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오 그로소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한국 팬들에게는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호주와의 16강전에서 논란의 PK를 얻어낸 주인공이자 독일과의 4강 경기에서 연장 후반 14분에 이탈리아의 선제골을 넣은 것과 프랑스와의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서서 성공시키며 이탈리아의 4회 우승을 이뤄낸 월드컵 우승멤버로 알려져 있다. 또한 안정환과 페루자 시절 약 1년간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3] 안정환이 본인에게 잘 해줬다고 직접 밝힌 적도 있으며 평소에도 밝고 긍정적인 멘탈로 유명했다. 그 때문인지 2002년 이탈리아 전 골든골을 빌미로 방출당한 안정환을 옹호하고 소속팀 구단주를 대놓고 깐 적이 있다.
2. 축구인 생활
2.1. 선수 경력
2006년 독일월드컵 4강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그로소와 델피에로의 골로 이탈리아는 독일을 2-0으로 완파하고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승부차기[4] 끝에 꺾고 월드컵 사상 4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이당시는 마지막 키커로 성공했다.
월드컵 이전, "저 듣보잡 멍미?" 라는 세간의 평가를 뒤집고 대회내내 맹활약을 펼쳐 활약을 바탕으로 인터 밀란으로 이적하지만 실망스러운 활약끝에 하비에르 사네티, 막스웰에게 밀려 시즌이 끝나고 바로 리옹으로 쫒겨나듯이 이적한다. 리옹에서는 자리를 잡는가 싶었지만 알리 시소코[5] 가 영입된 후 명가 재건을 위해 유벤투스 FC의 러브콜을 받고 이적하였지만 노쇠화와 더불어 눈이 썩는 경기력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당연히 2010 FIFA 월드컵명단에서도 도메니코 크리시토에 밀려 뽑히지 않았고. 이후 2011-2012시즌이 끝나고 은퇴.[6]
2.2. 감독 경력
눈이 썩는 경기력을 보여줬어도 좋은 인간성 덕에 프런트와의 관계는 좋았는지 2014년부터 유베의 프리마베라(유스팀) 감독을 맡고 있다가 2017년에 세리에 B 소속 FC 바리 감독으로 옮겼다.
2018년 세리에 B로 강등된, 이승우의 소속팀인 엘라스 베로나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성적부진으로 경질되었다....
2019년 에우제니오 코리니가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고 후임으로 브레시아를 이끌었으나 첫경기인 토리노 FC와의 홈경기에서 0대4 대패를 당하고 다음 경기인 AS 로마 원정 경기에서 3대0으로 털리더니 그 다음 경기인 아탈란타와의 홈 경기에서도 0대3 패배를 당한 뒤 3경기만에 경질되었다. 참고로 후임으로 전임 감독인 에우제니오 코리니가 다시 선임 되었다.
3. 평판
'''루카 토니, 마르코 마테라치와 더불어 대기만성형 선수의 표본'''.[7] 젊은 시절 전혀 주목받지 못하다 페루자 시절을 기점으로 능력이 개화하더니, 팔레르모 시절 토니와 더불어 기량이 만개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2002 한일 월드컵이후 파올로 말디니의 은퇴, 기대주였던 프란체스코 코코의 좆망과 더불어 잔루카 잠브로타를 제외하면 측면 수비수의 부재로 고심 중이었으나, 그로소의 발탁으로 걱정은 사라졌다. 그로소의 활약은 이때를 기점으로 월드컵까지 그야말로 아주리 군단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었다.[8] 하지만 풀백치고는 장신이라 유연성과 스피드가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고, 무엇보다 기복이 너무 심했다. 특히나 저 기복으로 인해서 2006월드컵 이후에는 클럽팀에서도 부진하며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했고 그래도 유로 2008과 2009 컨페더레이션스컵의 이탈리아 대표팀에 뽑히기는 했으나 결국 2006월드컵 때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고 이후에는 국가대표와는 멀어지고 말았다.
4. 기타
- 2006 FIFA 월드컵 독일 결승전에서 프랑스와 마지막 킥에서 승부차기 골을 넣은 후, 세레머니를 선수들을 안아주는[9] 대신 무작정 전력질주한다.
- 베로나 감독 시절에 이승우를 굉장히 아꼈다. 리그 13라운드 선발 출전이후 꾸준히 선발로 내보냈고 여러번 이승우를 신뢰하는 발언을 했었다. 덕분에 이승우 본인도 안정적으로 기량을 올리고 있었으나, 이후 그로소 감독이 베로나에서 경질되면서 이승우의 출전 시간이 급격히 감소함으로 폼이 죽어버려 국가대표에서도 전력 외로 분류되는 나비효과가 일어나고 말았다.
[1] 2006년 FIFA 월드컵 수훈,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4등급 장교장 Ufficiale Ordine al Merito della Repubblica Italiana[2] 레프트백[3] 이외의 유명한 선수로는 마르코 마테라치가 있다. 그로소는 이후 06년 인터 밀란에서 다시한번 마테라치와 재회하기도.[4] 이탈리아가 먼저 시작한 것[5] 일명 몽소코 사건으로 유명한 선수. AC 밀란의 아드리아노 갈리아니가 선수 가격을 깎기 위해 시전했던 언플이 메디컬 테스트 결과 "치아에 이상이 있어 심장마비가 올수 있다. 그러니 가격좀 깎아주셈ㅋㅋ."였고 빡친 포르투는 밀란과의 거래를 취소하고 리옹에 팔아버렸다. 이후 발치를 해 병역비리를 일으킨 MC 몽을 이 선수에 빗대어 몽소코등으로 조롱했다.[6] 이 시즌 유벤투스는 세리에 A 무패우승을 기록한다. 그로소는 물론 후보(...)[7] 루카 토니는 공격수였다.[8] 덕분에 당시 최강의 왼쪽 풀백이라는 잠브로타가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잠브로타는 본래 오른쪽 윙 출신으로, 양발잡이지만 오른발을 더 잘썼다.[9] 부폰만 선수들을 안아주면서 축하해주는데, 그로소만 결승골을 넣어 흥분이 너무 넘쳐 무작정으로 전력질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