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라 이웃나라/문제점/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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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판 - (03)
전면개정판 - (12)
업그레이드판 - (18)
1. 소개(Introduction)
- 헝가리어와 핀란드어가 한국어와 비슷한 이유는 칭기즈 칸의 몽골 제국이 동유럽을 정복했기 때문이다.
☞ 마자르족과 핀족은 몽골 제국 이전에 이미 유럽에 정착했고 개정판에서는 수정되었다.(12)
유헙나라들을 소개할때 스위스에서 '''방언이 국어'''를 '''방언인 국어'''로 잘못썼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한국, 일본처럼 공동체주의가 자리잡은 나라다.
☞ 당시 이원복이 내공이 부족했던 점이 보이는 오류다. 미국이 유럽에 비해서는 비교적 보수적인 성향이 있지만, 아시아와 동급으로 공동체적이라고 하는것은 곤란하다. 게다가 미국은 주별로 법/행정체계/사법체계가 따로 있을 정도로 하나의 국가라기보단 "연방"에 가깝다. 실제로 미국인들은 "미국 출신이다"라고 하기보단 "~주 출신이다"라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다민족국가이다. 그런데 민족/국가 개념이 유독 강한 한국/일본과 비교하는 건 말도 안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주류가 아니며 약 60%를 차지하는 백인도 몇백년 전에 이민 온 사람들인데다 여러 유럽 국가들이 섞여있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처럼 나라 전체를 포괄하는 "미국 민족"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를 미국인이라는 아이덴티티는 있지만 더 파고 보면 출신 주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하며, 민족 자체에 대한 애착은 그리 없다. 다만 이와 별개로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국민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은 굉장히 강한 편이다. 대신 좀 시간이 지난 뒤에 그린 미국편에서는 개인주의가 자리잡았다고 제대로 나와 있다. 그리고 에스파냐 편 이후 나온 개정판에서 삭제되었다. 실제로도 유럽 국가들은 스포츠 대회나 정말 중요한 행사에도 국기에 대한 경례나 국가 제창은 하지 않는 편이다.
- 미국, 일본, 한국은 잘 사는 것은 개인이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유럽은 국민이 잘 사는 것은 국가가 도와준다고 생각하는데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국가가 국민을 위하여 뭘 할수있느냐고 묻지 말고 국민이 국가를 위하여 뭘 할수있느냐를 물으시오'는 개인이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한다는 뜻이므로 유럽인들은 분노하였다.
☞ 케네디 대통령의 발언은 개인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게 아니라 개인이 국가를 좋은 쪽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으로 오히려 국가가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럽인의 사고와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개인이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한다고 오해한 유럽인들이 국가가 국민을 위해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12권 미국 대통령편에서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국민이 국가를 도와야지 국가가 국민을 도와서는 안된다며 노동운동 지원 거부를 언급할 때 케네디의 발언이 일맥상통한 말이라고 인용되기도 했다. 애국가 4절의 괴즐나사가 정권이 아니라 국민 공동체를 의미하는데 정권으로 오해하는 것과 같다. 문맥을 무시한 인용 항목 참조.
- 소크라테스를 "사크라티", 아리스토텔레스를 "애리스타틀"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네 이름인 송동준도 영어식으로 읽으면 "상당전''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영어를 1년만 제대로 배워도 저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에 나온 송동준의 영어 표기는 "Song Dong Jun"으로, 마지막 준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읽는다. 영어로 노래를 뜻하는 song을 송이라고 발음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작가가 얼마나 영어에 무지한지 알 수 있었던 대목.
반론 : 물론 재미를 위해 과장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진짜로 그렇게 발음한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소(So) 부분을 사 라고 발음했기에 여자친구가 골탕먹이려고 그런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송동준이 Oh, No! 를 외치는 것을 보면 작가도 옳은 발음이 아님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 오리엔트에서는 신을 인간과 다른모습으로 묘사하고 옥시덴트에서는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한다는데 실제로는 그리스에서도 일부 신은 인간과 다르게묘사했으며 다른 문화권에서도 신을 인간형으로 묘사한 경우는 매우흔하다.오히려 이집트처럼 동물형이 많은 경우가 특이한 경우다.
- 인상주의가 사실주의를 완전히 몰아냈다.
☞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널리 퍼지지는 않았다.
- 전반적으로 북유럽의 출산율보다 남유럽의 출산율이 높고 또한 남유럽인의 평균 자녀수가 4~7명이라고 설명하였다.
☞ 2010년 기준으로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의 경우 출산율이 2명대 초반정도다. 한편 영국과 스웨덴, 노르웨이의 경우 합계 출산율이 1.9명, 벨기에, 핀란드, 덴마크 1.8명대이다. 이는 주요 남유럽 국가들인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포르투갈 등의 출산율 1.2-1.4명대 보다 상당히 높다. 다만 독일이나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출산율은 1.4-1.5명대로 여전히 낮은 편. 따라서 단정적으로 맞다고 보기 어려운 진술이다. 하지만 작가가 유럽에 유학하고 창작을 위해 체류했을 당시라면 1975~1984년 귀국시까지이다. 당시 주요 북유럽 국가의 출산율이 피임약의 보급과 여성 사회 활동 활성화로 출산율이 2명대 중반 수준에서 1명대 후반 정도로 떨어졌었다. 이는 동시기 소련과 호주, 미국, 캐나다에서도 피임약이 널리 보급되면서 벌어졌던 현상이기도 했다. 독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출산율이 2명대 중반에서 1명대 중반 수준으로 급속히 떨어졌었다. 그에 비하면 남유럽 국가들의 당시 출산율은 다소 높았다. 1970년 기준으로 스페인 2.8명 이탈리아 2.4명이다. 물론 70년대 말-8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1명대로 떨어졌다. 때문에 작가가 유럽에 유학할 당시의 기준으로는 작가의 설명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요약하면 연재 초기인 1970년대 후반만 해도 얼추 맞긴 했지만, 책이 단행본으로 발간된 1987년쯤엔 알바니아(1987년 기준 3.13명)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남유럽 국가들의 출산율이 이미 1명대로 떨어졌을 때라는 것이다. 1987년 다시 남유럽 국가들의 출산율은 이탈리아 1.28명, 에스파냐 1.47명, 포르투갈 1.57명, 그리스 1.50명, 불가리아 1.96명, 몰타 1.98명이다. 즉, 시간의 간격 때문에 설명이 틀리는 경우가 발생한 것. 작가는 자신의 다른 책인 현대문명진단에서는 남유럽의 저출산 경향을 다루면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져서 아이를 많이 낳는 건 옛날 얘기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정작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는 그 내용을 여전히 반영하지 않고 있다. 다만 1편 네덜란드 편 개괄 파트에선 남유럽의 출산율이 북유럽보다 높았지만 세상이 변해 북유럽보다 낮아졌다식으로 작가가 깜빡(...)하고 안 넣을 가능성이 높긴 하다. 아울러 먼나라 이웃나라 초판본 네덜란드 편에서도 네덜란드의 인구증가율이 타 유럽국가에 비해 높다라는 얘기를 서술해 놓은 적이 있다. 실제로 1950년대 네덜란드 출산율이 타 서유럽 국가에 비해서 괄목할 정도로 높은 편(3명대)이었던 영향이다. 개정판부터는 너무 오래된 정보라 판단해서인지 삭제했다.(12)
- 남유럽에서는 어머니가 중심적이고 북유럽에는 아버지가 중심적이다.
☞ 이건 옛날 풍습을 현대로 답습한 오류라고 볼 수 있는데 남유럽의 라틴 국가에서도 가부장적인 가정도 있고 북유럽 게르만 국가에서는 남녀 동등하게 있는 경우와 어머니 중심체계가 있다. 책처럼 절대적이지 않다. 남유럽에서는 어린이를 소중히 하고 북유럽에서는 어린이가 크면 담을 쌓는다 하였는데 그러면 왜 남유럽에서는 가족 갈등이 없어야 하는 게 옳은데 왜 있는가? 남유럽에서도 어린자녀와 담을 쌓는 경우도 있고 북유럽에서는 어린자녀와 성인이 돼서도 친근한 경우가 있다. 그 나라의 사회 습성을 일방적으로 보는 오류이다. 편견을 심어줄 여지가 있어서인지 개정판에서는 삭제되었다.(12)
- 유럽에서 나라가 기원전6세기에야 세워졌다는데 실제로는 에게문명을 빼더라도 기원전8세기부터 이미 폴리스 시대가 진행된다.
- 갈리아 전쟁 당시 갈리아인들은 야만인이 아닌 상당한 문명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며, 바지나 전차 등의 로마인들이 모르는 문물까지 가지고 있어 로마인들이 이를 배워왔다.
☞ 갈리아인들이 야만적이지 않다는 서술은 틀리지 않았으나[1] , 전차나 바지를 로마인들이 배워왔다는 서술은 문제가 있는 부분. 전차는 이미 당대 기준으로 수천 년 전부터 중동 지방에서 쓰이기 시작했고, 당대에는 이미 기병의 등장으로 도태되어가는 병기로, 로마인들은 갈리아 전쟁 훨씬 전에 중동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전차를 여러 번 격파한 적이 있었다. 즉, 전차를 켈트족에게 배워왔다는 서술은 틀린 것이다. 바지를 갈리아인들에게 배워왔다는 서술은 완전히 틀리지 않았으나, 초기에는 바지를 야만인의 상징으로 여겨 멸시하는 경향이 더 강했다. 결과적으로 로마인들 역시 바지를 복식문화로 받아들이게 되므로 틀린 서술은 아니지만. 초판에는 프랑스판에 있었고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먼나라 이웃나라/문제점/프랑스 문서에 있었으나 김영사에서 새 먼나라 이웃나라가 나온 후 네덜란드로 옮겨졌다.
2. 종교 관련
- 네덜란드에서 성상이 모두 파괴되고, 교회가 관광 자원으로서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 계기는 종교개혁 직후 전 국민이 개신교로 개종했기 때문이다.
☞ 시간 순서 묘사가 잘못되었다. 종교개혁과 성상 파괴사건이 독립전쟁으로 불리는 '80년 전쟁'의 발단 중 하나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17세기까지 가톨릭 위주의 국가였고, 개신교도들도 처음에는 독립보다는 지배자의 선처를 더 원했다. 침묵공 빌럼도 전쟁 직전까지는 루터파였고, 처음에는 오히려 칼뱅파들의 성상파괴 소요를 진압하기도 했다. 개신교가 완전히 퍼진 건 휴전 후 독립된 공화국으로서 틀이 잡혀나간 17세기 중반 이후이며, 교회 건축이 볼품없어진 것도 이 때의 일이지, 독립전쟁 직전 성상 파괴사건 때문에 그리 된 게 아니다. 이 부분은 네덜란드/역사 문서의 4.3.1항목을 참조하자.
- 네덜란드의 개신교는 성경 구절 풀이를 놓고 목사들끼리 다투다가 우연히 분열된 것이다.
☞ 1차적 원인으로는 남부 지역 상당수를 다른 나라가 되게 할 정도로 종교 정책이 근시안적이던 빌럼 1세의 실책 탓이 컸다. 장로제였던 네덜란드 개혁교회를 성공회와 유사한 계서제로 바꾸려 했던 정책이 분열의 발단이다. 또한 수십 갈래 다른 교파로 갈라졌다는 걸 무슨 아예 딴 살림 차린 것처럼 묘사해 놨는데, 네덜란드의 개신교 분열은 한국에서 장로회가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식으로 분열한 것처럼 신학적인 기본 틀을 어느 정도 공유하면서 쪼개진 것이다. 애당초 개신교는 종교개혁 시기부터 서로 다른 개혁가들에 의해 다른 교파가 나온 것이지, 해당 페이지에 묘사된 것 마냥 단일 조직이었다가 장로교 성결교 침례교... 식으로 나뉜 게 아니다.
- 이단으로 분류되는 여호와의 증인을 평범한 개신교 교파처럼 묘사해 놨다. 개정판에서는 한술 더 떠서 모르몬교까지 나왔다(...). 이들은 주류 교단에서는 이단 취급받는다. 명백한 오류.
3. 영란전쟁 및 네덜란드의 몰락
☞ 1차 영국-네덜란드 전쟁 이후에도 네덜란드는 그동안 축적해온 막강한 부를 바탕으로 여전히 영국이 얕잡아 볼 수 없는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이후로도 3차례에 걸친 전쟁을 벌였으며 2차 영란전쟁에서는 절치부심하며 힘을 기른 네덜란드 해군이 복수전에 나섰다. 이때 영국은 페스트와 런던 대화재 등으로 국력이 약간 약해진 시기였고 네덜란드의 뒤에는 프랑스가 버티고 있었다. 결국 네덜란드가 템즈 강을 봉쇄하는 설욕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루이 14세 때 프랑스-영국 연합군이 네덜란드를 침공하면서(만화에서는 프랑스 단독 침공처럼 묘사됨) 큰 타격을 입은 네덜란드는 이때 완전히 몰락하고 만다. 1차 전쟁이 영국의 우세로 끝을 맺긴 했지만 만화에서처럼 제해권을 그때 몽땅 다 넘겨준 건 아니었다. 말레이 지역을 놓고도 영국은 무조건적인 압력보다는 타협을 선택해 말레이 반도는 영국이 섬은 네덜란드가 차지한다는 조건을 달아서 말레이 반도를 차지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게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그쯤부터 영국과 프랑스에 밀리기 시작하여 결정타는 명예혁명 직후의 영국-네덜란드 연합군 VS 프랑스군의 영향이다. 영국-네덜란드가 이기기는 했는데 두 나라의 국가원수인 윌리엄 3세가 프랑스의 재침공에 대비하는 과정에서 영국은 해군, 네덜란드는 육군을 특화시켰는데 그 덕에 영국의 해군력이 네덜란드를 능가하기 시작하면서 네덜란드가 몰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 루이 보나파르트는 무능한 군주였으며 너무 무능한 나머지 네덜란드인들의 지지도 못 받고 왕위에서도 내려와야 했다?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 군사적 재능은 시원치 않았고 군주로서도 존재감은 없었지만 그래도 나폴레옹이 낙하산으로 꽃아준 친인척들이 죄다 무능하고 부패한 와중 루이만은 멀쩡해서 외려 네덜란드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고 나름대로 업적도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루이 자신이 비록 낙하산으로 왕이 된 외국인 왕이지만 1807년 화약선 운반선 폭발, 1808~1809년 대홍수 당시 네덜란드 국민들과 함께 애도하는 등 외국인 출신 왕치고는 드문 행보를 보여 네덜란드인들의 호감을 샀으며 국채 이자 발급을 중단하는 법안으로 마련된 자금 중 일부를 사회복지 자금으로 쓰기도 했다. 또한 박사들을 초빙해 네덜란드어를 배우려고 할 정도로 열의도 있었다. 퇴위 역시도 당연히 무능과는 상관이 없어서 강제로 쫓겨난건 사실이지만 루이가 물러나야 했던 이유는 대륙 봉쇄령에 회의적이었던 루이가 참여는 했어도 소극적으로 일관해서 이게 빌미가 되어 물러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형 덕에 왕이 된 낙하산 인사는 맞지만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여 지지도 못 받고 자리를 못 지켰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무능한 것은 아니었고 퇴위 부분은 명백하게 잘못 서술되었다.
4. 식민지 관련
- 네덜란드는 영국에게 제해권을 내준 이후 다른 열강들과는 대조적으로 자신들의 식민지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펼쳤으며 과거 식민지 출신 국가들에게도 더 우호적인 정책을 피고 있다.
☞ 네덜란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보인 식민지 독립운동 유혈 진압 등을 찾아 보면 그리 썩 양반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2000년 <주간조선>에 게재된 현대문명진단 - 안네 프랑크를 밀고한 사람들 편과 가로세로 세계사 동남아편에서 이 점을 짚고 넘어간다. 다만 말루쿠 군도의 경우 주민 대다수가 기독교에 친네덜란드 성향으로 인도네시아 독립에 반대했고 독립 직후에도 한동안 남말루쿠 공화국을 만들어서 인도네시아 중앙정부랑 대립하기도 했었다. 결국 인도네시아에 강제 병합되자 일부는 네덜란드에 집단으로 이주하기도 했었는데 이들이 바로 만화에서 설명하는 암보네제(Ambonese, Molukkers)다. 관련 기사 또한 네덜란드에서 인도네시아 요리가 대중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인도 요리나 중화요리처럼 다소 변형된 것에 가깝다. 가로세로 세계사에서는 이러한 인도네시아의 식민지 시절의 네덜란드의 악랄함을 실어 가령 인도네시아를 장악할 때 각 섬을 이간질해서 서로 다투게 했다든지, 발리 왕국이 1905년에야 붕괴했다든지, 수마트라 섬의 아체 왕국이 40년이 맞서다가 1904년에야 굴복했다는 내용이라든가 "기아, 콜레라로 죽은 자바인이 20만이다!" 라는 서술을 넣는다든지, 인도네시아가 독립하려고 네덜란드와 싸울 때 장면에서 네덜란드 역사의 오점이라 서술하면서 수카르노의 입을 빌려 "마셜 플랜 자금으로 지금도 네덜란드는 전쟁을 자행, 수많은 인도네시아인이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라며 미국과 유엔에 압력을 넣는 장면을 넣는 등 확실하게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지배는 다른 나라의 식민지 지배와 다를 바 없음을 보여 준다. 물론 이것이 네덜란드 책임인지는 불명확하겠지만 일단 유럽인에 맞선 독립운동가 디포 네고로의 입을 빌렸으니 연관이 아주 없진 않은듯하다.
5. 안네의 일기 관련
안네의 일기와 관련된 내용은 개정판에서는 삭제되었다.(12)
- 안네네 가족 4명과 그의 신임하는 동료 페터네 가족 4명이 은둔지로 숨어들었다.
☞ 실제로 안네의 일기를 보면 페터네 가족은 모두 3명인데 마치 페터 말고 다른 딸 하나라도 있는 것처럼 그려놨다. 실제로 마지막 1명은 페터네 가족과 별 상관 없는 동네 치과의사 프리츠 페퍼였다.
- 안네의 어머니와 언니는 가스실에서 숨을 거두었다.
☞ 실제로 안네의 어머니 에디트는 1945년 1월 6일에 아우슈비츠에서 식량 부족으로 인해 사망했고, (또는 독일 경비병이 큰딸 마르고를 강간하려 하자 몸을 던져 딸을 지키려다 그 병사에게 구타당하고 끌려간 후 죽었다는 설도 있다) 언니 마르고는 같은 해 2~3월경 즈음에 동생처럼 티푸스로 사망했다. 8명의 은신처 일원 중 실제로 가스실에서 사망한 인물은 페터의 아버지 헤르만 판 펠스가 유일하다.
- 안네의 일기를 설명하면서 네덜란드어 표기랍시고 'Dagebuch'라고 써 놓았는데, 저건 독일어 표기다. 아니, 독일어 표기의 오타다. (정확한 독일어 표기는 'Tagebuch'이다.) 실제 네덜란드어로 일기는 Dagboek이라고 쓴다.
- 안네의 아버지인 오토 프랑크가 영어도 못하는데 어찌 미국에 가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오토 프랑크는 미국으로 이주할 생각이었으나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한 후 미국 대사관이 폐쇄되어서 갈 수 없었던 것이다.
- 안네의 일기를 발견한 경위 역시 여기서는 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살아남은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은신처에서 버려진 채 나뒹굴던 안네의 일기를 발견한 것으로 되어있다. 실제로는 오토의 여비서 출신 회사 직원이던 미프 히스(Miep Gies)가 게슈타포가 은신처를 습격했을 때 안네가 쓴 일기를 서류철에 재빨리 쓸어담아 보관한 뒤 종전 이후 오토에게 넘겨준 것이다.
6. 기타
- 103페이지에서는 갈리아에서 루그두눔이 중심도시라고 하고 113페이지에서는 루테티아가 중심도시라고 한다.
- 163페이지에서는 말풍선 1개가 비어 있다.
- 166페이지에서 카롤루스가 816년에 사망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814년이다.
- 네덜란드에서는 전국의 운하가 모두 얼어붙으면 전국 일주 스케이트 대회가 열린다. 십년에 한번 열릴까 말까한 대회로 현재까지 마지막 대회인 1997년 대회의 우승자는 "어느 한 무명의 축산업자"다.
☞ 엘프스테덴토흐트라는 대회를 말하는 것인데 이 대회는 전국 일주가 아니라 프리슬란트 주만 일주하는 대회이다. 1997년 대회에서 "어느 한 무명의 축산업자"가 우승을 했다고 나왔었는데 실제로 헹크 앙에넌트는 이미 1995년에 프로로 "전향"한 선수이며 프로가 되기 전 직업도 축산업자는 아니었고 방울양배추(Brussels sprouts)를 기르는 채소 농부였다. 축산업자가 우승한 년도는 1981년도다.이 부분은 2012년 개정판에서 수정됐다.(12)
☞ 정확히는 "덴뿌라를 너무 많이 먹어서 사망했대."라고 써 놓았다. 이 설은 신빙성이 낮다. 그 이유가 그가 덴뿌라를 먹은 때는 1615년 1월 중순쯤인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사망한 시기가 1615년 4월이기 때문. 무슨 맹독 같은 게 덴뿌라에 들지 않은 이상 4개월도 안 되어서 죽는 건 좀 무리다. 현재는 위암을 앓아서 그가 직접 약을 만들었다는 기록으로 봐서 위암 악화로 죽었다는 설이 신빙성을 얻고 있다.
- 네덜란드는 마약을 전면 허용한 이후로 마약 중독자 증가가 둔화되었다.
☞ 이 부분은 동성애 낙태 안락사 관련 사항과 함께 고려원 1987년판이 아닌, 김영사로 판권이 막 넘어간 1998년판부터 추가된 묘사이다. 엄밀히 말하면 작가도 당시 시류에 맞춰서 낙관적으로 묘사한 것에 가깝다지만, 실제로 2010년대에 들어 네덜란드의 마약 정책은 이미 당국에서도 실패를 인정한 상황이다. 클라스 브뢰인스마 같은 갱스터들이 암약하여 치안이 악화되고 내외국인 중독자들이 증가하는 결과만을 불렀기 때문이다. 결국 2012년 이후로는 타 국가들과 거꾸로 마약 규제로 선회하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네덜란드 문서의 마약 항목, 대마초를 참조하자. 허나 개정판에서는 수정되지 못했다.
- 고증 오류는 아니지만, 문명의 형성을 설명할 때 인류가 농경을 이해하는 장면의 개정판에서는 원시인의 임신한 아내가 나오는데, 아내가 '우리 아이 생기는 거와 비슷하네요', '몰라이~! 당신 벌써 심었잖아!' 라고 말하고, 다음 컷에서 남편은 '밭에서도, 아내에게서도...!와 같은 섹드립을 날린다(...). 아이들 보는 책에 섹드립은 부적절하다고 판단되었는지 업그레이드판에서는 '내가 잘 먹어야 우리 아이도 쑥쑥 큰다.', '남들보다 먼저 심어보자.', '이제 음식 걱정은 덜허게 됐어' 와 같은 나름 건전한 대사로 바뀌었다. 또한 개정판에서 남편이 배부르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아내의 대사인 '난 원래 불러요!' 는 업그레이드판에서 '난 원래 불러!'라는 반말조로 바뀐다. 존댓말 사용이 가부장적인 사회를 옹호하는 듯해서 그런 듯.(18)
[1] 사실 이건 상대적인 관점이기 때문에 딱 어느 것이 맞다고 보기 어렵다. 어느 나라나 다 그렇듯, 갈리아인들 역시 고위층은 상당한 수준의 부와 문화를 누리고 학식도 제법 갖추고 있었지만, 평민층의 생활 수준은 낮은 편이었으며, 어찌되었건 로마인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야만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확실한 건, 최소한 돌도끼 든 원시인은 아니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