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사적/401~500호
1. 개요
대한민국의 사적 중 제401호~제500호까지 정리한 문서.
2. 목록
2.1. 401호 ~ 410호
2.2. 411호 ~ 420호
2.3. 421호 ~ 4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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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471호 ~ 480호
2.9. 481호 ~ 490호
2.10. 491호 ~ 500호
[1] 문화재청은 나주 복암리 고분군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 문화재청은 익산 제석사지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3] 문화재청은 부안 백산성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4] 문화재청은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5] 문화재청은 대구 진천동 입석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6] 문화재청은 진천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7] 문화재청은 제주 삼양동 유적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8] 문화재청은 순천 검단산성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9] 문화재청은 홍성 홍주의사총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10] 문화재청은 부여 능산리 사지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11] 문화재청은 부여 금강사지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12] 문화재청은 서울 선농단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13] 문화재청은 파주 칠중성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14] 문화재청은 서울 초안산 분묘군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15] 문화재청은 원주 영원산성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16] 문화재청은 해남 군곡리 패총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17] 문화재청은 사천 늑도 유적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18] 문화재청은 파주 혜음원지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19] 문화재청은 원주 법천사지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0] 문화재청은 연천 호로고루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1] 문화재청은 연천 당포성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2] 문화재청은 연천 은대리성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3] 문화재청은 구미 황상동 고분군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4] 문화재청은 완주 위봉산성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5] 문화재청은 서천 봉선리 유적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6] 문화재청은 공주 정지산 유적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7] 문화재청은 서산 부장리 고분군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8] 문화재청은 상주 복룡동 유적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9] 문화재청은 수원 화성행궁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30] 문화재청은 북한산성 행궁지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31] 문화재청은 남한산성 행궁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32] 문화재청은 부여 홍산현 관아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33] 문화재청은 거제현 관아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34] 문화재청은 화순 쌍산 항일의병 유적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35] 문화재청은 창녕 비봉리 패총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36] 문화재청은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37] 문화재청은 춘천 신매리 유적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38] 문화재청은 강릉 초당동 유적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39] 문화재청은 광양 마로산성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40] 문화재청은 정읍 고사부리성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41] 문화재청은 서울 이화장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42] 문화재청은 장흥 석대들 전적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43] 문화재청은 함양 남계서원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44] 문화재청은 용인 보정동 고분군의 축조시기를 밝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