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섭
1. 개요
한국의 소설가.
이범선, 선우휘, 오상원, 장용학, 김성한 등과 함께 대표적인 전후 작가이다.
대표작으로 비 오는 날, 잉여인간이 있다.
2. 생애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소학교 5학년때, 과부였던 어머니가 재가해서 칠순이 가까운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친척들이 도와주지 않아 어려운 생활을 살았다.
소학교 졸업 이후 1936년, 만주를 거쳐 일본 유학 생활을 했다. 만주와 일본을 오가면서 교토와 도쿄에서 중학교를 여러 차례 옮기면서 유학을 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밑바닥 일을 했는데, 우유 배달을 하다 어떤 일본인 주인의 집에서 세계문학전집 수백 권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필리프의 '뷔뷔 드 몽파르나스', 체호프의 '아뉴타'에 감명을 받았다.
그 후 니혼 대학교에 수 년간 머물렀다. 대학생 시절에는 루소와 니체에 빠졌다. 특히 루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자신보다 10년 연상인 여인과 사랑하는 것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다 일본인 부인인 우에노 치즈코를 만나 결혼을 해서 자식까지 낳았다. 8.15 광복 이후 귀국하여 고향인 평양에 갔다. 그곳에서 38선을 넘나들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는데, 남한에서는 미군 구타죄로 범죄자가 되었다가, 고향 평양에서는 반동 취급을 받았다. 1948년 다시 월남했지만, 생활이 어려워 장사를 해서 겨우 먹고 살았다. 이후 중고등학교 교사, 잡지사 기자, 출판사 편집원 등으로 일하면서 점차 생활은 안정되어갔다. 1949년에는 그의 첫 작품인 '얄궂은 비'를 발표했다. 6.25 전쟁이 터지자 부산으로 넘어온 아내와 기적적으로 만나 다시 생활을 시작했다. 6.25 전쟁중, '문예'지에서 김동리가 '공휴일'과 '사연기'를 추천해서 등단했다. 그 후 철저하게 은거하면서 비 오는 날, 혈서, 미해결의 장, 인간동물원초, 잉여인간, 신의 희작 등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1962년에는 대중에게 가까이하고 생계를 위해 주로 신문 연재 소설을 연재했다. 그러다가 1972년, 안양 근처에서 파인애플 농장을 하다가 작가 활동을 중단하고, 아내를 따라 일본에 건너갔다.
손창섭의 소재가 불분명했을 때, 일본으로 간 것에 대해 여러 추측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한국에 대해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었다. 워낙 염세적인 그의 작품 때문에 이런 추측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일본에 나가 살겠다며 2년 먼저 떠나온 자신을 따라 홀연히 현해탄을 건너왔을 뿐' 이라고 부인했다. 단순히 아내의 해석으로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거의 25년 동안 한국 국적을 유지하다가 1998년 일본의 외국인 등록법 때문에 번거로워서 어쩔수 없이 귀화했다는 걸 보면 아내의 이 증언은 신빙성이 높다. 게다가 귀화 이름이 우에노 마사루(上野昌涉, 성은 아내의 성을 따랐다. 본의 아니게 데릴사위가 되었다.)인데, 저 마사루(昌涉)가 한국 이름인 '창섭'의 한자와 같은 것으로 보아 아예 뿌리를 거부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한국에서 살았을 때처럼 도쿄에 철저히 은거하면서, 동네 공원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자신의 글을 프린트해서 나눠주는 옆집 할아버지처럼 여생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도 1976년에는 유맹과 봉술랑을 연재하기도 했고, 1988년에는 김동리가 동인문학상 시상식에 오라는 요청을 받고 잠시 한국에 오기도 했다.
문예지인 현대문학 에선 매년 초에 우리나라의 유명한 작가들의 주소를 게재하였는데, 손창섭의 주소는 소재가 밝혀지기 전인 2009년 2월까지 滯日中(체일중; 일본에 머무름)이었다.
그러다가 2009년 2월에 어떤 국민일보 기자가 손창섭의 소재를 찾았다. 기자가 손창섭의 소재를 찾았을 때, 지병으로 몸져 누워 전혀 대화를 할 수 없었다. 때문에 그의 아내를 통해 알려지지 않았던 그동안의 행적이 밝혀졌다.
2010년 6월 23일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방민호 서울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2010년 6월 23일 오후 11시 23분에 지병인 폐질환이 악화되어 도쿄 무사시노 다이 병원에서 운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유골은 니가타 현에 있는 절에 안치되었고, 부인에게는 "그동안 잘 대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작가의 삶의 이력과 부인의 역할을 고려할 때 참 구구절절한 유언이다.
3. 작품 성향
1950년대의 불안한 사회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인간에 대한 모멸과 자조, 극도의 절망과 궁핍 등 부정으로 가득찬 시각으로 인간의 실존세계를 다룸으로써 종래의 한국소설과는 구분되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확립한 작가이다.
주로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정체된 운명을 살아가다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을 그려내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 아무리 행복한 사람이라도 몇 시간 동안은 충격과 무력감에 빠져 있을 수밖에 없다. 여러 모로 문제적이다. 작가 자신부터가 꿈도 희망도 없었던 성격으로 보인다.
4. 대표작
- 비 오는 날 : 6.25 전쟁 당시의 빈민층인 동욱과 동옥 남매의 파멸을 그려낸 단편 소설. 고등학생의 경우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용 지문으로 접하는 경우도 있다. 제목에 걸맞게 소설이 참 질척질척하다.
- 잉여인간: 가장 대표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 인간동물원초 : 교도소 내 죄수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 충격적인 남색이 묘사되었다.
- 신의 희작(戱作) : 어려서 어머니에게 버림 받은, 가난하고 고통스런 환경 속에서 폭력적으로 살아 온 주인공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재와 서사가 꽤나 충격적인, 가히 손창섭 최고의 문제작이라 할 만한 작품. 소설에서 S의 아내 이름이 치즈코인 점 등으로 인해 오랫동안 자전적 소설이라는 학설이 정설로 취급되어 왔었고, 손창섭 문학의 전반적인 연구에서도 중요한 자료로 취급되어 왔었다. 때문에 평단의 주목을 받았으나,그의 부인인 치즈코 여사가 손창섭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종래의 설에 대해서 완전한 허구의 창작이라고 하면서 자전적 소설이 아님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도 손창섭의 과거를 알 리 없는 치즈코의 주장일 뿐으로 진실은 그와 함께 죽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인 S는 소년 시절 어머니의 외간 남자와의 정사 장면을 목격하고 그 충격으로 야뇨증에 걸리는 이상 증세를 보였고, 어머니의 가출로 야생적으로 자라나는 반항기를 거쳐 일본인 친구의 여동생을 강간하고 살림까지 차리는 문제적 인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앞서 서술되었듯이, 치즈코 여사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 손창섭의 어머니는 청상과부로 있다가 젊은 나이에 재가하였고, 손창섭은 할머니 손에 의하여 자라났다고 한다. 또한 소설에서 S는 성도착 증세가 있는 폭력적인 인간으로 나타나지만 실제 손창섭은 내성적인 성격의 애처가라고 한다.
- 길
- 인간교실 : 여섯번째 장편소설. 1960년대를 시대배경으로 한 가정사와 인간 욕망의 단면을 파고든 작품이다. 작품내내 내밀한 욕구와 현실이 부딪치며 생기는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다만 여러 사람들이 모두 접하는 신문에서 연재되었던 소설이라 그런지, 강렬한 충격성이나 극도의 암울성은 배제되어있다. 오히려 통속적이고 자극적인 재미에도 충실한 흥미로운 작품. 작품내내 전개되는 주인공의 위선적이면서도,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바로 사람이구나, 느껴지게 만드는 주인공의 행동에 알게 모르게 동조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 장님 강아지 : 손창섭이 1950년대에「새벗」에 발표했던 7 편의 단편동화를 모은 동화집이다.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들을 엮은 단편집이며, 주로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아이들, 동물과 친구들과의 우정, 가족 간의 사랑 등의 테마가 나타난다.
- 유맹 : 1970~80년대 재일교포의 삶을 다루고 있는 소설로, 주인공의 인생이 굉장히 세부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손창섭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평이 존재한다.
- 혈서
5. 기타
소학교 시절에는 자신의 생일을 알고 있었으나 그후로는 기억할 필요가 없어 잊어 버렸다. 때문에 성장한 후로는 자신의 생일을 몰라 기념조차 할 수 없다. 또한 아버지가 없는 유복자이기도 했는데, 언제 죽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
그가 죽기 며칠 전 한 기자가 그를 찾으려고 가다가, 동네에 살고 있던 어떤 노인에게 혹시 손창섭이 아니냐고 묻자 "나는 아니다, 이 근처에 있다"라고 말했다. 잠시 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방금 말한 그 노인이 바로 손창섭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기자는 다시 그 노인을 찾아가 왜 부인하셨는지 묻자 몸 상태를 이유로 며칠 후 다시 찾아오기를 권했다. 그러나 그 며칠 사이 손창섭은 타계했다.
한편 그가 타계했을 때, 그의 대표작인 잉여인간의 제목 때문에 부고 기사에 잉여인간들이 몰려들어 애도하는 댓글이나 원망하는 댓글을 달았다. 일종의 고인드립으로 자제해야 할 일이었지만.
6. 뉴스 기사
아래 링크에 걸린 기사는 전부 국민일보에서 취재한 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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