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혐오

 





1. 개요
2. 원인
3. 한국 사회의 남성혐오 경향
4.1. 여성의 남성혐오
4.2. 남성의 남성혐오
4.3. 약한 남성에 대한 혐오
4.4. MTF 트랜스젠더의 남성혐오
4.5. 게이의 남성혐오
4.6. 레즈비언의 남성혐오
4.7. 페미니스트의 남성혐오
4.7.1. 페미니스트 남성혐오자
4.8. 인터넷상의 남성혐오
5. 인터넷상의 남성혐오 관련 소문들과 그에 대한 반박
6. 남성혐오 부정론
6.1. 페미니즘 진영의 남성혐오 부정론
6.1.1. 권력 관계에 의한 접근
6.1.1.1. 남성혐오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
6.1.1.2. 제한적으로 남성혐오가 가능하다는 입장
6.1.2. 남성혐오는 페미니즘의 메시지가 아니라는 입장
6.2. 페미니즘 진영의 남성혐오 부정에 대한 비판
6.2.1. 현대 페미니즘 시초의 남성 혐오 비판
6.2.2. 남성이 사회적 강자임을 입증 실패
7. 관련 문서


1. 개요


미샌드리(Misandry)는 남성을 폄하하여 여성보다 강한 차별과 배격을 노골적으로 허용하며, 남성에 대한 미지 혹은 혐오 및 불쾌감 등의 사유를 기반으로 하여 일방적으로 타자화하는 사상 및 행위이다. 이 문서에서는 자국이성혐오증과는 분리하여 남성혐오(Misandry)에 대해서 설명한다.
남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여성 버전으로 여성혐오(misogyny)가 있다. misogyny와 마찬가지로 '혐오'라는 단어로 번역하기에는 의미의 폭이 넓다. 성적 대상화(혹은 성적 객체화)[1]처럼 은연 중의 폭력이나, 남성 멸시와 폭언 등의 직접적인 폭력은 물론이고, 남성의 희생과 어려움을 당연시하는 가부장제, 마초주의와 같은 '남자다움'을 재생산 및 강요하는 성적 역할 고정화 등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 여성이 남성을 자신과 마찬가지인 인간으로 보지 않고 타자화 및 배격[2]하는 등 포함하는 게 많다. 미소지니와 마찬가지로 미산드리를 혐오라고 번역한 것 역시 똑같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지만, 남성혐오에 대한 금지를 주장하는 측은 19세기 첫 출현했을 때의 페미니즘 수준으로 박해받는 판이라 화두 자체에 오르지를 못할 뿐이다.
당연하지만 남성이 남성에 대한 혐오와 반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엔 자성혐오가 되지만 게이트랜스젠더(여자이면서 남성이 되는 수술을 받은 경우)의 남성혐오는 다소 다른 관점에서 봐야 된다.[3] 여성우월주의 또는 래디컬 페미니즘과 같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더도 덜도 아니라 또 다른 차별이라고 부를 수 있다.
대강보자면 '''남성혐오'''와 남성공포증이 유사하다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이들은 명백히 다르다.''' '''남성혐오'''는 딱히 남자란 인종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게 아닌 남성이란 성별에 혐오감을 나타내는 것이고, 남성공포증은 반대로 남성이란 인종을 혐오하지 못할 정도로 두려워하는 경우다. 전자가 사회교류를 통해 주로 굳어지는 사고방식이라면, 후자는 강간을 당하거나 집단폭력을 당한 결과 심신미약자가 얻는 정신질환중의 하나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남성혐오는 사회적 약자, 정신적 약자가 아닐 수 있지만 남성공포증은 확실하게 사회적 약자, 정신적 약자라는 것. 단, 이후 본인의 사고방식에 따라 남성혐오자가 동시에 남성공포증을 가지거나 남성공포증을 가진 환자가 남성혐오자가 되기도 한다.[4]

2. 원인


많은 xx혐오의 유형과 비슷하게 남성혐오 또한 일부 남성의 잘못된 행동이나 만행을 남성 전체가 그렇다며 잘못된 일반화를 하여 그릇된 인식을 가지는 것이 남성혐오를 강화하고 퍼트리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어느 남성에게 성폭행, 성추행, '''강간'''등을 당한 경우 극도의 의심으로 이런 경우로 뒤틀리기도 하며 남초사이트의 일부 여성혐오적 글이나 편집된 사진 등을 보고 그것을 여초 사이트에 옮겨 남성혐오를 유포하기도 하며 여성을 무조건적이고 압도적인 사회적 약자라며 잘못된 일반화로 남성측 사회적 약자의 의견은 무시한 채로 주장하는 것 또한 남성혐오를 발전시키는 요인 중에 하나다. 애초에 성별이 다를 뿐 혐오라는 시점에서 거의 일맥상통하기에 남성혐오나 여성혐오나 남과 여의 단어만 다를 뿐 과정이나 결과는 대부분 동일하다.
한편으로 어떤 잘못된 행위를 비판하는 것에 여성이 관련되면 무조건 여성혐오로 인식하고 비판자를 여성혐오자로 몰면서 남성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만물여혐설로도 볼 수 있으며,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에서 일부 진보계와 일부 여성들이 이와 같은 그릇된 형태를 보여줬다. 기사에서는 다수의 여성들도 이 사건을 여성혐오로 보고 있지 않음에도 일부의 진보계와 여성들이 여성혐오로 몰고 가서 남녀 갈등 문제로 확장시키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2016년 7월 25일 (다음-미디어오늘) 메갈리안 해고 논란 이건 여성혐오의 문제가 아닙니다-선택적 정의와 진보의 가치… 극단주의자들이 우리의 신념을 대표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3. 한국 사회의 남성혐오 경향


레디컬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미소지니에만 한정된 문제 제기와 공격으로 여성의 성역할 구분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인식이 매우 좋지 못하다. 그에 비해서 우리 사회가 미샌드리의 경우에는 성역할의 폐지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라는 사람들의 입에서조차 잘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문제의식이 미미하다. 제도적으로 행해지고 개인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남성징병제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제기하거나 여성징병제를 주장하기만 해도 여성혐오자나 남성우월주의자, 꼴마초 같은 비난이 다수의 여론을 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5]
사회 전반적으로 남성에게는 가부장제의 역할인 집과 자산 마련, 가족 생계 부양이 강요되고 따라서 안정된 직장을 선호한다. 이는 1997년의 imf 구제금융으로 더욱 심화되었다. 또한 자녀가 외동 아니면 2명이라서 자기 자녀를 고생시키는 것에 극도로 민감해진데다가, 외동딸이거나 딸만 있는 가정의 경우 그런 성향이 심하다. 집과 자산을 마련하지 못했거나, 가족 생계를 부양할 능력이 안 되는 남성에 대해 자기 역할을 못하는 남자 정도로 취급하고 멸시하거나, 어린애 취급하거나, 피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주로 대도시나 신도시보다는 시골과 저소득층, 저학력자 밀집지역에서 심한 편이다.
페미니스트 및 여성계에서는 한국 사회의 남성혐오에 대해 '남성혐오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주장하거나, 혹은 남성혐오를 인정하면서도 한국사회의 만연한 여성혐오에 대한 되갚기이거나, 그것이 변질되어 혐오표현만 남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 이는 정확하지 못한 주장이다.
1980년대~1990년대[6]엔 말그대로 가부장제가 강성했던 시기였기에 여성혐오가 확실히 존재했었고, 남성으로서의 특혜도 있었다.(정년도 달랐고, 임금격차는 더 나던 시대였다. 추가로, 남성만 대학에 보내려는 것도 덤) 이로 인하여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밑의 남성에 대한 비하,혐오 표현도 어느정도 있었고 남성으로써의 의무도 막강했지만, 그냥 이 당시엔 (특혜를 받던) 남성이 견뎌야 될 작은 부스럼, 차별비용등으로 여겨졌다.
그 이후 페미니즘 운동으로 인하여 여성인권신장이 어느정도 이뤄졌기에 2000년 초반~2010년 초반 이전의 대국 사회는 여성에 대한 혐오표현은 문제제기가 이루어진 경우가 몇 번 있으나, 남성에 대한 혐오,비하표현은 이전처럼 그냥 차별비용 혹은 기득권이 받아야 될 반격으로 취급받을 뿐이였다.
또한 IMF등 경제불황으로 너나네나 못살게 된 상황에서 남성성을 강요하는 표현 혹은 가부장이 되라는 강요는 아직도 '''남성으로써 견뎌야 되는 것'''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말 그대로 '''젊은 남성들에게 남성성은 그대로 강요하면서 외부에선 가부장제를 없애자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대표적으로 여성인권단체, 일부 여성들의 군 복무 및 군 장병 비하발언(군삼녀 등), 주거비용 책임 분할에 있어서의 남성에게 부여되는 과다한 의무[7], 속칭 루저녀 사태로 비견되는 남성의 외모에 대한 품평[8]등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남성혐오 표현들이 대한민국 사회, 인터넷 및 오프라인 등지에서 여과없이 투과되었으며,[9] 디시인사이드,일베저장소를 기점으로 삼일한,김치녀 등의 여성혐오성 단어들이 퍼져나가기 시작한 기점이 2000년대 중후반인 것이고, 이후 메갈리아의 탄생이 2015년임을 감안하면, '''젊은 세대 한정으론 남녀가 사실상 서로 주고 받은 것이다.''' 젊은 여성이야 4050대 이상 남성들에게 차별대우를 받은 게 사실이니까[10] 그걸 되받아치기 위해 자기 말마따나 남성혐오를 한다지만, 젊은 남성으로썬 4050대 이상 남성들이 저지른 여성차별의 짐과 댓가를 자신들이 치러야 하는 어이가 없는 상황이 벌어졌기에 기성세대인 586 정치인에 대한 반감까지 겹쳐져서 안티페미니즘으로 기울거나, 그게 아니라도 여성혐오 성향이 강해지기도 했다. (친 래디컬 페미니즘 성향인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토는 덤), 결과적으로 이로 인하여 2010년대 중반부터 젊은 남녀간의 혐오가 오가는 악순환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 여성의 경우 동성(同性)에 대한 공감이 비교적 강한 편이고 메갈리아, 워마드, 여성시대[11]같은 여초사이트도 많은지라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왁싱샵 살인 사건등 가해자측이 남성 피해자측이 여성인데다가 뉴스 등에 나올정도로 유명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발생 원인이나 과정 계기등엔 일절 신경쓰지 않고 자신들(여성들) 모두가 잠재적인 살인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위의 여초사이트가 이를 퍼트리고 선동하는 것에 잘못하면 쉽게 휘말리기에 이에 따른 공포심과 반발심으로 남성혐오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외국에서 봤을 때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는 자주 나온다. 반대로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이 넓은 의미의 남성혐오가 심각하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네이버웹툰에 도전만화 스시녀와 김치남를 그린 후 일부 내용 때문에 테러를 겪은 일본인 여성작가 사야카가 여러 차례 이런 관점을 보였다.
그리고 이것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2016년 9월 10일 네이버-국민일보 (페북지기 초이스) “한국 온 사회가 여성모드” 깜짝 놀란 일본인 주부…
[image]
2016년 1월, Jtbc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인터넷상의 게시물 5200만건 분석 결과, 남성혐오 게시물(19.6%)이 여성혐오 게시물(10.4%)의 1.9배로 더 많았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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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보도에 따르면, 2016년 6월부터 인터넷상의 남성혐오 신조어가 거의 몇천배 수준으로 폭증했다.
2016년 12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성차별 표현이 가장 많은 커뮤니티는 1위 일베, 2위 네이트판, 3위 워마드, 4위 메갈리아 순으로 2~4위가 전부 여초 사이트다. 기사

4. 사례




4.1. 여성의 남성혐오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 여성은 장손을 더더욱 기피하였다.
여성이 일방적으로 희롱당하는 포르노를 보고 남성혐오를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위의 유형 여성 중엔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나 성폭행범 혹은 가해자간주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사회적 관계에서 남성에게 무시를 당한 경험때문에 생긴 경우도 있다. 여성혐오와 마찬가지로, 한 질 나쁜 개인에게 불쾌한 경험을 한 경우에 그에 대한 원인을 자신이나 불쾌한 개인보다는 원인 제공자가 남성이라는 것에 혐오를 느끼는 것.

4.2. 남성의 남성혐오


어린시절 아버지나 형 등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거나, 남자다움을 강요당했거나,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을 경우에도 같은 남자인데 남성혐오감이 등장할 수 있다.
또 남성 또한 남성이 저지르는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인터넷 등지의 여답돼들로 인해 이들을 싫어하다 그로 인해 남성혐오에 빠질 수 있다. 가정폭력 등을 비롯해 유형도 다양하며 페미니즘에서는 이를 가부장제, 마초주의, 남성의 성 역할 강요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흔히 자신 주변에 남자들만 있어 이를 너무 싫어하는 경우에도 해당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남성혐오인지에 갑론을박이 있는 편이다.

4.3. 약한 남성에 대한 혐오


남성은 약자가 될 수 없다, 남자가 울면 안 된다, 남자는 참아야 된다, 남자가 나약하게 등 아직까지도 가부장제적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입각한, '''약자 남성 혐오'''는 성별과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주로 옛 가치관이 잘 변하지 않는 시골이나 폐쇄적인 사회 집단에서 이러한 혐오가 보이기 쉽다. 하지만 나라 전체가 조금씩 도시화가 되면서 이런 경우는 감소하는 추세다. 그래도 아직은 남성은 강해야 한다는 편견과 약자 남성에 대한 혐오는 강한 편이다.
남성인 장애인, 정신질환자 및 저소득 계층 등의 사회적 약자에 관해서는 장애인 차별도 섞여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이들 대부분이 '''남성성''' 그 자체의 큰 성별적 고정관념에 의해서[12] 모든 미디어에 큰 사회적 인정을 기대할 수는 없는 현상이 생긴다는 점이다.

4.4. MTF 트랜스젠더의 남성혐오


MTF 트랜스젠더에게도 남성혐오가 잘 나타나기도 한다. 보통 이 경우는 자기 신체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감 때문이거나, 남자들 사이에서 여자같다던가 이런 이유로 괴롭힘을 당한 게 있는 경우다.

4.5. 게이의 남성혐오


'''같은 남성을 좋아하는 게이가 왠 남성혐오인가?''' 라고 생각하겠지만, 자세히는 남성에 대한 혐오라기보다는 남성성, 남성 성역할 강요에 대한 혐오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한 인간이자 게이의 성적 지향을 존중하지 않고, 게이를 혐오해 온 고정관념, 편견(homophobia)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부 게이에 한해서는 자신들이 남성이라는 정체성은 인정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나오면서, 남성성을 혐오할 뿐 남성혐오는 다소 자제하자는 쪽의 의견도 더러 있다. 물론 TERF나 일부 레즈비언의 게이 혐오 역시 일부 게이 진영이 남성혐오에서는 한발 거리를 두게 했다.

4.6. 레즈비언의 남성혐오


요즘들어 심각화 되는 부류중 하나이다. 남성 가족, 친척, 친지들에 의한 교정강간, 남성에 대한 공포, 남성에게서 성적 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특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13][14] 레즈비언이 남성에게 느끼는 거부감, 혐오감은, 이성애자 남성이 게이, 트랜스젠더가 자신을 훑어보거나 성적 대상으로 봤을 때의 느낌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의견도 있다.[15]
일부 레즈비언 여성 중 예민한 이들은 이성애자 남성이 자신의 파트너가 될 여성들을 빼앗아간다는 공포감이나 우려를 가진 이들도 존재한다.
대한민국에 여성혐오가 대두되기 한참 전인 2016년 이전에도 레즈비언이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한남, 냄져 등의 남혐단어가 쓰였다. 그래서 오세라비는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레즈비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증언한 적도 있다.

4.7. 페미니스트의 남성혐오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남성혐오 성향이 있는데 그들은 페미니스트들이 핍박받아온 역사[16]를 잘 알고 있고 여성 관련 범죄와 차별 사건에 논리적, 이성적이기보다 진영논리 및 '''감정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분파인 문화주의 계열(컬쳐럴)에서 강하게 나타나는데,이들은 남성과 여성은 본질적으로 다르고, 여성주의 운동을 순수한 생물학적인 여성이 해야된다고 여기기에 전략적으로 성소수자와 연대하고, 가부장제를 탈피하는 면에선 온건한 남성주의와 공통점이 있기에 남성의 참여를 수용하는 자유의지론 계열 (자유의지주의 래디컬 페미니즘)과 달리 남성을 아예 배제한다.
남자 페미니스트 중 자신이 가부장제+마초주의에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부류도 일종의 남성혐오에 빠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페미니즘을 모르는 마초들과는 다르다' 라며 다른 남성들과 구분지으려고 하며 여성에 대한 배려심이 뛰어난 자신들의 도덕적 우월성을 뽐내곤 한다.

4.7.1. 페미니스트 남성혐오자


급진적, 전투적 페미니즘인 경우는 예전부터 남성혐오 성향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이 더러 있었다. 특히 문화주의 계열에선 heforshe를 결코 인정하지 않고,남성의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참여를 용납하지 않는다.[17]
특히 대한민국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는 남성혐오를 적극 지지하고 주동하며, 현재까지 남성혐오에 반대 입장을 밝힌 대한민국 페미니스트는 없다. 오히려 남성혐오는 없다는 식의 의견이 지지를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듀나, 은하선 등이 있는데, 2015년 메갈리아의 탄생을 기점으로 해서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꽤 늘어나고 있다.
2016년에는 갓건배라는 게임 스트리머가 등장, 2017년 상반기에는 퀸두사가 유튜브 최초로 얼굴을 공개하고 페미니즘 사상을 표방했다. 퀸두사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호주국자, 팜므 등의 유튜버들이 대거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레드필이라는 단체를 조직하기도 했다. 2017년 하반기에는 마약사범 한서희가 페미니즘을 공개적으로 지지했었다.[18]
몇몇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웹툰 작가같은 유명인들이 메갈리아 지지 발언을 하고 있는 상황. 일반 사람들에겐 일밍아웃이랑 크게 다를 바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비롯한 남성혐오에 대한 지지를 개인의 자유로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4.8. 인터넷상의 남성혐오



사진
위 사진과 같은 논리는 남성혐오의 대표적인 근거로 자주 쓰인다. 남성을 우월한 존재로 인식시킴으로 여성이 약자임을 강조해 페미니즘을 방패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인지되지 못하지만 여초 사이트를 중심으로 인터넷 상에 상당히 널리 퍼져 있는 편이며, 남성과 여성이 같은 행동을 해도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다. 2015년을 기점으로 여성시대 사태로 인해 이것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으며, 메르스 갤러리에서 파생된 남성혐오 사이트인 메갈리아등의 활동으로 인해 인터넷상의 남성혐오 또한 상당히 큰 논란이 되고 있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에서도 남성혐오를 부추기는 콘텐츠들이 돌아다니며, 소셜 미디어 고유의 특징으로 말미암아 남성혐오 콘텐츠들이 삽시간에 많은 이들에게 퍼지기도 한다.
인터넷 상의 남성혐오는 명백히 남성을 공격할 목적으로 표출되며 자국 남성에 대해 극단적인 혐오를 드러내면서 외국 남성은 찬양하기도 하는, 일반적인 남성혐오와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기도 한다. 주로 성평등을 전면에 내세워 방패로 삼고 있지만 성차별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 모순이다. 자세한 내용은 메갈리아, 메르스 갤러리, 여성시대, 워마드등의 항목을 참조.
인터넷 상의 남성혐오의 양상은 주로2016.3.5자료 이와 같이 여혐을 들먹이며 남혐은 여혐에 반대하기 위해 나타났다는 논리를 근거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건 한 면만 본 것이다.(3번 문단 참고) 실제로 1990년대에도 인터넷상에서 대놓고 남성혐오를 하는 여성들이 있었으나,여성인권단체들은 이를 무시했다. 물론 이때까지야 위에서 말했듯이 남성혐오 = 가부장제로 특혜를 받은 남성이 받아야 될 멍에나 작은 부스럼으로 취급받았기에 대중들에게도 대수롭게 넘어갔었다. 그러다가 여성인권 신장과 성평등 의식의 내재화 IMF,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불황등이 겹쳐져서 남성혐오적 표현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이다.
또한 여기에 기름을 부운 여성시대 대란이 벌어진 2015년을 기점으로 남혐이 한국 인터넷에 많이 퍼져 있긴 했지만 여성시대-메갈리아-워마드로 대표되는 남혐이 여혐을 뿌리뽑기 위한 운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물론 이들은 미러링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주장하고 있지만 미러링 항목에도 나와 있듯이 이들이 말하는 '''미러링의 실상은 모킹(Mocking), 즉 대상을 모방범죄를 저지르면서 조롱하는 것 뿐이다.''', 실제로 이들이 하는 커뮤니티에서는 '시작은 미러링이였으나 지금은 진심이'라는 글과 그에 동조하는 무수한 댓글들이 올라와있다. 또 그들이 미러링한다는 남초커뮤사이트의 발언과 단어들이 거울처럼 미러링되지 않는 일도 있다.
일례로 똑같은 고인드립인 '운지'(노무현에 대한 조롱)를 미러링해 '재기(성재기처럼 뛰어내려라는 의미)', '태일(전태일처럼 분신하라는 의미)'이란 단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운지는 '여성'이 대상이 아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조롱'에서 그 어원이 시작된 것에 비해 '재기하다'와 '태일하다'는 일부로 남성혐오에 근간을 둔 단어다. 안타깝게도 노동권 보장을 외치던 전태일씨조차 '한국 남성'이라는 이유로 다른 남성 독립투사들과 마찬가지로 영문모를 조롱을 당하고 있다.
남혐과 여혐은 '''피해의식'''과 '''상대 성에 대한 불이해'''라는 공통 분모에서 시작하며 둘 다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러한 피해의식과 상대 성별의 불이해로 만들어진 혐오가 또 다른 혐오를 연쇄적으로 불러일으켜 서로를 넷상에서 더욱 더 미워하게 될 수 있다. 허나, 이 말의 진위성과는 별개로 '''양 측 모두 서로를 미러링하면서 이해를 할 생각조차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혐오는 결국 차별이며 폭력이고, 이로 인한 2차 피해자가 나타날 가능성 역시 있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을 이용하여 남성혐오를 조장하려는 세력들이 있다. 이들은 경찰에 이어 검찰에서도 여성혐오가 이유가 아닌 정신질환이 문제였다 밝혀도 여성혐오여야만 한다는 듯이 행동을 하기도 했다. 애초에 해당 범죄의 원인이 여성혐오에 있다 하더라도 이를 모든 남자들의 잘못으로 돌리려고 하는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의 행태에 대해선 강남역 시위 충돌 사건을 참조하자.
한편, 남성혐오 세력들은 이 사건을 통해 한국의 모든 남성들이 한국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직간접 관련자이므로 모든 남성은 여성에 대한 잠재적 가해자라는 이론을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다. 즉, 해당 문서에 나왔듯이 이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남성들은 간접적/직접적, 소극적/적극적의 차이만 있을 뿐이며 예외 없이 여성혐오에 가담하므로 (방관 포함) 한국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잠재적 가해자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아무런 죄 없는 무고한 사람들을 상대로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아가는 행동은 형법의 기조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이는 일부 여성의 무개념 언행을 모든 여성으로 간주해서 여성혐오를 하는 남성들과 다를 바 없다.
이에 대한 반발로 다음과 같은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2016년 7월 29일 네이버-국민일보 (페북지기 초이스) ‘남자라서 인격살해 당했다’ 이진욱 미러링글 호평…
한편 진보적 역사학자 전우용은 메갈리아워마드를 비판하면서 강자의 약자에 대한 혐오와 마찬가지로 약자의 강자에 대한 혐오도 비판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2016년 8월 26일 네이버-국민일보 (페북지기 초이스) “한남충 욕먹어도 메갈·워마드 비판합니다” 전우용 글…

전우용 씨는 메갈과 워마드를 비호하는 행위는 오히려 ‘벌레들의 세계’에 유폐됐던 일베를 석방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강자의 약자에 대한 혐오는 부당하나 약자의 강자에 대한 혐오는 정당하다는 주장에 수긍하는 강자는 없다”면서 “오히려 이런 경우 강자는 도덕적 열세조차 극복했다며 기뻐한다. 뉴라이트가 궁극적으로 원한 게 바로 이런 담론세계”라고도 했는데요. 그러니까 불평등한 존재(강자와 약자, 혹은 남성과 여성)들 간의 평등한 경쟁을 억제해온 구실을 해온 게 도덕과 윤리인데 메갈과 워마드는 그 규범을 스스로 깨뜨리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5. 인터넷상의 남성혐오 관련 소문들과 그에 대한 반박


실제로 따져보자. 한국이 OECD 국가 중 1위라고 주장했는데 근거 통계를 보면 한국이 16위인데 한국보다 윗 순위에 같은 OECD 국가인 프랑스(15위), 스페인(14위), 영국(13위), 미국(9위), 캐나다(5위), 호주(3위)가 위치해 있다. 굳이 맞춰주자면 'OECD 아시아 국가 중에서 1위'이긴 하다. 심지어 OECD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OECD의 통계 자료 제출 지침이 딱부러지게 명시되지 않아 무슨무슨 통계 자료를 제출할 때 각 국가별로 기준을 다르게 잡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런고로 세부적인 사항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통계에서 '일본이 54위'인 부분에 대해서 반박자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자료 제출 단계에서 기준을 어이없을 정도로 높여잡는 기가 막힌 꼼수를 부려놨다. 이 자료는 혐한들이 우리나라를 강간대국으로 몰 때 자주 사용하는 자료이기도 하다.. (영상참고. 이 영상은 한국의 성범죄율이 일본의 3배라는 자료에 반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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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도표는 미국과 한국의 10만 명당 강간사건 수이다. 물론, 이 표는 실제 범죄율이 아닌 단순 신고 사례를 표시한 것이고 우리나라의 문화상 범죄 신고율이 외국보다 낮은 것도 감안해야 하겠다만, 통계대로 세 명 중 한 명이라는 뜻은 우리나라 인구 5150만 명 중 절반이 여성이고, 그 중에 1/3이라면 858만 3000명이 강간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치안이 박살났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성폭행이라는 게 피해자한테 얼마나 심각한 상처를 남기고 악영향을 주는지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심각한 문제에 대해 악의적으로 잘못된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로 20년 전에 미국에서도 거의 똑같은 도시전설이 돌았던 적이 있다. 유년기의 친딸 강간 문제를 이슈로 했는데, 무서운 것은, 이런 소리를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자기 기억조차도 그에 맞게 왜곡된다는 것이다. 멀쩡하게 살아온 평범한 여대생들이라도, 그들을 붙잡고 이걸 반복적으로 주입시키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가상의 상황에 대한 온갖 세세한 진술들을 늘어놓으며 자신이 비참하게 살아왔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물론 남성도 이러한 인지적 착각이 가능하다는 점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지만, 행여라도 누군가가 문제삼을 수 있기에 이러한 경향에 성별에 대한 차이가 따위는 없다는 것을 명백히 밝혀두는 바이다.
이 외에도 이들이 별 근거도 없이 일반적인 남성들을 마치 성범죄자 집단처럼 몰아가는 일들은 굉장히 다반사인데, 어떻게 보아도 그저 그들의 남성혐오를 정당화시키는 구실을 만들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위에서처럼 주로 남성들이 즐기는 포르노이거나 개인적인 경험인데, 대부분의 정신이 정상으로 작동하는 남성은 포르노와 현실은 구분할 수 있으며, 그들이 개인적 경험이라 적는 사례는 전혀 진위성을 확인할 수 없다. 아예 조작일 가능성도 높고, 이들이 실제로 경험했다고 주장해도 위 사례에서 보이듯이 거짓이거나 부풀려진 기억일 가능성도 있다.
심각한 일부의 경우 기가 막히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여성을 혐오하거나 성범죄를 저지르는 남성들이 소수이더라도 일반 남성들 또한 그들을 방관했으므로서 암묵적으로 동의했으므로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성범죄 사건이 일어나면 언론과 일반인이 한 목소리가 되어서 공개적으로 강도 높은 비판과 처벌을 요구하는 주장과 질타를 가하고 있고, 만약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고 밝혀지면 즉각 상종 못할 범죄자 취급을 한다.
성매매 관련 기사 또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주장인데, 근거가 많이 부실한 주장이다. 그 근거 통계는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성매매 실태조사에 있는데, 이 통계에서는 한국 남성들 중 성매매를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있다.라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57.6%로 나왔다. 하지만 이 자료는 대표성의 저하, 조사 방법의 객관성 부재 등을 이유로, 기준이 널널하단 통계청에서도 승인이 취소되어 근거로서 가치가 전혀 없는 자료다. 출저
다른 한국 남성의 성매매 비율의 관한 통계를 찾아보면 보건복지부에서 고려대학교에 의뢰하여 연구한 전국 성의식 조사가 있는데 이 연구자료에서는 한국 남성들 중 성매매 경험자의 비율이 아래와 같이 여성가족부의 자료인 57.6%의 절반도 안 되는 25.1%(온라인 조사는 22.6)라는 결과로 나온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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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남성혐오 부정론



주로 페미니즘 계열에서 나오는 주장으로 남성혐오란 개념이 없거나, 혹은 미약하다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상세한 내용은 후술.
일각에서는 이들이 남성혐오라는 개념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 페미니즘 역시 하나의 정치세력화된 기득권이 되었으며, 남성혐오라는 개념이 이들의 기득권을 위협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즉 기득권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비기득권 일반 남성에게 가하는 일종의 사상탄압으로 보는 관점이다.

6.1. 페미니즘 진영의 남성혐오 부정론



6.1.1. 권력 관계에 의한 접근



6.1.1.1. 남성혐오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

철학자인 윤김지영 교수는 혐오는 사회적 강자에서 사회적 약자로 진행되는 감정[20]이기에, '''남성이 사회적 강자인 현재'''에서는 남성혐오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7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다 유럽권 페미니즘 철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극단적인 현학성을 보이는 논문인데, 굳이 간추리자면 혐오는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니,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한 여성들의 소위 '남성혐오' 는 혐오가 아니라 분노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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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혐오/증오라는 파토스에 의해 추동되는 자가 아니라 분노(indignation)라는 파토스에 의해 촉발된 이들이다. 혐오/증오의 파토스는 소수자라는 하위 계급자들에게 향하는 것으로 낙인적 이름들의 증식을 통해 여성을 세분화된 범주 속으로 분류, 식별하려 한다.[31]
이러한 맥락에서 남성혐오는 없다. 나아가 여혐혐이라는 여성혐오에 대한 혐오도 없다. 단지 남근질서[32] 에 대한 분노(indignation), 여성혐오에 대한 분노만이 있을 뿐이다. 혐오는 하위 계급자들을 향한 파토스로 기존 질서의 부조리를 재생산하는 방식이자 기존의 자리와 위치를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이라면, 분노는 상위 계급자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 뒤흔들어놓는 파토스로서 어떠한 것도 안전하고 안온하게 보전하려하지 않는 급진성을 띤다. 즉 여성혐오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와 일상의 배치방식 자체를 탈구하는 것은 기존 질서의 보존에 기여하는 혐오라는 파토스의 연장으로 결코 볼 수 없기 때문이다.[33]

여성학자인 중앙대 교수 이나영 역시 윤김지영 교수와 비슷하게 '''사회적 강자인 남자'''를 향한 남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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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혐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자, ‘백인혐오’ 존재하나요? 백인의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거지, 백인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에요. ‘자본가혐오’는 어때요. 재벌의 이중적인 행태를 비판하는 거지, 돈이 있는 걸 혐오하지는 않잖아요. 다 돈 많이 벌고 싶어 하니까. 더 중요한 건, 거꾸로 백인이 흑인을 혐오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죠? 인간으로 안보죠. 그러니 노예제를 만들었고, 흑인을 비하하고 멸시, 조롱하고 폭력이나 착취, 심지어 살인도 정당화하죠. 그래서 흑인이 백인에게 저항한다고 그게 백인혐오는 아니죠. 그 효과가 백인에 대한 차별, 멸시, 비하, 폭력, 살인 같은 구조적 차별로 이어지나요? 그럴 수 없어요. 힘이 없으니. 마찬가지 아니에요? 개인 남성이 여성들의 언어로 충격을 받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는 있겠죠. 그런데 그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실제로 남성 차별, 폭력, 성폭력, 살인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이를 정당화하는 기제가 되나요? 혐오발언은 효과를 봐야 해요. 특정 집단을 열등한 집단으로 만들고 그럼으로써 차별 구도가 확증, 재생산돼야 혐오라는 거죠. 같은 발언을 해도 집단마다 효과가 그래서 다른 거예요. 그걸 종합적으로 판단해야죠. 영어로 미소지니(misogynyㆍ여성혐오)란 단어는 있어도 ‘남혐’은 없어요.”[34]

페미니즘 리부트》 의 저자인 손희정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도 역시 위와 같이 '''남성이 강자인 현재'''라는 이유로 남성혐오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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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은 사회적인 현상으로서의 남성 혐오는 이야기될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입장이고요. 여성 혐오라고 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멸시의 문화를 바탕으로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남자가 싫어라는 개인적 감정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사회적으로 문제 삼아야 하는 남성 혐오는 구조적으로 사실 아직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런 남성 혐오가 성립하려면 남자들이 제도적으로 차별당하고 생존,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폭력에 시달리며 그리하여 생존적으로 위협에 처했을 때 그런 남성혐오를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지금 페미니즘 운동이 하고 있는 건 남성들의 얼굴, 실제로 여성들이 염산을 맞는 시대인데 남성들의 얼굴에 염산을 뿌리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여성학자 정희진은 '''남성혐오는 비대칭적 사고인 이분법적 관점, 즉 양성 패러다임'''에서는 가능하다고 보지만 여성주의가 가지는 경계선상의 관점에서는 남성혐오가 아닌 여혐혐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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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적 사고의 핵심 문제는 3가지다. 첫째, 위계를 대칭으로 위장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은폐한다. 둘째, ‘대립’하는 이항 외 다른 존재 혹은 다른 방식의 사고 출현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셋째, 남성과 여성의 구분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원형(源塑, archetype)이 되어 모든 언어의 모델, 척도, 기원, 전형으로 인류를 지배해왔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제3의 성’이든, 모든 인간의 상상력을 제한한다.[35]
여성주의는 이분법이 ‘A’와 ‘A가 아닌 것(not A)’, 다시 말해 A를 기원(origin)으로 규범(norm)으로 진리로 만들기 위한 방식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는 남녀 관계가 비대칭적이라는 현실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36]
양성 패러다임에서는 남성 혐오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제까지 논의해온 것처럼 양성은 일방적 차별을 상호 대립으로 둔갑시키는 이데올로기다. 여성들의 대응은 남성 혐오’가 아니라 ‘여혐혐(여성 혐오를 거부함)’이다. 여성주의는 ‘여혐’에 대해 ‘남혐’으로 맞서는 사유가 아니다. 여성주의는 ‘인간’과 ‘인간의 여자’ 혹은 '남성’과 ‘비(非) 남성’으로 나누는 권력에 대한 질문, 인간의 범주에 관한 인식론이다.[37]

페미위키에서도 마찬가지로, 해당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위의 한국 학자들의 이론을 빌려 남성혐오란 것이 없다고 설명한다.
페미위키 남성 혐오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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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남초 커뮤니티에서 여성혐오의 대칭점으로 제안하는 개념으로서의 남성혐오(misandry) (존재하지 않는 개념)
그러나 사회적인 여성혐오에 대응하는 남성혐오란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여성혐오가 사회가 공유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더불어 공고해지고 있는 반면, '남성혐오'라 일컬을 만큼의 체계적이며 제도적인 반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남성 혐오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이는 앞으로 사회가 얼마나 평등해지건, 지난 역사와 의식 안의 여성 혐오가 남아있는 한 절대로 바뀔 수 없으며 바뀌어서도 안 되는 진실이다.
하지만 위 사례는 대부분 맨박스(남성의 '남성다움'을 강요하는 것)의 사례다. 하지만 맨박스는 남성이 '남성스럽지 못하고 여성스럽다는 점을 비난'하는 것, 즉 남성이 지닌 여성성을 혐오하는 것이므로 여성혐오(혹은 가부장제)의 또 다른 모습이다.
즉 이들이 제시하는 모든 것은 가부장제와 여성 혐오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들의 논리에 대해 더 자세한 기원을 알고 싶다면 '''정동''' 문서를 함께 참고해보자.

6.1.1.2. 제한적으로 남성혐오가 가능하다는 입장

일본의 사회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우에노 치즈코는 혐오가 권력이 있는 사람이 권력이 없는 사람을 멸시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서, 이 논리를 토대로 젠더 권력의 비대칭 속에서 여성혐오가 사회 전반에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런데, 우에노가 여성 역시 위와 같은 논리를 따라 특수한 상황에서 남성을 혐오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사실은 매우 덜 알려져 있다.
여기서의 "특수한 상황" 이란 바로 '''성매매'''를 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내들이 남편의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언제 어느 때라도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흔히 받아들여지는 반면, 성매매 여성들은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금액을 남성이 자기 전상에 바칠 때까지는(...) 섹스 요구에 "No" 라고 거부할 권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매수 남성들이 이때 상대방 여성의 가치를 질이라는 성욕충족 도구로 환원하는 여성혐오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성매수 남성의 가치를 욕망이 그득 담긴 채 발기된 페니스로 환원하는 남성혐오를 한다고 한다. 우에노는 이때 여성이 남성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화대를 낮게 부르는 전략[21]을 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도쿄전력 여직원 살인사건을 대상으로 분석해 보인 바 있다.
종합적으로 우에노 역시 여성혐오가 만연해 있다면 남성혐오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며 권력의 여부에 따라 그 심각성의 경중을 달리하기는 하나, 때로 여성 측에서 권력을 잡았을 때에는 여성도 남성을 혐오할 수 있다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했다. 물론 바로 위에 소개된 사람들을 포함한 많은 강성 운동가들은 "어차피 그래봐야 성매매 산업 자체가 여성억압적이고 착취적인 것이므로 결국에는 그것도 남성혐오가 될 수 없다" 고 반발하는 등, 여전히 논쟁은 가시지 않고 있다.
한편 이화여대 철학과 김선희 교수는 자신의 저서 《혐오 미러링》 에서 '''남성혐오가 가능하기는 하되, 젠더 권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개인의 혐오 정동 이상으로는 나아가기 어렵다'''고 언급하였다. 위의 윤김지영의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이 도서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혐오하는 것이 무작정 "약자니까 이건 혐오가 아니고 분노" 라고 언급할 것이 아니라, 설령 분노의 정동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거기에 혐오의 정동도, 다른 제3의 정동도 '''함께 섞여있을 수 있다'''고 반론했다. 그리고 여성이 남성을 혐오하는 것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서 '''워마드미러링'''을 들었다. 즉 미러링 그 자체를 남성혐오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6.1.2. 남성혐오는 페미니즘의 메시지가 아니라는 입장


반남성적(anti-male) 메시지가 실제로 존재하며 여기에 페미니즘이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는 페미니스트 역시 존재한다.
델라웨어 대학교에서 철학여성학을 가르치는 페미니스트이자 남성성 및 페미니즘 대중화를 연구하는 해리 브로드(H.Brod)는 자신의 저술에서[22] 반남성적인 메시지는 페미니즘으로부터가 아니라 (원서의 표현을 바로 빌리자면) '''"반여성주의 우익 이데올로기"''' 에서 나온 것이고, 더 이상 사회진보적 운동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페미니즘은 남성의 본성을 불신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성들이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었다. 반남성적 정서를 가지기에 충분한 경험, 아니 그 이상의 경험을 겪었음에도 여성들은 남성에 대한 신뢰를 유지해 왔다.

이런 이유로, 나는 어떤 진보 조직이나 운동도 남성을 타고난 강간범이나 폭력범으로 그리면서 남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급진적인 주장으로 포장되어 나타나거나 생물학적 결정론이 사회 결정론으로 포장된다 해도,[23]

그런 이미지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다.''' 그들은 남성을 변화를 요구할 수 있으며 또한 변화를 격려해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남성은 변화할 능력이 없는 존재, 단순히 반대되거나 폐기되어야 하는 존재로 냉혹하게 묘사된다. '''반남성 이미지는 정확히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반대되어야 한다.''' 그런 이미지는 그것을 제시한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결국 그들을 '''보수적인 위치에 놓이게 한다.''' 나는 그런 위치에서는 '''어떤 진보 운동도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 해리 브로드(H.Brod), pp.275-276 (김고연주, 이장원 공역) (일부 구문은 나무위키에서 자체 강조)

미국의 흑인 페미니스트이자 작가인 벨 훅스(B.Hooks) 역시 반남성적이고 분리주의적인 래디컬 페미니즘에 비판적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들에서 인종차별 운동 역시 결과적으로는 압제자 위치에 있던 백인들의 이해와 협력을 통해서 진전할 수 있었다고 말하면서, 페미니즘 역시 반남성적인 남성관을 버릴 것을 주장했다. 특히 하위 계층으로서 여성들은 상위 계층의 다른 여성들보다는 하위 계층의 남성들과 더 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반남성적 메시지를 설파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의 관점에서는 그저 "부르주아 특권층 백인 여성들이 다른 특권층 백인 남성들의 혜택을 빼앗아 오려는", 어찌보면 밥그릇 싸움(...)과도 같은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프랑스의 여성학자이자 모성신화(myth of motherhood)에 대한 비판으로 페미니즘 철학에 기여한 바 있는 엘리자베트 바댕테르(E.Badinter)는 자신의 저서 《잘못된 길》(Fasse Route)에서, 1990년대 무렵에 프랑스에서 발흥하던 문화적 페미니즘(cultural feminism) 및 성부정론 페미니즘(sex negative feminism)이 페미니즘의 본래 철학적 인식론을 저버리고 "생물학적으로 남성인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강간범이고 성범죄자이며 가해자이다" 의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를 철저히 따르는 페미니스트로서, 바댕테르는 사회적 합의로서의 젠더, 즉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의 대명제에 위배되는 '''생물학적 본질주의'''를 따른 결과 이들 페미니즘이 오히려 퇴보를 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들이 남성의 생득적인 본질에 호소하는 이상, 남성은 물리쳐야 할 적으로 상정되며, 이는 남성 전반에 대한 비난만을 초래할 뿐 여성들의 현실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한 성에 대한 집단적 비난은 성차별주의적이며 정의롭지 못하다.''' 폭력 자체를 남성들의 슬픈 특권으로 만들어 버리고, 정상적인 것과 병적인 것을 혼동하면서, 우리는 오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진으로는 올바른 처방을 내리지 못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오로지 남자들과의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평등을 이루어 나가는 것만이 여성의 조건을 개선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주인으로부터 특권을 빼앗기 위해서는 저항을 하고 으르렁거려야만 한다는 걸 대부분의 여성이 알고는 있지만, '한 성이 고통스러워할 때에는 다른 성도 역시 고통스러워하게 된다' 는 마거릿 미드의 이야기가 옳다는 것도 알고 있다. 여성운동에 의한 변화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는 여자들도 있고,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는 여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남자들과 함께 더욱더 잘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 엘리자베트 바댕테르(E.Badinter), pp. 81; 180 (나애리, 조성애 공역) (일부 구문은 나무위키에서 자체 강조)


6.2. 페미니즘 진영의 남성혐오 부정에 대한 비판



6.2.1. 현대 페미니즘 시초의 남성 혐오 비판


현대 페미니즘을 시작한 대표적 리더 베티 프리단은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남성혐오 성향을 명백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사실은 유아인 사이버 불링 사건 때 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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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단은 만일 1960년대의 여성들이 '여성적' 신비의 희생자라면, 1980년대의 여성들은 '페미니즘적' 신비의 희생자였다고 말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여성들을 그들의 꿈에서 이탈시킨 것은 프리단에 의하면 "성희 정치학"[38] 이었다. 프리단은 모든 남성들이 여성을 혐오하는 포르노 작가이고, 매춘 중개인이고, 성추행자이고, 강간범이고, 여성학대자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반생산적이라고 천명했다. 그러한 "남성 혐오증"은 부당하다.''' 그녀의 판단으로는 많은 남성들이 여성들을 좋아하고 사랑할 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남성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페미니즘은 그 어느 것이라도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로즈마리 통 지음; 이소영 옮김 , 『페미니즘 사상 : 종합적 접근』, 서울: 한신문화사, 1995, 36쪽유아인 갤러리에서 재인용

베티 프리단은 현대 페미니즘 운동을 시작하고 미국 페미니즘의 초석이 되는 책을 저술했다. 행동주의적 저작과 그녀의 책 《여성의 신비》은 여성 운동가에 참여하는 작가, 교육자, 작가, 인류학자, 기자, 활동가, 조직, 노동 조합 및 일상 여성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는다.[24] 이 책은 또한 상단의 한국 논자들이 취하는 입장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는 가장 대표적인 권위 있는 서적이다.

6.2.2. 남성이 사회적 강자임을 입증 실패


윤김지영 교수를 위시하여 많은 여성학자들의 일관된 입장은, "여성은 사회적 약자이므로 여성에 대한 멸시가 여성혐오라고 보는 것은 온당하나, 남성은 사회적 강자이므로 남성에 대한 멸시는 혐오라고 볼 수 없으며, 굳이 표현해야 한다면 남성에 대한 저항이 된다" 는 것이다. (이 주장을 편의상 '남성혐오 불성립론' 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 논리를 살펴보면, 만일 우리 사회가 남성이 사회적 강자라는 점을 납득할 수만 있다면, 남성혐오로 알려진 여러 사건들 역시도 사회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남성혐오 불성립론이 대중적 상식의 차원으로 확산됐다는 징후는 없다. 박가분리얼뉴스 기고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 남성혐오 불성립론은 페미니스트들의 담론의 영역에서만 그쳤을 뿐, 현실규범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워마드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도촬 사건에 관련하여, 그는 여성인 판사가 참여한 재판부조차도 워마드를 '남성혐오 사이트' 로 명시했음을 지적했다. 페미니즘 비판자 중 하나인 이선옥 역시 자신의 웹 사이트에서 "보통의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론으로 대중을 윽박" 질러 왔다고 말했으며, # 경향신문 기고에서도 "이념의 장에서 남성혐오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규범의 장에서 여혐과 남혐은 모두 모욕과 명예훼손으로 처벌" 될 뿐이라고 단언했다. # 요컨대, 남성혐오 불성립론은 사법부를 납득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얘기다.
물론 이론이 항상 대중적 상식과 일치할 의무는 없다. 때로는 반직관적(counter-intuitive)인 이론이 등장해서 사람들의 인식을 뒤집어 놓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남성혐오 불성립론은 어째서 대중의 인식을 바꾸지 못한 채 그들만의 고담준설로 남게 되었냐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남성은 사회적 강자이므로 남성혐오는 없다" 고 외친다는 것을 대중들도 이제 잘 알지만, 한편으로 대중들은 "여혐이 나쁜 것처럼 남혐도 해서는 안 되는 것" 이라고 여전히 인식한다. 남성혐오 불성립론이 대한민국 사회를 설득하지 못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그 중 무시할 수 없는 하나는 '''현실인식을 달리하는 사람을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는 데 있다. 바꿔 말하면, '''이론의 자기객관화에 실패함으로써 제도권에 진입하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으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통계량과 같은 객관적 수단으로 실태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페미니스트들의 사변에서 통계는 늘 숫자놀음처럼 취급되지만, 실상 그 숫자놀음이야말로 현실인식을 달리하는 사람들까지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너는 나와 다르게 인식하지만, 우리 둘 다 사실은 같은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는 점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그리고 사실은 유일한) 무기가 바로 숫자다. 그래서 제도권에 밀접한 사람들일수록 늘 "숫자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같은 말을 강조하곤 한다. 여타 이론들이 외적 세계에 대한 관찰을 통해 통계적 분석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동안, 남성혐오 불성립론은 정동(affekt)에 대한 철학적, 관념적, 비평적 논설에 집중했을 뿐, 남성들이 사회적 강자라는 핵심 전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실태조사 결과조차 내놓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안티/포스트페미니스트들에게 "남성이 사회적 강자라는 근거가 어디 있냐" 는 공격을 받는다.
그런데 사실, 이들이 정량적인 입증을 시도했다 하더라도 이 전제는 수치상으로 보여주기가 매우 까다로운 종류에 해당한다. 남성들이 사회적 강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어떤 사회적 지표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 사회는 계급사회가 아니며, 인류학적 부족사회처럼 귀인들이 시인성 높은 장식이나 문신을 하는 사회도 아니고, 대한민국 헌법을 통해서 '적어도 겉으로는' 전 국민이 평등하게 행복할 권리를 보장한다고 자신하는 사회다. 이런 사회 속 어딘가에 강자들이 숨어있다고 할 때, 그들의 권력을 명확한 숫자 몇 개로 보여주는 것은 매우 어렵다. 여성학이 양적 접근보다는 질적 접근에 천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남성혐오 불성립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전제, 즉 '남성은 사회적 강자' 라는 진술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워져 온 지표들로는 대개 다음의 것들이 있지만, 그 중 어떤 것도 '''남성이 사회적 강자임을 명쾌하게 입증하지 못한 상태이다.'''
리버럴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전체에서 숫자에 가장 친화적인 분야다. 국회의원 여성 비율이 몇 %, 이공계 여성 교수 임용률이 몇 %, 임금격차가 월별 몇 만원, 대한민국의 성격차지수 세계 몇 위 등, 이런 통계들은 실제로 페미니스트들이 여성할당제 등의 정책들을 내세우기 위해 자주 활용되었다. 여성가족부 역시 업무성과를 평가할 때 이런 지표들을 주로 활용하며, 실제로 이런 숫자들이 '우려할 만한' 수준일 때에는 페미니즘의 필요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이런 지표들이 갖는 문제는, 결국 대안적 설명을 너무 많이 열어둔다는 것이다. 위에서 나열한 통계들 중에 구구한 반론이 없었던 지표는 단 하나도 없었으며, 성격차지수의 경우 남성의 사회적 우위를 입증하는 데 직접 활용하기에는 너무 많은 한계점들이 발견되었다. 임금격차의 경우 수많은 원인들이 임금수준에 관여하기 때문에 이를 일일이 다 뜯어봐야 한다. 차이가 존재한다 해도, 그 차이는 차별로 인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숫자들은 왜곡과 오염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남성이 사회적 강자인 것처럼 '착각' 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안티/포스트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며, 이 수치들만 가지고는 이런 반론을 물리치기가 어렵다.
  • 성 관련 이슈에 대한 인식조사?
KOSIS에서 양성평등 실태조사 등을 검색해 보면 거의 대다수가 '~에 대한 견해', '~에 대한 인식' 과 같은 인식조사로 채워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실태조사가 객관적이고 제도적인 상황을 살핀다면, 인식조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를 살핀다. 인식조사를 통해 남성이 사회적 강자임을 입증하고자 한다면, 결국 "귀하는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기회를 갖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사회적 성취보다 남편을 내조하는 것이 여성들에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같은 식의 질문지법을 활용하게 된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암묵적 연합 검사(IAT; implicit association test)라 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여성에 대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호오의 태도를 컴퓨터로 탐지할 수 있는 기술이 마련되어 있다. 페미니즘에서도 의식 고양(consciousness raising)이라 하여,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대중이 경각심을 갖게 하는 방법론을 활용하고 있다.
인식조사를 지표로 활용할 경우 갖는 문제는, 직접적으로 설득하기에는 지나치게 간접적인 지표라는 데 있다. 성차별이 엄존하는 실태를 파악하고 싶은데, 내세우는 자료라고는 사람들의 주관적 인식일 뿐인 것이다. 결국 그 해석도 "우리 사회가 객관적으로 남성 우위라더라" 가 아니라 "사람들이 대개 남성 우위로 느낀다더라" 로 바뀌고, 설득의 힘도 많이 빠지게 된다. 여성가족부 역시 많은 예산을 섣불리 굴리지 못하고, 그저 '공무원 양성평등 특강', '인식 개선 사업', '성교육 의무 이수' 같은 부스러기 사업들만 가능할 뿐이다.[25] 인식조사 결과 "사람들은 정말로 남성을 강자로 인식한다더라" 해석이 나와도, 이런 식으로는 여성을 직접 대등한 강자의 자리까지 끌어올려 주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람마다 주관적 인식은 조금씩 다 다르기 때문이다.[26]
법무부경찰청에서 발행하는 백서나 각종 통계자료들은 페미니즘 진영에서 여성안전 이슈를 부각시키기 위해 즐겨 활용된다. 특정 성범죄가 발생하는 연간 추이, 특정 성범죄의 가해자 성비, 특정 성범죄의 피해자 성비 등을 통해서 남성이 우위에 있음을 입증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성범죄 가해자가 주로 남성이고, 피해자가 주로 여성이라면, 이는 남성이 육체적 완력을 바탕으로 여성의 신체를 지배하고 억압하는 사회라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페미니즘 분야에서도 《페미사이드》 를 비롯하여 여성 대상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의 근거를 제시하려는 흐름이 존재해 왔다.
이 경우의 문제는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 성범죄 이슈 자체가 페미니즘 담론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사회적 강자 여부를 가리는 데 특정 범죄만을 놓고 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성범죄 분야에서 여성이 명백히 피해자로 나타나는 경향이 관찰된다 해도, 남성들의 피해 비율이 여성들보다 더 높은 범죄 유형들도 분명 존재한다. 세상에 범죄는 성범죄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며, 다른 범죄 피해들에서 남성들이 더 많은 피해를 본다는 주장이 들어온다면 이에 대해서는 남성이 강자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성범죄로부터의 안전을 보장하자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러니까 남성이 사회적 강자가 된다' 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못할 수 있다.
  • 정상성과 문화 규범에 대한 분석?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성을 정상성(normativity)으로 분류하는 규범이 사회에 내재되어 있다고 본다. 여기서 규범은 제도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은 사회화의 압력이며, 이로부터 암묵적인 불이익의 형태로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규범을 누가 만들고 어떻게 주입하느냐에 대한 의문이 발생하며, 이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은 대중문화에 대한 비평이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문화비평 분야에 페미니스트들이 자주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문화 콘텐츠 속에서 남성성의 정상화 및 여성의 대상화(objectification)가 발견된다면, 이는 남성이 사회적 강자의 위치에 있음을 입증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관점이다.
이렇게 접근하는 것의 문제는 양적인 객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사회화, 암묵적인 규범적 압력, 미디어의 시각적 도상들을 어떻게 손에 잡히는 숫자의 형태로 바꾸어 보여줄 것인가? 문화비평 분야에서 롤랑 바르트 같은 철학적 사변들과 현학적인 이론화가 흔한 것은 역시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숫자 없이는 제도권을 움직이게 만들 수 없다. 숫자가 없으면 사회를 바꾸고 싶어도 '언제까지, 어디까지' 바꿀지에 대한 정책적 기준이 나오지 않는다. 결국 상기한 인식조사의 형태로 남성우위적 규범의 존재여부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 뭇 여성들의 삶의 경험에 의거한 호소?
82년생 김지영〉 에서도 그렇지만, 사실 대다수의 페미니스트들은 줄곧 '여성이기에,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의 역경의 경험' 을 중심으로 성차별의 존재를 실감해 왔다. 상담심리학계의 미세공격성 이론에서도 비슷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는데, 요컨대 어떤 집단이 사회적 약자로서의 경험을 반복적으로 겪는다면, 그 집단이 주장하는 사회적 대립구도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이를 피해망상이라고 무시하는 것이 또 다른 가해가 된다는 것이다. 여성학계에서 통계에 대해 시큰둥한 이유 역시, 숫자로는 여성들의 미묘한 삶의 어려움이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 심지어는 여성억압에 대한 간접경험을 갖고 있는 남성들까지도 통계 따위 없이도 경험의 공유를 통해 곧바로 설득이 가능하다는 관점이다.[27]
더 말할 것도 없이, 이는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이심전심은 될 수 있어도 경험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설득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비단 남성들뿐만 아니라 억압의 경험이 많지 않거나 혹은 당연한 것으로 교육받아 온 여성들 역시, 남성이 강자인 사회라는 대전제에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개인의 삶이 파편화되고 실력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는 간접경험을 쌓기도 어렵거니와 그나마 억압을 목격한다 해도 당사자의 부족한 능력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숫자가 없음으로 인하여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한계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동일한 경험을 지닌 수많은 여성들을 결집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끝내 설득되지 못한 채 진짜로 저렇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생각한다. 양쪽이 살아가는 세계가 같음을 객관적 숫자로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적절한 숫자가 없으면 결국 '남성은 사회적 강자이고 여성은 사회적 약자이다' 라는 성차별 담론의 대전제 자체가 지속적으로 위협받게 된다.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안티/포스트페미니스트들을 설득할 방도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진영에서 아무리 '남성은 강자이니 남성에 대한 멸시는 혐오가 아니라 저항이다' 라고 외쳐도, 남성이 강자라는 대전제 자체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남성들은 여전히 멸시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도 이런 상황을 원하지는 않지만, 상기한 여러 한계점들로 인하여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이렇게 차별이 존재합니다! 남성은 기득권을 잡고 있는 강자입니다!" 를 입증할 근거를 찾지는 못하고 있다.'''[28]
차별의 실태를 숫자로 드러내 보임으로써 얻게 되는 또 다른 이점은 '''사회의 일반적 문제와 개인의 특수한 문제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귀분석의 경우 도출된 회귀선으로 얼마나 많은 오차가 설명되는지 판단할 수 있고, 분산분석의 경우 급간분산과 급내분산이 서로 얼마나 구분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남성들이 사회적 강자라고는 해도, 세상에는 여성들의 멸시로부터 취약한 남성 개인들이 분명 존재하고, 기득권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남성들도 존재한다. 이것이 그 남성 개인의 특징인지 아니면 남성 집단 전체의 특징인지 구분하려면 결국 통계가 있어야 한다. 숫자를 통해서 남성들이 실제로 현저한(significant) 수준에서 사회적 기득권을 획득하였음이 확인된다면, 그때는 감히 반론을 펼치기가 힘들다.[29]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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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반적으론 성적대상화는 대부분 여성이 그 사례인 경우가 많으나 재범오빠 찌찌파티같이 남성이 그 대상이 경우가 되는 것도 상당수 존재한다.[2] 성별만 반대로 놓으면 바로 여성혐오의 정의가 된다.[3] 이 쪽은 일반적인 남성혐오가 아니라 일부에 극한된 혐오나 아니면 성소수자가 일반적인 성개념을 지닌 대상 또는 그 일반적인 성개념만을 주장하는 사람을 혐오하는 등 비주류가 주류를 혐오하는 것으로 보는게 더 확실하다.[4] 스타워즈 1요다가 했던 대사 중 하나인 '''"두려움은 분노를, 분노는 증오를, 증오는 고통을 가져온단다."'''가 이 경우와 거의 유사한데, 간단히 말하면 너무 심한 혐오감 끝에 남성이란 존재를 유령같은 비현실적 존재와 비슷한 존재로 인식하고 두려워하게 되는 경우나 남성공포증을 가진 환자가 뒤틀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어 공포보단 복수심,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에 지배당해 남성혐오가 되는 경우등이 대표적인 사례.[5] 참고도서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저자 이민경)' 관련 링크 참고 [6] 대경권은 2000년대 초반까지[7] 위에서 상술했지만, 남성이 집을 해오는 것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저 당시엔 남성이 그만큼 특혜도 받았기에 그냥 넘어간 반면, 신세대 남성은 IMF 이후에 태어난 경우가 많았고, 경제불황을 겪은데다가 집값도 훨씬 비싸졌으므로 저런 게 당연히 역차별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8] 물론 래디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의 외모에 대한 품평에 지적이 없는 것은 남성은 성적 주체로써 살았기에 그렇다고 하지만, 20대 남성 입장으로는 이뭐병일 것이다.[9] 이때 당시의 TV광고 등지에서 이러한 경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표현들이 넘어갈 수 있었던 것도 역시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던 남성혐오 = 여성에 대한 차별로 지는 멍에라는 정서 때문이다.[10] 미투 운동의 피지목자가 주로 어떤 세대인지 생각해보면 된다. 물론 스쿨 미투인 경우는 가끔씩 30대 남성 교사가 걸리기도 하지만, 이쪽에서도 주로 지목되는 세대는 바로 40대 이상이다.[11] 여성시대/사건사고 항목 참조[12] 이들 대부분의 기본적으로 살아갈 수입을 얻는 데에만 수년~수십년간 돈을 벌 생각에 매달리는 현실에 비하면 너무 잦은 빈도로 경제적, 물리적인 힘이 지나치게 강하게 묘사되고 자주 비웃는 사람, 연극이나 드라마, 소설 등에서는 범죄, 폭력, 강간, 살해자(가해자) 입장의 모습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의 많은 장애인 남성 및 여성 분들과 저소득 층의 남성 및 여성 분들은 이렇게 산을 뽑을 것처럼 자기 신세에 함부로 날뛸 수가 없고 개인주의가 극도로 발달된 2010년대에는 이러한 편견이 매우 인식 개선이 되어 미개하고 폭력적인 성향 등을 자체적으로 배제한다. 계속 노력해서 안정될 수 있는 직업, 그리고 단 한 명의 배우자와 아이의 삶을 영원히 행복 속에 기억하고 싶어서 계속 고민하는 남성들이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13] 물론 오히려 그 특성때문에 냉철하게 판단하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14] 다른 이유로는 레즈비언들이 사귈 여자들을 이성애자 남자들이 빼앗아가고, 심지어 레즈비언 자신들한테까지 사귀자고 작업을 걸어오는 남자들을 레즈비언들이 혐오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15] 이걸 이성애자 남성-이성애자 여성으로 바꾸면 여초 커뮤니티에서 종종 쓰이는 그 의미가 된다.[16] 서프러제트에 대한 고문, 중동 페미니스트에 대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암살, 페미니스트를 추물로 묘사하기, 페미니스트를 정신이상자로 간주하기[17] 참고로 이들은 여성은 본질적으로 남성과 다르고,여성은 오직 생물학적인 여성만의 인권운동을 해야 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얘네들은 트랜스여성이나 트랜스남성도 배척한다.[18] 이후 페미니즘 지지를 철회했다.[19] 단 25%도 많은 수치이다. 4명 중 1명이 성매매 경험자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의 위신,평판 등을 위해 성매매 유무를 이야기하기 꺼려하는 경우가 많기에 실제로는 최대 10% 정도까지 더욱 많을 수도 있다. 그래도 절반은 안 된다.[20] 실제로 사회적으로 쓰이는 혐오는 이런 의미로 쓰인다. 대표적인 게 아시안혐오, 동성애혐오,노조 혐오 등[21] 이 전략이 맞다고 가정하면, 도쿄전력 여직원은 SM클럽에서 일 하다가 본인 마음에 드는 남자 손님 3~4명만 골라서 매춘 비용을 깎아줬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성매수자 중 한 명은 불법체류 외노자였다.[22] Brod, H. (1998). To be a man, or not to be a man: That is the feminist question. In T. F. Digby (Ed.), Men doing feminism (pp.269-292). NY:Routledge, New York.[23] 첨언하자면 "어차피 너네들이 한국 땅에서 한남으로 살아가는 이상 이미 글러먹었으니까 알아들었으면 그냥 가서 재기해 ^^" 같은 식의 발언을 하는 것은, 자기들이 비판해 왔던 "여자들은 DNA 수준에서 수학 과학을 못 하는 천성으로 타고났으니까 가르칠 필요도 없다!" 는 생물학적 결정론적인 배경의 성차별 발언과 똑같은 수준으로 꼴통(...)스럽다는 말이다.[24] "Friedan is credited for starting the contemporary feminist movement and writing a book that is one of the cornerstones of American feminism. Her activist work and her book The Feminine Mystique have been a critical influence to authors, educators, writers, anthropologists, journalists, activists, organizations, unions, and everyday women taking part in the feminist movement." 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 Tributes to Betty Friedan. "Archived copy".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May 11, 2008. Retrieved 2008-04-29. https://en.wikipedia.org/wiki/Betty_Friedan#cite_ref-NowTribute_74-0에서 재인용 [25] 여성가족부가 공직세계에서 보잘것없는 힘을 갖게 되는 것도 바로 인식조사 외에는 행정활동의 정당화가 힘들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인식이 문제라면 인식을 바꾸는 교육을 해야 할 텐데, 교육/특강 관련 사업들치고 큰돈 들어가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시피하다. 게다가 여가부 3대 업무분야가 양성평등/일탈청소년/모성지원 이렇게 나눠지는데, 평등을 제외한 나머지 두 개도 각각 교육부보건복지부에 상당 부분 겹치는지라 뭘 크게 해볼 수가 없다. 자기들도 다른 부처들에서 놓치는 사각지대를 뒤치다꺼리한다고 자조할 정도.[26] 예컨대 한 명의 남성 초보운전자는 그 한 명의 문제로 남지만, 한 명의 여성 초보운전자는 여성운전자 전체의 문제로 인식되는 경향이 발견된다 해도, 그럼 초보운전자를 공평하게 인식하는 사람이 살아가는 주관적 세계에서는 남성이 강자가 아닌 것이 되냐는 의문이 남게 된다.[27] 예컨대 나이 지긋하신 5060 세대 남성들의 경우, "그때만 해도 우리 누나가 나보다도 훨씬 공부를 잘 하는 분이셨는데, 나랑 내 동생들 먹여살려야 한다면서 학업을 포기하셨었지..." 하면서 안타까워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28] 이는 차별이 없어졌음을 주장하는 포스트페미니즘 진영 역시 똑같이 해당되는 부분이다. 성차별의 실태를 파악할 적절한 측정 지표가 없다 보니, 차별이 있음을 주장하는 페미니즘 진영처럼, 이들 또한 차별이 없어졌음을 객관적으로 밝히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도 유리천장 같은 '숫자 친화적' 인 이슈 외에는 전부 자기 경험에 의지할 수밖에 없으며, 경험을 달리하는 페미니스트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29] 사실, 가장 근본적이고 교과서적이며 정석적인 방법은 결국 남성과 여성이 서로간에 삶의 경험을 공유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이다. 상대방이 어떤 어려움을 갖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상대방도 자신만큼 힘든 삶을 살고 있음을 이해하고, 자신이 알지 못했던 그 성별만의 고유한 어려움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다른 숫자가 없더라도 모두가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이상에야 평등의 대의에 다같이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성차별의 존재를 입증할 수치상의 '스모킹 건' 을 찾는 것보다는 더 건설적이다. 지금껏 무한대립을 반복하던 한국 남녀의 이해관계를 동일하게 하기 때문에 워마드 식 진영논리에는 매우 껄끄러운 제안이 되겠지만 말이다.[30] 워마드 호주국자 아동 성범죄 사건을 통해 AsiaOne 기사에서 남성혐오 사이트라고 명백하게 규정한 케이스이기도 하다. 국제언론에서 공인한 남성혐오 사이트라는, 그야말로 나라망신의 극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