을 얻게 되니 이건 길몽이다와 용에서 떨어진 건 도중에 그만둔 것이고 황금과 옥으로 뒤덮인 산은 취할 수 없으니 이건 흉몽이라고 해석했는데 진나라의 명장 왕흘이 한나라의 상당을 접수하게 됐고 이 땅을 내주지 않으면 한나라는 멸망에 이를 위기에 처하자 결국 한나라의 왕은 상당군을 진나라에게 내줬지만 상당태수와 상당군의 백성들이 진나라 땅이 되느리 차라리 조나라로 넘기자고 했고 조나라는 이 땅을 두고 상당군을 취할까 말까 고민하게 된다. 염파는 본디 쉽게 얻는 건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면서 이 땅을 받게 되면 진나라가 우리 쪽으로 화살을 돌릴 거라면서 받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평원군은 이득이니 손 쉽게 상당군을 취해 국력을 키우자고 주장했었고 인상여는 병환으로 누워있던 상황에서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 결국 효성왕은 숙부인 평원군의 말에 귀를 기울여 이 땅을 취하게 된다.
결국 진나라는 분노했고 진나라는 왕흘을 총사령관으로 조나라는 염파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장평에서 맞붙게 됐다. 그러나 백기와 더불어 명성이 높은 노장 염파는 수세를 펼치면서 진나라의 공세를 차단했고 기다리기만 하면 진나라가 패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중원 전체에 큰 가뭄이 들면서 평원군과 효성왕은 인내심이 바닥이 났고 염파보고 빨리 공격을 해서 진나라를 물리치라고 닥달했는데 당시 명장인 조사가 죽으면서 아들 조괄이라는 아버지보다 병법에 유능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조사는 아들을 절대로 군사에 맡겨선 안 된다고 했었는데 조괄은 염파의 방법은 잘못된 거라면서 내가 총사령관이 되면 진나라를 물리칠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그런 효성왕과 평원군은 염파를 대신해 조괄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려고 했지만 그의 어머니가 남편인 조사의 유언대로 그에게 군사를 맡겨선 안 된다고 반대했었다. 세작들로부터 이런 상황을 접하게 된 범수는 염파를 치우고 조괄을 임명하려고 매수된 자들을 이용하고자 했고 조나라 세작들의 눈을 피해 백기를 몰래 총사령관으로 바꾸려고 했다. 결국 세작들의 눈을 피해 백기가 진나라의 총사령관이 됐고 조괄은 염파를 대신해 장평에서 전투를 치렀지만 결국 명장 백기에게 군대를 잃었고 그들은 서서히 기아에 시달리게 되면서 시체를 먹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결국 최후의 발악을 펼친 조괄은 장렬히 전사했고 조나라 군대는 항복을 하게 된다. 순식간에 수십만의 병력을 잃게 된 조나라는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됐는데 처음에 백기도 그들을 살리고자 했었고 조나라 출신인 백기의 아내도 그들을 살려달라고 했었다. 그러나 식량은 조나라 포로들을 함께 먹이기엔 터무니없이 모자랐고 그들이 완전히 진나라 백성이 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범수의 말을 들은 영직은 백기에게 그들을 죽이라고 명을 내렸고 결국 백기는 아내에게 속이면서 그들을 살려줄 거라고 하면서 한 밤 중에 그들이 자고 있는 틈을 타서 죽이라고 명을 내린다. 결국 조나라 포로 수십 만은 희생됐으며 백기는 그 장면을 지켜볼 수 없어서 안타까움에 눈을 감는다. 결국 수십만이 목숨을 잃게 됐고 살아 남은 어린 아이들도 있었는데 백기는 그런 어린 아이들을 죽이지 말라면서 그들을 조나라로 보내라고 명령을 내린다. 이로서 장평대전으로 조나라는 징집돼야 하고 농사를 지어야 할 젊은이들을 잃게 되면서 한 세대를 잃게 되는 사실상 멸망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백기는 서둘러 조나라를 멸망시킬 절호의 기회라면서 조나라 수도 한단으로 진격하고자 했지만 백기를 시기한 범수가 백기가 공을 차지하는 것을 막고자 그 뜻을 막는다. 결국 백기는 소양왕과 범수에게 큰 실망을 드러내면서 관직을 내놓고 물러난다.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린 진나라는 조나라 수도 한단을 공격했고 백기의 아내는 백기를 떠나 고국의 수도로 돌아가 진나라의 공세를 막는데 도움을 줬다. 여기에 신릉군이 처남인 평원군의 나라를 돕고자 군사를 이끌고 와서 진나라는 패하게 된다. 영직은 백기를 다시 불렀지만 백기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그 제안을 거부했다.
한 편 이 무렵인 기원전 259년,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던 영직의 손자인 영이인(훗날 영자초로 개명)에게 아들이 태어났는데 이름을 영정이었다. 훗날 영정이 바로 그 유명한....[8]
아무튼 이 일로 영직은 백기를 미워하게 됐고 또한 진나라의 위기를 자초한 범수[9] 는 백기를 다시 불러서 이 위기를 타개하자면서 그러면 백기를 물심양면 도와줄 거라고 했지만 백기가 거부하자 범수는 내가 위기에 빠지게 되면 당신은 살아남지 못하도록 만들어주겠다면서 떠난다. 이 무렵 백기에게 정치적인 위기가 발생하자 백기의 부인은 백기와 남은 여생을 함께 보내고자 했다.
결국 범수는 백기에게 명령 불복종으로 그를 죽이라고 했고 백기를 차마 죽일 수 없던 소양왕 영직은 백기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자 독대한다. 백기에게 지금이라도 내 요구를 받아들이고 전투에 나선다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겠다면서 가서 조나라를 멸망시켜달라고 요청했지만 백기는 이미 기회가 사라졌다면서 대왕께선 저에게 조나라 포로 수십만을 죽일 때 직접 글로서 명령을 내리셨다면 제가 그들을 죽이는데 뭐가 어렵겠습니까? 대왕께서 주신 백지 명령을 본 순간 저의 가슴은 타들어갔다면서[10] 어떻게 진나라에 제 모든 걸 바쳤던 저에게 이리 가혹하신 겁니까? 하면서 영직에게 섭섭한 마음을 전했으며 바로 조나라를 쳤어야 했는데 간신배 범수에게 흔들려서 기회를 날렸으니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다고 하자 결국 영직은 그를 포기하고 떠나게 된다.
결국 부인과 함께 귀양길에 오른 백기는 왕명을 받든 후 부인을 잠시 안 보이는 곳으로 보낸 뒤 장평대전에서 조나라 젊은이들이 학살당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자결을 하게 된다.
백기를 잃어 상실감에 빠진 소양왕은 범수의 부하들을 중용하게 되지만 그들은 진나라를 배신하거나 큰 실망을 안겨주면서 영직은 범수에게 큰 실망을 했고 땅을 되찾기 위해 직접 전투에 나서게 되는데 백기를 따르던 노장들은 은퇴를 했고 더이상 소양왕의 명령을 듣지 않게 됐는데 거기서 한 젊은 군인이 군대를 지휘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이름을 물으니 규라고 했는데 영직은 영씨 성을 하사해 영규라고 이름을 짓고 그를 장군으로 삼는다.
조나라의 평원군과 위나라의 신릉군, 그리고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의 연합군은 위나라에서 범수를 탈출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 왕계가 지키던 성을 함락시켰고 항복한 왕계는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면서 자신에게 벼슬을 내려달라고 하는 모습에 세 명의 군자들은 진나라가 인재 복이 없다면서 범수에게 어떻게 저런 자들이 있냐면서 비웃었다.
그리고 6국의 왕들은 진나라를 멸하기 위해 주나라의 천자인 난왕[11] 에게 찾아와 진나라가 천자의 나라인 주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라며 진의 토벌을 요구했고 난왕은 승락한다. 결국 주나라와 6국의 연합군이 진나라를 침공하기 시작했다.
위기 상황을 자초한 범수와 그의 수하들을 잡아들인 영직은 범수에게 자결을 명했고 그의 수하들은 사형에 처해졌다. 범수는 저에게 베풀어주신 은혜 저승가서도 잊지 않을 것이라면서 진나라 만세를 외치고 약을 먹고 죽는다.
6국 연맹은 서서히 진나라를 압박해 들어왔고 유인책으로 그들을 몰살시키려던 영직은 과음을 하다가 아버지인 진 혜문왕 영사를 만나게 된다. 물론 아버지는 돌아가신지 50년이 넘은 지라 젊은 모습으로 나타나 노인이 된 영직에게 술 좀 그만 마시라면서 내 아들 직이 드디어 왕위에 올랐구나! 그런데 6국이 연합해 진나라를 멸하려고 하는데 너는 한가롭게 술을 퍼마시고 뭐하는 거냐며 꾸짖자 영직은 형님께서 50년 전에 주나라를 멸하고자 주나라 구정을 들다가 돌아가신 이후 주나라를 멸하고 주나라를 대신해 천자가 될 것이며 아버지와 아버지의 조상님들 덕분에 제가 이렇게 진나라를 발전시켰으며 저는 저들을 왕도로서 그들을 제후국으로서 묶을 것이고 만약 거부한다면 그들을 철저하게 파멸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6국 연합군은 자기네들이 천자가 되고 싶어하는 욕심이 크지만 그들은 능력이 안 된다면서 아무리 연합해봤자 이제 진나라의 병력이 그들을 크게 능가한다면서 저한테는 백기만 있는 게 아니라면서 아버지의 꿈인 천하를 평정하겠다는 뜻을 이루겠다고 하자 영사는 기쁜 마음에 흥분을 했다. 영직은 아버지에게 자신이 발탁한 새로운 장수인 영규를 소개시키려고 했지만 영규가 온 사이 혜문왕의 영혼은 사라진 뒤였다.
결국 영직은 영규에게 명령해 주나라를 침공했고 이게 놀란 난왕이 항복을 하고 노환으로 죽자 서주는 기원전 256년에 멸망했고 서주공에게 50년 전 자신의 형님이 들다가 실패했던 구정이 있는 곳에서 내가 천자로 즉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주나라가 사실상 멸망한 걸 모르던 6국의 왕들은 회의를 하던 도중, 영직이 찾아와 그들을 도발했고 천자는 세상을 떠났으며 6국 연합군은 진나라와 전투를 벌이다 대패를 하게 된다. 그러나 영직은 젊었을 적 칼로 자신의 팔뚝에 새긴 三을 보다가 살아생전 어머니인 선태후의 말을 떠올리면서[12] 가운데를 칼로 새기면서 천자라는 것은 허명일 뿐이고 나머지 6국은 진나라에 복종하지 않을 것이며 6국을 멸하지 않는 한 천하는 여전히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王자를 완성한다.
6국의 왕들과 왕족을 초청한 소양왕은 당신들을 복종시킬 생각도 없고 천자에 오를 생각도 없다. 우리 진나라는 조만간 6국을 멸하게 될 것이니 남은 기간 잘 준비하라고 하면서 그들을 돌려보낸 뒤 세자인 안국군 영주에게 천하의 지도를 보여주면서 천하통일의 뜻일 기리게 한다.
기원전 251년 소양왕 영직은 56년 동안 진나라를 패권국가로 만들면서 사실상 천하통일의 대업의 발판을 마련하게 만든 뒤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천하통일의 몫은 그의 증손자 영정에게 넘어가게 된다.
3. 등장인물
- 선태후(미팔자) - 영정
전작에 이어 출연했다.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권력욕이 있지만 결코 사리사욕에 그치지 않고 진나라의 안위와 발전을 생각한다.[13] 그러나 소양왕과는 대립하는 관계로, 선태후가 소양왕을 꾸짖자 소양왕은 "내가 마음에 안 들면 폐위시키세요."라고 맞받아치기도 한다. 그러나 소양왕이 무모한 일을 벌이면 능수능란하게 뒷처리를 하기도 하고, 소양왕을 위해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택하기도 하는 등, 진정 아들과 진나라를 지키려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권력욕이 있지만 결코 사리사욕에 그치지 않고 진나라의 안위와 발전을 생각한다.[13] 그러나 소양왕과는 대립하는 관계로, 선태후가 소양왕을 꾸짖자 소양왕은 "내가 마음에 안 들면 폐위시키세요."라고 맞받아치기도 한다. 그러나 소양왕이 무모한 일을 벌이면 능수능란하게 뒷처리를 하기도 하고, 소양왕을 위해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택하기도 하는 등, 진정 아들과 진나라를 지키려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초반부에는 대진제국지종횡에 출연한 아역이 출연했고, 이후 장박이 청년 시절부터 노년 시절의 소양왕까지 맏았다.
실권을 쥐고 있는 어머니 선태후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나, 선태후가 죽을 때 "나는 다시 태어나도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을 보아 애증의 관계였던 것 같다.
실권을 쥐고 있는 어머니 선태후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나, 선태후가 죽을 때 "나는 다시 태어나도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을 보아 애증의 관계였던 것 같다.
- 백기 - 형가동
- 위염
선태후의 동생으로, 승상의 위치에서 선태후의 섭정을 보좌한다. 후일 전쟁에서 지자, 선태후의 분노로 실각하였다.
- 혜문후
진무왕과 영장의 생모로, 심성이 고와 미팔자의 아들인 소양왕과 미염도 자신의 친아들처럼 여기나, 친어미를 더 생각하는 소양왕을 보며 쓸쓸해한다. 미팔자와의 관계는 형님 동생 할 정도였으나, 무왕이 죽고 대립각을 세우더니, 끝내는 미팔자의 잔에 독을 탄다. 결국 미염이 그걸 마시고 죽자 미팔자는 격분하여 혜문후와 몸싸움을 벌이고, 결국 생모인 미팔자를 두둔하는 소양왕을 보고 자결한다. 미팔자에게 시신을 난도질 당하기도 한다.
- 미염
선태후가 초나라에 있을 때 의거왕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로, 소양왕 즉위날에 소양왕에게 대결을 신청하고 소양왕의 칼에 찔려 사망한다.
[1] 이는 연나라의 이익에도 철저히 부합했는데, 연나라의 인질이 진나라의 왕이 되면 진나라가 연나라에 우호적이 될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2] 미팔자 역시 왕태후의 술잔에 독을 탔다.[3] 여기까지가 대진제국지종횡의 마지막회를 방영한 부분이다.[4] 맹상군을 데려온 일과 초 회왕 건[5] 2편에서 장의와 섬씽이 있었지만 진나라에서 연나라 세자 평(연 소왕의 친형)에게 주나라의 공주를 시집보냈는데 자지의 난으로 그에 의해 남편인 세자 평이 죽었고 자지가 왕위에 오르자 그틈을 노려 제나라에 침략으로 연나라가 식민지가 되면서 공주마저도 고생을 하다 세상을 뜨자 평소 공주와 학문적 만남을 통해 그녀를 존중하면서 연모하던 소진이 제나라에게 앙심을 품게 된다.[6] 소진은 드디어 한을 풀었다면서 기분좋게 거열형을 받아들이게 된다[7] 한 때 자신의 증조부인 위 혜왕 때 위나라는 패권국이었고 진나라를 멸망의 위기에 빠뜨릴 뻔했을 정도로 강성했을 때를 생각하면 위나라와 진나라는 100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서로의 위치가 달라진 것이다. 더구나 백기라는 전국시대 최고의 명장이 이궐대전에서 위나라와 한나라의 연합군 24만을 사살하면서 당시 약소국인 한나라는 멸망의 위기에 다달았고 강국이었던 위나라도 큰 타격을 입고 급속도로 악화된 상황이었다. 이러니 자신의 아버지인 위 소왕 때 백기의 맹활약에 백기의 협박에 겁을 먹을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8] 영정은 장평대전이 끝나고 바로 이듬해에 태어났는데 즉 이 때 조나라에 볼모로 있었던 영자초와 아들 영정이 조나라에서 얼마나 푸대접을 받고 목숨의 위협을 수시로 받았는지는 알만 하다.[9] 그의 충복 중 하나가 지휘관으로 나섰는데 전투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항복했고 6국 연합군으로부터 벼슬을 얻어 성주가 됐다.[10] 원래 백기는 아내의 의견을 들어서 식량을 더 구해오라고 요청했지만 그것은 가로막혔고 그에게 명을 내린 건 백지였다. 즉 너 맘대로 하라는 건데 결국엔 올 식량도 없기 때문에 그들을 죽이라는 것이지만 백지이기 때문에 왕명을 내린 거라고 볼 수 없다. 즉 이 학살로 인한 모든 오욕들은 죄다 백기에게 넘긴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 모든 건 다 범수가 꾸민 일이다.[11] 무려 주나라를 59년이나 다스렸다. 즉 이 당시엔 80을 넘긴 노인내라서 말귀가 어두었고 사리분별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12] 진나라는 헛된 명성만 쫓아선 안 된다면서 진나라가 다른 나라들을 압도하면 알아서 쫓아오기 마련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즉 명성과 강함이 같아야 한다는 소리이다[13] 전작에서 한 궁녀가 "다른 부인들께서는 다들 자신의 친정 나라를 위해서 힘을 쓰는데, 어째서 부인께서는 그러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으니 미팔자는 "내가 진나라에 시집을 왔는데 진나라가 망하면 나는 어찌 되겠느냐?"라고 되묻는다.[14] 삼국의 손권 역을 맡은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