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그 비케르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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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유로니무스 살인사건과 교회 방화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 바르그 비케르네스(당시에는 '카운트 그리쉬나크'라는 이름으로 활동)의 모습.

당시 선고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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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인터뷰하는 바르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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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모습
1. 개요
2. 소개
3. 음악적 특징
4. 생애
5. 출소 이후
6. 총평
7. 기타
8. 앨범 목록


1. 개요


Varg Vikernes
1973년 2월 11일(51세)
노르웨이의 뮤지션이자 범죄자. 매드 아티스트.
공식 사이트

2. 소개


바르그 비케르네스[1]메이헴베이시스트이자 원맨 밴드 버줌(Burzum)의 창시자이다. 버줌은 1991년에 활동을 시작했고 2018년에 활동을 종료했다.
주 장르는 블랙 메탈의 계열 중 몽롱한 분위기의 앳모스페릭 블랙 메탈. 이런 쪽 장르에서는 가히 전설로 꼽히는 인물. 정작 본인은 자신의 음악이 블랙 메탈이라고 불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왜냐하면 '블랙 메탈'이라는 용어를 주창하고 널리 퍼트린 사람이 바로 자신이 죽인 유로니무스이기 때문이다.
Burzum은 반지의 제왕의 저자인 J. R. R. 톨킨이 가공한 '암흑어'에서 '암흑'을 뜻하는 단어이며, 모든 연주와 보컬은 물론 작사와 작곡, 녹음과 프로듀싱[2]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작업을 Varg Vikernes 혼자서 담당해왔다.

3. 음악적 특징


바르그가 감옥에 들어가 복역하기 전 녹음한 앨범들은 후대의 블랙 메탈 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아니 바르그가 없었더라면 현재 블랙 메탈이 이렇게까지 풍부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블랙 메탈 밴드 항목들을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바르그는 소위 초기 노르웨이 블랙 메탈 씬을 탄생시켰다고 하는 밴드들에(메이헴, 버줌, 다크쓰론, 임모탈, 엠퍼러) 모두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활동이 다 '''10대 시절'''에 이루어졌다.
특히 그의 정규앨범중 Hvis Lyset Tar Oss은 버줌의 최고작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음침하고 둔탁하며, 깨끗함과 희망이라고는 눈씻고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의 어둠의 결정체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감옥 수감 중에 다크 앰비언트 성향의 앨범들을 냈는데 이 앨범들 또한 다크 앰비언트의 명반으로 꼽힌다.
바르그 본인이 광적인 우루크-하이[3] 빠돌이라서 그런지 이에 대한 가사가 많으며 후기 앨범에서는 북유럽 신화신이교주의적인 가사도 많이 나온다. 바르그는 반지의 제왕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어드벤스드 던전 앤 드래곤도 자주 플레이 했다고 하며 버줌 1집에는 Dungeon of Darkness라는 제목의 곡도 있다. 곡 중에서는 이게 블랙 메탈인가라고 의심갈 정도로 War와 같은 건전한 가사의 곡도 있기도 하다.[4]
음악적으로는 이렇게 좋은 평들이 많지만 그의 정치 성향이나 종교적 취향으로 인해 여러번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고, 범죄에 연루되어 감옥살이를 한 적도 있다.

4. 생애


본명은 크리스티안 비케르네스(Kristian Vikernes)로 노르웨이 베르겐(Bergen)에서 1973년 2월 11일 21시 58분에 출생했다.
크리스티안은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크리스티안의 아버지는 당시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전기기사로 일하고 있었고 그와 그의 어머니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다고 한다. 크리스티안은 부모님을 따라서 이라크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동료 아이들로부터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원숭이'라 불리며 집단괴롭힘을 겪는 한편 그를 가르치는 선생은 크리스티안이 어떠한 사고를 일으켜도 그의 아버지가 사담 후세인 밑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그를 처벌하지 않았다고 한다. 1985년, 부모가 이혼하고 노르웨이의 베르겐으로 돌아온 크리스티안은 재혼한 어머니와 살면서 노르웨이의 중등학교에 입학했지만 학교에서 스킨헤드 패션을 하고 다니는 문제아로 찍히고 1987년부터 접한 기타에 푹 빠지게되자 1989년 학교는 자신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자퇴하고 집에 틀여박혀서 반지의 제왕을 읽거나 기타 연습을 하는 생활을 시작한다. 이즈음에 이미 크리스티안은 네오 나치 사상에 빠져있었다.
임모탈버줌이라는 두 밴드의 전신이 된 노르웨이 베르겐 출신의 밴드, Old Funeral의 리허설 영상.
1989년 학교를 자퇴하고 우르크-하이라는 원맨 밴드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음악 생활을 시작한 크리스티안은 이윽고 Old Funeral이라는 밴드에 가입하여 활동하게 된다. 1990년, Old Funeral의 앨범 발매 건으로 오슬로로 건너가서 유로니무스를 처음 만난 크리스티안은 그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게 되고 유로니무스 또한 어린 크리스티안을 마음에 들어했다. 크리스티안이 오슬로에 가는 일이 많아지면서 Old Funeral 멤버들과의 사이는 멀어졌고 결국 1991년 드러머이자 리더 Padden와의 싸움 끝에 밴드에서 해고된 크리스티안은 자신의 닉네임을 카운트 그리쉬니크[5]로 정하고 원맨 밴드 버줌을 결성한 뒤 유로니무스가 이끄는 사타닉 서클에 들어가서 각종 방화나 테러활동에 앞장서기 시작했다.[6]
1992년 한해에만 무려 8건의 교회방화가 일어났으며 네오 나치였던 카운트는 블랙 메탈씬에 나치즘을 제대로 도입한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7] 1992년 유로니무스의 후원으로 버줌의 앨범들이 녹음되었고 (버줌 1집에 수록된 <War>의 후반부 기타솔로는 유로니무스의 연주이다.) 카운트는 메이헴의 데뷔 앨범인 De Mysteriis Dom Sathanas의 레코딩에도 참여하였다.
1993년 1월, 카운트는 블랙 메탈과 메이헴의 앨범을 홍보하러 어느 기자와 인터뷰를 하게되는데 인터뷰 도중, "1993년 4월에 메이헴의 데뷔 앨범을 발표한 뒤, 앨범 표지처럼 노르웨이의 국보인 니다로스 대성당 (Nidaros Cathedral)을 폭파시킬 것"이라고 떠벌렸고 이 내용을 들은 기자가 깜짝 놀라서 인터뷰를 마친 다음날 경찰에 카운트를 신고하였다. 결국 카운트는 경찰에 잡혀서 구치소에 수감되게 된다.
1993년 3월 증거불충분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카운트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인 판토프트 목조 교회를 방화했고(무려 12세기에 건축된 교회이다.) 불에 탄 교회의 모습을 자신의 원맨 밴드 버줌의 새 EP인 Aske의 표지로 썼다.[8] 한편, 자신이 감옥에 있을 때 유로니무스가 다른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는 것을 알게된 카운트는 자신의 본명을 크리스티안에서 Varg Qisling Larssøn Vikernes[9]로 개명한 뒤, '나는 범죄행위에 직접적으로 가담하기는 두려워하고 동료 뮤지션들에게 이념을 주입시키기만 했던 유로니무스와는 다르다. 나는 감옥까지 다녀온 행동파다.'라고 주장하며 서클의 각종 범죄 활동을 재개시키고 새로운 레이블 Cymophane Productions을 창설하여 그동안 자신이 음악 작업에 관여한 블랙 메탈 밴드들을 그의 새 레이블로 옮기려는 준비를 시작한다.
1993년 8월 10일, 바르그는 같이 메이헴의 데뷔 앨범 녹음에 참여했던 Blackthorn라는 기타리스트에게 부탁하여 유로니무스가 살고있는 Tøyen가(街)에 위치한 공동주택에 찾아가 유로니무스를 무참히 살해한 후[10] 도망치다가 노르웨이 경찰에게 붙잡혀서 살인, 방화, 강도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노르웨이 사법부는 범행의 잔혹성을 고려하여 징역 21년을 선고했는데 21년은 노르웨이 법정 유기징역 최고형량이며 훗날 노르웨이 연쇄 테러의 범인 브레이빅 또한 징역 21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바르그가 잡혔을 당시에는 무기징역이 있었기 때문에 예방적 구금 처분은 받지 않았다.
크리스티안 바르그 비케르네스는 블랙 메탈 2세대 파벌싸움의 선두주자[11]로도 뽑힐 정도였으며 대표적인 예로 유로니무스 살인사건이 있다. 바르그가 유로니무스를 죽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로니무스는 말로만 떠드는 별거 아닌 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바르그에 의하면 유로니무스는 그와 함께 교회방화에 깊게 연루되어 있었고 심지어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교회에 불을 질렀다고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면서 유로니무스는 항상 씬의 대장은 자신이라며 내 말에 복종하지 않으면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고 블랙 메탈 뮤지션들을 압박해왔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경찰 등에서 교회 방화 및 폭력 사건으로 조사를 받게되자[12] 유로니무스는 '자신은 블랙 메탈러이자 D.S.P.의 수장으로서 카운트(바르그)의 행위에 대해서 흡족해하고 있지만 일련의 사건들은 자신과 관계없는 카운트의 단독 행위이며 아마 카운트는 감옥에 갇히는 것이 버줌 앨범 홍보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체포된 것을 기뻐할 것이다.' 라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며 꼬리를 잘랐다.
한편, 구치소에서 풀려난 바르그는 자신이 구치소에 수감되어있는 동안 유로니무스가 Helvete 레코드점까지 닫고 잠적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충격을 받고 돌이켜보니 자신을 포함한 일련의 뮤지션들과 유로니무스가 결탁하여 사타닉 서클이 결성되기 전에는 교회 방화 같은 사건이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바르그는 유로니무스는 단지 입으로만 블랙 메탈의 정신을 떠들고 행동으로 보여준 것은 없는 사이비라고 여기게되었고 자신이 새로이 씬을 이끄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적대자가 된 유로니무스를 제거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유로니무스는 이전부터 인간성이 개차반으로 악명 높았기에 그가 살해당한 뒤에도 그를 동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장 전 멤버가 고인드립을 시전했을 정도니. 다만 바르그는 자신의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알기 어렵다.
초창기 그의 반기독교적인 사상을 뒷받침하는 한 예로, 버줌은 앨범을 발매하면서 CD와 함께 케이스에 라이터를 동봉해 발매하기도 했다. 그 라이터로 교회 불태우라고. 실제로 그는 1992년에 홀멘콜렌 교회와 아래의 판토프트 목조교회에 불을 지르고 잿더미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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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버줌이 방화했었던 판토프트 목조교회(Fantoft Stavkirke). 12세기 노르웨이 건축물로 세계대전의 화염구덩이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교회였지만 이 사람이 불을 질렀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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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습으로 불지르고 자켓으로 썼다.'''
극우주의자이기 때문에 유로니무스를 살해한 것 외에도 노르웨이의 아나키즘 단체인 'Blitz'의 본부에다 폭탄 테러를 시도하려던 적도 있었다.[14]
바르그는 살인과 방화 혐의가 인정되어 노르웨이의 유기징역의 법정 최고형인 21년형을 선고받았으며, 탈옥을 하려고 그의 어머니가 극우단체에게 연락을 취하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출소일을 하루 남겨두고 탈옥을 하다가 결국 잡히기도 했다.
웃기는건 정작 지금은 방화 혐의를 부정하고 있다.

5. 출소 이후


2009년 가석방된 바르그는 2010년 새 앨범인 belus를 발매했는데, 나치즘을 버렸다고 주장했다.[15] 바르그는 블랙메탈씬에서 Graveland와 함께 유명한 극우주의자이자 인종주의자였다. 새 앨범의 컨셉은 북유럽의 주신 오딘의 부활.
북유럽, 정확히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종교와 신화에 관심이 많았는지 수감 생활 동안 모은 자료를 토대로 2011년 Sorcery And Religion In Ancient Scandinavia(고대 스칸디나비아의 마법과 종교)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책을 보면 여전히 기독교문명이 지배하고 있는 유럽 세계가 마음에 안 드는 듯.
2012년에 발매되는 Umskiptar 앨범은 모든 가사를 노르웨이 시집인 Völuspá에서 따 왔으며, 새로운 빙하기에 의해 대격변을 맞이하는 유럽의 모습이 컨셉이라고 한다.
출소 후 음악의 분위기가 다소 바뀌었다. 블랙 메탈보다 앰비언트에 더 가까운 느낌. 버줌의 팬들 중에서는 수감 생활 이후 발매된 앨범에 대해 혹평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기타가 자글거리지 않아서 버줌같지 않다'라든지, '감옥에 다녀오더니 음악이 변했다'라든지. 버줌도 이런 평이 짜증났는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나는 단지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 내 옛날 음악을 답습하고 재생산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이전에도 그랬던 적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라며 쿨하게 씹는 모습을 보였다. 애초에 블랙 메탈로 이미지가 굳어지는걸 싫어하기도 하고 돈이 아쉬워서 음악을 하는 양반은 아니다. 물론 이쪽을 더 선호하는 쪽도 많다.
2012년 인터뷰에서 그의 아내는 Marie Cachet라는 이름의 프랑스인 조각가이며 프랑스야 말로 사상과 자유가 보장된 나라라며 극찬하면서 자신도 그녀와 같이 프랑스로 이민가고 싶으나 범죄자라는 신분 때문에 해외로 나갈 수 없으며[16] 다른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고 운둔 중이라고 자신의 근황에 대해 말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가문에 먹칠을 하지 않게 명예로운 방법으로 자결하여 최후를 맞이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게다가 요즘은 음악 작업보다 자신이 만든 세계관으로 TRPG를 만드는데 빠져있다고 한다. 결국 2015년 8월 MYFAROG라는 TRPG를 출시했다. 근데 바르그 답게 내용이 상당히 병맛이다. 묘하게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를 심히 연상시키는 적들이 나온다.
2013년 3월 그의 아내와 함께 고대 스칸디나비아의 유적을 탐사하는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편집작업은 프랑스에 위치한 아내의 작업실에서 행해졌으며 다큐멘터리의 음악은 버줌이 담당했다.
2013년 7월 16일에는 프랑스에서 아내가 총기 4정을 산 이후 테러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버렸다. 실제로 테러를 한 건 아니고 바르그의 과거 행적 등을 보아서 총기 구매 직후 잡힌 것이라고 한다.[17]# 그리고 풀려났다. 이 때 바르그가 출소 후 Louis Cachet 라는 이름으로 프랑스에서 아내와 살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2014년부터 신이교주의, 생존주의, 인종주의 등 자기 사상과 일상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지만 2019년에 강제 패쇄당했다.
2018년 6월에는 버줌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였다.
2018년 8월에 올린 영상에 의하면 의외로 2차대전 당시의 일본의 위안부 문제 등, 일제의 아시아인에 대한 학살행위를 비난하고 현대의 이상성도착증 성향이 포함된 일본 애니메이션-망가 등 페도필리아를 지향하는 것이 즐비한 일본문화를 까내렸다. 그러면서 일본은 반기독교주의-신이교주의[18]에 대한 이상적 롤모델은 될 수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현재까지도 2차대전 당시의 나치 독일나치즘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있다. #
2019년 5월 경 남유럽인들을 갈색(Brown) 종족의 피가 섞인 (아랍, 마그레브, 유대인 계통) 인종이지 백인이 아니라는 인종차별 발언의 주장을 했다가 헤이트 스피치(증오발언)과 인종차별을 이유로 결국 유튜브 측에서 공식적인 유튜브 채널 강제 폐쇄를 당했다. 여전히 극우주의자이자 인종차별, 백인우월주의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시간이 지나도 그 극단적인 정치, 사회적 성향을 버리기는 매우 어려울것 같다.
코로나 사태에 대해서는 예상과는 다르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마스크 착용에 대해서도 오히려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미착용자에 대한 비난의 트윗을 남겼다(!)

6. 총평


음악가들 중 '''재능과 인격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극단적인 사례이다. 노르웨이 사회가 사적 보복을 좋게 보지 않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재까지 피살자인 유로니무스의 가족들에게 보복을 당하거나 하지는 않은 듯. 사실 유로니무스도 굳이 말하자면 건실한 청년은 아니었고[19] 이 인간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인 죗값을 다 받은 상태이기에 보복을 당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대신 사회적으로는 살인마로 낙인찍혀 반쯤 매장당했다.
4chan에서는 트인낭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4chan 등에서 병신같지만 멋있어같은 반응으로 컬트적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진심으로 찬양하는 인간들은 그닥 없다. 지금은 그것도 없고 그냥 음악만 잘 만든 병신 취급.

7. 기타


  • 밴드 이름이나 개명한 이름 등에서 봐서 알 수 있듯이 어린시절부터 상당한 톨키니스트였으며 지금도 엄청난 빠다. 정작 J. R. R. 톨킨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에다가 인종차별을 혐오했다는게 아이러니.. 바르그는 이에 톨킨은 정신은 이교인데 어쩔수 없이 기독교인 된거 아니냐던가[20] 요즘 가톨릭이야 80퍼센트는 이교도 아니냐면서 정신승리하다가 비웃음을 받은 바 있다.
  • 당연하게도 단 한 번도 라이브 공연을 한 적이 없다. 원맨 밴드도 더러 게스트 멤버를 초청하여 공연을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앨범 대부분이 카운트가 교도소에 입소한 뒤 발매되었기 때문에 충분히 납득할만 한 사정이다. 다만 공연을 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듯 하다. 실제로 Ulver의 드러머였던 AiwarikiaR가 버줌의 드러머로 가입하려고 했었고, Darkthrone의 Fenriz와 Mayhem의 Hellhammer도 버줌의 오디션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 버줌의 작품들이 북유럽 신화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고, 그가 신이교주의에 대한 상당한 관심을 가져 신학 연구와 관련 집필을 해왔음에도 신이교주의자들 사이의 평판은 극과 극을 달린다. 또한 버줌이 오딘을 위해 불태웠다고 하는 기독교 교회들 중 일부는 고대에 북유럽의 신들을 섬기기 위해 지어진 신전이었음이 밝혀져,[21] 신이교주의자 입장에서도 신성모독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버줌이 했다는 고대 북유럽 신학 연구조차도 학계 학설과 상충되는 등 오류가 많고, 상상으로 땜빵되었으며, 인종주의와 나치즘에 오염되어 학문적 가치가 낮다고 부정되고 있다. (바르그는 북유럽인이 네안데르탈인에서 독보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후손으로, 현생 인류와 다르다고 믿고 있는 인물이다) 다만 바르그는 진심으로 이교 신을 섬긴다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
  • 4chan 등지에서는 바르그가 "야동 그만봐라"(Stop watching porn)하는 짤방이 밈으로 퍼졌고 금딸의 상징으로 통하고 있다.

8. 앨범 목록


  • 1991 - Demo I/Demo II
  • 1992 - Burzum : Raw Black의 교과서적인 앨범. 1992년 1월 녹음. 훗날 Aske EP와 통합하여 재발매되었다.
  • 1993 - Aske (EP) : 위에 나오는 전소된 교회를 앨범 커버로 한 앨범으로 카운트가 구치소에서 석방된 직후 발매된 앨범이자 D.S.P.에서 발매된 마지막 버줌 앨범이다. 1993년 3월에 발매되었다. 버줌 앨범들 중 유일하게 카운트의 원맨 레코딩이 아닌 다른 사람이(엠퍼러의 멤버 Samoth가 베이스를 맡음) 참여하여 녹음된 앨범이기도 하다. 1992년 8월 녹음.
  • 1993 - Det som Engang var : 카운트가 감옥에 수감되기 전에 나온 마지막 앨범이자 Cymophane Productions 명의로 나온 첫 앨범. (후에 나온 앨범들은 모두 카운트가 감옥에 수감 중이었을 때 발매된 것이다.) 1992년 4월 녹음.
  • 1994 - Hvis Lyset Tar Oss : Atmospheric black metal을 사실상 창조한 앨범. 1992년 9월 녹음.
  • 1996 - Filosofem : 카운트가 감옥에 수감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녹음한 앨범 (1993년 3월 녹음). 자살 블랙메탈(DSBM)의 사운드적 방법론을 제시하고 완성한 앨범. 거의 모든 DSBM 밴드들이 음악적으로 큰 영향을 받은 앨범으로 Filosofem 앨범을 꼽는다.
  • 1997 - Daudi Baldrs : 카운트가 감옥에서 만든 다크 앰비언트 앨범(1).
  • 1999 - Hlidskjalf : 카운트가 감옥에서 만든 다크 앰비언트 앨범(2). 제목은 북유럽 신화에서 오딘의 왕좌를 뜻한다.
  • 2010 - Belus
  • 2011 - Fallen
  • 2012 - Umskiptar
  • 2013 - Sôl austan, Mâni vestan : Varg가 그의 아내 Marie와 찍은 다큐멘터리의 사운드트랙 앨범
  • 2014 - The Ways of Yore : 엠비언트 앨범
  • 2020 - Thulêan Mysteries : 그가 만든 TRPG인 MYFAROG의 사운드트랙 앨범.

[1] 본명은 Kristian "Varg" Vikernes. 자신의 이름이 너무 순둥이처럼 들린다며 Varg로 개명. 실제로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서양인들 중에는 기독교식 이름을 버리고 이렇게 바꾸는 경우가 많다.[2] Pytten과 공동 프로듀싱[3] 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는 그 오크의 개량형들.[4] War와 같은 경우는 일반적인 블랙 메탈의 가사가 아닌 단순한 헤비메탈 가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전쟁의 참혹함을 그린 반전 곡이다. 물론 사운드와 창법은 블랙 메탈의 그것이다.[5]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오크 이름[6] Old Funeral 탈퇴 직후, Immortal의 멤버로 유명한 Abbath와 함께 Satanel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7] 1992년 발행된 네오 나치 단체 블러드 앤 호너(Blood & Honour)의 정규 잡지에서는 크리스티안이 존 88(Zorn's 88) 소속의 네오 나치이며 화이트 아리안 레지스탕스 (White Aryan Resistance)애도 소속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8] 해당 교회는 12세기 교회 자체로서 의미도 있었던 건물이지만 세계대전의 화염 속에서 살아남은 건축물로도 의미가 있으며 목조 건축 양식을 찾아볼 수 있는 몇 남지 않은 노르웨이 건축물이었다.(다른 목조교회들은 세계대전 중 많은 수가 전소, 파괴되었다.) 우리나라에 비교하자면 반불교 세력들이 부석사 무량수전에 불을 지른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 뒤 해당 교회는 1997년에 복원되었다.[9] 참고로 Varg(바르그)는 늑대(Wolf)라는 뜻을 가지며, Qisling은 비드쿤 크비슬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10]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유로니무스의 시체에는 '''칼로 찌른 자국이 23군데'''나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카운트의 증언에 따르면 살려달라며 도망치는 유로니무스를 계속 찌르고 또 찔렀다고도 한다.[11] 블랙메탈 2세대란 노르웨이 블랙 메탈 무브먼트를 칭하는 다른 말이다. 자세한 것은 블랙 메탈 항목 참조. 대표적인 인물로 유로니무스와 바르그가 있다.[12] 유로니무스를 죽이기 전까진 미수처리.[13] 다행히도 1997년에 복원되어서 사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14] 'Dagbladet' 2007년 7월 9일자[15] 어디까지나 나치즘만 그만뒀을 뿐 여전히 극우쪽에 가깝다.[16] 당연한 일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떤 나라가 그냥 범죄자도 아니고 살인범의 입국을 허가하겠는가?[17] 아직 유럽 전역에서 노르웨이 연쇄테러에 대한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인데다가 바르그가 한창 네오나치 사상에 몰두해 있을 즈음에 노르웨이 연쇄 테러의 가해자가 자신의 사상이 담긴 성명서를 바르그가 복역하고 있는 감옥으로 보낸 사실도 있다고 한다. 용의자인 브레이빅이 평소 버줌의 팬이었다고. 정작 비케르네스 본인은 멍청한 놈이라고 깠다.[18] 일본 국가신토가 정립될 때 신토비종교론에 일부가 혹하는 것을 지칭하는듯하다.[19] 사실 지금 살아 있었어도 다른 사람들을 이용해먹고 매몰차게 버리거나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아무 이유없이 괴롭히는 등 악질적인 쓰레기로 남았을 가능성이 크다. 활동 당시 유로니무스는 밴드 멤버들은 물론이고 노르웨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동종 장르의 다른 뮤지션들에게 악명이 높았던 인간이었다.[20] 참고로 영국은 성공회 국가다.[21] 사실 유럽에는 이러한 사례들이 많다. 그 유명한 그리스파르테논 신전정교회 성당으로 활용되던 적이 있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