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원
1. 개요
대한민국의 소설가, 언론인, 관료로, 종교는 불교이다.
2. 생애
1930년 경성부 종로방 송월정(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교남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중국 상하이에서 유년기를 보내다가 1945년 8.15 광복 이후 귀국하였다.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중퇴하였다. 1950년 대한민국 공군 간부후보생 제6기를 졸업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공군 소위로 임관하여 6.25 전쟁에 참전하였다. 1955년 공군 대위로 전역한 후 동화통신 기자로 입사해 기자로 입문했고, 1956년 황순원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소설 '''암사지도'''로 문학계에 등단하였다. 1957년 조선일보, 1959년 서울신문을 각각 거치며 1960년 '''이 성숙한 밤의 포옹'''으로 이범선과 동인문학상을 공동수상하였다.
1962년 서울경제신문 기자, 1965년 서울신문 일본특파원, 1967년 동화통신 경제부장을 지낸 후 1970년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회고록을 썼고, 1973년부터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대변인으로 공직자 생활을 시작해 1976년 국무총리비서실 공보비서관을 거쳐 1979년 최규하 대통령 취임 후 공보수석비서관 겸 대변인을 지내며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 특별성명'을 발표했고, 행정개혁위원회 상임위원으로서 5공 출범 산파역에 기여했다.
1982년부터 서울신문 상임감사로 5년간 재직하고 1988년부터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을 잠깐 맡다가 이후 서울신문 사장 겸 한국신문협회장 등을 지냈는데, 1989년 파업 중이던 노조에 대해 강경 대응해 파업을 26일간 지속시키기도 했다.
1990년 서영훈 대신 낙하산 인사로 한국방송공사 사장 겸 한국방송협회장이 되어[1] 정권의 입맛에 맞게 편향적으로 경영을 하여 총파업을 유발시켰고, 1991년에는 기존에 편성된 <집중기획-바나나 비상> 대신 다큐멘터리 영화 <지구 최후의 황제, 김일성>을 긴급편성해 논란을 일으켰다. 게다가 임기 내내 노사관계에서 충돌을 자주 겪은 탓에 별 다른 특징이나 선호 프로그램을 남기지 못한 채 1993년에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자 홍두표에게 자리를 넘겼다.
그 외에도 1991년 아시아신문재단 한국위원장을 비롯해 서암학술장학재단 이사장(1992~1999), 한국낚시진흥회 회장(1993~2001), '96 문학의 해 조직위원장(1995~1996), 공연예술진흥협의회 위원장(1997~1999)을 각각 역임하였다. 2005년 7월 30일 오후 3시 25분에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숙환으로 숨을 거두었으며, 유족으로는 부인과 3남 1녀가 있다.
여담으로 동명이인의 1937년생 아나운서가 있었으며, 동양방송(RSB 라디오 서울 포함)을 시작으로 한국방송공사에서 아나운서로 재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