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니엘여자고등학교
1. 개요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에 소재한 사립 일반계 여자고등학교. 부산광역시의 평준화 고등학교 중에서는 학급수와 정원이 가장 작은 학교로 알려져 있으며 1995년까지 오랫동안 야간제 전용학교로 운영되다가 1996년 주간 승격 늦은 시기인 1999년에 평준화 되면서 부산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평준화 지정된 사립학교이기도 하다. [3][4]
2. 역사
2.1. 학교 연혁
2.2. 역대 교장
3. 교훈 및 상징
* 출처 : 브니엘여자고등학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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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학교 특징
부산에서 가장 종교색[5] 이 강한 고등학교중에 하나이자, 실질적으로는 1975년에 개교한 나름대로 유서 깊은 학교로 같은 4학군의 학산여자고등학교(1985년), 대명여자고등학교(1986년), 사직여자고등학교(1987년) 보다 역사가 길고, 부산중앙여자고등학교(1973년)와 비슷한 시기[6] 에 출발했으나 이정도의 역사를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 학부모들 사이에서의 인식은..... 사실은 1975년 개교 당초에는 연산동 브니엘중학교 교실을 빌려서에 2부 형태(학적관리는 브니엘고등학교가 담당)로 운영되던 직업과 학업을 병행하는 학생들을 위한 야간제 전용 학교[7] 였고 이는 1995년 까지 20년간 이어졌다. 그덕분에 그 20년간 대학 진학률은 거의 없다 시피 했는데, 1990년대 초반 기준으로 대학 진학 희망인원이 100만명(학력고사 응시자 + 재수생) 이상 이었는데 대학 총정원이 20만명 밖에 안되었을 정도로 대학 진학문이 워낙 좁다보니 아무리 야간자율학습 까지 빡세게 돌리던 날고 기던 유수의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도 절반 이상이 대학 진학에 실패할 정도였는데, 연합고사에 붙어야 들어갈 수 있었던 일반계 고등학교의 입결 보다 한참 낮았고 일반계 고등학교 보다 수업시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하나마나한 몇시간 짜리 수업을 하는 야간제 전용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대학으로 진학시킬 확률은 예체능 계열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대학 진학률이 없다시피 하던게 정말로 당연한 일이었다.[8] 재단에서는 1970년대 후반 부터 학교 신축 이전을 통해 평준화 일반고로 승격하려 했으나 재단 문제로 여러차례 이전 예정 부지가 바뀌는것과 동시에 이전이 계속 지연되었고, 그 20년이라는 기간동안 학교가 제대로 관리 되지 못해서 연산동 지역에서 인식이 썩 좋지 못했었다. 1989년에는 산업체 부설학교인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의 개교로 인한 수요잠식과 생활수준의 향상 및 주간 여자고등학교가 많이 생기면서 야간부 학생수의 급감으로 5학급으로 감축되기도 했었다. 뒤늦게서야 1996년에 금정구로 이전하여 주간 특수지 고등학교로 승격되면서 다시 6학급으로 복귀, 1999년에 평준화 고등학교로 승격된 이후로는 1975년부터 1995년까지의 20년간의 역사를 사실상 흑역사화 하였고[9] 개교 년도를 1996년으로 새로 정했지만, 그래도 동래구, 금정구, 연제구 일대의 나이 좀 있으신분들에게는 연산동 시절의 이미지가 각인이 많이 되어서[10] 주간 승격 이후에도 학교 재단 사태와 더불어 연산동 시절의 이미지 때문에 학교가 성장을 하지 못했고, 재단에서도 평준화 승격 직후 중요한 시기에도 학교에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수수방관 했으며 2000년대 중반 신재단으로 교체된 이후에는 대놓고 학교를 탄압하는등[11]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비선호 학교였지만 그래도 2000년대까지만 해도 부산 4학군의 파이가 커서 전교생이 700명 내외였고 이때 학교를 키웠으면 학급과 학생수를 많이 늘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반격의 여지가 있었으나 재단에서 학교를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2010년대 들면서 학생수가 급감하여 2017년 부산에서 가장 학생수가 적은 평준화 일반계 고등학교로 한학년당 100~120명 정도에 전교생이 354명에 불과하여 전교생이 모두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내며 가족같이 지낸다고 하지만, 안그래도 대입에서 내신 비중이 높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적은 학생수로 인한 내신의 불리함(특히 이과)으로 인하여 학생들이 단체로 전학을 가는 등 유출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극단적으로 2015년 입학생은 137명이 들어왔으나 그 시기에 브니엘학원 사태의 여파로 관선이사가 파견되면서 입학하자 마자 7명이 전학갔고, 2학년으로 진급하면서 단체 전학으로 107명으로 감소, 3학년으로 진급하면서 105명으로 감소하여 입학생 137명 중에서 전교생의 23%에 달하는 인원인 32명이 감소 되었다. 현재는 저출산 크리티컬과 적정규모 학교 육성 정책 때문에 학교 자체의 존폐에 먹구름이 드리운 상황이며 관선이사 체제인 현재로써는 풍전등화인 상황.[12] 혹여나 정이사 체제가 된다면 향후 정이사들이 어떻게 하나에 따라 학교의 미래가 결정될것으로 보인다.
5. 학교 시설
6. 학교 생활
6.1. 학생회
6.2. 주요 행사
6.3. 동아리
- 동아리 1
- 동아리 2
6.4. 학과
(나머지 일과, 방과후 프로그램) 등은 이곳에 작성하시기 바랍니다.
7. 운동부
학교가 분리되기 이전인 1968년에 여자 테니스부가 설립되어서 불과 5년만인 1973년에는 국제 대회에도 우승하는 이변을 일으키는 등 단기간에 테니스의 강호로 떠올랐으며, 1975년 2부 브니엘여고로 개편된 이후에도 계속 운영되었다. 1970~1980년대 당시 부산지역 여자 테니스부의 강호로 정말로 유명했고 최고 전성기때는 전국구로 명성을 떨쳤다. 그 덕분에 브니엘여고 자체는 인식이 썩 좋지 못했음에도 테니스부 만큼은 정말로 알아줬었다.#[13] 얼마나 오죽했으면 많은 사람들은 브니엘 하면 브니엘남고의 SKY대, 의치한 진학률 아니면, 브니엘여고의 테니스부를 연상했을 정도였고 브니엘여고 테니스부는 브니엘여고의 알파이자 오메가 였었다. 하지만 학교가 이전을 추진할 무렵에 테니스부가 쇠락하기 시작하더니 금정구로 이전한 이후에도 수년간은 운영되다가 1990년대 후반 브니엘학원 사태가 터지면서 30년의 역사를 뒤로한채 재정난으로 갑자기 해체되었다. 학교 재단 자체가 부도났을 지경인데 테니스부를 도저히 살릴수 없었을 것이다. 워낙 갑자기 해체되어서 정확히 언제 해체되었는지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이후 정선재단이 들어오면서 자칭 정상화를 주장했을때 테니스부의 부활이 예상 되었으나, 정선재단 인사들은 의치한이나 자사고에만 관심있다보니 의치한 진학률에 하나도 도움이 안되는 여자 테니스부를 부활시킬 생각을 안하면서 아예 관뚜껑에 못을 박았다. 학교 자체가 학생수가 적다보니 테니스부라도 부활했으면 학생수를 조금이나마 보태줬을 것이고, 그때 테니스부가 부활했으면 2018년 지금쯤 다시금 재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8. 출신 인물
9.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9.1. 버스 노선
지하철은 그런거 없다. 구서역, 장전역으로 가야 한다.
10. 사건·사고
11. 기타
- 학교 연혁이 서울의 대일관광고등학교(구 정릉여자상업고등학교)와 거의 유사하다. 초기에는 같은 재단의 중학교(브니엘여고:브니엘중, 정릉여자상업고등학교:은주중) 건물을 빌려서 개교한 야간제 전용학교라는 점도 그렇고, 주간으로 운영되던 일반계 남자고등학교에 2부 형태로 개설되었다는 점(브니엘여고:브니엘고, 정릉여자상업고등학교:대일고)도 거의 유사하다. 그리고 그 건물을 빌려썼던 중학교가 폐교되었다는 점도 너무 비슷하다. 다만 정릉여자상업고등학교는 이후에 주간으로 개편되어도 실업계로 계속 유지되어서 지금의 대일관광고등학교도 특성화 고등학교로 남아있지만, 브니엘여자고등학교는 주간으로 개편되면서 특수지 일반고가 되었다가 이후에 평준화 일반고등학교가 되었다는것이 가장 큰 차이점. 그리고 대일관광고등학교는 2부 야간제 전용 고등학교 시절도 학교의 연혁으로 포함해주고 있으나, 브니엘여자고등학교는 2부 야간제 전용 고등학교 시절의 역사를 아예 지워리고 개교 기념일을 1996년으로 완전히 고쳐버렸다.
- 브니엘 4총사 학교 중에서는 가장 상태가 위태로운 학교이기도 하다. 평준화 승격 이후로 학교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데다가 재단에서도 학교가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신경도 쓰지 않고, 저출산, 금정구 지역의 고령화, 갈수록 내신 비중이 높아지는 대학교 입시, 학교 총량제, 부산광역시의 적정규모 학교 육성 정책 등등으로 퇴출도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관선이사는 학교를 통폐합할 권환이 없기 때문에 2017년 현재 까지는 어찌어찌하여 학교가 유지되는 상황. 이 학교의 운명은 이후 정이사의 손에 달려있지만, 이후 학교를 인수하게 되는 정이사가 학교의 존치 보다는 100억대의 통폐합 인센티브를 택하게 된다면..... 부산에서 더 이상 인가가 나올 일이 없을듯한 평준화 사립학교 TO를 무능한 사학재단이 이렇게 허비하는걸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그것도 부산에서는 학군 수요로 인기있고 구서여자중학교 버프로 여아 키우기 좋다는 소리 듣는 금정구 구서동 소재 일반계 단성 사립 고등학교라는 천혜의 조건이고, 한때는 대구광역시 수성구와 비교되던 4학군 지역인데 말이다. 오히려 4학군 + 여고 + 적은 학생수 때문에 수시 위주의 현행 대입 체계 하에서는 내신 지옥으로 지역내에서 유명하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부산시 교육청은 2021년 까지 당장 3년 이내에 고등학교 2개를 폐교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지만, 다행히도 관선이사 파견 때문인지 1차 통폐합 대상은 피하였으나 2021년 이후.. 아니 정이사 선임 이후의 상황은 장담할 수 없다.[16] 다만 현재로써 이 학교를 살릴 방법은 금정구 학군내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에다가 너무나도 적은 학생수에 내신 따기 어렵다보니 학생들의 기피로 인하여 현재의 위치에서 무리일듯 하고, 일광신도시나 명지국제신도시 같은 고등학교 신설 요구가 꾸준히 제기되는 신도시 지역으로 신축 이전을 해서 학생수와 학급수를 늘리는 방법 외에는 사실상 없어 보이지만 신도시로 이전하는 비용만 해도 최소 수백억대라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 게다가 이전을 추진한다고 해도 울산 홍명고 사례 처럼 그쪽 지역에서 받아주지 않을 우려도 있으니...
- 비선호 학교이기는 해도 2000년대 중반까지는 그럭저럭 잘 돌아갔었다. 평준화 전환 당초부터 기피학교라서 학급수, 학생수가 타 학교 보다 적기는 했어도 2000년대 초반 까지는 내신을 절대평가 수우미양가 방식으로 매겼기에 내신에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2000년대 중반 들어 노무현 정부때 내신/수능 9등급제를 시행하면서 내신도 상대평가로 표기하여 학생수가 적은 학교 특성상 약간의 불리함이 우려될 수 있었으나 그때만 해도 대학입시가 정시 위주라서 기피학교기는 해도 크게 문제될 일이 없었다. 오히려 그때는 정시에서 강세를 보이면서 브니엘 계열 고등학교 3개교 중에서 가장 준수한 실적을 내기도 했었고 지역내에서도 의외로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었다. 사실 그때는 학생수도 학년당 250명 정도로 제법 있었기 때문에 다른 학교 보다 규모가 작은 18학급이라 해도 내신 산출에 지장갈 수준이라고 볼 정도는 아니었다고. 결정적으로 2006년에 구서 롯데캐슬 골드라는 매머드급 아파트 단지가 입주하면서 브니엘여자고등학교에도 좋은 학생수급 풀을 갖추고 재단이 교육환경 투자, 홍보 등등으로 전력투구 하고 구서동 학부모들에게 계속 구애를 했더라면 충분히 학생수와 학급수를 늘리면서 성장할 기회가 찾아왔지만, 당시 학교를 인수한 정선재단의 어리석음으로 기회를 잡지 못하고, 2010년대 이후로는 대학 입시가 내신이 중요한 수시 위주로 바뀌어 가는데도 재단의 먹튀 수준의 무관심에 잦은 관선이사 파견을 당하면서 안그래도 좋지 못한 이미지가 시궁창화 되어버리고 바뀌어 가는 대학입시에 적응을 하지 못하다보니 기피 학교를 넘어서 상대평가 9등급제 내신의 불리함으로 이제는 학생의 유출도 심각해진 상황이 되어버렸다.
- 부산 4학군 여고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교복을 쓰는 학교로 교복이 부활한 직후인 1980년대 후반 부터 쓰이고 있다고 하며, 부산 4학군 사립 여고 중에서는 구형 교복을 쓰는 둘 밖에 없는 학교. 덕분인지 지금의 한국 교복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치마 뒤쪽의 주름이 있으며, 특유의 원색적인 초록색으로 인하여 30여년동안 시금치 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고 있다. 더군다나 같은 재단인 브니엘예술고등학교 교복이 무난한 디자인이라서 비교되기도.... 다만 연산동 시절에는 평준화 적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금치라는 별명은 덕○여고, 부○여상 같은 근처 고등학생이나 중학생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조롱의 의미로 불리웠지만 구서동 이전 이후에는 평준화로 전환되어 타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조롱의 의미는 없어지고 자조적인 뜻으로 쓰이고 있는데, 그때 시금치라는 별명을 붙인 이들도 지금쯤 자녀들이 고등학교나 심지어 대학교에도 진학했을 나이가 되었을듯... 시금치라는 별명이 있기 전 검은 교복 쓰던 시절에는 야순이라는 별명도 있었다고 한다.
- 2010년에 동래여자고등학교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전환되면서 브니엘여자고등학교가 금정구 대표 여자고등학교 타이틀을 얻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한번 더 주어졌으나, 어리석은 정선재단은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에만 정신이 팔려서 그 기회를 주워가지도 못했다. 이때 제대로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놓쳐버린 것이다. 그로 인하여 구서동에 거주하는 일반계 여고를 원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1지망으로 교통이 편한 공립여고인 동래구의 부산중앙여자고등학교를 쓰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었으며, 브니엘여자고등학교에 배정되는게 두려웠던 나머지 서동의 공립여고인 금정여자고등학고로 안전빵으로 1지망 쓰는 경우도 있었다. 그 덕분에 동래여자고등학교 자사고 전환으로 인한 반사이익은 중앙여자고등학교와 금정여자고등학교가 상당수 가져갔을뿐,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브니엘여자고등학교는 반사이익을 제대로 주워먹지 못했었다고.... 기회를 여러번 줘도 못가져가는걸 보면, 정선재단이 얼마나 무능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때 정선재단이 전력투구 해서 경기도 안양시의 신성고등학교 사례 처럼 브니엘여자고등학교를 좋은 일반계 고등학교로 키웠더라면 정선재단이 이후에 부산판 홍복재단 이라는 굴욕적인 별명과 함께 불명예 스럽게 퇴출당하는 일도 없었을테고, 브니엘여자고등학교를 비롯한 브니엘 3총사 고등학교들이 이정도로 망가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사학 정상화 실력을 인정받아 서남대학교 인수전에서 승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다못해 서남대학교 홍복재단도 서남대학교는 끔찍할 정도의 비리사학이었던 반면, 대광여자고등학교 만큼은 명문으로 키웠었다.
- 1980년대 사직여자고등학교가 개교하기 훨씬 전에 브니엘고등학교, 브니엘중학교와 함께 사직동 일대로 이전하려 했었다는 구재단 측의 썰도 있다. 당연히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실현만 되었어도 지금과는 학교 위상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 연산동 시절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주역들 중에 일부가 재학했었던 학교였다. 1987년 7~9월의 노동자 대투쟁 당시 부산지역에서는 태광산업 구서동 공장에 근무하던 야간제 여고를 다니던 어린 여공들이 1987년 7월 22일날 들고 일어나면서 부산지역 노동자 대투쟁의 시발점이 되었는데, 이들 중에는 동래여자상업고등학교(현 삼정고등학교) 야간이나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 야간 뿐만 아니라 연산동 야간제 브니엘여고 재학생들도 제법 많이 있었다고... 그리고 이때는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는 아직 개교도 하기 전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금정구로 이전하고 주간 학교로 승격한 이후로 연산동 야간제 여고 시절의 연혁을 아예 흑역사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개교한지 꽤나 오래된 학교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제대로 된 동문회가 존재하지 않는다.[17]
- 2019학년도 1학년 기준으로 결원이 심각하다. 편제 정원은 120명이지만 적지 않은 학생들이 적은 학생수로 인한 내신의 불리함, 재단 문제 등등으로 일부 1학년 학생들이 배정되자 마자 전학을 가면서 현재 1학년 재학생수는 100명 정도. 전출로 20명의 결원이 발생하였는데, 편제 정원 상 6학급 120명인걸 생각하면 불과 1학기 내에 1개 학급 규모의 인원이 전출을 가버린 셈이다. 2019년 9월 들어서는 1학년들이 추가로 전학을 가면서 1학년 재학생수가 91명이 되는 바람에 1학년 기준으로 충원률은 75% 정도에 불과하며 1학기 동안 1학년 중에서 25%가 전학을 가버린 셈이다. 결국 총 정원이 300명선이 붕괴된 298명으로 부산에서 평준화 일반계 고등학교 중에서 최초로 300명대를 넘어서 200명대로 진입하였다. 참고로 부산에서 폐교 권고 기준이 고등학교가 300명 이하인데 그 폐교 권고 기준에 들어가버린 것이다. 다만 관선이사는 폐교를 의결할 권환이 없기 때문에 학교 자체가 유지되고 있을 뿐. 일반적으로 다른 사립학교들은 관선이사가 파견되었다는건 학내 비리나 분규가 심하다는걸 정부에서 공인한 꼴이다보니 어떻게든 관선이사 체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거나 지속적으로 관선이사 철수를 요구하는데, 이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여기는 관선이사가 파견되어도 관선이사 체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기는 커녕 오히려 관선이사 체제에 안주하려는걸로 보인다.
[1] 부산광역시 교육연표 참고[2] 현재는 재단 문제로 인하여 교육청에서 파견한 관선이사가 운영 중이다. 기업에 비유하면 법정관리 중인 상황.[3] 정말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한때(연산동시절) 브니엘여자고등학교와 라이벌로 엮이던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가 브니엘고등학교 이전으로 인한 연제구 일반고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남녀공학 평준화 사립고로 전환을 하려고 했으나 이쪽의 경우는 연제구 학부모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고...[4] 이 기록은 2019년 강서구의 경일고등학교가 평준화로 전환 예정이면서 20년만에 깨지게 되었다.[5] 1975년 부터 1986년 까지는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1986년부터 1999년 까지는 대한예수교장로회(브니엘) 소속 이었다가, 1999년 브니엘학원 사태 이후로는 특정 교단 소속은 더 이상 아니게 되었고 성향은 다르지만 김길창계 재단처럼 장로교 계열 초교파로 운영중이다.[6] 부산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와도 3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7] 대학교로 치면 서경대학교의 전신인 주간반이 없는 야간제 전용대학 국제대학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다만 국제대학도 당시에는 대학 진학문이 워낙 좁던 시절의 대학이었기 때문에 야간제 전용이기는 해도 입결 자체는 높았다는게 가장 큰 차이점.[8] 그래도 생산직에 한해서 졸업생들 대다수는 취업은 잘 되었는데 이는 3저호황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지방 사립대 졸업자들 보다도 더 좋은 일자리를 얻는 경우가 많았었다. 이당시만 해도 대학 진학률이 20%대에 불과한 수준이다보니 대졸자 수가 적었고 그러다보니 고등학교 졸업장만 해도 스펙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브니엘여고 야간반만 나와도 태창기업, 경남섬유는 물론이고 심지어 태광산업이나 반도상사로 취업되는 경우도 많았었고 뒤늦게 정신 차리고 정말로 이악물고 열심히 공부해서 제1금융권인 은행으로 취업한 경우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9] 유사한 경우로 전문계 고등학교였던 부산정보여자고등학교에서 2007년에 평준화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하면서 전문계 고등학교 시절의 역사를 지워버린 부산백양고등학교가 있다. 다만 1999년 이전 까지의 구재단 시절에는 1996년 금정구 이전 직후에도 연산동 시절의 연혁도 학교의 역사로 인정해줬으나 1999년 이후로 평준화 되고 구재단이 퇴출되면서 흑역사화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8년 졸업식 안내문에서 '''구서동 동산으로 이사하던 순간''' 이라는 언급이 있는걸로 봐서 학교가 이전하기 이전의 연산동 시절을 완전히 부정하는것도 아닌듯 하다. 1995년 6월에 발표된 1996학년도 신설예정 학교 일람에도 브니엘여고 보다도 훨씬 늦게 계획되었던 대진전자통신고는 있어도 브니엘여고는 빠져있는걸로 봐서 부산 교육청에서도 완전신설이 아닌 이전으로 보고 있다는 뜻.# 다만 위의 목록에서 브니엘예중은 빠져있는데 브니엘예중은 1개월 후인 1995년 7월에 갑자기 개교가 확정되었기 때문이다.[10] 일대 학부모들 사이에서 기피학교로 낙인 찍힌 주된 원인으로, 지금의 학부모 세대가 고등학교 재학중이던 시절의 연산동 브니엘여고의 인식은 바이킹여상으로 불리우던 학교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바닥을 기었다고 한다. 금정구로 이전하고 1999년에 평준화 이후에는 연산동 시절에 비하면 천국 수준으로 좋아진편. 평준화 이전에는 부산 전역의 비행 청소년들을 끌어모았으나 평준화 이후에는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서울대 진학자나 의치한 진학자도 나오고 이후에 사법고시 합격자도 처음으로 나왔을 정도로 상전벽해로 변했다. 차라리 구서동으로 이전하여 평준화로 승격될 무렵에 당시 학군이 좋기로 소문난 구서동의 이미지를 빌려서 구서고등학교 혹은 구서여자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꾸는게 나았을 것이지만 설립자가 고집도 너무 강하고, 사상이 워낙 특이하다보니... 2017년 현재도 구서고등학교 혹은 구서여자고등학교라는 그 좋은 교명은 브니엘 학원이 이전해 오면서 공립 구서고등학교 개교가 취소 되는 바람에 공석으로 남아있다.[11] 그리 넓지도 않은 브니엘여자고등학교 운동장 부지를 뺏아서 브니엘국제예술중 신설에 쓰는 등 못할 짓을 많이 했다. 그 브니엘국제예술중 건물도 원래는 이렇게 지으려고 했다고.. #[12] 정작 학교를 이런 상황으로 만들고 간 장본인들은 의대를 노리고 서남대학교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결과는 시원하게 탈락. 의대를 운영하는 난이도는 고등학교를 운영하는 난이도와는 비교가 불가능하니...[13] 이런점에서 과거 광성공고 탁구부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14] 1996년 이후 무려 20년(!)만에 처음으로 들어온 '''배차간격 1시간 이내의 정규 노선'''이다.[15] 비정규 노선으로 등하교 시간 한정으로만 브니엘고등학교까지 운행.[16] 최근 지구촌고등학교와 금성중학교의 폐교가 결정되었고 2019년부터 근처에 있는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과 신대원의 폐지가 결정되면서 최근들어 부산지역의 사학들이 전체적으로 폐교 및 구조조정 기조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17] 반면 같은 1975년에 개교한 삼성여자고등학교는 총동문회가 존재하고 학교 홈페이지에 자랑스러운 동문이라고 목록도 작성되어 있다. 당장 같은 4학군의 개교 시기가 1년 밖에 차이가 안나는 동인고등학교도 총동문회가 있고, 수년 늦게 개교한 동천고등학교도 총동문회가 있다는걸 생각하면 굉장히 특이한 사례다. 그리고 야간제 전용 학교라도 1975년 기준으로 여성이 야간제 고등학교라도 나오면 지금의 전문대학~4년제 대학 졸업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당시에는 중졸 학력도 굉장히 흔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