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image]
[image]
▲ 2009년 철거된 현대상가[1]
1. 개요
2. 역사
3. 기타사항


1. 개요


세운상가(世運商街)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159 (장사동)에 위치한 주상복합 건축물. 정확히는 종로3가와 퇴계로3가 사이를 잇는 주상복합상가 건물군을 통틀어서 부르는 이름으로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이다.[2]
세운상가라는 이름은 당시 김현옥 서울특별시장이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라"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위치는 최북단이 종로3가역, 최남단이 충무로역에 인접하는 약 1km 길이[3]의 초대형 주상복합상가군으로 1967년부터 72년까지 세운, 현대, 청계, 대림, 삼풍, 풍전(호텔), 신성, 진양상가가 차례로 건립되었다.
처음에는 고급주거아파트와 상가가 함께 존재한 건물이였으나 60년대부터 이 부근은 미군부대에서 빼내온 각종 고물들을 고쳐서 판매하는 사업장이 자리잡은 동네였었고 이곳의 상가들은 이런 주변의 사업장과 결합해 가전을 비롯 각종 전자 제품의 메카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강남개발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주거지로서 메리트가 사라지게 되었고 결국 상부의 아파트들도 기술자들의 작업장으로 전용되면서 사실상 상가로 바뀌게 된다.
이후 한때 없는거 없이 다 있다던 산업군은 용산 전자상가를 필두로 빠져나가기 시작해서 상권이 쇠락하게 되었고 이에 건물은 슬럼화 되어버렸다. 이에 따라 서울 자치구는 마천루로 재개발을 바랬으나 서울특별시청문화재청은 이에 반대를 했고 오세훈 시장 시절에는 모든 건물을 철거해서 종묘남산을 잇는 녹지축으로 계획을 했으나 상인들의 반발과 현실적인 보상비용 문제로 이후 몇년간이나 질질 끌다가 사실상 폐기되었다. 건물 자체가 원래 당시 어느정도 시범적으로 만들어본 성격이라 애초에 재건축을 통해 현대 기준을 충족할 수가 없다.
박원순 시장 이후로는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통해 건물과 상가를 재생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다시·세운 프로젝트 홈페이지

2. 역사


[image]
[image]
세운상가가 들어서게 되는 부지를 차지하고 있었던 종삼.
멀리 세운상가가 건설 중이다.
세운상가는 일제시대때 일제가 미군의 폭격시 화재가 번지는 걸 막으려는 목적으로 비워둔 공터 자리에 세워졌다. 이후 한국전쟁이 종전을 맞고 1960년대까지 피난민과 월남자들이 모여들어 이 공터에 무질서한 판자촌이 형성되고 전쟁의 여파로 몰려든 여성들이 생계수단을 위해 모이면서 종삼은 사창가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거대한 사창가가 되었다.[4] 이후 1966년 세운상가가 착공이 시작되고 1968년 준공될 때까지 남아있다가 김현옥 서울특별시장의 "나비 작전"[5]으로 와해되었다.
슬럼화된 판자촌은 당시 김현옥 서울특별시장이 1966년 6월 개발 계획을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에게 허가받은 후 당해 8월까지 단 몇달 사이에 순식간에 철거되었고,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안을 바탕으로 1966년 착공해서 2년 후인 1968년 완공되었다.
[image]
[image]
세운상가가 들어서기 전 종묘 앞과 들어선 후의 종묘 앞.
[image]
1968년 세운상가 준공식에 참가한 박정희와 김현옥. 대림상가 앞이다.
[image]
세운상가군의 건물들 중 하나였던 1967년 계획된 을지로상가아파트 조감도.
일종의 입체도시를 만들고자 했던 원래 계획은 거창했다. 지상은 차도이자 주차장으로 만들고 3층은 공중복도로 만들어서 인도와 차도를 분리, 종로에서 충무로까지 이을 예정이었으나 이게 완전히 물 건너 갔다. 각 건설사별로 건물을 따로 지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복도가 각 건물별로 끊어져있으니 사람들은 당연히 지상의 차도로 다녔고 건물 내부는 슬럼화가 진행되었다. 유리지붕을 씌우려는 계획과 옥상정원 계획도 무산. 단 공중복도 계획은 2016년 초 들어 이와 같은 내용으로 계획되어 실로 오랜만에 재추진에 들어갔다.
완공된 세운상가군은 아파트도 흔치 않던데다 당시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주상복합단지였으며 완전히 새로운 개념으로 지어진 건물인데다 그 규모 또한 거대해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당시 유명인사들 또한 이곳에 많이 거주하는 등 인기를 구가했다. 그러나나, 이후 1980년대를 거치며 서울이 좀 더 개발되고, 세운상가를 대체할 백화점과 같은 고급 유통업체와 주거단지들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빠져나갔고, 설계안과 다른 비효율적인 건물의 구조때문에 점점 슬럼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1987년 용산 전자상가가 생기고 이곳의 업체들의 이전이 가속화되면서 90년대 후반에는 전자, 컴퓨터 유통은 빈껍데기로 전락했고 세운상가 인근지역은 낙후된 지역으로 청계천고가와 더불어서 낙후도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아세아 극장은 경영난으로 2001년 폐쇄되는 등 위기가 점점 고조되었다. 이에 따라 재정비 논의가 이어졌고 이 상가가 소속된 중구에서는 1km에 육박하는 길쭉한 마천루를 지으려 했는데 서울특별시청이 제동을 걸고 문화재청에서도 극렬히 반발해 결국 무산되었다.
[image]
▲ 2009년 현대상가를 철거하고 '세운초록띠공원'을 세운 상태의 주변 계획
2008년 7월, 철거 움직임이 있던 때에 <월간미술> 8월호에서 세운상가의 추억을 총망라하는 기사를 실었고, 12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세운상가와 주변 블럭을 모두 허물고 고층의 주거와 오피스 건물을 짓고 여기서 발생한 이익으로 세운상가 부지에는 종묘와 남산을 잇는 녹지축을 2015년 완공을 목표로 발표했다.
초기에는 사업이 빠르게 진행되어 2009년 5월 세운상가의 종로 쪽 가장 끝 건물인 현대상가가 철거되고 녹지로 바뀌었다. 서울시에서 사업 활성화를 위해 1,400억 정도를 우선 투입해 보상, 철거 등을 진행한 뒤에 빠르게 녹지를 조성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금융위기와 종묘 문화재 심의로 사업성이 떨어져 수익성이 악화되었고 사업은 3년 넘게 진척이 없었다가 결국 박원순 시장 집권 후 2012년 12월에 이르러 철거 계획은 취소되었다. 결과적으로 종로 길거리에 손바닥만한 공원을 위해 서울시가 1,400억원을 투입한 꼴이 되었다.
[image]
▲ 세운광장에서 바라본 세운상가 (2020년 3월)
현재는 전면 철거 후 재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점진적인 재생을 시도 중이다. 세운상가 앞은 현재 세운광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2022년까지 세운-청계-대림-공중보행로-인현상가-진양상가로 연결되는 보행데크를 완성하여 종묘부터 남산하단까지 연결되는 도심보행축을 완성할 계획이다. 이를 두고 건축가 승효상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3. 기타사항


  • 세운상가는 용산 전자상가가 들어서기 이전까지 각종 전자제품과 컴퓨터 및 컴퓨터 부품 등을 취급하던 곳으로 1987년 저작권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완전히 불법 복제의 온상이었다. 2000년대의 중국을 방불케하는 수준으로, 재미나도 이곳에서 롬을 카피했다는 의혹이 있다. 실제로 재미나는 세운상가에 있었는데 매장을 별도로 두지는 않았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 1980~90년대 당시에 못 청소년들이 성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모여들었던 장소이기도 했다(××× 테이프). 청소년들이 서성거리고 있으면 어디선가 "빨간 테이프 찾냐?"면서 수상한 남자가 접근해오는 것이 정석. 하지만 낚시가 성행했는데 경험담을 들어보면, 비싼 돈을 지불하고 집에 와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비디오를 재생하자 나오라는 음란한 영상은 안나오고 뽀뽀뽀전원일기, 아기공룡 둘리. 요술공주 밍키, 동물의 왕국, 일본어 강의 같은 건전 영상물이 나와서 돈만 날린 경우가 많았다고 하며, 품행제로신과 함께. 웅이아버지 등 여러 대중매체에서도 소재로 썼다. 하지만 비디오 보다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들어온 해외 성인 잡지들(속칭 빨간책)을 판매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는데 으슥한 곳에서는 아예 소매 붙잡고 끌고는 사라고 강매를 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구입한 책들을 학교에 가져가서 급우들에게 푼돈을 받고 1박 2일 빌려주는 친구를 도서관장(...)이라고 부르곤 했다. 성에 관련한 각종 이상한 약들을 파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는데 이 경우엔 어느 으슥한 창고 같은 데 끌고 가서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물건을 공동창고에서 가져오는 방법을 쓴다. 이 외에도 돈만 털리는 경우나, 이러한 청소년들을 노리는 불량 청소년들에게 고스란히 모아두었던 용돈을 빼앗기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 2009년에 현대상가가 철거되면서 많은 이들이 세운상가 전체가 문을 완전히 닫은 것으로 알았지만 현대상가가 유독 진척 속도가 빨랐던 것일 뿐 다른 상가들은 보상 조건을 협상한 적도 없었기에 영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LP라든가 진공관, 전자부품 등은 아직도 여기서만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이 많기에 수리업소 등에서 종종 찾곤했다. 또한 음향기기나 영상기기 수리업체도 슬금슬금 다시 입점했으며 예전 게임을 판매하던 흔적이 남아서 오락기기 제조 및 유통업체도 영세한 곳은 대림상가 등지에 아직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 비단 영세한곳뿐 아니라 연세어뮤즈먼트 같은 대형 유통사도 이쪽에 사무실이 있다. 돌아다니다 보면 오락기 부품이나 기판 등이 널부러져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지금도 이 일대 상가를 둘러보면 좀 오래된 홍콩 주상복합건물(ex. 충킹맨션)의 상업복도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을수 있다. 아무튼 이러한 내력이 있는탓인지 2019년에는 청계천 문화축제의 부속으로 전국 아케이드 게임기 박람회라는것도 열었다. 에뮬통 게임기 몇대와 뽑기기계 두대, 문구점에 들여놓던 가위바위보류 경품게임 두세개정도만 전시하고 끝. 별로 볼것이 없다고 한다.(...) 뉴스에서 이를 검색하면 손학규 의원이 방문했다는 내용만 나오는것으로 봐서 전형적인 구색맞추기식 행사에 불과하다.
  • 과거에는 세운상가의 오락실 부품공급업자들이 오락실 기판을 복제하기도 했다고한다. 단순 기판복사뿐만 아니라 일부 업체는 게임내용에 변조를 가한 해킹롬을 만들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홍콩이나 대만 위주 중화권의 부틀렉 게임 업계 한국판이었던 셈.
  • 현재의 세운상가는 최북단 현대상가가 철거되어 공원화되었고, 삼풍상가[6]와 풍전호텔 건물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슬럼화된 다른 세운상가군 건물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의 삼풍넥서스빌딩으로 재개장하였다.
[image]
▲ 삼풍넥서스빌딩
  • 김수정 화백 만화 쩔그렁! 쩔그렁! 요요에서도 주인공 요요를 만든 허일봉과 아우 허삼봉이 일하는 곳도 여기다. 극중에서는 미사일도 만드는 S상가라고 나오지만.
  • 무단방북으로 유명세를 떨친 노수희노점을 했던 곳이다.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 이라는 책에서 이 문서가 언급되었다.[7]
[1] 2008년도 사진까지 남아있는 다음 지도 로드뷰에서 볼 수 있다. [2] 다만 이 한국 최초란 수식어에 대해서는 건축가 황두진의 '''반론이 존재'''한다.# 만약 최초임을 인정한다면 두 번째로 건설된 주상복합낙원상가이다.[3] 2009년 철거된 현대상가까지 포함한 길이[4] 사실 서울을 비롯 전국의 대도시의 국유지는 이런 판자촌이 점령한곳이 많았다. 상당수는 국가가 불하해주고 했지만 저곳은 서울의 중심부이기에 그냥 밀어버린것이다.[5] 성매매를 하러 오는 사람을 "나비"로 비유하며, 이 "나비"들을 집중적으로 단속하는 정책. 밤마다 경찰들이 골목을 돌아다니며 이곳을 방문하는 유객들에게 온갖 날선 질문을 퍼붓고, 포주에게 갖가지 불이익을 주는 등의 방식이었다.[6] 삼풍백화점을 지은 그 삼풍 맞다. 그런데 삼풍백화점은 삼풍건설의 무리한 설계변경과 부실공사로 인해 무너졌지만, 삼풍상가나 서초 삼풍아파트는 삼풍건설이 지은것이 아니라 아직 멀쩡하다.[7] 오늘의 시각으로 봐도 파격적인 주상복합건축이었다 (...) 나무위키라는 인터넷 사전에서는 이 건물을 '타워팰리스보다 몇 십 년이 앞서는' 우리나라 주상복합 1세대의 대표적 건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