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만주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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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과 만주 지역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2. 상세
한국-만주 관계와 마찬가지로 이북 지역도 만주와 역사적으로 연관이 많은 관계인데, 지리적으로 서로 접해있던 것도 한 몫 했다. 고대부터 근세 후기까지까지는 만주의 여러 북방기마민족들의 침략을 받기도 하면서 동시에 북진정책의 기점이기도 했다. 고조선은 요동과 평안도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전성시대엔 잠시나마 한 때 요서 일부도 점령했다. 지금의 만주 평원에는 쑹화강을 중심으로 부여가 있었고, 고구려 이전의 남만주 일대의 강한 패권을 가졌고, 문화가 발달되었다.
고구려, 발해시대부터 이북 일대에는 일부 숙신 등 퉁구스계 민족들도 거주하기도 했었지만 주로 예맥계 민족들이 많이 거주했는데 맥인, 예인(예족)과 동예(당시엔 전부 '예(濊)'라고 통칭), 옥저(동옥저, 북옥저 등), 고구려가 대표적이었다. 발해 멸망 후 발해 유민들은 고려로도 피난을 갔으며, 고려에 정착하여 고려의 백성들이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평안도 북부 일대에는 거란이, 흥남, 영흥, 원산을 제외한 함경도 대다수는 여진이 차지했었다. 고려는 이들과 분쟁을 겪으면서도 동시에 교류, 왕래 등 무역도 했었다.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함경도 개마고원, 평안도 북부의 여진족들은 몽골의 지배를 받았고, 고려는 속국신세여서 원나라에 의해 북부 영토를 잠시 잃었다가 공민왕 때 다시 수복했고, 북진정책과 옛 윤관이 세웠던 동북 9성의 성터들을 이용함으로 지금의 개마고원 대다수까지 정복했다. 훗날 조선시대에는 4군 6진으로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까지 점령하게 된다. 조선시대에도 야인이라 불린 여진족을 포함한 만주 일대의 제족들의 침입을 받으면서 반대로 여진족들을 먼저 기습하기도 하는 등 예방전쟁을 했었다. 청나라 건국 이후에는 여진족들은 만주족으로 이름을 바꾸고 중국대륙을 정복해서 중원으로도 이주하다보니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등의 침략만 빼면 그 이후에는 침입이 없었다. 만주족들은 훗날 자신들의 국가가 멸망할 때 다시 돌아가려는 계획과 자신들이 발원한 고향이자 신성한 곳으로 여겨 다른 민족들은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버들나무로 쌓은 목책으로 요새를 둘러쌓아 막았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배고픔 및 농경지 개척으로 몰래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으며, 이들은 농경지와 마을들을 개척해 수많은 조선인 마을들이 생겨났었다.
공식적으로 조선의 영토는 아니었지만 조선인들 입장에서는 사실상 조선의 또다른 영역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보니 조선인과 만주인의 갈등,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이는 훗날 간도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숙종과 강희제는 이를 해결하려고 하여 토문강 일대를 국경으로 확실히 정했다. 자세한 건 간도 부분을 참조. 하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몰래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으로 이민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훗날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와 아무르 강 유역 등이 러시아령이 되어 조선과 접했다. 처음엔 견제했으나 조선이 서양 국가들과 외교를 맺으면서 러시아와도 경흥에서 러시아와 무역을 했다. 동시에 러시아는 조선에서 정치적 간섭도 했으며, 녹둔도 역시 러시아에 빼앗기게 되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의 패배로 러시아는 조선에 대한 간섭을 포기하게 되었다.
근대시기인 조선말, 일제강점기까지는 혼란스러움과 관리인들의 부패 등으로 인해 청나라 국경이나 제정 러시아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곳에 수많은 조선인 마을들이 생겼는데, 지금도 연변의 경우 조선족 마을들이 존재하며, 연해주에도 거주하여 훗날 고려인들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항일독립운동가들은 중화민국과 소련에서도 활약을 했다.
일제 패망 후에는 38선 이북에는 소련에 의해 소련군정 통치를 받았고 공산화로 인해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북한 공산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은 만주를 가진 중화인민공화국, 소련과 외교를 맺었다. 그러나 아무르 강, 우수리 강 일대에서 중소국경분쟁으로 중소관계가 악화되자 북한은 이를 계기로 중소분쟁을 빌미로 삼아 주체사상 등으로 독자적 노선를 선택하게 된다.
1990년대에는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의 경제는 갈수록 심하게 악화되고 대기근, 폭압적 정책까지 나오자 수많은 북한 사람들은 중국 국경을 넘었으며, 만주 지역에 피난을 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불법이주민으로 여겨 강제북송을 중국 만주를 넘어 다른 곳으로 피난가는 사태가 되었으며, 이는 현재도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수 사람들은 러시아로 도망치는 경우도 있으나 러시아와는 외모나 인종이 다르다보니 인종차별을 받기도 하고, 무엇보다 문화가 너무 달라서 이질감이 큰 이유도 있다. 더욱이 두만강 하류는 물살이 세고 수심도 깊어서 탈북한다고 해도 위험하다는 탈북자들의 중언도 있다. 그래서 러시아로 탈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고 한다.
현재 북한은 중국 동북 3성, 러시아 연해주나 사할린, 아무르 강 유역 도시들을 통해 무역과 식량, 의약품, 일부 제품에 의존을 하고 있으며, 북한노동자들도 그곳에서 노동자로 파견된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과거에는 퉁구스 제민족들도 살았지만 현재는 없다. 조선시대에도 만주어회자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소멸되었다고 한다. 재가승이 한반도에 있었던 여진계열의 후손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재가승이 혼혈되었어도 민족집단 아닌 종교집단이며, 이들이 살던 곳이 여진족이 살았던 함경도에도 이주하면서 이들과 혼혈되어 한국과는 사회배경이나 다른 문화도 가진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부터 소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3. 관련 문서
- 북한/외교
- 북중관계
- 북러관계[1]
- 북중러관계
- 중국/외교, 러시아/외교
- 만주
- 만주/역사
-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 탈북자
- 재가승
- 여진족
- 거란족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