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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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일본'''
영어
Sino-Japanese relations, China-Japan relations
중국어 간체
中日关系
중국어 정체
中日關係
일본어
日中関係(にっちゅうかんけい
한국어
중일관계(中日關係)
1. 개요
2. 현대 중국과 일본 단순 비교
3. 근대 까지
3.1. 고대 ~ 근세
3.2. 근대
4.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4.1. 정치
4.2. 군사
4.3. 영토
4.4. 경제
4.5. GDP 비교
4.6. 여론
4.6.1. 2019년
4.6.2. 2020년대
4.7. 문화 교류
5. 사건사고
5.1. 희토류 분쟁(?)
6. 여담
7. 관련 문서


1. 개요


중국일본의 관계를 서술한 문서. '''소설 1984의 현실판 관계'''

2. 현대 중국과 일본 단순 비교



중국
일본
면적
9,596,960km²
377,915km²
인구
1,395,046,200명
126,443,000명
수도
베이징
도쿄
언어
중국어
일본어
명목 GDP
14조 1,401억 $
5조 1,544억 $
1인당 GDP
10,099$
40,847$
경제성장률(2019년)
6.1%
0.9%
정치
일당제
의원내각제
국가 지도자
시진핑 주석
스가 요시히데 총리
#

3. 근대 까지



3.1. 고대 ~ 근세


과거에는 야마타이 국의 여왕 히미코가 중국에게 노예를 바치고 예방하였다고 한다. 다만 히미코는 일본에서 그 존재가 반쯤 부정당하다시피 했다. 이후에도 몇몇 왜왕들이 중국왕조에 조공을 하고 왜왕으로 책봉을 받았다.
당시 동아시아의 일반적인 국제정세처럼 중국이 일본 문화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견수사, 견당사와 이에 따른 헤이안 시대의 번영이 좋은 예. 심지어 견수사를 보낼 시절에는 수나라에 "해 뜨는 나라의 천황이 해 지는 나라의 황제께 보낸다.(東天皇敬白西皇帝)"라는, 수나라 입장에서는 황당할 국서를 보내기도 했다만 정작 수나라에서는 변방 촌동네의 오랑캐라 예를 모른다고 생각해서 넘어갔다고 한다. 또한 당나라 문화를 숭상하면서 당학이라는 학문까지 아예 만들기도 하며 문물을 수입했다.
중국이랑 직접적으로 붙어있던 반도인 한국과는 달리 중국이랑 멀리 떨어져 있던 섬나라인 일본에서의 중국 문화는 한국보다는 중국 문화의 전통성에 덜 구애되어 발전해 온 경향이 있다. 일례로, 한국 한자음은 중국 한자 발음의 반절음 체계에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1] 일본 한자음은 소리만을 따왔고, 고유어와 한자를 대응시키는 훈독의 전통이 발달한 것을 들 수 있다. 다만 가나(문자)의 경우에는 음차하는 한자 필기체를 간략화 한 것으로, 가타가나는 부수의 일부를 딴 것, 히라가나초서를 정형화한 것이다.
다만 한국에 비해 영향이나 압력이 덜했다는 정도이지 중국과 동등한 관계라고 보긴 힘들었고, 중국 문화를 숭상하지 않던 것도 아니었다.[2] 심지어 명나라 침략을 주장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제후를 뜻하는 빨간색 곤룡포를 입고[3] 일본국왕으로 책봉을 받기도 했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백강 전투에서 처음으로 중일의 정규군이 신라의 동맹군과 백제의 동맹군으로서 맞붙었으며, 이후 쿠빌라이 칸이 주도한 2차례의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이 있었고(태풍으로 실패했지만), 또 무로마치 시대 말기와 센고쿠 시대에 일본 큐슈 등의 왜구명나라의 남쪽을 침략하여 "북로남왜"로 명나라의 주된 근심거리가 되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막부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명에게 일본 '''국왕'''으로 책봉을 받고[4] 함께 왜구를 토벌하기도 했다. 임진왜란에서 두 나라의 정규군이 다시금 크게 맞붙었지만 실패했다.또한 명나라가 망하고 나서는 일본이 중국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일본식 중화사상이 일본 유학자들 사이에서 대두되기도 했다.[5]
근세의 에도 막부청나라는 소닭보는 관계였다. 초기에만 해도 대만 정성공의 사례에서 추측되듯 대만이나 동남아에서는 민간적 교류나 공생이 어느 정도 있었으나 쇄국정책을 통해 그나마도 차단되었다. 동남아가 서구(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식민지가 되기도 했고, 류큐 왕국은 청나라와 에도 막부의 양국의 조공국으로 존재했다.[6]

3.2. 근대


근대에 들어서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일찍 맞이해 관계가 역전되어 수많은 일본식 한자어가 현대 중국어에 수입되기도 하였다. 반면 중국은 일본에게 청일전쟁, 21개조 요구(5.4 운동), 만주사변(괴뢰국 만주국 성립), 중일전쟁, 특히 난징 대학살 등을 통해 수많은 화를 겪었고, 당시로서는 청나라의 일부였던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는 등 여러 갈등의 씨앗이 뿌려졌다. 비록 중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운좋게 승리하고 일본이 패배했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대만 또한 중국에게 돌아왔으며 또한 지금의 중국이 뛰어난 성장세를 보이고 우세해졌으나, 중국이 완전한 아시아의 패권국이라 하기에는 일본이라는 존재가 절대 무시못할 정도라 경계심을 많이 갖고있다.
중국의 근대사를 어느정도 보기만 해도 일본이 중국에다 무슨 짓들을 벌인지 알 수 있다. 만주 사변을 통한 중일전쟁 시작, 만주국 괴뢰국 건설과 중국내 군벌들을 괴뢰정부화 시키며 통한 중국의 영토 절단시키기 + 집단 학살들을 연쇄적으로 일으켰다. 이렇게 처절하게 줄곧 당하고도 중국이 일본에 대해 혐오하고 경계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을 리가 만무하다.

4.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4.1. 정치


[image]
중일공동성명에 서명하는 중국의 저우언라이 총리와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
1952년 화일(華日) 평화조약으로 중화민국과 국교를 정상화했지만, 1972년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했다. 이는 닉슨 독트린과 맞물려 이뤄진 것이다.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모두 일본에 대해서 국가적 차원에서의 청구권과 배상권을 포기하였고, 과거 일본에게 피해를 입은 중국인들은 개인 자격으로 일본에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제스는 '원수를 은혜로 갚는다'라는 태도였고 마오쩌둥 역시 일본과 국교를 맺을 때 인민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이겼으니 사죄와 배상 따윈 필요없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근데 이건 오해로, 당시 중국은 서방의 주축인 미국의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전략[7][8]을 고려하여 못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일본과 교류하기 위해 짠 국가 전략이었다. 당연히 일본인들은 우리가 중국에게 엄청난 사죄와 배상을 해야만 할 줄로 알고 있었으나, 장제스와 마오쩌둥이 대인배스럽게 배상을 깔끔히 포기하였다. 특히 마오쩌둥은 중일전쟁이 중화인민공화국의 밑거름이 되었다며 감사한다는 태도를 보여, 지금까지 수많은 중국 장년층들에게는 아직도 끔찍한 난징 대학살이나 마루타, 충칭 대공습 등의 악몽이 치유되지 못한 채, 이는 반일 시위의 원인이 되고 있다.[9]
그런데 사실 일본에서는 자기들 기준에서는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당시 공산권인 중국에 많은 금액과 기술을 지원했다는 주장이 있긴 하다. 물론 당시 일본은 중국 말고도 다른 공산권에도 대거 경제지원을 하고 일본의 왜곡된 주장을 공산권에 세뇌시켰다. 이 과정에서 소련이랑 다른 공산권 국가들이 중국 정부에 청구권, 배상권을 포기하라는 압력을 행사해서 성사될 수 있었다.
2010년대, 아베 신조 총리의 집권 이후로 일본이 우경화 되어 중일관계는 잠시 악화되었다. 단순 역사적 문제만이 아니라, 미중 패권경쟁에서 일본은 미국을 우방으로 두고 있는 입장이고 영토 분쟁까지 겹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중.
하지만 트럼프 개인과 트럼프 집권의 미국 정부는 경제적으로 대치중인 중국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일본도 이에 자유로울 수 없어서 무역 흑자 축소 요구를 받았다.
2018년 10월 말, 7년만에 일본 총리가 단독으로 방중하고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 화춘잉 외교부 장관 등도 만나게 되면서 중일관계가 본격적으로 호전될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018년에 들어서 아베 정권의 친중 정책의 흐름에 따라 일본인들은 중국에 대해서 긍정적인 인식이 퍼지게 되었다. 예전엔 중국에 대해서는 경쟁국이자 적성국으로 인식하기도 했는데. 201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인과 일본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을 때, 중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일본이라고 나오고 일본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중국이라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10]
아베 신조가 일본이 중심이 되어 G7이 홍콩성명을 발표하고 중국측은 이에 깊은 유감을 표하였다. 아베 “일본이 홍콩관련 G7 성명 주도” ...중국 “깊은 우려”

4.2. 군사


센가쿠 열도 문제 등으로 대립하는 상태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미중관계에서는 합참의장이나 장관급 만남이 있는데 비해 중일 사이에서는 드물다. 미중교류보다 더 어색해보인다. 2014년 4월에 일본 해상막료장가와노 가쓰토시와 중국 해군사령원우성리가 만나려고 했지만 중국 정부의 불허로 무위로 그치고 대신 해군 관련 포럼에서 비공식적으로 15분을 접촉하는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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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대 훈련을 참관하는 인민해방군 장교들.
[image]
▲기념사진 촬영.
강해지는 중국군에 일본은 중국 견제라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미국과 협조와 동맹을 강화하는 것을 통해 대처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트럼프 집권 후 미일관계에서 마찰이 생겼다. 그것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2018년 10월 말에 일본 총리의 방중에서 일본과 중국은 향후 일본 자위대 수장의 중국 방문에 대해 합의하고, 양국간 무력 충돌을 피하기 위한 전용 직통전화, 핫라인을 설치하기로 하는 등 안보 분야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중국이 일본에게 '새로운 안보 관계' 구축을 제안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일본 방위성이 2026년까지 극초음속 미사일의 초기 버전을 배치하고, 2028년에는 개량 버전을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자 중국측은 긴장하고 있다.#

4.3. 영토


[image]
과거사 문제 외에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분쟁이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다. 양국은 강대국에 속한데다, 각각 세계 경제 규모의 2, 3위인 국가이기에 이들의 분쟁은 필경 크고 아름다운 후폭풍을 초래할 수밖에 없어, 이들 사이에 위치한 한국으로서는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일본, 중국 두 나라의 인구만 합쳐도 '''15억 3000만명''' 정도 된다. 하지만 중국인구가 일본인구의 10배 이상이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중국에 대한 견제를 우선으로, 일단 미국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
군사력에서는 현재 중국이 급격한 성장을 바탕으로 크게 팽창하는 추세이다. 물론 오랜 기간 일본이 경제적 성장을 바탕으로 하여 투자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중국이 다소 처지는 분야들이 상당하다. 하지만 중국에서 이공계 인재들과 비용을 폭발적으로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격차는 눈에 띄게 좁혀지는 추세이다.
2013년 1월부터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로 중국 인민해방군이 전군에게 전쟁 준비 명령(진돗개 하나 상황)을 내림으로써 중일간 전쟁의 가능성이 점점 생기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상황을 파국으로 몰아 가는 것은 원하지 않는 상황이기도 해서 국지전 이상으로 일이 커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관계악화에 따른 불이익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센카쿠 열도 문제로 중국에서는 대규모 반일 시위가 일어났으며 분노한 중국인들에 의해서 주중 일본대사관에 쓰레기가 투척되는 모욕을 겪기도 했고, 중국에서 물건과 상품을 팔던 일본 기업들이 죄다 문을 닫아야 했다.[11] 거기다가 중국은 아예 일본이 댜오위다오를 중국에게 넘겨주고 중국의 영토로 인정하기 직전까지 희토류 원소를 일본에 수출하는 것을 강력히 막았다. 이후 일본이 희토류 관련 기술에 집중하여 중국에서 수입하던 물량을 일부 대체한 상황이다. 거기다 2018년 4월에는 일본 해역에서 전 세계가 무려 700년동안 사용 가능한 1600만톤 정도의 희토류가 매장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은 중국에 대한 희토류 의존도가 일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중국은 희토류 대일 외교의 영향력이 일부 줄고 말았다. 日 희토류 대박...해저에 전 세계 수백년 사용량 매장 확인
2013년 12월 26일에 벌어진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인해 중일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이다. 왕이 외교부 장관이 공식석상에서 직접 "앞으로 중국의 지도자들이 아베 총리와 대화할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발언했으며, 중국의 주요 언론도 앞다투어 일본과 아베 총리에 대해 '''"변태 왕따 쓰레기 왜노 총리"'''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고 있다. 두 나라와 가까이 자리한 한국 역시 중요하게 경계할 필요가 있는 부분.
2014년 12월 난징 대학살 추모일을 앞두고 중국에서 벌인 군사 훈련에서 '''가상의 적을 일본으로 삼았다고 당당하게 밝히면서''' 중국이 일본을 명백한 적국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2019년 12월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일본인의 무려 85%가 중국이 싫다고 대답했고 코로나19 사태 이후로는 더더욱 싫어하게 됐다.#
애초에 일본은 종전 이후부터 공산당이 정식 의회 정당으로 활동중이고 한국처럼 극단적 색깔론의 역사를 가진적이 없기에 공산당에 이미지도 유별나게 나쁘지 않고 단순히 친미 서방 라인으로써 반미 독재 국가를 보는 부정적 이미지 그 이상을 가지기는 힘들다. 예를 들자면 한국과 일본은 같은 서방라인이지만 한국인이 반미국가인 러시아보다 같은 친미 서방 라인인 일본을 더 싫어하고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랑 똑같다고 보면 된다. 결국 일본 자신들을 건들지 않으면 극심한 반감을 가지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다.
물론 난징 대학살, 센카쿠 열도에 대한 것이라든지 진짜 심각한 문제에 대해 중국이 강력하게 사실관계 인정 및 철저한 자국민 교육을 요구하는 것은 일본에서는 그것만큼은 죽어도 못한다고 초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기에 이 분쟁은 쉽게 끊을 수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중국은 일본이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유엔 상임이사국 선정에 대하여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이용해 러시아와 손잡고 결사반대함으로서 제대로 보답하고 있는 중이다.

4.4. 경제


2010년대 초반에 '''탈미입아'''를 주장했던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지만 오히려 중일관계는 더욱 경색하고 희토류 분쟁 등으로 번졌다. 하지만 친미자유민주당아베 신조 정권이 들어오면서 중일관계는 더욱 얼어붙고, 중국일본의 통상 분쟁은 계속 늘어만 갔다.
그러나 2018년 미중 무역 전쟁으로 인해 중국일본한테 경제 분야에서 저자세 외교를 감수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급격한 화해가 발생하고 있다.
2018년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베 신조 일본 내각총리대신한테 일대일로 사업 참가를 제안하고, 일본 역시 일대일로 사업에 참가하는 등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기사
2018년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 왕치산 부주석 등이 아베 신조를 초청하였다. 기사1 기사2 전격적으로 경제협력을 하고, 중-일간 무역분쟁은 빠른 시일 내에 타협, 그리고 미국의 자유무역 지대 복귀를 공동으로 촉구하는 등 '''일본-중국 중일관계가 급속한 화해'''의 길로 가고 있다. 2018년 10월 23일10월 26일 발표된 '''일-중 베이징 공동선언'''[12]에서는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전면 참여 허용, 중국-일본 공동 인프라 투자펀드 '''1조 달러''' 어치 창설, 한화 20조원에 상당하는 기업협력, 중국인민은행일본은행기존의 10배인 한화 35조원 상당(3조 4000억 엔)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등 여러 분야에서 급속한 화해의 길로 가고 있다. 또한 미국이 이탈하여 일본만이 대형 국가로 남게 된 TPP중국참여를 검토하는 등 급속도로 중일관계가 화해의 길을 걷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상한 중일 밀월이라거나, 아베의 친중행보가 트럼프의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 대만까지 이번 중일회담을 경계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2018년 10월 말, 일본 총리가 방중하면서 기업인 등 500여명을 대동해 제3국 시장 진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13] 중국 정부도 지식재산권과 기술 보호 문제를 정상회담 의제에 포함시켰다. 중국과 일본은 2013년 중단됐던 통화스와프도 우리 돈 약 30조원 규모로 재개했다. 이는 과거에 비해 10배나 늘린 규모다.
일본은 70년대에 중국과 수교하면서 중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이 상당한 편이다. 하지만 미중 무역 전쟁이 발생하면서 일본 기업들도 중국에서 철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유니클로는 중국으로 진출을 대거 확대한다고 밝혔다.3

4.5. GDP 비교


명목 GDP[14]
연도
일본
중국
일본:중국[15]
1960
443억
597억
0.74
1965
906억
704억
1.29
1970
2,126억
926억
2.30
1975
5,215억
1,634억
3.19
1980
1조 1,050억
1,911억
5.78
1985
1조 3,990억
3,094억
4.52
1990
3조 1,330억
3,608억
8.68
1995
5조 4,490억
7,345억
7.42
2000
4조 8,880억
1조 2,113억
4.04
2005
4조 7,550억
2조 2,860억
2.08
2010
5조 7000억
6조 870억
0.94
2011
6조 1,570억
7조 5,520억
0.82
2012
6조 2,030억
8조 5,320억
0.73
2013
5조 1,560억
9조 5700억
0.54
2014
4조 8,500억
10조 4,390억
0.46
2015
4조 3,890억
11조 0,160억
0.40
2016
4조 9,270억
11조 1,380억
0.44
2017
4조 8,600억
12조 1,430억
0.40
2018
4조 9,710억
13조 6,080억
0.37
GDP(PPP)[16]
연도
일본
중국
일본:중국[17]
1980
1조 1,045억
3,056억
3.42
1985
1조 6,532억
6,547억
2.53
1990
2조 4,517억
1조 1,185억
2.19
1995
2조 9,792억
2조 2,497억
1.32
2000
3조 4,187억
3조 6,957억
0.96
2005
4조 594억
6조 6,046억
0.61
2010
4조 4,848억
12조 4,028억
0.36
2011
4조 5,731억
13조 8,649억
0.33
2012
4조 7,306억
15조 2,471억
0.31
2013
4조 9,099억
16조 7,248억
0.29
2014
5조 195억
18조 2,778억
0.27
2015
5조 1,338억
19조 7,424억
0.26
2016
5조 2,185억
21조 2,901억
0.25
2017
5조 4,197억
23조 1,567억
0.23
2018
5조 5,970억
25조 2,788억
0.22

4.6. 여론


중국은 일본에게 침략 당했던 역사 때문인지 일본에 대한 엄청난 적개심을 갖고 있다. 과거에도 1970년대 개혁개방 이후에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중 유독 일본계 기업만 콕 집어 사업을 방해한다거나 일본산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것 등이었다. 특히, 2012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둔 분쟁 당시에는 중국 정부가 희토류 금수를 시전해 양국간 갈등이 격화되자 민간에서도 일본산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배척하는 등 반일감정이 폭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베의 재무장 정책을 강렬히 반대하는 입장이며 일본은 재무장할시 경제보복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중국은 가끔씩 일본인 스파이를 체포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앞으로 유네스코에서도 일본과 중국 간의 외교 갈등이 첨예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이 유네스코를 탈퇴'''하고 나서 중국이 해마다 분담금을 늘리면서 현재 분담금 1위 일본을 바짝 추격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미국이 없는 동안 아예 유네스코를 친중 국제기구로 만들기 위한 작전을 진행할 수도 있는 부분을 감안하면 앞으로 일본제국 시절 기록유산, 문화유산 등재 등에서 전면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4.6.1. 2019년


2월 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중국 관영 CCTV에 등장하여, 서툰 중국어로 짧은 인사를 건네며 중국의 설인 춘절(春節)을 축하했다#. 2019년 들어서 일본이 한국과 대립각을 세우며(한일관계) 중국이나 북한과 가까워지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일본이 무작정 중국을 적대시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2019년 후반기에 아베 총리가 중국을 방문할것이라고 5월 13일에 마이니치 신문이 보도했다.# 또한, 8년만에 군축협의를 가지게 되었다.#
6월 27일에 시진핑 주석과 아베 총리가 회담을 가지면서 양국관계를 영원한 이웃나라로 정의한다고 아사히 신문이 보도했다.#
중국과 일본이 양국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공동정치문서를 작성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마이니치 신문이 보도했다,# 그리고 시진핑 주석의 2020년 봄에 방일하는 것을 앞두고 양국의 새로운 관계를 규정하는 제 5정치문서 작성을 추진하고 있지만, 양국 간 온도차가 커 합의를 할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는 보도가 나왔다.#
2019년 여론조사에 의하면 중국인 46%가 일본을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참조 그러나 정작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들은 대부분 중국을 싫어하는데 2019년 12월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 조사에선 중국 주변국에서 비호감 지수가 높게 나왔으며 특히 일본의 경우 85%가 중국에 대한 비호감을 표시한 걸로 밝혀졌다. #

4.6.2. 2020년대




4.7. 문화 교류


양국이 안 좋은 관계와는 별개로 중국에서는 일본 문화가 인기를 몰고 있는데, 예를 들면 상하이 지하철에 러브 라이브! 캐릭터들로 지하철을 꾸민다든가 유희왕이 정발되었는데 인기가 좋아서 데블즈 게이트까지 나온다든가. 거기다 일러스트는 일본판과 똑같이 간다! 그래서 유희왕이 판매되고 있는 국가 중 일본과 일러스트를 공유하는 건 중국이 유일하다.[18] 중국에서도 일본어를 배우는 경우도 많이 있고, 일본에서도 중국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중국어를 배우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일본에서 HSK가 실시되고 중국에서도 JLPT가 실시되는 등 양국에서도 외국어 시험이 실시되고 있다.
이렇게 중국에서는 일본의 서브컬쳐 문화 수입이 오히려 한국을 매우 능가하는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땅 크고 인구가 많은 만큼 위의 지하철의 예처럼 얼핏 일본을 아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일본 문화 애호를 벌이기도 한다. 실제로 비정상회담에서도 장위안이 '''"중국인들은 일본 정부가 싫은 거지 일본인들이 싫은 건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일본 문화에 대해서는 그다지 거부감을 보이지는 않는 경향도 있다. 오히려 일본 문화 개방은 한국보다도 빨랐다.[19] 역사적으로 중국은 동아시아의 문화 발생지이고, 이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는 만큼 타 문명에 의한 문화 잠식에 대한 우려가 적은 편인 것과[20] 어쨌든 2차대전 승전국으로서 일본에 대한 감정의 결이 한국과는 사뭇 다른 점이 한몫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21]
일본의 경우에는 경제에 대한 걱정없이 풍요로웠던 1970~1980년대에 아무래도 타 문화를 접하는 마음이 너그러울 수밖에 없어서[22] 이때를 비롯해 90년대까지 중국 문화에 대한 민간의 관심이 많았고 이 시기에 나온 일본 서브컬쳐 계열 작품들에서도 아예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여럿 나왔음은 물론이고 일본이나 다른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에서도 치파오를 입고 쿵후를 구사하는 등 중화 아이덴티티로 무장한 중국인 캐릭터가 꼭 한 명씩은 나왔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당장 코에이 사의 삼국지, 수호지 등 중국역사서에 기반한 게임들이 나왔고, 만화 드래곤볼은 시작부터가 서유기의 오마주였고, 쿵후보이 친미, 란마 1/2 이 세 작품은 모두 다 일본 외의 배경이면서 80년대에 나온 일본 작품들이며 모두 히트친 만화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의 여파와 맞물리고 국력이 나날이 성장해가는 중국과의 잦은 마찰, 그리고 일본에서 적극적인 일본 내수 지향과 은근히 일본다운 것을 강조하는 성향이 짙어져 일본 서브컬쳐계에서의 중국풍 유행은 다소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조금씩 언급되고 있다. 과거만큼은 아니어도 중국풍의 캐릭터나 설정들이 소수 등장한다던가, 중국 음식이 언급된다던가, 작중에서 사업등의 이유로 중국으로 출장을 가는 등. 게다가 중국 자본이 일본에 들어오기 시작하여 일본 서브컬쳐 내의 영향력이 다시 커지고 있다. 2018년에는 두 번째 인생은 이세계에서 작가의 혐중, 혐한 발언으로 애니화가 취소된 사건[23]이 발생했으며, 한편 벽람항로붕괴3rd, 원신 등의 중국산 모바일 게임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게다가 가끔 일본 성우의 8.15 패전 발언(ex. 지키기 위해 살다. 등)이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역사부분에서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2015년 6월 11일. 상하이에서 열리는 중국 상하이국제영화제 일환으로 열리는 일본 영화 주간에 진격의 거인이 상영금지를 당했다. 링크[24] 그리고 중국은 여전히 한국과는 다르게 일본과 사이가 나쁠 때 일본 문화에 대한 불매 운동이 일어나는 나라이며[25], 아울러 일본과 사이가 틀어지면 공산당이 일본 문화에 대해 국가 차원의 검열과 제재를 먹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중국에서 서비스되는 온라인 FPS 광영사명에서는 아무리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지원한 게임이었지만 자위대가 적으로 등장하는 댜오위다오 코옵 맵이 업데이트되면서 이것 때문에 상당히 시끄러웠던 적 있다. 참고로 싱글 플레이 가능한 군용판도 초기 개발과정 자료를 보면 미군이 적이었는데 중간에 중일관계 악화 때문이었는지 도조 히데키 면상의 육상자위대가 주요 적으로 나오고 미군은 아주 가끔가다 나오는 수준으로 변경되었다.
중국 광둥성에 일본 번화가의 모습을 본뜬 거리가 생겨나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5. 사건사고



5.1. 희토류 분쟁(?)


한국에서는 희토류 분쟁이후 WTO 협정 위반으로 인한 중국의 외교 패배, 일본이 희토류 대체, 희토류 개발 연구로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 철회로 일본이 반격해 승리하였다. 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희토류라는 자원 자체에만 국한된 시각이다.
반중 성향이 강한 한국에서는 이후 일본의 희토류 대처로 중국의 희토류 물품에 대한 압박을 극복하는게 중요했지만 핵심은 일본이 영토분쟁지역에서 중국측의 압박에 굴복, 일본이 실효지배하는 섬 부근 해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일본의 국내법으로 재판해 판례를 남기려고 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에서 압박으로 마지못해 철회시킨 사건이다. 애초 희토류도 이걸 위한 수단중 하나로 중국이 들고나온 거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희토류가 전부인거 마냥 담론들이 쏟아진다.
결론을 말하면 일본의 철저한 완패였다. 일본 검찰에서 처분 보류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중국 선장을 석방해버리면서 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중 누가 아시아의 패권에 더 가까운지와 함께 중국과 일본의 힘의 격차가 어느정도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괜히 강압적이며 자신들의 사소한 이익 침해에 참질 않고 길길어 날뛰며 폭언들을 퍼붓는 중국에서 WTO의 희토류 사건에 대해 패소 판결, 희토류 수출 규제 정책 철회를 별다른 반발없이 조용히 수긍하며 한게 아니다. 이미 중국은 얻을 것을 다 얻은 상황이였고 희토류로 추가로 분쟁하는 것은 이익만 줄어들 뿐이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사회는 자신들을 굴복시킨 중국에 대해 불쾌감과 함께 강한 반감을 품었고 대대적인 희토류 대체정책뿐 아니라 일본의 방위 정책 강화에 착수한다.

6. 여담


  • 외국인[26]이 바라본 중국과 일본의 차이점.

[image]
짤방미국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 15기 6화 중 한 장면으로, 오른쪽 인물은 텅 루 킴이다. 정확히 이둘은 중국계 미국인하고 일본계 미국인이다.

7. 관련 문서



[1] 심지어 당나라 시기의 고대 중국어 발음을 객가어광동어 다음으로 보존시키고 있다.[2] 명나라 사신과 가네가와 친왕에 대화에서, 일본 친왕이 자기 민족을 '''중국을 숭배하던 변방민족'''이라고 아부를 하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고 #명나라 신하에게 압력을 받고 공물을 바치고 칭신을 했다고 기록을 남기고 있다. 물론(...) 일본 측에서는 이에 부정적이다.[3] 조선왕이 입던 것이랑 비슷하다.[4] 물론 이건 후일 근왕주의자들에게 신나게 까였다. 그것도 그렇지만 원래 요시미츠는 남북조시대의 북조로 남조와 교류하던 명에게는 정식 국왕은 커녕 북조의 신하로 인식되었다. 결국 요시미츠가 남북조를 통일시키고 출가까지 한 것은 인정받기 위해서라는 이야기가 있다.[5] 이 당시 한국의 기자조선설처럼 일본 황실의 시조가 중국 출신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6] 이 때문에 17세기 조선은 청나라와 일본을 중개하는 무역으로 여러가지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18세기에 청나라와 일본의 직교역이 개통되면서 조선의 중개 무역 또한 쇠락한다.[7] 공산국가에 원조나 학문 지원 등을 금했다.[8] 실제로 당시 중국은 일본에 우리도 한국처럼 포항제철 같은 제철소 지어주라라고 했지만 까였다. 당시 일본이 거절하면서 내논 이유가 압권인데 "당신들에게 박태준과 같은 인물이 있는가?" 였다.[9] 2ch 같은 성향의 일본인들(넷우익)은 즉시 중국을 "대인배라지만 호구 나라"라고 조롱하였다.[10] 2015년 기사 참조.[11] 이 때문에 중국에서 거래하는 일본 기업은 역사에 대한 언급을 극극 꺼린다.[12] 중국 측에서 전격적으로 공동선언문에서 나 먼저 원리가 아닌 일본을 앞에 쓰는 것을 허용했다.[13] 사실 일본은 이미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를 공개 지지했다.[14] 세계은행 자료[15] 소수점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하였다.[16] IMF 2019년 10월 자료[17] 소수점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하였다.[18] 사실 중국어판 유희왕 카드는 푸른 눈의 백룡과 블랙매지션이 존재했었지만 중국에서 유희왕이 정식 발매된 건 2014년 2월달이 처음이다.[19] 한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권기인 1998년(단계적 개방의 시작이었으며 개방이 사실상 완료된 것은 2007년), 중국은 덩샤오핑의 집권기 및 개혁개방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기인 1980년대(덩샤오핑/여담 참조).[20] 그러나 이러한 자신감이 무색하게 한류가 생각보다도 더 거세게 유행하자 대놓고 한류를 견제하고 죽이려 들고 있다[21] 각국의 정치 체제가 낳은 역설적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은 자유민주국가라서 정치권이 일본 문화 개방을 원해도 여론이 일본 문화를 거부하면 이를 거스르지 못하다 보니 개방이 그만큼 늦었고, 중국은 독재국가라서 정치권이 개방을 원하면 여론과 무관하게 개방이 가능했던 데다가 마침 그때 집권했던 덩샤오핑이 개방을 원해 그때 개방이 이루어졌던 것. 물론 독재국가라는 것은 반대로 정치권이 개방을 원하지 않으면 여론과 무관하게 개방이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한데, 실제로 덩샤오핑 다음에 집권했던 장쩌민이 덩샤오핑 사후 다시 일본 문화를 탄압하기도 했었다.[22] 당시 일본은 한국에 대해 유화적이었고 욱일기 문제에도 별 마찰이 없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 나라 모두 공론화할 생각이 없었다, 이때는 냉전과 한국의 군부정권 출범이라는 시기 속에서 서로 밀월관계를 유지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 버블경제가 무너지고 옆나라 한국이 IMF를 맞이하면서 여러 갈등이 시작되었다.[23] 중국 공산당 내의 중국공산주의청년단이 직접 언급하여서 자칫하면 외교적 문제까지 커질 수 있었던 상황이다.[24] 단 이것은 일본 애니메이션이여서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 죽도록 싫어하는 '체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내용이 껴있어서일 가능성이 높다.[25] 중국은 비단 일본뿐만이 아니라 자국의 국익에 대치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외국 배우들이나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제재를 가하는 일이 다반사인 국가다.[26] 해당 유튜버는 serpentza라는 인물로 중국에 10년 넘게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