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알렉산드라

 


'''Alexandra af Denmark'''
'''이름'''
알렉산드라 카롤리나 마리 샤를로테 루이세 율리아
(Alexandra Caroline Marie Charlotte Louise Julia)
'''출생'''
1844년 12월 1일
덴마크 코펜하겐 옐로우 팰리스
'''사망'''
1925년 11월 20일 (80세)
노퍽 샌드링엄 하우스
'''장례식'''
1925년 11월 28일
윈저 성 세인트 조지 예배당
'''신장'''
165cm
'''배우자'''
에드워드 7세 (1863년 결혼 / 1910년 사망)
'''자녀'''
앨버트 빅터, 조지 5세, 루이즈, 빅토리아, 모드, 알렉산더 존
'''아버지'''
크리스티안 9세
'''어머니'''
헤센카셀의 루이세
'''형제'''
프레데리크 8세, 요르요스 1세, 다우마, 튀라, 발데마르
1. 소개
2. 작위
3. 생애
3.1. 어린시절
3.2. 결혼
3.3. 왕비
3.4. 왕대비
4. 가족관계
4.1. 조상
4.2. 자녀


1. 소개


Queen Alexandra
1844년 12월 1일 ~ 1925년 11월 20일 (80세)
영국의 국왕 에드워드 7세의 왕비이다.
덴마크의 국왕 크리스티안 9세와 헤센카셀의 루이세의 장녀이며, 프레데리크 8세의 여동생이자 러시아 제국의 황후 마리아 표도로브나그리스 국왕 요르요스 1세의 손윗 누이이다. 앨버트 빅터 왕자, 조지 5세,노르웨이의 모드 왕비의 어머니며, 에드워드 8세, 조지 6세, 올라프 5세의 할머니다.

2. 작위


  •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의 공녀 알렉산드라 전하 Her Highness Princess Alexandra of Schleswig-Holstein-Sonderburg-Glücksburg (1844년 12월 1일 – 1853년 7월 31일)
  • 덴마크의 공녀 알렉산드라 전하 Her Highness Princess Alexandra of Denmark (1853년 7월 31일 – 1858년 12월 21일)
  •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Alexandra of Denmark (1858년 12월 21일 – 1863년 3월 10일)
  • 웨일스 공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of Wales (1863년 3월 10일 – 1901년 1월 22일)
  • 왕비 폐하 Her Majesty The Queen (1901년 1월 22일 – 1910년 5월 6일)
  • 알렉산드라 왕대비 폐하 Her Majesty Queen Alexandra (1910년 5월 6일 - 1925년 11월 20일)


3. 생애



3.1. 어린시절


1844년 12월 1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의 공자 크리스티안과 헤센-카셀의 루이세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왕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왕가와는 먼 친척이었기 때문에[1] 어린 시절은 평범하게 자랐고, 때때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집에 방문해 동화책을 읽어주곤 했다.
[image]
크리스티안 9세 일가, 1862년
그러던 중 1848년 덴마크의 국왕 크리스티안 8세가 사망하고 프레데리크 7세가 왕위에 올랐는데, 아이를 낳지 못해 차기 왕위를 이을 사람이 아버지 크리스티안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아 알렉산드라의 가족은 가난 한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3.2. 결혼


영국빅토리아 여왕과 남편 앨버트 공은 그들의 장남이자 차기 왕위 계승자인 앨버트 왕세자의 신붓감을 고르고 있었다. 장녀 빅토리아 황태자비의 추천으로 받은 후보 중 한 명이 바로 알렉산드라였는데, 맨 처음에는 탐탁지 않아 했으나 다른 후보들을 제외하고 나니 알렉산드라만 남았다고 한다.
1861년 9월 24일 빅토리아 황태자비의 주선으로 앨버트 왕세자와 알렉산드라는 처음으로 만났다. 약 1년 뒤인 1862년 9월 9일 알렉산드라는 앨버트에게 청혼을 받고 영국에서 왕세자비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image]
1863년 3월 10일,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서 앨버트와 알렉산드라의 세기의 결혼식이 열렸다. 당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결혼식 행사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다만 앨버트 공의 애도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아 여성들은 모두 회색 계열의 옷을 입어야 했다. 결혼식을 올린 부부는 이튼 칼리지 학생들의 환영을 받으며 와이트 섬의 오스본 하우스로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이때 학생 중에 윈스턴 처칠의 아버지 랜돌프 처칠도 있었다고 한다.
결혼 한 바로 다음 해 아버지 크리스티안이 왕위에 오르고, 남동생 빌헬름그리스 왕국의 왕이 되었으며, 여동생 마리아러시아 제국알렉산드르 황태자와 약혼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알렉산드라 본인 또한 첫 아이이자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앨버트 빅터 왕자를 출산하였는데, 본래 예정일보다 2달 일찍 나온 미숙아였다.[2] 이후 조지 왕자, 루이즈 공주, 빅토리아 공주, 모드 공주, 알렉산더 존 왕자를 낳았다. 아이들에게 냉담했던 빅토리아 여왕과는 달리 알렉산드라는 따뜻한 어머니였지만, 반복되는 출산으로 평생 류머티즘을 앓아야 했다.
[image]
알렉산드라의 결혼생활은 겉으로는 행복해 보였지만 앨버트는 아내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고, 1871년에 장티푸스[3]에 걸릴 때까지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고 한다. 특히 앨버트는 정부도 너무 많아서 나중에는 결국 정부 앨리스 케펠[4]이 남편의 곁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하였다. 반면에 알렉산드라는 아내란 역할에 끝까지 충실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라는 유전성 귀경화증으로 인해 귀가 점점 들리지 않아 사교계에서도 고립되었고, 아이들과 궁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게다가 마지막 아이 알렉산더 존 왕자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사망하여 슬픔은 더욱 컸다. 조용히 장례식을 치르고 싶어했던 알렉산드라와 달리, 빅토리아 여왕은 이 소식을 공식적으로 애도할 것으로 발표하여 언론에 좋지 않은 이미지로 비쳤다.
설상가상으로 1892년 장남 앨버트 빅터 왕세손이 갑작스레 사망하였다. 자녀들에게 애정이 많았던 알렉산드라는 막내에 이어 장남까지 사망한 것을 매우 슬퍼했다고 한다. 1894년에는 제부 알렉산드르 3세가 사망하여 미망인이 된 동생 마리아와 평생을 의지하며 살았다.

3.3. 왕비


1901년 시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이 사망하여 남편 앨버트 왕세자가 왕위에 즉위함에 따라, 알렉산드라도 왕비가 되었다. 본래 대관식이 1902년 6월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에드워드 7세가 갑자기 아픈 바람에[5] 8월에 거행하였다. 이때 남편과의 관계가 많이 나빠서였는지, 남편이 정부와 뜰을 산책하고 있을 때 '''"돼지 한 쌍이 뜰을 산책하고 있다."'''고 경멸조로 말했을 정도다.
그러던 1906년 아버지 크리스티안 9세가 사망하였고, 1910년 남동생 요르요스 1세를 만나기 위해 그리스 왕국을 방문하던 중 남편 에드워드 7세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렉산드라는 에드워드 7세가 사망하기 하루 전에 영국에 도착하였고, 남편이 사망한 후 "돌이 된 듯 울 수도 없었다."라고 말하였다.

3.4. 왕대비


차남 조지 5세가 즉위한 후 왕대비가 되었다. 선왕과 왕대비가 대관식에 참석하면 안 된다는 관례에 따라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거처도 버킹엄 궁전에서 말보로 하우스로 옮겼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조카 니콜라이 2세 일가가 전원 총살당하였다. 1919년 여동생 마리아는 언니의 설득으로 딸들과 함께 영국에 망명하여 알렉산드라와 같이 지내곤 하였지만 곧 덴마크로 돌아가 남은 여생을 보냈다.[6][7]
[image]
말년의 알렉산드라
왕대비로 지낼때 아들 조지 5세와의 관계가 각별해서 알렉산드라의 말년은 대체로 평안하였으나 1920년부터는 건강이 악화되어 각종 질병에 시달렸는데 귀가 들리지 않아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졌고 눈의 혈관이 터져 시력을 점점 잃어갔으며 치매까지 와서 기억마저 점점 흐릿해졌다. 결국 1925년 11월 20일, 80세의 나이에 요양을 하던 노퍽의 생드링엄 하우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사후 장례식이 치루어졌고 유해는 세인트 조지 예배당의 남편 옆에 안장되었다.

4. 가족관계



4.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
(Princess Alexandra
of Denmark)

크리스티안 9세
(Christian IX)
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공작 빌럼
(William,
Duke of Holstein-Sonderburg-Glücksburg)

홀슈타인-존더부르크-베크 공작 프레더릭
(Frederick,
Duke of Holstein-Sonderburg-Beck)

쉴리벤 여백작 프리데리케
(Countess Friederike of Schlieben)
헤센-카셀의 루이제
(Princess Louise
of Hesse-Kassel)

헤센-카셀의 샤를
(Prince Charles of Hesse-Kassel)
덴마크의 루이제 공주
(Princess Louise of Denmark)[8]
헤센-카셀의 루이세
(Princess Louise of Hesse-Kassel)
헤센-카셀의 빌럼
(Prince William of Hesse-Kassel)
헤센-카셀의 프레더릭
(Prince Frederick of Hesse-Kassel)[9]
나사우-우징엔의 카롤리네
(Princess Caroline of Nassau-Usingen)
덴마크의 샤를로트 공주
(Princess Charlotte of Denmark)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왕자
(Frederick,
Hereditary Prince of Denmark)
[10]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공녀 조피
(Princess Sophia
of Mecklenburg-Schwerin)


4.2. 자녀


[image]
남편 에드워드 7세 (1841년 11월 9일 ~ 1910년 5월 6일)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자녀
1남
클래런스 공작
앨버트 빅터 왕자

(Prince Albert Victor, Duke of Clarence)
1864년 1월 8일
1892년 1월 14일

2남
조지 5세
(George V)
1865년 6월 3일
1936년 1월 20일
테크의 메리
슬하 5남 1녀[11]
1녀
프린세스 로열 루이즈
(Louise, Princess Royal)
1867년 2월 20일
1931년 1월 4일
1대 파이프 공작
알렉산더 더프
슬하 1남 2녀
2녀
빅토리아 공주
(Princess Victoria)
1868년 7월 6일
1935년 12월 3일

3녀
노르웨이의 모드 왕비
(Maud, Queen of Norway)
1869년 11월 26일
1938년 11월 20일
노르웨이호콘 7세
슬하 1남[12]
3남
웨일즈의 공자
알렉산더 존
(Prince Alexander John of Wales)
1871년 4월 6일
1871년 4월 7일

빅토리아 여왕/가족관계 참조.
[1] 크리스티안 9세와 헤센-카셀의 루이세의 증조부가 프레데리크 5세였다.[2] 다만 아이들 6명 모두를 미숙아로 출산한 것을 보면 시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이 출산하는 것을 못 보게 하려고 일부러 날짜를 속였다는 이야기가 있다.[3] 아버지 앨버트 공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병이다.[4] 카밀라 파커 보울스의 증조할머니이다. [5] 담배를 워낙 좋아하는 골초이며 이때의 에드워드는 60세나 되어 당시로서는 노년에 가까운 나이였기에 건강이 나빳다.[6] 영국에서는 알렉산드라가 왕비이다 보니 자신이 등한시되는 기분이 들어 덴마크로 갔다고 한다.[7] 이 때 마리아는 조카인 조지 5세를 보고서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고 착각했다는 웃지 못할 일화가 있다.(...) 두 사람이 워낙에 쌍둥이처럼 닮았다보니 벌어진 웃지 못할 일화.[8] 프레데리크 5세의 3녀이자 조지 2세의 손녀이다.[9] 조지 2세의 손자이다.[10] 프레데리크 5세의 3남이다.[11] 에드워드 8세, 조지 6세[12] 올라프 5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