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게르만주의
영어: Pan-Germanism, Pan-Germanicism[1]
독일어: Großdeutschland / Pangermanismus
[image][2]
독일이 방어와 공격의 정신으로 형제처럼 서로 함께 단결하면 / 마스[3]
에서 메멜[4] 까지, 에치에서 벨트[5] 까지!Wenn es stets zu Schutz und Trutze brüderlich zusammenhält / von der Maas bis an die Memel, von der Etsch bis an den Belt!
독일의 노래 中
독일인의 조국은 무엇인가?
프로이센인가? 슈바벤인가?
포도가 자라는 라인강인가?
갈매기들이 날아다니는 벨트인가?
'''오 아니라네, 아니라네, 아니라네!'''
'''우리의 조국은 더 커져야 한다네!'''
Was ist des Deutschen Vaterland?
Ist’s Preußenland? Ist’s Schwabenland?
Ist’s, wo am Rhein die Rebe blüht?
Ist’s, wo am Belt die Möwe zieht?
'''O nein, nein, nein!'''
'''Sein Vaterland muss größer sein!'''
1. 개요
19세기~20세기 전간기 사이에 독일어권 지역에서 성행했던 범국민주의 사상. 대독일주의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범게르만주의가 주장하는 바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독일어 쓰는 지역은 모두 하나의 국가로 뭉치자는 얘기다.
독일인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의 개전을 범게르만주의로 정당화했고, 이후 인종주의와 겹쳐 나치의 2차대전이라는 최악의 형태로 표출되고 말았고, 그 이후로는 거의 매장되다시피한 사상이다. 독일의 노래 1절이 공식적인 국가에서 배제된 것에서 보이듯이 오늘날에 이런 생각을 입에 올렸다간 거의 네오나치취급을 받는다. 자매판으로 러시아가 주도한 범슬라브주의라는 것이 있다.
"게르만"주의라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독일어권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른 게르만(네덜란드, 영국, 북유럽)은 보통 포함하지 않는다.
2. 역사
2.1. 탄생
18세기까지 프랑스에서 독일을 가리키는 단수(Singular) 명칭이 없이 독일'''들''', 혹은 독일어권이라고 지칭한데서 알 수 있듯이 1871년 독일 제국의 형성이전까지 통일된 국가 없이 중소규모의 공국들이 난립하는 지역이었고, 이에 따라 신성로마제국과 같은 느슨한 형태의 정치적 결합체만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독일에서도 민족주의의열풍이 거세지기시작했고 1848년 혁명을 거치면서 독일어권 사용지역을 하나의 통일된 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표출된다. 이러한 시대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독일의 노래 1절.
2.2. 소독일주의의 승리
하지만 통일된 독일국가를 형성하고자 했던 프랑크푸르트 의회는 보수세력의 반동으로 붕괴하고, 독일어권 지역은 다시 독일 연방이라는 느슨한 정치적 연합체가 형성된다. 독일 연방을 양분한 세력은 전통적으로 독일어권의 터줏대감을 자처해온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 제국과 새로이 강국으로 급부상한 프로이센 왕국이었다. 두 강대국의 갈등은 결국 보오전쟁으로 이어졌고 여기서 승리한 측은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이었다. 그 결과 오스트리아는 독일 연방에서 축출되었고 독일 민족만으로 이루어진[7] (=소독일주의) 통일 국가가 형성되니 이것이 바로 독일 제2제국.
2.3. 나치즘과의 결합
하지만 오스트리아가 독일연방에서 추방된 이후에도 독일 내 범게르만주의의 광풍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프로이센보다는 오스트리아와 훨씬 가까웠던 독일의 (주로 남부) 카톨릭 신자들과 사민주의자들 중에서도 '오스트리아를 합병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왔고, 아우스글라이히 이후 급부상한 이민족 헝가리인들에 의해 입지가 크게 줄어든 오스트리아-헝가리 내 독일계 오스트리아인들은 기득권 수복을 위해 가까운 독일제국의 힘을 빌리고자 하였다. 이렇게 다민족국가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독일제국으로 도망치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가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
이러한 범게르만주의는 옆동네 러시아 제국의 범슬라브주의와 필연적으로 충돌을 빚었고 1차대전이 발발한다. 만약 독일이 전쟁에서 이겼으면 범게르만주의가 정말로 실현될 수도 있었겠지만, 현실은 시궁창. 전쟁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패배로 끝났고, 폴란드의 독립,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 안슐루스 금지 등 범게르만주의자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결과가 온다.
전쟁에서 지고나서도 도이치민족주의와 통일관은 결코 사라지지않아, 나치당을 위시한 범게르만민족주의자들이 범게르만주의를 비뚤어진 인종주의와 결합하면서 나치즘이 대두된다. 이른바 레벤스라움이라고 불리는 동유럽으로의 영토확장은 처음부터 범게르만주의와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사이였지만 우생학을 신봉했던 나치들은 '저 동네 슬라브인들을 싸그리 멸족시키고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자'는 정신 나간(...) 주장을 펼쳤던 것. 여기에 '고대 게르만족의 후예이면 모두 하나다!'라는 개념까지 더해져서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하나의 독일안에 아우르자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이러한 움직임의 정점이 1938년 실시된 안슐루스와 그 이후의 뮌헨 협정. 여기서 멈췄으면 괜찮았겠지만[8] 나치는 정신못차리고 판을 전세계구급으로 벌렸고 망했어요. 이후 독일에 수립된 서독과 동독에서 범게르만주의는 사회적인 금기가 됐고 몇몇 네오나치들을 제외하면 사장된 사상이 된다.
1990년 독일통일과정에서 영국과 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독일이 통일되면 다시 범게르만주의를 제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순간커지기도 했지만, 그런 건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요즘들어, 독일이 적극적인 외교로 유럽연합의 실질적인 수장국으로 자리잡은 후부터는 다시 범게르만주의(또는 나치)가 부활하는게 아니냐는 블랙 코미디가 생겨나고 있고 경제적으로 못 사는 동유럽과 남유럽의 나라들 사이에선 독일 등 잘 사는 게르만계중부유럽부국들이 다 해먹는게 아니냐며 불만도 생기고 있는 중이다. 유럽연합이 독일 제4제국이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9]
[1] 본래 독일어권에서 시도하려 했던 좁은 의미의 범게르만주의는 전자, 2차대전 당시 나치당이 좀 더 넓게 정의한 범게르만주의는 후자에 해당한다.[2] 1937년 시점에서 게르만족(=독일어 사용자)의 유럽내 분포도.[3] 벨기에에 자리잡은 뫼즈 강의 독일어식 표현이다.[4] 현재 리투아니아 클라이페다.[5] 발트 해 (Baltic Sea)가 아니라 'Belt'라고 불리는 덴마크 유틀란트에서 셸란 사이의 릴레벨트 해협과 스토레벨트 해협을 말한다. 애초에 발트해는 독일어로 'Ostsee', 즉 동해다.[6] 노래 길이가 매우 긴데 엘자스-로트링겐은 기본이고 오스트리아, 티롤, 스위스, 그리고 도나우 강변까지 전부 독일로 집어넣는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준다.[7] 그러나 현실에서의 독일제2제국도 다민족국가였다. 독일 제2제국 수립을 주도한 프로이센만 하더라도 동부의 슐레지엔, 포젠, 서프로이센 일대에 수백만명의 폴란드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독일 민족이 25%밖에 안 되는 오스트리아-헝가리에 비해서는 독일 민족의 비중이 훨씬 크긴 했지만...[8] 오스트리아 합병이나 수데텐란트 할양의 경우 베르사유조약의 민족자결주의에 의거하여 진행되었기에 나름의 명분이 있었고, 영국과 프랑스가 우방국인 체코슬로바키아를 버리면서까지 평화를 원했었기에, 정말 이 시점에 히틀러의 야욕이 멈추었다면 2차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9] 몇몇 동유럽, 남유럽 국가의 채무를 일부 탕감해주는 대신 난민을 받도록 시켰다. 영국은 국내의 난민에 대한 차별적 의식의 증가로 유럽연합을 탈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