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테레사(양시칠리아)
1. 소개
프란츠 2세의 아내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후이자 오스트리아 제국의 첫 황후이다. 양시칠리아 왕국의 페르디난도 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의 10녀 마리아 카롤리나의 장녀이며, 프랑스의 황후 마리 루이즈와 페르디난트 1세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양시칠리아 왕국의 페르디난도 1세와 마리아 카롤리나의 6남 10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이름은 외할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이름을 이탈리아식으로 따와 지어졌다. 그녀는 결혼할 때까지 어머니 마리아 카롤리나가 좋아했던 딸이었다고 한다.
1790년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대공의 첫번째 아내인 뷔르템베르크의 여대공 엘리자베트가 아이를 낳던 중 사망한 이후, 그가 나폴리의 공주와 결혼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신붓감으로는 마리아 테레사와 여동생 루이사가 모두 거론되었으나 최종적으로 마리아 테레사가 낙점되었다. 루이사 공주는 토스카나 대공국의 대공 페르디난도 3세와 결혼하였다.
2.2. 오스트리아의 황후가 되다
1790년 9월 15일 마리아 테레사는 사촌인 프란츠 2세와 결혼하였다. 그는 1792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고 1806년에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에 즉위하였다.
두 사람은 성격은 많이 달랐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프란츠 2세는 차분하고 진지한 성격이었지만 마리아 테레사는 (어머니 마리아 카롤리나를 닮았는지) 활달한 성격을 지녔었다고. 그녀는 외가이자 시집 온 빈에서도 잘 적응하였고 많은 사교 활동을 좋아하여 임신한 중에도 모든 무도회와 카니발에 참석하여 춤을 췄다고 한다. 정치 활동에도 관심이 많아 남편의 좋은 조언자이기도 했는데, 나폴레옹 1세를 매우 싫어하였다.[1]
1807년 4월 13일, 마지막 아이를 조산한 이후 합병증으로 3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가족관계
3.1. 조상
3.2. 자녀
[1] 그녀의 어머니인 마리아 카롤리나 역시 나폴레옹을 싫어했는데 프랑스 혁명에 희생된 마리 앙투와네트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장녀 마리 루이즈는 훗날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그토록 증오했던 나폴레옹 1세와 결혼하여 프랑스의 황후가 되었다.[2] 요제프 1세의 장녀이다.[3] 페르디난트 3세의 외손자이다.[4] 루이 13세의 손녀이다.[5] 나폴레옹 2세[6]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1세의 3녀이다.[7] 마리아 2세, 페드루 2세 등[8] 페르디난도 1세의 5남이자 프란츠 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의 외손자이다.[9]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의 5녀이다.[10] 프란츠 요제프 1세, 막시밀리아노 1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