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의 복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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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ffffff> '''언어별 명칭'''
<colbgcolor=#808080><colcolor=#ffffff> '''그리스어'''
κατὰ Μᾶρκον εὐαγγέλιον
'''라틴어'''
Evangelium secundum Marcum
'''영어'''
Gospel of Mark
'''한자'''
'''천주교''': 마르코의 福音書
'''개신교''': 마가福音
'''중국어'''
'''간체자''': 马尔谷福音
'''정체자''': 馬爾谷福音
'''일본어'''
マルコによる福音書 (マルコによるふくいんしょ)
<color=#ffffff> '''기본 정보'''
'''저자'''
복음사가 마르코스
'''기록 연대'''
A.D. 65~80년경
'''분량'''
16장
'''주요인물'''
예수
1. 개요
2. 마르코가 필자인가?
3. 구성과 형성
4. 집필 이유
5. 주요 내용
6. 특징
7. 16장의 짧은 마무리 논란
8. 마르코의 비밀복음
8.1. 서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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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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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

마르코의 복음서 1장 1절 (공동번역성서)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마르코의 복음서 10장 45절 (공동번역성서)

사도 바오로의 선교 여행에 동행하며 통역했던 마르코(Μᾶρκος, 마르코스)가 기록했다고 전해지는 복음서. 그리스도교 신약 성경복음서 중 2번째 책이며, 3권의 공관 복음서 중 1권이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마르코 복음서’라고 부르며, 한국의 개신교에서는 ’마가복음’이라고 부른다. 다만 개신교에서 1음절로 출약할때 ''와 구별하기 위해 이쪽은 '막'으로 줄여쓴다.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교회 전승을 따라 사도 베드로의 제자인 마르코 요한이 성령의 인도에 따라 저술한 것으로 보며, 베드로의 첫째 편지(베드로전서) 5장 13절에서 로마(바빌론)에 있는 베드로와 마르코 사이의 동반자 관계, AD 140년경 파피아스의 증언 등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1] [2] 베드로전서를 베드로의 친서로 보는 교회 전승과는 달리, 성서비평학적으로는 베드로1서를 서기 70-92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베드로의 친서가 아니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근거로 제시하지 않는다.
천주교 예비신자 교리 과정 중에 성경 필사라는 과제가 있는데, 4대 복음서 중 마르코 복음서의 필사는 필수적인 것으로 지정되어 있다.
복음서 및 복음사가의 상징은 날개 달린 사자이다. 용기와 예수의 부활, 왕으로서의 예수를 상징한다고 한다.

2. 마르코가 필자인가?


본래 4복음서를 집필한 필자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작품만 내놓았다. 복음서 필자들은 본인들의 이름보다는 복음서 자체에 중점을 두었다고 여겨진다. 그렇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복음서 간의 구분을 위하여 필자들을 거론하게 된다. 마르코 복음의 명명은 히에라폴리스 주교인 파피아스(빠삐아스)가 요한 원로로부터 들은 증언이 토대가 된다. 요한 원로는 주교에게 마르코가 베드로의 통역이었으며,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해 마르코에게 가르쳤으며 마르코가 이를 충실히 기록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파피아스와 신약성경을 근거로 하자면, 마르코는 바울로의 협력자였으며, 베드로의 통역이었다.
4복음서는 한 두루마리(혹은 코덱스)에 같이 들어있어서 원래는 각 복음서에 이름이 없었지만, 초대 교회의 교부들의 전승에 따라 마르코 복음은 사도 베드로바울로의 협력자인 마르코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또한, 마르코 자체가 당시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마르코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이거나, 마르코가 세운 교회에서 작성하여 마르코의 이름을 붙였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마르코 복음을 집필한 필자가 누구냐는 것보다,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복음서도 마찬가지지만, 필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복음서의 집필 방향이 다르며, 심지어 공관 복음서 내부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마르코 복음의 필자는 히브리어아람어, 유대인의 풍습을 아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필자는 유대계 그리스도인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집필 언어는 헬라어인데다가 히브리어나 아람어가 등장할 경우 헬라어로 번역해 놓기도 했다.[3] 따라서 마르코 복음의 필자는 그리스어에 능통한 해외 유대계 그리스도인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마르코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은 아니지만, 70인 전도 대원 중 한 명이었고 베드로의 통역자로, 두 사도의 관계는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마르코의 집은 주로 제자들의 집회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최후의 만찬도 이루어졌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직후 서기 68년 5월 8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이교도들의 박해로 인해 순교했다.

3. 구성과 형성


4복음서 중 2번째에 위치하고 있지만, 마르코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가 내용상 겹치는 점이 많다는 점 등에 의해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쓰여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3장에 성전 파괴 예언이 들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유다 독립전쟁(서기 66-70년)이 끝난 직후 쓰여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70년대에 유다 독립전쟁에서 유대인들이 패하고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4]
한편 유다 독립전쟁이 일어나기 전이나 전쟁이 완전히 끝나기 전부터 마르코 복음서의 전승 원형이 이미 집필되었다는 설도 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고유의 신앙에 근거한 종말론과 메시아사상이 횡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경한 주전론자들이었던 열심당원을 중심으로 신이 유대 민족을 구원해줄 것이라는 근거없는 낙관론이 팽배해 있었고 결국 이런 광신적인 믿음이 객관적으로는 절망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전쟁을 일으키는원동력이 되었는데, 이 열심당원들과 생각을 달리 했던 초대 기독교 공동체는 당연히 다른 판단을 내렸다.
또한 마르코 복음 본문에는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1차 유대 전쟁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많이 파손되고 약탈을 당했지만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사실과는 다소 어긋나 있다.[5] 또 초기 기독교에서는 자기네 첫 세대가 다 죽기도 전에 예수가 재림하는 종말이 닥칠거라는 시한부 종말론이 흔했다는 점도 70년 이전 집필설에 심증을 더한다.[6]
그리고 유대교 측의 기록이나 성경, 역사가들의 당시 기록을 보면 독립 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 정도로만 여겨졌지만 독립 전쟁 이후로 완전히 결별했다는걸 확인할 수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독립 전쟁에 협조하지 않고 탈출했기 때문. 초기 기독교인들이 마르코 복음서 본문의 예수의 경고를 따라 독립 전쟁에 동참하지 않고 탈출해버렸다고 가정하면 이러한 역사적 정황과 아주 잘 일치한다.
종합하자면 70년 이전 집필설은 "예수가 초자연적인 계시를 받아 자기 사후 40여년 후에 일어날 전쟁과 그 결과를 예지했으며 마르코 복음은 그걸 그대로 기록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가 복음서 내의 예수의 입을 빌려 당시에 곧 일어나려는 전쟁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Q 문서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부 학자들은 마태오 복음서를 보고 그리스 서화체로 요약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르코 복음과 마태오 복음 간의 유대교를 바라보는 관점차를 볼 때 그럴 가능성은 낮다.

4. 집필 이유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볼 때, 단순히 교회에서 내려오는 여러 전승을 한대 모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집필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초기 교회에서 예수의 삶보다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만을 강조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는데, 그러한 신자들에게 예수의 삶을 제시함으로써 예수의 삶을 본받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우고자 하였다.
특히 마르코 복음은 로마 신자, 정확히는 비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마르코 복음에는 족보나 구약의 인용이 적다. 또한 앞서 잠시 설명했듯이 마르코 복음은 헬라어로 집필되었고, 히브리어아람어를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그리스어 설명을 덧붙였다. 이방인(비유대인) 신자의 본보기로 헬라인 시로페니키아 족속 여자(7장 24~30절)나 로마 백인대장(15장 39절)[7]을 언급한 점도 눈에 띈다.
결국 마르코 복음은 고난에 처했거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한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기 위해 기록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5. 주요 내용


  • 신의 아들의 출현(1장 1~13절)
신의 아들의 출현
신의 아들의 시험과 충성심
  • 신의 아들의 교훈(1장 14절~13장 37절)
신의 아들의 사역
  • 신의 아들의 인격(14장 1절~15장 47절)
신의 아들의 순종
  • 신의 아들의 승리(16장 1~20절)
신의 아들의 부활과 영광

6. 특징


일반적으로 4복음서 중 가장 먼저 쓰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여러 정황 상, 마태오 복음서루카 복음서의 저자들이 마르코 복음서를 보고 참고해가면서 그들의 복음서를 작성했다고 생각하고 있다.[8] 나머지 한 복음서인 요한 복음서의 집필 연도를 다른 복음서들보다 수십년(약 30년) 늦은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요한 복음서의 저자도 마르코 복음서의 내용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공관 복음서(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루카 복음서) 중 가장 짧으며 가장 읽기 쉬운 문체로 작성되었다.
예수의 유년 시절 이야기는 없다. 곧바로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으로 시작한다. 이 이유에 대해서는, 시골(나자렛)의 한 청년이었을 예수의 어린 시절 행적까지 자료를 수집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래서 그 시작은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는 것부터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하느님을 부르짖는 내용이 나온다. 학자들은 이를 보고, 마르코 공동체가 박해받는 순교자 공동체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장 최초로 형성된 복음서로, 처음에는 인간으로서 예수의 모습을 부각시키다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성자 하느님'으로서 예수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구도를 취하고 있다.[9] 때문에 예수의 친척들이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도 여과없이 담고 있고, 죽음을 앞두고 번민하고 두려워하는 모습도 복음서 중에서 가장 생생하게 담고 있다.
반면 마지막에는 "주님이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다 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셨다."(16장 19절)라고 서술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임을 부각시킨다. 특히 이러한 구도는 요한 복음서가 처음부터 대놓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함께 있던 로고스(말씀)이며, 또한 곧 하느님인 로고스(말씀)'라고 적었던 것과 대비된다.
구마 기적(귀신 들린 자를 고치는 기적)이 가장 먼저 나오는 기적이다.
제자들의 몰이해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다.
성서비평학에 의하면, 나머지 두 공관 복음서인 마태오 복음서루카 복음서가 마르코 복음을 참조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성경 공부를 시작할 때에 대체로 마르코 복음과 요한복음을 먼저 공부하게 된다. 가령 가톨릭청년성서모임의 공부 순서는 기본적으로 창세기, 탈출기 다음이 마르코 복음과 요한복음이다.
예수최후의 만찬 후 대제사장 무리에게 체포될 때까지의 장면을 묘사한 부분 중, "어떤 젊은이가 알몸에 아마포만 두른 채 그분(예수)을 따라갔다. 사람들이 그를 붙잡자, 그는 아마포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14:51-52)라는, 다른 복음서에는 언급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나머지 부분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 나온다. 너무나 뜬금없는 내용이다보니 해석이 아주 많이 갈리는 단락이다. 마르코 복음의 저자 마르코 본인이라는 해석, 결말부에서 예수의 부활을 전하는 청년이라는 해석, 예수를 버리고 도망치는 제자들의 수치스러움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해석 등. 그 외엔 실존인물인 예수의 일화를 취재한 그대로 기록하다보니 실린, 종교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 사건이라는 해석도 있다.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박히면서 하느님께 목숨을 구걸하던 예수의 인간적 모습 역시 마가복음에 기록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후대의 해석가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복음서의 담대한 서술은 복음서가 역사성이 높은 사료라는 증거로 해석된다.

7. 16장의 짧은 마무리 논란


마르코 복음 마지막 부분의 16장 9절부터 20절까지의 내용을 '긴 끝맺음'이라 부르는데, 대부분의 사본에는 존재하는 부분이나 일부 사본[10]에는 이 부분이 잘려 있다. 과연 이 부분이 있는 것이 원문에 더 가까운지, 없는 것이 더 가까운지에 대해 큰 논쟁이 있어 왔다. 마르코 복음 16장 9~20절 이 부분은 성경이 아니다? #2
일단 마르코 복음 16장 1절부터 8절까지 이야기는 이렇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몇 명의 여인들이 무덤을 찾아갔다가, 천사의 "예수님은 여기 안 계시니까 갈릴래아로 가서 베드로에게 부활소식을 전해라"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여자들은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 무덤 밖으로 나와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너무도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였다."(16장 8절). 예수가 직접 마리아 막달레나와 사도들에게 나타나는 9절 이후가 없다면 마르코 복음은 그냥 여자들이 전하라는 말은 안 전하고 무서워하며 도망가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이렇게 마지막 열두 절이 없는 경우, 마르코 복음은 무척 '''황당하게 끝나게 된다'''. 물론 이 일화가 쓰여있다는 것 자체가 결국 여인들이 누군가에게 말해주었다는 의미가 되겠지만, 일단 내용상으로는 여인들이 사도들에게 부활 소식을 알리지 않은 채이고, 결국 사도들이 부활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이상한 결말이 되는 것이다. 분명 여인들의 뒷 행동 및 부활한 예수를 접한 얘기들이 따라 붙어야 기독교가 전파된 원인 및 예수를 믿는데 대한 복음의 완성이 될텐데, 이것이 없으니 이상할 수 밖에.
상당수의 성서 학자들은 '''이 마지막 구절들은 후대에 가필한 부분으로 본다'''. 현전하는 신뢰성 높은 고대 사본들에는 이 단락이 없다. 또한 이 단락에 쓰인 문체는 마르코 복음서의 나머지 부분과 확연히 다르고, 연결도 부자연스럽다. 예를 들어 16장 1절에 이미 마리아 막달레나 이야기가 나오는데 9절에서 다시 그녀에 대해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마리아 막달레나'라고 하면서 그녀를 처음 소개하는 듯한 설명을 하고 있다. 또 마르코 복음서 16장 8절 이전의 내용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단어와 문구들이 이 단락에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강력한 증거가 여럿 있기 때문에 많은 수의 본문비평학자들은 이 단락이 가필된 부분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괄호로 묶어 놓거나, '''각주로 일부 고대 사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붙여놓고 있다.[11]
그렇다고 (실제로 가필이 맞다면) 추가된 시기가 그렇게 시대적으로 늦다고 보긴는 또 어렵다. 2세기 초에 활동한 교부들이 쓴 그들의 저서에 마르코 복음서 16:9-20 을 인용한 부분이 상당수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는 문제의 바티칸 사본이나 시나이 사본이 작성되었다고 알려진 4세기 경 보다 훨씬 이전의 기록들이며, 두 사본보다 이전의, 혹은 동 시기 사본들에서도 마르코 복음서 16:9-20 의 내용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또한 현대 신약성경의 원형이 되었다고 알려진 알렉산드리아 사본엔 당연히 16:9-20 의 내용들이 발견되는데 이 사본은 두 사본보다 50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또한 신학적인 권위는 알렉산드리아 사본이 바티칸 사본이나 시나이 사본보다 더 높다.
그렇다면 왜 일부에서는 16:9-20 이 없는가에 대한 답으로, 초기 교부사회에서도 해당부분에 대한 논란이 있었음이 제시된다. 사실 마르코 복음서 16장 17,18절 은 믿는자들은 방언을 외치고 독을 먹어도 해를 입지 않는다는 등 초기 교부들 사이에서도 여러 논란이 되었던 부분이다. 때문에 해당부분은 부활 이후의 예수가 행한 행적을 적은 구절이기에, '우리가 아는 그리스도는 그런 말을 하실 리 없으며, 부활 이후의 행적은 결국 저자 임의로 적은거'라서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여러 교단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을게 뻔했고 어느샌가 이 부분을 무시하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이단 소리가 나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것.
이후 집필된 바티칸 사본에서도, 유독 마르코 복음서 16:8 장의 맺음 이후로 여백이 예상외로 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12], 이후의 글자크기를 대조한 연구에 따르면 16:9-20 이 들어가면 딱 맞을 여백 사이즈임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이는 이 논쟁이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음을 유추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비평학자인 브루스 메츠거 교수(Bruce Metzger)에 따르면[13], 마르코의 복음서 마지막 부분의 사본 종류엔 네 가지가 있다.
1. 16:9-20 부분이 없는 사본. 흔히 '짧은맺음'(Shorter Ending)으로 불린다.
2. 16:9-20이 있는 사본. '긴맺음'(Longer Ending)으로 불림.
3. 16:9-20이 있으면서 (현) 8,9절 사이에 딴 절이 포함된 것.
4. 16:9-20이 있으면서 (현) 14,15절 사이에 딴 절이 포함된 것.
1번을 뒷받침하는 사본들은 바티칸 사본 외에도 시나이-쉬리아 사본, 약 100개의 아르메니아 사본들, 9-10세기의 그루지야 사본들 중 가장 오랜 2개 등이 있다.
2~4번의 9-20절을 포함시킨 '긴맺음' 사본들은 현대 신약성경의 원형이라 볼 수 있는 알렉산드리아 사본(4~5세기 경) 외에도 매우 많다[14]. 그리스어 사본들의 99%, 바티칸 사본과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고트어 사본, 4번째로 중요한 초기 대문자 사본인 에프라임사본(5세기), 워싱턴사본, 베자-케임브리지 사본(6세기), 파리사본, 뮌헨사본, 갈렌(=갈루스)사본, 티플리스사본(그루지아), 레닌그라드사본 등 주요 사본들외에도 부분적으로 다른 절을 더 추가한 사본들도 상당수 된다. 9,10세기의 4개 주요사본들, '패밀리 13'의 10여 소문자 사본들도 그렇다. 비율로 치면 2~4번인 경우가 1번인 경우보다 훨씬 많다. 이는 2~4번에서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내용들은 이 사본들이 작성되는 시기보다 더 오래전부터 전해져오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권위를 인정받는 다른 한 사본은 8절 이후에 긴 끝맺음 대신 "짧은 끝맺음"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짧은 끝맺음은 '그 여자들은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에게 가서 그들이 들은 모든 것을 간추려 이야기해 주었다. 그 뒤 예수께서는 친히 제자들을 해가 뜨는 곳에서 해가 지는 곳까지 보내시어 영원한 구원을 선포하는 거룩한 불멸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아멘'[15]이다.
실제로 처음 작성본이 8절에서 서술을 마칠 가능성도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갑자기 중단되는 느낌으로 복음서를 마쳤다는데 이상함을 느낀 신학계에서는 여러 견해를 제시한다.
1.마르코가 일부러 8절에서 끝냈고, 후대의 사람이 이상하다고 여겨서 가필했다.[16]
2.마르코가 8절에서 끝내려고 하지 않았지만 다 마치지 못하고 죽었고[17] 뒤의 사람이 완성했기 때문에 문체가 다르다.
3.원래의 결말이 있었는데, 탄압 및 전승과정 중 유실되었다.
대부분의 후대 가필설을 주장하는 성서학자들은 1보다는 2의 가능성을 높게 본다[18]. 마르코 복음서는 16장 이전에 자신이 붙잡혀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할 것이라는 생전 예수의 말이 지속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복음서 저자가 예수의 부활을 믿고 있었음을 반증하며, 그렇기에 저자가 쓰는 글 또한 그러한 예수의 행적으로 끝을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19]. 위의 3가지 가능성과는 별개로 8절 이후 짧은 끝맺음을 남긴 버전이 앞부분에서 쓰인 저자의 문체와 많이 닮아서 이게 진짜가 아닐까 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8. 마르코의 비밀복음


1958년 콜롬비아 대학의 교수인 모튼 스미스(Morton Smith)는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사막에 위치한 수도원에서 사본을 하나 발견했다. 이는 기원후 2세기 말에서 3세기 초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가 테오도루스(Theodorus)라는 알려지지 않은 남성에게 쓴 편지 사본이였다.
사본이 알려진 후 위조 논란이 있었고, 아직도 논란이 해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 대부분의 클레멘트 학자들은 모튼 스미스가 위작을 만들어 낼 능력이 없다는 점, 또 외부의 도움을 받더라도 클레멘트와 마르코를 동시에 완벽히 흉내 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이 구절을 진본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성서학자들은 마르코 복음보다 더 마르코의 특징이 많이 발견된다는 점(?)또 모튼 스미스가 동성애 취향을 가지고 있었고, 사본 분실로 인해 연대 측정을 받지 못 했다는 점 때문에 진위 여부에 대한 의견이 분열되어 있다.
만약 이 서한이 진실하다면 아마포를 두른채 예수와 함께 밤을 보낸 젊은이는 마르코 복음 14장 51절에서 언급 된 청년으로 보인다.

몸에 고운 삼베만을 두른 젊은이가 예수를 따라가다가 사람들에게 붙들리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삼베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

이 구절은 마르코 복음의 어느 구절과도 상호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현존하는 마르코 복음만을 가지고는 납득하기 어렵다. 전통적인 해석은 이 청년이 마르코 복음의 저자인 마르코 자신이라는 거지만, 마르코 복음의 저자는 마르코도 아닐 뿐더러 예수의 목격자도 아니기 때문에 분명히 틀렸다.[20]비밀복음은 이 의아한 구절을 설명해준다. 또 비밀복음의 청년 이야기는 비록 언어적으로 밀접한 관계는 없지만 요한복음의 나사로 이야기와 유사하다.

예수께서 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 속에 있은 지가 벌써 나흘이나 되었다. 예수 께서 “돌을 옮겨 놓아라” 하시니,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다가 말하였다. “주님,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예수 께서 마르다 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큰 소리로 “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고 외치시니, 죽었던 사람이 나왔다. 손발은 천으로 감겨 있고, 얼굴은 수건으로 싸매여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서, 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비밀복음의 청년은 죽었다가 부활한 후 예수의 사랑을 받았다. 나사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같은 전승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8.1. 서신 전문


"당신이 카르포크라테스의 말도 안 되는 가르침을 잠잠하게 만든 것은 잘한 일입니다. 이들은 계명의 좁은 길에서 벗어나 육체적이고 쾌락적인 죄악의 심연에 빠져 방황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배척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진실한 것을 어느 정도 말한다고 해도,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들에게 동조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실하다고 해서 모두 진리가 아니며, 인간적 관점에서 진실하다고 보이는 진리라 해도 신앙에 따른 진실한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이 거룩한 영감을 받은 마르코 복음에 대해서 계속해서 주장하는 내용은 그 일부가 위조이고, 진실한 요소를 약간 포함하고 있다고 해도 진실하게 전달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진실한 내용이 꾸며낸 것과 섞여서 위조가 되면 오래된 속담처럼 소금이 제 맛을 잃기 때문입니다. 마르코는 베드로가 로마에 머물고 있는 동안 주님의 행적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 행적을 전부 밝힌 것도 아니며, 비밀의 행적들을 암시하지도 않았고 다만 교리를 배우는 사람들의 신앙을 두텁게 하는데 가장 유익하다고 판단한 내용만 골라서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순교한 뒤, 마르코는 자기가 기록한 자료와 베드로의 자료를 함께 가지고 알렉산드리아로 왔습니다.
마르코는 지식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될만한 내용은 두 가지 자료를 뽑아 자기가 먼저 기록한 책에다가 추가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신앙이 더욱 깊어진 사람들이 사용하도록 좀더 영신적인 복음을 저술한 것입니다. 그리고 죽을 때에는 자기 저술을 알렉산드리아 교회에 맡겼습니다. 여기서는 지금도 그 책을 철저하게 보관하는 한편, 위대한 신비에 들어가는 사람에게만 읽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마들이 항상 인류의 파멸을 궁리하고 있기 때문에, 악마들의 가르침을 받고 그 속임수를 쓰는 카르포크라테스가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어떤 장로를 손아귀에 넣어서 비밀복음의 사본을 얻어 내었습니다. 카르포크라테스는 이 비밀복음을 자신의 독신적이고 쾌락주의적 교리에 따라 해석할 뿐 아니라, 심지어 흠 없고 거룩한 말씀들을 참으로 철면피한 거짓말들과 섞어 오염시켰습니다. 이런 혼합에서 카르포크라테스의 가르침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내가 이야기 했듯이 이 사람들에게 절대로 져서는 안됩니다. 또한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조된 내용을 들고 나올 때, 비밀복음이 마가의 저술이라고 수긍하지도 말고, 비밀복음 자체를 부정하는 맹세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실한 것들은 모든 사람에게 전부 말해주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뜻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솔로몬을 통해서 바보에게는 그 어리석음을 가지고 대답하라 라고 충고하며, 정신적으로 소경인 사람들에게는 진리의 빛을 숨겨야만 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제기한 여러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복음의 말씀 그 자체를 가지고 저 사람들의 위조를 반박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비밀복음에는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마르코 복음 10장 33절)로 시작되어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마르코 복음 10장 34절)로 끝나는 구절 이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베다니아에 이르니 동생이 잃은 여자가 예수에게 와서 엎드린 채 "다윗의 아들이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제자들이 그 여자를 책망하자 화가 난 예수는 그 여자와 함께 무덤이 있는 정원으로 향했다. 그러자 무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고 예수는 다가가서 무덤 입구의 돌을 옆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무덤안으로 들어가 젊은이를 들어서 일으키자 젊은이는 예수를 사랑하게 됐고 예수와 함께있고 싶다고 간청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젊은이의 집으로 들어갔는데, 젊은이의 집은 부자였다. 6일 후에 예수가 그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젊은이가 몸에 아마포를 두른 채 밤에 예수를 찾아가 함께 머물렀는데, 그때 예수가 그에게 하나님의 왕국의 신비를 가르쳤다. 예수는 거기서 떠나 요르단 저쪽으로 갔다.

이 뒤에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마르코 복음 10장 35절)구절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쓴 "벌거벗은 남자와 함께있는 남자"라는 구절은 없습니다. 또 비밀복음에는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마르코 복음 10장 46절)이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뒤따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예수가 사랑하는 젊은이의 누나와 그 어머니와 살로메가 있었는데, 예수는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당신이 말 한 다른 많은 것들은 위조된 것 같습니다. 이제 진정한 진리에 부합하는 설명은......(끝)"
[1] 『IVP 성경사전』(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마가(요한)'항목과 '마가복음' 항목 인용.[2] IVP 책의 경우 개신교 내에서 복음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개신교의 주류 성서학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개신교는 전승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있는데, 전승 운운하는 것은 우스운 말이다. 저 견해는 교파를 막론하고 성서비평 이전 시대의 교회가 견지한 입장일 뿐이다.[3] 몇 가지 예가 있으나 한 가지만 소개한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탈리다 쿰."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소녀야, 어서 일어나거라.'라는 뜻이다."(마르코 복음 5장 41절) [4] 난하주 5를 보라[5] 다만 유대 전쟁이 끝난 후에 집필된 것이 확실한 다른 세 복음서에서도 성전이 완전히 무너진다는 내용이 나온다. 마태오 복음서루카 복음서는 마르코 복음서를 많이 참고했기 때문에 마르코 복음서의 본문을 그대로 인용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마르코 복음과 무관한 요한복음에서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는 것은 설명하기 어렵다. 한 가지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성전파괴 예언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예언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 말씀을 하셨을 당시에는 제자들과 말세에 관하여 예수의 재림의 시기에 관하여 어떤 징조가 있을 지 대화하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따라서 성전파괴 예언은 주후70년에 있었던 유대전쟁을 예언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재림 직전에 일어날 징조를 예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6] 앞에 난하주에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성전파괴 예언은 이 세상의 끝날에 관한 한 징조에 대한 예언이었기 때문에, 성전파괴 예언이 주후 70년에 있었던 유대전쟁을 가르킨다고 많이 믿고 있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왜 시한부 종말론이 흔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7] 예수를 지켜보고 서 있던 백인대장이 예수께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숨을 거두시는 광경을 보고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하고 말하였다.[8] 집필이 마무리된 마르코 복음서를 보았거나 최소한 마르코 복음서의 원형에 해당하는 정리된 문서를 참고했음은 확실시된다. 마르코 복음서와 함께 흔히 'Q 문서'라 불리는 '예수의 어록집'을 같이 참고한 것인지는 이견이 있다.[9] 예수가 기적을 일으키는 것 자체는 초반부터 대놓고 나오지만, 기적의 경우 신성 같은 건 없는 구약의 예언자들도 일으키곤 하던 일이었다.[10] 바티칸 사본, 시나이 사본 : 둘 다 4세기 무렵 작성 추정. 성서비평학적으로 초기에 작성된 사본일수록 더 신뢰할 만한데, 때문에 바트 어만 등의 성서학자들은 16장 8절만 있는 마르코 복음을 원성경이라고 본다[11] 물론 일부사본에서 8절로 끝나있기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9~20절과 비슷한 문체는 이미 15장 뒷부분 부터 나타나고 있다라고 반박을 하는 쪽도 있다.[12] 바티칸 사본의 유일한 여백이 이 부분이다.[13] 20세기의 유명 신약학자들 중 한 명. 다년간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14] 이중에서 대다수는 2번을 따른다[15] 공동번역 성서의 번역. 2005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낸 성경에서는 "그 여자들은 자기들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을 베드로와 그 동료들에게 간추려서 이야기해 주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도 친히 그들을 통하여 동쪽에서 서쪽에 이르기까지, 영원한 구원을 선포하는 거룩한 불멸의 말씀이 두루 퍼져나가게 하셨다. 아멘"으로 번역한다. 개역성경이나 일부 천주교 성경에는 "짧은 끝맺음"의 번역이 실려있지 않다.[16] 성서해석학 관점에서 해석한 도올 김용옥의 주장은, 실제 역사적 사실인 예수의 죽음과 죽음 이후의 처리를 취재한 뒤 저자인 마르코가 그리스 비극의 형태를 따서 드라이하지만 깔끔하게 마무리 한 것으로 추정한다.[17] 초기 교회는 탄압이 심해서 저자가 모종의 이유로 죽었을 가능성, 물론 병사했을 수도 있다.[18] 위의 '마르코 복음 16장 9~20절 이 부분은 성경이 아니다?' 링크 참고, 위에서 언급한 신약학자인 메츠거도 미완설을 지지하되 16:9-20의 성서로써의 진정성은 부정하는 입장이다. 또한 앞서 언급된 김용옥은 그다지 성서학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은 아니다.[19] 무엇보다도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의 행적과 어록, 기적들을 중점적으로 쓴 전도서이지 무미건조한 역사서가 아니다. 비극이나 열린결말을 추구하는 문학작품은 더더욱 아니다.[20] 신학적으로는 예수에 대한 우리 모두의 죄책감을 나타내는 구절이라고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