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테레사(양시칠리아)

 

<colcolor=#000000> '''Maria Teresa'''
'''이름'''
마리아 테레사 카롤리나 주세피나 디 보르보네
(Maria Teresa Carolina Giuseppina di Borbone)
'''출생'''
1772년 6월 6일
나폴리 왕국 나폴리 왕궁
'''사망'''
1807년 4월 13일 (34세)
오스트리아 제국 호프부르크 궁전
'''배우자'''
프란츠 2세 (1790년 결혼)
'''자녀'''
마리 루이즈, 페르디난트 1세, 마리아 카롤리네, 카롤리네 루도비카, 마리아 레오폴디나, 클레멘티나, 요제프 프란츠, 마리아 카롤리네, 프란츠 카를, 마리아 안나, 요한 네포무크, 아말리에 테레지아
'''아버지'''
페르디난도 1세
'''어머니'''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카롤리나
'''형제'''
루이사 마리아, 카를로, 마리아 안나, 프란체스코 1세, 마리아 크리스티나, 마리아 크리스티나 아말리에, 젠나로, 주세페, 마리아 아말리아, 마리아 안토니아, 마리아 클로틸다, 마리아 엔리에타, 레오폴도, 알베르토, 마리아 이사벨라
1. 소개
2. 생애
2.1. 어린 시절
2.2. 오스트리아의 황후가 되다
3. 가족관계
3.1. 조상
3.2. 자녀


1. 소개


프란츠 2세의 아내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후이자 오스트리아 제국의 첫 황후이다. 양시칠리아 왕국의 페르디난도 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의 10녀 마리아 카롤리나의 장녀이며, 프랑스의 황후 마리 루이즈페르디난트 1세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양시칠리아 왕국의 페르디난도 1세와 마리아 카롤리나의 6남 10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이름은 외할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이름을 이탈리아식으로 따와 지어졌다. 그녀는 결혼할 때까지 어머니 마리아 카롤리나가 좋아했던 딸이었다고 한다.
1790년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대공의 첫번째 아내인 뷔르템베르크의 여대공 엘리자베트가 아이를 낳던 중 사망한 이후, 그가 나폴리의 공주와 결혼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신붓감으로는 마리아 테레사와 여동생 루이사가 모두 거론되었으나 최종적으로 마리아 테레사가 낙점되었다. 루이사 공주는 토스카나 대공국의 대공 페르디난도 3세와 결혼하였다.

2.2. 오스트리아의 황후가 되다


1790년 9월 15일 마리아 테레사는 사촌인 프란츠 2세와 결혼하였다. 그는 1792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고 1806년에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에 즉위하였다.
두 사람은 성격은 많이 달랐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프란츠 2세는 차분하고 진지한 성격이었지만 마리아 테레사는 (어머니 마리아 카롤리나를 닮았는지) 활달한 성격을 지녔었다고. 그녀는 외가이자 시집 온 빈에서도 잘 적응하였고 많은 사교 활동을 좋아하여 임신한 중에도 모든 무도회와 카니발에 참석하여 춤을 췄다고 한다. 정치 활동에도 관심이 많아 남편의 좋은 조언자이기도 했는데, 나폴레옹 1세를 매우 싫어하였다.[1]
1807년 4월 13일, 마지막 아이를 조산한 이후 합병증으로 3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가족관계



3.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마리아 테레사
(Maria Theresa of Naples and Sicily)
페르디난도 1세
(Ferdinand I)
카를로스 3세
(Charles III)
펠리페 5세
(Philip V)
엘리사베타 파르네제
(Elisabeth Farnese)
작센의 마리아 아말리아
(Maria Amalia of Saxony)
아우구스트 3세
(Augustus III)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요제파
(Maria Josepha of Austria)[2]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카롤리나
(Maria Carolina of Austria)
프란츠 1세
(Francis I)
로트링겐 공작 레오폴트
(Leopold, Duke of Lorraine)[3]
오를레앙의 엘리자베트 샤를로트
(Élisabeth Charlotte of Orléans)[4]
마리아 테레지아
(Maria Theresa)
카를 6세
(Charles VI)
브라운슈바이크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Elisabeth Christine of Brunswick)

3.2.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녀
프랑스의 황후 마리 루이즈
(Marie Louise, Empress of the French)
1791년 12월 12일
1847년 12월 17일
나폴레옹 1세
슬하 1남[5]
아담 알버트 폰 네페그
슬하 1남 2녀
샤를르네 드 봉벨
1남
페르디난트 1세
(Ferdinand I)
1793년 4월 19일
1875년 6월 29일
사보이의 마리아 안나[6]
2녀
마리아 카롤리네 여대공
(Archduchess Marie Caroline)
1794년 6월 8일
1795년 3월 16일

3녀
카롤리네 루도비카 여대공
(Archduchess Caroline Ludovika)
1795년 12월 22일
1797년 6월 30일

4녀
브라질의 황후이자 포르투갈의 왕비 마리아 레오폴디네
(Maria Leopoldina, Empress of Brazil and Queen of Portugal)
1797년 1월 22일
1826년 12월 11일
페드루 4세
슬하 3남 4녀[7]
5녀
살레르노 공작부인 클레멘티나
(Clementina, Princess of Salerno)
1798년 3월 1일
1881년 9월 3일
살레르노 공작 레오폴트[8]
슬하 1녀
2남
요제프 프란츠 레오폴트 대공
(Archduke Joseph Franz Leopold)
1799년 4월 9일
1807년 6월 30일

6녀
작센의 왕세자비 마리아 카롤리나
(Marie Caroline, Crown Princess of Saxony)
1801년 4월 8일
1832년 5월 22일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
3남
프란츠 카를 대공
(Archduke Franz Karl)
1802년 12월 17일
1878년 3월 8일
바이에른의 조피 공주[9]
슬하 4남 1녀[10]
7녀
마리아 안나 여대공
(Archduchess Marie Anne)
1804년 6월 8일
1858년 12월 28일

4남
요한 네포무크 대공
(Archduke Johann Nepomuk)
1805년 8월 30일
1809년 2월 19일

8녀
아멜리에 테레지아 여대공
(Archduchess Amalie Theresa)
1807년 4월 6일
1807년 4월 9일


[1] 그녀의 어머니인 마리아 카롤리나 역시 나폴레옹을 싫어했는데 프랑스 혁명에 희생된 마리 앙투와네트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장녀 마리 루이즈는 훗날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그토록 증오했던 나폴레옹 1세와 결혼하여 프랑스의 황후가 되었다.[2] 요제프 1세의 장녀이다.[3] 페르디난트 3세의 외손자이다.[4] 루이 13세의 손녀이다.[5] 나폴레옹 2세[6]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1세의 3녀이다.[7] 마리아 2세, 페드루 2세[8] 페르디난도 1세의 5남이자 프란츠 1세마리아 테레지아의 외손자이다.[9]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의 5녀이다.[10] 프란츠 요제프 1세, 막시밀리아노 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