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삼국지)
士仁/傅士仁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 삼국시대의 인물. 자는 군의(君義). 유주 광양군 사람으로 형주 공방전 당시 오에 투항했다. 위와 오에서도 조롱을 받았다고 한다.
《정사 삼국지》 <관우전>에는 부사인으로 기록되었고 《삼국지연의》도 이를 따랐지만, 정사 전체적으로는 사인으로 쓴 용례가 더 많아 현대에 나온 역사서적들은 거의 사인으로 쓴다.
다만 호삼성은 사인을 칭할 때 부라고 불러 호삼성은 부사인이 이름이라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삼국지집해》를 보면 역사학자들도 이를 가지고 논의한 것을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부씨는 실존하는 성으로, 동시대의 부융, 부첨 부자 등이 대표적이다. 남성 세 글자 이름도 있기는 했다. 예를 들어 주불의, 주만세 등. 여성 이름으로는 왕원희, 보연사, 손노반, 전혜해, 위화존 등 많다.
관우 수하의 부하 장수로 형주 공방전 당시 관우가 북상하기 직전 미방과 함께 선봉이 되었다. 관우전에는 관우가 그들을 업신여겼고 관우가 출군한 이래 미방, 사인은 군수물자를 공급했으나 그를 돕는데 전력을 다하지 않자 관우가 ‘돌아가면 응당 죄를 다스릴 것’이라 하니, 미방과 사인은 모두 두려움을 품고 불안해했기에 손권의 꾀임에 영접했다고만 나오는데 '''여몽전을 보면 내역이 조금 다르다.'''
여몽전에는 여몽이 관우의 부재를 틈타 형주에 쳐들어오자 처음에는 사인이 '''공안에서 막아 지키니''' 여몽이 우번에게 명해 그를 설득하게 했는데 '''오히려 사인이 이를 만나기를 거부했다.''' 단순히 반역자의 이미지라고 보기엔 애매한 부분이고 분명 사인 역시 처음에는 수비를 맡아 성을 지키려고 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우번이 '우리가 왔는데 척후도 없고 봉화도 오르지 않았으니 그쪽에 배신자이 있었다는 거쯤은 알 수 있지 않소? 어차피 여몽장군이 남군으로 육로를 끊고 살길이 막혔는데 여기서 버텨봐야 그대의 가족만 망하고 싸워도 살길이 없으니 항복하시오'라고 협박 편지를 보내니 사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투항했다고 한다. 우번은 사인의 투항 이후 이는 휼병[1] 이니 사인은 남군으로 데러가고 공안에 병력을 주둔시켜야 한다고 했고 여몽은 그 말을 따랐다. 이후 기록에서는 미방이 사인을 '''보자마자''' 항복했다고 하는데 오록에는 손권과 내통한 주체가 군수물자 다 태워먹고 관우에게 질책을 들어 두려움을 품은 미방으로만 묘사되어 있다. 그러니까 같은 꾀임이라도 '''사인은 어쩔 수 없이 항복한 거고 미방은 대놓고 항복할 생각을 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이후 형주를 잃은 관우는 갈 곳 없는 상태에서 맥성을 나섰다가 잡혀서 처형된다.
기록으로 보면 연의와는 반대로 미방보다 오히려 나은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미방은 항복할지 말지 끝까지 갈등하는 연의와는 다르게, 항복 당시 이미 손권과 내통했다는 기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후 그나마 기록이 존재하는 미방과는 달리 사인이 어떻게 되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쩌리 취급 받다 죽었을지, 적당히 부를 누리다 죽었을지는 알 수 없다.
연의에서는 우번과 친구라서 우번이 쉽게 투항시켰다고 하지만 사인은 유주 광양군 사람[2] 이고 우번은 양주 회계군 여요현 사람이다. 유주는 북방이고 양주는 남방에서도 구석에 있는 곳인데 이렇게 북쪽과 남쪽 사람이 그렇게 쉽게 교류했을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어쨌든 저항없이 쉽게 항복한 것만으로도 더럽게 욕을 처먹을 판에 '''스스로 발벗고 나서서 미방을 항복하게 설득했다'''. 다만 이건 연의에서의 이야기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후일 유비가 극대노하여 무려 70~75만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이릉에 쳐들어왔을 때, 유비군의 기세가 흉흉하여 오나라가 위태위태하자 겁을 먹었는데 때마침 미방이 "다시 유비에게로 돌아가자"고 권유하자 그말에 넘어갔다. 사실 사인은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지만 미방의 내 여동생은 촉제(유비)의 부인이었고 (여동생의 친아들은 아니지만)아두(유선) 태자는 내 조카니 용서해 줄 것이야 한 마디에 마음을 돌렸다.[3] 그러나 용서받기에는 지은죄가 너무나 무거웠기에[4] 유비는 이들이 오자마자 곧바로 뼈와 살.... 아니 머리와 몸통을 분리시켜버렸다. 그러나 이 기술은 연의 한정으로, 그가 이릉대전 당시에 유비에게 사형당했단 기록도, 항복했단 기록도 없다.
연의에서는 미방과 함께 쌍으로 배신자로 미움을 받는 인물이지만 여몽전을 감안하면 오히려 '''진짜 배신자'''인 미방 때문에 덩달아서 동급 취급 받는 장수라고 볼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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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우번이 나타났을때 처음에는 멋있는 척 설득하려말라고 외치나 곧 현실을 깨닫고 항복한다.
창천항로에서도 잠깐 등장하는데 장사꾼으로 위장해 성에 접근한 여몽을 단번에 알아챘다가[5] 그만 이에 열 받은 여몽에게 팔이 잡혀서 이리저리 휘둘러진다. 창작물 중에선 이 작품에서의 사인이 가장 대우가 좋은데 여몽의 무력에 털리는 모습은 보이지만 결국 배신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범강, 장달과 함께 촉빠들에 의해 시작하자마자 바로 처형당하는 쓰레기 장수.'''[6]
삼국지 시리즈에는 최하위 무장 중 하나로 등장하지만 그래도 백하팔인까진 아니다. 삼국지 13까지를 기준으로 삼국지 4를 제외한 전 시리즈에 개근했다. 정사에서 더 비중있게 다루는 반준보다도 어쩐지 더 취급이 좋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41/무력 63/지력 38/정치력 23. 제사, 몽충을 가지고 있긴 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42/무력 61/지력 28/정치력 19/매력 12로 총합 162에 특기는 화시뿐.
삼국지 11에선 바이킹스러운 투구를 쓰고 나오나 능력치는 여전히 허접하다.
삼국지 12에서의 능력치도 당연히 쓰레기이며 일러스트는 뒷짐을 진 채 얼굴에다 손가락을 갖다대고 있다. 미방의 일러스트와 이어지는 걸 짐작할 수 있는데, 미방의 일러스트가 군수물자를 태워먹어 놀라거나 쳐들어온 오나라 병사들에게 당황하는 장면 둘 중 하나로 추정되기에 사인 역시 미방과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형주 공방전 이벤트 발동 조건이기에 '''이 녀석을 죽여야 촉한은 관우, 관평, 주창이외에도 왕보, 조루 등 여러 유능한 장수들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미방도 쓰레기이지만, 미방을 처단하면 그럭저럭 굴릴만한 내정요원이기도 한 미축과 혐오무장이 된다. 반면 사인은 형제 관계같은 인연이 없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이 녀석만 죽여도 이벤트는 발동되지 않는다. 연의 이미지가 게임에 많은 영향을 비쳤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부분. 유비군으로 플레이 할 때 시작 즉시 곧바로 사인을 참수하여 저 세상으로 보내주자.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46/무력 63/지력 37/정치력 24. 특기는 연전 1 단 하나. 전수특기도 당연히 연전으로 전법이 창공강화였으나 PK에서 대도발로 변경되었다. 군신포위망 시나리오를 할 때 번성 공방전 이벤트가 발생하기 때문에 관우, 관평, 주창 등을 잃고 싶지 않다면 유비군으로 플레이 할 때 시작 즉시 곧바로 사인을 명성 떨어질 거 각오하고 참수하여 저 세상으로 보내주자.[7]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43, 무력 61, 지력 37, 정치 19, 매력 17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3, 무력이 2, 정치력이 5 하락했다. 개성은 소심, 우유, 주의는 아도, 정책은 안행강화 Lv 2, 진형은 안행, 전법은 화시, 친애무장은 미방, 우번, 혐오무장은 관우다.
삼국지 공명전에서는 오나라에 항복시 미방은 사인과 달리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여 여몽#s-2이 "그래도 미방은 염치라는 것이 있군. 그에 비해 부사인이라는 놈은..." 라는 식의 평을 받는다.
사인은 처음부터 미방에게 슬슬 약한 소리를 하다가(미방은 당연히 거절했다.), 항복을 권하는 사자가 오자 "항복을 하면 살려준다는게 사실이냐! 아니, 사실입니까?"라며 대놓고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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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조조전 Online에서는 여몽전, 육손전, 관우전(하) 등에서 적으로 등장하며, 병과는 창병. 능력치는 무력 65, 지력 53, 통솔 38, 민첩 81, 행운 63. 성격은 요설.
여몽전에서는 형주 진공 작전으로 여몽이 무릉성을 공격하면서 원군은 오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자신들이 어떻게 일사천리로 왔겠냐면서 배반자가 있는 것처럼 의심하게끔 말하자 오군에게 투항한다. 육손전에서는 오군이 봉화대를 모조리 함락하자 강릉에서 미방과 함께 있다가 육손이 오면서 그 사실을 언급하고 항복을 권유하는데, 미방이 망설이자 관우가 봉화대 함락 소식을 알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 하고 말해 미방을 움직이게 하고 미방과 함께 오군에 투항한다.
관우전(하)에서는 미방이 오나라에 항복하도록 권유하는데, 선택지에 따라 미방이 수락하기도 하고 칼을 뽑아들고 거절당하기도 한다. 관우가 공안으로 접근하자 성문을 열어주지 않고 병력으로 위협하면서 오지 못하게 막는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아라카와 언더 더 브리지의 촌장으로 등장한다.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는 대대로 클론 무장, 역시 역사대로 관우를 배반하는 이벤트 때문에 촉빠들의 영원한 표적 중 하나로 활약했다. 충격적이게도 유비가 서주를 다스리고 있을 때부터 유비군으로 나온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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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삼국무쌍 블라스트에서 정식 무장으로 참전했다. 그것도 촉나라 무장으로. 전체적으로 어리숙해 보이는 일러스트가 특징.
진삼국무쌍7에서는 오군의 번성 전투에서 미방과 더불어 여몽의 생존 조건으로 걸려있다. 전투가 시작되어 미방과 부사인이 지키고 있는곳의 문을 열면 이들이 도망치는데 그전에 이들을 격파하는게 조건. 그런데 하필 탈출구가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 존재하기에 이들이 빛의 속력으로 도망가는 만큼 조건 달성이 무척 까다롭다. 특히 부사인은 방패병들이 지키고 있어 방패병들이 가로막아 부사인을 때리기 힘들고 공격내성이 없는 게임 조건상 방패병들의 슬라이딩 한 방에 경직이 걸려 그틈에 부사인이 도망쳐 버리기에 정말 스트레스 받는 조건이다. 때문에 오군의 입장에서도 공공의 적으로 찍혀버렸다. 괜히 적당한 난이도로 플레이하려다가 스트레스 받지 말고, 최대한 난이도를 낮추고, 최대한 화력 높은 방천극 같은 무기로 빠르게 때려잡아버리자.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한 말, 삼국시대의 인물. 자는 군의(君義). 유주 광양군 사람으로 형주 공방전 당시 오에 투항했다. 위와 오에서도 조롱을 받았다고 한다.
2. 이름 논란
《정사 삼국지》 <관우전>에는 부사인으로 기록되었고 《삼국지연의》도 이를 따랐지만, 정사 전체적으로는 사인으로 쓴 용례가 더 많아 현대에 나온 역사서적들은 거의 사인으로 쓴다.
다만 호삼성은 사인을 칭할 때 부라고 불러 호삼성은 부사인이 이름이라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삼국지집해》를 보면 역사학자들도 이를 가지고 논의한 것을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부씨는 실존하는 성으로, 동시대의 부융, 부첨 부자 등이 대표적이다. 남성 세 글자 이름도 있기는 했다. 예를 들어 주불의, 주만세 등. 여성 이름으로는 왕원희, 보연사, 손노반, 전혜해, 위화존 등 많다.
3. 정사
관우 수하의 부하 장수로 형주 공방전 당시 관우가 북상하기 직전 미방과 함께 선봉이 되었다. 관우전에는 관우가 그들을 업신여겼고 관우가 출군한 이래 미방, 사인은 군수물자를 공급했으나 그를 돕는데 전력을 다하지 않자 관우가 ‘돌아가면 응당 죄를 다스릴 것’이라 하니, 미방과 사인은 모두 두려움을 품고 불안해했기에 손권의 꾀임에 영접했다고만 나오는데 '''여몽전을 보면 내역이 조금 다르다.'''
여몽전에는 여몽이 관우의 부재를 틈타 형주에 쳐들어오자 처음에는 사인이 '''공안에서 막아 지키니''' 여몽이 우번에게 명해 그를 설득하게 했는데 '''오히려 사인이 이를 만나기를 거부했다.''' 단순히 반역자의 이미지라고 보기엔 애매한 부분이고 분명 사인 역시 처음에는 수비를 맡아 성을 지키려고 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우번이 '우리가 왔는데 척후도 없고 봉화도 오르지 않았으니 그쪽에 배신자이 있었다는 거쯤은 알 수 있지 않소? 어차피 여몽장군이 남군으로 육로를 끊고 살길이 막혔는데 여기서 버텨봐야 그대의 가족만 망하고 싸워도 살길이 없으니 항복하시오'라고 협박 편지를 보내니 사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투항했다고 한다. 우번은 사인의 투항 이후 이는 휼병[1] 이니 사인은 남군으로 데러가고 공안에 병력을 주둔시켜야 한다고 했고 여몽은 그 말을 따랐다. 이후 기록에서는 미방이 사인을 '''보자마자''' 항복했다고 하는데 오록에는 손권과 내통한 주체가 군수물자 다 태워먹고 관우에게 질책을 들어 두려움을 품은 미방으로만 묘사되어 있다. 그러니까 같은 꾀임이라도 '''사인은 어쩔 수 없이 항복한 거고 미방은 대놓고 항복할 생각을 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이후 형주를 잃은 관우는 갈 곳 없는 상태에서 맥성을 나섰다가 잡혀서 처형된다.
기록으로 보면 연의와는 반대로 미방보다 오히려 나은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미방은 항복할지 말지 끝까지 갈등하는 연의와는 다르게, 항복 당시 이미 손권과 내통했다는 기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후 그나마 기록이 존재하는 미방과는 달리 사인이 어떻게 되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쩌리 취급 받다 죽었을지, 적당히 부를 누리다 죽었을지는 알 수 없다.
4. 연의
연의에서는 우번과 친구라서 우번이 쉽게 투항시켰다고 하지만 사인은 유주 광양군 사람[2] 이고 우번은 양주 회계군 여요현 사람이다. 유주는 북방이고 양주는 남방에서도 구석에 있는 곳인데 이렇게 북쪽과 남쪽 사람이 그렇게 쉽게 교류했을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어쨌든 저항없이 쉽게 항복한 것만으로도 더럽게 욕을 처먹을 판에 '''스스로 발벗고 나서서 미방을 항복하게 설득했다'''. 다만 이건 연의에서의 이야기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후일 유비가 극대노하여 무려 70~75만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이릉에 쳐들어왔을 때, 유비군의 기세가 흉흉하여 오나라가 위태위태하자 겁을 먹었는데 때마침 미방이 "다시 유비에게로 돌아가자"고 권유하자 그말에 넘어갔다. 사실 사인은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지만 미방의 내 여동생은 촉제(유비)의 부인이었고 (여동생의 친아들은 아니지만)아두(유선) 태자는 내 조카니 용서해 줄 것이야 한 마디에 마음을 돌렸다.[3] 그러나 용서받기에는 지은죄가 너무나 무거웠기에[4] 유비는 이들이 오자마자 곧바로 뼈와 살.... 아니 머리와 몸통을 분리시켜버렸다. 그러나 이 기술은 연의 한정으로, 그가 이릉대전 당시에 유비에게 사형당했단 기록도, 항복했단 기록도 없다.
연의에서는 미방과 함께 쌍으로 배신자로 미움을 받는 인물이지만 여몽전을 감안하면 오히려 '''진짜 배신자'''인 미방 때문에 덩달아서 동급 취급 받는 장수라고 볼 여지가 있다.
5. 미디어 믹스
5.1.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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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우번이 나타났을때 처음에는 멋있는 척 설득하려말라고 외치나 곧 현실을 깨닫고 항복한다.
5.2. 창천항로
창천항로에서도 잠깐 등장하는데 장사꾼으로 위장해 성에 접근한 여몽을 단번에 알아챘다가[5] 그만 이에 열 받은 여몽에게 팔이 잡혀서 이리저리 휘둘러진다. 창작물 중에선 이 작품에서의 사인이 가장 대우가 좋은데 여몽의 무력에 털리는 모습은 보이지만 결국 배신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5.3. 삼국지 시리즈
'''범강, 장달과 함께 촉빠들에 의해 시작하자마자 바로 처형당하는 쓰레기 장수.'''[6]
삼국지 시리즈에는 최하위 무장 중 하나로 등장하지만 그래도 백하팔인까진 아니다. 삼국지 13까지를 기준으로 삼국지 4를 제외한 전 시리즈에 개근했다. 정사에서 더 비중있게 다루는 반준보다도 어쩐지 더 취급이 좋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41/무력 63/지력 38/정치력 23. 제사, 몽충을 가지고 있긴 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42/무력 61/지력 28/정치력 19/매력 12로 총합 162에 특기는 화시뿐.
삼국지 11에선 바이킹스러운 투구를 쓰고 나오나 능력치는 여전히 허접하다.
삼국지 12에서의 능력치도 당연히 쓰레기이며 일러스트는 뒷짐을 진 채 얼굴에다 손가락을 갖다대고 있다. 미방의 일러스트와 이어지는 걸 짐작할 수 있는데, 미방의 일러스트가 군수물자를 태워먹어 놀라거나 쳐들어온 오나라 병사들에게 당황하는 장면 둘 중 하나로 추정되기에 사인 역시 미방과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형주 공방전 이벤트 발동 조건이기에 '''이 녀석을 죽여야 촉한은 관우, 관평, 주창이외에도 왕보, 조루 등 여러 유능한 장수들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미방도 쓰레기이지만, 미방을 처단하면 그럭저럭 굴릴만한 내정요원이기도 한 미축과 혐오무장이 된다. 반면 사인은 형제 관계같은 인연이 없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이 녀석만 죽여도 이벤트는 발동되지 않는다. 연의 이미지가 게임에 많은 영향을 비쳤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부분. 유비군으로 플레이 할 때 시작 즉시 곧바로 사인을 참수하여 저 세상으로 보내주자.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46/무력 63/지력 37/정치력 24. 특기는 연전 1 단 하나. 전수특기도 당연히 연전으로 전법이 창공강화였으나 PK에서 대도발로 변경되었다. 군신포위망 시나리오를 할 때 번성 공방전 이벤트가 발생하기 때문에 관우, 관평, 주창 등을 잃고 싶지 않다면 유비군으로 플레이 할 때 시작 즉시 곧바로 사인을 명성 떨어질 거 각오하고 참수하여 저 세상으로 보내주자.[7]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43, 무력 61, 지력 37, 정치 19, 매력 17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3, 무력이 2, 정치력이 5 하락했다. 개성은 소심, 우유, 주의는 아도, 정책은 안행강화 Lv 2, 진형은 안행, 전법은 화시, 친애무장은 미방, 우번, 혐오무장은 관우다.
5.4. 영걸전 시리즈
삼국지 공명전에서는 오나라에 항복시 미방은 사인과 달리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여 여몽#s-2이 "그래도 미방은 염치라는 것이 있군. 그에 비해 부사인이라는 놈은..." 라는 식의 평을 받는다.
사인은 처음부터 미방에게 슬슬 약한 소리를 하다가(미방은 당연히 거절했다.), 항복을 권하는 사자가 오자 "항복을 하면 살려준다는게 사실이냐! 아니, 사실입니까?"라며 대놓고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image]
삼국지조조전 Online에서는 여몽전, 육손전, 관우전(하) 등에서 적으로 등장하며, 병과는 창병. 능력치는 무력 65, 지력 53, 통솔 38, 민첩 81, 행운 63. 성격은 요설.
여몽전에서는 형주 진공 작전으로 여몽이 무릉성을 공격하면서 원군은 오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자신들이 어떻게 일사천리로 왔겠냐면서 배반자가 있는 것처럼 의심하게끔 말하자 오군에게 투항한다. 육손전에서는 오군이 봉화대를 모조리 함락하자 강릉에서 미방과 함께 있다가 육손이 오면서 그 사실을 언급하고 항복을 권유하는데, 미방이 망설이자 관우가 봉화대 함락 소식을 알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 하고 말해 미방을 움직이게 하고 미방과 함께 오군에 투항한다.
관우전(하)에서는 미방이 오나라에 항복하도록 권유하는데, 선택지에 따라 미방이 수락하기도 하고 칼을 뽑아들고 거절당하기도 한다. 관우가 공안으로 접근하자 성문을 열어주지 않고 병력으로 위협하면서 오지 못하게 막는다.
5.5. 삼국전투기
삼국전투기에서는 아라카와 언더 더 브리지의 촌장으로 등장한다.
5.6. 진삼국무쌍 시리즈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는 대대로 클론 무장, 역시 역사대로 관우를 배반하는 이벤트 때문에 촉빠들의 영원한 표적 중 하나로 활약했다. 충격적이게도 유비가 서주를 다스리고 있을 때부터 유비군으로 나온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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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삼국무쌍 블라스트에서 정식 무장으로 참전했다. 그것도 촉나라 무장으로. 전체적으로 어리숙해 보이는 일러스트가 특징.
진삼국무쌍7에서는 오군의 번성 전투에서 미방과 더불어 여몽의 생존 조건으로 걸려있다. 전투가 시작되어 미방과 부사인이 지키고 있는곳의 문을 열면 이들이 도망치는데 그전에 이들을 격파하는게 조건. 그런데 하필 탈출구가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 존재하기에 이들이 빛의 속력으로 도망가는 만큼 조건 달성이 무척 까다롭다. 특히 부사인은 방패병들이 지키고 있어 방패병들이 가로막아 부사인을 때리기 힘들고 공격내성이 없는 게임 조건상 방패병들의 슬라이딩 한 방에 경직이 걸려 그틈에 부사인이 도망쳐 버리기에 정말 스트레스 받는 조건이다. 때문에 오군의 입장에서도 공공의 적으로 찍혀버렸다. 괜히 적당한 난이도로 플레이하려다가 스트레스 받지 말고, 최대한 난이도를 낮추고, 최대한 화력 높은 방천극 같은 무기로 빠르게 때려잡아버리자.
[1] 譎兵, 기만술에 의한 군사행동[2] 이 출신지 때문에 사인이 유비군의 초창기 일원 중 하나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비도 유주 출신에 거병한 곳도 유주이기 때문에.[3] 그리고 여기서 언급은 안되지만 자신의 형이자 개국공신인 미축을 봐서라도 용서해줄거라고 생각했을수도있다.[4] 이들은 군수물자도 태워먹고 병량보급도 제대로 안했고 이들이 항복한 덕에 관우와 관평이 죽었고 형주까지 넘어가 버린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용서받을수가 없는 문제다.[5] 여몽의 팔을 잡으며 '''"상인의 팔이 아니군."''' 이라고 했다.[6] 그 이유는 바로 관우, 장비를 죽게한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방도 있지만 얘를 죽일 경우 미축이 도망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정용으로 쓰기라도 하지 범강, 사인, 장달은 형제 관계 같은 인연이 없어서 촉빠들에 의해 곧바로 처형당하는 경우가 많다.[7] 전작과 마찬가지로 미방을 처형했다가는 미축이 빡쳐서 하야하므로 주의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