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주 관계

 




1. 개요
2. 역사적 관계
4. 6.25 전쟁에 대한 만주 폭격 발언
5. 영토 분쟁
6. 현대
7. 소수민족들과의 관계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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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과 현재 중국, 러시아가 다스리는 만주 지역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2. 역사적 관계




한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땅이다. 고조선은 요서와 요동을 주 근거지로 삼아 인근지역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던 나라로, 연나라에게 요동지역을 빼앗기고 평양을 중심으로 하기 이전까지 만주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고구려, 발해도 마찬가지로 만주지역에 커더란 영향력을 행사했고, 고구려의 초기 수도인 졸본성-국내성이나 발해의 수도인 상경이 만주지역에 위치해있었다. 고구려백제의 조상국가로 여겨지는 부여도 만주 송화강 지역에 위치해 있었을 만큼 한민족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지역이다. 비록 예맥계 주민들만 살았던 건 아니고, 통구스와 동호 등 다른 민족들도 어느 정도 비중이 되었지만 예맥인들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쳤던 지역이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도 말갈족들 중 일부가 신라에 정착해서 군인이 되거나, 신라 말의 이민자가 만주 지역 국가의 조상이 되는 등, 예맥한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1][2]
하지만 발해 멸망 이후 만주를 지배한 요나라, 금나라 때 들어서 그들이 만주의 예맥계 주민들을 지배하던 와중에 유목민들[3]에 의해서 죽거나 강제이주, 혹은 한족이나 유목민들에게 차츰 동화되면서 수가 줄어나갔다. 비록 그들과 싸워 이기거나 세력들을 약화시켜 한반도의 한민족 세력들이 완전히 복속화시키진 않았으나, 만주에서 한반도의 국가들이 더 이상 만주에 세력을 뻗을 순 없었다. 그래도 발해 유민들의 부흥운동 집단들을 간접적으로 지원해준 적도 동시에 있었으며, 심양왕 작위에 고려왕족들이 임명되었던 것이나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 당시 요동정벌을 추진했던 것을 보면 의외로 생각보다 오랜 기간 동안 예맥계 주민들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요동 지역을 명나라가 차지한 이래로 시간이 차자 흐르며 이들은 한족 및 북방 제민족에게 동화되어갔으며[4], 결정적으로 청나라가 들어서며 봉금령이 선언되고, 다른 민족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만주족만의 땅으로 설정되어버렸다.[5] 그 이후로 만주지역의 인구가 만주족들이 더 살기 좋은 중원지역으로 이주하면서 희박해졌고, 연변 지역에 조선인들이 많이 이주해서 사실상 조선 영토라고해도 좋을정도로 조선의 영향력이 미쳤지만 어쨌든 청나라가 강성했을때는 조선인들이 대대적으로 이주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청나라가 서구열강의 침입과 내부 혼란으로 무너져가던 1897년, 봉금령이 해체되면서 산둥성과 허베이성 일대의 한족들이 대거 만주로 이주하면서 지금은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한족이 차지하게 되었다.[6]
일제강점기에는 한국 독립운동의 산실로 수많은 독립운동 단체 및 독립군들이 만주에서 활동했다. 1920년대에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에 있었던 청산리 전투, 봉오동 전투 등의 교전도 만주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한편, 현대 남북한의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지도자들인 박정희김일성이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각각 만주군동북항일연군 소속의 군인으로 활동했다. 이들의 만주체험은 각각 빨치산파와 만군인맥이라는 세력기반을 형성시켜 지도자 자리에 오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이후 그들이 펼친 국가주의, 권위주의적인 통치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이는 오늘날까지 영향이 남아 있다. 고려 말기 이후 직접 통치 영역에서는 벗어난지 오래였지만 한국 근현대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지역이었던 셈.
러시아 지역의 외만주(연해주 포함)에서도 자유시 참변등의 사건이 일어났었다. 이곳에 거주하던 한민족들은 이오시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인해 중앙아시아로 이주당한 경우가 흔했다.

3. 만주회복?


사실 한국에서 고구려부터 조선시대 최근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도 꽤나 꾸준히 만주로 통칭되는 중국 동북지방을 회복해야 할 고토로 여기고 기회를 엿봤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발해 등 북방의 역사에 대한 향수와 종주권, 그리고 이를 상실한 이후 찾아온 약소국으로서의 부침 등이 큰 원인이다. 마이너적으로는 나름대로의 근대화를 이루고, 혹은 국력이 증가될 수 있는 최소한적 지역이란 점으로 아쉬워하는 원인도 존재한다. 발해 부흥운동이나 고려의 북벌운동 등 실질적으로 행동에 옮기기도 하였고 조선시대 들어서도 꾸준히 북진의 명분을 준비해두고 있었으며 명나라의 경계를 꾸준히 받기도 하였으며 말기까지도 간도 문제가 불거지기도 하였다.
결국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게 패배하면서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명나라가 멸망하고 소중화 사상과 함께 북벌론이 성행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북벌론이 성행하면서 자연히 만주 고토회복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났던 것이다. 또한 북벌론이 현실적인 이유로 한물간 이후로도 박씨전이나 임경업전 같은 반청사상을 담은 소설이 민간에서 유행했고, 이필제의 난이 일어났다는 점을 볼 때 민간에서의 북벌여론도 어느 정도 존재했다는 점을 쉽게 유추할 수 있지만. 막상 청나라아편전쟁, 태평천국 운동으로 쇠퇴했을 때는 조선세도정치로 인해 같이 쇠퇴하여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버렸기에 결국 만주를 되찾을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7] 다만 이때에도 만주를 차지하려는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라서 의화단 운동 때 병력을 파견하려고 했다든가 대한제국간도를 차지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국력의 부족으로 잘 안 되고 말았다.
하지만 한민족이 만주를 나갔던 건 근현대 이전의 일이고 이미 중국인들의 인구 팽창과 한족들의 대대적인 이주로 1997년 시점에 이미 '''1억 697만 명'''이라는 인구를 차지했다. 그런데다가 이미 만주족민족주의의 아래에서 뚜렷하게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인식하는 상황이니 중국에서 만주가 떨어져나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졌다. 만에 하나 중국이 분열되어도 조선족이나 만주족의 나라라기보단 동북군벌처럼 한족의 지방정권이 들어설 확률이 훨씬 더 높을 것이다. 이렇게 한족이''' 압도적'''인 상황이라 한국이 만주를 차지하더라도 안정적인 통치는 거의 불가능하다.[8] 또한 명분 역시 부족해서 미국의 알래스카처럼 거액 주고 합법적으로 사지 않는 한 국제적 비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가령 비교해볼 만한 사례로 아르메니아가 실효 지배 중인 아르차흐 공화국, 러시아크림 반도 점령이 있는데, 이 두 사례는 각각 아르메니아인과 러시아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사실 '''한국인들에게 있어서의 만주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케이스는 다른 나라들에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해당 국가들 모두 자국민들이 그리워하는 각 지역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영유권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특히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가 세계적으로 재앙을 몰고왔던 나라가 불과 100년 전에 존재했다.
설령 만주가 중국땅이 아니라 해도 한국이 먹을 수 있는지는 회의적인데 내만주 주변에는 외만주를 지배 중인 러시아도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러일전쟁의 패배만 아니었으면 만주 전역을 집어삼키려고 한 적도 있거니와 만주를 얻으면 따뜻하고 비옥한 땅에 대련 같은 부동항[9]까지 주어지는데 안 노릴 이유가 없다.[10] 만주는 현재 세계에서 미국 다음 가는 '''강대국'''들인 중국러시아의 영토임을 명심하자. 다만 타이밍이 기가막히게 맞아 떨어져서 중국이 분열되고 동시에 러시아도 분열되거나 아니면 제정 러시아 말기처럼 내부문제가 심각해져서 외부에 신경을 못 쓸정도로 국력이 악화되면 제한적으로 길림성 남부와 흑룡강성 닝안, 요녕성 남부지역, 즉 흔히 말하는 간도지역 정도는 한 번은 노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구려, 발해 문화재가 방치되거나 훼손, 및 왜곡식 복원[11] 때문에 이러한 감정으로 인하여 수복하자는 주장도 있기도 하지만, 설사 되찾는다고 하더라도 문화재가 제대로 관리될 수 있는지 알 수도 없다.[12] 물론 왜곡식 복원을 했었던 중국의 행동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현실적으로 만주 회복을 부르짖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차라리 그것보다 고조선부여, 고구려, 발해 등의 유적과 유물, 그리고 근현대사 시기의 한국계와 연관된 흔적들을 어떻게든 잘 보존하고, 조선족과의 마찰을 해결하는 게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13]
사실은 북한은 만주 끝자락에 영토 비단섬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니 비록 눈꼽만큼이나마 만주회복을 하기는 했다.
그리고 어차피 만주에는 만주족을 비롯한 퉁구스의 제족들, 다우르족과 일부 몽골계 민족들 등 만주 지역의 원주민들인 다른 소수민족들도 있기에 이들과의 갈등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분리독립만 없을 뿐이지, 만주족들도 한화 및 중국화되었지만 그들 중에 자신의 뿌리가 만주족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있으며, 인구는 적지만 만주족보다 상황이 나은 다른 소수민족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한테 "이 지역은 원래 한국 땅이었어!"라고 말하면 납득갈 소수민족들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4. 6.25 전쟁에 대한 만주 폭격 발언


1996년 6월 24일 전방부대를 시찰한 자리에서 김영삼대통령은 북한은 세계의 모든 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도울 수 있는 나라는 동족인 우리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6.25 당시에 만주를 폭격했으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고 발언하여 여야간 극한 언쟁이 오갔다.
당시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은 해당 발언에 대해 국가안보를 해치고 4자회담[14] 성사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면서 "국가이익을 현저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발언을 한 것은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해 탄핵소추도 가능한 발언이라고 본다"는 논평을 냈고,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측에서는 "대통령 자신이 북을 자극하여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는 논평을 냈다. 집권당인 신한국당의 김철 대변인은 "어느 쪽의 안보를 지키려는 정당인지 의심이 들 정도라는 점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회의는 북한에 대해 그렇게 미안하고 조심스러운지 묻고 싶다"는 논평을 냈다.[15]
당시 공방의 발단은 김영삼 대통령의 지난 24일 중부전선 시찰 당시 발언으로 김영삼대통령은 심각한 북한 상황과 한국전쟁의 참상을 회고하고 당시 맥아더 장군이 주장했던 만주폭격이 가능했더라면 이미 통일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면서 철저한 안보태세를 당부했다.[16] 그러자 국민회의측은 어제와 오늘 잇따라 비난공세에 나섰고 신한국당측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양쪽 공방은 김영삼 대통령의 발언이 과연 우리 국민의 안보의식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줬다. 국민회의 정동영대변인은 만주북폭 지지발언은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중대한 발언이라고 규정을 했다. 그러자 신한국당 김철 대변인은 전방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과거의 통일의 기회를 아쉬워하면서 젊은세대들에게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이같은 회상을 한 것은 매우 자연스럽게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는 논평으로 김영삼 대통령을 비호했다. 또 이번 발언이 지금은 우호국(?)이 되었다는 된 중국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도 논란이 됐다. 정동영대변인은 한중 우호에 악영향을 초래하고 간접적으로 외환을 불러올 수도 있는 중대한 발언이라는 것이라고 논평했고 신한국당의 김철 대변인은 반세기전의 전쟁 상황을 기준한 대통령의 발언이 어떻게 해서 현재의 한중 한러 관계에 영향을 준다는 얘기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논평을 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김영삼 대통령이 전국민 한테 이 발언을 해명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신한국당은 당시 공산당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이 맥아더의 주장을 지지했으며 지금도 대다수 국민들이 그대로 했다면 통일이 됐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국민회의가 6.25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 결여돼있을 뿐 아니라 어느쪽 안보를 지키려는 정당인지 의심이 들 정도라고 반박했다.[17][18] [19]

5. 영토 분쟁





6. 현대


일제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했으나, 일제의 압력을 피해 만주로 이민온 한인들은 일제가 패망했다고 쉽게 한국(조선)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이는 남하할 계획을 가진 소련과 이를 반대한 미국에 의해 한반도에서 각각 소련과 미국이 개입하여 한반도에서 군정기를 펼쳤기 때문이었다. 내, 외만주의 한인 동포들이 본격적으로 한국을 방문할 수 있었던 시기는 냉전이 한참 지난 이후였다. 이후 남북으로 갈라졌으며, 한반도 남부에 세워진 한국(남한)은 냉전시기만 해도 만주를 차지한 중국과 소련이 공산권이었기에 방문할 수 없었지만 냉전 해체, 한중수교로 현재는 중국과 러시아의 영토이기에 중국, 러시아를 통해서 방문이 가능하다. 과거 고구려, 발해의 유적들, 독립군 관련 유적지, 한인 타운들, 백두산을 많이 방문한다. 지리적으로 가깝기에 프리모리예 지방, 동북 3성에서 온 러시아인과 중국인들도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가깝긴 하지만 현재 북한에 의해 막혀서, 비행기나 배를 타고 방문해야 한다. 상술했듯이 만주로 갔던 한인들 중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한국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한국으로 방문하여 한국에 귀화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대로 서로간의 갈등으로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해결해야 될 문제점들도 현재진행형이다.

7. 소수민족들과의 관계


일단 만주족과 한국인은, 계통은 만주-요동에서 발현한 북방계 민족. 부자 유전인 Y염색체 하플로그룹과 모계 유전인 미토콘드리아 하플로그룹 모두 '한민족과 유전적으로 가장 비슷한 종족'이다.[20] 사실 고대부터 거의 붙어 있다시피 했고 양 민족이 섞이는 일도 제법 있었으니까 당연한 것이긴 하다. 그래서인지 환단고기류의 위서 애호가 재야 사가들, 소위 환빠나 일부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민족주의자들은 '''만주족은 우리의 형제'''라고 생각하고 굉장히 친근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물론 민족이란 유전적 근친성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며, 문화적 근친성을 따진다고 해도 이미 원삼국시대부터 언어가 다른 별종이라고 삼국지 위지와 후한서에 기록되어 있다.[21] 그러니까 만주족과 현대 한국인은 적어도 2000년도 넘는 오래 전에 갈라진 별개 민족이란 의미.[23]
한국인과 만주인은 고조선숙신이라는 역사상 최초의 부족 공동체가 형성될 때부터 이미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이후 고조선은 부여와 함께 고구려로 이어지고 숙신은 숙신이 잔존하는 상태에서 물길, 읍루, 말갈 등을 이루다가 여진이 되고 만주족이 된다. 고조선과 숙신의 구체적인 관계는 알기 어렵다.[24] 읍루는 정치적으로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고구려와 언어가 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후의 말갈은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었지만, 고구려-당 전쟁에서 말갈병만 골라서 따로 죽였을 만큼, 고구려와는 구분되는 모습을 보였다.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등장한 발해는 한민족과 말갈족이 연합된 국가라고 보면 된다. 다만 좀더 순수한 말갈족은 아무르 강(흑룡강) 쪽에 있었던 흑수말갈에 몰려 있었다.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이웃하며 살아서 그런지 은근히 옆동네 친척 정도로 여겼다는 기록이 있다. 사실 우리가 만주를 상실한 발해 멸망 이후에도 여진족은 고려를 부모급으로 취급했고, 사실 여부는 제쳐 두고서라도 여진족의 역사서인 금서에서는 아골타고려김함보의 후손이라고 했으며, 송막기문 등 다른 기록에서는 신라인을 시조라고 하고 있다. 조선도 여진족과 상당히 유착되어 있었다. 조선의 시조인 이성계가 여진족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성계의 의형제인 이지란이 여진족 추장이었음을 봐도 그렇다. 또한 조선 초기에 함경도에서 일어난 반란들, 조사의이징옥의 난 등은 모두 여진족을 끌어들이려고 했다는 점도 근거가 될 수 있다.[25]
서양인이 조선에 대해서 쓴 기록에는 "친척 민족에게 공격당했기 때문에(병자호란) 조선인들은 어떤 외국인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라는 구절도 있다. 그러나 이는 혈통적, 문화적인 실질적인 연결점보다 한때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모두 석권하고 지배했던 고구려발해라는 정치적 집단의 패권과 이데올로기적 접점을 공유한다는 면에서 접근하는 게 맞는다. 사실 아시아만이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부모의 나라니 형제의 나라니 하는 명칭들은 은근 아부를 하거나 비위를 맞추려고 할 때 많이 쓰였다.[26]
조선인들이 만주족을 보는 시선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의 여러 기록들에 나와있다. 당연하게도 호란 이후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에서는 청나라를 안 좋게 보는 기사가 많지만 개인의 기록에서는 다양한 관점이 서술되어 있다. 가령 박지원열하일기에는 만주족 여자와 한족 여자를 구분해서 서술해놓고 있고, 대개 한족 여자보다 만주족 여자를 예쁘게 표현하고 있다. 그 예로 9일 기사를 보면 '한족 여자는 여기서 처음 보는데, 모두 발을 감고 궁혜를 신었으며, 얼굴은 만주 여자만 못하다. 만주 여자 중에는 얼굴이 예쁘고 자태가 고운 이가 많았다.'고 서술되어 있다. 박지원 개인의 호불호인지 실제로 한족 여자들이 못생기고 만주족 여자들이 예뻤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만주족에게 다양한 감정을 느꼈음을 알 수 있다.
관계가 안 좋았다고 보는 측에서는 여진족이나 만주족이나 당시에는 민족성의 차이로 봤을 때 별로 좋은 이웃은 아니었음을 지적한다. 거란족을 보면 알겠지만 거란 등 북방 유목민족들도 발해인들을 방패로 쓰다가 필요성이 없어지자 강제 이주를 시키는 등 자신들이 획득한 영토에서 한민족을 배제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훗날 나타나게 될 금나라 때의 여진족들도 역시 발해인들을 나중에 중국 대륙으로 이주시키고 여진 또는 한족에 동화시켰다.[27] 한 때 여진과 치열한 전투를 하기도 했었던 고려처럼 조선 역시 여진족을 경계해서 야인이라 부르며 토벌의 대상으로 여겨 여진족은 상당히 털려나갔고 병자호란 때 숭덕제가 인조에게 보냈던 편지에는 "너희 조선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세 나라에 해마다 조공을 바치고 대대로 신하를 일컬었지 옛날부터 언제 남을 섬기지 않고 스스로 편안히 지냄을 얻은 일이 있느냐?" 하며 조롱하기도 했다.[28]
청나라가 건국된 후 조선을 굉장히 수탈했다. 청은 자신들이 준 것의 10배 이상으로 조선의 부귀를 가져갔다.[29] 저런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면, 조선이 후기에 개막장이 된 게 수치적으로 이해가 될 정도다. 조선이 청나라와 한 조공 무역은 진짜 막장 그 이상으로, 청나라는 조선의 국력을 빨아먹으면서 성장했다.[30] 물론 강희제 때부터는 조선이 완전히 자신들의 질서에 편입된 것으로 판정돼, 조공 요구량이 합리적으로 감소하였고 경신대기근 등 조선에 흉악한 기근이 들었을 때 유무상으로 쌀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사실 전근대시대에 일본에 의한 한민족 대상 약탈, 침략, 학살 사례를 제외하면 한민족을 대상으로 약탈과 침략, 학살을 가장 많이 저지른 집단은 중국 한족이나 일본인이 아니라 이들 만주족을 비롯한 퉁구스계와 몽골계[31]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북방 유목민족들이다. 그러나 21세기 기준으로 퉁구스계는 나라 없는 민족으로 전락한 데다가 몽골계의 경우 외몽골 한정으로 주권국가를 형성했지만 전근대와 달리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한반도 국가에 비해 국력이 강한 편이 아니다 보니 퉁구스계와 몽골계는 한반도 국가들을 대상으로 각각 원나라와 청나라 당시에 한반도가 그들의 속국이었다는 것을 거론하며 도발할 여건이 안 되는 상태이며[32] 한국인들이 비교적 최근의 역사인 일제강점기와 일본 정부의 정치적 도발, 일본 내 극우들의 물타기, 혐한주의로 인한 반일감정과 6.25전쟁 당시 북한를 돕고 중국의 개입과 중국 공산당의 한국에 대한 내정간섭을 비롯한 고압적 외교정책, 지금도 북한을 탈출하려는 탈북자들을 강제로 붙잡아 북한 정권이 유린하는데 방조 및 간접적으로 돕는 거나 다름없는 중국의 행동들(거의 한족들)[33],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중국 당국의 무능한 대응으로 인한 반중감정 등 근대 말에서 현대까지 폐해를 끼쳤고, 이러한 현대 중국과 일본과의 갈등과 악감정들이 지금까지 번지는 현상 때문에 중국과 일본의 인식이 나쁜 것과는 달리 현대 한국사회에서의 퉁구스계와 몽골계에 대한 악감정이 전근대시대에 비해 많이 희석된 편이다.
퉁구스계와 몽골계의 경우는 반면 침략을 많이했어도 옛날 일이었다는 이유와 근대에는 일본이 청나라나 러시아보다 더 길게 간섭하고 훗날 경술국치와 일제강점기로 이어진 것때문에 이런 이유로 같은 시기 일본과의 갈등과 반일감정이 있었던 청나라 및 러시아가 더 나아보이게 될 정도로 더욱 강경해진 반일감정[34], 청이 조선을 자신들의 속국으로 유지시킬 계획이 일본에 의해 저지되어 실패 및 조선으로부터의 간섭을 멈춘 것과 서양 열강 식민주의 국가들에게도 털린 점 때문에 일부 또는 반정도는 동시에 이런 암울한 청 후기를 동정하는 경우도 있는데다가 몇번 언급했듯이 특히 만주족과 만주-연해주의 여러 제족들은 청 멸망 이후 나라를 잃은 유민들이 되기도 했고 만주의 일부는 러시아령 외만주가 되어 만주족을 비롯한 퉁구스계 제족들의 옛 고향조차 분할되어 버렸고, 외몽골 지역의 몽골족을 제외한 다른 몽골계 민족들도 몹시 쇠약해져 러시아 및 청[35]에게 자신들의 옛 영역들을 잃고, 운좋았던 외몽골도 매우 약한 국가로 변하다 보니 이러한 역사적 이유로 북방민족들 후손에 대한 반감이 갈수록 옅어져 거의 없는 거나 다름없게 되었다.[36][37]
신해혁명에는 신규식, 김규홍, 유동열 등 몇몇 조선인들이 가담하기도 했다. 청나라에 복수하여 삼전도의 굴욕을 만회하자는 북벌론은 사실상 이들에 의해 실현된 셈이다.
청나라 멸망 후 일부 만주족이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도망치기도 했으며[38], 이들은 남명 멸망 이후 조선으로 도망친 명나라 유민들과 마찬가지로 한민족에 동화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조선인들에게 명나라 유민들보다도 더한 푸대접을 받았다. 명나라의 경우 비록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파병된 명군이 조선에서 각종 행패를 부리기도 했지만 이는 몽골족, 여진족 등 명나라 치하 기마민족으로 구성된 북병들이 주로 저질렀으며, 한족들로 구성된 남병들은 약탈을 저지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임진왜란 당시 명군은 일본의 한반도 및 대륙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파병되었다. 반면 만주족의 청나라는 상술한 것처럼 정묘호란 및 병자호란으로 수많은 조선인들을 학살하거나 포로로 끌고 갔으며, 병자호란 종전 이후에는 조공이라는 명목으로 조선을 엄청나게 수탈했다. 이러한 한민족과 만주족의 역사적 악연 탓에, 조선으로 도망친 명나라 유민들이 처음에 차이나타운 비슷한 공동체를 만들어 지낸 것과 달리(세금 납부 문제 때문에 숙종 때 이후로 조선 사회에 강제로 동화되었지만) 만주족은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도망친 후 조선인 주인 밑에서 종살이를 하거나 조선인들이 기피하는 3D업종에 종사하는 등 조선에서 형식상의 좋은 대접도 처음부터 전혀 받지 못하고 자신들만의 제대로 된 공동체를 형성하지도 못한 채 힘겨운 삶을 살며 서서히 조선인에 동화되어 사라져갔다.[40] 물론 남명 멸망 당시 조선 왕조가 건재했던 것과 달리 청나라 멸망 당시에는 조선이 일본 제국 치하에 놓인 상태였던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설령 청나라 멸망 당시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로 합병당하지 않고 계속 독립국으로 남았다 해도 한반도로 도망쳐온 만주족은 한민족과의 역사적 악연 탓에 결코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만주국 치하에서는 일본 제국이 조선인들을 만주로 대거 이주시킨 후 만주족이나 한족으로부터 땅을 빼앗아 조선인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이 때문에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일본 제국은 조선인들의 편을 들어주었다. 사실 어찌보면 당시 만주족은 조상이 조선인들에게 저지른 만행에 대한 역지사지격 경험을 한 셈이다. 병자호란으로 조선이 청나라의 조공국이 되었을 때는 조선인들이 과거에 자신들에게 조공을 바치던 여진족(만주족)에게 역으로 조공하게 되는 굴욕을 당했는데, 만주국 치하 만주족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나라였던 청나라를 상국으로 섬기던 조선인들이 일본 제국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고향인 만주 땅을 빼앗은 셈이기 때문이다.
현대 만주족의 경우 조선족과 통혼하는 경우도 있으며, 한중수교 이후에는 남한 사람과 국제결혼을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현재 만주족의 거의 대부분은 중국어에 능통하며,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갖고 있는 중국인이다. 오죽했으면 중국 정부에서 만주족의 정체성을 보존하려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당연히 중국인이라는 점이 명백하기 때문에 가능한 사업이긴 하지만. 반중이나 분리독립주의 그리고 범투란주의 만주족들도 있을 것이지만 이들이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다.
한국의 환빠, 만선사관론자들이 퉁구스계 민족(만주족도 해당)과 몽골계 민족을 한민족의 형제 또는 친척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별개로 20세기 이전까지 역사적으로 퉁구스계 민족들은 몽골계 민족[41], 중국 한족, 일본의 야마토 민족과 함께 한민족과 적대관계에 있었던 민족이었다. 다시 언급하자면 한국의 환빠와 만선사관론자들의 논리대로 퉁구스인과 한민족이 형제 관계였다면 병자호란을 비롯한 만주족 등 퉁구스계의 침공, 거란에 의한 발해 멸망과 고려 침공, 고려의 대몽항쟁은 없었던 일이 되어야 하는 오류가 생긴다. 혈통 및 언어상 진짜로 형제 또는 친척 민족이라고 볼 수 있는 외몽골(독립국가)의 할하인, 내몽골의 차하르인, 시베리아의 부랴트인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으니, 단순히 혈통 내지는 언어적으로 비슷하다고 무작정 형제 또는 친척 민족이라는 표현을 남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진짜 갈라져나온 친척민족이라 하더라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원수지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8. 관련 문서


[1] 다만 만주사 전체가 한민족에 귀속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대충 미국 대륙이 유럽계 이민자들의 영향이 강했던 것과 비교할 수 있다. [2] 고조선과 고구려와 부여의 경우 예맥 계통으로서 금나라의 여진족의 계통인 숙신계와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삼한의 경우 고조선에서 유입된 지배층들이 있었기 때문에 숙신계보다는 가까웠다고 볼 만한 구석이 있다.[3] 여진족 문서 참고.[4] 사실 유목민들이 학살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던 점을 고려하면 유목민 영토에 있던 사람들은 죽임을 당했을 수도 있다. 일단 한족 영토에는 이성량 등 조선계 고위직이나 동화되지 않았던 사람들이 좀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유목민의 영토에는 거의 없었다. 물론 유목민이라고 해서 모두가 무작정 학살만 저지르지는 않았음을 감안하면 자신들의 문화에 동화될 것을 조건으로 살려준 케이스도 있었을 듯싶다. 그리고 유목민들이 사는 지역이 대체로 척박한 기후였음을 감안하면, 기름진 땅을 찾아 자발적으로 해당 지역을 떠난 예맥계 주민들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5] 그렇지만 만주족에 속하지 않은 상당수 퉁구스족이나 북시베리아계통의 원주민들 그리고 몽골계 민족들도 쭉 주거하기는 했다. 청나라가 만주를 신성시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이들은 인구가 별로 많지가 않아서 그대로 주거해도 영향이 크지 않았다. 그래서 한족이나 조선인의 유입만 막는 정도였다.[6] 다만 산둥성과 허베이성 일대의 한족들 같은 경우 과거 발해유민들이 요금시대 때 대량으로 강제이주된 지역이기 때문에 한족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발해인들의 후손도 상당수 섞여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한국의 화교들 또한 조상이 해당 지역 출신인 경우가 대다수다.[7] 청나라만주족 또한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고 이후 만주국 치하에서 사실상 일본 제국의 피지배민족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만주에 자신들의 진정한 독립국가를 세울 기회를 잃어버렸다. 게다가 이쪽은 한민족과 달리 만주국의 멸망 및 중화인민공화국의 만주 점령으로 완전히 나라 없는 민족으로 전락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한민족보다도 더욱 비참한 상황이다.[8] 만주 인구가 많긴 하지만 통일한국의 인구도 근 8천만에 달하는 수인데다 경제,문화적인 역량도 한국이 훨씬 강하기 때문에 한족동화는 가능성이 다소 낮다.[9] 블라디보스토크는 참고로 부동항이 아니다.[10] 그러나 과거 소련은 만주작전으로 만주를 점령한 후 대련을 자국 해군 항구로 이용하긴 했으나 1955년 중국에 반환했었다. 때문에 러시아 같은 경우 부동항을 원하긴 하지만 중국과 한국, 일본 3국에 둘러쌓여 있는 서해 지역보다는 중국과 바다를 마주하지 않고 바로 태평양으로 나갈 수 있는 동해 지역에 비중을 둘 가능성이 높다. 쿠릴열도 분쟁 또한 그러한 측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11] 러시아도 방치되어 훼손된 발해성터들이 많지만 적어도 왜곡식 복원은 안 했다.[12] 당장 한국 본토의 문화재만 해도 제대로 복원되지 않거나 훼손된 문화재들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짐작이 갈 것이다.[13] 독일도 통일 과정에서 옛 프로이센 영토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지만, 민간 차원에서는 해당 지역에 있는 독일 문화재를 보호하는 데 있어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러시아 또한 러시아 본토를 제외한 다른 구 러시아 제국령·소련령 국가에 남아있는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유산을 보존하는 데 있어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즉 공식적으로는 자신들의 옛 영토를 포기했어도 민간 차원의 투자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14] 기존의 북미간 핵협상(예: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서 중국대한민국을 포함시킨 4(2+2)자간의 회담을 말한다. 미 국무장관 키신저가 제안했으며, 해당 발언 2개월전인 1996년 4월 김영삼 대통령과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은 ‘한․미 공동발표문’을 통해 4자회담 개최를 공식 제의했다.4자회담[15] 여야, 김대통령의 6.25 만주 폭격 발언 놓고 치열한 성명전[16] 다만 맥아더가 주장했던 것은 핵폭격이다. 미군은 당시 의용군의 입장이었고 그 의용군이 전장도 아닌 타국 영토에 핵폭격을 감행했다면 즉시 3차 대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승패 이전에 한반도의 모든 것들이 싸그리 쓸려나갔을지도 모를 일.[17] 김영삼대통령의 6.25만주폭격주장 회고 관련 안보논쟁 가열 1996.6.26 kbs뉴스[18] 김영삼 대통령 만주폭격 발언 일파만파[19] 여야 만주폭격 공방[20] 일본인이 2번째이고 3번째가 북방 중국인. 의외로 몽골인과는 유전적 관계가 꽤 먼 편 편이다. 몽골인 중에서도 그나마 중국 동북3성의 일부 몽골계 주민들이 한민족과 유전적 관계가 가까운 편이며 다른 지역에 사는 몽골인 대다수는 한민족과 유전적 관계가 멀다. 오히려 후술할 투바카자흐, 키르기즈, 사하 공화국 등 원시 튀르크계가 몽골인과 유전적 관계가 가까운 편이다.[21] 해당 기록에서는 부여(한국인의 조상)와 읍루(만주족의 조상)가 서로 외모가 비슷했지만 언어와 문화가 달랐으며, 부여의 경우 읍루를 종속시키고 착취하는 등 계통 자체는 비슷해도 정체성의 차이는 극명했다.[22] 일단 재가승이 고려시대의 스님을 칭하는 단어이기도 해서 여진의 영향을 받되 여진족이 아니었을 확룰이 높다. 또한 거주지역과 생활모습이 여진족의 옛 영역이나 풍습과 비슷하기도 해서 여진족으로 잘못 알려졌을 것이라는 주장도 많이 나온다. 믈론 재가승이 여진족이 아니라고 해도 일제 강점기 때 이미 일부 만주족 및 만주인들이 넘어오기도 했다.[23] "19C 초반까지는 함경도 주민과 만주족 주민이 통역 없이 대화가 가능했다"는 썰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외국어로서 만주어/중국어/한국어를 배우지 않는 이상 세 언어 사이에서는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구한말~일제강점기 한국의 문학 작품을 보면 그때까지도 함경도에 만주족이 거주했거나, 함경도가 만주족의 거주지라는 인식이 있었던 모양이다.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재가승이라는 여진족으로 추정되기도 하는 집단들이 함경도에 널리 살고 있었다[22]. 금나라청나라를 세운 여진족의 발상지가 두만강 유역이다 보니 그럴 만도 하다. 사실 유물을 통해 보면 의외로 한국인두만강 유역에 지배권을 행사하던 고구려 시대에도 만주족이 두만강에서 함경도에 걸쳐 넓게 살았다는 흔적이 발견된다. 이게 당연한 게, 만주족들도 사람이니만큼 동장군을 피해 계속 남하해서 그렇다. 그리고 삼국시대 후기부터 고려와 조선시대 초기까지 동해안을 따라 말갈이 침입하거나, 여진족들이 배를 통해 동해안 일대들을 약탈하기도 했다. 그리고 통일왕조 시대 이후에 가장 늦게 편입된 지역이 함경도이기도 하다.(평안도고려 초중기에, 함경도조선 초기에 한국 왕조에 흡수되었다. 황해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통일신라에게서 계승.)[24] 어떤 사람들은 고조선과 숙신이 발음만 다를 뿐 같은 나라라고 한다. 하지만 당시 중국 사서들은 분명히 조선과 숙신을 구분하고 있다.[25] 물론 이 부분은 정치적 제스처에 기반하여 고찰해 보아야 한다.[26] 중앙아시아의 몽골제국 후예인 킵차크 칸국티무르 제국이나 터키오스만 제국튀르크계의 황제들이 몽골 제국과의 연결점을 주장하며 칭호 중에 을 사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유목민들이 중심이 되는 변경사에서 이렇게 일전에 그 지방을 지배했던 정치체에 혈통과 상관 없이 그 연속성을 주장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물론 오스만 제국은 실제로 크림 칸국을 번국으로 거느리고, 현대 터키인의 혈통에는 이 크림 칸국의 후예인 타타르인들도 10% 이상을 차지하며 튀르크 또한 몽골 고원에서 출발한 종족이었음은 감안해야 한다. 지금도 투바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사하 공화국 등 원시 튀르크계는 전형적인 북방 동양인이고 관습도 몽골적이다.[27] 발해를 멸망시키고 발해인들을 이용한 뒤 버린 나라는 요나라다. 이는 여진의 금나라도 마찬가지였다.[28] 조선 입장에선 기가 막히는 상황. 당장 만주족 본인들부터 이전까지만 해도 조선에 조공하거나 아부하며 벼슬을 얻거나 했었는데 임진왜란으로 국력이 엄청나게 쇠퇴한 상황에서 이런 소리까지 들으니 어이가 없는 것. 병자호란 이후 명나라가 멸망해서 청나라가 중국을 지배한 이후에도 조선의 반청감정은 19세기까지 간다.[29] 조공 문서 참조.[30] 농담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건 재화든 기술이든 다 가져가서 은근 이익을 많이 봤다.[31] 고구려를 침공하여 위기에 빠뜨렸다가 훗날 광개토대왕에 의해 역관광당한 후연선비족, 발해를 멸망시키고 고려를 침공한 요나라거란족 역시 몽골계통이다.[32] 다만 몇몇 한국인에 의한 몽골인 차별 때문에 몽골인들 중에서 원 간섭기 당시 고려의 상황을 거론하며 한국이 한때 몽골의 속국이었다고 맞대응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 말을 들은 한국인이 "그렇게 속국을 두기까지 했던 몽골이 이 정도로 몰락했구나."라고 맞받아치면 할 말 없겠지만...[33] 소수민족들도 있지만 주요 민족인 한족이 거의 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우위를 차지한다고 봐도 무방해서 주로 한족계 중국인들이 많이 비판을 많이 받는다.[34] 명성황후(민비)를 생각하면 딱 이해가 더 쉽다. 일본과의 대립, 견제하려던 점 때문에 나중에 반일감정이 엄청 심했을 때는 명성황후가 미화는 물론 재평가도 잠시나마 나왔으니. 물론 나중에는 다시 부장적 의미로서의 재평가가 이뤄지게 되었지만. 이는 민비 뿐 아니라 당시 청나라, 제정 러시아도 비슷했는데, 더욱이 청과 러시아는 실패했으니 이들에 대한 반감은 현재는 덜하게 되었다(하지만 구한 말 시기에는 전부 다 안 좋게 보았다).[35] 제정 러시아, 청나라 이후 소련과 중화민국, 현재 중국과 러시아도 현재까지 부랴트, 칼미크, 내몽골의 차하르 몽골인과 다우르족, 신강 동부의 몽골계 거주 지역을 통치하고 있다.[36] 다만 만주족에 대한 악감정이 희석된 건 일제강점기일본 제국이 자신들의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병자호란 당시의 청나라를 관대하게 평가하는 역사관을 조선인들에게 주입한 면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 제국은 만주국을 세우고 중국 본토까지 침공하면서 자신들의 이러한 침략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청나라의 중원 입관을 높이 평가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한국인들 사이에서 일빠들과 환빠들, 역갤러들을 제외하면 만선사관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는 상태이며 이러한 영향으로 청나라와 그 나라의 지배층이었던 만주족에 대한 부정적인 재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37] 만주족은 아니지만 외몽골 및 그 외 몽골계 민족들의 옛 국가들(요, 원 - 요나라는 그래도 금, 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대한 정책을 많이 펼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금, 원에 비하면 그나마 나았을 뿐이고, 요나라도 한족과 발해인, 여진족 중 반대세력들에게는 훗날 몽골의 몽골제국처럼 무차별적이고 잔혹한 처형과 학살도 저질러서 비판적으로 보기도 하며, 오대십국시대의 중국대륙을 잠깐 점령했었을 때는 많은 한족들 및 한화된 민족들이 거란에게 피해를 받았고, 나중에 점령지에서 대규모 민중들의 불만으로 인한 저항으로 거란은 연운 16주를 제외한 중국 대륙에서 철수했을 정도였다. 몽골 제국은 알려졌다시피 항복하거나 저항하지 않은 세력에게만 한정이지만, 어쨌든 자비도 베풀어주기도 했으나 동시에 잔혹한 학살로도 악명이 높았고, 긍정적 재평가로 인해 잠시 묻히기도 했으나 몽골 제국의 일부 업적들이 과장되었다는 것도 알려지면서 다시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역시 비슷하게 최근에는 부정적으로서의 재평가도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1990년 공산정권 붕괴 이후 몽골은 우경화가 지속되어 반러와 반중, 갈수록 이어지는 경제난 악화로 인해 네오나치 성향의 스킨헤드 극우들이 나타나고,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광신적 비뚤어진 애국심으로 인종차별을 하거나 이로 인한 강압적 협박과 절도, 폭행을 저지르고 있어서 해외에서 이미지가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만주족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만주족처럼 다른 민족들에겐 동화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며, 특히 중국을 매우 혐오한다.[38] 만주족 중 일부가 조선으로 도망친 것은 청나라 당시 피지배층이였던 한족들의 보복과 학살을 피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39] 스탈린 집권 당시의 소련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되거나 인종청소를 당했음에도 1980년대 후반 소련 정부의 사과를 받지 못한 것과 2014년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합병되면서 러시아인들에게 사적제재를 당하는 일이 벌어진 것은 크림 타타르족이 러시아와의 역사적 악연 때문에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함을 보여주는 예시다.[40] 설령 한민족에 동화되지 않고 지금까지 만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왔다 해도 러시아의 크림 타타르인, 미얀마로힝야족, 불가리아의 포마크인과 터키계 불가리아인, 터키쿠르드족,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인, 베트남참족, 일본에서의 한국계, 중국에서의 위구르인을 비롯한 이슬람계 소수민족들 및 티베트인과 비슷한 처지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크림 타타르인들은 크림 칸국 시절 러시아, 우크라이나, 폴란드의 변방을 지속적으로 약탈했고 러시아인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들을 납치하여 오스만 제국 및 다른 튀르크족들, 동유럽을 제외한 유럽 지역, 아랍 지역에 인신매매를 했던 역사적 악연 때문에, 훗날 러시아에 복속된 뒤에는 러시아인들에게 좋지 못한 대우[39]를 받고 있다. 로힝야족은 영국인들이 토착 미얀마인들에게서 빼앗은 미얀마의 농경지를 영국인들에게 받은 것 때문에 토착 미얀마인들에게 영국인들과 똑같은 침략자로 취급당하고 있다. 포마크인과 터키계 불가리아인은 정교회를 믿는 불가리아 대다수 국민들에게 각각 매국노의 후손과 침략자의 후손으로 취급받고 있다. 쿠르드족, 팔레스타인인, 참족은 각 문서 참고. 한국계의 경우 재일 한국인, 한국계의 일본 문단, 한일관계, 혐한/일본, 넷 우익/성향,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 신라구, 일제강점기 참고.[41] 선비족(전연, 후연)의 고구려 침공, 거란에 의한 발해 멸망, 거란의 고려 침공, 대몽항쟁이 여기에 해당된다. 사실 병자호란도 부분적으로는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는데, 병자호란 당시 청군 몽골팔기 소속으로 참전한 내몽골 차하르인들이 숭덕제의 경고를 무시하면서까지 조선인들을 약탈하였기 때문이다.[42] 정확히는 러시아 극동 일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