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즙 파동

 


1. 개요
2. 논란
3. 사실
4. 결과
5. 여파
6. 여담


1. 개요


[image]
당시 동아일보 기사

꼬리 문 소동… 『자연』 18번

'''“무즙 먹어보라”'''

'''낙방 학부모[1]

들 엿 들고 시위'''

전기 중학 입시 때 자연 18번 문제 정답 ‘디아스타제’ 대신 ‘무즙’을 써서 1점을 잃어 불합격했다고 주장하는 K중·S중·E여중 등 세칭 일류교 수험생 학부모 20여 명은 22일 오전 솥에 엿을 만들어가지고 서울시 교육위원회에 나타나 환성을 올렸다.

학부모들의 말에 의하면, 21일 오후 6시 반경 김원규 교육감은 “만약 무즙으로 엿이 된다면 자연 18번 때문에 떨어진 수험생은 구제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

사진: “무즙으로 만든 엿 좀 먹어보라”고 서울시교육위에 밀려든 학부모들.

1964년 12월 22일 동아일보[2]

1964년 12월 7일 대한민국의 65학년도 서울특별시 전기(前期) 중학 필답 고사 정답 발표 이후 발생한 사건. 이 사건은 한국에서 중학교 입시가 사라지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2. 논란


당시 국어, 산수(현재의 수학), 사회, 자연(현재의 과학) 과목을 모두 합쳐 20개의 문제에서 복수정답이 나왔는데, 특히 자연 18번 문제가 가장 큰 논란이 됐다. 참고로 당시 문제는 모두 배점이 1점이었지만,[3] 명문 학교를 목표로 하는 입시에서는 1점의 차이도 합격 여부를 가를 가능성이 있었다.
『자연』 과목

※ 다음은 을 만드는 순서를 차례대로 적어 놓은 것이다.
찹쌀 1 kg 가량을 에 담갔다가
② 이것을 쪄서 을 만든다.
③ 이 밥에 물 3 ℓ와 엿기름 160 g을 넣고 잘 섞은 다음에 60도의 온도로 5~6시간 둔다.
④ 이것을 엉성한 삼베 주머니로 짠다.
⑤ 짜 낸 국물을 조린다.

17. 엿기름녹말당분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위의 여러 가지 일 중 어느 것인가? 그 번호를 쓰시오.
18. 위 ③과 같은 일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가?
디아스타제녹말무즙

(17번 문제의 정답: ③, 18번 문제의 발표된 정답: ①)
[1] 원문은 자모(姉母).[2] 현대 맞춤법 및 어휘를 적용하였으며 한자어는 한글화하였다. 원문은 사진을 참조.[3] 국어·산수 33문제씩, 사회·자연 30문제씩, 미술·음악·실과 10문제씩으로 총 156문제 156점에 체력장 4점을 합쳐서 160점 만점.
을 만드는 과정 중 당화 작용을 하는 물질을 다이아스테이스(디아스타제)[4]라고 발표하자, 학부형들로부터 무즙 역시 정답이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이는 무즙 안에 다이아스테이스가 들어 있어서 진짜로 을 만들 수 있기 때문. 거기다 당시 국민학교 6-2 자연 교과서에는 “침과 무즙에도 디아스타제 성분이 들어 있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문제 출제자의 의도는 다당류를 단당류로 분해하는 재료가 아닌 순수한 '''성분'''을 고르라는 의도였나 본데, 예시를 엿기름으로 들어놓고 답은 성분으로 갖다 놓았으니 이건 뭐… 게다가 이제껏 무즙을 이용해 을 만들어온 학부모들은 다이아스테이스가 무엇인지 알 리도 없으니 항의하는 게 당연하다. 심지어 어떤 학부모는 직접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서 서울시 교육위원회에 난입한 뒤 엿 먹어보라며 꺼내 보였다.
MBC의 <타임머신>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사건 실록 - 1964년, 그 날의 엿>"[5]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로 재연했다. 이 에피소드 말미에 타임머신 제작진이 1964년의 입시생이었고 방송 당시 반포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던 이옥근 (당시 49세)과 인터뷰를 했는데, "당시 객관식으로 다이아스테이스와 무즙이 있었는데 지우고 다시 쓰고 지우고 다시 쓰다 답안지에 구멍이 나서, 따로 답을 다이아스테이스라 겨우 쓰고 시험을 마쳤다. 나중에 답을 알고 보니, 같이 시험을 봤던 몇몇 친구들 집에서는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라고 증언했다.

3. 사실


무엇보다도, 해당 문항의 의미를 엄밀히 따져보면 사실 무즙이 정답이고 다이아스테이스는 오답이라고 보는 것이 옳기 때문에 이 파동이 더욱 심해졌다. 만약 '디아스타제'라는 답을 원했다면 해당 문항 자체가 '엿기름의 어떤 성분 때문에 당화 작용이 일어나는가'와 같은 형태였여야 했다. 그런데 문항에서 물은 것은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이었다.
이 경우, 엿기름 대신 무즙을 넣어서 엿을 고을 수 있으니 당연히 무즙은 정답이 맞다. 이에 비해 다이아스테이스 자체를 재료로 보고 다이아스테이스를 넣는다고 대답하기는 다소 어렵다. 일단 엿을 고을 때 순수하게 다이아스테이스만을 분리해서 첨가물로 사용하는 경우가 별로 없으니… 엿기름 대신 다이아스테이스가 들어있는 다른 재료를 넣는다고 하면 모를까. 무엇보다도 엿기름이 당화 작용을 하는 원리 자체가 '''엿기름에 포함된 다이아스테이스'''의 작용 때문인데 엿기름 대신 다이아스테이스를 넣는다고 말한다면 이는 논리적 모순이다.
즉, 엿기름과 무즙, 다이아스테이스에 대해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다이아스테이스가 아니라 무즙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옳았다는 이야기. 문제를 내고 검토를 해 보기나 했는지 심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4. 결과


곤란해진 출제위는 이 문항을 백지화해 모두 점수를 주겠다고 발표하자, 경기중학교[6] 등 명문 중학교 지원자 학부모 30명은 서울시 교육위원회에 몰려와 극렬 항의했다. 그러자 서울시 교육위원회는 처음 결정을 번복한 다음 당초 정답대로 처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이대로 채점이 완료된 다음 합격자를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서울교육감이 무즙으로 엿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못했던 모양인지 "무즙으로 엿이 만들어진다면, 무즙을 답으로 쓴 아이들을 구제해 보겠다."라는 말을 무심코 내뱉자 학부형들은 진짜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고물까지 묻혀 왔는가 하면, 찬합에 무즙을 가득 갈아오는 등 각종 증빙자료를 챙겨왔다.
결국 이 사건은 재판으로까지 번졌는데, 1965년 3월 30일 서울고등법원 특별부는 학부형 42명이 제기한 ‘입학시험 불합격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 “해당 중학교가 내린 입학시험 불합격 처분을 취소하고 합격자임을 확인한다”고 판결했다.
문제의 학생들은 일단 다른 중학교에 다니다 승소 이후인 5월 12일 '''당시 교육법 시행령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던 경기중학교로의 학기 중 전학을 했는데, 이 틈을 타서 일부 부유층 및 사회지도층 자녀 21명이 묻어가기로 '''부정입학'''을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결국 김규원 서울시 교육감, 한상봉 문교부 차관 등이 사표를 냄으로써 수습됐지만, 갈팡질팡한 입시 제도와 일부 고관대작 부인들의 치맛바람이 어울려 유례 없는 입시 혼돈이 빚어졌다.

5. 여파


이렇게 엿을 만들어서 먹으라고 한 데서 “''' 먹어라'''”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설이 존재하는데, 한겨레에서 2001년부터 운영하던 디비딕에 "엿 먹어라"의 어원이 무즙 파동이라고 실렸다는 게 그 설의 원류다. 다만 이보다 이전에 욕설로 쓰인 기록이 남아있다. 윤백남(尹白南)이 1929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신석수호전(新釋水滸傳)’ 3월 17일자에 "이놈들아 엿이나 먹어라 나를 누군 줄 아느냐 흥 나는 장소공(張梢公)이다." 하지만 이 또한 현재의 욕설로써의 엿과 직접적 연관성이 드러날 만한 내용은 없으므로 여전히 그 어원은 미궁에 빠진 상황이다. '엿 먹어라'의 어원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조할 것.
이 사건을 계기로 중학교 입시는 존폐 논란에 휩싸였다가 4년 뒤 창칼 파동 사건이 헤드샷을 날리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며, 경기중학교를 비롯한 명문 33개 중학교들은 1971년폐교되거나 평범한 교명으로 강제 변경을 당했다.(예: 부산중학교→초량중학교, 경남중학교→토성중학교, 부산여자중학교→은하여자중학교, 경남여자중학교→수정여자중학교, 경북중학교경운중학교, 경북여자중학교→경혜여자중학교 등.)
그래서 중학교는 지금까지도 시·도의 지명의 이름을 딴 네임 스쿨이 별로 없으며, 그나마 현재 소수의 중학교들이 시·도의 지명을 쓰고 있지만(특히 부산 지역) 이 부류에 속하는 중학교들은 1971년에 폐교 대신 평범한 교명으로 강제변경당하여 폐교를 면했던 학교들이 1990년대 이후에 다시 교명을 원상복귀하거나 (예: 부산중학교 ← 초량중학교 등) 폐교 이후에 다시 개교한 케이스다. (예: 인천중학교)

6. 여담


지식채널e에서 교육 시리즈 - 좁은 문 그리고 사과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다루기도 하였다.
수필가로 유명한 장영희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도 이때 중학교 입시를 치렀고, '무즙'으로 답을 쓴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소아마비로 인한 신체 장애 때문에 체력 장 점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건강한 학생들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입시를 치렀다. 당시 그녀가 지원했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7]의 커트 라인이 156점이었으므로, 모든 문제를 맞혀야 했던 상황이었다. 다행히 그 문제를 제외한 나머지 문제는 다 맞혔고, 그 해의 커트라인은 이전보다 1점 낮은 155점이어서, 장 교수는 간신히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가수 겸 작곡가 김도향은 MBC의 일밤 코너의 '브레인 서바이버'라는 프로그램에서 경기중학교 출신으로 출연해 767회(2004. 05. 09 방영)에서 우승했으나, 중학교 입시 폐지와 함께 학교가 폐교되는 바람에 장학금을 모교에 기부할 수 없었던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4] 다이아스테이스란 아밀레이스의 여러 유형을 묶어서 칭하는 말이다. 아밀레이스 참고.[5] 3회, 2001년 11월 25일 방송분[6] 과거 한국 최고의 명문이었던 남자중학교. 공부 잘 하는 남학생은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로 진학하는 게 당연시되었고, 이 코스는 한국 최고의 학벌로 인정받았다. 이를 일명 KS마크라고도 했다. (여학생은 경기여자중학교-경기여자고등학교-서울대학교) 경기중과 경기여중은 1971년 폐교되었고, 지금은 경기고경기여고만 있다.[7] 당시에는 남녀공학이었다. 1969년부터 오늘날과 같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男)/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여자중학교(女)로 나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