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진(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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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최종계급 대장, 최종보직은 제1야전군사령관이다.
2. 상세
1957년, 충남 서산시에서 태어났다. 서산고등학교를 거쳐 1980년에 육군3사관학교를 제17기로 졸업하고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대령 시절 제17보병사단 제102보병연대장,육군보병학교
교무처장을 역임했다.
2009년 준장으로 진급하여 제5군단 참모장,육군3사관학교 생도대장을 역임했고, 2011년 11월 소장 진급 후 제37보병사단장 및 육군본부 감찰실장을 역임했다. 2014년에는 3사 17기 동기들 중 유일하게 중장으로 진급하여 제6군단장과 제3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역임했다. 사단장을 한직인 향토보병사단장으로 복무한 대신 군단장을 요직인 전방군단장으로 복무했다.[1]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의 첫 고위 군인사에서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1야전군사령관으로 취임했다.
3사 17기는 1980년에 임관했으므로 임관 연도로만 따지면 육사 36기, 학군사관 18기와 동기가 되지만, 이 당시 3사는 소위 임관 후 학사 학위를 위한 위탁교육을 받았으므로 임관 2년 후배인 육사 38기, 학군 20기와 진급 동기가 되었다.[2][3]
2016년 10월 제6군단장 이임 후 받은 보직이 제3야전군 부사령관이었던지라 대장으로의 진급은 힘들어 보였으나 이듬해 5월 정권교체와 송영무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취임, 결정적으로 박찬주 제2작전사령관의 갑질 사건으로 인하여 대장 진급 가능성이 점쳐지더니 마침내 2017년 8월 인사에서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1야전군사령관에 보임되었다. 이는 3사 출신으로는 역대 두번째로 제1야전군사령관에 취임한 것인데, 3사 출신으로 첫 제1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주인공은 박성규 대장(3사 10기)이다.
보통 야전군사령관급 인사에서 육사 출신이 2명 보임되면, 비육사 출신이 제2작전사령관으로 보임되는 경우가 다수였는데, 이번 인사는 이례적으로 비육사 출신이 제1야전군과 제2작전사령관을 맡게 되었다. 이 점에서 육사 출신의 과도한 독점 구도를 타파하겠다는 국방개혁 의지가 반영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9년 1월 1일부로 육군의 단일 야전군 사령부인 지상작전사령부가 창설되면서 전날인 2018년 12월 31일 제1야전군사령부 해체식이 거행되었고, 박종진 사령관도 이날을 끝으로 군 생활을 마쳤다. 이로써 그는 '1군 사령부의 마지막 사령관'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3. 여담
- 3사 생도대장 시절, 생도들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연등 가능시간을 늘리고 체력단련도 강제가 아닌 자율적으로 실시하는 등의 개혁을 진행하였다. 당시 3사 생도는 전임 생도대장인 원홍규 준장의 관리아래 하루에 10km (아침2km 오후 체력단련 4km 금요일 주간 구보 4.6.8.10km 토요일 산악구보 완전군장 4.6.8.10km) 가량을 구보하는 등 체력이 대단히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원홍규 준장은 매번 외박 이후에도 구보실시, 생일을 맞은 생도를 축하해주기 위한 자리에서 벌어진 가혹행위에 대해 가차없이 퇴교를 때리는 등 3사관학교 생도들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이런 때에 박종진 장군은 3사 생도들에게 "단순히 체력이 강한 장교가 될 것이 아니라 스마트한 장교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자율적 학습 및 체력단련 방침을 채택했던 것. 당시 생도들도 박종진 장군의 이러한 방침을 크게 환영하는 입장이었는데, 박종진 장군이 생도대장에 취임한 지 채 1년도 안 돼 소장으로 진급하고 사단장으로 영전하게 되면서, 생도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침도 축소되었다. 때문에 생도들은 박종진 장군의 진급을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론 많이 아쉬워했다고 한다.
- 사단장 시절에는 3km 구보를 12분 30초에 주파했는데, 이 기록은 만 25세 미만 현역 장병의 특급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덕분에(?) 전속부관들이 체력단련 시간이면 사단장과 같이 구보하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다만 사단 역사관과 충용회관을 개보수하는 과정에서 타일 벽지 하나 고르는데 사단 전체 여군 거의 대부분을 소집하여 두시간이 넘는 회의를 하는 등, 아주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체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13년 사단장 이임 후, 육본 감찰실장으로 부임하였는데 보직의 특성상 적을 많이 만들어야하기에 진급과는 거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3사관학교 출신에서 원홍규, 서정열 장군도 이 보직을 역임 후 더 이상 진급하지 못했다. 그런데 2014년 군 내부에서 28사단 의무병 살인사건, 22사단 임병장 총기난사등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때 사건의 진상을 소상히 밝히는 등 조치를 잘 한것으로 인정을 받았기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중장진급을 하였다. 그리고 6군단장 이후 3군 부사령관 보직을 받아 더 이상 진급할 것 같이 보이지 않았으나, 정권이 바뀌면서 육사의 힘을 빼고 출신간 티오를 맞추기 위한 배려아닌 배려에 힘입어 대장까지 진급하게 된 관운의 소유자이다.
- 17년도 중순~말 부터 군내 차량사고가 지속 발생하였는데, 평상시 차량관리와 차량 이동전 검차, 운행책임자(선탑자) 및 운전병의 임무를 더더욱 강조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차량 '안전벨트'를 '생명벨트'라는 용어로 바꾸어 사용하도록 지시하고, 군용차/개인차(간부사제차) 상관없이 모두 생명벨트를 철저히 매고 부대 위병소 출입마다 초병들이 검사하도록 시스템화 하였다.
사실 사단장 시절에도 사단 사령부 주도로에 정차된 차량(선탑자는 독립대대 간부로 본청사무실에 업무차 방문 중)을 보고, 고임목 미설치, 엔진 및 에어컨 켜짐, 대기한 운전병 수면등을 문제삼아 사단 전체에 메모보고로 전파를 때려버렸다. 그 결과 운전병은 휴가제한 3일. 선탑간부는 경고장을 받는 등 이미 차량 관련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 2018년 9월 11일, 노컷뉴스는 국방부 장관으로 영전한 정경두 합참의장을 대신해 합참의장으로 내정된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의 후임으로 발탁되었다고 기정사실화하여 단독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합참의장에 박한기 대장이 내정되면서 오보로 밝혀졌다. 국방부 관계자에 따르면,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은 직을 유지하여 인사 폭을 줄인다고.
4. 관련 문서
[1] 보통 사단장을 향토나 동원사단장으로 마친 중장들이 대장에 진급하기 위해서는 군단장을 좋은 걸로 받아야 한다. 같은 사례로 한민구가 있는데 한민구 역시 사단장을 향토사단장(제53보병사단장)으로 했지만 군단장을 수도방위사령관으로 커버치고 결국 육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 국방부장관에 연달아 올랐다. 박선우 장군도 제37보병사단장(소장) 역임 후 중장 1-2차 보직을 제2군단장과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으로 받으면서 살아났고 대장 진급에 성공하며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부임했다. 합참 작전본부장은 육-해-공 3군이 탐내는 요직 중의 요직이다.[2] 3사가 학사 학위를 완전히 받게 된 1998년 이후의 임관자의 경우엔 아직 소~중령급인지라 장성 진급 속도가 어떨지는 2020년대에 가봐야 알 수 있을 듯 하다. 이들 중 병사, 부사관으로 만기전역 후 재입대한 사람들의 경우 다소 유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육사출신보다 진급에 불이익을 받았다. 실례로 2017년 첫 대장 인사 결과, 박종진 대장은 자신보다 임관이 3년 늦은 김용우 대장(육사 39기, 1983년 임관)을 상관인 육군참모총장으로 모셔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는 제2작전사령관을 역임한 황인권 대장(3사 20기, 1983년 임관)도 마찬가지인데, 임관이 2년 늦은 서욱 대장보다 진급을 먼저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욱 대장이 진급하자마자 육군참모총장에 보임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욱 대장은 2020년 9월 18일부로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에 임명된데다 합동참모의장에는 공사 32기의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이, 육군참모총장에는 학군 23기의 남영신 지상작전사령관이 취임하면서 황인권 대장 역시 제2작전사령관을 끝으로 예편하였다.[3] 지금 3사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일반 대학에서 2년 수료 혹은 전문대학을 졸업해야 입학할 수 있다. 3학년과 4학년 과정만 운영하기 때문이다.[4] 왼쪽의 부대기를 전달하는 인물은 장준규 당시 육군참모총장이고 가운데 있는 대장은 이임 사령관인 김영식 대장이며, 장준규 前 육참종장이 김영식 대장의 전임이었다. 그리고 장준규 前 육참총장과 박종진 대장은 서산 해미중학교 22회 동기이며, 임관연도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