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교육청남산도서관
한자: 南山圖書館
영어: Namsan Public 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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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후암동에 있는 서울시교육청 산하 도서관. 남산 자락에 있다고 이름도 남산도서관이라 하였다. 도서관이니 당연히 책을 빌려 읽는 장소지만 열람실ㆍ전자정보실ㆍ노트북실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정기적으로 강의와 전시회를 여는 등 문화시설로서도 역할을 한다. 여기서 강의 등은 무료, 또는 싼 값으로 참가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2년[1] 에 경성부가 명동2가 25번지에 있던 舊 한성병원 건물을 고쳐 '경성부립도서관'을 세워 10월 5일에 개관했다. 1926년 4월 1일에 종로분관을 개관하고, 1927년 5월 24일에 중구 소공동 115번지 대관정(大觀亭) 건물[2] 로 이전하여 새로 개관했다. 열람석 500석을 갖춘 3층짜리 신관 건물이었는데, 시기가 시기인지라 식민지를 교화하겠다는 의도가 짙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그해 12월 종로분관이 '경성부립 종로도서관'으로 분리되었다. 1946년 9월에 미군정의 명령에 따라 경성부가 서울시로 개칭되면서 '서울시립남대문도서관'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48년 8월 15일에 서울시가 '서울특별시'가 되자 '서울특별시립남대문도서관'으로 개칭했다. 1950년에 6.25 전쟁이 일어나자 28일자로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지만, 바로 그해 9.28 서울 수복 후에 다시 문을 열었다.
1963년에 도서관 건물을 이전, 신축설계 공모를 하여 한양대 이해성[3] 이 제출한 설계안을 채택했다.
1964년에 박정희 정권이 한일기본조약을 맺으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큰 시위들이 일어났다. 문교부는 이러한 시위를 막고자 휴교령을 내렸는데, 학교에 못 가게 된 학생들이 남산도서관에 몰려 건물 안에 들어가질 못해 대기표를 받으며 기다리는 등 초만원이었다는 신문보도가 있다.
개관하기도 전에 이런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아무튼 이해(1964) 12월 31일 현 위치인 용산구 후암동에 새 건물을 완공, 이듬해 1월 27일에 개관식을 하고 서울시교육위원회로 소관업무를 이관하여 '서울특별시립 남산도서관'으로 개칭했다. 당시로서는 얼마나 큰 도서관이었는지 경향신문은 남산도서관을 두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도서관', '매머드급'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4] 다만 건물 크기에 비하면 내실이 없어서, 시설은 20만 권을 수용할 수 있지만 실제 비치된 책은 3만 권밖에 안 됐다고...
1967년에도 "휴교령 때문에 남산도서관에 학생들이 몰려 들어가지 못할 정도"라는 보도가 나왔다.
1970년 10월 20일에는 럭키화학(현 LG) 구자경과 진흥기업 박영준이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 이름으로 헌납하는 형식으로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의 동상을 건립하여 제막식을 거행했다.[5] 동상 제막식에는 박정희 대통령 등이 참석하여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남산도서관 앞 도로에서 바라보아서 오른쪽(동쪽)에 이황, 왼쪽(서쪽)에 정약용의 상이 있다.
1979년에는 6, 7, 11월에 걸쳐 도서 열람방식을 기존의 폐가제에서 완전개가제로 개편했고, 1993년에는 전산화 업무를 시작했다. 1995년부터 전 장서 관외대출 실시 후 1997년부터 자료검색 및 대출 전산화를 완료하였다. 2017년 <서울특별시교육청 행정기구 설치 조례> 개정에 따라 명칭을 '서울특별시교육청 남산도서관'으로 개명했다.
2000년대 들어 건물이 노후화되어 문제가 점점 심해지자, 2012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약 5개월간 휴관하고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진행했다. 도서반납기간이 휴관기관 중인 사람들은 휴관 이후로 미뤄주고, 도서대출권수도 100권으로 늘려주기까지 했다.
1층에는 식당과 매점, 북카페 등의 편의시설들이 있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지만 옆쪽으로 '갤러리'가 상당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엄청난 전시물이 들어오지는 않지만 심심풀이로 한 번 둘러볼 정도는 된다. 전시신청을 받아 매주 목요일에 전시물이 바뀐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열람실(공부방)은 5층에 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1열람실/2열람실이 바로 붙어 있으며, 남성전용/여성전용/공용 자리가 분리되니 엄한 자리에 앉지는 말도록 하자. 2층의 노트북실과 전자정보실에서 개인 노트북이나 비치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다. 어떻게 알고 가입했는지 이곳에는 외국인들도 제법 보인다. 5층에서 노트북을 쓴다고 쫒아내지는 않지만, 심심치 않게 민원이 되어 도서관으로 들어오니 가급적이면 2층으로 가자. 와이파이도 2층이 더 잘 터진다.
2층(연속간행물실), 3층(문학실), 4층(자연과학/인문사회과학실)에 총 4개 자료실이 있다. 비한글 도서는 연속간행물실에 모여 있는데, 거의 재고처리 수준의 질에 양도 많지 않으므로 기대하지는 말자. 어린이도서관은 남산도서관이 아니라 길 건너 용산도서관에 있으니 헷갈리지 말 것. 3층 문학실에는 의외로 시나 수필 같은 순수문학만이 아니라 (무협이나 판타지 등) 정말 가벼운 소설들도 꽤나 구비하였다.
토/일요일에는 정상적으로 개관하고, 첫째주/셋째주 월요일과 법정공휴일에만 휴관한다. 이용시간은 '대략'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주중/주말,이용하는 서비스에 따라, 그리고 계절에 따라 이용 시간이 미묘하게 다르니 자세한 것은 홈페이지에 가서 확인하자.
일단 도서관을 이용하려면 회원가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일단 도서관에 가서 비치된 컴퓨터로 가입해도 되고, 집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으로 남산도서관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평범하게 가입해도 된다. 물론 자료실에서 책만 보려면 회원가입 필요없이 그냥 들어가서 보면 된다.
열람실과 전자정보실은 회원가입만 하고도 정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1층에 있는 발권기에서 오른쪽 아래에 '웹회원인증' 버튼을 누르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자리를 배정받는 것이 가능하다. 터치패드의 감도가 썩 좋지 않으니 주의. 자리수가 올라가는 걸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꾹꾹 눌러주는 것이 좋다. 로그인하고 빈 자리를 클릭하면 바코드가 출력되어 나오는데, 나갈 때 5층 열람실 앞 '반납기'에 바코드를 찍으면 좌석을 반납할 수 있다. 별 거 아니지만 다음 사람을 위해 웬만하면 반납은 하고 나가자.
하루 정도 맛보기(?)를 하고 싶거나, 피치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 1층 안내실에서 임시 대출증을 발급받아 이용할 수 있다. 실수로 스마트폰을 가져오지 않았거나 아예 회원가입이 곤란한 외국인 등이 주로 이용한다.
책을 빌리고 싶거나, 올 때마다 로그인하는 것이 귀찮다면 대출증을 발급받아 이용할 수 있다. 일단 회원가입을 하고 2/3/4층에 있는 아무 자료실에가서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된다. 반드시 '''서울시 주소로 된 신분증'''이 필요하며, 경기도나 그 외 지방에 살더라도 다니는 학교나 직장이 서울에 있다는 증명 서류를 가져가면 만들어 준다. 일단은 무료이지만, 잃어버렸다면 1,000원을 내고 재발급받아야 한다.
일단은 주차장이 있기는 한데, 공간도 별로 넓지 않고 요금도 시간당 3천 원씩이나 되어 공공기관치고는 꽤 비싸다. 정기주차 같은 개념도 없어서 하루 종일 세워 놓으면 1~2만 원은 가볍게 깨진다. 물론 주차비로 돈을 벌려는 건 아니고, 비유하자면 혼잡한 도로에서 통행료를 받는 것과 비슷한 이유. 주차공간이 워낙 협소해 이렇게 돈을 받아도 행사가 있는 날이나 주말에는 심심치 않게 만차가 되기 때문. 바로 옆의 공원주차장은 시간당 1800원밖에 하지 않으니 오래 주차할 생각이라면 그쪽으로 가는 편이 좋다.
원칙적으로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고, 도서관에 차를 세운 사람은 절대 밖으로 빠져나가서는 안 된다(!) 물론 잠깐 나간다고 누가 잡아가거나 하지는 않지만, 너무 대놓고 남산으로 피크닉을 갔다가는 CCTV에 걸려 쫒겨날 수도 있으니 주의. 애초에 더 넓고 저렴한 공원주차장이 바로 옆에 있는데 여기다 대고 괜히 옆로 샐 이유가 없기도 하고.
저녁 6시 반부터 주차박스에 있던 직원이 안으로 들어가고, 이후에 나가려면 1층 안내실에서 정산을 하고 나가야 한다. 아무리 늦어도 8시까지는 안내실에서 정산을 해야 하며, 그냥 뻐기다가는 경고 문자나 전화 등을 받을 수 있다. 귀찮다면 들어갈 때 미리 요금을 계산하고 들어가도 된다. 직원도 편하고 이용객도 두 번 신경쓸 필요가 없으니 일석이조.
차량 5부제를 실시하므로 요일제를 가입하지 않은 차는 차량 끝번호에 따라 월(1/6번), 화(2/7번), 수(3/8번), 목(4/9번), 금(5/0번)에 주차할 수 없고, 요일제를 가입했다면 자기가 선택한 요일에는 주차가 불가능하다.
오세훈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시기 남산 르네상스의 일환으로 남산 생태를 복원한다는 명목으로 인근 공공시설들과 함께 일제히 철거될 뻔한 적이 있었다.[6] 실제로 2009년 계획이 나오고 단계적으로 철거를 진행할 계획이었는데, 다행히 무상급식 찬반투표로 인해 오세훈 시장이 갑작스럽게 물러나는 바람에 계획이 엎어져서 유지할 수 있었다.
1985년 중고교생 독서 권장도서로 춘향전을 선정했는데, 성적 묘사가 많아서 약 10여 년 후 유머화가 된다. 업음질이 무슨 뜻인지 몰라 선생님에게 질문했더니 그제야 보이는 부분으로.
남산자락에 있어 도서관 앞 야외 도서관인 다람쥐문고나 근처 숲에는 꿩이나 다람쥐가 심심찮게 돌아다닌다.
건물 둘레에 아름드리 벚나무가 많이 있어 4월 중순에는 도서관 이용객보다 관광객이 더 많을 정도다. 인근에 남산을 오르는 길이 두 군데나 있어서 더욱 그렇다.
휴무일인지 모르고 남산도서관을 찾았다면, 길 건너에 있는 용산도서관을 이용하자. 다만, 식당메뉴나 열람실 등 시설수준은 좀 떨어지는 편.
영어: Namsan Public 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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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 http://nslib.sen.go.kr
1. 개요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에 있는 서울시교육청 산하 도서관. 남산 자락에 있다고 이름도 남산도서관이라 하였다. 도서관이니 당연히 책을 빌려 읽는 장소지만 열람실ㆍ전자정보실ㆍ노트북실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정기적으로 강의와 전시회를 여는 등 문화시설로서도 역할을 한다. 여기서 강의 등은 무료, 또는 싼 값으로 참가할 수 있다.
2. 역사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2년[1] 에 경성부가 명동2가 25번지에 있던 舊 한성병원 건물을 고쳐 '경성부립도서관'을 세워 10월 5일에 개관했다. 1926년 4월 1일에 종로분관을 개관하고, 1927년 5월 24일에 중구 소공동 115번지 대관정(大觀亭) 건물[2] 로 이전하여 새로 개관했다. 열람석 500석을 갖춘 3층짜리 신관 건물이었는데, 시기가 시기인지라 식민지를 교화하겠다는 의도가 짙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그해 12월 종로분관이 '경성부립 종로도서관'으로 분리되었다. 1946년 9월에 미군정의 명령에 따라 경성부가 서울시로 개칭되면서 '서울시립남대문도서관'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48년 8월 15일에 서울시가 '서울특별시'가 되자 '서울특별시립남대문도서관'으로 개칭했다. 1950년에 6.25 전쟁이 일어나자 28일자로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지만, 바로 그해 9.28 서울 수복 후에 다시 문을 열었다.
1963년에 도서관 건물을 이전, 신축설계 공모를 하여 한양대 이해성[3] 이 제출한 설계안을 채택했다.
1964년에 박정희 정권이 한일기본조약을 맺으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큰 시위들이 일어났다. 문교부는 이러한 시위를 막고자 휴교령을 내렸는데, 학교에 못 가게 된 학생들이 남산도서관에 몰려 건물 안에 들어가질 못해 대기표를 받으며 기다리는 등 초만원이었다는 신문보도가 있다.
개관하기도 전에 이런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아무튼 이해(1964) 12월 31일 현 위치인 용산구 후암동에 새 건물을 완공, 이듬해 1월 27일에 개관식을 하고 서울시교육위원회로 소관업무를 이관하여 '서울특별시립 남산도서관'으로 개칭했다. 당시로서는 얼마나 큰 도서관이었는지 경향신문은 남산도서관을 두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도서관', '매머드급'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4] 다만 건물 크기에 비하면 내실이 없어서, 시설은 20만 권을 수용할 수 있지만 실제 비치된 책은 3만 권밖에 안 됐다고...
1967년에도 "휴교령 때문에 남산도서관에 학생들이 몰려 들어가지 못할 정도"라는 보도가 나왔다.
1970년 10월 20일에는 럭키화학(현 LG) 구자경과 진흥기업 박영준이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 이름으로 헌납하는 형식으로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의 동상을 건립하여 제막식을 거행했다.[5] 동상 제막식에는 박정희 대통령 등이 참석하여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남산도서관 앞 도로에서 바라보아서 오른쪽(동쪽)에 이황, 왼쪽(서쪽)에 정약용의 상이 있다.
1979년에는 6, 7, 11월에 걸쳐 도서 열람방식을 기존의 폐가제에서 완전개가제로 개편했고, 1993년에는 전산화 업무를 시작했다. 1995년부터 전 장서 관외대출 실시 후 1997년부터 자료검색 및 대출 전산화를 완료하였다. 2017년 <서울특별시교육청 행정기구 설치 조례> 개정에 따라 명칭을 '서울특별시교육청 남산도서관'으로 개명했다.
2000년대 들어 건물이 노후화되어 문제가 점점 심해지자, 2012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약 5개월간 휴관하고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진행했다. 도서반납기간이 휴관기관 중인 사람들은 휴관 이후로 미뤄주고, 도서대출권수도 100권으로 늘려주기까지 했다.
3. 역대 관장
3.1. 해방 전
- 기무라 스즈오 (1922)
- 우에스기 나오사부로 (1922~1927)
- 야마모토 간이치 (1927~1929)
- 오오야마 가즈오 (1929~1932)
- 마츠하시 기요하루 (1932)
- 사무라 노부헤이 (1932~1936)
- 나카나가 고시노스케 (1936~1937)
- 야마모토 노시히사 (1937~1945)
3.2. 해방 후
- 신태현 (1945~1946)
- 정환식 (1948~1950)
- 구태회 (1950~1956)
- 김복진 (1956)
- 민경휘 (1956~1958)
- 정익성 (1958~1960)
- 송광면 (1960~1961)
- 이석경 (1961~1962)
- 최창균 (1962~1967/1968~1971)
- 김차엄 (1967~1968)
- 박희규 (1971~1972)
- 이근명 (1972~1974)
- 박덕주 (1974~1977)
- 이홍구 (1978~1981)
- 조남묵 (1982~1985)
- 이종성 (1985~1988)
- 승병구 (1988~1990)
- 장지남 (1990~1993)
- 정희윤 (1993~1994)
- 김승현 (1994~1995)
- 신민부 (1995~1996)
- 윤영열 (1996~1997)
- 최용성 (1997~1998)
- 김재평 (1998~2000)
- 이상열 (2000)
- 황낙현 (2001~2002)
- 조길형 (2002~2005)
- 서행원 (2005~2006)
- 양종만 (2006~2007)
- 김동주 (2007~2008)
- 김경철 (2008~2010)
- 이정우 (2010~2012)
- 김수동 (2013)
- 이백렬 (2013)
- 조영권 (2014)
- 이은각 (2014~2015)
- 김희선 (2015~2016)
- 박정숙 (2017)
- 손영순 (2018~2020)
- 이연주 (2020~ )
4. 시설
1층에는 식당과 매점, 북카페 등의 편의시설들이 있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지만 옆쪽으로 '갤러리'가 상당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엄청난 전시물이 들어오지는 않지만 심심풀이로 한 번 둘러볼 정도는 된다. 전시신청을 받아 매주 목요일에 전시물이 바뀐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열람실(공부방)은 5층에 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1열람실/2열람실이 바로 붙어 있으며, 남성전용/여성전용/공용 자리가 분리되니 엄한 자리에 앉지는 말도록 하자. 2층의 노트북실과 전자정보실에서 개인 노트북이나 비치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다. 어떻게 알고 가입했는지 이곳에는 외국인들도 제법 보인다. 5층에서 노트북을 쓴다고 쫒아내지는 않지만, 심심치 않게 민원이 되어 도서관으로 들어오니 가급적이면 2층으로 가자. 와이파이도 2층이 더 잘 터진다.
2층(연속간행물실), 3층(문학실), 4층(자연과학/인문사회과학실)에 총 4개 자료실이 있다. 비한글 도서는 연속간행물실에 모여 있는데, 거의 재고처리 수준의 질에 양도 많지 않으므로 기대하지는 말자. 어린이도서관은 남산도서관이 아니라 길 건너 용산도서관에 있으니 헷갈리지 말 것. 3층 문학실에는 의외로 시나 수필 같은 순수문학만이 아니라 (무협이나 판타지 등) 정말 가벼운 소설들도 꽤나 구비하였다.
5. 이용
- 대출가능자료 종류 및 수, 대출기간
- 개방 시간
토/일요일에는 정상적으로 개관하고, 첫째주/셋째주 월요일과 법정공휴일에만 휴관한다. 이용시간은 '대략'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주중/주말,이용하는 서비스에 따라, 그리고 계절에 따라 이용 시간이 미묘하게 다르니 자세한 것은 홈페이지에 가서 확인하자.
일단 도서관을 이용하려면 회원가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일단 도서관에 가서 비치된 컴퓨터로 가입해도 되고, 집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으로 남산도서관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평범하게 가입해도 된다. 물론 자료실에서 책만 보려면 회원가입 필요없이 그냥 들어가서 보면 된다.
열람실과 전자정보실은 회원가입만 하고도 정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1층에 있는 발권기에서 오른쪽 아래에 '웹회원인증' 버튼을 누르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자리를 배정받는 것이 가능하다. 터치패드의 감도가 썩 좋지 않으니 주의. 자리수가 올라가는 걸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꾹꾹 눌러주는 것이 좋다. 로그인하고 빈 자리를 클릭하면 바코드가 출력되어 나오는데, 나갈 때 5층 열람실 앞 '반납기'에 바코드를 찍으면 좌석을 반납할 수 있다. 별 거 아니지만 다음 사람을 위해 웬만하면 반납은 하고 나가자.
하루 정도 맛보기(?)를 하고 싶거나, 피치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 1층 안내실에서 임시 대출증을 발급받아 이용할 수 있다. 실수로 스마트폰을 가져오지 않았거나 아예 회원가입이 곤란한 외국인 등이 주로 이용한다.
책을 빌리고 싶거나, 올 때마다 로그인하는 것이 귀찮다면 대출증을 발급받아 이용할 수 있다. 일단 회원가입을 하고 2/3/4층에 있는 아무 자료실에가서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된다. 반드시 '''서울시 주소로 된 신분증'''이 필요하며, 경기도나 그 외 지방에 살더라도 다니는 학교나 직장이 서울에 있다는 증명 서류를 가져가면 만들어 준다. 일단은 무료이지만, 잃어버렸다면 1,000원을 내고 재발급받아야 한다.
6. 주차
일단은 주차장이 있기는 한데, 공간도 별로 넓지 않고 요금도 시간당 3천 원씩이나 되어 공공기관치고는 꽤 비싸다. 정기주차 같은 개념도 없어서 하루 종일 세워 놓으면 1~2만 원은 가볍게 깨진다. 물론 주차비로 돈을 벌려는 건 아니고, 비유하자면 혼잡한 도로에서 통행료를 받는 것과 비슷한 이유. 주차공간이 워낙 협소해 이렇게 돈을 받아도 행사가 있는 날이나 주말에는 심심치 않게 만차가 되기 때문. 바로 옆의 공원주차장은 시간당 1800원밖에 하지 않으니 오래 주차할 생각이라면 그쪽으로 가는 편이 좋다.
원칙적으로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고, 도서관에 차를 세운 사람은 절대 밖으로 빠져나가서는 안 된다(!) 물론 잠깐 나간다고 누가 잡아가거나 하지는 않지만, 너무 대놓고 남산으로 피크닉을 갔다가는 CCTV에 걸려 쫒겨날 수도 있으니 주의. 애초에 더 넓고 저렴한 공원주차장이 바로 옆에 있는데 여기다 대고 괜히 옆로 샐 이유가 없기도 하고.
저녁 6시 반부터 주차박스에 있던 직원이 안으로 들어가고, 이후에 나가려면 1층 안내실에서 정산을 하고 나가야 한다. 아무리 늦어도 8시까지는 안내실에서 정산을 해야 하며, 그냥 뻐기다가는 경고 문자나 전화 등을 받을 수 있다. 귀찮다면 들어갈 때 미리 요금을 계산하고 들어가도 된다. 직원도 편하고 이용객도 두 번 신경쓸 필요가 없으니 일석이조.
차량 5부제를 실시하므로 요일제를 가입하지 않은 차는 차량 끝번호에 따라 월(1/6번), 화(2/7번), 수(3/8번), 목(4/9번), 금(5/0번)에 주차할 수 없고, 요일제를 가입했다면 자기가 선택한 요일에는 주차가 불가능하다.
7. 기타
오세훈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시기 남산 르네상스의 일환으로 남산 생태를 복원한다는 명목으로 인근 공공시설들과 함께 일제히 철거될 뻔한 적이 있었다.[6] 실제로 2009년 계획이 나오고 단계적으로 철거를 진행할 계획이었는데, 다행히 무상급식 찬반투표로 인해 오세훈 시장이 갑작스럽게 물러나는 바람에 계획이 엎어져서 유지할 수 있었다.
1985년 중고교생 독서 권장도서로 춘향전을 선정했는데, 성적 묘사가 많아서 약 10여 년 후 유머화가 된다. 업음질이 무슨 뜻인지 몰라 선생님에게 질문했더니 그제야 보이는 부분으로.
남산자락에 있어 도서관 앞 야외 도서관인 다람쥐문고나 근처 숲에는 꿩이나 다람쥐가 심심찮게 돌아다닌다.
건물 둘레에 아름드리 벚나무가 많이 있어 4월 중순에는 도서관 이용객보다 관광객이 더 많을 정도다. 인근에 남산을 오르는 길이 두 군데나 있어서 더욱 그렇다.
휴무일인지 모르고 남산도서관을 찾았다면, 길 건너에 있는 용산도서관을 이용하자. 다만, 식당메뉴나 열람실 등 시설수준은 좀 떨어지는 편.
8. 관련 문서
[1] 경술국치로부터 12년 뒤, 일본 연호로는 다이쇼 1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호로는 대한민국 4년[2] 대한제국에서 황실 영빈관으로 사용하던 호텔. 이전 후 1972년까지 민주공화당이 쓰다가 불명확한 시기에 철거되어 주차장이 되었다. 2012년 삼환기업에서 부영그룹으로 소유권 변경 후 2015년 부영호텔을 짓기로 하여 논란이 일어났지만, 16년에 소공동의 문화적 경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건축을 허용하기로 했다.[3] 나중에 한양대총장, 건축협회장이 되었다.[4] 경향신문 1965년 1월 9일자 기사[5] 이중 구자경이 이황, 박영준이 정약용의 동상을 맡았다.[6] 여기서 웃긴 건, 녹지공간을 회복시킨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공공시설의 퇴출을 계획했으면서 정작 남산주변의 호텔건립 등 각종 상업시설의 건설이 관련된 규제는 무시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