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혐오
1. 개요
미샌드리(Misandry)는 남성을 폄하하여 여성보다 강한 차별과 배격을 노골적으로 허용하며, 남성에 대한 미지 혹은 혐오 및 불쾌감 등의 사유를 기반으로 하여 일방적으로 타자화하는 사상 및 행위이다. 이 문서에서는 자국이성혐오증과는 분리하여 남성혐오(Misandry)에 대해서 설명한다.
남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여성 버전으로 여성혐오(misogyny)가 있다. misogyny와 마찬가지로 '혐오'라는 단어로 번역하기에는 의미의 폭이 넓다. 성적 대상화(혹은 성적 객체화)[1] 처럼 은연 중의 폭력이나, 남성 멸시와 폭언 등의 직접적인 폭력은 물론이고, 남성의 희생과 어려움을 당연시하는 가부장제, 마초주의와 같은 '남자다움'을 재생산 및 강요하는 성적 역할 고정화 등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 여성이 남성을 자신과 마찬가지인 인간으로 보지 않고 타자화 및 배격[2] 하는 등 포함하는 게 많다. 미소지니와 마찬가지로 미산드리를 혐오라고 번역한 것 역시 똑같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지만, 남성혐오에 대한 금지를 주장하는 측은 19세기 첫 출현했을 때의 페미니즘 수준으로 박해받는 판이라 화두 자체에 오르지를 못할 뿐이다.
당연하지만 남성이 남성에 대한 혐오와 반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엔 자성혐오가 되지만 게이나 트랜스젠더(여자이면서 남성이 되는 수술을 받은 경우)의 남성혐오는 다소 다른 관점에서 봐야 된다.[3] 여성우월주의 또는 래디컬 페미니즘과 같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더도 덜도 아니라 또 다른 차별이라고 부를 수 있다.
대강보자면 '''남성혐오'''와 남성공포증이 유사하다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이들은 명백히 다르다.''' '''남성혐오'''는 딱히 남자란 인종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게 아닌 남성이란 성별에 혐오감을 나타내는 것이고, 남성공포증은 반대로 남성이란 인종을 혐오하지 못할 정도로 두려워하는 경우다. 전자가 사회교류를 통해 주로 굳어지는 사고방식이라면, 후자는 강간을 당하거나 집단폭력을 당한 결과 심신미약자가 얻는 정신질환중의 하나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남성혐오는 사회적 약자, 정신적 약자가 아닐 수 있지만 남성공포증은 확실하게 사회적 약자, 정신적 약자라는 것. 단, 이후 본인의 사고방식에 따라 남성혐오자가 동시에 남성공포증을 가지거나 남성공포증을 가진 환자가 남성혐오자가 되기도 한다.[4]
2. 원인
많은 xx혐오의 유형과 비슷하게 남성혐오 또한 일부 남성의 잘못된 행동이나 만행을 남성 전체가 그렇다며 잘못된 일반화를 하여 그릇된 인식을 가지는 것이 남성혐오를 강화하고 퍼트리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어느 남성에게 성폭행, 성추행, '''강간'''등을 당한 경우 극도의 의심으로 이런 경우로 뒤틀리기도 하며 남초사이트의 일부 여성혐오적 글이나 편집된 사진 등을 보고 그것을 여초 사이트에 옮겨 남성혐오를 유포하기도 하며 여성을 무조건적이고 압도적인 사회적 약자라며 잘못된 일반화로 남성측 사회적 약자의 의견은 무시한 채로 주장하는 것 또한 남성혐오를 발전시키는 요인 중에 하나다. 애초에 성별이 다를 뿐 혐오라는 시점에서 거의 일맥상통하기에 남성혐오나 여성혐오나 남과 여의 단어만 다를 뿐 과정이나 결과는 대부분 동일하다.
한편으로 어떤 잘못된 행위를 비판하는 것에 여성이 관련되면 무조건 여성혐오로 인식하고 비판자를 여성혐오자로 몰면서 남성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만물여혐설로도 볼 수 있으며,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에서 일부 진보계와 일부 여성들이 이와 같은 그릇된 형태를 보여줬다. 기사에서는 다수의 여성들도 이 사건을 여성혐오로 보고 있지 않음에도 일부의 진보계와 여성들이 여성혐오로 몰고 가서 남녀 갈등 문제로 확장시키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2016년 7월 25일 (다음-미디어오늘) 메갈리안 해고 논란 이건 여성혐오의 문제가 아닙니다-선택적 정의와 진보의 가치… 극단주의자들이 우리의 신념을 대표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3. 한국 사회의 남성혐오 경향
레디컬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미소지니에만 한정된 문제 제기와 공격으로 여성의 성역할 구분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인식이 매우 좋지 못하다. 그에 비해서 우리 사회가 미샌드리의 경우에는 성역할의 폐지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라는 사람들의 입에서조차 잘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문제의식이 미미하다. 제도적으로 행해지고 개인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남성징병제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제기하거나 여성징병제를 주장하기만 해도 여성혐오자나 남성우월주의자, 꼴마초 같은 비난이 다수의 여론을 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5]
사회 전반적으로 남성에게는 가부장제의 역할인 집과 자산 마련, 가족 생계 부양이 강요되고 따라서 안정된 직장을 선호한다. 이는 1997년의 imf 구제금융으로 더욱 심화되었다. 또한 자녀가 외동 아니면 2명이라서 자기 자녀를 고생시키는 것에 극도로 민감해진데다가, 외동딸이거나 딸만 있는 가정의 경우 그런 성향이 심하다. 집과 자산을 마련하지 못했거나, 가족 생계를 부양할 능력이 안 되는 남성에 대해 자기 역할을 못하는 남자 정도로 취급하고 멸시하거나, 어린애 취급하거나, 피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주로 대도시나 신도시보다는 시골과 저소득층, 저학력자 밀집지역에서 심한 편이다.
페미니스트 및 여성계에서는 한국 사회의 남성혐오에 대해 '남성혐오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주장하거나, 혹은 남성혐오를 인정하면서도 한국사회의 만연한 여성혐오에 대한 되갚기이거나, 그것이 변질되어 혐오표현만 남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 이는 정확하지 못한 주장이다.
1980년대~1990년대[6] 엔 말그대로 가부장제가 강성했던 시기였기에 여성혐오가 확실히 존재했었고, 남성으로서의 특혜도 있었다.(정년도 달랐고, 임금격차는 더 나던 시대였다. 추가로, 남성만 대학에 보내려는 것도 덤) 이로 인하여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밑의 남성에 대한 비하,혐오 표현도 어느정도 있었고 남성으로써의 의무도 막강했지만, 그냥 이 당시엔 (특혜를 받던) 남성이 견뎌야 될 작은 부스럼, 차별비용등으로 여겨졌다.
그 이후 페미니즘 운동으로 인하여 여성인권신장이 어느정도 이뤄졌기에 2000년 초반~2010년 초반 이전의 대국 사회는 여성에 대한 혐오표현은 문제제기가 이루어진 경우가 몇 번 있으나, 남성에 대한 혐오,비하표현은 이전처럼 그냥 차별비용 혹은 기득권이 받아야 될 반격으로 취급받을 뿐이였다.
또한 IMF등 경제불황으로 너나네나 못살게 된 상황에서 남성성을 강요하는 표현 혹은 가부장이 되라는 강요는 아직도 '''남성으로써 견뎌야 되는 것'''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말 그대로 '''젊은 남성들에게 남성성은 그대로 강요하면서 외부에선 가부장제를 없애자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대표적으로 여성인권단체, 일부 여성들의 군 복무 및 군 장병 비하발언(군삼녀 등), 주거비용 책임 분할에 있어서의 남성에게 부여되는 과다한 의무[7] , 속칭 루저녀 사태로 비견되는 남성의 외모에 대한 품평[8] 등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남성혐오 표현들이 대한민국 사회, 인터넷 및 오프라인 등지에서 여과없이 투과되었으며,[9] 디시인사이드,일베저장소를 기점으로 삼일한,김치녀 등의 여성혐오성 단어들이 퍼져나가기 시작한 기점이 2000년대 중후반인 것이고, 이후 메갈리아의 탄생이 2015년임을 감안하면, '''젊은 세대 한정으론 남녀가 사실상 서로 주고 받은 것이다.''' 젊은 여성이야 4050대 이상 남성들에게 차별대우를 받은 게 사실이니까[10] 그걸 되받아치기 위해 자기 말마따나 남성혐오를 한다지만, 젊은 남성으로썬 4050대 이상 남성들이 저지른 여성차별의 짐과 댓가를 자신들이 치러야 하는 어이가 없는 상황이 벌어졌기에 기성세대인 586 정치인에 대한 반감까지 겹쳐져서 안티페미니즘으로 기울거나, 그게 아니라도 여성혐오 성향이 강해지기도 했다. (친 래디컬 페미니즘 성향인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토는 덤), 결과적으로 이로 인하여 2010년대 중반부터 젊은 남녀간의 혐오가 오가는 악순환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 여성의 경우 동성(同性)에 대한 공감이 비교적 강한 편이고 메갈리아, 워마드, 여성시대[11] 같은 여초사이트도 많은지라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왁싱샵 살인 사건등 가해자측이 남성 피해자측이 여성인데다가 뉴스 등에 나올정도로 유명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발생 원인이나 과정 계기등엔 일절 신경쓰지 않고 자신들(여성들) 모두가 잠재적인 살인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위의 여초사이트가 이를 퍼트리고 선동하는 것에 잘못하면 쉽게 휘말리기에 이에 따른 공포심과 반발심으로 남성혐오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외국에서 봤을 때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는 자주 나온다. 반대로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이 넓은 의미의 남성혐오가 심각하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네이버웹툰에 도전만화 스시녀와 김치남를 그린 후 일부 내용 때문에 테러를 겪은 일본인 여성작가 사야카가 여러 차례 이런 관점을 보였다.
그리고 이것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2016년 9월 10일 네이버-국민일보 (페북지기 초이스) “한국 온 사회가 여성모드” 깜짝 놀란 일본인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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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Jtbc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인터넷상의 게시물 5200만건 분석 결과, 남성혐오 게시물(19.6%)이 여성혐오 게시물(10.4%)의 1.9배로 더 많았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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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보도에 따르면, 2016년 6월부터 인터넷상의 남성혐오 신조어가 거의 몇천배 수준으로 폭증했다.
2016년 12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성차별 표현이 가장 많은 커뮤니티는 1위 일베, 2위 네이트판, 3위 워마드, 4위 메갈리아 순으로 2~4위가 전부 여초 사이트다. 기사
4. 사례
4.1. 여성의 남성혐오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 여성은 장손을 더더욱 기피하였다.
여성이 일방적으로 희롱당하는 포르노를 보고 남성혐오를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위의 유형 여성 중엔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나 성폭행범 혹은 가해자로 간주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사회적 관계에서 남성에게 무시를 당한 경험때문에 생긴 경우도 있다. 여성혐오와 마찬가지로, 한 질 나쁜 개인에게 불쾌한 경험을 한 경우에 그에 대한 원인을 자신이나 불쾌한 개인보다는 원인 제공자가 남성이라는 것에 혐오를 느끼는 것.
4.2. 남성의 남성혐오
어린시절 아버지나 형 등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거나, 남자다움을 강요당했거나,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을 경우에도 같은 남자인데 남성혐오감이 등장할 수 있다.
또 남성 또한 남성이 저지르는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인터넷 등지의 여답돼들로 인해 이들을 싫어하다 그로 인해 남성혐오에 빠질 수 있다. 가정폭력 등을 비롯해 유형도 다양하며 페미니즘에서는 이를 가부장제, 마초주의, 남성의 성 역할 강요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흔히 자신 주변에 남자들만 있어 이를 너무 싫어하는 경우에도 해당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남성혐오인지에 갑론을박이 있는 편이다.
4.3. 약한 남성에 대한 혐오
남성은 약자가 될 수 없다, 남자가 울면 안 된다, 남자는 참아야 된다, 남자가 나약하게 등 아직까지도 가부장제적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입각한, '''약자 남성 혐오'''는 성별과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주로 옛 가치관이 잘 변하지 않는 시골이나 폐쇄적인 사회 집단에서 이러한 혐오가 보이기 쉽다. 하지만 나라 전체가 조금씩 도시화가 되면서 이런 경우는 감소하는 추세다. 그래도 아직은 남성은 강해야 한다는 편견과 약자 남성에 대한 혐오는 강한 편이다.
남성인 장애인, 정신질환자 및 저소득 계층 등의 사회적 약자에 관해서는 장애인 차별도 섞여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이들 대부분이 '''남성성''' 그 자체의 큰 성별적 고정관념에 의해서[12] 모든 미디어에 큰 사회적 인정을 기대할 수는 없는 현상이 생긴다는 점이다.
4.4. MTF 트랜스젠더의 남성혐오
MTF 트랜스젠더에게도 남성혐오가 잘 나타나기도 한다. 보통 이 경우는 자기 신체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감 때문이거나, 남자들 사이에서 여자같다던가 이런 이유로 괴롭힘을 당한 게 있는 경우다.
4.5. 게이의 남성혐오
'''같은 남성을 좋아하는 게이가 왠 남성혐오인가?''' 라고 생각하겠지만, 자세히는 남성에 대한 혐오라기보다는 남성성, 남성 성역할 강요에 대한 혐오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한 인간이자 게이의 성적 지향을 존중하지 않고, 게이를 혐오해 온 고정관념, 편견(homophobia)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부 게이에 한해서는 자신들이 남성이라는 정체성은 인정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나오면서, 남성성을 혐오할 뿐 남성혐오는 다소 자제하자는 쪽의 의견도 더러 있다. 물론 TERF나 일부 레즈비언의 게이 혐오 역시 일부 게이 진영이 남성혐오에서는 한발 거리를 두게 했다.
4.6. 레즈비언의 남성혐오
요즘들어 심각화 되는 부류중 하나이다. 남성 가족, 친척, 친지들에 의한 교정강간, 남성에 대한 공포, 남성에게서 성적 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특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13][14] 레즈비언이 남성에게 느끼는 거부감, 혐오감은, 이성애자 남성이 게이, 트랜스젠더가 자신을 훑어보거나 성적 대상으로 봤을 때의 느낌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의견도 있다.[15]
일부 레즈비언 여성 중 예민한 이들은 이성애자 남성이 자신의 파트너가 될 여성들을 빼앗아간다는 공포감이나 우려를 가진 이들도 존재한다.
대한민국에 여성혐오가 대두되기 한참 전인 2016년 이전에도 레즈비언이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한남, 냄져 등의 남혐단어가 쓰였다. 그래서 오세라비는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레즈비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증언한 적도 있다.
4.7. 페미니스트의 남성혐오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남성혐오 성향이 있는데 그들은 페미니스트들이 핍박받아온 역사[16] 를 잘 알고 있고 여성 관련 범죄와 차별 사건에 논리적, 이성적이기보다 진영논리 및 '''감정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분파인 문화주의 계열(컬쳐럴)에서 강하게 나타나는데,이들은 남성과 여성은 본질적으로 다르고, 여성주의 운동을 순수한 생물학적인 여성이 해야된다고 여기기에 전략적으로 성소수자와 연대하고, 가부장제를 탈피하는 면에선 온건한 남성주의와 공통점이 있기에 남성의 참여를 수용하는 자유의지론 계열 (자유의지주의 래디컬 페미니즘)과 달리 남성을 아예 배제한다.
남자 페미니스트 중 자신이 가부장제+마초주의에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부류도 일종의 남성혐오에 빠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페미니즘을 모르는 마초들과는 다르다' 라며 다른 남성들과 구분지으려고 하며 여성에 대한 배려심이 뛰어난 자신들의 도덕적 우월성을 뽐내곤 한다.
4.7.1. 페미니스트 남성혐오자
급진적, 전투적 페미니즘인 경우는 예전부터 남성혐오 성향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이 더러 있었다. 특히 문화주의 계열에선 heforshe를 결코 인정하지 않고,남성의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참여를 용납하지 않는다.[17]
특히 대한민국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는 남성혐오를 적극 지지하고 주동하며, 현재까지 남성혐오에 반대 입장을 밝힌 대한민국 페미니스트는 없다. 오히려 남성혐오는 없다는 식의 의견이 지지를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듀나, 은하선 등이 있는데, 2015년 메갈리아의 탄생을 기점으로 해서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꽤 늘어나고 있다.
2016년에는 갓건배라는 게임 스트리머가 등장, 2017년 상반기에는 퀸두사가 유튜브 최초로 얼굴을 공개하고 페미니즘 사상을 표방했다. 퀸두사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호주국자, 팜므 등의 유튜버들이 대거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레드필이라는 단체를 조직하기도 했다. 2017년 하반기에는 마약사범 한서희가 페미니즘을 공개적으로 지지했었다.[18]
몇몇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웹툰 작가같은 유명인들이 메갈리아 지지 발언을 하고 있는 상황. 일반 사람들에겐 일밍아웃이랑 크게 다를 바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비롯한 남성혐오에 대한 지지를 개인의 자유로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4.8. 인터넷상의 남성혐오
사진
위 사진과 같은 논리는 남성혐오의 대표적인 근거로 자주 쓰인다. 남성을 우월한 존재로 인식시킴으로 여성이 약자임을 강조해 페미니즘을 방패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인지되지 못하지만 여초 사이트를 중심으로 인터넷 상에 상당히 널리 퍼져 있는 편이며, 남성과 여성이 같은 행동을 해도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다. 2015년을 기점으로 여성시대 사태로 인해 이것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으며, 메르스 갤러리에서 파생된 남성혐오 사이트인 메갈리아등의 활동으로 인해 인터넷상의 남성혐오 또한 상당히 큰 논란이 되고 있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에서도 남성혐오를 부추기는 콘텐츠들이 돌아다니며, 소셜 미디어 고유의 특징으로 말미암아 남성혐오 콘텐츠들이 삽시간에 많은 이들에게 퍼지기도 한다.
인터넷 상의 남성혐오는 명백히 남성을 공격할 목적으로 표출되며 자국 남성에 대해 극단적인 혐오를 드러내면서 외국 남성은 찬양하기도 하는, 일반적인 남성혐오와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기도 한다. 주로 성평등을 전면에 내세워 방패로 삼고 있지만 성차별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 모순이다. 자세한 내용은 메갈리아, 메르스 갤러리, 여성시대, 워마드등의 항목을 참조.
인터넷 상의 남성혐오의 양상은 주로2016.3.5자료 이와 같이 여혐을 들먹이며 남혐은 여혐에 반대하기 위해 나타났다는 논리를 근거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건 한 면만 본 것이다.(3번 문단 참고) 실제로 1990년대에도 인터넷상에서 대놓고 남성혐오를 하는 여성들이 있었으나,여성인권단체들은 이를 무시했다. 물론 이때까지야 위에서 말했듯이 남성혐오 = 가부장제로 특혜를 받은 남성이 받아야 될 멍에나 작은 부스럼으로 취급받았기에 대중들에게도 대수롭게 넘어갔었다. 그러다가 여성인권 신장과 성평등 의식의 내재화 IMF,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불황등이 겹쳐져서 남성혐오적 표현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이다.
또한 여기에 기름을 부운 여성시대 대란이 벌어진 2015년을 기점으로 남혐이 한국 인터넷에 많이 퍼져 있긴 했지만 여성시대-메갈리아-워마드로 대표되는 남혐이 여혐을 뿌리뽑기 위한 운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물론 이들은 미러링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주장하고 있지만 미러링 항목에도 나와 있듯이 이들이 말하는 '''미러링의 실상은 모킹(Mocking), 즉 대상을 모방범죄를 저지르면서 조롱하는 것 뿐이다.''', 실제로 이들이 하는 커뮤니티에서는 '시작은 미러링이였으나 지금은 진심이'라는 글과 그에 동조하는 무수한 댓글들이 올라와있다. 또 그들이 미러링한다는 남초커뮤사이트의 발언과 단어들이 거울처럼 미러링되지 않는 일도 있다.
일례로 똑같은 고인드립인 '운지'(노무현에 대한 조롱)를 미러링해 '재기(성재기처럼 뛰어내려라는 의미)', '태일(전태일처럼 분신하라는 의미)'이란 단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운지는 '여성'이 대상이 아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조롱'에서 그 어원이 시작된 것에 비해 '재기하다'와 '태일하다'는 일부로 남성혐오에 근간을 둔 단어다. 안타깝게도 노동권 보장을 외치던 전태일씨조차 '한국 남성'이라는 이유로 다른 남성 독립투사들과 마찬가지로 영문모를 조롱을 당하고 있다.
남혐과 여혐은 '''피해의식'''과 '''상대 성에 대한 불이해'''라는 공통 분모에서 시작하며 둘 다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러한 피해의식과 상대 성별의 불이해로 만들어진 혐오가 또 다른 혐오를 연쇄적으로 불러일으켜 서로를 넷상에서 더욱 더 미워하게 될 수 있다. 허나, 이 말의 진위성과는 별개로 '''양 측 모두 서로를 미러링하면서 이해를 할 생각조차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혐오는 결국 차별이며 폭력이고, 이로 인한 2차 피해자가 나타날 가능성 역시 있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을 이용하여 남성혐오를 조장하려는 세력들이 있다. 이들은 경찰에 이어 검찰에서도 여성혐오가 이유가 아닌 정신질환이 문제였다 밝혀도 여성혐오여야만 한다는 듯이 행동을 하기도 했다. 애초에 해당 범죄의 원인이 여성혐오에 있다 하더라도 이를 모든 남자들의 잘못으로 돌리려고 하는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의 행태에 대해선 강남역 시위 충돌 사건을 참조하자.
한편, 남성혐오 세력들은 이 사건을 통해 한국의 모든 남성들이 한국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직간접 관련자이므로 모든 남성은 여성에 대한 잠재적 가해자라는 이론을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다. 즉, 해당 문서에 나왔듯이 이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남성들은 간접적/직접적, 소극적/적극적의 차이만 있을 뿐이며 예외 없이 여성혐오에 가담하므로 (방관 포함) 한국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잠재적 가해자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아무런 죄 없는 무고한 사람들을 상대로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아가는 행동은 형법의 기조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이는 일부 여성의 무개념 언행을 모든 여성으로 간주해서 여성혐오를 하는 남성들과 다를 바 없다.
이에 대한 반발로 다음과 같은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2016년 7월 29일 네이버-국민일보 (페북지기 초이스) ‘남자라서 인격살해 당했다’ 이진욱 미러링글 호평…
한편 진보적 역사학자 전우용은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비판하면서 강자의 약자에 대한 혐오와 마찬가지로 약자의 강자에 대한 혐오도 비판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2016년 8월 26일 네이버-국민일보 (페북지기 초이스) “한남충 욕먹어도 메갈·워마드 비판합니다” 전우용 글…
전우용 씨는 메갈과 워마드를 비호하는 행위는 오히려 ‘벌레들의 세계’에 유폐됐던 일베를 석방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강자의 약자에 대한 혐오는 부당하나 약자의 강자에 대한 혐오는 정당하다는 주장에 수긍하는 강자는 없다”면서 “오히려 이런 경우 강자는 도덕적 열세조차 극복했다며 기뻐한다. 뉴라이트가 궁극적으로 원한 게 바로 이런 담론세계”라고도 했는데요. 그러니까 불평등한 존재(강자와 약자, 혹은 남성과 여성)들 간의 평등한 경쟁을 억제해온 구실을 해온 게 도덕과 윤리인데 메갈과 워마드는 그 규범을 스스로 깨뜨리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5. 인터넷상의 남성혐오 관련 소문들과 그에 대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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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도표는 미국과 한국의 10만 명당 강간사건 수이다. 물론, 이 표는 실제 범죄율이 아닌 단순 신고 사례를 표시한 것이고 우리나라의 문화상 범죄 신고율이 외국보다 낮은 것도 감안해야 하겠다만, 통계대로 세 명 중 한 명이라는 뜻은 우리나라 인구 5150만 명 중 절반이 여성이고, 그 중에 1/3이라면 858만 3000명이 강간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치안이 박살났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성폭행이라는 게 피해자한테 얼마나 심각한 상처를 남기고 악영향을 주는지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심각한 문제에 대해 악의적으로 잘못된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로 20년 전에 미국에서도 거의 똑같은 도시전설이 돌았던 적이 있다. 유년기의 친딸 강간 문제를 이슈로 했는데, 무서운 것은, 이런 소리를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자기 기억조차도 그에 맞게 왜곡된다는 것이다. 멀쩡하게 살아온 평범한 여대생들이라도, 그들을 붙잡고 이걸 반복적으로 주입시키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가상의 상황에 대한 온갖 세세한 진술들을 늘어놓으며 자신이 비참하게 살아왔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물론 남성도 이러한 인지적 착각이 가능하다는 점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지만, 행여라도 누군가가 문제삼을 수 있기에 이러한 경향에 성별에 대한 차이가 따위는 없다는 것을 명백히 밝혀두는 바이다.
이 외에도 이들이 별 근거도 없이 일반적인 남성들을 마치 성범죄자 집단처럼 몰아가는 일들은 굉장히 다반사인데, 어떻게 보아도 그저 그들의 남성혐오를 정당화시키는 구실을 만들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위에서처럼 주로 남성들이 즐기는 포르노이거나 개인적인 경험인데, 대부분의 정신이 정상으로 작동하는 남성은 포르노와 현실은 구분할 수 있으며, 그들이 개인적 경험이라 적는 사례는 전혀 진위성을 확인할 수 없다. 아예 조작일 가능성도 높고, 이들이 실제로 경험했다고 주장해도 위 사례에서 보이듯이 거짓이거나 부풀려진 기억일 가능성도 있다.
심각한 일부의 경우 기가 막히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여성을 혐오하거나 성범죄를 저지르는 남성들이 소수이더라도 일반 남성들 또한 그들을 방관했으므로서 암묵적으로 동의했으므로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성범죄 사건이 일어나면 언론과 일반인이 한 목소리가 되어서 공개적으로 강도 높은 비판과 처벌을 요구하는 주장과 질타를 가하고 있고, 만약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고 밝혀지면 즉각 상종 못할 범죄자 취급을 한다.
다른 한국 남성의 성매매 비율의 관한 통계를 찾아보면 보건복지부에서 고려대학교에 의뢰하여 연구한 전국 성의식 조사가 있는데 이 연구자료에서는 한국 남성들 중 성매매 경험자의 비율이 아래와 같이 여성가족부의 자료인 57.6%의 절반도 안 되는 25.1%(온라인 조사는 22.6)라는 결과로 나온다.[19]
6. 남성혐오 부정론
주로 페미니즘 계열에서 나오는 주장으로 남성혐오란 개념이 없거나, 혹은 미약하다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상세한 내용은 후술.
일각에서는 이들이 남성혐오라는 개념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 페미니즘 역시 하나의 정치세력화된 기득권이 되었으며, 남성혐오라는 개념이 이들의 기득권을 위협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즉 기득권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비기득권 일반 남성에게 가하는 일종의 사상탄압으로 보는 관점이다.
6.1. 페미니즘 진영의 남성혐오 부정론
6.1.1. 권력 관계에 의한 접근
6.1.1.1. 남성혐오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
철학자인 윤김지영 교수는 혐오는 사회적 강자에서 사회적 약자로 진행되는 감정[20] 이기에, '''남성이 사회적 강자인 현재'''에서는 남성혐오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7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다 유럽권 페미니즘 철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극단적인 현학성을 보이는 논문인데, 굳이 간추리자면 혐오는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니,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한 여성들의 소위 '남성혐오' 는 혐오가 아니라 분노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학자인 중앙대 교수 이나영 역시 윤김지영 교수와 비슷하게 '''사회적 강자인 남자'''를 향한 남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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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리부트》 의 저자인 손희정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도 역시 위와 같이 '''남성이 강자인 현재'''라는 이유로 남성혐오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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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정희진은 '''남성혐오는 비대칭적 사고인 이분법적 관점, 즉 양성 패러다임'''에서는 가능하다고 보지만 여성주의가 가지는 경계선상의 관점에서는 남성혐오가 아닌 여혐혐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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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위키에서도 마찬가지로, 해당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위의 한국 학자들의 이론을 빌려 남성혐오란 것이 없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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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위키 남성 혐오 문서
이들의 논리에 대해 더 자세한 기원을 알고 싶다면 '''정동''' 문서를 함께 참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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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2. 제한적으로 남성혐오가 가능하다는 입장
일본의 사회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우에노 치즈코는 혐오가 권력이 있는 사람이 권력이 없는 사람을 멸시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서, 이 논리를 토대로 젠더 권력의 비대칭 속에서 여성혐오가 사회 전반에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런데, 우에노가 여성 역시 위와 같은 논리를 따라 특수한 상황에서 남성을 혐오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사실은 매우 덜 알려져 있다.
여기서의 "특수한 상황" 이란 바로 '''성매매'''를 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내들이 남편의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언제 어느 때라도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흔히 받아들여지는 반면, 성매매 여성들은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금액을 남성이 자기 전상에 바칠 때까지는(...) 섹스 요구에 "No" 라고 거부할 권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매수 남성들이 이때 상대방 여성의 가치를 질이라는 성욕충족 도구로 환원하는 여성혐오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성매수 남성의 가치를 욕망이 그득 담긴 채 발기된 페니스로 환원하는 남성혐오를 한다고 한다. 우에노는 이때 여성이 남성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화대를 낮게 부르는 전략[21] 을 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도쿄전력 여직원 살인사건을 대상으로 분석해 보인 바 있다.
종합적으로 우에노 역시 여성혐오가 만연해 있다면 남성혐오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며 권력의 여부에 따라 그 심각성의 경중을 달리하기는 하나, 때로 여성 측에서 권력을 잡았을 때에는 여성도 남성을 혐오할 수 있다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했다. 물론 바로 위에 소개된 사람들을 포함한 많은 강성 운동가들은 "어차피 그래봐야 성매매 산업 자체가 여성억압적이고 착취적인 것이므로 결국에는 그것도 남성혐오가 될 수 없다" 고 반발하는 등, 여전히 논쟁은 가시지 않고 있다.
한편 이화여대 철학과 김선희 교수는 자신의 저서 《혐오 미러링》 에서 '''남성혐오가 가능하기는 하되, 젠더 권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개인의 혐오 정동 이상으로는 나아가기 어렵다'''고 언급하였다. 위의 윤김지영의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이 도서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혐오하는 것이 무작정 "약자니까 이건 혐오가 아니고 분노" 라고 언급할 것이 아니라, 설령 분노의 정동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거기에 혐오의 정동도, 다른 제3의 정동도 '''함께 섞여있을 수 있다'''고 반론했다. 그리고 여성이 남성을 혐오하는 것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서 '''워마드의 미러링'''을 들었다. 즉 미러링 그 자체를 남성혐오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6.1.2. 남성혐오는 페미니즘의 메시지가 아니라는 입장
반남성적(anti-male) 메시지가 실제로 존재하며 여기에 페미니즘이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는 페미니스트 역시 존재한다.
델라웨어 대학교에서 철학 및 여성학을 가르치는 페미니스트이자 남성성 및 페미니즘 대중화를 연구하는 해리 브로드(H.Brod)는 자신의 저술에서[22] 반남성적인 메시지는 페미니즘으로부터가 아니라 (원서의 표현을 바로 빌리자면) '''"반여성주의 우익 이데올로기"''' 에서 나온 것이고, 더 이상 사회진보적 운동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미국의 흑인 페미니스트이자 작가인 벨 훅스(B.Hooks) 역시 반남성적이고 분리주의적인 래디컬 페미니즘에 비판적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들에서 인종차별 운동 역시 결과적으로는 압제자 위치에 있던 백인들의 이해와 협력을 통해서 진전할 수 있었다고 말하면서, 페미니즘 역시 반남성적인 남성관을 버릴 것을 주장했다. 특히 하위 계층으로서 여성들은 상위 계층의 다른 여성들보다는 하위 계층의 남성들과 더 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반남성적 메시지를 설파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의 관점에서는 그저 "부르주아 특권층 백인 여성들이 다른 특권층 백인 남성들의 혜택을 빼앗아 오려는", 어찌보면 밥그릇 싸움(...)과도 같은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페미니즘은 남성의 본성을 불신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성들이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었다. 반남성적 정서를 가지기에 충분한 경험, 아니 그 이상의 경험을 겪었음에도 여성들은 남성에 대한 신뢰를 유지해 왔다.
이런 이유로, 나는 어떤 진보 조직이나 운동도 남성을 타고난 강간범이나 폭력범으로 그리면서 남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급진적인 주장으로 포장되어 나타나거나 생물학적 결정론이 사회 결정론으로 포장된다 해도,[23]
그런 이미지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다.''' 그들은 남성을 변화를 요구할 수 있으며 또한 변화를 격려해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남성은 변화할 능력이 없는 존재, 단순히 반대되거나 폐기되어야 하는 존재로 냉혹하게 묘사된다. '''반남성 이미지는 정확히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반대되어야 한다.''' 그런 이미지는 그것을 제시한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결국 그들을 '''보수적인 위치에 놓이게 한다.''' 나는 그런 위치에서는 '''어떤 진보 운동도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 해리 브로드(H.Brod), pp.275-276 (김고연주, 이장원 공역) (일부 구문은 나무위키에서 자체 강조)
프랑스의 여성학자이자 모성신화(myth of motherhood)에 대한 비판으로 페미니즘 철학에 기여한 바 있는 엘리자베트 바댕테르(E.Badinter)는 자신의 저서 《잘못된 길》(Fasse Route)에서, 1990년대 무렵에 프랑스에서 발흥하던 문화적 페미니즘(cultural feminism) 및 성부정론 페미니즘(sex negative feminism)이 페미니즘의 본래 철학적 인식론을 저버리고 "생물학적으로 남성인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강간범이고 성범죄자이며 가해자이다" 의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를 철저히 따르는 페미니스트로서, 바댕테르는 사회적 합의로서의 젠더, 즉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의 대명제에 위배되는 '''생물학적 본질주의'''를 따른 결과 이들 페미니즘이 오히려 퇴보를 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들이 남성의 생득적인 본질에 호소하는 이상, 남성은 물리쳐야 할 적으로 상정되며, 이는 남성 전반에 대한 비난만을 초래할 뿐 여성들의 현실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한 성에 대한 집단적 비난은 성차별주의적이며 정의롭지 못하다.''' 폭력 자체를 남성들의 슬픈 특권으로 만들어 버리고, 정상적인 것과 병적인 것을 혼동하면서, 우리는 오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진으로는 올바른 처방을 내리지 못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오로지 남자들과의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평등을 이루어 나가는 것만이 여성의 조건을 개선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주인으로부터 특권을 빼앗기 위해서는 저항을 하고 으르렁거려야만 한다는 걸 대부분의 여성이 알고는 있지만, '한 성이 고통스러워할 때에는 다른 성도 역시 고통스러워하게 된다' 는 마거릿 미드의 이야기가 옳다는 것도 알고 있다. 여성운동에 의한 변화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는 여자들도 있고,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는 여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남자들과 함께 더욱더 잘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 엘리자베트 바댕테르(E.Badinter), pp. 81; 180 (나애리, 조성애 공역) (일부 구문은 나무위키에서 자체 강조)
6.2. 페미니즘 진영의 남성혐오 부정에 대한 비판
6.2.1. 현대 페미니즘 시초의 남성 혐오 비판
현대 페미니즘을 시작한 대표적 리더 베티 프리단은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남성혐오 성향을 명백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사실은 유아인 사이버 불링 사건 때 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베티 프리단은 현대 페미니즘 운동을 시작하고 미국 페미니즘의 초석이 되는 책을 저술했다. 행동주의적 저작과 그녀의 책 《여성의 신비》은 여성 운동가에 참여하는 작가, 교육자, 작가, 인류학자, 기자, 활동가, 조직, 노동 조합 및 일상 여성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는다.[24] 이 책은 또한 상단의 한국 논자들이 취하는 입장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는 가장 대표적인 권위 있는 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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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 남성이 사회적 강자임을 입증 실패
윤김지영 교수를 위시하여 많은 여성학자들의 일관된 입장은, "여성은 사회적 약자이므로 여성에 대한 멸시가 여성혐오라고 보는 것은 온당하나, 남성은 사회적 강자이므로 남성에 대한 멸시는 혐오라고 볼 수 없으며, 굳이 표현해야 한다면 남성에 대한 저항이 된다" 는 것이다. (이 주장을 편의상 '남성혐오 불성립론' 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 논리를 살펴보면, 만일 우리 사회가 남성이 사회적 강자라는 점을 납득할 수만 있다면, 남성혐오로 알려진 여러 사건들 역시도 사회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남성혐오 불성립론이 대중적 상식의 차원으로 확산됐다는 징후는 없다. 박가분이 리얼뉴스 기고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 남성혐오 불성립론은 페미니스트들의 담론의 영역에서만 그쳤을 뿐, 현실규범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워마드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도촬 사건에 관련하여, 그는 여성인 판사가 참여한 재판부조차도 워마드를 '남성혐오 사이트' 로 명시했음을 지적했다. 페미니즘 비판자 중 하나인 이선옥 역시 자신의 웹 사이트에서 "보통의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론으로 대중을 윽박" 질러 왔다고 말했으며, # 경향신문 기고에서도 "이념의 장에서 남성혐오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규범의 장에서 여혐과 남혐은 모두 모욕과 명예훼손으로 처벌" 될 뿐이라고 단언했다. # 요컨대, 남성혐오 불성립론은 사법부를 납득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얘기다.
물론 이론이 항상 대중적 상식과 일치할 의무는 없다. 때로는 반직관적(counter-intuitive)인 이론이 등장해서 사람들의 인식을 뒤집어 놓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남성혐오 불성립론은 어째서 대중의 인식을 바꾸지 못한 채 그들만의 고담준설로 남게 되었냐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남성은 사회적 강자이므로 남성혐오는 없다" 고 외친다는 것을 대중들도 이제 잘 알지만, 한편으로 대중들은 "여혐이 나쁜 것처럼 남혐도 해서는 안 되는 것" 이라고 여전히 인식한다. 남성혐오 불성립론이 대한민국 사회를 설득하지 못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그 중 무시할 수 없는 하나는 '''현실인식을 달리하는 사람을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는 데 있다. 바꿔 말하면, '''이론의 자기객관화에 실패함으로써 제도권에 진입하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으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통계량과 같은 객관적 수단으로 실태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페미니스트들의 사변에서 통계는 늘 숫자놀음처럼 취급되지만, 실상 그 숫자놀음이야말로 현실인식을 달리하는 사람들까지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너는 나와 다르게 인식하지만, 우리 둘 다 사실은 같은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는 점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그리고 사실은 유일한) 무기가 바로 숫자다. 그래서 제도권에 밀접한 사람들일수록 늘 "숫자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같은 말을 강조하곤 한다. 여타 이론들이 외적 세계에 대한 관찰을 통해 통계적 분석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동안, 남성혐오 불성립론은 정동(affekt)에 대한 철학적, 관념적, 비평적 논설에 집중했을 뿐, 남성들이 사회적 강자라는 핵심 전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실태조사 결과조차 내놓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안티/포스트페미니스트들에게 "남성이 사회적 강자라는 근거가 어디 있냐" 는 공격을 받는다.
그런데 사실, 이들이 정량적인 입증을 시도했다 하더라도 이 전제는 수치상으로 보여주기가 매우 까다로운 종류에 해당한다. 남성들이 사회적 강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어떤 사회적 지표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 사회는 계급사회가 아니며, 인류학적 부족사회처럼 귀인들이 시인성 높은 장식이나 문신을 하는 사회도 아니고, 대한민국 헌법을 통해서 '적어도 겉으로는' 전 국민이 평등하게 행복할 권리를 보장한다고 자신하는 사회다. 이런 사회 속 어딘가에 강자들이 숨어있다고 할 때, 그들의 권력을 명확한 숫자 몇 개로 보여주는 것은 매우 어렵다. 여성학이 양적 접근보다는 질적 접근에 천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남성혐오 불성립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전제, 즉 '남성은 사회적 강자' 라는 진술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워져 온 지표들로는 대개 다음의 것들이 있지만, 그 중 어떤 것도 '''남성이 사회적 강자임을 명쾌하게 입증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런 지표들이 갖는 문제는, 결국 대안적 설명을 너무 많이 열어둔다는 것이다. 위에서 나열한 통계들 중에 구구한 반론이 없었던 지표는 단 하나도 없었으며, 성격차지수의 경우 남성의 사회적 우위를 입증하는 데 직접 활용하기에는 너무 많은 한계점들이 발견되었다. 임금격차의 경우 수많은 원인들이 임금수준에 관여하기 때문에 이를 일일이 다 뜯어봐야 한다. 차이가 존재한다 해도, 그 차이는 차별로 인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숫자들은 왜곡과 오염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남성이 사회적 강자인 것처럼 '착각' 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안티/포스트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며, 이 수치들만 가지고는 이런 반론을 물리치기가 어렵다.
- 성 관련 이슈에 대한 인식조사?
인식조사를 지표로 활용할 경우 갖는 문제는, 직접적으로 설득하기에는 지나치게 간접적인 지표라는 데 있다. 성차별이 엄존하는 실태를 파악하고 싶은데, 내세우는 자료라고는 사람들의 주관적 인식일 뿐인 것이다. 결국 그 해석도 "우리 사회가 객관적으로 남성 우위라더라" 가 아니라 "사람들이 대개 남성 우위로 느낀다더라" 로 바뀌고, 설득의 힘도 많이 빠지게 된다. 여성가족부 역시 많은 예산을 섣불리 굴리지 못하고, 그저 '공무원 양성평등 특강', '인식 개선 사업', '성교육 의무 이수' 같은 부스러기 사업들만 가능할 뿐이다.[25] 인식조사 결과 "사람들은 정말로 남성을 강자로 인식한다더라" 해석이 나와도, 이런 식으로는 여성을 직접 대등한 강자의 자리까지 끌어올려 주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람마다 주관적 인식은 조금씩 다 다르기 때문이다.[26]
- 성범죄 관련 통계?
이 경우의 문제는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 성범죄 이슈 자체가 페미니즘 담론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사회적 강자 여부를 가리는 데 특정 범죄만을 놓고 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성범죄 분야에서 여성이 명백히 피해자로 나타나는 경향이 관찰된다 해도, 남성들의 피해 비율이 여성들보다 더 높은 범죄 유형들도 분명 존재한다. 세상에 범죄는 성범죄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며, 다른 범죄 피해들에서 남성들이 더 많은 피해를 본다는 주장이 들어온다면 이에 대해서는 남성이 강자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성범죄로부터의 안전을 보장하자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러니까 남성이 사회적 강자가 된다' 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못할 수 있다.
- 정상성과 문화 규범에 대한 분석?
이렇게 접근하는 것의 문제는 양적인 객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사회화, 암묵적인 규범적 압력, 미디어의 시각적 도상들을 어떻게 손에 잡히는 숫자의 형태로 바꾸어 보여줄 것인가? 문화비평 분야에서 롤랑 바르트 같은 철학적 사변들과 현학적인 이론화가 흔한 것은 역시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숫자 없이는 제도권을 움직이게 만들 수 없다. 숫자가 없으면 사회를 바꾸고 싶어도 '언제까지, 어디까지' 바꿀지에 대한 정책적 기준이 나오지 않는다. 결국 상기한 인식조사의 형태로 남성우위적 규범의 존재여부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 뭇 여성들의 삶의 경험에 의거한 호소?
더 말할 것도 없이, 이는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이심전심은 될 수 있어도 경험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설득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비단 남성들뿐만 아니라 억압의 경험이 많지 않거나 혹은 당연한 것으로 교육받아 온 여성들 역시, 남성이 강자인 사회라는 대전제에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개인의 삶이 파편화되고 실력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는 간접경험을 쌓기도 어렵거니와 그나마 억압을 목격한다 해도 당사자의 부족한 능력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숫자가 없음으로 인하여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한계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동일한 경험을 지닌 수많은 여성들을 결집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끝내 설득되지 못한 채 진짜로 저렇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생각한다. 양쪽이 살아가는 세계가 같음을 객관적 숫자로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차별의 실태를 숫자로 드러내 보임으로써 얻게 되는 또 다른 이점은 '''사회의 일반적 문제와 개인의 특수한 문제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귀분석의 경우 도출된 회귀선으로 얼마나 많은 오차가 설명되는지 판단할 수 있고, 분산분석의 경우 급간분산과 급내분산이 서로 얼마나 구분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남성들이 사회적 강자라고는 해도, 세상에는 여성들의 멸시로부터 취약한 남성 개인들이 분명 존재하고, 기득권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남성들도 존재한다. 이것이 그 남성 개인의 특징인지 아니면 남성 집단 전체의 특징인지 구분하려면 결국 통계가 있어야 한다. 숫자를 통해서 남성들이 실제로 현저한(significant) 수준에서 사회적 기득권을 획득하였음이 확인된다면, 그때는 감히 반론을 펼치기가 힘들다.[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