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1. 개요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 2020년 기준으로 자산총액 기준 한국 재계서열 4위다.[2]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한국 3위이다.[3] 공동창업주는 구인회와 허만정이다.
LG화학(구 럭키)과 LG전자(구 금성사)가 주요 계열사이다. 금성사는 삼성그룹, 효성그룹과 함께 '성(星)'자 돌림이었는데 세 재벌 가문 사이에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과 삼성 이병철 회장, 효성 조홍제 회장, GS그룹 허정구는 진주 지수초등학교 동창으로 구 회장과 이 회장은 사돈 사이였는데, 삼성이 전기·전자 제품으로 진출하자 LG 쪽에서 삐쳐서 사이가 멀어졌다고 한다. 당시 구인회 회장과 이병철 회장이 담소를 나누다가 이병철 회장이 "전자업종에 진출한다"[4] 고 하자 구인회 회장이 "사돈이 하는 업종에 뛰어드는 상종 못할 사람"이라고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고 한다. 그래도 2018년 구본무 회장의 장례와 2019년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례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조문했고 2020년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례에 구광모 회장이 조문한 것을 보면 가문 간의 앙금은 어느 정도 풀린 듯 하다.[5][6]
과거에는 그룹의 주력인 저 두 회사의 이름을 따 '''럭키그룹''' 또는 '''럭키금성그룹'''이라고 불렸다. 락희화학의 사세가 커져서 그룹의 형태로 처음 조합되던 시절의 명칭은 럭키그룹이었다. 그러다 금성사의 위세가 높아지고 (주)럭키와 금성사가 양대 주력 계열사로 성장하면서 1980년대 그룹의 공식 명칭을 럭키금성그룹으로 개명하게 된다.
1995년 구본무 회장이 취임하면서 그룹명을 LG로 바꾼다. 그룹에선 LG가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모두들 '''L'''ucky와 '''G'''oldstar의 앞글자를 딴 것이란 사실을 안다. '럭키금성'그룹이던 시절 줄임말로 '럭금'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는데, 구자경 회장은 그걸 상당히 싫어했다고 한다.
친족들에게 방계 계열사들을 모두 분리한 후에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완료했다. 현재는 순환출자 없이 지주회사인 (주)LG 아래로 수직적인 계열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2017년에 구본준 부회장 중심의 전면적인 조직개편을 연내 단행했다.
각종 만악의 근원으로 취급되는 한국의 재벌가 중 욕을 덜 먹는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잘했고, 오너 일가가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잘 하고 있고, 경영권 분쟁 없이 GS와 계열분리도 무난히 했고, 주주배당도 잘 하는 편. 특히, LG전자의 유상증자 때는 무감자 유상증자라는 초강수 때문에 화제가 됐을 정도. 한국 재벌가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어디까지나 욕을 상대적으로 덜 먹는거지 안 먹는 것은 아니다. 탈세 의혹, 비자금 조성 의혹, 하청업체 착취 논란, 뇌물수수, 비정규직 대우 문제 등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서 그렇지 LG도 논란이 될만한 흠결은 꽤 많다. 그래도 2016년 국민 여론의 가장 중점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그나마 재벌 중에서는 관련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여타 재벌들과는 달리 치명상은 면했다.
1.1. 역사
일제강점기인 1931년 7월 연암 구인회 창업주가 고향인 경상남도 진주시에 구인회상점을 개업한 것을 시초로 보기도 한다. 1941년부터 허씨 일가와 동업을 시작했다.
'''해방 이후 1947년에 경남 부산시에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설립'''했으며[7][8] '럭키크림'이라는 이름으로 그 유명한 '''동동구리무'''(화장품)를 제조, 판매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플라스틱을 생산한 전력이 있고, 대한민국 최초의 연고 치약인 럭키치약을 개발했다.''' 1953년 서울사무소를 열고 락희산업(현 LG상사)을 세워 무역업을 시작한 후 1958년 금성사(현 LG전자)를 설립해 이듬해 국산 라디오를 처음 생산했다. 1966년 최초로 흑백 텔레비전 생산을 시작했다.
1968년에 기획조정실을 신설해 그룹의 형태를 갖추었고, 1969년 그룹본부를 서울 종로구 관철동 대왕빌딩으로 옮겼다. 그 해 구인회 회장이 사망하고 1970년에 장남인 상남 구자경이 가업을 이어받아 국제증권을 세워 금융업에도 손을 뻗었다. 1971년 서울 중구 도동 삼주빌딩(現 GS건설 사옥)으로 이전 후 1979년에 처음으로 그룹 로고를 도입하고 1983년 그룹명칭을 '''럭키그룹'''에서 '''럭키금성그룹'''으로 변경하였고, 1984년 새 CI로 변경했다.
1984년 인하우스 광고기획사인 LG애드가 발족되면서 처음으로 'LG'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LG카드 및 LG 트윈스 등으로 LG라는 명칭은 그룹 내에서 점차 확대되기 시작한다. 1987년 여의도 럭키금성트윈타워(現 LG트윈타워)로 이전 후 이듬해에 종합연수원 '인화원(現 LG인화원)'을 열었다. 1990년 기업이념을 변경하고[9] 이듬해부터 주요 계열사에 '사업문화단위(CU)'를 도입해 기업 단위가 아닌 업종 단위로 사업군을 나누었다.
1995년 1월 그룹명을 '''LG'''[10] 로 변경하고, 이후 럭키ㆍ금성ㆍ럭키금성ㆍ희성ㆍ반도ㆍLG 등이 혼재되어있던 각 계열사들의 명칭을 LG로 통일했다. LG 트윈스가 전년도에 잘 나가서 야구 좋아하는 회장이 그룹 명칭을 야구팀 따라 갈아 버렸다는 말이 있으나 그룹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물론 수출 지향형 제조업 기업으로서 해외 시장을 고려한 CI 재정비 작업의 일환이었다고 보는게 더 타당할 수도 있겠으나 단순히 CI 통일이 목적이었으면 삼성처럼 굳이 기업명을 바꾸지 않고 해도 된다. 그 해 2월에 구자경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명예회장으로 영전하고, 화담 구본무 부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하여 '3세 경영체제'를 이룩해냈다. 1998년 책임경영제를 도입하고 2001년과 2002년에 기존 LG화학과 LG전자 법인을 'LGCI'와 'LGEI'란 지주사로 각각 출범시킨 후, 2003년에 두 회사를 합쳐 '(주)LG'란 통합 지주사를 출범시켰다.
2004년에 허씨 일가를 중심으로 'GS홀딩스'가 세워졌고, 2005년에 57년 동업 관계를 청산하고 구씨 일가와 허씨 일가가 LG그룹을 분리하여 허씨 일가는 GS그룹을 경영하게 된다. 그 밖에도 분할된 기업이 많은 편이다. 이 기업들을 통틀어서 부르는 말이 범 LG그룹이다. 애초에 구씨와 허씨의 동업으로 시작했고 그룹 성장 과정에서 회장의 형제들의 역할이 컸기 때문에 현대그룹만큼이나 방계그룹의 규모가 크고 계열사가 많다. 구씨 일가와 허씨 일가의 동업관계와 많은 형제들로 인한 내부분란을 막기 위하여 인화를 상당히 강조했다.[11] 그래서 그런지 '''방대한 가계에도 불구하고 가족간에 경영권 분쟁이나, 계열 분리시 잡음이 거의 없었다'''. 두 가문이 무려 '''65년 간 동업관계'''를 유지했다는 것도 대단한 사실이다. 특히 롯데家에서 왕자의 난이 발생하자 재평가받기도 했다.
- 희성그룹: 1992년 구본무의 동생 구본능[12] 이 희성금속을 떼내어 독립함.
- LF(구 LG패션): 2007년 화담 구본무의 사촌 구본걸이 LG상사에서 분리함.
- 아워홈: 2000년 구 LG유통(현 GS리테일) FS사업부가 분리. 연암 구인회의 3남 구자학 가계
- LIG그룹: 1999년 LG화재를 떼내어 분리. 구인회의 동생 구철회 가계
- LS그룹: LG산전 및 LG전선 등을 중심으로 2003년 계열분리. 구인회의 3, 4, 5째 동생인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가계. 현직 경영진은 이들의 자제들이고 '자'자 돌림으로 구자경의 삼촌뻘이나 조카보다 나이가 적다.
- GS그룹: LG그룹의 동업 창업가인 허씨 가문이 분리한 그룹.[13]
1.1.1. 범 LG의 금융잔혹사
범 LG그룹은 유달리 금융업과 인연이 없다. 본래 신용카드, 증권, 화재보험을 위시로한 금융업은 1990년대까지는 전자, 화학과 함께 LG의 삼각편대라고 할 정도였으나, 2000년대가 시작하자마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원래 단자회사 금성투자금융이 전환된 보람은행은 IMF 시절 하나은행에 합병되었다.
LG할부금융은 LG카드에 합병되었고, 그 천만인의 카드라던 LG카드는 신한금융지주에 인수되어 신한카드에 합병되었다. 이 때 채권단의 지원을 받는 대신 LG투자증권을 매각하기로 발표한다. LG투자증권이 사실상 LG금융의 지주회사격이었기에 이는 LG의 금융업 포기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LG투자증권, LG선물, LG투자신탁은 우리금융지주에 매각되었다가, 우리금융그룹 민영화로 다시 다 팔려나갔다. 증권은 우리증권과 합병, 우리투자증권이 되었다가 다시 농협금융에 팔려 NH농협증권과 합병, NH투자증권이 되었다. 선물은 우리선물이 되었다가, 증권과 같이 농협에 팔려 NH농협선물과 합병, NH선물이 되었다. 투신은 우리투자신탁과 합병, 우리자산운용이 되었다가, 키움증권에 팔려 키움투자자산운용이 되었다. 부민상호저축은행은 SLS그룹을 거쳐, 한국·진흥·경기저축은행에 매각되어 영남상호저축은행이 되었다가, 저축은행 사태로 파산, 경은·부산·토마토2저축은행과 함께 가교저축은행인 예솔저축은행으로 흡수된 후 기업은행에 인수되어 IBK저축은행이 되었다.
IMF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LG의 차세대 먹거리는 금융으로 잡힌 적이 있었고, 실제로 매물로 나왔었던 대한생명을 인수하려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생명보험사 2위를 다투던 대한생명을 인수해서 LG의 금융계열을 삼성의 금융에 못지않을 정도로 강화시키려 했다. 이러면 정말 삼성의 기업 포트폴리오와 비슷해진다. 하지만 너무 비싸다는 그룹 내 의견에 결국 구본무 회장은 인수를 하지 않기로 하고, 대한생명은 한화에 매각되어 한화생명으로 개칭한다. 어차피 대한생명을 인수했어도 머지않은 LG카드 사태를 생각하면 인수해봤자 도로 정리했을 것이다. 향후 금산분리 이슈건까지 있으니 LG그룹 차원에서는 지주회사 체제 개편처럼 미리 금융사를 선제 정리해서 잡음없이 금융 정리를 끝냈다는 성과는 있다.
이와는 별개로 LG화재를 주축으로 분가하여 범 LG 계열에서 금융은 최고 전문가라고 불렸던 LIG그룹 역시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LIG생명이 시너지효과 저조를 이유로 우리금융지주에 매각되어 우리아비바생명이 되었다가, 우리금융의 민영화 과정에서 NH농협은행에 매각되었고, 인수한 지 1년도 안 되어 다시 DGB금융지주에 팔려 DGB생명이 되었다. 그룹의 모체인 LIG손해보험은 오너의 무리한 건설업 진출과 그에 따른 회사채 사기발행의 뒷감당을 위해 매각, KB금융지주에서 인수하여 KB손해보험이 되었다.
LG증권 매각이후 범 LG가 중 LS그룹에서는 친척이자 금융전문인 LIG그룹과 함께 증권사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LS는 종합증권을, LIG는 단종증권을 희망하였기에 의견 차이로 결별했다. LIG그룹에서 설립했던 LIG투자증권(現.케이프투자증권)은 LIG손해보험 매각시 같이 팔렸다가, 인수자인 KB금융에서 여러 사정 때문에[14] 지점을 모두 폐쇄하고 여의도 본점영업부만 남겨 덩치를 줄인 후 '케이프 인베스트'라는 조선기자재업체에 매각했고, 사명도 케이프투자증권으로 바뀌었다.
LS그룹의 오너들이 금산분리 때문에 사모펀드를 통해 우회하여 인수했던 이트레이드증권(現.이베스트투자증권)은 재매각하기 위해 노력 중이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사명을 이베스트증권으로 바꾸고 계속 매각하려고 노력 중이다. 금산분리 때문에 LS그룹의 오너 개인들이 투자자문사를 인수하여 만든 LS자산운용은 DGB금융지주에 매각되어 DGB자산운용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허씨家에서 분가한 GS그룹에서도 GS자산운용을 세웠는데, GS와 그 방계인 코스모그룹까지 휘청이는 상태라 BNK금융지주에 매각하여 BNK자산운용으로 변했다. 범 LG가 금융업체들 중 대주주가 한 번도 안 바뀐 기업은 창업투자사 LB인베스트먼트로, 구인회의 4남 구자두가 소유중이다.
그러나 금융계열사가 없기에 금산분리로 골치 썩을 걱정없이 무난히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할 수 있었다. 현재 삼성, 한화를 비롯한 금융사를 가진 재벌들은 금산분리 문제로 골치가 아픈 실정이다. 금산분리를 다소 완화시키자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동양그룹 사태를 비롯한 재벌들의 병크로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금산분리를 강화시키려 하는 입장. 롯데그룹이 롯데지주 체제로 전환하면서 금융계열사들을 매각하게 된 이유가 바로 금산분리 문제 때문이다.
LG의 금융잔혹사가 역으로 지금 시점에서는 전화위복까지 아니더라도 미리 선제적으로 골치아픈 씨앗을 제거했다는 뜻하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이 가장 골치가 아프다. 금산분리 때문에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하고, 오너 일가가 인수하지 못하면 삼성생명 지배권을 상실하며 인수 자체를 돈 없어서 못한다. 그리고 금융지주회사로 분리 또한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니다. 한화는 한화생명을 중심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중이지만 승계 이슈와 맞물러 해법을 내놓기 요원한 상황이다.
정리하면, LG그룹의 방계그룹 분리 이전에 있던 금융사의 현재 상태는...
금성투자금융: 현 KEB하나은행(원조(?) 하나은행과 합병)
LG카드: 현 신한카드
LG투자증권: 현 NH투자증권(우리증권과 합병된 '우리투자증권' 시절 이후)
LG선물: 현 NH선물(NH농협선물과 합병된 '우리선물' 시절 이후)
LG투자신탁: 현 키움투자자산운용(우리투자신탁과 합병된 '우리자산운용' 시절 이후)
부민상호저축은행: 현 IBK저축은행(영남상호저축은행, 영남저축은행, 두 시절 이후)
LG화재: 현 KB손해보험(LIG손해보험 시절 이후)
정리하면 LG의 방계 분리 이후에 생긴 금융사의 현재 상태는...
LIG투자증권: 현 케이프투자증권
LS자산운용: 현 DGB자산운용
GS자산운용: 현 BNK자산운용
LG그룹과 방계그룹 금융사를 한국의 어지간한 금융지주사들은 한번 이상 인수했다(...).
그리고, 범 LG계인 GS그룹이 GS리테일을 통해 케이뱅크은행에 참여하고 있다.(근데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LK자산운용 덕분이다.)
1.1.2. 반도체 잔혹사
반도체 사업에 철천지 한이 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가 되자 당시 김대중 정부에서는 재벌그룹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빅딜' 정책을 추진하는데 LG그룹의 LG반도체를 현대그룹의 현대전자에 '''억지로''' 넘겨주게 된다. 구자경 당시 LG그룹 명예회장은 끝까지 저항했으나,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압박하고 은행신규대출을 모두 끊어버리는 금융제재까지 당하자 결국 포기한다. 이때 매각 대금으로 받은 현금으로 데이콤을 인수하고 LG화재그룹을 분가시켰다.
LG는 당시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았고, 총수는 기회가 날 때마다 여러 경로를 통해 당시 정부 시책이었던 대북지원에 현대가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곤 했다. 또한 당시 빅딜을 주도한 전경련에 발길을 끊는다. 전경련회관이 그룹 사옥인 LG트윈타워에서 고작 5분 거리인데 1999년부터 전경련 모임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2013년에 갔던 것도 전경련회관이 새로 지어져서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던 개관 축하행사 참석차 어쩔 수 없이 간 것이지 자의로 간 것이 아니다.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난 뒤 전경련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삼성, 현대, SK, 롯데를 비롯한 대한민국 5대 그룹 중에서 처음으로 전경련에 공식 탈퇴 의사를 통보'''하며 전경련과의 연을 아예 끊어버렸다.
그러나 당시 LG반도체는 당시 시장에서 주력으로 팔리던 128Mbit DRAM에 대한 투자는 건너뛰고 히타치로부터 도입한 공정으로 차세대 RAM으로 각광받던 RDRAM 생산에 올인하는 전략을 선택하였는데, RDRAM의 참상은 해당 항목 및 제조사 램버스, 주수요처인 펜티엄 3#s-2.2, 펜티엄 4#s-3, 참조. 당장 수십억이 없어 대기업 집단들이 무너지던 시절에 안 팔릴 제품에 올인한 LG반도체의 미래는 뻔했을 것이다. 이른바 세계 반도체 기업들의 운명을 가른 '램버스' 사태다. 당시 삼성은 DDR D램을 선택하고, NEC, 히다치 같은 일본 기업들과 LG반도체는 램버스 D램을 선택하는데, 결국 시장에서는 DDR D램이 선택받는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독보적인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서고, 세계를 장악하고 있던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는 일본 10대 전자기업들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순이익을 내게 된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뭔가 낌새를 눈치채고 램버스 D램에서 DDR D램으로 옮겨 결국 세계 메모리 3강에 들게 된다. 그렇지만 NEC, 히타치, LG반도체는 끝까지 램버스 D램을 고수한다. 현대전자는 DDR D램을 선택했으나 램버스 D램을 선택한 LG반도체를 인수한 후폭풍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는데, 그나마 그때 DDR D램에서 쌓은 저력이 현재 SK하이닉스 경쟁력의 밑바탕이 되었다. 결과론이지만 시장에서 퇴출된 램버스 D램에 올인했던 LG의 운명은 결국 반도체 사업을 접을 수 밖에 없었던 일본 전자기업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훗날 터진 LG의 흑역사 LG카드 사태를 생각하면 LG가 반도체를 안고갈 여력은 더욱 없었다. 오히려 LG반도체가 있었으면 오너 일가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애착을 볼 때 그룹 전체가 몰려들어가 연쇄 부실로 그룹이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현대전자는 LG반도체 인수로 현금은 써버리고 부채를 떠안는 바람에 불과 1년만에 유동성위기에 봉착했다. 원래 현대전자는 LG그룹의 LG반도체 지분 전부를 인수할 생각은 없었으나 LG그룹에서 아예 반도체 사업에서 손을 털고 나가겠다고 해서 무리해서 인수하게 된다. 이후 현대그룹은 왕자의 난에 이은 형제들의 분가, 현대건설 등 다른 계열사들의 유동성 위기 등이 겹겹이 터지는 바람에 껍데기만 남게 된다. 현대전자의 후신인 반도체사업부는 현재 '''하이닉스'''반도체로 존속 중인데 이러한 연유로 하이닉스의 인수전에 LG그룹은 조건없는 인수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결국 2011년 하이닉스반도체는 SK텔레콤에 인수되어 SK하이닉스로 변경된다.
그리고 2017년 8월 SK그룹에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인 LG실트론을 매각하면서 이제 반도체와 관련된 사업은 사실상 완전히 손을 떼게 된다. 아직 실리콘 웍스가 있긴 하지만 이쪽은 중견기업 규모에 LG측에서도 주력은 아니라서 손을 뗀거나 다름없다.
LG에게는 이미 충분히 재인수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하이닉스가 천덕꾸러기 받던 시절에 심지어 LG보다 넘사벽으로 낮은 동부그룹에게도 인수 제의가 갈 정도에 효성그룹 같은 LG에 비해 소규모 재벌의 하이닉스 인수설까지 있었다. 원래 주인이었던 LG에게는 당연히 수많은 인수 제의가 오갔다. 2011년 SK가 인수하기 전에도 LG는 첫번째 인수 후보군이었고, 거의 읍소하는 수준의 조건으로 재인수 제의가 갔지만 LG는 인수를 거부했다. 여기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은 많으나 간단히 말하면 구본무를 비롯한 구씨 집안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수조원을 써야 하고 다시 수십조를 넣어야 할지 모르는 반도체 인수 결정은 결국 오너가 하는 것이다. 보다 근원적인 원인으로 LG 구씨 측에서는 '''원래 자기거였던 하이닉스를 거액을 들여 다시 인수해야 하는 것'''에 반감이 매우 강했다고 한다. 그리고 반도체 치킨게임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과 막대한 자금 투입에 부담을 크게 느껴 인수를 하지 않았다. 구본무는 반도체 사업이 잘못되면 그룹 전체가 위험할 수 있다고도 했다. 결국 SK가 인수를 했고 운좋게 반도체 치킨게임이 종식되면서 한국 M&A 역대 1위를 다투는 성공적인 기업 인수 성과를 거두었다. 만약 LG에서 재인수했다면 본의 아니게 '램버스' 사태를 남의 힘으로 해결하고 또 미국에서 중국의 반도체 진출을 결사적으로 막는 분야가 비메모리가 아닌 메모리 분야인 걸 볼 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당시 SK와 LG는 3, 4위에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었다. 하이닉스 인수로 두 그룹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하이닉스 인수전까지 매출액과 영업이익 모두 LG가 근소하게 앞서던 시절이 있었지만 하이닉스 인수 기점으로 잭팟을 터트린 SK는 자산과 매출, 영업이익 모두 LG와 비교할 수 없는 넘사벽 3위로 올라섰다. 현재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과 자산규모가 고작 몇조밖에 차이 안 날 정도로 어마무시한 이득과 성장을 일구었다. 반면 LG는 도저히 SK와 비교할 수 없는 차이나는 4위로 주저앉았고 5위인 롯데그룹과 경쟁도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LG가 하이닉스를 재인수했다면 SK와 같은 잭팟을 터트렸을지도 불확실하다. SK는 텔레콤과 정유 사업으로 축적된 현금이 매우 풍부하고 수십조를 쏟아야 하는 반도체 특성상 지금도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착공 등을 비롯하여 열심히 투자운영중이다. 확실한 캐시카우가 없는 LG가 하이닉스를 인수했다 해서 SK만큼 잭팟을 터트릴지 그야말로 넌센스.
여담로 이 당시 외부전문 평가기관으로 미국계 경영자문사인 '아서 디 리틀(ADL)'이 선정됐고, 당시 ADL 평가단의 핵심 구성원 중 1명이 넥센 히어로즈의 그 이장석이었다. 관련 기사 ADL 측에서 현대전자에 후한 점수를 주는 바람에 LG반도체가 현대전자로 넘어갔다고. 현대그룹 계열 분리 당시 하이닉스의 계열사였던 현대 유니콘스 역시 이후 자금난을 겪으면서 2008년에 해체되었고, 이 사단의 첫 시작에 관여한 이장석이 현대의 선수단을 사들여서 히어로즈 야구단을 창단한 것. 그리고 이후 LG 트윈스가 히어로즈에게 몇 차례 선수 트레이드에서 상당한 손실을 입었던 것까지 고려하면 너무 깊은 악연이다.
1.2. 영속성을 구축한 LG
현시대에서 LG는 삼성, SK, 현대를 비롯한 다른 그룹에 비해 경영 형태와 기업 문화가 보수적에 경직성이 강하고, 특히 오너 일가가 서초동(검찰청)에 가는 것을 한사코 꺼리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LG는 한국 5대 재벌(삼성, 현대, SK, LG, 롯데) 중 총수 일가가 유일하게 사법 처리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 물론 방계로 따지면 존재한다. 기업 말아먹고 구속된 LIG 일가라던지, 구본무와 5촌관계인 판토스 오너인 구본호 등.[15] 그리고 판토스 인수로 오너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일자 바로 오너 일가 지분을 법에 맞게 정리해버렸다. 2021년 외주업체의 청소노동자 해고 시위에서 청소업체의 대주주가 구광모 회장의 고모라는 사실이 보도되자, 두 고모가 바로 지분을 처분하고, 분쟁 해결을 약속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 그만큼 LG는 서초동과 연관되는 것을 굉장히 예민하게 여긴다. 장기적으로 엄청난 장점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리고 최순실 게이트에서 삼성과 달리 무관해서 이미지면에서 여러 이득을 보았고, 10대 재벌 가운데 현대중공업, GS 등과 더불어 연관성이 없었고, 도리어 피해를 본 입장이라 국회의원들에게도 큰소리 쳤다. 정경유착의 폐해를 덜 겪은 셈.
특히 상속 문제에서 현시대의 LG급 재벌들은 대를 이은 상속이 계속 불가능하다. 삼성의 이재용은 상속 문제로 감옥에 갔고 다시 감옥에 갈 확률이 높은 상황이다. 결국 대외적으로 4세 승계 포기선언까지 해버린다.[16] 현대차의 정의선도 지금 순환출자 때문에 곤란한 실정이며, 후대 승계를 감안하면 암담한 수준이다. SK는 LG와 같은 지주회사 체제지만, 지분율이 LG보다 탄탄하지 못해서 쉽지 않다. 반면 구광모의 LG 승계는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상속세를 냈지만 그야말로 깔끔하고 탄탄하다. 구씨 친족들이 (주)LG의 지분율을 안정적으로 40~50%대를 계속 유지하며 대를 이은 영속을 구축했다. GS와 더불어 5세, 6세를 가더라도 구씨 오너가 바뀌지 않을 정도. 김상조가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괜히 재벌 지배구조의 모범 사례로 LG를 언급한 것이 아니다. 보수든 진보든 LG의 상속과 지배구조는 꼬투리 잡을 이유가 없는 것.
다른 재벌보다 당장 손익이 뒤쳐지더라도 LG만의 장단점이 있는 셈. 그룹 분가 역시 GS, LS, LIG를 비롯한 방계들이 독립할때 어떠한 잡음 하나 없었다. 2020년 확정된 구본준의 'LG상사그룹(가칭)' 계열분리 역시 LG의 규모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선의 회사들을 가져가며, 반대로 구본준 또한 손해보지 않는 회사들을 얻었다. 구본준의 LG 지분처리는 구본준이 가져가는 LG상사 등의 LG보유지분과 맞교환해서 LG 본가의 지배력을 유지시킨 깔끔한 계열분리다. 다른 재벌들이 상속, 왕자의 난, 계열분리로 얼마나 막장을 겪었는지 그리고 향후 치뤄야 할 재벌들이 수두룩한 것을 보면 아주 모범적.
대신 SK, 롯데 등이 아직 분가와 독립을 하지 않아서 LG와 경쟁하거나 더 큰 규모의 재벌이 된 것을 생각하면 꼭 장점만은 있는 건 아니다.[17] 단적으로 계열분리한 범 LG가를 합치면 '''자산 240조 이상의 재계 2위''' 규모다. 경쟁 기업들이 합병으로 거대규모의 하나의 기업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트렌드에서 2020년에도 발생된 LG 방계들의 독립은 LG의 경쟁력을 악화시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만약 방계들이 독립하지 않았으면 LG의 사이즈는 상당히 커졌을 것이다. 이제 독립할 방계들은 모두 정리되었으니 앞으로 LG가 어떤 식으로 다시 치고 올라올지 매우 중요한 시기다.
2. 기업정신
2.1. 창업이념
- 인화단결, 개척정신, 연구개발
2.2. 기업이념
2.3. 행동규범
- 고객이 원하는 것을 귀담아 듣고 실천으로 응답하자.
- 도전없이 성공없다.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하자.
- 안되는 이유보다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자.
- 칭찬을 자주 하자. 칭찬이 신바람 나게 하는 것이다.
- 협조는 내가 먼저, 성과는 그에게 먼저 주자.
2.4. 비전
''' 도약2005 (1996~2005) '''
- 가치관
'''최고의 추구, 성과주의, 정도 경영'''
- 기본철학
'''세계적 관점에서의 경쟁'''
'''고객, 사원, 주주의 최고 가치를 추구'''
'''정도 경영을 바탕으로 일등 추구'''
'''기업시민으로서 사회 발전에 공헌'''
- 성장 목표
'''질/양에서 1등 실현'''
'''고객감동 Brand Image 구축'''
'''최고의 보람있는 직장 달성'''
- 성장 전략
'''미래형 사업 구조로의 전환, 세계화, 집중과 철수'''
- 성장 역량
'''성장에 필요한 Cash 확보'''
'''미래형 차별화 기술 확보'''
'''성장 필요 Skill 확보'''
'''한계 돌파 능력 확보'''
- 성과 실현 문화
'''도전, 단순성, Speed, Boundaryless'''
- 그룹 경영 체제
'''CU장 중심의 자율경영체제를 유지하며 높은 성취 욕구와 주도적인 추진 능력, 세계 최고의 전문 Skill을 갖춘 도전적인 조직'''
- 혁신 리더의 확보
''' LG Way (2005~ ) ''''''최고 인재의 발굴과 확보에 주력'''
'''최고의 성과를 내는 인재에게 최고의 대우를'''
'''체계적인 육성'''
- 비전
'''고객이 신뢰하는 LG'''
'''투자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LG'''
'''인재들이 선망하는 LG'''
'''경쟁사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LG'''
- 행동방식
'''정직, 공정한 대우, 실력을 통한 정당한 경쟁'''
3. CI
3.1. 변천사
3.2. 사명 변경 후 CI 통합
[image]
보다시피 얼굴무늬 수막새에서 LG의 로고가 창안되었다고 한다.
[image]
변경한 로고는 표절 논란이 있었다.
2014년 12월까지 쓰인 로고로, 이 때 사용된 전용 라틴 문자 서체는 Unica SH라고 한다.
2015년 1월부터 옆에 붙은 글꼴이 바뀌었다. 기존의 LG 로고와 크게 다른 점은 뒷글자 'G'의 모양. 2014년 하반기에 LG전자에 시범적으로 적용되었다가 12월 LG유플러스에 적용된 후 2015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새로 바뀐 글꼴은 LG Smart 글꼴로, 해당하는 한글 글꼴은 산돌에서 만들었다.
LG가 유명한 것으로 한번 보면 잊기 힘든 로고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로고는 그룹명을 정식으로 LG로 바꾼 1995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GE, 코카콜라, 맥도날드 등 유명기업들의 CI를 제작했던 미국의 Landor社에서 CI 개발 작업을 진행했으며, Landor社는 이후 한국의 KB, GS그룹, 대한항공 등의 CI 개발도 담당했다. 최종 채택된 시안의 제목은 "The Face of the Future." 즉 미래의 얼굴이다. 신라 기와(얼굴무늬 수막새)의 사람의 얼굴을 형상화했는데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의미는 기업세계, 미래, 젊음, 인간, 기술 등의 5가지 개념과 정서를 형상화해 인간이 경영의 중심에 있음을 상징한다는 것. 눈을 하나만 넣은 것은 한가지 목표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구본무 회장이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20] 그리고 이 로고를 이어폰에 넣는 짓을 저질렀다(...) 그리고 CI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L,G 글자가 보인다. 여담으로 일본에 나오는 LG 휴대폰은 얼굴 로고를 거의 볼 수 없다. 일본에 나오는 LG 휴대폰은 보통 "LG Electronics"[21] 레터링만 넣거나 이마저도 없이 제품명과 통신사 로고만 들어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22] .
하지만 해외에선 팩맨같이 생겼다고 놀림받기 일쑤. 특히 LG의 안습한 스마트폰 실적이 겹치면서 언제부턴가 저놈의 로고만 안 붙어있으면 스마트폰이 더 잘 팔릴 거 같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있다. LG G6에도 18:9 풀비전 디스플레이 탑재로 베젤이 줄어듦에도 불구하고 로고는 여전히 붙어있었으나, 비판을 의식한 건지 LG V30부터는 전면에서 LG 로고가 빠졌다.
사람 얼굴을 형상화해 왠지 친근한 이미지를 주기도 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살짝 변형된 LG 짝퉁 로고가 판을 치고 있기도 하다.
4. 슬로건
'''인간 기술 미래''' (1984~1989)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1990~1994)
'''럭키금성이 LG로 바뀝니다.''' (1995)
'''이젠 LG입니다''' (1995)
'''사랑해요 LG''' (1995~1998/2003~2009)
'''正道경영 초우량 LG''' (1995~1998)
'''도전 50년, 도약 50년''' (1997)
'''새 생각 새 기술 새로운 미래 - 밀레니엄 드림 LG''' (1999)
'''무한커뮤니케이션 - LG''' (2000)
'''기본을 생각합니다. 미래를 생각합니다.''' (2001)
'''With LG''' (2002~2003)
'''생각의 힘을 믿습니다.''' (2004)
'''Think New LG''' (2005)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2007~2008)
'''LG는 사랑입니다.''' (2009~2012)
'''사랑해요 코리아''' (2010)
'''함께해요 다문화''' (2012)
'''innovation for a better life''' (2014)
'''옳은미래.''' (2017)
'''Life's good''' (2019~ 현재)
5. 사가
1978년 6월부터 <럭키가족의 노래>라는 명칭으로 제정되었으며, 작사는 이은상, 작곡은 김성태가 맡았다.
5.1. 럭키금성 시절 가사
듣기
5.2. 현재의 가사
6. 특징
6.1. 독립운동 지원? 친일?
일제강점기때 LG 구씨 집안이 독립운동을 지원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창업주 구인회의 아버지 구재서가 김구에게 5천원을 지원했다는 사실의 근거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다만 1979년 방송작가 한운사가 쓰고 럭키그룹 연암기념사업회가 낸 <연암 구인회 일대기>[23] 에 따르면 창업주 구인회가 독립운동가인 안희제에게 1만원[24] 을 건네며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타당한 사료가 적다. 한겨레에서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반대로 구인회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사업자금 8천원을 대출받고, 일제가 조직한 진주상공회의소의 의원직을 역임함과, 태평양전쟁을 찬양하는 신문광고에 후원기업으로 이름을 올리고, 전시에 조선의 물자통제를 담당했던 경남상공경제회의 진주지부원을 지낸등 친일 행적에 대한 관련 근거는 충분한 편이다. '''구인회가 독립운동을 지원했을 수는 있으나 친일적 행보가 더 명확하다는 점에서 독립운동만 부각되는 것이 타당한가하는 의문이 존재한다.''' 허나 이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고 대부분 LG가 독립운동가에게 지원했다는 일화만 알려져 인터넷에서 LG의 여론이 좋은 편이며 회사측에서도 이것을 이미지메이킹에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범 LG가인 GS그룹의 독립운동 지원에 대해서는 잡음이 적다. GS그룹 초대 회장 허창수의 아버지 허준구[25] 는 만주 독립운동의 자금줄 역할을 한 백산상회를 공동 설립한 인물이다. '''백산상회는 당시 독립운동 전체 자금의 60%를 지원했던 곳이다.''' 기사 또한 그의 할아버지 허만정도 일제 몰래 독립운동을 꾸준히 지원했다.
결론적으로, LG의 경우 근거가 상당히 미흡하고 확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문이 들지만 그렇다고 부정하기는 애매하다. 실재 창업주 부친이 지원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GS의 경우 독립운동지원은 확실한 편이다. 이로 봤을때 GS가 계열 분리전 LG에 있었고 구씨와 허씨의 동업으로 오랫동안 LG라는 이름하에 존속되다보니 허씨의 독립운동 지원이 LG가 독립지원을 했다는 식으로 부풀려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LG그룹의 행보[26] 로 인해 애국기업이라는 인식은 전부 사라지고 '''노골적인 친중 행보로 매국기업으로 인식되는 상황이다.'''[27]
6.2. 사회 환원 활동
- 2012년부터 에티오피아에 LG희망마을이라는 이름의 마을을 만들어 마늘 재배를 알려준 뒤[28] 주민들이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 알려졌다. 마을 자체를 설계부터 LG에서 했다.
- 매헌윤봉길기념사업회 측이 재정난을 겪자 LG하우시스에서 윤봉길 의사 기념관 건물 보수를 해주기도 했다.
- 복지시설에 있는 LG전자 제품은 무료로 수리를 해준다. #
- 2015년 8월 12일 LG그룹이 비무장 지대에서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 폭발 사고로 중상을 입은 장병 2명에게 각각 5억원의 위로금을 전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기사[29] 국가에서 저 위로금에도 세금을 매길게 뻔하기에 기부의 형태로 전달했다고 한다. 이것이 기업 이미지 향상을 위한 상업적 목적의 행동이라 할지라도 칭찬해 마땅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 2016년 1월 31일 대구지하철 1호선에서 한 장애인이 선로에 떨어지자 해병대에 복무하다 휴가 나온 해병대원이 구출했는데 LG그룹은 그가 대학을 마치는 대로 신입사원 특별 채용하기로 했다.
- 2016년 10월 11일 태풍 ‘차바’로 피해를 입은 수해 지역의 복구를 위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성금 30억원을 기탁했다.#
- 체조 선수 양학선이 생활고 걱정없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5억을 쾌척하기도 했다.
-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컬링 여자 국가대표팀 팀 킴을 LG전자 청소기 광고 모델로 기용하고 다음 올림픽 준비를 위해 4년간 후원하기로 했다.
7. 계열사
7.1. 지주회사
- LG: 한국 5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수지주회사를 유지하고 있고, 재무건전성도 매우 뛰어나다. 보통 지주회사는 '지주'나 '홀딩스'가 붙는데, LG는 지주회사 이름도 '주식회사 LG'다. 이는 한때 동업관계였던 GS그룹도 마찬가지.
7.2. 전자 부문
- LG전자: 1958년 금성사로 설립되어 이어온 전자기업. LG의 핵심 계열사이며 현 법인은 2002년에 'LGEI' 출범으로 분할된 회사다. 지주회사에서 33.7%를 가지고 있다.
- LG이노텍: 소재ㆍ부품 기업. 카메라 모듈 및 차량용 전장 부품 사업, LED 조명과 기판 소재 사업을 영위한다.[30] 매출은 광학솔루션사업부 외 47.69%, 기판소재사업부 23.13%, 전장부품사업부 15.93%, LED사업부 13.25% 구분된다.
- LG베스트샵: 1997년 세워진 대경유통을 모태로 한 회사로, 2002년 LG전자가 인수했다. 전자제품 유통업체로 삼성디지털프라자와 경쟁하고 있다. 이전 명칭은 "하이프라자"였다. 일반적으로 LG대리점이라고 하면 여길 뜻한다.
- 하이텔레서비스: 간단하게 말해서 LG전자 콜센터 기업이다. 2010년 자회사로 분리되었다.
- 하이엠솔루텍: LG전자의 서비스 전문 자회사로 시스템 에어컨과 공조 기기 등을 관리 서비스 하고 있다.
- 하이케어솔루션: LG전자의 가전렌탈 전문 자회사로 정수기, 냉장고, 스타일러 등 케어솔루션 제품들을 관리 서비스 하고 있다.
- LG디스플레이: 구 LG필립스LCD. 필립스가 지분을 팔고 철수하면서 현재 사명으로 변경. 휴대폰, TV, 모니터 등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를 제조한다. 특히 대형 LCD 시장에서 세계 1위이며, 디스플레이 전체로 봐도 삼성디스플레이와 함께 1,2위를 다투고 있다. 외형(매출)로 보나 내실(영업이익)으로 보나 LG에서 손꼽히는 알짜 계열사. 애플의 제품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의 주요 공급사도 LGD다. OLED 분야에서는 SMD가 중소형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대형 OLED 시장은 LGD가 꽉 잡고있다. 다만 중소형과 달리 대형 OLED 시장은 개화가 늦어지고 있는 반면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되며 LCD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중소형 OLED에 대한 대응은 삼성에 비해 크게 늦어지면서 시장의 우려가 있다.
- 실리콘웍스: 대전에 위치한 순수 반도체 설계회사. 1999년 설립된 회사로, 2014년 LG가 인수했다.
- ZKW: 오스트리아의 자동차용 헤드라이트 전문 업체. 2018년 LG전자가 인수했다.
7.3. 화학 부문
- LG화학: 석유화학, 생명과학기업으로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를 뿌리로 하며, 현 법인은 2001년에 분사된 법인이다. 바이오 사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2017년 1월 1일자로 LG생명과학을 흡수합병했다.
- LG생활건강
- 코카콜라음료: 본디 한국에서 코카콜라 사업은 코카콜라 본사에서 원액을 공급받아 우성식품(부산·경남), 호남식품(호남), 범양식품(대구·경북·충청), 두산음료[31] (서울·경기·강원) 등 4개 음료회사에서 완제품을 제조, 판매하던 형태였다. 그런데 1996년 코카콜라 본사에서 직영체제로 전환하면서 4개 사의 라이선스를 회수했는데, 범양식품은 이에 반발하여 독자 출시한 것이 '815 콜라'고, 나머지 3개사는 1997년 한국코카콜라보틀링(주)으로 통합되었다. 이 회사를 2007년에 LG생활건강에서 인수하여 이름을 바꾼 것이다.
- 한국음료: 2010년 인수한 비탄산음료 제조회사.
- 해태htb: 구 해태음료. 2011년 인수된 후 2013년 다이아몬드샘물을 합병했다.
- 더페이스샵: 화장품 업체. 1984년 미주산업으로 시작해 2003년 더페이스샵으로 변경한 뒤, 2009년 LG그룹에 인수되었다.
- 태극제약: 구 태극약품. 2017년 인수되었다.
- 코카콜라음료: 본디 한국에서 코카콜라 사업은 코카콜라 본사에서 원액을 공급받아 우성식품(부산·경남), 호남식품(호남), 범양식품(대구·경북·충청), 두산음료[31] (서울·경기·강원) 등 4개 음료회사에서 완제품을 제조, 판매하던 형태였다. 그런데 1996년 코카콜라 본사에서 직영체제로 전환하면서 4개 사의 라이선스를 회수했는데, 범양식품은 이에 반발하여 독자 출시한 것이 '815 콜라'고, 나머지 3개사는 1997년 한국코카콜라보틀링(주)으로 통합되었다. 이 회사를 2007년에 LG생활건강에서 인수하여 이름을 바꾼 것이다.
- LG하우시스: 건축자재 및 고기능 소재 생산업체.[32] 2009년 4월 LG화학의 산업재 사업부문이 분할되어 새롭게 출범했다. 건축자재, 특히 바닥재 분야에서는 한화 L&C나 KCC조차도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아성을 구축했다.
- LG-TOSTEM: LG하우시스와 일본 토스템의 합작회사.
- LG MMA: LG의 지분 50%, 일본의 스미토모화학과 일본촉매가 각각 25%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조인트벤처 회사다. 주요 상품은 메틸메타아크릴레이트, 폴리메틸메타아크릴레이트, 메타크릴산의 3종이며, 소매를 하지 않는 B2B 회사. 일반인에게는 전혀 유명한 회사가 아니지만, 사실 알고보면 굉장히 알짜인 기업으로 매우 높은 영업이익율을 보여주고 있다. 이로 인한 (주)LG에 매해 납부하는 배당금은 LG그룹 전체로 보아도 최상위권. 내부적인 연봉이나 복지수준 역시 동종업계 최상위권을 자랑하는 것으로 은근히 유명하지만, 조인트벤처로의 한계, LG화학의 간섭 등으로 인해 경영전략이 자유롭지 못하고, 대부분의 안정적인 회사가 그러하듯 딱딱하고 관료적인 문화가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7.4. 통신·서비스 부문
- LG유플러스: 통신사. 2010년 7월, 구 LG텔레콤과 LG데이콤, 그리고 LG파워콤을 합병해 만든 회사다.
- LG CNS: 1987년 설립된 종합 IT서비스 기업. 2018년 4월, 자회사 LG엔시스를 흡수합병했다. B2B기업이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지만 2018년 기준 대한민국 SW기업 중 삼성SDS와 네이버에 이은 매출액 순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 급부상하면서 그룹 차원에서도 SW기업인 LG CNS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비즈테크파트너스: 기업 솔루션 전문 기업이다.
- S&I 코퍼레이션: 건설[33] 계열사 내 사업들이 GS건설과 강력하게 연결되었으나, FM, 레저사업을 하는 토털 서비스 회사. 종합 리조트 및 스키장 곤지암리조트를 소유하고 있다. 2015년 8월 LG솔라에너지를 합병했다. 마곡에 있는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보타닉 파크도 운영한다. 비상장 기업으로 지주회사인 LG가 100% 출자했다.
- LG상사: 종합상사. 2010년대부터는 석탄광산 개발 등 자원개발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한 때 트윈와인, 픽스딕스 등의 사업을 벌였으나 지금은 철수했다. 2017년까지만 해도 지주회사 LG의 자회사가 아니라 오너 가문인 구씨 일족들이 직접 지분을 보유한 회사였지만, 2018년 들어서 자신들의 지분을 지주회사 LG에 현물로 출자하지 않고 매각했다. 아마도 구본무의 사망으로 인해 그룹의 지배구조를 중앙으로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하에 내린 결정인 듯.
- 판토스: 공동 창업주인 구인회의 동생 구정회 일가가 세운 물류 종합기업. 2014년 말부터 인수 작업을 시작해 2015년 5월 경에 LG상사의 종속회사로 편입.
- LG스포츠: LG 트윈스와 창원 LG 세이커스 등의 운영을 맡고 있다.
- 지투알: 1984년 LG애드로 설립된 광고회사로 그룹 내 광고마케팅 전문 지주회사다. 2002년 WPP에 매각했다가 2008년 재인수됨.
- HS애드: 2004년 구 LG애드에서 물적분할됨.
- LBEST: 2007년 설립된 광고회사.
- LG경영개발원
- LG경제연구원, LG인화원
7.5. 기타
- LG복지재단
- LG상록재단
- LG연암문화재단
- LG상남언론재단
7.6. 범 LG가 기업
- LS그룹 (구 LG전선, LG산전 등)
- LIG그룹 (구 LG화재 등)
- 희성그룹[34] (구 희성금속공업, 한국엥겔하드, 국제전선 등)
- 코스모그룹[35]
- LT그룹[38] : 2018년부터 희성그룹에서 계열분리를 단행하여 희성그룹의 절반인 LT삼보, LT정밀을 가지고 독립했다.
- LG상사그룹(가칭): 2020년 LG그룹에서 소규모 계열분리를 통해 구본준 LG그룹 고문이 독립한 기업집단. LG하우시스, 판토스, LG상사가 주요 계열사가 될 예정.
7.7. 매각/독립된 회사
- 금성의료기: 독일 지멘스와의 합작사로, 1993년 계열분리 후 1995년부터 '지멘스메디칼시스템'이 됐다가 2001년 지멘스(주)에 합병됨.
- 데이콤시스템테크놀로지: 2002년 분리 후 'SQ테크놀로지'로 변경해 이듬해에 한국IBM 자회사로 들어갔으나, 2015년 신규법인 에스큐앤티에 사업부가 넘어간 후 2016년 폐업됨.
- 럭키자동차서비스손해사정: 1994년 최승언 대표에게 매각됐다가 1999년 LG화재에 매각된 후 '럭키자동차손해사정', 'LIG손해사정'을 거쳐 2010년 LIG타스손해사정서비스(현 KB손해사정)에 합병됨.
- 미래신용정보: 1999년 계열분리.
- 부민상호저축은행: 2006년 SLS중공업에 매각했다가 2007년 한국종합금융그룹에 편입돼 '영남상호저축은행', 2010년 영남저축은행으로 각각 변경됐으나, 2013년 퇴출 후 자산이 IBK저축은행으로 인수됨.
- 부산문화텔레비전방송: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MBC 본사로 매각된 후 1983년 부산문화방송에 합병됨.
- 삼우특수금속 (현 지앤피): 1993년 한국전선에 매각되어 1994년 신한전선, 2001년 지씨아이를 각각 거쳐 2004년 LG전선그룹으로 매각됨.
- 코코넛: 1999년 데이콤이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 펜타시큐리티시스템 등과 함께 설립한 보안관제/컨설팅 업체. 2000년 데이콤 등과 세트로 인수됐다가 얼마 뒤 계열분리 후 안철수연구소 자회사로서 2005년 '안랩코코넛'으로 변경했다가, 2007년 안철수연구소와 합병됨.
- CIC코리아 (현 트랜스코스모스코리아): 텔레마케팅 전문 업체. 2006년 계열분리.
- LG선물 (현 NH선물): 2004년 계열분리.
- LG하니웰 (현 한국하니웰): 1999년 미국 하니웰 사에 지분이 매각됨.
- LG투자신탁운용 (현 키움투자자산운용): 2004년 우리금융그룹에 매각되어 '우리자산운용', '우리크레디트스위스자산운용' 등이 되었다가 2014년 키움증권에 매각됨.
- LG반도체: 구 금성일렉트론. 1998년 현대그룹에 매각 후 '현대반도체'로 변경했다가 이듬해 현대전자로 합병됨.
- LG쉬플리: 1999년 미국 롬&하스 사에 지분을 팔고 '쉬플리코리아'로 변경됐으나 2001년 폐업됨. 현재 있는 쉬플리코리아와는 업종이 다르다.
- LG실트론 (현 SK실트론): 반도체 소자 기판으로 사용되는 단결정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한다. 1983년에 설립된 동부그룹과 미국 몬산토의 합작기업이 전신이다. 1990년 LG에 편입되었다. 2017년 다시 반도체 산업의 수직계열화를 노리는 SK그룹에 매각해 결국 반도체 사업에서 대부분 철수했다.
- LG얼라이드시그널: 1998년 미국 얼라이드시그널 사에 지분매각된 후 1999년 엘라이드시그널코리아(현 가레트모션코리아)에 합병됨.
- LG오웬스코닝 (현 한국오웬스코닝): 구 럭키화이바그라스-럭키오웬스코닝. 1999년 미국 오웬스코닝에 경영권을 매각함.
- 루셈: 일본 OKI반도체와 합작하여 2004년 7월에 설립한 회 평사로판디스플레이의 핵심부품인 Drive IC와 BLU용 LED를 생산한다. 2018년 1월 LB세미콘에 매각했다.
- LG-에릭슨 (현 에릭슨-LG): 스웨덴의 통신장비업체 에릭슨과 LG전자의 합작회사. 2013년 지분 감소로 계열제외됨.
- LG정밀 음향기기사업부문 (현 에스텍): 구 금성포스타-LG포스타. 1999년 사원주주업체로 분리됨.
- LG-히타치 워터 솔루션 (현 테크로스 워터 앤 에너지): 2012년 합작 출범한 기업으로 LG는 51%를 보유하고 있었다. 산업용 수(水)처리, 하수 재이용, 해수담수화, 대기오염방지, 폐자원 에너지화 등의 환경사업을 하다가 2019년 테크로스에 하이엔텍과 함께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 하이엔텍 (현 테크로스 환경서비스): 2011년 대우건설로부터 인수한 환경 엔지니어링 업체로 주로 공공, 민간 수처리 시설 O&M 사업을 하고 있다. 2019년에 테크로스에 매각함.
7.8. 해산된 회사
- 곤지암레저: 2006년 서브원에 합병됨.
- 국제신문: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부산일보에 합병된 후 1983년 청산됐다. 현 법인은 1988년 복간을 1년 앞두고 설립됐다.
- 금성계전: 1995년 LG산전에 합병됨.
- 금성기전: 이하 동일.
- 금성로토렉스: 1990년경 계열제외.
- 금성마그네테크: 비디오테이프 제조업체. 1987년 금성사에 합병됨.
- 금성부품: 구 한도공업. 1992년 금성사에 합병됨.
- 금성자판기: 1989년 금성산전에 합병됨.
- 금성전기: 1991년 금성사에 합병됨.
- 금성통신: 1995년 LG전자에 합병됨.
- 금성판매: 1972년 폐업 후 사업부문이 금성사로 넘어감.
- 금성특수기기: 1993년 금성산전에 합병됨.
- 금성팩토링: 1988년 LG신용카드에 합병됨.
- 다이아몬드샘물: 2013년 해태음료에 합병됨.
- 대한유조선: 1994년 호남탱카에 합병됨.
- 데이콤새틀라이트멀티미디어시스템: 2001년 청산 후 폐업됨.
- 데이콤아이엔: 2002년 청산 후 2003년 폐업됨.
- 동양전기화학공업사: 1953년 락희화학에 합병됨.
- 락희비니루공업: 1966년 락희화학에 합병됨.
- 락희유지공업: 1968년 락희화학에 합병됨.
- 럭키섬유: 1970년 반도상사에 합병됨.
- 럭키소재: 1991년 럭키에 합병됨.
- 럭키체인: 1980년 희성산업에 합병됨.
- 럭키해외건설: 1979년 럭키개발에 합병됨.
- 럭키훽스트: 1993년 럭키석유화학에 합병됨.
- 반도스포츠: 1992년 럭키금성상사에 합병됨. 이에 일부 직원들이 독립해 동명의 법인을 또 세웠으나 2008년에 문을 닫았다.
- (구)서브원: 2005년 LG MRO에 합병됨.
- 삼경석유: 1994년 세방석유에 합병됨.
- 성요사: 반도체 제조업체로, 1995년 일부 종업원이 독립해 '스마트전자'를 세운 후 1998년경부터 청산됨.
- 성호기업: 구 성호부동산. 1994년 세방석유에 합병됨.
- 세계산업: 1978년 럭키개발에 합병됨.
- 신정개발: 1988년 희성산업에 합병됨.
- 신정유업: 구 신정운수-신정상운. 1989년 대한유조선에 합병됨.
- 심마니: 2002년 데이콤멀티미디어인터넷에 합병됨.
- 온산동제련: 1982년 한국광업제련에 합병됨.
- 원전에너지: 1999년 LG칼텍스정유에 합병됨.
- 정우에너지: 옛 정우개발 계열사로, 1985년 여수에너지에 합병됨.
- 켐그린에너지: 2016년 팜한농에 합병됨.
- 트윈와인: 2012년 폐업됨.
- 팜흥농: 구 대농종묘. 2016년 팜한농에 합병됨.
- 픽스딕스: 디지털카메라 수입/유통업체. 2012년 철수 후 2014년 폐업.
- 하우시스이엔지: 2018년 LG하우시스에 합병됨.
- 하이로지스틱스: 구 하이비지니스로지스틱스. 2016년 범한판토스로 합병됨.
- 한국인터넷데이터센터: 2006년 데이콤에 합병됨.
- 호유해운: 2000년 LG칼텍스정유에 합병됨.
- 희성제지: 1984년 희성산업에 합병됨.
- LG교통정보: 1999년 LG인터넷에 합병됨.
- LG금속: 1995년 LG산전에 합병됨. 현 LS-nikko동제련 및 LS메탈의 뿌리이기도 하다.
- LG대산유화: 구 현대석유화학 대산공장 1단지. 2006년 LG화학에 합병됨.
- LG데이콤: 2010년 LG텔레콤에 합병됨.
- LG돔: 뚝섬 돔 경기장 건립업체. 1998년 청산.
- LG레저: 1999년 LG유통에 합병됨.
- LG마이크론: 2009년 LG이노텍에 합병됨.
- LG미디어: 1997년 LG소프트웨어에 합병됨.
- LG백화점: 2002년 LG유통에 합병됨.
- LG생명과학: 2017년 LG화학에 합병됨.
- LG석유화학: 2007년 LG화학에 합병됨.
- LG솔라에너지: 2015년 서브원에 합병됨.
- LG수퍼센터: 2002년 LG유통에 합병됨.
- LG엔지니어링: 1999년 LG건설에 합병됨.
- LG인터넷: 채널아이 운영사로, 2000년 사업부문이 데이콤으로 넘어간 후 2001년 청산됨.
- LG전자부품: 구 금성알프스전자. 1998년 LG포스타에 합병됨.
- LG전자서비스: 1999년 청산.
- LG정보통신: 2000년 LG전자에 합병됨.
- LG정유유통: 구 대일석유-호유판매. 1997년 LG정유판매에 합병됨.
- LG정유판매: 구 세방석유. 1998년 LG칼텍스정유에 합병됨.
- LG종합금융: 구 부산투자금융. 1999년 LG증권에 합병됨.
- LG파워콤: 2010년 LG텔레콤에 합병됨.
- LG폴리카보네이트: 2011년 LG화학에 합병됨.
- LG할부금융: 1998년 LG카드에 합병됨.
- LG ENC: 구 진로엔지니어링. 1998년 LG엔지니어링에 합병됨.
- LG C&D: 구 금성포스타-LG포스타. 1999년 LG정밀에 합병됨.
- LG-IBM PC: 2005년 LG전자에 합병됨.
- LGEI: 구 LG전자 법인을 모태로 한 지주회사. 2003년 LGCI에 합병됨.
- V-ENS: 2013년 LG전자에 합병됨.
7.9. 사회공헌
- LG배 조선일보 세계기왕전을 후원하고 있다.
8. 오너 일가
오너 일가에 대해서는 범 LG가 문서를 참고할 것.
창업주는 연암 구인회이며, 현 회장은 구광모다.
역사적으로도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이기도 하다.출처 사농공상 일례로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로 인해, 딸은 물론 안주인들조차 문밖 출입이 쉽지 않다고 한다. 삼성 일가의 여성(이명희, 이부진 등)들이 기업 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
경영 승계에서도 마치 옛 양반 가문이나 조선 왕실처럼 장남 승계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초대 구인회부터 구본무까지 모두 장남이며, 구본무의 경우 유일한 아들이 사고로 일찍 죽자 딸들에게 승계하지 않고 조카인 구광모(동생인 구본능의 아들)를 양자로 입양했다. 굉장히 보수적인 원칙이지만 대신 이른바 '왕자의 난'과 같은 재산 상속 및 경영권 계승과 관련된 갈등은 적은 편이다.
9. 지주회사 지배구조
2019년 5월 30일 보통주 기준.
10. 경영진
10.1. 회장급
- 구광모 (LG 대표이사 회장)
10.2. 부회장급
- 권영수 (LG 대표이사 부회장)
-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
- 차석용 (LG생활건강 대표이사 부회장)
10.3. 사장 및 부사장급
- 홍범식 (LG 경영전략팀장 사장)
- 이방수 (LG CSR팀장 사장)
- 권봉석 (LG전자 대표이사 사장)
- 박일평 (LG전자 CTO 겸 SW센터장 사장)
- 홍순국 (LG전자 소재생산기술원장 사장)
- 권순황 (LG전자 BS사업본부장 사장)
- 이상규 (LG전자 한국영업본부장 사장)
- 김진용 (LG전자 VS사업본부장 부사장)
- 박형세 (LG전자 HE사업본부장 부사장)
- 류재철 (LG전자 H&A사업본부장 부사장)
- 이연모 (LG전자 MC사업본부장 부사장)
- 손지웅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장 사장)
- 노국래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장 부사장)
- 남철 (LG화학 첨단소재사업본부장 전무)
-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사장)
- 김명환 (LG에너지솔루션 CPO 사장)
- 정호영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
- 황현식 (LG유플러스 대표이사 사장)
- 김영섭 (LG CNS 대표이사 사장)
- 정철동 (LG이노텍 대표이사 사장)
- 윤춘성 (LG상사 대표이사 부사장)
- 이명관 (LG인화원장 사장)
- 김영민 (LG경제연구원장 부사장)
- 강계웅 (LG하우시스 대표이사 부사장)
- 이동열 (S&I 코퍼레이션 대표이사 사장)
- 이규홍 (LG스포츠 대표이사 사장)
- 최원혁 (판토스 대표이사 부사장)
- 정성수 (지투알 대표이사 부사장)
- 손보익 (실리콘윅스 대표이사 사장)
- 이유진 (팜한농 대표이사)
10.4. 역대 임원
- 회장
- 부회장
- 구본무 (1989~1993)
- 회장실 사장: 구 기획조정실 사장.
- 허준구 (1968~1970)
- 구정회 (1970~1971)
- 김주홍 (1971~1978)
- 이헌조 (1978~1984)
- 변규칠 (1984~1989/1991~1995)
- 김지주 (1989~1991)
- 이문호 (1995~1998)
- 구조조정본부장
- 이문호 (1998)
- 강유식 (1998~2003)
- 전자 CU장
- 이헌조 (1991~1995)
- 구자홍 (1995~2003)
- 김쌍수 (2003)
- 화학 CU장
- 최근선 (1991~1994)
- 성재갑 (1994~2001)
- 정유 CU장
- 구두회 (1991~1995)
- 허동수 (1995~1998)
- 산전 CU장
- 이희종 (1991~1997)
- 이종수 (1997~1998)
- 유통 CU장
- 강말길 (1995~1998)
- 증권 CU장
- 진영일 (1995~1998)
- 보험 CU장
- 민수기 (1995~1997)
11. 취업
LG그룹/채용 문서 참조.
12. 기타
- 재벌들에게 매우 비판적인 다음 네티즌들조차도 구본무가 사망했을 때 ‘재벌들 중에서 나름 생각있던 분이셨는데... 좋은 곳으로 가세요’라든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LG 흥해라’와 같이 LG에 우호적인 댓글들이 추천 수 1, 2위를 다투고 있다. 이는 위에 서술한 독립운동 지원에 대한 사실여부가 애매한 일화가 인터넷에 퍼진 것이 영향으로 보인다.
- 계열사들의 광고 컨셉이 대체적으로 보수적이고 고급스러운 면을 강조한다. 오너 가문이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이라 그런지 생기 넘치고 발랄한 면은 부족한 편. 실제로 내부의 광고기획사인 HS애드에서도 광고 컨셉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오너들이 행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4대 총수 구광모가 현재 5대 재벌 총수들 중에서 가장 젊은 축인 40세인지라 앞으로의 모습을 기대해야 할 듯.
- 1989년에 안진제약을 인수하여 럭키제약으로 변경, 2010년엔 해태htb를 인수하고 영진약품 익산공장을 인수한 뒤 해태htb에 통합시킴으로서, LG가 생산하는 모든 약은 전북지역에서 만들어진다. ... 는 태극제약이 LG생활건강에 인수되기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 중국쪽 시장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5G장비를 시작으로 OLED TV파트너쉽까지 채결하는 등 근래까지 미세먼지 등의 환경오염 및 THAAD등으로 국민들의 대중국 정서가 굉장히 험악해져 있는 상황에서 이해하기 힘든 행보를 걷고 있다. 물론 사업적인 비전 등을 충분히 검토한 후 내린 결정이겠지만 중국의 희박한 지적재산권 인식 및 도를 넘는 자국 우선주의로 인해 과거 중국쪽 기업과 섣불리 협력체결을 맺었다 남은 단물마저 빨리고 버려진 한국 기업들의 선례가 한둘이 아니며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인해 중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무자비한 관세가 메겨지고 있는 등 점점 사업적인 메리트를 잃어가는 와중에 이러한 LG의 행위는 국민들 사이에서 LG제품의 불매운동 조짐까지 보일 정도로 이미지가 전례없이 추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작 중국과 사이가 나쁜 폴란드 시장을 공들이는거 보면 미중갈등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다만 화웨이 관련해서 LG가 대표주자격으로 국민 여론을 비난을 직격으로 얻어맞고 있으며, 실제로 이로 인해 LG의 이미지가 많이 실추됐고, 실제로 LG유플러스 가입자들 상당수가 불안해하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 봐도 화웨이는 쓰지 않는 추세인데 홀로 시대를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 사업이 현재 언제 정상화 될지도 모르는데 전세계(미국)을 적으로 돌리는 일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 천안의 식품 제조업 회사인 수향식품(주) 및 수향농장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유는...... 구자경이 경영에서 은퇴한 뒤 취미로 운영했던 농장이기 때문이다. 농장 및 제조 사업장 자체도 LG 재단에서 운영하는 연암대학교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LG 임직원들에게 명절 선물 등으로 뿌리는 선물세트로 이 수향식품에서 판매한 제품이 많다. 지분 자체는 구본능과 구본식이 절반씩 소유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경영은 구자경이 주도했다.
- 유튜브에서 유명한 네모바지 스폰지밥 한국어 더빙판에서 뚱이가 "사랑해요~" 라고 말하는 것이 그 때 당시 LG그룹의 슬로건이었다. 심지어 멜로디도 거의 같아 LG그룹의 광고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은 확실하다.
- 21세기 들어서 LG가 운영하는 스포츠단은 우승 복이 더럽게 없다. (LG 트윈스는 1990, 1994년 우승, 창원 LG는 준우승 2번과 정규시즌 우승만 1번 했을 뿐 챔피언결정전 우승 경력은 없음.)
- 사회적으로는 비교적 잡음이 적고 사회환원 활동도 활발하여 이미지가 좋은 편이었지만 안팎으로 비판이 많다. LG 계열사는 전반적으로 동종업계 경쟁사보다 연봉이 많이 낮은 편이라 재직자들의 평가는 미묘한 편이다.[48] 게다가 2021년 1월 LG트윈빌딩에서 정체불명의 용역들이 나타나 청소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다른 기업에 비해 사건사고가 덜 알려졌을뿐이지 별 다를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