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지토
1. 개요
200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를 대표했던 선발 투수 중 한명으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활동했다. 사이 영 상을 탔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유했던 투수였으나 샌프란시스코로 이적한 이후 '''희대의 먹튀'''로 전락해버렸다.
2. 커리어
2.1.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99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입단하여 선수생활을 시작했으며 마이너리그에선 비교적 평범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2000년에 비교적 빠르게 콜업되어 메이저리그 경력을 쌓기 시작, 엄청난 성장세를 올리며 01년 17승 02년 '''23승'''을 거두고 2002년 사이영 상을 받는다.[1] 2005 시즌을 앞두고 마크 멀더, 팀 허드슨, 배리 지토의 3인방을 해체한다고 알려졌을 때, 대부분은 지토와 멀더가 트래이드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토가 사이 영 상을 받기야 했지만, 전체적인 스터프는 허드슨이 위였기 때문. 게다가 좌완이라는 이점 덕분에 팔기에는 지토가 더 좋았다. 하지만 빌리 빈은 허드슨이 아닌 지토를 남겼는데, 허드슨은 부상 경력이 있지만, 지토는 없었다는게 그 이유였다. 지토는 이후 겨우 10승을 넘기는 평범한 투수가 되어버리는가 싶었지만 2006년 FA를 앞두고 16승을 거두어 자신의 건재성을 다시 알렸다.
2.2.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2.1. 2007년 ~ 2008년
2007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7년간 '''1억 2천 6백만 달러'''[2] 로 계약하여 FA 역사에서 한획을 그었다. 애초 샌프란시스코는 2002년 포스의 재현을 기대하고 계약을 했다. 하지만 지토는 오클랜드 말기에도 승수 외의 FIP, WHIP, 평균 구속 등의 세부 지표는 하락세였다.
지토는 결국 2007년 11승을 거두고 2008년엔 10승을 거두었으나 무려 17패에다 평균자책점은 5.15로 다패왕과 사이 역 상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다. 제이슨 슈미트를 다저스에 첩자로 보낸 다음, 에이스에서 받아온 첩자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팬들은 ''차라리 아파서 뻗으면 보험금이라도 나오지''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 정도로 지토의 내구성은 무지하게 좋긴 했다.
2.2.2. 2009년
2009년에도 '''어김없이''' 시즌 초반부터 막장 투구를 보이며 샌프란시스코 팬들과 프런트진의 속을 박박 긁어놓은 다음 올스타 브레이크 후에는 2002년의 전성기 때로 돌아간 듯한 모습을 보이며 활약했지만 역시 다른 샌프란시스코 투수들과 마찬가지로 물타선에 울었다. 뭐 내용 자체로만 보면 드디어 먹튀의 오명은 벗을만한 투구를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샌프란시스코 이적 후부터 못 던진다고 이래저래 까이긴 했지만 언제나 6이닝 정도씩은 먹어주며 10승은 거둬주는 등, 그동안 '''못 던졌을 뿐''' 게다가 내용에 상관없이 부상 한번 없이 꾸준히 선발등판해주는 좌완투수라면 충분히 샌프란시스코 입장에서는 득이면 득이지 손해는 아니다. 어쨌건 이런 식으로 전통적으로 선발진이 조금 못 미더웠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팀 린스컴-맷 케인-배리 지토-조나단 산체스-브래드 페니[3] 로 이어지는 유례없는 선발진을 구축했다. 이렇게 괜찮은 선발진에도 불구하고 배리 본즈가 빠진 이후로는 타선은 처절한 안습으로 변하긴 했지만.(...)
2.2.3. 2010년
2010년 5월 초까지는, 투심 패스트볼의 비율을 높여서 '''지느님'''이라 불릴 활약을 했다. 하지만 8월 17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에서부터 내리 7연패를 당하면서 페이스가 많이 떨어진 상황.[4] 7월 16일 뉴욕 메츠전 승리 이후 근 두 달동안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는데 지토가 못 던진 경기도 있었지만 타선의 도움도 형편없었다.[5] 시즌 최종 성적은 9승 14패 평균자책점 4.15. 받는 몸값을 생각하면 여전히 모자란 성적이긴 한데, 그래도 2010시즌은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거의 흔들림 없이 선발진의 한 축을 든든하게 받쳤다는 점에서 팬들에게도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다.[6] 하지만 플레이오프와 월드시리즈에서 로스터에 들지 못하며 샌프의 월드시리즈 제패를 같이 기뻐하지는 못하게 됐다.
2.2.4. 2011년
2011 시즌 스프링캠프에서 수준급 활약을 펼쳤고 정규시즌에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부상을 당해 샌프란시스코 이적 후 거의 최초로 로테이션을 걸렀다. 그리고 대체 선발인 라이언 보겔송의 연이은 호투로 올라와도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6월 28일 복귀전에서 7이닝 2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따내고 7월 2일에는 6이닝 무실점으로 선발 2연승을 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가 다시 5점대 평균자책점을 찍고 금강불괴라던 그의 몸이 부상을 당했다. 시즌은 3승 4패 5.87로 마감했고, 불펜으로도 몇번 출전했다. 시즌 후 조나단 산체스가 트레이드되긴 했지만 2012년에는 선발자리를 확실히 보장할 수는 없게 되었다.
2.2.5. 2012년
2012 시즌 시범경기 첫 등판에서 82마일의 구속을 기록하는 등 80마일대의 구속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2 시즌 첫 경기 선발 등판이자 투수들에겐 지옥과도 같은 덴버의 '''쿠어스 필드''' 경기에서 9이닝 4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거두었다! 전반기를 17경기 98⅔이닝 동안 4.01 ERA 5.06 FIP로 마감, 팬그래프 기준 WAR에서 -0.1을 기록 했다. 8월 23일에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8이닝 2실점 호투하며 3년만에 두 자릿수 승수를 찍었다. 시즌 15승 8패, 185⅓이닝, 4.15 ERA로 마무리했고 fWAR는 0.8을 기록하며 성적이 조금 나아졌다.[7] 하지만 결국 자이언츠는 지구 1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였고, 선발투수들 어그로는 한 때의 사이 영 상 위너가 다 가져갔기 때문에, 평판은 예년과 같은 수준이다. 다만 8월부터 팀이 지토 선발 경기에서 플레이오프 포함 14승 1패[8] 를 거뒀기 때문에 '''승리를 부르는 Z-MAN'''이라 찬양받기도 했다.
2.2.5.1. 포스트시즌
2012년 신시내티 레즈와의 NLDS에선 부진했으나 팀이 승리하여 지토 선발 경기 자이언츠의 연승 기록이 이어졌고, NLCS에서는 팀이 1승 3패로 뒤지고 있던 5차전에서 7⅔이닝 동안 6K를 잡아내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강타선을 무실점으로 틀어막는 호투를 펼치며 다시금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팬들은 특히 낙차 큰 커브에 감탄하며 2013년 그의 199이닝 호투[9] 를 기원했다. 또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도 5⅔이닝 동안 1실점으로 호투하였고, 저스틴 벌랜더를 상대로 타점을 올리면서[10] 벌랜더의 4이닝 강판에 일조하였다. 빅게임피처에 벌괴를 털어버리는 타격까지, 이쯤되면 지느님 맞다.[11] 그의 법력에 힘입어 샌프란시스코는 디트로이트를 스윕하고 월드 시리즈를 제패했다.
그렇게 지토는 2년 전 플레이오프에 나가지도 못한 굴욕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마치 자이언츠의 구세주와 같은 모습으로 당당히 우승반지를 획득했다.
하지만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라서, Bleacherreport에서 선정한 최근 10년간 최고의 먹튀 10인 중에 8위로 선정되고 말았다.
2.2.6. 2013년
2013년에는 자이언츠 홈 개막전 선발로 내정되어 7이닝 무실점의 호투를 펼치고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지토도 인터뷰에서 보면 자이언츠에서 은퇴하고 싶다고 하고 팬들도 옛날엔 먹튀라고 욕만 하던 것과 달리 지지도가 예전보다는 높아진 만큼 저렴한 가격에 합의가 가능하다면 연장계약도 꿈이 아니다는 평이'''었는데...''' 4월 10일 경기에서는 7이닝동안 4K 무실점 경기를 펼치며, 최근 16경기 중 11연승까지 기록했다. 또한 본인은 처음으로 멀티히트에 타점까지 기록하며 홈팬들에게 환호를 받게 되었다.
2013 시즌 초 호성적의 비밀(...) 농담이 아니라 포심 - 체인지업 - 커브가 별 차이없는 스피드로 들어오니 진짜로 타자들이 헷갈려서 못 치는 게 아닌가 하는 말도 나온 판이라(...) 그리고 5월이 지나고 6월이 되자 등판할 때마다 탈탈 털리며 평균자책점이 4점대 중반으로 폭등, 원래 우리에게 익숙하던 그 지토로 돌아왔다.(...) 급기야 시즌 중반에 불펜으로 강등되기에도 이르렀다. 결국 13시즌은 5승 11패 ERA 5.76로 마무리했다. 2014년에는 옵션이 걸려있지만, 실행 요건[12] 이 되지 않으므로 7백만의 바이아웃이 실행되었다. 지토도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었는지 지역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동안 지지하고 응원해준 팬들에게 감사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결국 이 계약은 63승 80패 ERA 4.62 fWAR 6.7 bWAR 2.4으로 마무리 되었다. WAR가 6년 통합 6.7, 2.4이라는 소리는 연평균 1.1, 0.4밖에 안된다는 소리로 WAR의 기준에서 보면 '''후보''' 선수 정도의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샌프란시스코 입장에선 2012년 포스트시즌을 제외하면 돈만 퍼먹는 쓸모 없는 투수였다.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의 2승을 위해 1억 2천만 달러를 투자한 셈이고, 과장 조금 보태서 2012 월드 시리즈 우승을 1억 2천만 달러 주고 산 셈이다. [13]
기어이 사이 역 상을 '''두 번째로'''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이때까지 사이영-사이역 수상은 배리 지토, 팀 린스컴 두 명만 달성한 기록이었으며 '''2회 이상''' 수상은 '''배리 지토'''가 사상 최초다.
이후 어느 팀에서도 데려가거나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인지 2014년에는 야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은퇴는 아니고 휴식이라고 한다.
2.3.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기
그 후 소식이 없어 조용히 묻히나 싶었지만 2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스프링캠프에 합류했다! 만약 메이저 로스터에 남게 된다면 100만 불의 연봉을 받으며, 성적에 따라 17만불의 인센티브를 받는 계약. 하지만 시범경기 기간 중에 임팩트를 남기는데 실패하면서 개막전 로스터에 드는 데에는 실패, 당분간은 마이너에서 지내게 되었다.
9월 16일 드디어 콜업되었다! 9월 26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홈 경기에서 '''지토 vs. 팀 허드슨, 시구는 마크 멀더'''라는 빅매치 일정이 발표되었다. 두 팀다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된 상황이었기에 이런 서비스 매치가 성립할 수 있었다. 멀더야 말할 것도 없고 허드슨도 2015년이 선수생활 마지막 해이며 지토 역시 마지막 해였기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 맞대결. 오클랜드 팬들은 우울한 시즌에 좌절하면서도 반드시 이 경기만은 직관 내지 본방사수하겠다고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경기는 일찌감치 둘 다 마운드를 내려가면서 승패없이 대결은 끝났다. 또한 이날은 양팀 합쳐 24점이라는 핵전쟁이 펼쳐지는 대첩급 매치였다. 두 선수 모두 오클랜드 팬에게 커튼 콜을 받았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10월 19일, 자신의 플레이어스 트리뷴을 통해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뒤에는 작곡가(!)로 활동할 예정이라고.
3. 피칭 스타일
데뷔 초에는 약 평균 90마일에 달하는 패스트볼과 12-6의 드롭성 커브[14] , 간단히 던지는 슬라이더 위주의 피칭을 했지만, 약 2005년 무렵 체인지업 위주의 피칭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꾸준히 저하하는 구속탓에 데드암 의심을 받기는 했지만 그다지 티는 나지 않았다. FA 이후로는 평균 직구 구속이 86마일[15] 에 불과하지만 여전한 위력의 12-6 커브와 어느 정도 수준급으로 올라온 체인지업으로 그 단점을 상쇄를 한다. 게다가 나름 연습벌레이며 커터나 투심 등을 연마하는 등 노력하는 자세를 자주 보여주는 모범적인 선수인 것도 사실이다.[16]
하지만 오히려 이런 연습벌레로서의 일면이 구속 감소를 더 가속화 시켰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가 푹 빠져 있는 연습 방법이 다름 아닌 롱토스였기 때문이다. 강도높은 롱토스를 훈련방법으로 채택한 선수들은 하나같이 구속이 감소하는 현상이 2010년 대에 들어 벌어지고 있다. 댄 해런, 팀 린스컴,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대표적인 예이며 롱토스를 즐겨하는 트레버 바우어 역시 구속 감소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리저리 까이긴 하지만 9년 연속 10승을 달성하는 등 '''여러가지로''' 대단한 투수다.
4. 연도별 성적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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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생긴 얼굴로 유명하다. 덕분에 선수 시절 여자들을 몰고 다니며(...) 사진집도 냈다. 거기다가 기타도 잘 치고 보드 서핑도 수준급이다.
- 아버지 조 지토는 냇 킹 콜 밴드의 지휘자 겸 편곡을 맡았다. 어머니 로베르타는 아버지와 같은 밴드에서 코러스를 맡았다.
- 기타 연주, 서핑, 요가, 독서 등 다양한 취미를 즐기기로 유명하다. 특히 기타 연주가 수준급이라 오클랜드에 있던 때에는 오프시즌마다 록밴드의 투어에 참여하기도 했다. 거기다 서핑 여행도 떠나는 등, 오클랜드 시절에는 오프시즌을 더욱 바쁘게 보내기도 했다.
- Strikeout For Troops란 자선기금을 만들어, 부상당한 미군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기부활동을 하고 있다. 2010년 9월 11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탈삼진 1개당 1500달러를 기부하기로 했는데, 이 경기에서 지토는 14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 2011년 4월 8살 연하인 미스 미주리 출신 앰버 세이어와 약혼했고, 같은 해 12월 결혼했다.
- 금지 약물 논란에서 자유로운 선수이기도 한데, 오클랜드 시절부터 체형이 근육질과는 동떨어진 몸매라 일단 스테로이드에 의한 효과를 보지 않았다[18] 라는게 중평이다. 자이언츠에서의 성적은 그냥 패스트볼 구속 하락 - 다시 말해 데드암 - 때문이지 약물 부작용 등의 문제는 아니다.
- 의외로 해외야구 갤러리의 슈퍼스타다. 개설 초기 최대의 이슈가 바로 돈값을 못하는 지토였고, 성적과 괴리감을 주는 연봉[19] 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게다가 고정적으로 지토를 빠는 갤러 한 명이 어그로를 끄는 바람에 지토는 결국 해야갤 영원불멸의 신이 되고 말았다. 최근엔 잡신이 워낙 많아진데다 샌프팬들의 병크로 관심이 많이 줄었으나, 한번 지토 얘기가 돌기 시작하면 지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로 도배가 되는건 예사. 모 갤러는 지토가 저 먼 땅 대한민국에서 이러고 있는 걸 알면 어떻게 될 지 궁금해서 샌프 팬 포럼에 해야갤에서의 지토의 인기에 대해서 올리기도 했다고 카더라. 그리고 2012년 포스트시즌의 지느님이라 할만한 대활약에 힘입어 엠엘비파크 MLB타운에서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팬들을 중심으로 인기가 많아졌었다.
- 가수로 데뷔하였다. 첫 앨범의 공식 명칭은 "Secret of life"이다. 이후 2018년 8월, AT&T 파크에 초청되어 미국 국가를 부르고 시구까지 했다. 2012년 월드 시리즈 우승의 공로를 대우해 주는 배려라 볼 수 있을 듯.
- 2020년 5월 미국 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국판 복면가왕 The Masked Singer 시즌 3에 출연한 사실이 밝혀졌는데 놀랍게도 준결승까지 진출하였다! 배리 지토는 최종 4위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신이 내린 가창력이라고 칭송받는 재키 에반코, 미국 컨트리 음악계의 초신성 헌터 헤이즈, 전설적인 록밴드 포이즌의 리드보컬 브렛 마이클스보다 높은 순위다.(...) 이로써 지토는 스포츠맨 출신이면서 쟁쟁한 가수들을 제치고 가창력과 퍼포먼스를 인정받는 굉장한 이변의 주인공이 되었다.
- 어마어마한 먹튀의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2021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표를 얻는 데 성공하였다! 물론 한 표밖에 되지 않아서 후보에서 광탈하였다.
6. 관련 문서
[1] 하지만 이때 사이 영 상 수상은 그당시 상당히 논란이 되기는 했다.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더 받아야 마땅하다는 주장은 지금도 오가는 떡밥. 이닝과 승수에서 지토가 더 앞섰지만 삼진, 승률, WHIP, ERA 모두 페드로가 우위에 있었다. 결국 페드로는 삼진, 승률, WHIP, ERA 네 분야 모두 리그 1위를 차지하고도 사이 영 상 수상을 못 한 첫 선수가 되었다. 세이버메트릭스가 대중화된 지금이라면 페드로가 만장일치로 수상했을 확률이 높다.[2] 이 계약에는 스캇 보라스의 힘이 크기도 했다. 대략 1초 당 800원을 버는 꼴. [3] 페니의 이적으로 랜디 존슨은 불펜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4] 지토의 8월 평균자책점은 무려 '''7.76'''이다. [5] 이 기간동안 지토는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한 5경기에서 승 없이 3패만 안았다. [6] 30번의 선발등판 중 퀄리티 스타트를 18번이나 기록할 정도로 안정감이 돋보였다. [7] bWAR는 -0.3을 기록했다. [8] 8월 첫 경기 빼고 14연승 [9] 지토가 200이닝을 채웠으면 2014년 한 해를 더 함께하게 될 판이었다.[10]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로 들어오는 시속 97마일 강속구를 깔끔하게 밀어서 안타를 쳤다. [11] AT&T 파크에서는 그가 마운드를 내려갈 때 배리 본즈를 방불케 하는 BARRY BARRY라는 환호가 나왔다.[12] 2013년 200이닝 또는 2012-2013년 400이닝 또는 2011-2013년 600이닝 [13] 엄청난 먹튀 선수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현 시점에서 보면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2012년 우승에 결정적 공헌이라도 했던 지토가 양반으로 보일 수준이다.[14] 일명 사악한 캡틴 후크, 2층에서 떨어지는 커브 [15] 애초부터 지토는 CC 사바시아나 스캇 카즈미어 같은 좌완 강속구 피처가 아닌 평균수준이었지만, 그 이후로도 구속이 저하되고 있다. [16] 실제로, 지토의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형편없는 구속 때문에 오클랜드의 GM인 빌리 빈이 그를 뽑으려고 할 때 오클랜드의 스카우트 전원은 결사반대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토는 뽑힌 후 23승을 거두며 사이 영 상을 수상했다. 이 과정은 <머니볼>이라는 책에 잘 저술되어있다. [17] 지토가 태어났을 당시 아버지가 50세였고, 작은 누나가 15세였다. [18] 물론 약물 했다고 다 우락부락한 근육질이 되는건 아니다. 디 고든의 사례만 봐도 그렇듯이... 그러나 일단 스테로이드를 하면 운동 효과가 비약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벌크 업이 부수적으로 따라다닌다. [19] 해야갤러의 계산한 결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몇 명 사올 수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