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사적/301~400호
1. 개요
대한민국의 사적 중 제301호~제400호까지 정리한 문서.
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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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391호 ~ 400호
[1] 문화재청은 화순 운주사지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 문화재청은 광주 조선백자 요지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3] 문화재청은 청주 흥덕사지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4] 문화재청은 파주 윤관장군묘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5] 진천삼용리백제토기요지와 묶여 사적 제511호로 재지정되었다.[6] 문화재청은 창원 다호리 고분군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7] 문화재청은 서울 효창공원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8] 타 고분군과 묶여 사적 제516호로 재지정되었다.[9] 문화재청은 울주 검단리 유적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10] 문화재청은 나주읍성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11] 문화재청은 전주 경기전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12] 문화재청은 경주 천관사지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13] 문화재청은 서울 호암산성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14] 진천산수리백제요지와 묶여 사적 제511호로 재지정되었다.[15] 문화재청은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16] 문화재청은 남원 만복사지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17] 문화재청은 파주 오두산성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18] 문화재청은 담양 금성산성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19] 문화재청은 서울 탑골공원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0] 문화재청은 강화 곤릉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1] 문화재청은 서울 양천고성지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2] 문화재청은 군위 인각사지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3] 성락원은 2008년 명승 제35호로 지정변경된 이후, 2020년에 명승 제118호로 또다시 재지정되었다. 그 내역은 다음과 같다. 2008년 성락원이 사적 제378호에서 명승 제35호으로 지정변경될 당시의 근거는 철종 때의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2019년에 이곳이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후 이 심상응이라는 인물에 대한 여러 의혹이 제기되었으며, 조사 결과 이 사람이 허구의 인물임이 밝혀지면서 문화재적 가치를 재평가하게 되었다. 조사 결과 고종 때의 내시 황윤명의 별서였다는 기록이 발견됐고 여기에 몇 없는 민가의 정원이라는 점이 반영되어 명승 제35호에서 해제되었고 2020년 9월 2일 명승 제118호 '서울 성북동 별서'로 재지정되었다.[24] 문화재청은 전주향교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5] 문화재청은 제주목 관아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6] 문화재청은 강진 전라병영성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7] 문화재청은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