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판례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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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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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창립된 법학 학술단체다. 원래는 민법학계의 전설인 곽윤직 전 서울법대 교수가 자기와 친했던 제자들 중심으로 김증한 서울법대 교수가 주축이 된 '한국민사법학회'에 대항하여 만든 단체이다. 창립 당시에 학계와 실무계를 연결하는 최초의 법학 학술단체였고, 지금까지도 학계-실무계 인사들이 고루 활동하면서 법학계의 최고 권위를 갖는 단체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매년 '민사판례연구'라는 학술지[1] 를 간행하고 있는데, 민법 전공을 하지 않은 판사들이 많음에도 수록된 논문의 질이 높다. 중요한 민사판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싶다면 민사판례연구에 실린 판례 평석을 보는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민사 분야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소질있는 법관들이 인사에서 소외되는 동안, 민사 분야에 국한된 민사판례연구회 소속 법관들이 노동 분야를 포함한 법원의 요직을 독점하다 보니, '사법부의 하나회'라는 의구심을 사고있다. 민사판례연구회는 다른 법관 연구모임과 달리 법관을 퇴직하여 김앤장 등 대형로펌에 소속된 변호사도 회원으로 하고 있어 '전관예우의 통로', '사법부의 하나회' 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민법학계와 실무계의 가교를 담당하는 최초의 학술단체를 표방했고, 민법-민사소송법-상법 담당 교수들도 많이 활동하므로 단순한 학술모임으로 볼 여지도 있긴 하다. 그러나 애시당초 만들어질 때부터 곽윤직 교수의 제안으로 그와 친했던 제자들인 이용훈 전 대법원장, 박영식 전 광주지방법원장[2] 이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엘리트 판사들 위주로 인원을 충원했기 때문에 출발 단계부터 하나회와 성격이 유사했다.
가입 초기엔 박우동, 윤일영 등 고법 부장판사 급도 가입했으며, 민총과 물권법 교과서에서 곽윤직의 견해를 잘근잘근 씹었던 이영준도 초기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고위 판사들과 이영준 같은 일부 회원들이 나가고 이용훈-박영식-손지열-김황식 등 곽윤직에게 해마다 세배를 갈 정도로 곽윤직의 총애(?)를 받는 이들이 중심 멤버로 자리잡은 뒤에는 매 기수마다 '서울대 법대 + 대학 재학 중 조기 합격 + 연수원 성적 최상위권' 기준에 부합하는 엘리트 판사들 중 2~3명만 가입시켰다. 이후 여성에게도 문호를 개방했지만 어디까지나 저 조건에 부합하는 경우에만 가입이 가능했다. 가입하고 싶다고 아무나 가입할 수 있는 게 아닌, 말 그대로 초특급 엘리트 집단이라 할 수 있다. 발간된지 약 30년이 되가는 민법 분야의 최고 주석서인 '민법 주해'의 집필진들도 대부분 민사판례연구회 출신들이다(이인재 등 일부 아닌 경우도 있다).
그렇다 보니 사법부의 또다른 권력 조직인 법원행정처에도 민사판례연구회 출신들이 다수 활동했고, 자연스레 민사판례연구회 출신 대법관[3] 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직전 대법원장 양승태와 그 전 대법원장 이용훈 모두 민사판례연구회 출신이다. 교수들도 다수 활동하긴 했으나, 그들도 역시 '서울대 법대'를 나와야만 가입할 수 있을 정도로, 말 그대로 '서울대 법대' 잔치인 모임이었다.
하지만 지독한 폐쇄성 덕분에 '사법부의 하나회'란 뒷말이 끊이지 않았고, 이로 인해 2010년부터는 가입신청을 하여 승인을 받으면 회원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비 서울대 출신 판사들도 점점 가입하고 있으며, 비 서울대 출신 교수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여 과거 같으면 가입도 할 수 없었던 고려대, 연세대 법대 출신 교수들도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는 비 서울대 출신 판사나 교수들도 판례 평석을 꾸준히 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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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회원이 누구인지 외부에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이로 인한 비판이 일자, 지금은 '민사판례연구'에 회원 명단을 싣고 있다.
회원 수는 2010년에 181명이었다가, 2015년에는 230명(판사 110명, 전직판사 43명, 교수 77명)으로 증가하였다.
민사판례연구회 출신 대법원장 2명, 국무총리 1명, 대법관 17명, 헌법재판관 3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현재 대법관 14명 중 4명이 속하거나 속해 있다. 2012년 11월부터 2014년 9월까지는 대법관 14명 가운데 6명이 속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2017년 현재 법원, 특히 법원행정처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2000년대 사법시험 2차 수험가에서 베스트셀러였던 '민법 교안'의 저자 노재호도 민사판례연구회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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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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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창립된 법학 학술단체다. 원래는 민법학계의 전설인 곽윤직 전 서울법대 교수가 자기와 친했던 제자들 중심으로 김증한 서울법대 교수가 주축이 된 '한국민사법학회'에 대항하여 만든 단체이다. 창립 당시에 학계와 실무계를 연결하는 최초의 법학 학술단체였고, 지금까지도 학계-실무계 인사들이 고루 활동하면서 법학계의 최고 권위를 갖는 단체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매년 '민사판례연구'라는 학술지[1] 를 간행하고 있는데, 민법 전공을 하지 않은 판사들이 많음에도 수록된 논문의 질이 높다. 중요한 민사판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싶다면 민사판례연구에 실린 판례 평석을 보는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민사 분야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소질있는 법관들이 인사에서 소외되는 동안, 민사 분야에 국한된 민사판례연구회 소속 법관들이 노동 분야를 포함한 법원의 요직을 독점하다 보니, '사법부의 하나회'라는 의구심을 사고있다. 민사판례연구회는 다른 법관 연구모임과 달리 법관을 퇴직하여 김앤장 등 대형로펌에 소속된 변호사도 회원으로 하고 있어 '전관예우의 통로', '사법부의 하나회' 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2. 현황
민법학계와 실무계의 가교를 담당하는 최초의 학술단체를 표방했고, 민법-민사소송법-상법 담당 교수들도 많이 활동하므로 단순한 학술모임으로 볼 여지도 있긴 하다. 그러나 애시당초 만들어질 때부터 곽윤직 교수의 제안으로 그와 친했던 제자들인 이용훈 전 대법원장, 박영식 전 광주지방법원장[2] 이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엘리트 판사들 위주로 인원을 충원했기 때문에 출발 단계부터 하나회와 성격이 유사했다.
가입 초기엔 박우동, 윤일영 등 고법 부장판사 급도 가입했으며, 민총과 물권법 교과서에서 곽윤직의 견해를 잘근잘근 씹었던 이영준도 초기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고위 판사들과 이영준 같은 일부 회원들이 나가고 이용훈-박영식-손지열-김황식 등 곽윤직에게 해마다 세배를 갈 정도로 곽윤직의 총애(?)를 받는 이들이 중심 멤버로 자리잡은 뒤에는 매 기수마다 '서울대 법대 + 대학 재학 중 조기 합격 + 연수원 성적 최상위권' 기준에 부합하는 엘리트 판사들 중 2~3명만 가입시켰다. 이후 여성에게도 문호를 개방했지만 어디까지나 저 조건에 부합하는 경우에만 가입이 가능했다. 가입하고 싶다고 아무나 가입할 수 있는 게 아닌, 말 그대로 초특급 엘리트 집단이라 할 수 있다. 발간된지 약 30년이 되가는 민법 분야의 최고 주석서인 '민법 주해'의 집필진들도 대부분 민사판례연구회 출신들이다(이인재 등 일부 아닌 경우도 있다).
그렇다 보니 사법부의 또다른 권력 조직인 법원행정처에도 민사판례연구회 출신들이 다수 활동했고, 자연스레 민사판례연구회 출신 대법관[3] 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직전 대법원장 양승태와 그 전 대법원장 이용훈 모두 민사판례연구회 출신이다. 교수들도 다수 활동하긴 했으나, 그들도 역시 '서울대 법대'를 나와야만 가입할 수 있을 정도로, 말 그대로 '서울대 법대' 잔치인 모임이었다.
하지만 지독한 폐쇄성 덕분에 '사법부의 하나회'란 뒷말이 끊이지 않았고, 이로 인해 2010년부터는 가입신청을 하여 승인을 받으면 회원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비 서울대 출신 판사들도 점점 가입하고 있으며, 비 서울대 출신 교수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여 과거 같으면 가입도 할 수 없었던 고려대, 연세대 법대 출신 교수들도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는 비 서울대 출신 판사나 교수들도 판례 평석을 꾸준히 기재하고 있다.
3. 회원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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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회원이 누구인지 외부에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이로 인한 비판이 일자, 지금은 '민사판례연구'에 회원 명단을 싣고 있다.
회원 수는 2010년에 181명이었다가, 2015년에는 230명(판사 110명, 전직판사 43명, 교수 77명)으로 증가하였다.
민사판례연구회 출신 대법원장 2명, 국무총리 1명, 대법관 17명, 헌법재판관 3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현재 대법관 14명 중 4명이 속하거나 속해 있다. 2012년 11월부터 2014년 9월까지는 대법관 14명 가운데 6명이 속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2017년 현재 법원, 특히 법원행정처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2000년대 사법시험 2차 수험가에서 베스트셀러였던 '민법 교안'의 저자 노재호도 민사판례연구회에 가입했다.
- 곽윤직 現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명예교수 / 초대 회장
- 양승태 前 대법원장(2011~2017)
- 이용훈 前 대법원장(2005~2011)
- 김황식 前 대법관, 前 국무총리
- 김재형 現 대법관
- 김소영 前 대법관
- 김용덕 前 대법관
- 박병대 前 대법관
- 김용담 前 대법관
- 차한성 前 대법관
- 민일영 前 대법관
- 박재윤 前 대법관
- 손지열 前 대법관
- 양창수 前 대법관 / 3대 회장
- 윤재식 前 대법관
- 서성 前 대법관
- 이일수 前 대법관
- 차한성 前 대법관
- 박우동 前 대법관
- 윤일영 前 대법관
- 정귀호 前 대법관
- 목영준 前 헌법재판관
- 이공현 前 헌법재판관
- 권성 前 헌법재판관
- 이재후 現 김앤장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 송상현#s-2 前 국제형사재판소장 / 2대 회장
- 권오곤 前 구유고슬로비아국제형사재판소 부소장
- 윤진수 現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4대 회장
- 지원림 現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권오창, 권오곤, 김도영, 김용상, 김경환, 김성욱, 김수형, 김유진, 노경식, 목영준, 문준섭, 박순성, 백창훈, 서정, 손지열, 신우진, 안정호, 원유석, 이상우, 이현종, 이재후, 이철원, 전원열, 한상호, 한애라, 함윤식, 홍준호
4. 여담
- 강용석의 고소한 19 10회에서 강용석 변호사가 꼽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연말 모임 4위를 기록했다. 이 순위에서 해병대 전우회, 고려대학교 교우회, 호남향우회가 1~3위로 꼽혔다. 즉 사람의 숫자 자체가 워낙 엄청나게 많아서 규모빨(?)인 모임을 제외하면 사실상 소수의 엘리트 모임으로는 1위를 한 셈이다.
- 운영위원으로 있는 김재형 서울대 교수가 2016년 대법관으로 지명되었다. 청문회에서 야당의원들이 탈회를 요구하자 "어떻게 처신하는 게 가장 적절한지를 조금 더 고민해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운영위원직은 사퇴했다고 한다.
- 민사판례연구회 하계 심포지엄은 매년 여름 대학 방학기간 중(교수 회원들이 다수이므로) 국내 리조트 등의 휴양지에서 3박4일 일정으로 열리는데, 워낙 국내 법조계의 핵심인물들이 모이는 자리이다보니 개최장소로 선정된 리조트에서는 VIP대우로 의전한다(참고로 대부분의 경우 해당 리조트 회원권 소지자만 이용할 수 있는 일부 시설들의 경우에도, 판례연구회 심포지엄 참가자 및 가족들에게는 개방한다.. ㅎㄷㄷ). 가족 동반 행사이므로 회원 본인 외에 가족들까지 모두 여름휴가 차원으로 참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첫째 날 저녁 만찬부터 공식일정이 시작되어, 둘째 날과 셋째 날 오전에는 학회 회원들의 학술발표 및 토론이 항상 포함된다. 첫째 날 저녁 만찬 마무리는 항상 민사판례연구회 학회가를 다함께 제창하며 마무리하는 전통이 있다(대략적인 가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 손과 손 잡으니 한마음이 되고~ ... ).
[1] 실질적으로는 연속간행물이지만 도서관 분류상으로는 단행본이다.[2] 1993년 고위 공직자 재산 파동 때 법원장직에서 물러남[3] 민사판례연구회 회원 출신인 대법관급 이상 법관은 22명에 달한다. 이에 비하여 언론에서 반대 성향으로 자주 비교하는 학술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은 대법관급 이상이 3명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